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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국민 할머니’ 김영옥

“나이 먹은 게 利點이 될 줄 몰랐어”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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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 TV방송 ‘HLKZ-TV’로 데뷔(1957년)… 연극·영화·드라마·성우 통해 연기력 쌓아
⊙ 살짝 공주병 있지만 불의 앞에 타협 모르는 이미지로 인기몰이
⊙ “배우는 나를 바탕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나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어”
⊙ 속사포 욕설의 비밀… “많이 외워 입에 착 붙게 하되 의미 단위로 끊어 외워야”
  KBS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서 구준표 일가의 안살림을 책임진 ‘집사장’ 역의 김영옥(金英玉·80)이 떠오른다.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날카롭고 철두철미할 것 같은 이미지가 그녀의 실제 성격일까. MBC 시트콤 〈몽땅 내 사랑〉에서 아들 김갑수가 사기꾼에게 속아 몸에 좋다는 돌덩이를 사오자, 직접 조폭들과 담판을 지어 환불받은 용감무쌍한 ‘승아 할머니’….
 
  무엇보다 김영옥 하면 KBS 드라마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서 큰언니 ‘쌍문동 쓰래빠(슬리퍼)’로 통하던 늠름한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발로 슬리퍼를 차 올려 한 손으로 받아 내던 엽기발랄 캐릭터는 주눅이 들거나 뒤편으로 밀려난 이 시대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버렸다. 극중 ‘욕설 따발총’은 아직도 회자된다.
 
  다음은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한 장면. 어느 식당, 맛없는 음식 앞에서 김영옥·한영숙·김혜옥 세 자매 할머니와 식당 아줌마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아줌마 “아니, 이런 할망구들이 음식 앞에 두고 뭣 하는 짓거리들이여~.”
 
  김영옥 “야! 니 눈엔 내가 그렇게 천진난만하게 뵈냐.”
 
  아줌마 “(약간 놀라며) 이게 밥 먹더니 힘이 넘치나….”
 
  셋째 김혜옥이 나선다.
 
  “야. 민증 까 봐! 너 몇 살이냐! 울 언니 29년 뱀띠시다. 이게 어따 대고 반말이야!”
 
  아줌마 “아니, 이것들이 노노노노노망이 났나.”
 
  둘째 한영숙 “노망은 니가 들었지, 니가. 이걸 확!”
 
  그제야 잠자코 있던 맏언니 김영옥이 등장한다.
 
  “(잠시 침묵 후) 욕이란 건 말이다… 옘병(염병) 땀병에, 갖다버릴 속병이 걸려 가지고, 땀통이 걸리면 끝나는 것이고,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 죽을 년 같으니, 십장생 같으니, 옘병 땀병에 그냥 땀통이 끊어지면 그냥 죽는 거야, 이년아! 이런 개나리를 봤나, 야 이 십장생아! 귤이나 까라, 그래! 시베리아 벌판아, 에라이 쌍화차야, 시베리아 벌판에서 귤이나 까!”
 
  충격 받은 식당 아줌마는 “손님, 왜들 이러세요”라며 울음을 터뜨리곤 백기 투항한다.
 
드라마 〈올드 미스 다이어리〉의 엽기발랄 세 할머니. 왼쪽부터 김혜옥, 김영옥, 한영숙.
  살짝 공주병이 있지만 한없이 인자하며 언제라도 아픈 사연을 들어줄 것 같은, 그러나 불의 앞에선 타협을 모르는 불 같은 성격의 우리 할머니, 우리 어머니가 김영옥이다. 따발총 욕설이 미국 힙합 가수 ‘에미넴’의 속사포 화법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얻은 별명이 ‘할미넴’.
 
  예능에서도 순발력과 재치를 뽐내며 최고 인기를 구가 중이다. 지난 6월 9일 서울 서초동 자택 앞에서 그녀를 만났다.
 
  —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집사장’ 할머니처럼 꼬장꼬장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신가요.
 
