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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동의 인간탐험

김무성(金武星) 전 새누리당 대표

“더민주는 친노 패권주의 완성. 새누리는 패권주의로 가는 중. 나는 패권주의를 배격한다.”

글 :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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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4·13 총선 후 첫 공식 인터뷰를 하는 이유
⊙ ‘양극화 해소’하는점에서 김종인 대표의 경제민주화와 생각 비슷
⊙ 차기 대선에서 시대정신은 격차 해소, 안보는 보수, 경제는 중도로 가야
⊙ 새누리 대표 선거 당시 비주류 주호영·정병국 단일화에서 정병국 승리 예상했지만
⊙ 대통령이 임명한 이석수 감찰관에 대한 청와대 사퇴 요구는 잘못된 것
⊙ 총선 참패 후 5개월여 동안 대표로서 책임을 느꼈고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가 도광양회(韜光養晦)라는 말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까닭은?
⊙ 권력분산을 위한 개헌이 급선무이고 야당과 연정도 할 수 있어야 한다
⊙ 문재인은 착하고 안철수는 순진하고 반기문은?

김무성
1951년생. 한양대 경영학과 졸업, 한국해양대학교 명예행정학 박사,
동국대학교 명예정치학 박사, 부경대 명예정치학 박사 / 15~20대 6선 국회의원,
청와대 민정·사정비서관, 내무부차관, 한나라당 사무총장·원내대표,
새누리당 대표 역임 / 황조근정훈장 수훈
  일요일이었던 9월 4일 오전에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706호에서 만난 새누리당 김무성(金武星) 전 대표 방의 회의 탁자에는 각종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한편에는 광주비엔날레 주최 측이 제공한 천으로 만든 가방과 기념품 등이 놓여 있었다. 전날인 3일 광주비엔날레에 참석했던 흔적이었다.
 
  김 전 대표는 “내가 내무부 차관 시절인 1995년에 광주비엔날레가 시작됐는데 그 첫 개막식에 테이프 커팅을 위해 참석했었다”며 “그때 다시 한 번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20년이 넘어서야 다녀왔다”고 했다.
 
  광주비엔날레 참석 소감에 대해 이야기하던 김 전 대표는 화제를 바꿔 “내가 일요일에 국회에 올 때는 수행비서를 쉬게 하고 직접 차를 몰고 오는데 좀 전에 차에서 내리니까 기자들이 막 사진을 찍더라”면서 “요즘 그렇게 기사거리가 없나” 하면서 “허허” 웃었다.
 
  자신에 대한 언론의 주목이 아직은 좀 과한 것 아니냐는 농담조의 말이었지만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여전히 언론의 주요 관심사다. 김 전 대표가 광주비엔날레 행사 참석차 광주를 방문했던 비슷한 시기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등도 그곳을 찾자 일부 언론은 ‘여야 잠룡들, 잇따라 광주서 대권경쟁 점화’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운동화
  언론이 그가 21년 만에 광주비엔날레 행사에 참석한 것도, 최근에 진행 중인 그의 전국 민생투어도 내년 대선과 관련지어 바라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스스로 원하든 원치 않든 김 전 대표는 이미 대선 주자 반열에 올라 서 있다.
 
  일요일이라 냉방이 안 돼서인지 김 전 대표의 방은 더웠다. 웃옷을 벗으며 김 전 대표는 “4·13 총선 후 이렇게 언론과 정식으로 하는 인터뷰는 처음이라서 좀 긴장도 되네. 준비도 덜 됐고”라고 했다.
 
  — 다른 매체에 인터뷰가 실린 걸 봤는데요.
 
  “제 말은 사전에 인터뷰를 준비하고 이렇게 국회에서 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거죠. 민생투어 현장을 찾아온 기자들과의 대화는 소개된 일이 있죠.”
 
  기자는 김 전 대표가 민생투어를 시작하기 정확히 한 달 전에 만난 일이 있었다. 그때와 비교해 야위었다고까지 표현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살이 빠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 전국 민생투어를 하면서 몸무게가 많이 빠진 것 같습니다.
 
