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최태민-최순실 스캔들

최태민 측근 전기영 목사의 못다 한 이야기

“최태민에게 빌붙던 목사들이 협박, 경찰에 신변보호 요청”

글 :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woosuk@chosun.com

글 : 김정현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최태민은 강신(降神)무당, 최순실은 선무당
⊙ 최태민, 박근혜 대통령을 자신과 동일한 신(神)이라고 생각
⊙ 최순실 엄마 임선이씨의 정체
⊙ 신군부(新軍部)가 최태민 강원도로 추방하자, 옆에서 단물 빨아먹던 사람들 먼지처럼 사라져
  국정 농단의 장본인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1912~1994)씨의 측근으로 알려진 전기영 목사를 충남 서산시 해미면 오학리 충성교회에서 만났다. 전 목사와 최씨는 1980년대 초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종합총회의 부총회장과 총회장 신분으로 만났다. 예장 종합총회는 1970년대 최씨에게 목사 호칭을 줬다.
 
  전 목사는 만나자마자 “협박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소연했다. “무슨 말씀이냐”고 묻자 “내가 최태민에 대해 말한 언론 인터뷰를 보고 그의 측근들이 나를 죽인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내는 공포심 때문에 아주 조그만 소리에도 잠에서 깬다”고 했다.
 
  — 최태민 목사 측근들이 아직도 활동합니까.
 
  “측근과 그의 후손들이 거대한 교회의 목사가 돼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태민에게 빌붙어서 돈을 많이 챙겼거든요. 그 자금으로 큰 노인복지회관을 운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실제 노인을 위해 활동하는지, 등쳐먹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 이들로부터 직접 협박을 받은 겁니까.
 
  “제가 잘 아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모임에 나갔는데, 거기에 있던 사람들이 ‘전기영이 죽여 버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더군요. 그분이 제게 전화를 걸어 ‘전 목사, 분위기가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고 전해 줬습니다.”
 
 
  최태민 측근 협박에 경찰에 신분보호 요청
 
예장 종합총회는 1970, 80년대 서울에만 300개 넘는 교회가 가입한 거대 교단이었지만 지금은 군소 교단이다.
  — 불안하시겠네요.
 
  “그래서 어제(8일) 경찰에 신분보호 요청을 했습니다. 경찰이 한 시간에 한 번씩 저희 집과 교회 근처를 돌며 제 경호를 해 주고 있습니다.”
 
  마침 경찰 2명이 인터뷰 장소인 충성교회 목사실로 들어왔다. 전 목사는 “인터뷰 중이다. 아무 일도 없다”고 했다. 경찰들은 “곧 또 오겠다”고 했다. 전 목사는 손목에 찬 시계 모양의 기계를 보여주며 “경찰이 무슨 일이 생기면 긴급하게 연락하라고 준 것”이라고 했다.
 
  — 최씨가 예장 종합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죠?
 
  “1975년 우리 교단(예장 종합총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신학교육은 받지 않았고요. 돈을 주고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이죠. 당시에는 불과 10만원만 주면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최씨도 그런 경우입니다.”
 
  — 혹시 예장 종합총회가 이단(異端)인가요.
 
  “절대 아닙니다. 예장 종합총회는 1970, 80년대 서울에만 300개 넘는 교회가 가입한 거대 교단이었습니다. 당시 문공부에서 교단 등록 번호를 세(勢)가 큰 순서대로 부여했는데, 예장 종합총회가 10번을 받았죠. 우리 2대 예장 종합총회 회장이 조현종 목사인데, 다른 교단도 이분의 이름은 다 압니다.”
 
  《풀빛목회》 1984년 7·8호에 따르면 피어선 성경학교와 일본 대학법무부 종교과를 졸업한 조 목사는 1969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1970년 종합총회 2대 총회장에 피선(被選)됐다.
 
  — 최씨가 예배할 때 설교도 했습니까.
 
  “뭘 알아야 하죠. 가끔 축도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도 주위 목사가 써 준 문구를 그대로 읽었죠. 최씨가 ‘축도’라고 크게 외치는 모습을 보고 웃은 적이 있습니다. 옆에서 손짓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다 알려줬어요. 축도를 끝내면 ‘어때, 나 잘했지’라며 의기양양해했습니다.”
 
