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조연의 품격

〈TV 손자병법〉 30년, 위대한 ‘만년 과장’ 오현경

“연기는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

글 :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TV 손자병법〉의 ‘이장수’ 역, 가족 부양 위해 발버둥치는 도시 중년의 전형
⊙ 오현경, 어정쩡한 빛깔의 배역을 유별난 캐릭터로 만드는 비범한 재주 지녀
⊙ 화술의 귀재 … 정확한 발음 위해 우리말 발음사전 항상 소지해
⊙ “악역 연기? 악역도 아름답게 표현해야. 악역 속에 배우 인생을 담아야”
⊙ 좋은 연기란 조화를 깨지 않는 ‘스며드는’ 연기
  배우 오현경(吳鉉京·82) 하면, 〈TV 손자병법〉의 종합상사 자재과 만년 과장 ‘이장수’가 떠오른다. 1987년 첫 전파를 탔으니 올해로 꼭 30년이 됐다. 〈TV 손자병법〉은 누가 뭐래도 도시의 ‘전원일기’ 같은 프로였다. 가자미 같은 눈매로 상사 앞에 새우등처럼 허리를 굽히던 약한 남자 ‘이장수’. 부하직원을 대변하다가 상사에게 눈물이 쑥 빠질 만큼 혼이 난 뒤 한잔 술에 취해 “까불고 있어!”를 외치던 오현경은 이제 여든이 넘었다. 생사를 넘나든 식도암, 위암 수술에도 굴복하지 않고 무대에서 버텨 왔다.
 
  연극계를 상징하는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그는 지금도 조곤조곤 부드러우면서도 밀도 있는 화술을 들려준다. 오는 7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연극 〈봄날〉(이강백 작)을 다시 올리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초연은 1984년. 2009년 다시 무대에 올려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연기상을 안긴 작품이 〈봄날〉이다. 어쩌면 그의 배우인생 전부를 담은 마지막 작품이 될지 모른다. 누가 뭐래도 그는 여전한 현역, ‘만년 배우’다.
 
  오현경은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TV 드라마에서 어정쩡한 빛깔의 평범한 배역을 개성 있는 캐릭터로 만드는 비범한 재주를 지녔다. 30년 전 작품인 〈TV 손자병법〉이 그 예다. 머리에 흰서리가 내렸고 왜소한 체구에 등이 굽은, 결재판을 가슴에 든 그의 모습은 샐러리맨의 전형이자 우리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지난 6월 4일 서울 광화문에서 그를 만났다. 백발의 그는 마치 결재판을 들고 있듯 누런 서류봉투를 쥐고 있었다. 그 봉투 속엔 연극 데뷔 시절 무대사진, 그가 졸업한 서울고와 연세대 학생증, 동양방송 전속 탤런트 신분증, 병적(兵籍)증명서, 심지어 중앙대 대학원 합격증, 초등학교 배지에서 대학 배지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자료들을 대학로 국립예술자료원에 기증할 예정이라고 했다.
 
  “언젠가 건설사 사장까지 한 선배가 〈TV 손자병법〉을 보다가 펑펑 울었다고 했어요. 속으로 ‘눈물 나는 장면이 있었나?’ 싶었죠.
 
  부하직원이 ‘선배님들은 지금껏 뭘 하셨습니까’라고 따지는 장면이 있어요. 후배 공격에 당황한 ‘이장수 과장’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너처럼 상사한테 대들 듯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놨어’라고. 정작 자신은 상사 앞에서 찍소리도 못하면서 말이죠. 마지막 장면에서 달빛 아래 술 취한 ‘이장수’가 비틀대며 걷는 모습이 클로즈업됩니다.”
 
  건설사 사장 선배가 그 장면을 보고 자기 얘기 같더라는 겁니다. 그분이 1980년대 중동(中東)특수 시절, 사우디에 갔었는데 성공해서 돌아오면 부장으로 진급하고 실패하면 짐을 싸야 하는 시절이었대요. 그분이 사우디에 갔다 돌아오니 자기 책상이 없더랍니다. 참 비참했다는 거예요.”
 