  “제가 살이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민생투어가 여행은 아니었으니까요. 당연히 빠졌겠지요. 저보다 수행원들이 더 고생을 많이 해서 몇 kg씩 빠졌다는데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민생투어 마친 후 대선 도전 여부 결심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8월 2일부터 전국 민생투어를 시작했다. 그는 추석 이후에도 이어지는 민생투어를 통해 민심을 청취한 후 대선 출마 여부를 결심하겠다고 했다.
  — 혹시 지지율 빠진 만큼 몸무게가 빠진 건 아닙니까.
 
  “(웃음) 지지율이야 오르고 내리고 하는데 일희일비할 필요가 있나요?”
 
  — 민생투어를 통해 뭘 느꼈습니까.
 
  “제가 당 대표 시절에도 늘 ‘문제의 답은 현장에 있다’고 했고 그래서 자주 현장을 찾아갔습니다. 역시 이번 민생투어에서도 답은 현장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민생투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에 섞여서 막걸리도 먹고 밤늦게까지 이야기도 나눌 기회를 가질 수 있었죠. 그분들의 생업 현장에 가서 같이 이야기를 해 보니까 마음의 벽이 헐리면서 깊은 마음속에 있던 말들이 나오더군요. 참 좋은 경험을 잘했다 싶어요. 리포트나 익히 알고 지내던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었던 민심이 막연한 것이었다면 이번 민생투어를 통해서는 구체적인 민심을 체험적으로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 체험적으로 생생하게 느낀 예를 한 가지만 든다면요.
 
  “이번에 군 단위의 농촌지역을 많이 돌아봤습니다. 현장에서 저는 우리 농민들의 삶의 질이 많이 향상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정부의 손길이 필요한 분들도 있겠지만 경제적으로 삶의 질이 많이 나아지신 분들도 많았어요. 자존감도 강했고요. 그걸 보면서 저는 이제는 도시 빈민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과거 농민을 보듬었듯이 도시 빈민들을 정부와 사회가 더욱 더 보듬어야 할 때입니다.”
 
  — 전국 민생투어는 끝난 겁니까.
 
  “아닙니다. 지금까지 예정에서 반밖에 못했습니다. 그동안 전남, 경남, 전북, 충북 지역의 민생을 탐방했는데 추석 이후에는 경북, 충남, 강원, 경기 지역을 테마로 정해서 돌아볼 계획입니다.”
 
  — 민생투어와 대권 도전이 관련이 없다고 대표께서 부인해도 대표의 행동 하나하나는 이미 대선 주자의 행위로 읽히고 있습니다. 언제쯤 대권 도전을 공식 선언할 겁니까.
 
  “아직까지 정식으로 뜻을 안 밝혔는데 …. 좀 더 다녀보고 결정할 생각입니다.”
 
  — 민생투어를 좀 더 하면서 민심을 더 느껴본 다음에요?
 
  “(고개를 끄덕) (대권 도전이)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하늘의 뜻이 통해야 하는 거죠. 그 하늘의 뜻이 민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코웃음을 치는 국민들도 있겠지만 국회의원들이 이런저런 일정에 치여서 민심을 돌아보는 일을 제대로 못해요. 앉아서 생각할 시간도 있어야 하고 어떤 일에 깊이 있게 파고들 시간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워낙 바쁩니다. 정말 내실 있는 정치활동을 하기가 어려워요. 이 기회에(민생 투어) 국민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본 다음에 최종 결정할 생각입니다.”
 
 
  패권주의는 민주질서를 파괴
 
《월간조선》과 인터뷰가 있었던 2016년 9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으로 출근하는 김 전 대표. 전날 광주비엔날레에 참석했을 때 받은 천으로 만든 가방을 들고 있다.
  — 얼마 전 더민주 김종인(金鍾仁) 전 대표가 이른바 ‘친박(親朴)’과 ‘친노(親盧)’를 배제한 중간지대에서의 정계 개편 가능성을 말했는데 가능하다고 보는지요.
 