  — 그런 사람이 어떻게 예장 종합총회 회장직을 맡았나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10월유신을 하니 기독교가 반대 세력이 됐습니다. 그러자 박 전 대통령이 목사 안수를 받은 최씨를 불러 ‘네가 목사니, 기독교의 기존 세력을 막을 수 있는 단체를 만들라’고 지시했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구국십자군’입니다. 구국십자군은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에 걸쳐 지부를 세웠죠. 각 지부의 간부만 돼도 기관들이 꼼짝을 못했습니다. 영애(令愛)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명예총재였으니까요. 총재인 최씨한테 많은 사람이 줄을 섰습니다.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기도한다는 목회자들도 조찬기도회니 뭐니 하면서 최씨에게 잘보이기 위해 바빴죠. 구국십자군에 들어가기 위해 최씨에게 돈을 다발로 주는 사람도 다수였습니다. 그러니 돈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최씨에게 힘과 돈이 있으니 조현종 목사가 예장 종합총회 회장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죠. 그래서 회장이 된 것입니다.”
 
  — 최씨가 돈을 물 쓰듯 썼다는 증언이 있던데요.
 
  “1980년대 최씨가 예장 종합총회 회장을 할 때 제가 부총회장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를 부르더니, 총회 사람들 모인 데서 한마디 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잘 부탁한다’고 했더니, 여비서에게 돈 봉투를 가져오라고 하더군요. 저에게 얼마 안 된다며 봉투를 건넸는데 집에 와서 보니 600만원이었습니다. 그때 600만원이면 아파트 두어 채 값이었습니다.”
 
  — 돈으로 사람의 환심을 사는 스타일이었나 보네요.
 
  “그건 아니었어요. 저보다 25살이 많았는데, 저를 참 좋아했어요. 그래서 자주 어울렸죠.”
 
  — 다른 사람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인가요.
 
  “줬지만 600만원 같은 거금을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만날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금일봉 형식으로 10만원씩 줬어요. 당시 10만원이면 4~5명이 갈비 사 먹고도 남아, 나눠 가질 정도였거든요.”
 
  — 돈 많은 최씨와 가까웠으니 좋은 거 많이 드셨겠습니다.
 
  “정말 신기한 게, 최씨와 밥을 먹은 게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최씨가 다른 사람과 밥을 먹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당시에는 ‘저 사람은 본인이 얼마나 대단하다고 생각하기에 겸상을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
 
 
  막돼 먹은 성격의 소유자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구국선교단 야간진료센터를 방문, 최태민 총재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가운데는 박근혜 대한구국선교단 명예총재.
  — 최씨의 식구들에 대해서도 잘 압니까.
 
  “최순실은 한 번 봤어요. 최씨가 자기 딸이 하고 있다는 유치원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거든요. 멀리서 봤는데, 그때야 ‘(최순실이) 어렸으니까 유치원에서 뭘 하긴 하는구나’ 하고 넘어갔죠. 몬테소리 유치원인데 참 컸어요. 아비가 돈이 많아서였겠죠. 그리고 최씨의 다섯째 부인, 그러니까 최순실 엄마죠. 그 사람도 좀 압니다. 막돼 먹은 성격의 소유자였어요. 최순실이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죠.”
 
  — 성격이 어땠는데요.
 
  “서울 강남에 박정희 대통령 연구실이 있었는데, 거기가 예장 종합총회의 사무실이 됐어요. 그곳에 모여 회의를 하는데 어떤 여자가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최태민 바꿔’ 그래요.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지금 회의 중인데요’라고 했더니 ‘그따위 얘기하지 말고 바꾸기나 하라’고 막 난리를 치더군요. 최씨에게 수화기를 넘기고, 주위 사람들에게 ‘이상한 여자가 전화를 해서 소리를 지른다’고 했더니 최씨 부인이라는 겁니다. 제가 놀라서 ‘아니 최 회장이 왜 저런 사람이랑 사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최씨를 잘 아는 한 분이 ‘최씨가 가난했을 때 쌀을 구걸하고 다녔는데,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둘이 같이 다니는 게 좋겠다 싶어 만난 여자가 지금 부인’이라고 말해 주더군요.”
 