  “그런 게 있지 뭐…. 꼬장꼬장하고 그래요. 연기는 다 ‘자기’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어. 내가 할머니 연기를 30대 때부터 했잖아요. 독특하고 카리스마 있는 어머니, 할머니 역할을 맡았을 땐 힘이 두 배로 들었어요. 실제 나를 평가할 때 성격이 그렇게 강하지 않거든. 그런데 드센 배역을 많이 맡다 보니, 나한테 그런 면도 있나 싶어. 연기를 하면서 자신을 재발견한다고 할까, 표현하는 즐거움에 퐁당 빠져 살아 왔다고 할까.
 
  너무 (극 중) 설정에 빠지면 보는 이가 부담스럽고… 항상 배우는 그래요. 나를 바탕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나 이상도, 이하도 될 수 없어요.
 
  어떨 때는 ‘왜 나한테 이걸 하라고 그러지?’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하다 보면 ‘음… 내가 할 수밖에 없어 (역할을) 주나 보다’ 싶어요. 나는 시키는 사람을 신뢰해요, 이제는. (웃음)”
 
  선생은 자신의 연기 인생을 이렇게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대본을 받아들고 감독이나 작가가 원하는 걸 100% 표현했는지 모르지만 촉이 온다고 할까? 뭐든지 어영부영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할 때마다 최선을 다하는 거죠.”
 
 
  “가격도 싸고 막 써먹기 좋아서 그런가 봐”
 
‘노년 멜로’를 표방하는 드라마 ‘디어 마이프렌즈’는 김영옥·윤여정(왼쪽부터) 등 원로 배우들을 주연으로 내세워 관심을 끌었다.
  원로 배우들을 영화나 브라운관 속에서 점점 찾아보기 어렵다. 세월에 떠밀리고 있으나 이순재, 신구, 김영옥, 나문희 정도만 굳건하게 자기 자리를 지켜 가고 있다.
 
  — 요즘 인기를 실감하세요?
 
  “가격(개런티)도 싸고 막 써먹기 좋아 그런가 봐. (웃음) 인기라기보다 오래 했으니까 친숙함을 시청자가 느끼나 봐요. 반짝하는 인기가 아니라 ‘해묵은’ 무언가로… 자기 식구 같으니까 그런가 봐. 어디 나가면 툭 치고 가는 어른도 계시고, 애들이 좋아하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내가 KBS 〈올드 미스 다이어리〉, MBC 〈몽땅 내 사랑〉, SBS 〈오경장〉에서 코미디를 좀 했었잖아.
 
  고백하자면 정말 (섭외가) 오는 대로 다 할 수 없어요. 전에는 일이 오면 좋기만 했는데 이제는 겁이 나요. 그래서 안 하겠다고 마음먹고 대본을 읽으면 ‘아이쿠! 이건 내가 해야지’ 하고 욕심이 나요. 과한 거지. MBN에서 7월부터 방영되는 수목드라마 〈마녀의 사랑〉이 끝나면 가을엔 쉬어야지 마음먹고 있어요. 너무 안 쉬고 일해서 다른 사람이 느끼는 즐거움의 반은 지우고 살아온 것 같아. 물론 연기하는 즐거움으로 살았다면 내가 행복한 것이고….”
 
  — 비슷한 연배의 신구 선생을 뵈었더니 ‘경주마(競走馬)처럼 살아 왔다’고 하셨어요.
 
  “나도 채찍질하듯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누가 그렇게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연기가 좋아서 한 거지. 그러나 고백하자면 좋아서 한 것만도 아니야.
 
  차르르~ 카메라가 돌면, 무당의 신기(神氣)처럼 엔도르핀인지 뭔지 모르지만 걸음걸이부터 달라져. ‘내가 이런 면이 있었나?’고 할 정도로 힘이 불끈 솟아 버티는 것 같아. 난 관찰을 잘해요. 감자니 마늘이니 파 같은 작물을 키우는 할머니의 얼굴을 보면, 작물 앞에서 즐거워하는 표정이 읽혀요. 우리하고 성취감은 비슷하지 않을까.
 
  매일 아침 일어나 스트레칭을 하는데 몸이 찌뿌둥하다 싶으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신경을 쓰며 살았어요. 그것 때문에 건강한 게 아닌가 싶어요. 때론 욕심 때문에… 욕심이 해롭기도 하지만 이롭기도 한 것 같아요. 이것 참… 결론이 안 나오네. (웃음)”
 
 
  “배 아프지 않고 낳은 (극 중) 아들이 50명은 넘어”
 
드라마 〈몽땅 내 사랑〉에서 김영옥은 살짝 공주병이 있지만 한없이 인자하며 언제라도 아픈 사연을 들어줄 것 같은 승아 할머니로 분(扮)했다.
  어느 기사의 한 대목이다.
 