  “그 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패권주의는 없어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현재 친노 패권주의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친박이 패권주의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하는데 친박이 지금 패권주의로 흐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요. 패권주의는 정치권에서 배격돼야 합니다. 민주질서를 파괴하는 행위니까요.”
 
  — 제3지대 정계 개편설과 관련해 직접 제의를 받은 적은 없습니까.
 
  “아직 없어요. 그런데 정치권에서 김종인 대표만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양쪽(친노, 친박)이 패권주의로 흐르는 것은 곤란하다는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은 사실이에요. 우리 새누리당 내의 비주류 세력들이 과연 그렇게까지 할 상황에 와 있느냐 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친박 패권주의가 친노 패권주의처럼 견고한 수준까지 와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요.”
 
  — 지난 7월 14일 있었던 김 대표의 대표 당선 2주년 기념식 때 참석자 중에는 “친노보다 친박이 더 싫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새누리당 비박 진영에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비박 진영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은 이미 친박이 패권주의 세력화했다고 보고 있기 때문 아닌가요.
 
  “거듭 말하지만 (패권주의 세력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합니다.”
 
  — 내년 대선을 앞두고 정계 개편이 어떤 형식으로든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 아닙니까.
 
  “가능성이야 항상 존재합니다.”
 
  — 이번 가을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정세균(丁世均) 국회의장의 발언 때문에 국회가 파행을 겪었는데요.
 
  “국회의장이 되면 자기가 속했던 당을 탈당해서 무소속이 됩니다. 여야가 정치적으로 맞서는 국회에서 중립지대의 역할을 하라고 국회법이 그렇게 정한 겁니다. 여야의 첨예한 정치적 대립을 중재하고 조정해야 할 의장이 자기가 속했던 야당의 정치적 입장만을 대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 국회의장도 정치인이니까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럼 국회법이 왜 필요한 거죠? 국회의장은 솔선수범해서 국회법을 지켜야 할 사람입니다. 여야의 입장이 갈리는 정치적 사안에 대해 발언하고 싶었으면 국회의장을 하지 말았어야죠. 저는 정 의장의 우병우 수석 사퇴 문제나 공직자비리수사처 문제 등에 관한 발언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백보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국민의 생명이 걸린 사드 문제는 다르잖아요. 우리 새누리당은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의원 전원 일치로 찬성 당론을 정한 상황이기도 했고요. 국회에서 여야 중립지대에 있어야 할 의장이, 그것도 국가 권력서열 2위인 의장이 사드 배치를 사실상 반대한다는 입장을 여야 의원들 보는 앞에서 밝힌다는 것은 경거망동이에요. 게다가 대통령이 중국 시진핑 주석을 만나게 돼 있는 예민한 상황이었습니다. 이거는 의도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 정세균 의장은 국회 개회사가 문제된 후 자신은 사드 배치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사드 배치 결정 과정에서의 소통 문제 등을 지적한 것이라고 주장했는데요.
 
  “그거는 일이 터지고 난 뒤에 변명하는 이야기고요. 설사 본뜻이 그랬을지라도 그런 오해를 살 만한 발언을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 우병우(禹柄宇) 청와대 민정수석 문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우 수석에 대한 언론의 의혹 제기가 맞는지 안 맞는지는 결과가 나와 봐야 알 것이기 때문에 제가 지금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아요. 이석수(李碩洙)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이 지명해서 임명된 사람 아닙니까. 야당에서 지명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렇게 임명된 사람이기 때문에 이 특별감찰관의 우 수석에 대한 검찰 수사 의뢰는 자기 나름대로 고민 끝에 낸 결과물로 봐야 합니다. 그 뜻은 존중돼야 합니다. 이 특별감찰관은 이 제도가 시행된 후 첫 감찰관입니다. 어렵게 그런 제도를 만들어 처음 임명된 사람이 주요한 입장을 발표하는 것을 깔아뭉갰다는 것은 문제입니다. 그렇다고 청와대 등의 압력이 들어온다고 사표를 던진 이 감찰관도 무책임해 보이고요.”
 
