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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ㆍ13 지방선거

유력 후보 릴레이 인터뷰 | 3선 도전하는 박원순의 대항마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원순, 이명박 시장 때보다 시민 불편 덜어 주는 정책 없는 게 문제”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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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에 저 우상호가 정부와 호흡 제일 잘 맞는 후보라는 인식 확산”
⊙ 박원순 시장, 강남표 유혹에 강남 4구 아파트 재건축 허가 결정… 자신의 가치 훼손하면서까지 정치할 필요 없어
⊙ 서울시민에게 ‘박원순 시장님이 잘한 일이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탁 떠올리지 못해
⊙ 민주주의 국가서 군대가 조직선거하는 현실 접하고 운동권에 투신
⊙ 86세대 대부분 합리적 진보로 바뀌었는데 일부 보수층에서는 ‘빨갱이’라 비판… 그분들은 왜 변하지 않나
⊙ 광주에서 사람 많이 죽인 전두환 잘못인데 체제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
⊙ DJ 때 방북한 북한 추종주의자 대부분 평양 보고 실망
⊙ 김정일보다 정치적인 고려 훨씬 더 하는 김정은의 영악함이 싫어
⊙ 국가적으로 보수가 침체에서 벗어나야… 그래야 민주당도 긴장하고 혁신할 수 있다
  1998년 고건 서울시장 후보 캠프 부대변인, 2002년 김민석 서울시장 후보 캠프 부본부장, 2006년 강금실, 2012년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캠프 조직 담당,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박원순 후보 대변인, 2014년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캠프 전략홍보본부장. 이쯤 되면 서울시장 선거에 도가 텄을 것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역대 서울시장 중 처음으로 3선에 도전하는 박원순 시장의 가장 강력한 대항마로 꼽히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우 의원은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운동권 그룹’의 맏형이다. 1987년 연세대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부의장을 하면서 민주화 운동 선봉에 섰다. ‘6월 항쟁’ 시위 과정에서 숨진 대학 후배 이한열씨를 위한 서울시청 앞 대규모 장례식의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7일 고(故)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포문을 열고 이한열 사망 사건으로 마무리 지은 영화 〈1987〉을 관람하면서 현직 의원으로는 우 의원을 유일하게 초청했다.
 
  당 관계자는 “우 의원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것은 ‘문심’ 때문”이라고 했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당원투표와 여론조사가 5대5 비율로 치러진다. 당원투표는 많게는 70%까지 달하는 걸로 알려진 친문 당원들이 키를 쥐고 있다. 당내에서는 이들이 박 시장의 3선 도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설’이 파다하다고 한다. 박 시장의 대항마를 찾는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콕 찍어 옆자리에 앉히고 영화를 본 데다, 전대협 출신 청와대 보좌진과 호형호제하는 우 의원이 친문 당원 눈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영화 관람 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보좌진과 가진 점심 자리에서 정국 현안을 논의한 우 의원은 1월 21일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새로운 젊은 정치세대의 전면 등장이라는 시대정신을 제기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공, 새로운 서울의 변화, 다음 정치세대의 준비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민주당의 선수교체, 인물교체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며 서울시장 출마 선언을 했다.
 
고 이한열 열사의 추모 집회를 열고 있는 우상호 의원(가운데)과 배우 우현(왼쪽).
  1월 마지막 날 우 의원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 서울시장 경선 캠프 사무실은 얻었나요.
 
  “알아보는 중입니다. 캠프도 구성 중이고요.”
 
  — 86세대 맏형이니까 그쪽 분들이 많이 돕겠네요.
 
  “아무래도 제가 86그룹에 맏형 격이니까, 그 그룹은 거의 저를 지지해 준다고 봐야죠.”
 
  — 그분들이 캠프에서 핵심역할을 하겠습니다.
 
  “저는 될 수 있으면 현역 의원을 캠프에 상주하게 하면서 선거를 치르는 과거 방식은 지양하려 합니다. 사실 저를 지지해 주시는 분들이 지역구에서 홍보활동해 주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이 되거든요. 제가 서울시장 선거만 6번을 치러 봤습니다. 캠프 사무실이 북적인다고 꼭 성공하는 것은 아니더라고요.”
 
