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토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金鍾仁) 대표 : 월간조선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종인(金鍾仁) 대표를 만난 날은 청와대에서 박근혜(朴槿惠)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의 만남이 있던 13일 오후였다. 공교롭게 시간도 비슷했다. 김 대표에게 “지금 진행 중인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의 만남에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보는가”고 물었을 때 “그냥 만나는 게 성과지, 뭐”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돌아왔다.

지리멸렬해 가던 더민주의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라는 구원투수를 금년 1월 15일부터 맡아 3개월여 만에 원내 제1당을 만들었지만 4·13 총선 승리를 이끈 김 대표에 대한 당내 반응은 그가 박 대통령과 여야 3당 대표와의 만남에 대해 보인 시큰둥함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당 대표 추대니, 경선이니 하는 논란에서 알 수 있듯 일부에서는 그를 ‘용도폐기’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광화문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 더민주의 문제점, 킹메이커 역할을 포기한 이유, 비례대표 파동, 문재인 전 대표 등 대선 주자들에 대한 생각, 개헌에 대한 입장, 김 대표의 앞으로의 역할 등에 대한 속내를 들어 봤다. 인터뷰 중 김 대표의 휴대전화 벨이 몇 번 울렸는데 그는 통화를 마친 후에도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죠?” 등의 되물음 없이 앞서 하던 이야기를 정확히 이어 나갔다.

— 12일 더민주 당선자 워크숍이 광주에서 열렸고 당 대표로서 참석했는데 정치 지도자들이 국립현충원을 찾듯이 광주를 찾아가 ‘광주 정신의 계승’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광주정신은 어떤 겁니까.

“5·18 민주화 운동을 광주의 정신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 ‘이전에 있었던 선거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면 집권할 수 없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대표께서 생각하는 이번 총선의 의미는 뭐라고 봅니까.

“여당을 심판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 야당도 심판 받은 것 아닙니까.

“선거에서 야당이 심판 받았다는 것은 맞지 않는 이야기죠. 야당이 국정을 이끄나? 선거는 기본적으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여당을 심판하는 겁니다.”

— 2야 구도로 치러진 호남에서는 더민주가 심판 받은 것 아닌가요.

“호남에서 국민의당이 승리했는데 제가 더민주에 올 때부터 호남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모르고 온 게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이 떠나 버리면 그것을 돌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소나마 노력을 해서 변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것 역시 별로 효력이 없었고 오히려 더 나빠졌습니다.”

— 호남에서의 패배에는 김 대표의 책임도 있다는 당 내의 시각이 엄존하는데요.

“호남에서 진 사람들은 패배의 구실을 찾아야 하니까 누구한테 핑계를 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번 총선에서 전국적으로 제 1당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호남에서의 패배만으로 선거 전체를 비하하는 것은 정치집단으로서 옳지 않은 태도로 봅니다.”

— 김 대표의 ‘셀프 공천’이 호남 패배의 한 요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저한테 책임을 지우기 위해 ‘셀프 공천’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비례대표 추인 과정에서 벌어진 중앙위원회 사태 자체가 호남의 민심을 나쁘게 만들었어요. 저는 당의 비대위를 관리하는 자격으로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비대위에서 해 나가는 것을 따라 주는 것이 원칙 아닌가요? 여기에 반기를 든 것이 중앙위원회 사태 아닙니까. 중앙위를 장악하고 있는, 과거의 패권을 쥔 사람들이 ‘셀프 공천’을 핑계로 첫째 날에는 중앙위를 파행으로 이끌었고 둘째 날에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수습한 것처럼 모양을 갖추면서 자기들 뜻대로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그 사람들이 아직도 당을 장악하고 있다는 인상을 광주 호남에 준 겁니다.”

나름대로 할 일과 생각이 있다

2016년 5월 12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20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 참석한 김종인 대표.

— 더민주 내의 ‘친노(親盧) 패권주의’가 뭡니까.