  —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우 수석이 물러날 필요가 없다는 겁니까.
 
  “아니죠. 저는 우 수석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여러 번 했어요.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수사 결과를 고심 끝에 내놓은 그 지점에서 우 수석은 사퇴했어야 한다고 보는 겁니다. 언론의 의혹 제기 때문에 사퇴하라는 것은 아니고요. 하지만 언론이라는 것은 그런 의혹 제기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4·13 총선 패배의 1차 책임은 나
 
2016년 9월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미국 ‘경제민주화 실패의 교훈’ 이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참석한 김 전 대표. 그는 국정의 90%는 경제 문제라고 했다.
  — 4·13 총선 패배의 원인이 뭐라고 판단하고 있습니까.
 
  김 전 대표는 “하” 하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는 패배 원인을 말하기에 앞서 책임 문제부터 꺼냈다.
 
  “제가 당 대표로 있던 상황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참패한 것에 대해서는 1차 책임은 저한테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총선 직후 바로 책임을 지고 사퇴한 거고요. 지금 총선이 끝난 지 5개월여가 돼 가는데 그동안 저는 한 번도 그 결과에 대해서 변명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제 책임이 크다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다만 우리가 다시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해야 됩니다.”
 
  — 새누리당이 김희옥(金熙玉)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패배 원인 등을 분석한 총선 백서를 냈는데요.
 
  “그 총선 백서는 제대로 된 원인 분석을 못 내놓은 것 같아요.”
 
  — 대표께서 보는 패인과 새누리당의 총선 백서에서 말하고 있는 총선 패인이 다릅니까.
 
  “다르죠. 집권 이후에 쌓여 왔던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이 폭발한 겁니다. 저간의 민심이 저 깊은 곳에서 수퍼 볼케이노처럼 이글거리고 있는데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새누리당의 행태가 거기에 구멍을 낸 셈입니다.”
 
  — 새누리당 공천 과정 문제에 대표도 책임이 있다는 거죠?
 
  “어쨌든 제가 당시 당 대표였으니까 자유롭지는 못합니다.”
 
  — 민심이 들끓었던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첫째는 경제가 안 좋다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지금이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에서 연말정산 같은 세금 문제를 건드린 거예요. 빚을 내서 세금을 내야 한다는 원성도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민심이 확 돌아섰습니다. 저도 찬성표를 던졌지만 담뱃값 인상도 문제였고요. 너무 과하게 올렸어요.”
 
  — 공무원연금 개혁도 영향을 끼쳤죠?
 
  “과천이나 세종시 등 공무원들이 밀집해서 사는 곳에서는 큰 표 차로 다 졌다는 사실이 그 방증입니다. 제가 대표 시절에 표를 잃을 각오를 했다고 선언하고 공무원연금 개혁에 나섰는데 그 점은 후회하지 않습니다. 국가 재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니까요. 세계 정치사를 보면 큰 개혁을 추진한 정부는 이어지는 선거에서 반드시 졌어요. 거듭 말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공천파동이 민심에 불을 지른 것입니다.”
 
  — 경제가 어렵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요.
 
  “민심의 더 깊은 곳을 보면 희망을 잃어 가고 있다는 거예요. 과거에는 국민 대다수가 ‘내가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고 저축하면 우리 가족에게 희망이 있고 내 자식은 나보다 더 잘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의 사다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많은 국민이 희망 대신 상대적 박탈감만 더해 가고 있잖아요. 양극화의 심화로 좌절감만 쌓여 가는 겁니다. 그 좌절이 분노로 변하고 거기에서 오는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 과정이었는데 그 1차 폭발이 4·13 총선 때 있었던 겁니다.”
 
  — 총선 때가 1차 폭발이라면 앞으로도 또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는 건가요.
 
  “저는 있다고 봐요. 2011년 미국에서 오큐파이 월스트리트(월가 점령 운동)가 벌어졌잖아요. 넥타이 부대가 공정사회를 주장하면서 시위를 벌인 겁니다. 그해 런던에서 작은 폭동도 있었고요. 지금 우리 사회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우리도 언제 그런 일이 터질지 모릅니다.”
 
