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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의 품격

‘형사반장’과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배우 김응수

“연기란 무명이 깊을수록 더 빛나”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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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故) 김주혁, 재능 30%도 안 보여줘. 묵직하고 깊이 있는 배우였다”
⊙ 극단 목화 출신 연극배우… 7년간 일본 영화학교에서 연출 배워
⊙ 〈임진왜란 1592〉로 연기의 정점… “김응수가 히데요시를 연기한 게 아니라, 히데요시가 김응수를 연기했다”(이해영 감독)
⊙ 후속작 영화 〈귀선〉에 도요토미 히데요시 역(役) 다시 맡아
⊙ “연극… 가난할 줄 모르고 택했나? 가난, 못 버틸 바에야 뭘 하려고 연기하나”
⊙ “연기는 인격. 인격이 세월을 버티게 해”
  영화 〈잔혹한 출근〉에서 형사반장, 〈뷰티풀 선데이〉에서 강력반장, 〈반가운 살인자〉에서 형사반장, 〈나쁜 남자〉의 곽 반장, 〈하이힐〉의 박 반장 등 배우 김응수(金應洙·57)는 ‘형사반장’ 역이 단골이다. 사극에서는 임금 다음 가는 고관(高官)이 많다. 드라마 〈추노〉에서 좌의정 이경식,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영의정 윤대형, 〈닥터 진〉에서 안동김씨 가문의 우두머리 김병희로 분(扮)했다. 대개가 악역이다. 아직까지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는 〈임진왜란 1592〉에서 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 명(名)연기를 보여주었다.
 
  강렬한 이미지와 카리스마로 조연을 ‘굉장한’ 조연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할까. 악역이라도 그가 연기하면 악역의 색깔이 달라진다. 무지막지한 인물이지만 뭔가 숨겨둔 인간의 양면성이 있을 듯한 느낌? 거칠게 감정을 폭발시키면서도 한쪽에선 어떤 식으로든 억누르려 하는 연기 스타일과 닮아 있다.
 
  영화 〈하이힐〉에서 형사반장 김응수는 한번의 쉼 없이 대사를 이렇게 쏟아낸다.
 
  “어, 시팔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니. 니들도 게네들 말만 듣지 말고 현장에 가보라니까. 형사가 무슨 예수님이니? 칼 들고 설치는 여러 놈들 어떻게 타일러서 데려와? 이게 무슨 얼음땡도 아니고, 가만히 있냐? 애(차승원을 지칭)는 총 한 방 안 쐈다니까. 몇 놈 멍든 것 가지고 뭐가 과잉 대응이야? (곁에 있던 경찰관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자) 겨우 두 방 쏜 것 아니야. 11명한테 두 방이면 애, 세금 아끼려고 얼마나 노력한 거냐. 애는 지금 좆 나게 맞아서 드러누웠어. (실제로는 멀쩡하다.) 머리는 어떻게 맞았는지, 지 이름도 까먹었다고. 야, 치고받고 하는 와중에 어떻게 남자 여자는 어떻게 가려. 그년들은 왜 거기서 설쳐대가지고, 병신 같은 년들. 걔들 다 약쟁이들 아냐? 검사해 봐. 정작 홍 검사는 아무 말도 안 하는데 왜 너희들이 설치고 지랄이야.(이때 차승원이 사직서를 김응수 손에 쥐여 준다.)”
 
  이 대사 속에 왠지 ‘츤데레 차도남’ 같은 그의 내면이 담겼다. 10월 31일 서울 대학로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 단골 형사반장에다, 대부분의 악역도 보스, 사극에서는 영의정 아니면 좌의정입니다. 인터뷰하는 제가 중압감을 느껴요.
 
  이 말이 그를 으쓱하게 만든 모양이었다. 웃으며 함께 온 소속사 여직원에게 “예뻐졌다”고 말을 돌렸다.
 
  덧붙여 “여성은 예뻐졌다는 말을 제일 좋아한다”며 껄껄껄 웃었다.
 
  ― 남자들은 어떤 말을 좋아하나요.
 