 
  “박원순, 3선과 대선 모두 욕심”
 
  — 박원순 서울시장을 ‘재선’ 만드는 데 일등공신이었는데, 출마선언할 때 보니까 꽤 강도 높이 비판하더군요.
 
  “촛불 시민혁명은 최순실 게이트의 중심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보수에 대한 심판이기도 했지만 변화하지 않는 정치권에 대한 경고 성격도 있습니다. 그걸 간과해선 안 됩니다. 우리 당을 지지하는 분들은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데, ‘그대로 가자’고 한다면 여당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시민 마음속에는 세대교체의 바람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 3선 도전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은 새로운 인물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님이 등장했을 때는 그 자체가 변화였습니다. 청렴하고 깨끗한, 그리고 비정치인인 박 시장에게 열광했죠. 기존 정치권 후보인 박영선 의원을 경선에서 이겼잖아요. 변화를 바라는 시민의 힘이 이만큼이나 크죠. 당시와 지금은 다르죠. 박 시장님이 3선 하시는 게 변화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서울시장 선거를 도우면서 알게 된 점은 우리 시민은 서울시장 선거 때 ‘누가 변화의 상징이냐’를 보고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박 시장님이 지난 7년간 잘해 오셨지만 지금 시민에게는 변화의 상징으로 보이기에 조금 부족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3선에 목숨 거는 건 차기 대선 때문인 것 같은데요.
 
  “제가 작년 8월쯤 박 시장님을 뵀을 때 여쭤봤어요. ‘어떻게 하시려느냐’고요. 박 시장께서 ‘아직 못다 이룬 일이 많다. 3선 도전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분이 일 욕심이 많아요.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이면에는 시장 직을 유지하는 게 다음 대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깔렸었습니다. 저는 그런 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치적으로 당연한 판단이니까요.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대선을 노린다면 3선보다는 야인으로 전국을 돌면서 민심도 듣고, 전문가들과 공부하는 게 훨씬 낫다고 판단합니다. 문재인 대통령 보세요. 대선 패배 뒤 4년 동안 전국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지지층을 규합하지 않았습니까?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은 자신의 진정성을 전달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시장님께 이렇게 말씀드렸는데, 두 가지(서울시장과 대선도전)를 다 한번 해 보겠다고 하시더라고요.”
 
  — 박 시장은 3선 서울시장을 하면서 대선 준비를 하겠다는 겁니까.
 
  “시장을 하면서도 대선준비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있으셨어요. 제 견해로는 시장 하는 게 대선 준비하는 데 도움이 안 될 거 같다고 했는데, 다 해 보겠다고 하셨으니, 3선 하면서 대선 준비한다는 뜻이겠죠. 선택은 본인이 하는 거니까요.”
 
 
  원내대표 했을 때부터 ‘우상호 정치’ 시작
 
2016년 8월 23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였던 우상호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 현역 프리미엄은 막강한 것 같던데요.
 
  “그렇죠. 현역 프리미엄이 있는 박 시장님이 대세를 유지하는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바뀔 겁니다.”
 
  — 운동권 출신 사이에서는 ‘스타’지만 예상외로 인지도가 낮습니다. 3선인데도 말이죠.
 
  “저는 늘 선배 세대를 도와서 우리 당이 잘되게 하겠다는 일종의 집단주의적인 시각이 있었습니다. 개인 정치를 안 했죠. 그러다 보니 선배들이 당직을 많이 맡겼는데, 당과 다른 저만의 주장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직을 안 맡고 선명한 주장을 해야 제 이미지, 제 팬이 생기는데 말이죠. 제 정치를 시작한 게 원내대표를 맡고부터였습니다. 많은 분께 항상 이야기합니다. 원내대표 했을 때부터 우상호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해 달라고요.”
 
  — 선배를 돕는 정치를 한 게 사실 실이 많았던 거네요.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소신을 접을 때가 잦았으니까요.”
 
  —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은 당원투표와 여론조사가 5대5 비율로 치러지죠?
 
  “룰이 바뀌지 않는다면요”
 
  — 현재 이 룰에 만족하시나요.
 
  “저는 룰에 크게 관심이 없습니다. 과거 대의원들만 참여하는 경선에는 룰이 매우 중요했죠. 하지만 지금처럼 당원 수십만이 참여하는 데다가 여론조사까지 합치는 시스템에서는 룰이 무의미합니다. 오직 시민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이죠.”
 