 
  만년 과장으로 구린내 나는 현실과 맞서다
 
KBS 2TV에서 방영된 〈TV 손자병법〉 출연진. 오현경을 비롯해 서인석, 정종준, 김희라, 김성찬 등이 출연, 국민 드라마로 사랑을 받았다(왼쪽). 〈TV 손자병법〉에서 자재과 만년 과장 이장수로 분한 오현경. 상사 앞에서 허리를 있는 대로 굽히고 아래 위에서 공격받는 중간 간부의 비애를 그렸다.
  만년 과장 ‘이장수’는 오현경이 창조해 낸 캐릭터다.
 
  “상사 앞에서 허리를 있는 대로 굽히고 아래위에서 공격받는 중간간부의 비애랄까? 원래 이 드라마는 방송국에서 기획한 게 아니에요. 극단 ‘실험극장’에서 연출을 맡았던 후배가 낙하산으로 KBS에 들어갔는데 나를 만나 ‘도와달라’고 해요. 그땐 방송국 생리가 누구든 히트작만 내면 아무 말 못하는 분위기였어요. ‘뭘 하고 싶은데?’ 하고 물으니 사회풍자극을 하고 싶대요. 며칠 고민해서 ‘이장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부하직원 불만을 받아서 윗사람에게 총대 메는, 왠지 어눌한 샐러리맨 캐릭터로 구린내 나는 현실과 맞서는 모습이랄까?”
 
  오현경 선생은 〈TV손자병법〉의 이 장면도 추억했다.
 
  “극중 소제목이 ‘사내(社內) 노래자랑’이었는데, 직원들이 업무는 안 보고 전부 노래연습을 하는 거야. 회사 옥상에 올라가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를 열심히 부르는 장면이 나오고, 제가 옥상에 올라가 야단을 쳐요. ‘뭣들 해! 일 안 할 거야? 빨리 들어가!’라고 고함친 뒤 ‘이장수’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요. 거기엔 회사 사장의 십팔번곡 김정구의 ‘두만강’ 가사가 적혀 있어요. 그러곤 혼자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부릅니다. 이 장면에서 시청자들이 배를 잡고 요절을 해.
 
  결국 사내 노래자랑에서 ‘이장수’ 부서가 상을 타요. 그런데 상금을 세상 떠난 동료의 미망인을 찾아가 전달하는 장면으로 극이 끝납니다. 시청자 가슴을 찡하게끔 극중 장치를 한 거지.
 
  얼마 후 코미디언 구봉서 선생이 분장실로 저를 찾아왔어요. ‘야! 오현경이. 이래도 되는 거야?’ 하고 화를 내요. ‘야, 인마! 직업으로 웃기는 우리를 웃겨 놨으니 이제 우리는 뭘 해야 되는 거야?’고.”
 
  그가 TV에서 한창 주가가 높을 때 한 제약회사가 그에게 광고출연 대가로 개런티 120만원을 내놓았다. 당시로선 거액이었다고 한다. 배우 김지미의 광고 개런티가 100만원이던 시절이었다.
 
  “왜 거절했냐고? 굳이 말하자면 얼굴을 상품으로 팔지 않겠다는 것인데, 남들이 ‘광고 한 번 안 한 것, 되게 팔아먹네’ 할까 봐 숨겼어요. 그런데 소문이 나서 모교(서울고) 후배가 동문 교지를 만드는데 그 얘기로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겁니다. 제가 그랬어요. ‘여보슈, 생각해 줘 고마운데 무슨 후배에게 귀감이 된다고 …. 돈 벌 기회가 있는데 벌어선 안 된다? 이게 귀감이요?’라며 거절했어요.”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주위에서 ‘넌 그래도 TV 탤런트 해서 돈 벌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그 말 들으면 마음이 아파요. 재산은 모으지 못했어요. 지금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불편하지 않아요. (밖에) 나오면 으레 찻값은 내가 내는 걸로 알고 살았고 …. 그런데 배우들이 TV에 맛을 들여 아예 연극판에 발을 끊어 ….”
 