  〈… 남자 노역은 주로 이순재가 얼굴을 비친다면 여자 노역은 대부분 김영옥이 꿰차고 있을 정도로 스크린에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친근한 노역 배우 중 한 명이다. …〉
 
  — 이 기사를 읽었는데요, 배우면 배우지, ‘노역(老役) 배우’가 뭔가요. 이런 표현은 싫으시죠?
 
  “노역 배우… 감추고 피하고 싶진 않아요. 나이가 많아 그렇게 표현했겠죠. 그런데 그냥 배우라고 해 주면 좋을 텐데…. 내가 할머니만 했나요? 아주머니, 어머니(배역)를 안 한 것도 아닌데….
 
  하긴, 배 아프지 않고 낳은 (극 중) 아들이 50명은 넘어. 이순재, 신구, 임현식, 한진희, 조형기, 정보석… 수도 없지. 〈올드 미스 다이어리〉에선 임현식이 내 아들이잖아. 한진희·정보석이는 내 아들만 몇 번씩 했고…. 나보다 한 살 많은 신구씨는 KBS 드라마 〈들국화〉에서 내 아들이었잖아요. (웃음)
 
  근데요, 내가 무슨 독보적 존재여서 할머니 역을 섭렵을 한다?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젊어서부터 노인 역을 많이 맡아 눈에 띄어선지 모르나 그게 이점(利點)이 된 거야. 노인 역을 할 사람이 없었으니…. 선배들이 다 일을 놓으니까 제일 위가 된 거지, 다른 게 없어요.
 
  50~60대 후배 배우들이 ‘선생님이 롤 모델이야’, ‘언니가 롤 모델이야’ 같은 말을 들으면 이젠 어깨가 무겁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좋은 걸 남겨야 되는데…’ 하는 생각이 있어요. 어떤 이는 ‘무대나 스튜디오에서 죽고 싶다’던데 나는 절대로 그러고 싶지 않고… 조금이라도 성할 때 준비하고 가야지… 쉬다가 가야지… 그것 하나만은 지키고 싶으네.”
 
  — 엄마로서, 주부로서, 아내로서의 ‘나’는?
 
  “아이들(1남 2녀)이 어른이 됐는데도 어디가 아프다고 하면 어렸을 때 못 챙겨 줘서 그런가 하고 죄책감이 있어요. 괜한 걱정인데도 그래요. 아이들한테 50점도 못 되는 엄마였을 거예요. 남편에게도…. 지금까지 살림을 놓지 않고 연기생활을 병행해 왔어요. 스스로를 평한다면 자신을 너무 학대하며 살았다고 할까. (웃음) 학대했어, 학대….”
 
  — 연기하기가 편한 배우들은 누구세요.
 
  기자는 중견·원로 배우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열거해 보았다. 이순재, 신구, 주현, 박인환, 변희봉, 임현식, 김혜자, 전원주, 김수미, 김지영, 여운계, 윤여정, 사미자, 나문희, 반효정….
 
  “열거한 이들 중에 ‘함께 못하겠구나’ 하는 배우는 없네요. 윤여정이도 그렇고, 같이 하면 딱딱 맞아 들어가지. 신구·이순재씨도 무리가 없어요. 이렇게 하면 이렇게 치고 박고, 저렇게 하면 저렇게 치고 박고…. 한진희·정보석이도 나하고는 짝이야. 완벽하게 (연기를) 준비하는 이들이에요. 또 여운계하고는 안 해 봤고 김지영씨하고는 자주 해 봤어요. 라이벌? 라이벌이라기보다 (김지영과는) 쌍벽을 이룬 것처럼 조연급으로 많이 했지. 나이도 비슷하고 곧잘 (연기를) 하고… 이젠 먼저 가 버렸으니…. 앞으로 고두심 같은 후배들이 장악해야 될 것 같아요.
 