  — 1987년 민주항쟁 때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온 것처럼 어려운 경제 때문에 다시 넥타이 부대가 거리로 나올 수 있다?
 
  “1987년은 민주 대 반민주 문제였지만 지금은 불공정한 사회에서 오는 ‘내 삶에 대한 회의’ 때문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문제를 누가 해결하느냐,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누가 만들어 내느냐가 관건입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2%가 한국의 자본주의는 진정한 자본주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 아닙니까. 자본주의에는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연고 자본주의가 있어요.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기본권, 선택, 교환, 혁신의 자유 그리고 법치주의 등에 기반을 둔 것으로 적극 권장돼야 하지요. 반면 연고 자본주의는 특권층의 부패와 후진성을 말하는 것이지요. 이는 절대 뿌리내려서는 안 됩니다. 원칙이 허물어진 시장만능주의, 연고자본주의 경제가 우리 사회를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로 만들었어요. 그게 분노를 만들고 그 분노의 폭발이 지난 총선에서 있었던 겁니다. 우리 정치권은 그런 폭발을 막아야 할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 그런 문제를 대표께서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당연히 책무를 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그와 관련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왜 비박이 되어야 하는가
 
김 전 대표는 내년 대선에서의 시대정신을 격차 해소 문제로 봤다. 김 전 대표가 2016년 8월 30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격차해소 경제교실’ 강연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4·13 총선 막바지에 영도에 내려갈 수밖에 없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 일 때문에 제가 오해를 많이 받는데요. 해명하자면, 첫째 제가 당대표 직인을 들고 영도에 간 적이 없어요. 당의 금고에 그대로 있었죠. 둘째, 저는 영도로 가기 전에 기자회견을 통해서 제 입장을 분명히 밝혔어요. ‘당헌 당규에 위배되는 공천은 내가 의결할 수 없다’고요. 그때 6개의 지역구가 남아 있었는데 ‘더 이상 내가 여기에 대해서는 의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영도로 간 겁니다. 저도 지역구를 갖고 있는 국회의원 후보잖아요. 새로운 선거구와 합쳐지기도 했고요. 선거를 앞두고 몇 달 동안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지역구를 그때서야 가게 된 거예요. 그런데 사실도 아닌 걸 두고 ‘옥새 들고 튀었다’는 등의 난리가 난 겁니다.”
 
  — 그때 《조선일보》 1면에 난 대표의 사진이 멋있었다고, 연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요.
 
  “(웃음) 그런 이야기를 하는데 그건 아니고요. 제 선거 사무소가 바로 영도다리 앞에 있었고, 사무실도 좁고 해서 바깥으로 나왔다가 찍힌 거예요.”
 
  — 지난달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이 압승을 했는데요.
 
  “불과 석 달 전 총선에서 참패를 안겼는데 전당대회에서 민심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온 것은 뭔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위기감을 절감한 주류 쪽에서는 (김 대표는 친박, 비박이라는 용어가 아닌 주류, 비주류로 분류했다) 주류라는 게 힘이 있는 쪽이니까 총동원령을 내렸고, 비주류는 저 같은 경우도 민생투어한다고 지방에 내려가 버리는 등 구심점이 약했어요. 워낙 당시가 폭염 중이라 투표율이 낮았고, 투표율이 낮으니까 여론조사 비중이 높아지면서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 비박 측의 정병국(鄭柄國) 의원과 주호영(朱豪英) 의원 단일화 과정에서 주호영 의원으로의 단일화는 예상했습니까.
 
  “솔직히 정병국 의원으로 단일화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 왜 주호영 의원이 이기는 결과가 나왔다고 봅니까.
 
  “역시 우리 당은 TK세력이 굉장히 강하다는 걸 보여준 겁니다. 그분들이 단일화 과정에서는 주호영 의원을 찍어 놓고 본선에서는 친박 후보를 민 것입니다. 주 의원이 TK 출신이니까요.”
 