  “응? 남자라는 동물은…”
 
  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상남자에겐 빈말이나 칭찬이 필요 없다는 뜻일까. 그의 연기에 대한 칭찬을 일단 접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먼저 배우 김주혁에 대한 그의 추억을 불러냈다. 김응수가 ‘박춘식’으로 출연한 영화 〈청연〉(2005년 작)에서 그는 일본 배우들과 연출부 스태프를 캐스팅하는 역할을 맡았었다. 〈청연〉의 남자 주인공이 김주혁, 여자 주인공이 장진영이었다. 그러고 보니 두 사람 모두 세상을 떠났다.
 
  “〈청연〉을 3년간 준비했어요. 〈청연〉은 일제 때 최초의 한국 여류 비행사 ‘박경원’에 대한 이야기인데, 김주혁이 남자 주인공이었죠. 개인적으로 김무생 선생을 배우로서 존경해 금세 가까워졌어요. 그는 묘한 매력을 지닌 배우였어요. 멜로도 어울리고… 무슨 배역을 맡아도 잘 어울린다고 할까. 굉장히 저를 잘 따랐고, 〈청연〉을 할 때도 ‘제발 연기를 가르쳐 달라’거나 ‘여기선 어떻게 (연기)해야 되느냐’고 묻곤 했어요.”
 
  김응수의 “〈청연〉을 3년간 준비했다”는 말에 부가 설명이 필요하다. 그는 일본 영화학교에서 연출을 전공했다. 졸업 후에도 일본 영화 현장에서 활동했다. 〈청연〉의 경우 일본 배우들과의 의사소통과 프로덕션 일정을 도맡아 지휘했다. 일제강점기 최초의 조선인 비행사(박경원)라는 사적 연구도 그의 몫이었다. 당시만 해도 연출에 대한 욕심이 컸던 때라고 해야겠다.
 
  ― 어떻게 캐스팅된 겁니까.
 
  “〈청연〉은 톱스타들이 주인공을 하려 경쟁이 심했어요. 그런데도 당시 신인이었던 김주혁, 장진영이 발탁된 것은 명 캐스팅이었어요. 윤종찬 감독이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이죠.
 
  지금껏 주혁이가 자기 재능을 30%는 보여줬나요?… 대한민국 최고 배우가 될 묵직하고 깊이도 있는 배우였는데…”
 
  하고 잠시 침묵했다.
 
  그러곤 “(죽음의 과정이) 뭔가 이상하죠? 전혀 납득이 안 가요”라고 담담히 말했다.
 
 
  나만의 ‘형사반장론’은…
 
10월 31일 서울 대학로 근처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응수. 4시간 가까이 자신의 연기와 삶에 대해 들려주었다.
  ― 주로 형사반장이나 경찰 역을 많이 맡았더군요.
 
  “무조건 경찰 역이 들어오면 악역입니다. 국내 영화 시나리오가 대개 젊은 작가들이 젊은 주인공을 내세워 젊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풀어가요. 중년이나 노년 이야기는 없어요. 그러니 중년배우가 안 나오죠. 중년 역이라면 기껏 경찰이나 부모 역할밖에 없어요. 게다가 중년배우 층이 제일 두껍고 경쟁이 치열하잖아요. 그래도 저를 (제작진이) 택한다는 게 기분 좋은 일이죠.”
 
  ‘형사반장’이라고 표현하지만 주로 주인공의 상사이자 다양한 직업군의 보스나 간부 역할을 맡고 있다. 사실 ‘형사반장’이라면 추억의 드라마 〈수사반장〉이 떠오르고, 짙은 바바리코트의 최불암이 연상된다. 국내 영화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강력반장, 〈라이어〉의 형사반장, 〈로망스〉의 황 반장, 〈와일드 카드〉의 김 반장으로 분한 배우 기주봉의 반장 이미지가 떠오른다.
 
  또 〈공공의 적〉에서 엄 반장, 〈광복절 특사〉의 보안과장, 〈햇빛 쏟아진다〉의 남 반장, 〈썸〉의 오 반장, 〈추적자〉의 황 반장으로 나왔던 배우 강신일도 ‘단골 반장’이다.
 
  ― 자신만의 ‘형사반장론’이 있나요.
 