  — 경선 승부의 키를 쥔 친문 당원들이 지지한다는 소리가 들리던데요.
 
  “당 여론 형성에 가장 영향 미치는 두 그룹이 있습니다. 하나는 50~70대의 호남 중장년층이고 다른 하나는 20~40대의 젊은 문 대통령 지지층입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영입한 호남계는 저와 정서적 친밀도가 가장 높습니다. 또 서울시장 출마 유력 후보 중 문 대통령과 가장 ‘각’을 안 잡고 협력한 사람은 바로 접니다. 문 대통령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후보가 우상호라는 공감대가 문 대통령 지지층에서 확산하고 있죠. 청와대 주요 참모들도 나와 1980년대 학생운동을 같이 한 동료입니다. 정서적으로 가깝죠. 물론 문 대통령께서는 중립이지만 경향적으로 제가 가장 가깝다고 느낍니다.”
 
 
  강남 4구 아파트 재건축 허가 결정은 ‘강남표’를 얻어야겠다는 생각 때문
 

  — 박 시장의 강남 4구 아파트 재건축 허가 결정이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엇박자를 냈다고 비판했는데요.
 
  “지난 연말 서울시는 강남 4구의 재건축을 집중적으로 허가했습니다. 이 지역 부동산이 기대효과로 상승했죠. 결과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8·2 부동산 대책이 실패한 것으로 보도되고 다뤄졌죠. 만약 서울시의 재건축 허가가 없었다면 문재인 정부의 초기 부동산 정책이 효과를 냈을 것입니다. 서울시와 정부에 엇박자가 나면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의 몫입니다. 지금 보세요. 강남 이외의 지역에서는 ‘우리는 도대체 뭐냐’는 위화감이 조성되지 않았습니까. 좋지 않은 정책 접근이었다고 봅니다.”
 
  — 강남표를 의식한 결정이었다는 것이죠?
 
  “현실정치를 하면 유혹이 있습니다. ‘내가 이런 거 해 주면 표가 올 텐데’ 하는 것이죠. 저도 지역구(서대문갑)에서 18년 동안 활동했기 때문에 잘 알죠. 그런데 정치는 자기 철학과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할 수 없으니까요. 집값 안정은 서민정책의 화두 아닙니까. 재건축 허가를 해 주더라도 순차적으로 나눠서 천천히 간격을 두고 해야 했습니다. 저라면 유혹을 이겨 냈을 겁니다. 이해관계에 몰입된 분들 표까지 다 받으려고 자신의 가치를 훼손한다면 정치인으로서 정치하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 강남 집값 상승 책임을 박 시장에게만 넘기는 것 같습니다.
 
  “강남 4구에 집중적으로 재건축을 허용할 경우 재건축 아파트 중심으로 집값이 오른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박 시장이) 강남에서 표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앞선 나머지 국가적 가치를 더 우선시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있는 것이죠.”
 
  — 박 시장의 결정을 보고 놀랐겠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지역에서 구청장들이 선거를 앞두고 (박 시장에게) 빨리 해 달라고 졸랐겠지만….”
 
  — 박 시장의 미세먼지 대책도 지적했습니다.
 
  “시장님 정책 중에 시장님답지 않은 정책이었습니다. 저분이 한 일을 다 잘못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서울시민에게 ‘박원순 시장님이 잘한 일이 뭔가요’라고 물어보면 구체적으로 탁 떠올리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을공동체 사업, 태양광 사업, 도시재생 사업 등 좋은 정책을 많이 펼쳤지만 정말 시민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 주는 정책은 성공한 게 없습니다.”
 
  — 시민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 주는 정책이 뭡니까.
 
  “굳이 비교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명박 전 시장은 청계천이라고 하는 서울시의 가장 큰 장애물을 철거하고 맑은 물을 흘려 내보냈죠. 물론 자연수는 아니지만. 그곳을 걷는 시민은 ‘이거 참 잘했네’라고 생각을 하죠. 버스전용차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버스를 이용하는 시민은 매일 아침마다 통쾌함을 느끼죠. 자가용은 서 있는데, 자신이 탄 버스는 막힘 없이 쭉 가니까요.”
 