  그(고두심) 또래가 자꾸 치고 올라와 독보적 존재가 돼야지. 그런데 내 눈에 거슬려. (연기가) 맛있게는 안 나와. 우리가 아직은 맡아야지…. 너무 늙은 게 이점? (웃음) 나이 먹은 게 이점이 될 줄 몰랐어.”
 
  — 연기를 같이 해 보고 싶은 배우가 있을까요.
 
  “거의 안 만난 이가 없는 것 같아요. 요즘 드라마는 노인네를 두 명 이상 안 써요. 한 명만 씁니다. 그런데 어느 방송작가가 노인 두어 명을 몰아서 캐스팅한다면 나문희, 정혜선, 김용림 같은 배우랑 하고 싶어.
 
  백에 한 명 정도는 (같이 하기가) 좋지 않은 사람이 있지. 그건 할 수 없어. 어느 배우는 상대 배우가 누군지 (감독에게) 물어보고 마음에 안 들면 안 한다는데, 그 마음을 이해는 하겠어요. 왜냐면 내내 껄끄러우니까. 난 비교적 그런 적은 없었어. 물론 안 만났으면 하는 이가 있어요. 유난스러워서….”
 
 
  한국 최초 텔레비전 방송 ‘HLKZ-TV’로 연기 입문
 
김영옥은 1956년 개국한 한국 최초의 TV 방송인 ‘HLKZ-TV’를 통해 연기세계에 입문했다. 당시 여주인공으로 활약하는 모습.
  서울이 고향인 김영옥은 1956년 개국한 한국 최초의 TV 방송인 ‘HLKZ-TV’를 통해 연기 세계에 입문했다.
 
  당시 라디오 방송국은 있었지만 지상파 텔레비전이 개국되기 전이었다. 미국 상업 자본으로 설립된 ‘HLKZ-TV’는 《한국일보》가 인수해 대한방송(DBC)으로 TV방송을 제작했는데 김영옥은 탤런트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연극이나 영화가 아닌 TV를 통해 연기를 경험한 셈이다.
 
  ‘HLKZ-TV’는 뜻밖의 화재로 전소,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후 김영옥은 1959년 KBS 5기 아나운서(강원도 춘천 파견)가 됐고 이듬해 CBS 공채 5기 성우로 자리를 옮겼다. 1961년 MBC에서 성우극회가 출범하자 1기로 입사, 성우 활동을 이어 갔다.
 
KBS 춘천방송국 아나운서 시절의 김영옥(왼쪽). 사진=이장춘 제공.
  틈틈이 그녀는 연극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연출가이자 극작가인 차범석(車凡錫·1924~2006)이 창단한 ‘극단 산하’에 참여, 연극배우로 무대에 섰다. 차범석은 한국 현대극을 정착시키는 데 기여하고 제작극회를 만들어 소극장 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성우도 했지만 연극을 오래 했었어. 아이들이 한창 자랄 때였는데 무리를 하면서도 1년에 한두 편씩은 꼭 했어. 성우도, TV극에도 바쁘게 출연할 때였으니 연극하기가 벅찼던 때였어요. ‘극단 산하’가 해체될 때 마지막 남은 7명의 단원 중 한 명이었죠. 〈산불〉, 〈오판〉, 〈진흙 속의 고향〉, 〈대리인〉, 〈약산의 진달래〉… 그냥 생각나는 대로 꼽아도 5편이네. 〈키부츠의 처녀〉 같은 번역극도 많이 했어요. 하지만 연극에선 단돈 십 원도 못 받았어. 딱 한 번 〈약산의 진달래〉라는 작품을 할 때 1만원을 받았어. 그 시절, 명동바닥에서 차 한 잔을 마셔도 내 돈으로 마셨지, 누가 사 준 적이 없어요. 서로가 없었으니까….”
 
  김영옥 선생은 “연극 경험이 배우 인생의 바탕이 됐다”고 회고했다.
 
  “무대의 희열을 안 겪으면 몰라요. 그런 경험을 안 해 보고 나이 먹은 배우도 있어요. 무대를 거치지 않은 배우는 깊은 연기를 표현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무대에 서라, 서라’는 말을 자주 했어요.
 
