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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인터뷰

하버드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북한문제 해결 위해 “문재인 정부가 나를 필요로 한다면 기꺼이 나설 것”

글 : 제니퍼 염(박)  하버드대 과학사학과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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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문제 해결 위해 문재인 정부가 요청한다면 어떤 자격으로든 협력”
⊙ “한미 정상회담 통해 훌륭한 동반자 관계 만들어내기 바란다”
⊙ “국제사회는 북한에 강력하고 일치된 메시지 보내야”

[편집자 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곧 하버드대 체류 생활을 마치고 7월에 귀국한다. 지난 4월8일부터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에 ‘안젤로풀로스 세계 지도자 펠로우(Angelopoulos Global Public Leaders Fellow)’로 가 있었던 그를 하버드대 박사 출신으로 과학사학과 강사이자 한국 현대사 연구자인 제니퍼 염(박)이 만나 근황을 들어 보았다. 영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제니퍼의 질문과 반 전 총장의 답변, 그리고 제니퍼의 영어 기사를 월간조선이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 등에서 어감의 차이가 생겼을 있을 수 있다. 어쨌든 두 사람의 대화로 보아도, 반 씨는 결국 세계시민임이 분명하다. 그의 세계주의적 경향은 그의 최대 강점이지만, 동시에 그가 오늘날의 한국에서 공직에 출마하려 한다면 최대의 약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니퍼 염이 작성한 영어 기사 전문과 편집 이전의 한글 번역판 전문은 http://monthly.chosun.com에서 볼 수 있다.

제니퍼 염 박
로스앤젤레스 출생, 웰슬리대 졸업(역사학 전공), 하버드대 박사(역사학 및 동아시아 언어),
《조선일보》 인턴기자, 《월간조선》과 《조선비즈》 등에 기고한 경력. 현재 하버드대 과학사학과 강사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4~6월 안젤로풀로스 세계지도자펠로로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에 있었다.
  하버드대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인물
 
  하버드대 케네디 스쿨의 벨퍼(Belfer) 센터 4층에는 스위트 특실이 있는데, 전화 번호를 알고 눌러야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안에는 행정 요원들의 자그마한 사무실 몇 개와 ‘남녀 공용 화장실(gender-neutral bathroom)’, 대기 공간이 있다. 맨 안쪽에 정원을 내려다보는 커다란 사무실이 있는데, 출입문에는 유별나지 않은 자그마한 명판이 붙어 있고, ‘반기문, 제8대 유엔 사무총장’이라고 씌어 있다.
 
  사무실은 학교 건물에 걸맞게 비교적 검소하다.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하나 있고, 그 옆에 소파 세트가 놓여 있다. 그러나 이 사무실은 특별한 점이 있다. 하버드 캠퍼스에서 접근이 가장 어려운 곳들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반 총장과의 면담은 이 방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러려면 사전에 스케줄이 잡혀야 한다. 반 전 총장은 이 방에서 하버드대 사람들을 만나는데, 20분 단위로 시간이 제한돼 있으며, 면담 종료 5분을 남겨 두고 비서가 노크를 해서 시간이 다 돼간다는 것을 알리는 식이다. 나는 이 방에서 반 전 총장을 두 차례 만났는데, 두 차례 모두 나와의 약속 앞뒤로 면담자들 명단이 길게 있었다. 지금 하버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자 하는 사람이 반 총장이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감색 정장에 줄무늬 넥타이를 맨 반 전 총장은 방문자에게 진지하게 손을 내밀며 악수로 맞이했다. 한 중국인 여학생과의 면담을 마치며 그는 “셰, 셰(고맙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여학생은 반색을 하며 그와 나란히 기념 사진을 찍는 기회를 잡는다. 대학 교수인 듯한 인도(印度) 방문자와의 면담을 마치고는 방문 밖까지 배웅을 나오면서, 사려 깊은 질문들에 감사한다고 인사했다. 그와의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방문자들의 눈빛에는, 오늘날 세계 문제에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졌다는 데 대한 외경심과 자부심이 배어 있다.
 