 
  바보 연기, 내시 연기로 캐릭터 창조
 
젊은 시절 오현경(오른쪽). 20여 편의 영화, 100여 편의 TV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의 본업은 누가 뭐래도 연극이다. 데뷔 초기 〈햄릿〉 〈포기와 베스〉 〈세일즈맨의 죽음〉 등에 출연했다.
  만년 과장 ‘이장수’ 외에도 그가 창조해 낸 캐릭터가 많다. 바보 연기, 내시 연기의 전형이 오현경이라고 하면 틀린 말이 아니다. 1966년 출연했던 드라마 〈내 멋에 산다〉에서 오현경의 바보 연기가 유난히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배역은 졸부 집안의 장남이자 백수. TV에서 방송사상 최초의 코믹연기였다.
 
  “(캐릭터를) 많이 만들었지. 바보 연기를 보고 1970년대 〈여로〉의 작가 이남섭이 ‘영구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해요. 한번은 ‘영구’로 유명해진 심형래가 찾아와 ‘영구의 원조가 오 선생님이라던데요?’ 그래요.
 
  사실 사극 연기도 제가 많이 했고 억양 없는 대사로 내시 캐릭터를 만들었지. 피어리드(Period, 마침표)가 없는 대사를 길게 이어 가는 식으로 ….”
 
  거세를 당한 듯 맥없는 목소리로 대사에 운율을 주어 매끄럽게 리듬감을 살려 말했다. 이후 각종 사극에서 오현경식 내시 캐릭터가 대세가 됐다.
 
  “한번은 피디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선생님. 제가 사극을 하는데, 내시의 억양은 항상 그래야 합니까’라고 물어요. 얼마나 웃기던지. ‘이보시오! 내시 억양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내가 그런 캐릭터를 재미있게 만들었다’고 했지요.”
 
  ‘만년 배우’ 오현경은 20여 편의 영화, 100여 편의 TV드라마에 출연했지만 그의 본업은 누가 뭐래도 연극이다. 초기 연극무대에서 〈햄릿〉의 마셀러스, 〈포기와 베스〉의 사이먼 폴레더, 〈세일즈맨의 죽음〉의 해피로 분(扮)했다. 특히 1962년작 〈포기와 베스〉(듀보스 헤이워드 작)에서 흑인 변호사 사이먼을 연기해 유치진(柳致眞) 선생에게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대학시절 연극할 때는 주로 주인공을 맡았는데, 사회에 나와선 주인공을 한 게 별로 없어요. 그땐 김동훈, 이순재, 김성옥씨 등이 주로 주연을 했어요. 나이가 다들 저랑 비슷비슷해요. 데뷔 후 두 번째 작품으로 〈포기와 베스〉에 출연했는데, 그 작품에 배우들이 여러 명 등장함에도 제게 배역을 안 맡겨요. 속으로 ‘이상하다’ 생각하면서도 남들 연기를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어요. 초창기엔 괄시를 많이 받았지. 연습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저더러 흑인 변호사 역을 해 보라고 해요. ‘그 역할은 연기력이 필요한 인물이어서 배역 결정을 안 했다’는 겁니다. 모욕을 느껴 가며 연기를 해서 성공을 했어요. 나중 유치진 선생이 ‘이것 봐, 현경이! 이제 그런 역할 좀 해 줘. 배우들이 전부 주인공만 하려고 하잖아’라고 하셨어요. 저는 노역(老役)도 마다하지 않았고 바보, 내시 연기까지 했으니까 ….”
 
 
  “그냥 대본 외워 소리 지르는 거야 누군들 못해 …”
 