  — 최씨는 박근혜 대통령과 어떤 사이입니까.
 
  “당시 소문에 최씨와 영애 박근혜 양이 방에 들어가면 종일 안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대놓고 물었죠. 도대체 무슨 관계냐고. 그랬더니 최씨가 ‘우리는 영적인 한가족 한 부부와 같은 것이지, 육신(肉身)에 대한 얕은 얘기는 하지 마세요. 우리 신(神)이 이분을 도우라고 했습니다. 이상한 생각은 저질이나 하는 겁니다’고 하더군요.”
 
  — 사석에서 최씨는 박 대통령을 어떻게 불렀습니까.
 
  “‘그분’이라고 극존칭을 썼습니다. 최씨는 박 대통령을 아주 존경했어요. 최씨는 박 대통령을 신(神)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신이라고 생각했다고요?
 
  “한번은 최씨가 박 대통령과 같은 차를 타고 부산에 갈 일이 있었나 봐요. 부산까지 멀잖아요. 본인은 힘들어서 몸이 뒤틀리고 하는데 박 대통령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무릎 위에 공손히 모아 놓고 끝까지 정자세로 가더랍니다. 그 이야기를 저한테 해 주면서 ‘아주 흐트러짐이 없는 분입니다. 상당히 차가운 분이기도 하고요. 정말 신적인 존재이십니다. 영적으로 대단한 분이죠’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더군요.”
 
  — 최씨 때문에 잘나가던 예장 종합총회의 세(勢)가 급속히 약화했는데 이유가 뭡니까.
 
  “10·26 사건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섰잖아요. 거기서 최씨의 횡령 사기 혐의를 조사하고 나서 강원도 인제 군부대로 추방했습니다. 그러자 최씨 옆에서 콩고물 받아먹던 사람들이 다 도망쳤죠. 혹시 본인도 최씨 측근으로 몰려 피해를 볼까 봐요. 후환(後患)이 두려웠던 거죠.”
 
  — 지금은 세가 많이 복구됐습니까.
 
  “현재 50여개 교회가 속한 군소 교단입니다.”
 
 
  “그분은 반드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될 것”
 
  — 최씨에 대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습니까.
 
  “앞으로의 일을 많이 알아맞혔어요. 미래의 일을. 박근혜 대통령이 최씨를 믿은 것도 이 때문이죠.”
 
  — 뭘 맞혔습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예감했죠.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숨진 날, 최태민씨가 당시 영애였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오늘 대통령과 점심 약속을 해서 주위에 있는 사람을 모두 물리쳐라’고 했답니다. 그날 낮 12시50분께 최씨에게 박 대통령이 전화해 ‘아버지한테 부탁했는데, 오늘 말고 사흘 뒤에 전부 다 물리치겠다고 하셨다’고 말했답니다. 그리고 밤에 일이 터졌죠. 육영수 여사로 빙의(憑依, 영혼이 옮겨 붙음)해 말한 사람이 아버지의 죽음까지 예언했으니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최씨를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아, 그리고 또 있네요.”
 
  — 뭐죠.
 
  “1980년대부터 ‘그분은 반드시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어요. 결과적으로는 맞는 말이 됐죠.”
 
  — 최씨가 달변이었나요.
 
  “아니요. 가끔 말을 더듬고 그랬어요. 4차원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영적인 이야기. ‘내 신이 그랬다’는 둥 ‘자신만의 신’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 언론인터뷰에서 최씨를 주술가라고 하셨는데요.
 
  “하나님이 아닌 신을 찾는 게 주술가 아닙니까. 저는 최씨를 주술가이자 강신무당(신내린 무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최태민과 최순실·정윤회(최순실씨의 전 남편)가 박근혜 대통령을 흔들고 조종하는 바람에 나라가 이 꼴이 됐습니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대(代)를 이어 무당을 하면 그게 선무당입니다.”
 
  그는 “일본 언론에서도 나를 인터뷰하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며 “최태민과 최순실·정윤회 때문에 대한민국이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