  — 서울시장이 된다면 내놓을 시민의 고통과 불편을 덜어 주는 정책이 있습니까.
 
  “몇 가지 구상한 게 있습니다. 3월 초에 발표할 겁니다.”
 
  — 집값을 잡을 수 있는 정책이면 좋을 듯합니다.
 
  “생각한 게 있습니다. 투기적 수요 때문에 집값이 갑자기 급등하는 것은 막을 수 있죠. 대부분 인허가와 관련돼 있으니까요. 이 부분은 3월에 시민께 자세히 설명드리려 합니다.”
 
 
  다자구도로 가면 여당 후보에 유리
 
2016년 5월 19일, 19대 국회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우상호 원내대표가 인사를 하고 있다.
  — 현 분위기상 서울시장 선거는 본선보다 예선이 치열하겠죠?
 
  “지금은 그렇지만 이 흐름이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르죠. 가령 대통령과 정당 지지율이 하락하는 계기가 만들어지면 낙관론은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 야당의 지지율이 정체 중이지만 선거가 다가올수록 오를 것으로 봅니다. 선거 때는 보수가 결집하기 때문이죠.”
 
  —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통합신당으로 탄생할 미래당이 후보를 내면 선거가 다자구도로 치러질 텐데요.
 
  “아무래도 야당 후보가 여러 명이면 여당 후보가 선거 구도상 유리할 수밖에 없죠.”
 
  — 가정인데, 만약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된다면 본선에서 김병준 교수(자유한국당 후보 가능성), 안철수 대표(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통합신당 후보 가능성)와 맞붙을 수 있습니다. 두 명 다 같은 편 아니었습니까.
 
  “글쎄 말입니다. (웃음) 제가 우리당 후보가 된 건 아니지만, 본선을 예상해 보자면 자기 당 후보 지지자를 총집결시켜 놓고 외연 확장을 위해 상대 진영 성격의 후보를 영입하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아직 자기 진영 지지층이 결집하지 않은 상황에서 당에 맞지 않는 후보를 앉히면 역효과가 나죠. 선거의 핵심은 선 자기 지지층 결집, 후 외연 확장이거든요. 자기 지지층의 선 결집에 실패하면 아무리 좋은 후보를 갖다놔도 그 후보의 소구력은 약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 김병준 교수가 친노 핵심이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결정한 한미 FTA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을 민주당 의원이 앞장서 비판하는 것을 보고 크게 실망한 것 같던데요.
 
  “김병준 교수님은 제가 존경합니다. 그분이 불만을 갖는 것도 이해하고요. 하지만 이게 다른 진영으로 넘어가는 이유가 되는 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 이런 걸 원할까요. 제가 원내대표 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김 교수를 총리 후보로 지명했습니다. 저는 교수님이 동의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김 교수가 살아온 인생과 이력에 맞지 않는 결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분이 총리가 되면 더 망가지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총리 지명에 동의해 주지 않았지요. 개인적으로는 죄송했지만요.”
 
 
  시인을 꿈꿔 온 조용한 소년이 86세대 맏형이 된 이유
 
고 이한열 열사의 모친 배은심(왼쪽 3번째) 여사가 2016년 4월 11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청소년수련관 인근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의원(맨 오른쪽)의 선거유세 현장을 찾아 지원유세에 나선 배우 안내상(맨 왼쪽), 우현(왼쪽 두번째)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우 의원의 대학교 후배인 안내상씨와 우현씨는 재학시절 당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한 바 있다.
  우 의원은 초등학교 때부터 시인을 꿈꿨다. 가족의 뜻과 달리 연세대 상대가 아닌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1986년 오월문학상 시 부문 당선, 윤동주 문학상을 받으며 예비 시인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정치인 특유의 친화력을 지녔다. 눈이 마주칠 때면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며 눈으로 웃는다. 대학 진학 당시 목표였던 여고 국어 선생님이 됐다면, 수많은 여고생의 첫사랑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그가 1987년 6월 항쟁을 주도했다는 사실과 선뜻 연결되지 않는다.
 
  — 시인을 꿈꾸던 대학생이 학생운동 최전선에 선 계기가 뭡니까.
 