  — 차기 대선에서 친박 세력을 등에 업은 후보를 통해 정권 재창출이 가능할까요.
 
  “아직은 소위 친박 진영의 대권 주자가 없는 것 아닌가요?”
 
2016년 7월 14일 열린 ‘7·14 전당대회 2주년 만찬’에서 김 전 대표가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자리 참석자들 가운데는 “친노보다 친박이 더 싫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 반기문(潘基文) 유엔 사무총장을 친박 진영이 미는 대권주자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데요.
 
  “그분은 지금 친박이 아니잖아요. 외부 인사죠. 그분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 반기문 총장이 친박을 등에 업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겁니까.
 
  “그건 아직 판단을 못합니다.”
 
  — 최근 한 언론에 “뒤늦게 친박에 붙은 나쁜 놈들”이라는 말을 한 것으로 보도가 됐는데요.
 
  “‘뒤늦게’라는 표현을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제 말은 이런 뜻이었어요. 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을 위해서 온몸을 던져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잖아요? 박 대통령이 당선된 후에는 제 방문에 ‘내 역할은 끝났다’고 편지 한 장 써 붙이고 떠났습니다. 제가 대선 승리 후에 그리고 그 이후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추진하는 개혁 정책에 반대하는 일도 단 한 번 없었어요. 비판한 일도 없고요. 그리고 당 대표가 되고 난 다음에는 최선봉에 서서 박 대통령의 개혁 추진 법안에 다 총대를 멨어요.”
 
  김 전 대표는 이 대목에서 할 말이 많은 것 같았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그런데 왜 내가 비박이 돼야 합니까? 그렇잖아요? 이해를 할 수 없는 거예요. 그때 선거 총책임 맡았던 사람을 ‘너는 친박 아니다’ 하는 게 무슨 말입니까. 그게 저뿐만 아닙니다. 비박이라는 것은 언론이 만든 용어인데 지금 비박으로 분류되는 많은 의원들이 2012년 대선 때 안 뛰었습니까. 제가 대표 시절 제 비서실장을 했던 김학용 의원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때부터 친박이었어요. 지금까지도요. 그런데 비박으로 분류가 돼요. 같은 동지들끼리 같이 노력해서 정권을 잡았으면 같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사람들한테 친박 아니라고 펜스 쳐 놓고 ‘너희들은 여기에 들어오지 마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옳지 않은 사람들이죠.”
 
  — 그 사람들이 권력을 독점한다는 거죠?
 
  “권력을 독점하려는 옳지 않은 사람들이죠. 거기서 친박이니, 비박이니 분열이 온 거고요.”
 
  — 그런 상황이 앞으로도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그렇겠죠. 지금 비박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 몇몇이 과격하게 발언하는 사람이 있긴 해요. 하지만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 아닌가요?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 밀어내요.”
 
  — 대표 시절에 청와대와 소통이 안 된 이유 중 하나로 그런 분들이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자꾸 저에 대해 모함이나 하고 …. 그렇게 해서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고 했습니다.”
 
  — 구체적으로 그런 사례를 하나만 든다면요.
 
  “대통령 선거 승리 2주년 되는 날인 12월 19일 소위 말하는 친박 중진들 7명이 청와대에 모여서 대통령하고 비밀 자축연을 벌였다는 거 아니에요? 그게 있을 수 있는 일입니까.”
 
  — 당시 전혀 연락을 받지 못했나요.
 
  “아예 몰랐어요. 그 비밀 만찬 몇달 뒤인가 신문에 난 걸 보고 알았습니다 .”
 
 
  문재인, 안철수 그리고 나
 
2016년 7월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아주대학교에서 열린 ‘차세대 글로벌창업 무역스쿨 특강’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과 마주쳐 인사를 나누고 있는 김 전 대표.
  —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文在寅) 전 대표는 어떤 강점이 있어 보입니까.
 
  “제가 볼 때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좋은 사람이긴 한데 이념이 우리와 다르죠. 패권주의에 편승했고요.”
 