오현경 배우가 공개한 각종 자료들. 그가 졸업한 서울고와 연세대 학생증, 동양방송 전속 탤런트 신분증, 병적(兵籍) 증명서, 심지어 중앙대 대학원 합격증, 초등학교 배지에서 대학 배지까지 다양하다.
  이후 오현경은 유치진 선생의 추천으로 연극 〈한강은 흐른다〉(1962년작)에 비중 있는 조연인 ‘미꾸리’ 역을 맡았다. 미꾸리 역은 서울 청계천 바닥에 사는 ‘미꾸라지’ 같은 인물이었다. 탄탄한 조연의 수업을 거친 뒤 1966년 연극 〈아들을 위하여〉(아서 밀러 작, 나영세 연출)에서 조지 디버(주인공의 처남) 역을 맡아 제3회 동아연극상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다른 이들은 자기 배역에 열심인데 나만 계속 헤매는 겁니다. 어떻게 연기를 하면 좋을지 성격이나 행동, 무대 위 시선처리도 제대로 익히지 못했어요. 그때 공연장이 명동에 있었는데 터벅터벅 걷다 보니 한 여관이 보였어요. 무작정 들어가 한참을 멍하게 앉았는데 배우생활에 대한 회의감도 들고 그랬어요. 이번이 마지막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대본의 겉장부터 읽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모든 중압감이 사라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 작품 속 역할과 성격이 그려지고, 책(대본)을 덮고 대사를 외우니 거짓말같이 술술 나와요.”
 
  오현경의 대표작은 누가 뭐래도 〈휘가로의 결혼〉이다. 1969년과 76년, 77년, 83년, 85년까지 5차례 재공연될 때마다 상대 역은 바뀌어도 ‘휘가로 오현경’은 바뀌지 않았다. 초연 당시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여러 작품 중에서 그 공연처럼 재미있는 공연도 없었다. 배우들 간 호흡이 잘 맞았고 공연이 끝나는 순간까지 웃음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런데 공연 시작 날, 분장실에 배우가 없었다. 자기 신이 끝났는데도 전부 무대 옆에 서서 연극을 보고 있었던 거지. 연습을 하면서 그렇게 봤으면서도 또 재미있는 거야. 이후 〈맹진사댁 경사〉(1969년작)도 공연했지만 그때만큼 재밌는 공연은 없었던 것 같아”라고 말했다.
 
  오현경의 조상은 대대로 경북 영양에서 살았지만 그는 서울 안국동에서 태어났다. 북촌 출신이란 점이 배우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 연극계에서 몇 안 되는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할 줄 아는 배우라고 할까. 특히 화술 좋은 배우로 유명하다. 그의 지론은 “무대의 소리는 그냥 생소리가 아니라 발성에 의해 내야 한다”이다. 횡격막(横膈膜)을 죄어 내는 듯한 소리로, 3~4 시간 무대 위에 서도 목이 잠기거나 쉬지 않는다. 목을 자극하지 않는 발성법 때문이다.
 
  “아무리 작은 소리도 배 안에서 졸였다 늘였다 하면서 소리가 여기(배)서 나오게 하고, 모음과 자음을 입 모양에 따라 나오게 해야 합니다. 목을 무리하게 공명시키는 대사는 어렵고 금방 목이 쉬어요. 배에서 나와야 감동적인 소리가 돼요. 목소리 톤이야 누구는 뾰족하고 누구는 굵지만, (배에) 그릇을 놔두고 객석이 모르게 호흡을 해야 오래 연기할 수 있어요. 그런 대사를 들어야 관객도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그냥 대본 외워 소리 지르는 거야 누군들 못해….”
 
  입모양이 부정확하면 올바른 발음을 내지 못한다. 사실, 각각의 발음에 정확한 입모양을 내기란 어렵다. 하지만 배우의 생명은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 있다. 발성이 부정확하면 대사 전달은 물론 느낌의 전달도 어렵다. 오현경은 젊은 시절, 가방 속에 항상 우리말 발음사전을 갖고 다녔다고 한다.
 
 
  “‘배우가 무대에서 노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오현경의 말이다.
 
  “대사는 배우와 배우 간 소통만이 아니라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의 소통이잖아요. 무대에서 주고받는 대사의 ‘사이’라는 게 중요해요. 어떤 소리든 무대에서 소리가 반사되잖아. 작은 무대는 소리가 객석에 금방 전달되지만 조금 큰 무대는 늦게 전달되고, 더 큰 무대는 더 늦게 전달됩니다. 소리가 극장 벽에 부딪쳐 다시 무대로 돌아오기 전에 대사를 하면 말(대사)이 서로 부딪쳐 깨집니다. 입에서 (말이) 나가 내 귀에 들어오기까지의 시간을 마음속에 설정해 ‘사이’를 두고 연기 크기를 조절해야 해요. 극장 크기와 조건에 따라 배우가 조절해야 할 발성과 몸짓의 크기가 다 상관이 있어요. 그래야 ‘배우가 무대에서 노네’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 선생님도 공연할 때 긴장하나요.
 