  반 전 총장은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긍정적 인상을 남겨주는 듯하다. 최근 하버드에서 학위를 마친 한국학 전공자인 권반석 박사는 “그분(반 전 총장)은 대단히 겸손하고 지적이며 친절하다”고 말했다. 나는 얼마 전 이곳의 한 격조 있는 식당인 ‘하베스트(Harvest)’에서 우연히 반 총장을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그때 나도 그러한 느낌을 받았다. 반 총장은 부인과 함께, 이곳을 방문한 핀란드 대통령과 케네디 스쿨 교수 몇 명과 함께 식사를 하려고 이곳에 왔었다. 나는 봄 학기를 마치고 나와 함께 가르친 동료들과 같이 작별 점심을 하고 있다가,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반 총장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나는 그가 식사를 함께 하는 손님들이 어떤 분들인지도 알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하며 악수를 청했다. 나는 하버드에서 한국사를 공부했고 지금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를 이렇게 만나게 되어 영광이라고 말했다. 또 그가 한국을 위해 일해 온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말했다. 30여초 정도 인사만 하려고 했던 것이 결국 내 연구와 가족사항에 이르기까지 10여분간의 대화로 길어졌다. 그는 부인에게도 나를 소개해 주었고, 부인도 마찬가지로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이 우연한 만남이 계기가 되어 결국 이 기사를 쓰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버드 사람들에게 지난 4월초 반 총장이 하버드로 온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그는 안젤로풀로스 펠로우로 선임됐는데, 그것은 케네디 스쿨에 사무실을 마련해 공직 분야에서 최고위직을 지낸 분들에게만 주어지는 명예로서, 케네디 스쿨에 사무실을 제공해 준다. 전임 펠로우들은 모두 전직 대통령들이었다. 반 총장은 하버드에 와서 조용하게 지내지만은 않았다. 기후 변화 같은 이슈들에 관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지치지 않고 일해 왔다. 최근의 ‘존 F 케네디 주니어 포럼’에는 수백명의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TH챈(Chan) 공중보건대학원에서 저명한 공중보건학 교수인 하워드 코(Koh)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에서 세계의 건강과 공공 리더십에 관해 강연하기도 했다. 케네디 스쿨 대변인인 더그 개블(Doug Gavel)은 “반 총장은 학내 학술 행사에도 대단히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고 말했다. 그를 만나려는 사람들은 세계 도처에서 온다. 그들은 어떤 종류의 질문을 하느냐고 내가 물어보자 반 총장은 그들의 첫번째 토픽은 북한문제라고 밝혔다. 그 바로 뒤를 이어 시리아 난민 위기, 기후 변화 문제, 여성 문제 등이 제기되곤 하는데, 모두 그가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긴밀히 관여했던 문제들이다.
 
  그의 바쁜 스케줄을 감안할 때, 그가 이 인터뷰를 위해 한 시간 가까이나 나와 대좌하기로 했다는 것은 그만큼 더 특별했다. 그러나 인터뷰가 처음부터 마냥 순조로운 것은 아니었다. 가령, 그는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망설임을 표시했다. 자신은 한국 언론과는 거의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10년간 3천5백회 정도 언론과 만났지만, 한국 언론인들과 만난 것은 단지 몇차례뿐이었다고 했다.) 더욱이, 하버드에 온 이후로는 어떤 한국 기자와도 만난 일이 없다. 그것은 그의 비밀주의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말을 빌리자면 “한국 정치에 관여”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더 말하지 않아도 나는 그의 말의 행간(行間)을 읽을 수 있었고, 그가 전하려는 참뜻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는 나와의 인터뷰가, 모든 징후들로 봐서 그가 대통령 선거에 나갈 것 같았던 금년 초의 일들을 되돌이키는 것을 바라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왜 대통령선거에 나서지 않겠다는 발표로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야 했는지에 대해 자세히 밝히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의 그러한 거리낌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지난 몇 달 간 한국 언론들이 그에게 친절하지 않았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만 초점을 맞추는 인터뷰는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시켜준 연후에야, 그는 인터뷰를 계속하기로 마음을 여는 듯했다.
 