“그쪽의 세력이 모든 것을 자기 의사대로 나가려 하기 때문에 패권주의라 하는 것이죠. 그 사람들이 ‘셀프 공천’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더민주에 오게 한 첫날 문재인 대표가 저를 찾아와 ‘비례대표 2번을 하시라’고 했습니다. 제가 ‘셀프 공천’을 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 저는 제 책임하에 선거를 이끌어 가야 했기 때문에 구차하게 일반국민의 눈을 속이기 위해서 10번, 12번 뒷번호로 저를 배치하는 구차한 짓은 하기 싫어서 2번을 맡은 겁니다.”

—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시절 지지자 결집을 위해 당선 가능 비례대표 끝번을 받은 사례가 있는데요.

“저는 제 스타일대로 합니다. 왜 남의 흉내를 냅니까.”

— 중앙위에서 벌어진 비례대표 파동은 당시 양산에 있던 문 전 대표의 묵인 또는 지시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지요.

“저는 모르겠어요. (문 대표가 양산에서 그렇게 하라고) 버튼을 눌렀는지, 안 눌렀는지는 모르는데 하여튼 중앙위가 열리는 이틀 동안에 당 내부뿐 아니라 외부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있었던 것은 틀림없다고 봅니다.”

— 4·13 총선 후 김 대표를 더민주 대표로 또 추대해야 한다, 경선해야 한다는 등의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김 대표께서 추대나 경선에 관한 생각을 주변에 밝힌 적이 있습니까.

“저는 누구한테도 당 대표 자리에 대해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몹시 불쾌했는데 왜 가만히 있는 사람을 두고 추대하니 마니, 경선하니 마니 자극을 하냐 이겁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은 정치 도의에도 맞지 않고 예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전당대회 시기를 연기해 달라고 요청한 바도 없어요. 저를 가만히 놔두면 제가 다른 얘기를 안 하는데 자꾸 자극을 하니까 제가 불쾌하다는 등의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 혹시 김 대표 주변 사람들이 김 대표를 당 대표로 추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은 아닙니까.

“저는 주변 사람이 없습니다. 이번에 비례대표로 당선된 최운열 서강대 교수도 제 주변사람이 아니에요. 저는 추대를 해서 대표를 하라고 해도 안 합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고 할 일이 있는데 그 자리가 뭐 대단하다고. 저는 매일 공식일정에 얽매여 있는 일이 즐겁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 나름대로의 생각과 할 일이 뭡니까.

“앞으로 두고 보시면 알게 됩니다.”

—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해 “작문(作文)하는 것이 버릇인 것 같다”는 말까지 했는데요.

“우리 둘의 대화가 알려지는 것까지는 좋은데 서로 대화하지도 않은 내용으로 말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표현을 썼던 겁니다.”

—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문 대표가 4·13 총선 후 저를 만났을 때 수권비전위원회를 만들어서 저한테 맡아 달라고 했다는 말을 언론에 했는데 저는 그런 얘기를 들어 본 적도 없어요. 제가 비대위에서 당을 위기에서 구출하기 위해 와서 한 번은 했지만 제가 그 사람들 요청에 따라다닌다고 하는 것은 예의상으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더민주에 들어갈 때 이용만 당할 것이라는 예상은 안 해 봤습니까.

“제가 그렇게 어리석게 행동하진 않아요. 그런 생각(김 대표를 이용만 할 생각)을 했다면 큰 착각을 한 겁니다.”

내가 직접 대통령 후보로 나서는 일이 가능한 일인가?

— 중앙위에서 비례대표 파동이 났을 때 주변에서는 대표직을 던지는 것으로 예상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제 생각의 85%쯤은 그 방향으로 갔었죠.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는 더민주가 비대위를 만들고 저한테 당을 구출해 달라고 해서 왔는데 중앙위가 이걸 거부를 하고 첫날은 난장판을 만들었어요. 그러려면 비대위가 왜 필요합니까. 중앙위에서 모든 걸 관리하면 되지. 그래서 며칠 동안 그만둬야 하나를 고민했던 겁니다.”

— 85%까지 갔던 사퇴 생각은 왜 접었습니까.

“선거가 얼마 안 남았고 공천도 끝난 상황이었잖아요. 국민들에게 당을 바꿔서 수권정당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했기 때문에 급작스레 당을 버리는 것은 무책임하지 않나 해서 참아 보자고 했던 겁니다.”