  “언젠가 미국 FBI 수사관이 쓴 범죄심리학에 빠진 적이 있어요. 일본 유학시절이었는데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심취했었죠. 후배 중에 강력계 형사가 있어서 몇 년간 쫓아다녔어요. 형사 후배 말이 ‘인간처럼 야비하고 거짓말 잘하며 잔인한 족속이 없다’고 해요. 증거가 있는데도 딱 잡아떼는 모습을 보며 인간에 대해 많이 실망했다고 해요. 하지만 그런 악한을 구원하는 이가 바로 인간이죠. 어쩌면 정의감이 인간을 구할 수 있어요. 철창 속에 악한을 가둘 때 느끼는 짜릿한 통쾌함이 형사들에게 있나 봐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제가 형사처럼 느껴지고 그런 느낌을 (연기로) 표현하려 하죠.”
 
  ― 경찰 관련 영화가 많은 이유는 뭔가요.
 
  “인간의 욕망과 관련돼 있지 않을까요? 원초적 욕망을 컨트롤하지 못하면 서로 싸우고 범죄를 저지르는데 불가피하게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누군가를 억누르죠. 영화 소재로선 그만한 게 없죠.”
 
  ― 그런데 대개 우리나라 영화의 경찰 이미지가 부정적인 것 같아요.
 
  “맞아요.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 (1999)에서 제가 경찰 역을 맡았는데 이런 장면이 나와요. 경찰이 주유를 하고 돈을 안 내요. 제가 김상진 감독에게 말했죠. ‘이 영화, 대박 칠 텐데, 왜 경찰을 그렇게 묘사하느냐’고요. 김 감독 말이 ‘그런 경찰관도 더러 있다’는 겁니다.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경찰관을 좀 더 많이 그려야 해요. 경찰을 망신 주는 통쾌함보다 눈물이 더 가치 있지 않나요? 악한이 우글거리는 현장에서 경찰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영화를 만들면 좋겠어요. 그런 영화의 형사반장이라면 언제든 오케이죠.”
 
 
  “50분 동안 50번의 얼굴이 있다?”
 
  어쩌면 김응수 연기의 최고봉은 〈임진왜란 1592〉(2016)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아닐까.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다운 연기를 했다고 할까. 일본인 배우들마저 그의 연기를 보고 “어떻게 한국 배우가 ‘대악당’ 히데요시를 이처럼 맛깔나게 연기할 수 있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고 보면, 그는 일본 유학 경험 때문인지 일본인 연기에 특화돼 있다. 드라마 〈각시탈〉 〈조선 총잡이〉 〈자유인 이회영〉, 영화 〈기담〉 〈원스어폰어타임〉 〈2009 로스트 메모리즈〉 〈한반도〉 등에서 일본인 역할을 맡았다.)
 
  “작년 9월 KBS에서 방영된 5부작 〈임진왜란 1592〉는 한중(韓中) 합작 드라마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방한했을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때 우리는 혈맹’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명나라 시절, 함께 일본과 싸웠던 기억을 되살린 것이죠. 그래서 나온 게 〈임진왜란 1592〉죠. 중국 CCTV와 한국의 KBS가 공동출자해 작품을 만들어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방송하자고 기획했어요. 그런데 중국 측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요. 우리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내고도 KBS만 방송한 것이죠.”
 
  〈임진왜란 1592〉는 임란 기간 중 한산대첩(1592년 7월 8일)부터 부산포해전(1592년 9월 1일)까지 2개월간 펼쳐진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이야기다. 이 작품은 ‘뉴욕 Film&TV 페스티벌’에서 작품상 금상 및 촬영상, ‘휴스턴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 그리고 한국의 에미상이라 불리는 제44회 한국방송대상에서 최고의 영예인 대상을 수상했다.
 
  ― 〈임진왜란 1592〉를 만든 김한솔 PD와 인연이 있나요.
 
  “아뇨.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처음 만났는데 KBS 드라마국 PD가 아니라 교양국 PD라고 해서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납니다. 막상 만났더니 젊은 분이더군요. 젊다는 사실이 히데요시 역에 응했던 첫 번째 이유일지 몰라요. 저는 나이 든 ‘꼰대’보다 젊은이가 좋아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상당히 공부가 많이 돼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큰소리를 쳤죠. ‘두고 봐라. 한국배우, 일본배우 통틀어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겠다’고요.”
 
  ― 에피소드는.
 
  “촬영을 하면서 고생, 고생을 했어요. 제작비가 부족해 마실 물도 없었어요. 그 더운데 2시간 동안 가발을 붙이고, 히데요시의 분장을 하느라… 제작이 거의 끝나고 김 PD가 그래요. ‘50분 동안 50번의 얼굴이 있다’고요.”
 