  “그럼요. 안 그런 것 같지만 실지론 긴장합니다. 물론 (무대에) 익숙해졌으니까 조금 덜하죠. 오히려 신인들이 멋도 모르고 (연기를) 막 하는 경우가 많죠. 선배에게 연기를 배울 때, 기교가 아닌 정신을 배워야 해요. 무대에 임하는 정신 말이죠. 신인 시절, 명동예술극장에 가면 변기종(卞基鍾) 선생님이 항상 무대 곁 조그만 의자에 앉아 계셨어요. 까마득한 선배여서 목례만 했지 말을 붙이질 못했어요. 그분은 공연을 앞두고 눈을 지그시 감고 계셨어요. ‘기도를 드리시는구나’ 생각했어요. 그 뒤로 저 역시 공연 시작 전 심호흡을 하고 ‘오늘 연극이 잘되게 보살펴 달라. 오늘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기도했어요.”
 
  — 누구를 향해서요?
 
  “나의 신(神) … 지금은 하느님이지만 그땐 신앙생활을 안 할 때였어요. 그런데 나중 알고 보니 변기종 선생이 항상 무대 앞에서 눈을 감고 있었던 이유가, 시끄러운 잡담과 배우들의 음담패설, 흡연 탓에 분장실에 앉아 있을 수 없어 그랬다는 겁니다. 실지로 기도를 하셨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제 눈엔 기도하는 모습이셨어요. 그게 중요해요.”
 
  — 배우는 연기기술을 어떻게 체득합니까.
 
  “무슨 교본이나 텍스트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깨너머로 배운다’고 생각해요. 연출을 공부하는 후배가 러시아에 간 적이 있어요. 그곳에서 노(老)연출가를 만났는데, 그와 가까워지자 ‘연기훈련법에 관한 텍스트가 있으면 달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표정이 굳어진 노연출가 왈, ‘너희 나라 배우들은 연기를 텍스트로 배우냐?’고 반문하더래요. 그리고 잠시 침묵하더니 ‘연기는 어깨너머로 배우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무릎을 탁 쳤어요. 어깨너머라는 말이 ‘커닝한다’는 뜻이 아니거든. 저 사람이 왜 저렇게 할까를 고민하며 표현하는 것이지, 금방 가르쳐서 금방 써먹는 게 아니거든.”
 
  그는 “일종의 모방학습이지만 시행착오를 거쳐 자기화하는 과정이 연기”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연기는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라 감성으로 느껴야 해요. 감성은 흉내를 못내. 무의식 속에, 내 안의 용광로에 넣어 두었다가 ‘저 사람이 기도를 하는구나, 나도 기도해야지 …’ 하며, 닮아지는 과정을 거쳐 나옵니다.
 
  언젠가 이해랑(李海浪) 선생에게 ‘나운규(羅雲奎)가 왜 명배우냐’고 여쭌 적이 있어요. 나운규가 활동하던 1920~30년대만 해도 연기를 힘으로 할 수 없던 시절이어요. 무대세트가 약하거든. 그런데 배우가 무대 세트 벽을 치면 관객도 벽이 흔들린다는 것을 알아. 이게 중요해요. 나운규가 격렬한 신에서 벽에 쾅 부딪치며 몸이 벽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데, 벽이 까딱도 안 해. 슬피 우는 감성적 장면도 장면이지만, 관객들이 이런 디테일한 연기에 와~ 하고 탄성을 질러요. 표현은 벽에 힘껏 부딪치는 것처럼 하는데 힘을 분산시키는 거지. 그게 연기기술 아닌가요? 만약 힘대로 부딪치면 세트가 무너지고 개판되는 거지 ….”
 