— 중앙위 사태 때도 정체성 이야기가 나왔는데 김 대표가 당에 들어가서 체험한 더민주의 정체성은 어떤 거였습니까.

“더민주의 정체성에 대해 확실하게 설명을 해 달라고 해도 설명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제가 보기에는 별다른 정체성도 없었고요. 정당이라는 것이 국민에게 표를 얻어야 집권당이 되는데 국민에게 맞추는 게 변화죠. 바꿔야죠. 그러지 않으면 더민주가 집권 여당이 될 가능성은 없습니다.”

— 정체성은 없고 패권만 추구한다?

“그렇게 보였어요.”

— 집권을 하려면 당의 변화와 함께 대통령 선거에 나갈 후보의 상품성도 중요한데 “문재인, 박원순 포함 대통령감이 없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그분들도 자기들이 원하면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있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이 대통령 후보로서 적절한 사람이다, 아니다 하는 것은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다르다고 봅니다.”

— 현재로서는 여러 후보 중에 그냥 한 명일 뿐이라는 건가요.

“지금 여론조사상으로 보면 그분들이 대선 후보 5~6명 안에 들어 있잖아요?”

— 그렇다면 대통령감은 된다는 말인가요.

“대통령감이라는 것은 별개의 사항입니다. 미국의 트럼프를 대통령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초기에는 1%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40% 넘는 지지를 받고 있잖습니까. 저는 다음 대통령 후보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주 만납니까.

“개별적으로 별로 접촉하는 사이는 아닙니다.”

— 마음속에 두고 있는 대통령 후보가 따로 있는 것 아닙니까.

“제가 과거 대선에 출마했건 대통령을 했건 현직이건 다 선거에 뛰어들기 전에 접촉들을 많이 해서 잘 아는 점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분들 중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의 생각과 되었을 때 생각, 대통령 당선자가 된 이후의 생각이 일관적인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 일관적이지 못해서 초래되는 결과는 무엇이었나요.

“결과적으로 그분들이 성공을 못하더군요. 정당이나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정직하게 지켜야 합니다. 국민들이 뽑아 줬는데 그 다음 모습이 국민의 기대에 어긋나 보이면 결국 성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다시는 제 스스로 실망하지 않고 국민에게도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 더 이상 대통령 후보에 대한 지원을 안 하겠다는 말을 한 겁니다.”

— ‘킹메이커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말이 그런 뜻으로 나온 거군요. 그런 발언이 직접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뜻으로 읽힐 수도 있었고 사실 그렇게 읽히기도 했습니다.

“그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 잘 알지 않습니까?”

— 혹시 기회가 오면 도전하겠다는 뜻입니까.

“그런 기회가 온다고 하는 자체가 가능하겠느냐는 얘기죠.”

나는 1차 임무는 완수했다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의원이 2016년 1월 15일 오전 문재인 대표와 함께 기자회견을 위해 국회 대표실에 들어서고 있다.

— 내년 대선에서 더민주의 집권이 가능할까요.

“저는 1차적으로는 제 임무를 완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이 수권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이번 총선에서 일단 1당 자리를 차지했으니까 그걸 발판으로 앞으로 남은 1년 반 동안 더민주가 이번 선거에 내세운 약속을 추진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야지요. 그럼으로써 이 사람들이 집권하면 바로 뭐를 할 수 있는 정당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을 때 수권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바뀌어야겠죠.”

— 내년 대선의 최대 이슈는 뭐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정치, 민주주의, 남북관계, 안보 이런 등등의 문제가 있지만 우리가 가장 간과를 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는 경제문제라고 봅니다. 전 세계적으로 선거 때 가장 큰 이슈는 국민의 생활과 관련한 것이기 때문에 역시 내년 대통령 선거도 경제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김 대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경제민주화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시장경제에서 모든 것을 시장 스스로 해결할 수는 없어요. 시장경제의 공정성 문제가 가장 중요한데요. 그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여러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고 그 제도적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와 의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한 나라들에서 시장경제의 결과로 나타난 경제세력이 정치 등 사회 전체를 지배하는 형태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경제의 민주화를 해야 시장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고 양극화 현상 해소도 가능하다는 겁니다.”