  ― 무슨 의미인가요.
 
  “히데요시의 극 중 표정 중에 같은 표정이 한 번도 없었다는 거예요. (김 PD 말이) ‘편집을 마치고 자기도 너무나 감정이 벅찼다’고 하대요. 시사회에 참석했던 이해영 감독도 ‘김응수가 히데요시를 연기한 게 아니라, 히데요시가 김응수를 연기했다’는 겁니다. 배우가 된 보람을 느꼈어요. 어떤 시청자 중에는 제 연기를 보고 암이 나았다고 해요. 하하하.”
 
 
  ‘만 권의 책을 읽고 천릿길을 간다’
 
김응수는 〈임진왜란 1592〉 후속편인 영화 〈귀선〉에서 다시 히데요시 역을 맡았다.
사진은 〈임진왜란 1592〉에 출연했을 당시의 모습이다. 사진=KBS
  현재 〈임진왜란 1592〉의 후속으로 영화 〈귀선〉을 제작 중이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 말 촬영을 시작해 내년, 혹은 2019년 개봉할 예정이다. KBS의 자회사 몬스터유니온과 영화사 트리니티가 제작비 180억원을 투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임진왜란 1592〉를 연출한 김한솔 PD가 메가폰을 잡았다. 현재 배역은 단 한 명만 정해졌다. 그 한 명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김응수다.
 
  “‘귀선’에서 ‘귀’는 여러 의미가 있어요. ‘거북이 귀’를 뜻하는 귀선(龜船)이기도 하고, 왜적이 거북선에 느꼈을 귀선(鬼船)이기도 하죠. 또 당시 우리 수군 대부분이 농부들 아닌가요? 전쟁이 끝나 고향으로 돌아가길 원했겠죠. 그래서 ‘돌아갈 귀’인 귀선(歸船)을 의미하기도 하죠.”
 
  ― 180억원이란 투자비는 많은 건가요, 적은 건가요.
 
  “어마어마한 돈이죠. 물론 쓰는 사람 입장에선 부족하다고 볼 수 있지만.”
 
  〈임진왜란 1592〉는 제작비가 13억원이 들어갔다.
 
  ― 어떤 영화가 될까요. 영화 〈명량〉에 실망한 분들이 많아서….
 
  “〈명량〉을 끝까진 안 봤지만 이순신은 그런 장군이 아닙니다. 일본 장군도 그런 장군이 아니에요. 배우들이 처음부터 눈깔에 왜 그리 힘을 줬는지… 그 눈동자에 뭐가 있었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조국애? 정의감? 없어요. 그렇게 〈귀선〉을 만들면 안 돼요.”
 
  ― 이순신 역이 정해졌나요.
 
  “아뇨. 히데요시 역만 정해졌어요.”
 
  ― 이순신 역에 누가 어울려요.
 
  “글쎄요. 배우 차승원은 어떨까요?”
 
  김응수는 현재 출연 중인 tvN의 〈이번 생은 처음이라〉를 끝으로 당분간 영화와 드라마 출연을 접을 생각이다.
 
  “제게 히데요시 역할이 각별합니다. 좀 더 몰입하고 싶어요. 당분간 일본에 있으려고 해요. 풍신수길(豊臣秀吉) 묘도 가보고 그가 살던 집도 둘러볼 생각입니다. 180억원에 대한 책임을 제가 져야 하는 것 아닌가요? 망하면 어떻게 합니까.”
 
  ― 충분히 공부하셨을 텐데, 뭘 더 배우려고요.
 
  “어쩌면 공부란 단순화, 보편화시키는 작업일 겁니다. 배우는 텍스트를 읽고 복잡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어요. 연극은 몇 달간의 연습을 통해 한 인물을 갈고 닦을 수 있어요. 하지만 영화는 안 돼요. 영화는 1초에 22프레임이 드르륵 지나가 버려요. 배경지식은 다 껍데기예요. 제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 철학은 오히려 인물창조를 방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일순간 (연기에서) 몰입할 때, 그 몰입의 순간에 나의 생각, 철학을 반영할 틈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버리려고 해요. 일본 가서 지금까지 알던 히데요시를 버리려 합니다.”
 