  무대에 서면서 호흡하는 법도 알고, 소리 질러야 할 때, 웃어야 할 때, 화낼 때를 알았어. (무대 경험이 없어) 제때 소리 못 지르고, 웃지 못하는 배우가 많은데 그런 배우는 ‘똥배우’야.”
 
  — 지금도 연극무대에 서고 싶으세요?
 
  “연극에 대한 미련이 있지만 누가 연극을 하자고 권하면 겁이 나. 눈도 어두운데 안경 쓰고 할 수 있는 역이 아니면…, 암전(暗轉)됐을 때 너무 힘들어. 사고 날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연극이 주는 것은 죽을 때까지 못 잊을 것 같아. 너무 좋았어.”
 
  — 라디오 성우, TV 드라마, 영화, 연극까지 모두 섭렵하셨는데, 그래도 ‘회귀본능’이 생기는 장르가 뭔가요. 연극인가요, 성우인가요.
 
  “연극만 하고 쭉 관객 만나러 돌아다니면 제일 좋을 것 같아. TV는 그때그때 잊히지만, 직접 (관객과) 공감하면서 끝까지 할 수 있으면 좋지. 성우도 지금은 없어져서 그렇지만 얼마든지 상상력을 키워 주는 장르니 무시할 수 없어.”
 
  — 최초의 TV 방송이던 ‘HLKZ-TV’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상파 텔레비전이 개국하기 전인데, 미국 RCA의 한국법인과 《한국일보》가 제휴해 TV 수상기 8000대(김병희 등이 공저한 《한국 텔레비전 방송 50년》에는 TV 수상기가 7000대 보급됐다고 적혀 있다.)를 가정에다 보급하면서 TV를 시작했어요. 그때 주인공으로 연기를 많이 했어요. 믿거나 말거나지만…. 자료가 어디 남아 있을 거예요.
 
  안평선씨라고, 나중 KBS에서 퇴사하셨는데 나랑 같이 연기했어요. 내가 스무 살 때였는데 6·25 특집극에서 어머니 역을 맡았어요. 그이가 아버지 역이었죠. 최창봉씨(전 MBC 사장, KBS 방송총국장 역임) 아시죠? 그 양반이 ‘HLKZ-TV’ 과장으로 계실 때 우리가 했다고. 이기하·황운진·최덕수 이런 분들이 감독(연출)할 시절에… 그까짓 얘기해도 사람들이 모르니까. 하지만 그때 ‘HLKZ-TV’에 출연했던 이순재씨는 너무 잘 알거야….”
 
  방송사 성우 시절, 그녀는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를 도맡았다. 예컨대 〈마징가Z〉의 쇠돌이, 〈로보트 태권V〉의 훈이, 〈이상한 나라의 폴〉의 폴 목소리로 분(扮)했다.
 
  “목소리가 칼칼해서인지 남자 애들 목소리를 많이 맡았어요. 발성연습으로는 주로 노래를 불러요.
 
  (노래를) 잘해서가 아니라 이 목소리로 낼 수 있는 최고음과 최저음을 다 해 보는 거야. 몇 옥타브냐고? 그건 모르지만 매일 시간 정해 놓지 않고 하지. 차에서도 하고…. 매니저가 듣기 싫어하겠지. 목소리로 컨디션이 좋고 나쁘고를 측정할 수 있어요.”
 
 
  “옘병, 땀병, 속병 하고 쏟아낼 때…”
 
영화 〈써니〉의 한 장면. 속사포 발성의 비밀에 대해 김영옥은 “특별한 방식은 없다. 많이 외워 입에 착 붙게 한다”고 했다.
  — 보통 사람보다 옥타브가 높으시죠?
 
  “그렇죠. 소프라노지. 고교시절(계성여고) 합창단 할 때도 소프라노였어요. 노래를 하며 저절로 복식호흡을 익히게 됐죠. 발성은 치아와 관련이 있는데 나이 먹어 치아색이 노래지고 가끔 새끈새끈(시큰시큰)하지만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저승 갈 때가 안 됐나 봐. 이(齒)를 새로 해 넣은 후배가 있는데 그래도 (발성을) 잘하더군요. 근데 후배 말이 ‘(전보다) 힘들다’고 해요.”
 