 
  “브레히트는 예술가가 아닌 사상가”
 
  — 무대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실비판이나 풍자야 당연한 것이지만 정치연극을 저는 참 싫어해요. 정권이 어떻든 예술만 하면 되지. 건방진 얘기지만 브레히트(Bertolt Friedrich Brecht)도 예술가로 보지 않아요. 사상가예요. 왜? 그 사람의 연극은 세트도 없어. 그냥 여기는 경찰서고, 여기는 식당이고 무대 설정만 언어로 하는 거야. 재미는 있어도 감동이 없어. 사회풍자, 정치풍자해서 재미는 있는데, 그 이상은 없어요.
 
  언젠가 연출하는 후배의 공연을 보려는데 주위 사람들이 말려요. ‘보시면 역겨워서 못 볼 거예요’ 그래요. 이유를 물어보니, 천안함 폭침이 조작됐다는 걸 공연한다는 겁니다. 폭침 조작 의혹을 작품 속에 (은유적으로) 묻어 두는 게 아니라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강요한다는 거예요.
 
  나중 후배를 만나 물었어요. ‘너 천안함(폭침 조작)을 공연했다며?’ ‘네’ ‘나는 진실이 뭔지 모르지만 스무 명도 안 되는 관객 앞에서 얼마나 효과를 보겠나. 그럴 용기라면 피켓에다 써서 지하철 같은 곳에서 시위를 하라’고 했어요. 〈휘가로의 결혼〉에서 프랑스 혁명을 일으키자는 말은 한마디도 없어요. 그런 선동을 안 해도 ‘군주정치라는 게 정말 나쁘네’라는 생각을 관객이 갖게 만드는 게 예술이지, 노골적으로 해선 정치선전 드라마지요.”
 
  — 배우가 무대 위에서 얻는 행복이나 기쁨은 어떤 것인가요.
 
  “관객 반응을 쭉 빨아들일 때, 관객을 (긴장으로) 죄었다가 풀었다가 할 때 쾌감을 느껴요. 배우가 그런 쾌감을 못 느끼면 극을 끝까지 끌고 가기 힘들어요.”
 
  — 배우들은 크고 작은 우울증을 겪게 된다고 하던데, 예컨대 오래 공을 들인 작품이 막을 내릴 때라든지 그럴 땐 어떻게 극복하나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계속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지만, 난 쉴 때 한 번도 방송국 근처에 얼굴 비친 적이 없고, (연출가에게) 차 한 잔 마시자 한 적도 없어요. 물론 우연히 자리를 같이한 적은 있지만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만난 적은 없어요. 내 양심상 한 번도 없었어.
 
  되돌아보니, 1년간 꼬박 쉰 적도 있고 2년간 한푼 못 받고 집에서 논 적도 있어요. 그때 술을 배웠어. 그전에는 알레르기 때문에 술을 전혀 못 먹었어. 하지만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었어. 후배들에게 ‘너희들도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른다. 배우로서 자세가 흐트러지면 만회하기 힘들다’는 말을 자주 했어요.”
 
  — 성격파 연기 같은 악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대에서 60년 넘는 세월을 보냈더니 이젠 연기하는 이의 인격이 다 보여요. 인격이 훌륭한 배우는 아무리 천한 역을 맡아도 천하게 보이지 않아. 진짜 천한 역할이 필요하면 천한 사람 불러다 앉히면 되잖아요. 연기는 결국 아름답게 보여야 해요. 아무리 악역이든, 악역을 아름답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 악역 속에 배우의 인생을 담아야 해요.”
 
 
  “인격이 훌륭한 배우는 아무리 천한 역을 해도 천하게 보이지 않아”
 
베니스의 상인에서 샤일록으로 나온 배우 오현경. 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 오현경 식 연기법의 지론이 ‘등장인물이 지닌 내적 진실의 표현능력은 배우의 인격, 인간됨하고 관련이 있다’는 것인데, 성공한 배우는 다 인성이 뛰어납니까.
 