  ― 어떻게 버리나요.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그랬어요. ‘문자향 서권기(文字香 書卷氣)’라고, 만 권의 책을 읽고 글을 써야 그 글에서 향기가 난다고요. 만 권의 책을 읽고 가만히 있으면 멍청해집니다. 그것이 진리인 줄 알기 때문이죠. 집어넣는 재미도 있지만 만 권의 책을 읽고 ‘천릿길’을 걸어야 합니다. 길을 걸으려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더 단순화시켜 버려야 해요. 어쩌면 버리는 쾌감이 더 클지 몰라요. 배경지식은 다 껍데기입니다. 히데요시를 버리러 갑니다.”
 
  다음날 그에게 받은 카톡의 배경화면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만 권의 책을 읽고 천릿길을 간다.’
 
 
  삼중당 문고에 빠져 책 읽던 시절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서 ‘민 대령’ 역으로 분했던 김응수. 실제 인물이 김재규의 오른팔 박흥주 대령이다.
  1961년 충남 서천이 고향인 김응수는 학창시절, 삼중당 문고에 빠져 300~500원 하던 책을 10권씩 끼고 살았다.
 
  명문 군산제일고를 다닌 그는 머리 빡빡 깎고 군산의 명물 이성당 빵집에 다니곤 했다. “그때 빵집에 DJ가 있었다. 거기서 여성 듀오 바카라가 부른 ‘Yes sir, I can boogie’를 신청하곤 했다”고 한다.
 
  동기들 대부분이 명문대학에 진학했으나 그는 배우의 길을 택했다. 서울예술대학 연극과를 나와 ‘배우들의 사관학교’라는 극단 목화에 들어갔다. 오태석 감독의 사랑을 받았다. 목화에 가자마자 오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인 연극 〈운상각〉에서 주연이 됐다. 목화에서 단역이라도 얻는 데 최소 3년은 물걸레질을 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진각(연극배우 장진각. 그도 목화 출신이다)이 형이 그랬어요. ‘누구는 걸레질 3년은 해야 목화에서 역 하나 맡을까 말까인데, 너는 오자마자 주인공이냐. 감독과 고향(충남 서천)이 같으니까 그러시냐?’고요.”
 
  그런 그가 목화를 그만두고 일본 유학을 가겠다고 하니 따귀를 때리며 말리던 이도 오태석이었다. 이마무라 쇼헤이가 교장으로 있던 ‘일본 영화학교’에서 7년간 연출수업을 받고 귀국했으나 그는 연출 대신 배우의 길을 걸었다. 그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이다.
 
  “오태석 선생님이 단원들 있는 곳에서 뺨을 때리셨어요. 사모님이나 목화의 대선배 영규(박영규) 형을 동원해도 설득이 안 되자 그러신 것이죠. 그래서 〈춘풍의 처〉 공연을 저녁 7시에 마치고 이튿날 일본으로 출국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7년간 열심히 공부해서 일본 영화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하라 카즈오 감독 밑에서 조연출을 배웠죠.”
 
  하라 카즈오는 〈가자 가자 신군(神軍)〉(1986), 〈극사적 에로스〉(1974) 등으로 유명한 일본 기록영화계의 전설이라 불리는 다큐 감독이다.
 
  김응수는 일본에 머무를 때 영화 〈깡패수업〉(1996)으로 데뷔했다. 배우 박중훈, 박상민이 주인공이던 이 영화가 일본 촬영을 위해 머무를 때 김상진 감독의 연출부로 참여했다. 그러다 김 감독의 제안으로 단역(술집 웨이터)을 맡게 됐다.
 
  “그때 술집 사장이 명계남씨였어요. ‘너 손님들에게 외상 주지 마’라고 애드리브를 하자, 웨이터인 제가 이렇게 받아쳤어요. ‘시팔, 술 처먹고 나서 돈 없다는데 어떻게 해요.’ 그 애드리브를 듣고 김 감독이 퍼뜩 깨달은 것이죠. 김응수가 극단 목화 출신이라는 것을….
 
  그걸 계기로 귀국 후 계속 배우로 활동할 줄 그땐 몰랐어요. 운명으로 느낍니다.”
 
  ― ‘인생 작품’이랄 수 있는 영화는.
 