  김영옥의 속사포 발성의 비밀이 따로 있을까. 그녀는 “특별한 방식은 없다. 많이 외워 입에 착 붙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쏟아낼 때 의미를 알아야 해. 영화 〈써니〉에서 욕설 문장이 이상해서 못 외우겠어. 그래서 감독에게 뜻풀이를 해 달라고 했지. 말을 길게 쏟아내면 문장이 안 끊어지는 것 같지만, 의미 단위로 끊어 외우는 거지. 그게 노하우지. 옘병(염병), 땀병, 속병… 하고 쏟아낼 때 표현은 자기 것으로 해야지, 남의 것 도용하면 흉내 내는 거야. 자기 게 아니면 가슴에 와 닫지 않아.”
 
  다음은 영화 〈써니〉의 한 장면. ‘나미 오빠’는 철부지 운동권 대학생이다. 김영옥은 치매 끼가 있는 할머니로 질펀한(?) 전라도 방언을 들려준다.
 
  나미 오빠 “저거, 저거 아버지도 언제까지 이 더러운 정권 밑에서 공무원이란 이름으로 저자(뉴스에서 나오는 전두환을 지칭하며)의 하수인 노릇을 할 거예요?”
 
  아빠 “하수인? 야. 이놈 새끼야. 니 잘난 등록금은 어디서 나고 허구한 날 처먹고 다니는 니 술값은 어디서 나는 거 같냐? 노동운동이건 복근운동이건 니가 벌어 하든지. 내 돈 받아 쓰는 동안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오빠 “아버지.”
 
  아빠 “시끄러.”
 
  오빠 “인생은 짧고 혁명은 긴 거요.”
 
  이 대목에서 갑자기 할머니 김영옥의 욕설이 시작된다.
 
  “이런 씨부럴. 인생이 왜 짤버(짧어)! 옘병(염병)… 이눔(이놈)의 주둥박, 서방 알면 돌가산(석산)의 복숭을 훑으기하다가(따다가) 벌집을 쑤셔 갖고, 대구빡(대갈빡)이고 낯판때기고 죄다 쪼아버려 주둥박이라 허것네.
 
  요새 난 또 맞선 볼 적에 내숭 까고 숨퍽(순진한 척?) 떨어갖고 장가들었다고 쩜쩜 하는디(데), 어쩌것어(어쩌겠어), 십팔년 살었는디(살았는데). 대(代)는 이어야 할 것 아니여, 니미럴.”
 
  잠시 침묵 후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언니, 국 쪼까(조금) 더 돌라고”다. 말없이 할머니를 쳐다보는 가족들. 그러나 늘 있던 일인 듯 다시 식사에 열중한다.
 
  이런 말이 있다. “연극은 가르칠 수 없다. 그러나 화술은 가르칠 수 있다”고. 이 말은 화술은 소질만으로 안 된다는 의미다. 끊임없는 훈련을 통해 중요 음절과 부차적 음절에 대한 음악적 교양을 쌓아야 한다. 김영옥은 최근 힙합에 도전, 새로운 발성연기를 훌륭히 개척하고 있다.
 
  “배우를 꿈꾸는 어린 학생들을 몇 번 가르쳐 보니, 한 달 배운 애와 몇 달 배운 애가 확실이 달라. (발성)연습이 필요하구나 느꼈어요. 너희가 꼭 (연기를) 하고 싶으면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한다고 가르쳤어.”
 
 
  “그 인물에 풍덩 빠져야”
 
따발총 욕설이 미국 힙합 가수 ‘에미넴’의 속사포 화법을 연상시킨다고 하여 얻은 별명이 ‘할미넴’.
  — 성공한 배우의 덕목을 꼽으신다면?
 
  “배우가 하고 싶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야. (잘생긴) 얼굴하고는 상관없다고 하지만 연기는 촉이 있어야 돼. 빨리 알아듣고 표현할 수 있는 촉…. 좀 타고나야 하지 않을까. 그 다음에 (연습으로) 덮어씌우는 거지.
 
  그런데 배우는 다 주인공을 꿈꾼단 말이야. 대개가 그래요. 그렇게 달려들면 안 돼요. 시켜 주는 사람(감독, 연출자)의 평가를 무시하지 말고 시켜 주걸랑, 그 인물에 풍덩 빠져 최선을 다해야 해요.
 