  “물론 그렇지는 않아요. 중요한 것은 연기의 덕목이 ‘앙상블’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해요. 앙상블은 조화(調和)지요. 전체적인 분위기나 짜임에 맞는 어울림이라고 할까. 극의 흐름을 깨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극을 망치게 돼요. 좋은 연기는 ‘스며드는’ 연기여야 합니다.”
 
  오현경은 무대에서 주인공도 했지만 조연이나 단역도 마다하지 않았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연기법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연기가 필요해요. 무대에서 욕심을 버리고 배역의 크기에 따라 연기를 해야 합니다. 몇 해 전 어느 극단 대표가 제게 연출을 맡겼는데 시간이 안 돼 거절하고 말았어요.
 
  그래도 공연하는 모습을 보러 갔더니 연출가가 ‘선생님께 보여드릴 게 없습니다’ 그래요. 기분이 상해서 뒤돌아서는데 한 배우가 따라 나와 ‘죄송하다’고 해요. 나중 그 공연을 봤는데 기가 막혀요. 배우들이 전부 가만히 있다가 자기 대사 차례가 오면 소리를 막 지르고 … 마치 미친놈들이 하는 연극 같아. 앙상블이 전혀 안 되는 겁니다. 알고 보니 요즘은 ‘편집연극’을 한다는 겁니다. 스케줄이 바쁜 배우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으기가 어렵다는 거예요. 옛날에는 연습을 하다가 약속이 생겨 먼저 빠지면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요즘은 당당하게 ‘촬영이 있다’고 간대요. 그럼 연극을 왜 해? 연극은 조화가 중요해요. 아마추어 연극이라도 조화가 좋은 연극은 재미가 있어요.”
 
  드라마, 예능프로 등을 편성하는 매체는 대중 스타를 ‘모셔와야’ 시청률이 높아져 많은 광고수익을 올릴 수 있다. 연극, 뮤지컬, 영화 제작자도 그런 배우만 캐스팅하려 든다. 그러니 영화마다 겹치기 출연이 다반사다.
 
  오현경은 연극을 하면서 3가지 원칙을 고수했다고 한다. ‘겹치기 출연 안 하기’ ‘공짜 초대권 안 돌리기’ ‘돈 때문에 연극하지는 말자’.
 
  “요즘은 연극을 하다가 TV나 영화에 뽑히면 출세한 거라 생각해. 광고까지 하면 성공한 배우야. 연극은 그저 (TV나 영화의 캐스팅을) 기다리는 공간이야. 이런 정신 가지고 연극을 하니 발전이 없어요. 기가 막혀서….
 
  TV에 나오다가 늙어 불러 주는 데가 없으니 연극판에 나와 대접받으려는 이도 있어요. 대부분 작품이 이미 흥행된 작품이거나 지방 순회극 같은 것만 해요. 탤런트가 끼면 지방 아줌마들의 반응이 좋으니까. 어느 연극제에 갔더니 한 여자 탤런트가 저더러 ‘오현경씨!’라고 불러요. 그이는 연극을 안 해 본 사람이에요. 기분이 확 상했어. 제가 연출자를 불러 혼을 냈지. ‘그렇게 구걸해서 관객이 몇 명 더 오냐’고.”
 
  — 건강은 어떠세요. 두 번의 큰 수술(위암, 식도암)을 받으셔서 ….
 
  “썩 좋지는 않아요. 그런데 두 번이 아니에요. 전신 마취수술만 다섯 번이나 했어요. 큰 교통사고를 당했었고 쓸개를 떼어내고, 목 디스크 수술, 신경수술도 받았지 …. 포경수술까지 더하면 여섯 번 했어요. 하하하.”
 
  — 그래도 항상 현역으로 무대를 지키셨잖아요.
 
  “큰 욕심 없이 살았어요. 게걸스레 돈 벌려 하지 않았고 감투욕도 없었고 …. 항상 후배들 붙잡고 연기 얘기밖에 안 하니까. 두 번 택시 탈 돈으로 버스 타면 후배 밥 사 줄 돈이 나오니까 …. 그런데 요즘은 후배들이 없어요. 전부 바뻐(빠) ….”⊙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