  “음… 〈그때 그 사람들〉(2005)입니다. 임상수 감독이 원래 목화에 심취한 분이죠. 오태석 감독하고도 대학(연세대) 동문이고. 거기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백윤식)의 오른팔인 ‘민 대령’ 역할을 제가 맡았는데, 그가 현실에선 박흥주 대령이죠.”
 
  이 영화는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는 판결이 내려질 정도로 논란이 됐던 작품이다.
 
  “그간 제가 맡았던 배역보다 분량이 컸던 작품이기도 해요. 저는 ‘박흥주 대령’을 연구했는데 당시 무학여고 근처의 달동네에 살았어요. 그의 동생은 아파트 경비원, 여동생은 구로공단 미싱 시다였어요.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권력자였지만 자기 가족은 안 돌봤어요. 청렴결백한 분이죠. 그분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어떤 분인지 물었어요. 묘소도 찾아갔어요. 초라하기 이를 데 없더군요. 술 한 잔 따르고 누를 끼치지 않고 잘 (연기)하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 인물을 연기하는 방법
 
  김응수는 “배우에게 중요한 것은 호기심”이라며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호기심을 가져야 머릿속에 뭐가 잡혀요. 영화 속 인물들이 어떤 인생으로, 어떻게 살았는지 계속 질문을 던져야 해요. 저는 박흥주가 좋아했던 팻분(Pat Boone)이란 가수를 알게 돼 팻분의 음반을 구하려고 돌아다닌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 배우가 할 일이 뭐가 있나요?”
 
  ― 대본만 읽어도 척 감이 오지 않나요.
 
  “개뿔은 무슨 영감… 영감이 올 리가 없죠. 일단 시나리오를 읽되 계속 인물을 연구해 리얼리티를 살리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버릴 것은 버리고 단순화시켜요. 쉽게 표현하기 위해 복잡한 것을 고치는 것이죠.”
 
  ― (대본의) 대사도 고치고 줄이고.
 
  “그럼요. 작가가 그렇게 써놨지만 제가 볼 때 리얼리티가 떨어지면 고쳐야죠. 그게 진짜죠.”
 
  ―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배우에게 인생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인생이란 게 별것 아닙니다. 그저 상식의 체계죠. 결국은 내일이란 게 없다는 것 아닌가요? 과거가 어딨어요? 어제가 어딨나요? 지난 일을 붙잡고 고민해 봐요. 답이 없어요. 그냥 사는 게 제일 좋아요. 어떻게 사는 게 좋은지 화두를 잡아봐도 답이 없어요. 결국 인생은 왜 사는지 답이 없어요. 전 가끔 주례를 서는데 신랑신부에게 말해요. ‘인생? 답이 없다. 그냥 살아’라고.”
 
  ― 어떤 사람이 배우가 돼야 하나요.
 
  “잘난 척하는 놈이 배우가 돼야 해요. 사람들이 저더러 ‘왜 배우가 됐냐’고 물으면 저는 ‘잘난 척하려고 배우가 됐다’고 말해요. 사람은 누구나 남들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저도 그래서 배우가 된 거예요.
 
  그런데 얼마나 잘난 척하기 어려운 줄 아세요? 그걸 연기라고 하느냐고 욕을 먹어요.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한다고 지랄을 해요. 몇 달간 제 얼굴이 TV 브라운관에서 안 보이면 사람들이 ‘그럼, 그렇지… 응수도 이제 끝났다’고 말하죠.
 
  하지만 그런 허접때기 다 잊어버리고 진짜 연기를 해야 합니다.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 하지만 배우의 길은 예나 지금이나 가시밭길 아닌가요? 대개는 잊히고 스타는 소수잖아요. 배우로서 무명을 견디는 힘은 어디서 오나요.
 
  “저는 대학로 후배들에게 ‘가난을 즐겨라’라고 말합니다.”
 
  ― 네? 가난을요.
 
  “연극… 가난할 줄 모르고 택했나요? 그 가난을 못 견디고 못 버틸 바에야 뭘 하려고 연기하나요. 직장 가보세요. ‘꼰대’ 과장과 ‘악질’ 부장이 버티고 있고, ‘지옥철’을 타고 출퇴근 합니다. 어쩌면 무대보다 더 큰 지옥일지 몰라요. 물론 돈은 연극보다 더 벌지요. 후배들에게 ‘가난이 싫으면 직장을 다녀라. 대신 거기가 지옥인 줄 알아라’라고 말해요.”
 