  “대학교 1~2학년 때는 문학도로 비운동권이었습니다. 물론 문학회 생활을 하면서 같은 과 운동권 학생들과 교류는 있었고 여러 번 제안을 받았지만,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죠. 그런 상황에서 군대에 갔는데 저를 학생운동시키려고 했는지 아주 부정부패하고 썩었더군요. 분대장이 중대 운영비를 떼어먹는 것도 모자라 병사에게 민간에 가서 합판, 스티로폼을 훔쳐 오라고 시켰습니다. 그걸 부대에 필요한 시설에 썼죠. 황당했던 게 훔쳐 온 병사에게 포상휴가를 줬습니다. ‘세상에 도둑질한 병사를 모범 병사라고 포상휴가를 보내는 군대가 있다는 게 말이 되나’ 하고 분노했죠. 그러다 1985년에 일이 터졌습니다.”
 
  그가 말을 이었다.
 
  “1985년도에 총선을 앞두고 중대장이 ‘야당 찍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정신교육을 시작했습니다. 기표소가 중대장실이었는데 투표를 처음 하는 병사가 많아서 지도 명목으로 중대장이 배석하고 있었죠.
 
  중대장 테이블에 투표용지를 놓고 인주를 찍는 방식이었는데, 야당을 찍었습니다. 당시 어용 야당이라는 민한당이나 국민당과 달리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주도해 만든 신한민주당이 주목받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우 병장 그렇게 교육을 시켰는데 야당을 찍어? 까불고 있다’라고 협박을 하는 겁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연대장이 불려 가서 술 먹고 돈 먹고 조직선거를 하는 현실을 보고 구조적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제대 후 제 발로 학생운동 하는 후배를 찾아갔습니다. 나 좀 넣어 달라고 했죠. 그전까지는 이념사상 책 한 번 읽어 본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 혹시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SNS상에서 엄청난 예언서로 불리는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라는 월간 《말》지의 부록 아십니까.
 
  “잘 알죠. 기획에 참여했으니까요.”
 
  — 〈21세기 한국의 희망 386리더〉를 보면 87년 총학생회장이 되면서 연세대 학생운동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고 하던데요.
 
  “86년까지 학생운동은 대개 과격했습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화염병과 각목을 사용했죠. 저도 운동권 핵심이고 화염병 많이 던졌지만, 이거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주주의를 관철하기 위한 학생운동에 많은 학생이 동참하지 못한 이유가 운동권 학생이 보이는 과격한 모습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강성 운동권은 싫어했겠습니다.
 
  “강성 운동권 학생은 절 싫어했습니다. 그 애들이 학생회관에다가 ‘이불 속에서만 자주민주통일을 외치는 총학생회는 물러가라’라는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이해는 했죠.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 조치를 발표하고 폭압을 하는 상황에서 화염병 시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으니까요. 제가 그들에게 토론하자고 했습니다. 100명 넘게 모였는데, 너희 200명이 교문에 모여 화염병 던지는 것과 학생 2000명이 교문 앞에 앉아 아침이슬 부르는 것 중 어떤 게 전두환 정권에 더 타격이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대학생은 전부 프티 부르주아(소시민)라 신분상승 욕구만 있기 때문에 민주화 투쟁을 하지 않는다’고 하기에 ‘너희는 대학생 아니냐’고 반박했죠. 결국 저는 2000명씩 교문에 앉혀 놨습니다. 87년 6월 항쟁 때도 저희는 비폭력 노선이었어요. 사실 〈1987〉 영화에 6월 항쟁에 나선 학생들이 막 돌, 화염병 던지는 것으로 나오던데 안 그랬습니다.”
 
  — 86세대에 대해 정치권에서 ‘싸가지가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뭡니까.
 
  “진보파의 선민의식은 태생적인 것 같습니다. 공부를 많이 했잖아요. 공부 많이 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선민의식이 몸에 배요. ‘싸가지 없다’는 이야기 안 들으려면 정치권에 있는 진보파들은 선민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보다 잘 알지 못하거나, 치열하게 살지 않은 사람을 보면 무시하기 때문이죠. 사실 저희도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잘 보면 아시겠지만,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한병도 청와대 정무수석이나 저나 선민의식을 갖거나 배타성을 가지고 남을 공격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우리를 항상 그룹으로 보니까 몇십 명 중에 한 명만 그런 실수를 해도 모두 욕을 먹지요.”
 