 
  케임브리지 생활
 

  뉴욕 타임스는 2013년에 “일, 일, 가정, 일”이라는 제목으로 반기문 총장에 관한 기사를 실은 적이 있는데, 여기서 기자는 지극히 바쁘고 열심히 일하는 유엔 사무총장이 개인 생활은 어떤 모습으로 영위하는지를 그려내려고 했다. 그러나 기사는 끝부분에 가서야, 그러한 시도가 무의미했음을 밝혔다. 반 총장은 기본적으로 개인 생활이 없었던 것이다. 일을 그 무엇보다 우선시했기에, 그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직한 10년 동안 내내 그의 부인조차도 뒷전으로 밀려나 있어야 했다.
 
  그는 매일 밤12시까지 일하고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또 일을 계속했다. 아주 드물게, 일년에 너댓번 정도, 그는 스스로 마음의 휴식을 위해 액션 영화를 보려고 짬을 내기는 했다.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반 총장은 자신의 가혹한 일정을 현실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나는 사무총장 직을 마칠 때까지 이것이 내 운명이요 삶이라고 간주합니다. 나 스스로 어떤 불평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족들에게, 특히 아내에게는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아내는 대단한 인내심과 이해심을 가져 주었습니다.”
 
  내가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반기문 총장은 눈에 띄게 편안해 보였다. 그의 하버드 일정이 얼마나 빠듯한지를 감안한다면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4월8일 이곳에 도착한 이래 그는 잇따르는 세계의 주요 위기들을 처리해야 할 필요에 더 이상 지배받지 않아도 되는, 생활의 변화를 즐길 기회를 갖고 있다. 지금은 캠퍼스가 여름 방학을 맞아 학생들도 떠나고 없기 때문에, 그만큼 더 자신만의 시간을 갖고 있다. 여행자처럼, 그는 최근에는 이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도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시내 버스 투어를 하기도 했으며, 보스턴에서 1시간여 거리에 있는 미국 역사의 출발점인 플리머스(Plymouth)라는 작은 도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학문적 환경 속에서 지낸다는 것의 가장 보람 있는 점들 가운데 하나는, 학자들의 시각으로 이 세계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이라고 반 총장은 말했다. 학자들은 세계의 문제들을 반드시 신속하게 해결해야 한다는 동기 때문이 아니라 심층적으로 파악하려는 동기에서 바라본다. “나는 46년간 당면 과제를 다루는 현장에 있어 왔습니다. 멀찌감치에서 바라보거나 당장의 관심사항을 너머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별로 갖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이곳에서 학자들과 함께 지내면서, 정말로 나 자신이 지적 자양분을 섭취하고 있고 ‘지금 이곳’을 너머 조망하고 있습니다”라고 반 총장은 말했다.
 
 
  한국과 문재인 대통령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6월 2일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 북핵문제해결 등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사진=청와대 제공
  반 총장의 하버드 자리는 6월 말로 끝나게 되는 만큼, 우리의 대화 주제는 그의 단기 및 장기 계획으로 옮겨 갔다. 6월에는 국제적인 여행이 많을 예정이다. 6월 초에는 오스트리아의 전직 대통령을 만나 기후 변화와 지속가능한 개발 문제에 관한 공동 노력을 논의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다. 그리고 스페인으로 가서, 그가 유엔아동기금(UNICEF)과 함께 어린이들을 위해 기여한 데 대한 레티지아(Letizia) 왕비의 상을 받는다.
 
  6월말에는 파리에서 열리는 기후 변화 국제회의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한다. 그 연설에서 그는 자신이 사무총장 임기중에 결실을 맺도록 결정적 역할을 했던 기후변화 협약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예정이다. 그는 협약 탈퇴 방침을 받힌 나라(미국)에 대한 자신의 반대 의견도 밝히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7월에 그는 마침내, 10여년만에 한국에 아예 들어와 살려고 귀국한다.
 