  — 패권주의를 주도한 게 아니라 편승했다고 보는 겁니까.
 
  “주도도 했고 편승도 한 겁니다. 어쨌든 친노패권주의자들의 대표 선수가 됐지만 성공할지는 두고 봐야 합니다.”
 
  — 안철수(安哲秀) 국민의당 대표는요.
 
  “제가 상대방들을 얘기하기가 좀 그렇네요. 안철수 대표는 우리 정치권에서 상대적으로 너무 순진한 것 같아요. 물론 국민이 보기에는 그 점이 강점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는 안정감입니까.
 
  “안정감도 있고 사심 없이 일을 추진하고 언제든 마음을 비울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아닐까요?”
 
  — 김 대표를 잘 아는 사람들은 김무성 하면 안정감과 추진력을 떠올리지만 아직 많은 국민들에게는 그런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돼 있지 않은 것 같은데요.
 
  “그동안 변명 같지만 제가 저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않았습니다. 친박 등에서 제가 안 한 것도 했다고 하는 등 저에 대한 모함이 난무했으니까요.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의 재능이나 명성을 드러내지 않고 참고 기다린다는 뜻)라는 말이 제 상황을 잘 표현하고 있죠.”
 
   — 그런 모함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해명도 하고 반박도 하고 할 시점 아닌가요.
 
  “이제는 해야죠.”
 
  — 차기 대선의 최대 이슈는 아무래도 격차 해소 문제가 되겠죠?
 
  “시대정신은 격차 해소 문제가 분명합니다. 격차 해소를 위해서는 발 빠르고 선행적인 제도 개선과 입법이 필요한데 지금 우리 국회는 무기력하고 결과가 도출이 안 되는 장이 돼 버렸습니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권력을 분산시키는 개헌이 전제가 안 되면 아무것도 안 돼요.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이 급선무입니다.”
 
  — 개헌 방안 중에서 국회 양원제에 대해서는 고민해 본 적이 없습니까.
 
  “개헌의 방향이 양원제로 가든 내각제로 가든 이원집정제로 가든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꾸 그런 데에 매달리면 개헌이 될 수 없어요. 야당과도 연정을 할 수 있는 권력 분산이 가능한 체제로의 개헌이 시급합니다.”
 
  —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가장 시급한 것은 권력 분산을 위한 개헌이다?
 
  “네. 연정체제가 가능한 개헌이 돼야죠.”
 
  — 대표께서 집권한다면 호남 총리를 기용하겠다고 했는데 확실한 약속입니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권력도 나눠야 하고요.”
 
  — 박근혜 대통령도 초대 내각을 구성할 때 그렇게 했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 박근혜 정부 초기 내각 구성 때 그런 생각을 전달하지 않았습니까.
 
  “그럴 기회도 안 줬지만 저는 저대로 제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해 정치와 거리를 두고 떠나 있었으니까요.”
 
 
  경제적 지향점이 비슷한 사람들
 
지난해 7월 30일 미국을 방문 중이었던 김 전 대표가 미국 뉴욕을 방문 중에 UN 본부를 방문해 반기문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 격차 해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름대로의 복안은 있습니까.
 
  “저는 그동안 보수우파의 아이콘처럼 돼 있었는데 안보에 있어서는 그 노선을 계속 견지할 생각입니다. 경제에 있어서는 양극화로 인해 어려운 생활을 하는 국민들에게 좀 더 배려와 기회를 부여하는 정책을 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다소 중도 쪽으로 정책을 만들어 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정사회와 갑질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 김종인 전 더민주 대표의 경제민주화와 비슷한 겁니까.
 
  “다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뜻은 다 똑같은데 방법에 있어서 좀 더 과격하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 경제 문제에 관한 한 김종인 대표와 생각이 비슷하다?
 
  “양극화 해소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 손학규(孫鶴圭) 전 대표와도 경제 문제에 관한 한 지향점이 비슷한 것 같은데요.
 