  ― 연기란 뭡니까.
 
  “연기란 인격을 닦는 것입니다. 저는 대학로 후배들에게 그렇게 말해요. 그 인격은 가난 속에서 배어나요. 인격이 바탕이 돼 연기할 때 그 연기에서 향기와 혼이 흘러나와 관객을 감동시키는 겁니다. 배우들은 당연히 가난할 수밖에 없고 가난해야죠. 연기란 무명이 깊을수록 (유명해지면) 더 빛이 납니다.”
 
  그는 무명시절 “하루에 무명이란 말을 수십 번 가슴에 새기며” 이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나는 무명이다. 나는 무명이다…’
 
 
  성공한 배우의 운도 노력에서 나온다!
 
  ― 인격이란 게 세월의 때가 묻어야 되지 않나요.
 
  “그럼요. 인격이 세월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죠. 결국은 세월이 가면서 인격이 커갑니다.”
 
  원로배우 전무송은 젊은 시절 “어깃장도 놓고 떼도 부렸다”고 한다. 연기를 더 잘하고 싶은 객기였다. 한국 연극계의 선각자였던 유치진은 “배우가 무대에서 말하는 데 10년, 연기를 제대로 하는 데 또 10년이 걸린다. 그보다 중요한 게 있다. 뭐겠냐? 바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 인격과 동시에 플러스가 필요해요.”
 
  ― 플러스가 뭔가요? 운(運)?
 
  “아뇨. 감(感)입니다. 40대 후반에 감을 획득하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이때부터 딱 보면 알아야 해요. 책(대본)을 안 읽어도 ‘아! 이 역할을 맡으면 내가 성공한다, 실패한다’가 보여야 해요. 그게 감이죠. 세상의 변화에 대한 감을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까지 못 찾으면 실패합니다. 저는 감이 좋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다 그 역을 맡지 말라고 권해도 제 감이 좋으면 합니다.”
 
  ― 감이란 게 운 같은 거네요.
 
  “그 운도 노력하다가 만나는 것입니다. 진짜 인생을 운명의 차원에서 얘기하자면, 절반 이상이 운이에요. 특히 우리 같은 업종에선 더욱 운이 많이 작용합니다.”
 
  ― 노력하다가 운을 만나는데, 그런 노력을 해도 운이 없는 건 왜 그런가요.
 
  “운이 없어서 그런 것이죠. 그러니까 사람이, 배우가 한번 기회가 왔을 때 절대 놓쳐선 안 돼요.”
 
  ― 그럼 이런 질문을 던져볼게요. 혹,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빈센트 반 고흐처럼 극심한 고통에서 시달리는 예술가의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즐겁고 걱정 없는, 주머니도 넉넉한 범인(凡人)의 삶을 택하시겠습니까.
 
  김응수의 답은 명쾌했다.
 
  “반고흐 같은 삶, 싫어요. 후대에 이름을 남긴들, 내가 죽어서 평가받는 게 뭔 의미가 있어요?”⊙
 
김응수의 조연배우론
 

  “작은 배역이라고 안 하면 작은 배우”
 
  김응수는 악역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인상만 쓰는 건 누가 못하냐. 악인도 멋있게 그려야 한다. 악이 제대로 서야 드라마가 흘러간다. 악역에 책임감을 느낀다. (연출가가) 믿고 맡긴 거니까”라고.
 
  또 “배역이 작다고 안 하면 작은 배우”라고 했다.
 
  “조연이란 단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러시아 출신의 ‘리얼리즘 연극의 아버지’라 불린 스타니슬랍스키가 한 말이지만, 세상에 작은 역이란 없어요. 단지 작은 배우만 있을 뿐이에요. 사실 조연이 영화 전체를 살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는 “조연 연기를 잘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라며 “내면을 닦으라”고 했다. 형이상학적 얘기였다.
 
  “젊은 배우들 중에 성형수술을 해 자기 얼굴을 꾸미려는 이가 있어요. 제가 그런 말을 해요. ‘그래 (성형을) 해! 그런데 이건 알아야 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야. 꽃도 열흘밖에 안 펴. 내면을 아름답게 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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