  한국에 돌아가는 것에 대해 그는 어떤 심경일까? 한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기를 원할까? 최근의 실망스러웠던 일들을 과거지사로 넘길 수 있을까? 이 문제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던 나는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그가 한국의 대통령이 되지 못한 점에 대해 마음이 평온하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즉답은 ‘예스’였지만 이어진 반응은 다소 복합적이었다. 그는 내게, 자신은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것에 대해 비록 잠깐 동안 생각해 보았을 수는 있지만 결코 공식적으로 그렇게 선언한 적은 없었다고 상기시켰다.
 
  새로 선출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문 대통령 평가는 압도적으로(overwhelmingly) 긍정적이었다. 반 총장은 문 대통령이 임기 초에 보인 지지도가 고무적이라며, 문 대통령이 국민들의 이러한 지지 열풍을 잘 활용해서 긍정적 결실을 얻기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 정부가 제시한 초기 정책들, 특히 (일자리 수석을 신설하는 등) 청년 실업 문제 등에 대처하려는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에서 불행하게도 젊은이들의 교육수준과 취업가능한 일자리 형태 사이에 격차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요컨대 인터뷰 중 이 대목에서 내가 놀랐던 것은, 그가 무척 편안하게 보였다는 점이다. 그의 어조에는 일말의 앙금도 결코 남아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직전의 정치적 경쟁자 (political adversary)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잠재적 동지(potential ally)로 말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한국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정치적, 경제적 혹은 사회적 문제는 어느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즉각 북한 문제를 지적했다. “한국 전쟁 이후 여태까지, 한반도에서 긴장 수준이 지금처럼 고조되고 날카로워진 적이 없었다.” 최근 북한의 실험들(핵, 미사일)이 급증하는 사태는 지극히 우려스럽다. 반 총장은 북한이 최근 미사일 실험발사에서 몇차례 기술적 실패를 겪었다고 해서 무기 개발 사업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에 관한 그의 입장은 유엔 사무총장 재임 당시 그대로였다. 그는 국제사회가 북한에 대해 강력하고도 일치된 메시지를 보내야 하며, 유엔 안보리의 모든 이사국들(중국과 러시아 포함--편집자)이 제재 이행을 통해 북한의 행동을 비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문제에 관한 이 대목을 그는 낙관적으로 언급으로 마무리했다. 그는 아직도 “한-미-일의 강력한 유대와 공통 인식에 고무되고 있다”면서, “우리가 중국 정부로부터 더 강력한 지원을 얻고 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재로서도 중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가올 한-미 정상회담이 양국 지도자들 사이의 훌륭한 동반자 관계와 한-미 양국의 훌륭한 관계를 만들어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 문제에 그가 직접 개입하기를 원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머뭇거리지 않고, 문재인 정부가 그의 조력(助力)을 구한다면 자신은 어떤 자격으로든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기꺼이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이 선출되고 며칠 뒤에 전화로 통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 통화에서 그는 “새로 선출된 대통령에게 축하를 보내고, 아주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그는 새 정부를 위해 돕겠다는 제안도 했다. “나는 한반도 안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만일 기회가 생긴다면 나의 경험과 안목을 활용할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을 (문 대통령에게) 표시했다… 기본적으로 나는, 필요하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문 대통령에게 말했다.” 내가 “(문 대통령과의 )정치적 관계를 떠나서 말이죠?”라고 묻자 반 총장은 내가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면서 “물론이죠. 정치적 관계를 떠나서”라고 대답했다. 만일 최근 벌어진 일들이 앞날을 짐작케 할 어떤 지표라고 본다면, 6월 2일 서울에서 문 대통령과 반 전 총장의 전격 회동이 이뤄졌듯이, 문 대통령이 반 총장의 협력 제안을 받아들여 그를 기용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한 발 물러나서 본다면,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협력 용의에 관한 반 전 총장의 언급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만약 반 총장에 대한 비판자들이 이 기사를 읽게 된다면 반 전 총장이 그냥 마음에 없는 말로 하는 소리이거나 아니면 그가 다소 낙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다고 말할 것이라고 의심 없이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런 분들에게 나는 “반 전 총장이 정직하지 못한 언행을 통해 얻을 것이 무엇이겠는지?” 반문하고 싶다. 내가 볼 때 그의 말들은 정말 진정성 있게 들렸다. 어쩌면 반 전 총장은 지난 몇 달 간 한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을 피할 수 있었던 이곳 케임브리지 생활을 통해, 자신은 결코 한국의 대통령이 될 운명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기회를 가졌을 수도 있다. 그는 한번 더 한국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개방적이지만, 그가 한국의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최고 지위의 세계 시민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지난 4월 25일 JFK Jr.포럼에서 강연했다. 사진제공=마사 스튜어트.
  내 의견으로는, 반 전 총장이 지난 1월에 대통령 후보 지명전을 단념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현명한 결정이었다. 그가 그렇게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내가 말할 위치에 있지는 않지만, 나는 그가 자신에게 진실했다고 믿는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께서도 내가 도달한 결론, 즉 반 전 총장이 지난 1월에 대통령 출마를 고려했던 20여일의 기간은 그가 지금까지 수년간 쌓아올린 세계시민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正體性, identity)으로부터 잠시 일탈(逸脫)한 기간이었을 뿐이란 점을, 이 기사를 다 읽고 덮기 전에 공감해 주시기를 기대한다.
 