  그리고 ‘숫기 없다’고 그러지? 내성적인 성격도 배우와 상관이 없어요. 나도 숫기가 없어 자꾸 구석에 앉고 그랬으니까. 고교 때 국어선생님이 합창단을 권하셔서 노래한 것이 연기까지 하게 됐어. 배짱이 생겼다고 할까. 어쨌든 성격이 좌우하진 않아. 자기가 얼마만큼 잘할 수 있는가는 남이 평가하지, 내가 평가하는 것은 아니야. 나는 최선을 다하는데 (남이) 아니라고 하면 빨리 다른 길로 갈아타야지. (웃음)
 
  그리고 주위에서 ‘된다, 된다’ 하면 역할에 욕심 내지 말아야 돼. 나도 ‘일하는 아줌마’ 역을 좀 많이 했어요. 그 시절, 배우 한다면 집안 식구들조차 미쳤다고 그랬어. 엄마한테 야단맞아도 노는 기분으로 오늘날까지 왔어. 무대에서 (연기) 잘한다고 하고, 우습다고 하니 희열이 생겨 좋고, 그러다 보니 돈도 벌고… 그렇더라고. 이렇게 얘기하면 딱 맞는 말 같아요.”
 
  — 고생하면 반드시 낙이 오나요. 한 20년 연기하면?
 
  “다 된다? 그럴 수는 없어요. 일단 생활이 안 되면 곤란하잖아. ‘쟤는 참 괜찮은데…’ 하는 후배들 중에 사라진 경우가 많아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잖아요. 배우 수는 많고 뽑히는 사람은 적고… 또 뽑히는 사람만 뽑히게 돼 있고…. 감독이나 작가가 보는 눈이 있으니까.”
 
  — 그래도 버티다 보면 언젠가는 진흙 속 보석처럼 빛나겠지요?
 
  “인내심이 필요해. 좌절하지 않고 오래 끈질기게 붙어 있다 보면 ‘어머! 저 재주가 보이네’ 하고 발탁이 되지.”
 
  일제 강점기 신극 운동의 대표 기수인 유치진(柳致眞·1905~1974) 선생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배우가 무대에서 말하는 데 10년, 연기를 제대로 하는 데 10년이 걸린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뭐겠냐? 먼저 인간이 돼야 한다.”
 
  — 선생님. ‘인간이 돼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나도 똑같이 ‘인간이 돼야 한다’고 말해. (마음이) 비뚤어지면 연기도 그것밖에 안 나와. 생각을 바르게 해야 바른 연기가 나오지. 삐뚤어지면 딴 곳에 신경을 쓰고 결국엔 못하더라. 내가 가진 것을 내가 표현하는 것인데 왜 딴생각을 해? 무르익은 연기란, 결국 연륜이 쌓이면서 하는 것이거든. 연기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그런 것 같아요. 하다못해 음식장사를 해도 아무렇게나 빨리 만들면 맛이 있겠어? 자기만의 노하우나 쏟은 정성, 시간에 달려 있어.”
 
  — 뭐든지 익어야 되는군요. 그냥 나오진 않나 봅니다.
 
  “어떤 배우는 자기가 잘하는 줄 알아. 안타까워. 그게 사람에게 먹힌다고 ‘도도도도하는데(도도한데) 아이쿠! 더는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고….”
 
  — 선생님만의 조연연기론을 들려주세요.
 
  “조연이든 단역이든, 할 때는 내가 주인공이라 생각하며 해야 돼요. 나는 그랬어요. ‘나한테 맞는 역을 (감독이) 주셨구나’ 하고 덤벼들어서 해야 해. ‘일하는 아줌마’ 역이라도 맛있게 해야 그 배역이 커지는 거야. 그 순간만큼은 시청자가 주인공을 제쳐 놓고 나를 쳐다보잖아. 주인공이 극을 다 끌어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리고 지금은 조연도 빛나는 시대가 됐어.”
 
  — 과거 주인공 하셨던 분들이 지금은 거의 사라졌어요.
 
  “아는 배우 중에 주인공 몇 번 하고 노는 이가 많아요. 당장은 빛나진 않지만 조연으로 자기가 하고 싶은 연기를 평생 쭉 하고 살면 얼마나 좋아.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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