  “‘나는 이 길로 가야 한다, 너도 이 길로 따라와라’ 이러면 안 되고요. 우리가 모여서 다 같이 이야기하면 원론적인 이야기는 다 같을 겁니다. 적용하는 구체적 정책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을 단계를 밟아서 하자고 하면 합의를 끌어낼 수 있다고 봅니다.”
 
  — 같은 정치적 결사체가 아닐지라도요?
 
  “네. 그런 뜻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 결사체로 발전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지금 우리 사회의 격차 문제를 이대로 놔두면 안 됩니다.”
 
  — 격차 해소 문제에 관한 한 대표께서는 소위 금수저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주저되지 않습니까.
 
  “격차 해소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건데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게다가 저를 꼭 금수저라고 말할 수도 없는 거고요. 문제는 소위 수퍼 부자들의 탐욕이에요. 그 사람들의 탐욕이 낳는 문제가 너무 심각해요.”
 
  — 그래서 그런 탐욕을 막는 방법으로 세금을 더 걷자고 하는 것 아닌가요.
 
  “세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떠나려고 하겠죠. 부의 유출일 뿐만 아니라 이미 유럽에서도 실패한 정책입니다. 우리가 그런 실패를 따라갈 필요가 없죠.”
 
지난해 12월 18일 있었던 고 이만섭 전 국회의장의 영결식에서 김 전 대표와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가 나란히 앉아 있다. 김 전 대표는 문 전 대표에 대해 “나와는 이념이 다른 사람”이라고 했다.
  — 증세는 곤란하다는 말인가요.
 
  “증세는 마지막 수단이에요. 그 전에 세금 징수 과정에서 일어나는 부정을 막고 낭비성 예산의 집행을 바로잡는 게 먼저입니다. 무분별한 조세감면 혜택도 줄이고요. 그렇게 해서도 안 될 때는 증세를 해야 합니다.”
 
  — 최근 북한 핵심 계층의 탈북이 이어지고 있는데 북한의 붕괴 사태 등을 보면서 남북 통일을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요.
 
  “저는 통일은 꼭 되어야 하고, 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일부러 통일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독일의 예를 놓고 볼 때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통일이 이루어졌는데요. 그럴 때를 대비해서 통일 준비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통일을 억지로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억지로 하면 전쟁인데 전쟁이 나서는 안 되죠.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2500만명의 북한 사회에 어떤 변화가 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어요. 1인 독재 철권통치의 구조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대비를 해야 합니다.”
 
  — 통일될 때까지는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필요하죠. 대신 법 적용을 좀 탄력적으로 해야겠죠.”
 
  — 지금까지 정치 역정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입니까.
 
  “19대 공천 못 받았을 때가 제일 힘들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탈당해서 당을 만들어가지고 대항을 하고 싶었지만 대통령 선거를 몇 달 앞두고 우파 분열이 되면 대선 필패라는 생각 때문에 탈당을 접고 백의종군했죠. 나 혼자라면 괜찮았지만 함께 탈당의 뜻을 가지고 있던 20여 명의 동지들을 설득하는 것도 힘들었죠. 당시 저는 친박이었지만 나머지는 거의 다 친이였거든요. 당시 억울하고 힘들기는 했지만 지금의 서운함을 떠나서 보수 우파의 분열을 막고 승리했다는 점에서 그때의 결단은 지금도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년 대선에 나가게 되면 자신의 최고 아킬레스건이 뭐가 될 것 같습니까.
 
  “4·13 총선 참패 책임이 되지 않을까요?”
 
  김 전 대표의 그 대답에 기자가 “제가 보기에는 부자라는 점일 것 같은데요”라고 했다. 김 전 대표는 “아이고, 참” 하며 웃었다. 그러면서 곧 정색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제 정치활동의 시작은 84년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에서였습니다. 그 서슬 퍼런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거리에서 최루탄을 맞으며 민주화 투쟁 대열에 섰던 사람입니다. 제가 부잣집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 지금까지 저는 단 한 번도 편안한 길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내년에도 그는 편안한 길을 선택할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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