  유엔 사무총장으로 재임하면서 반 총장은 세계 최고의 세계시민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했다. 최근 하버드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반 전 총장을 소개한 교수가 글로벌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가 재임중 해결하려고 했던 문제들이 얼마나 크고 광대했는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기후 변화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신의 모든 역량을 투입했으며, 세계 최빈국들에서 식량, 식수, 에너지 위기를 해결했다. 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려고 애썼고, 여성과 아동들의 보건 문제에 역점을 두었다. 반 총장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비록 “물리적 힘”은 없었지만 수많은 세계인들을 위한 “도덕적 옹호자”로서 봉사할 기회를 가졌었다. 바로 이것이, 반 총장의 세계관이 한 국가 지도자의 그것과 상충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에게 최우선적인 사명, 즉 73억 지구인들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일한다는 것은, 다른 어떤 일보다 먼저 자기 나라의 안녕과 복지를 지키는 것이 임무인 특정 국가 대통령의 생각과는 충돌하게 마련이다.
 
  우리의 대화 중에 인상적이었던 한 대목은, 그의 발자취를 뒤따르기를 원하면서 그를 찾아오는 하버드의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그는 어떤 식으로 조언해 주는지를 내가 물어보았을 때였다. 그의 조언은, 학생들이 작은 한국 땅덩어리와 한국 사회를 넘어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렇지 못하면 세계적 안목을 잃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세계는 지금 긴밀하게 상호 연관되어 있다. 어떤 특정한 과제도 다른 나라와 단절된 상태로는 작동할 수 없다. 우리가 세계 시민이 되지 못한다면, 지금 세계가 직면한 위기들의 해결도 어렵다.”
 
  그의 강한 세계주의적 정향(定向)에도 불구하고 반 총장이 애국자라는 점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수십년간 국가를 위해 일해왔다는 사실이 이를 확인해주고 있고, 필요하다면 모든 노력을 다해 문재인 정부를 기꺼이 돕겠다는 그의 자세도 또한 그렇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반 전 총장이 국가주의자는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고려해야 할지 모른다. 바로 여기에, 오늘 이 시대에 반 전 총장이 직면한 최대의 난관이 있다. 즉, 그는 국가 지상주의 시대(era of nationalism)에 살고 있는 궁극적인 세계주의자라는 점이다.
 
  인터뷰가 끝나가면서, 나는 반 전 총장의 열정이 최우선적으로 그리고 가장 많이 쏟아진 분야는 기후변화 문제였음을 분명히 느끼게 됐다. 그는 인터뷰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문제에 관해 되풀이해 언급하곤 했다. 특히 흥미로웠던 대목은 그가 최근 파리 기후 협약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한 트럼프 행정부를 직접 겨냥한 것이었다.
 