 
  빨갱이가 수만 명이라니…
 
  — ‘주사파’ ‘빨갱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저 우상호는 주사파는 아니었지만 87년에 아주 골수 운동권이었습니다. 반미투쟁 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저는 합리적 진보로 바뀌었죠. 그럼에도 사회 기득권층으로 저희를 탄압하던 분들은 아직도 저희를 ‘빨갱이’라고 합니다. 무슨 대화를 하겠어요. 제가 한때 그들이 비판하는 ‘빨갱이’라 칩시다. 학생운동 2년 했습니다. 이후 28년은 다르게 살았죠. 그런데 비판하는 보수층에서는 저와 제 동료를 계속 80년대로 데려가죠.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제가 바뀐 것처럼 저를 비판하는 쪽에서도 대한민국에 도움이 되는 건강한 보수로 바뀌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 어떤 인물을 빨갱이라고 하는지 아시죠.
 
  “운동권 안에서도 빨간 분들이 있잖아요. 어떤 사상을 신봉한 나머지 체제를 전복하려는 사람이겠죠.”
 
  —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죠.
 
  “전두환이 미웠으니까요. 광주에서 사람 많이 죽였잖아요. 절망감이 심하다 보니 우리 체제가 잘못된 것으로 판단한 거죠. 전두환이 잘못한 것인데, 체제가 잘못된 것으로….”
 
  — 운동권 출신 중 요즘도 체제전복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나요.
 
  “재미있는 거 하나 말씀드릴게요. 김대중 대통령 때 열렬한 북한추종주의자 다수를 비행기 한 2~3대에 태워서 북한 평양으로 날랐습니다. 청년학생운동 하는 사람들이었는데, 북한 갔다 와서 상당수가 그만뒀습니다. ‘지상낙원이 아니네’라면서요. 체제라는 게 잘된 사례가 있어야 추종을 하죠. 지금 남아 있다면 아마 한 줌도 안 될걸요. 제가 운동권 출신인데 왜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잘 안 믿습니다. 보수의 어른들이. KBS 이사장 하던 이인호 선생님은 제가 김대중 대통령 때 같이 모신 분인데, 간첩 수만 명이 암약하고 있다고 말씀하시기에 ‘아닙니다, 선생님. 이제 그런 그룹 다 사라졌습니다’고 했는데도 절대 아니란 겁니다. 제가 벽을 느꼈죠.”
 
  — 간첩은 없나요.
 
  “암약하는 간첩이 수만 명이라면 반드시 사고를 칩니다. 지상 위로 고개를 안 내밀 수가 있겠습니까. 제 말을 믿지 않는 보수 인사들이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은 이해하나, 사실이 아닌 걸 가지고 우기는 건 아니죠.”
 
  — 진보가 아니라는 오해를 받겠습니다.
 
  “저는 철저히 진보입니다. 다만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진보죠. 저는 이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기존의 관행과 관성 다 바꿀 겁니다. 선거 때는 우리 진영의 논리로 싸우지만, 서울시장이 되고 나면 시민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우선으로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아버지는 열렬한 박정희 지지자
 
  우 의원의 고향은 강원도 철원이다. 본래 우 의원의 집안은 부유했다. 아버지는 1916년 강원 철원 지역 지주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춘천고를 졸업하고 일본의 도쿄제국대학 체육학과에 유학을 다녀왔다. 하지만 1945년 해방이 되자 철원은 북한 치하로 들어갔고,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아버지는 노동당에 땅을 헌납하고 소학교 체육 선생을 했다. 그러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 후퇴 때 부산으로 월남한 뒤 휴전이 되자 서울에서 중매로 어머니와 결혼하고 철원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우 의원의 아버지는 되찾은 땅을 팔아 학교 건물을 지어 국가에 헌납했다. 그 때문인지 공화당 초기 시절 강원도 교육위원회 위원이 됐지만, 월급이 없는 명예직이었고 땅을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 북한이 미웠겠습니다.
 
  “미웠죠. 저와 아버지는 철저한 반공주의자였죠. 반공 글짓기 나갔다 하면 1등 했어요. (웃음) 저희 집안 이야기는 반공수기 공모전 때문에 알게 됐어요. 제가 중학교 때인가, 고등학교 때인가 반공수기 공모전이 있었는데, 가까운 사람을 인터뷰해서 쓰는 거라 아버지를 인터뷰했죠. 제 할머니가 일제 강점기 때 양조장을 했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겠어요? 그때는 양조장이 최고였잖아요. 할머니가 남편을 여의고 아버지를 키우면서 번 돈으로 다 땅을 샀대요. 철원 일대에 어마어마한 넓이의 땅이 할머니 소유였죠. 아버지는 마라톤 국가대표 선수였는데, 손기정 선수하고 같이 뛰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공산당이 들어오면서 땅을 헌납했죠. 재산 가지고 있어 봤자 뺏기니까요. 아버지가 북한 치하에서 땅 뺏긴 것을 두고두고 억울해하시더라고요.”
 
  우 의원이 말을 이었다.
 
  “휴전하고 아버지가 일부 땅을 팔아서 학교를 세 개 지어 국가에 헌납했어요. 박정희 대통령 때는 강원도 교육위원도 하셨다니까. 공화당 당원이셨어요. 아주 박정희라고 하면…. 초등학교 등교 전에 아버지 앞에서 국민교육헌장을 외웠어요. 못 외우면 맞았는데, 그 정도로 아버지는 투철하셨어요. 수기 때문에 인터뷰하기 전까진 아버지를 미워했어요. 학교를 헌납하지만 않았어도 ‘나도 떵떵거리고 살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솔직히 저에게는 철원 출신이라는 태생적 숙명이 있습니다.”
 
  — 생계가 얼마나 어려웠나요.
 
  “집안 재산이 집 한 채 정도 남은 이후로 어머니가 보건소에서 가족계획 담당으로 일하면서 생계를 꾸렸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1974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큰형과 나, 어머니는 서울로 오고 아버지와 누나, 작은형은 철원에 남았죠. 어머니가 미대에 가고 싶어하는 큰형의 바람을 이뤄 주려고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서 보세 가공업을 시작했습니다.”
 
  — 살림살이가 나아졌나요.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육영수 여사가 저격당하고 우리나라와 일본 외교 갈등이 첨예해졌습니다. 덩달아 일본을 상대로 한 보세 산업이 타격을 입었고 큰형의 대학 진학 꿈은 멀어졌죠. 결국 큰형은 입대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누나가 서울에서 취직해 작은형과 나를 부양하고 어머니는 철원으로 돌아가 농협에 취직했습니다. 작은형은 1978년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고에 갔습니다. 또 북한 때문에 꿈이 사라진 것이죠.”
 
 
  김정은의 영악함이 싫다
 
  — 김정은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국내 기반이 취약하니까 김정일보다 정치적인 고려를 훨씬 더 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땐 굉장히 꾀돌이예요. 저는 김정은의 이런 영악함이 싫습니다. 김정일과는 남북대화를 해 봤잖아요. 나름 굵직굵직한 측면이 있었어요. 이에 반해 김정은은 훨씬 더 이해타산적인 거 같습니다. 김정은을 대할 땐 훨씬 더 긴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우 의원은 이 한마디는 꼭 넣어 달라고 했다.
 
  “솔직히 당파적으로 봤을 때 보수 정당이 망하면 좋습니다. 하지만 그럼 우리 쪽이 안일해져요. 국가적으로 보면 보수가 침체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도 긴장하고 혁신을 하죠. 지금은 민주당이 너무 높은 지지율에 취해서 자기혁신 노력을 안 하는 것 같아 걱정돼 하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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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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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9832    (2018-02-19)     수정   삭제 찬성 : 10   반대 : 13
우상호 애비의 사상도 검토 배바야한다.
우상호가 빨갱이 문재인과 같이 일을하는것은 우리 전래를 봐서 같은 족속임을 바로 알 수 있다
우상호 민주당국회의원 이 애의 머리 끝어셔 바끝까지 사상 검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 CIA, 이스라엘 정보요원 모사드를 국정원 할일없어 놀고 있는 자금을 동원하여 반드시 규명해야한다.
더불어민주당에서 처먹고 할일없는 우상호 국회의원 이 게세끼를 반드시 죠져야한다.
  조정태    (2018-02-19)     수정   삭제 찬성 : 5   반대 : 23
문재인은 빨갱이다.

20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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