  반 총장이 볼 때 이것(파리 협약 탈퇴 위협)은 근시안적인 제스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인류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며, 공화당과 민주당이 맞서 대립하는 사안으로 국한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반 전 총장이 하버드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이 문제(기후변화)는 우리 지구 전체에 관한 일”인 것이다. 그는 “우리의 후손들이 앞으로 수천년간 대대손손 평화롭고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해주는 일은 우리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 6월1일 파리 협약에서 탈퇴하려는 이유를 설명하는 연설에서, “미국 대통령으로서 내가 지고 있는 유일한 의무는 바로 미국 국민들에 대한 의무”라며, 자신의 우선순위는 “파리 사람들이 아니라 피츠버그 사람들”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이야말로 본말(本末)이 거꾸로 된 논리이다. 트럼프의 견해에 동의하든 않든 상관없이, 그가 지난 수년 사이에 점증해 온 보호무역주의와 자국우선주의 정신을 대표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우며, 이것은 분명 미국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반 전 총장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의 세계주의적 정향은 더욱 곤경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사회학자들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강렬한 민족주의적 사회들 가운데 하나로 꼽아왔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신기욱 교수는 한국인들의 정체성이 “단일민족주의”의 형태에 지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일 혈통 개념에 근거한 이런 유형의 민족주의는 지난 수십년간 한국의 근대화와 발전에 대단히 생산적으로 작용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오늘날의 시대에는 질식적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어두운 측면도 동시에 갖고 있다. 신 교수가 지적했듯이, 그것은 한국 사회의 문화적-사회적 다양성과 관용을 저해해 왔을 수도 있다.
 
  나는 반 전 총장의 한국 귀환이 마침 오늘날 한국 사회가 갈수록 다문화적인 안목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과도 겹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이렇게 급속히 다양해지고 세계 사정을 꿰뚫어 아는 한국인들을 두고, 하버드 대학의 폴 장(Paul Chang) 사회학 교수는 “과거 어떤 세대보다도 많은 수의 한국 청소년들과 젊은 성인들이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살아본 경험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 생활이나 유학 경험을 했다고 해서 반드시 세계 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적어도 한국인들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이 세계를 경험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세계시민들을 길러내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반 전 총장은 이 일을 더 추진하기 위해 작은 사무실을 열 계획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비전을 현실 속에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 전략을 고안해 낼 수 있기를 바란다.
 
  결론적으로, 반 전 총장은 우리가 익히 보지 못했던 한 유형의 한국인을 대표한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교육 받았고, 한국식 어투의 영어를 사용하며, 한국 음식을 더 좋아한다(그는 뉴욕에 있을 때 외국 기자에게, 저녁 식사로 대개 밥과 국을 먹는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렇지만 그를 두드러지게 하는 정체성은 바로 세계시민으로서의 그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의 이러한 점이 한국 국민들에게는 한국 사회에 대한 그의 냉담함이나 거리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싶다. 반 전 총장이 추구해 온 가치는 한국민들의 발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 시민들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한국이 다양한 나라들의 문화적-정치적 차이를 넘어 그 국민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의 강점은 그의 국제적 평판과 그를 애호하는 수많은 세계 저명 인사들이다. 그의 세계적 시각은 다양한 방법으로 한국 사회를 강화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이 이런 긍정적 측면들로 한국에 기여할 수 있으려면, 한국인들의 눈에 비치는 그의 이미지도 이제는 대통령에 도전하려다 실패한 사람이라는 것을 딛고 넘어서야만 한다. 2017년 1월의 일탈이 오롯이 그를 규정해서는 안된다. 반 전 총장에 대한 하버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목격해 온 나로서는, 한국 바깥에서 그를 그런 시각으로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사실은, 한국 바깥에서 어떤 사람들이 그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지가 의문스럽다.
 
  우리의 인터뷰에서 나왔던 마지막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이 아마도 이 기사를 마무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 같다. 나는 마지막 질문으로 그에게, 혹시 한국의 비판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약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그의 강점을 지워버려서는 안됩니다.” 실제로 그는 비판자들이 조롱 삼아 한 말처럼 “미스터 반반(半半)”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좋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의 정체성의 절반은 한국에 뿌리를 두고 있으면서도, 나머지 절반은 세계 시민으로서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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