— 반(反)재벌 정책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나쁜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하는데요. 그렇게 비치는 데는 언론도 책임이 있고요. 경제민주화는 반재벌 정책이 될 수 없습니다. 부의 편중 방지 등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가 만들어지면 재벌도 예외 없이 그 룰을 따르면 되는 겁니다. 그런 룰이 만들어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마치 그걸 하면 경제가 난리가 난다는 그런 말들을 하는 거죠.”

— 한 인터뷰에서는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표현도 했더군요.

“경제민주화와 다른 뜻이 아닙니다. 시장경제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정부가 제도적인 방법으로 시장경제를 보완하자고 하는 것이 사회적 시장경제입니다. 자율시장의 원칙과 사회조화의 원칙이 일치하는 것을 가르쳐서 사회적 시장경제라고 하는 건데 각종 제도가 구비돼야만 사회조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 사회주의 경제와 혼동이 될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사회’라는 용어 때문에 그랬는데 요즘은 다 잘들 알고 있어요. 포용적 경제성장, 포용적 자본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건데 포용적 성장은 모두가 다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죠. 그런데 경제민주화를 안 하면 포용적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 경제민주화 정책을 추구해서 경제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것 아닙니까.

“저는 노태우 대통령 때 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노 대통령 집권 2년 후에 경제정책을 맡아서 시도를 해 봤는데 시간도 짧고 저항도 심해서 냄새만 풍기다가 말았습니다. IMF 사태 이후에도 경제민주화를 제도화할 절호의 찬스가 있었는데 놓쳐 버렸고요. 최근 국제사회 연구기관에서 나오는 결과가 지나친 양극화가 성장을 저해한다고 말하잖아요. 시기가 늦기는 했지만 그래서 다음 정권이 중요합니다.”

새누리당과 더민주의 차이? 똑같다

— 새누리당에도 있어 봤고 더민주에는 지금 대표로 있는데, 두 당의 다른 점은 뭡니까.

“차이점보다는 같은 점을 말할 게요. 제가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할 적에 경제민주화 조항 등을 넣는 등 정강정책을 바꿨어요. 그걸 의원총회에 내밀었는데 반론이 나올 줄 알았죠. 그런데 만장일치로 통과했습니다. 그때 새누리당은 80석을 얻느니, 90석을 얻느니 하며 위기감에 빠져 있을 때였어요. 총선에서 선전하고 나니까 수정한 정강정책에 대해 반론이 나오기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의 더민주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진 거죠. 더민주가 이번 선거에서 제1당이 되고 나니까 호남 패배를 얘기하면서 책임전가를 하려고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두 당의 아주 똑같은 점이죠.”

— 당이라는 게 그런 걸 알면서 왜 문재인 전 대표의 요청을 수락했나요.

“처음에 문 대표가 저한테 와서 도와달라고 간청할 때 이런 얘기를 했어요. ‘나는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상황이 바뀌면 딴소리를 하니까’라고요. 그러니까 문 대표가 자기는 절대 안 그렇고 자기가 저항세력을 모두 막아 주겠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말도 100% 믿지는 않았어요. 문 대표와 함께 온 사람이 보기에 제가 문 대표의 말을 안 믿는 눈치라고 생각했는지 약속을 지키겠다는 서약서를 쓰자는 얘기까지 하더군요.”

— 작성했나요.

“안 했어요. 하면 뭘 해요. 정치인들 서약서 써 놔도 안 지키는 걸 제가 할아버지(가인 김병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때부터 비일비재하게 봐 왔는데요. 사실 저는 가족들에게 정치를 안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지내던 상황이었어요.”

— 언제, 왜 그런 약속을 했습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이죠. 제가 편하려면 이런 짓(정치)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제 행동에 속박만 주는 것이 정치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약속을 했던 거죠.”

— 그런데 왜 다시?

“문 대표가 우리집에 찾아왔을 때 집에 일하는 분이 따로 없으니까 아내(김미경 이화여대 명예 교수)가 차도 가져다주고 하면서 우리 얘기를 다 들었나 봐요. 정치를 하지 말라고 하던 아내가 그때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저한테 ‘정치를 다시 할 거면 시간 끌지 말고 빨리 결심하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3일 만에 더민주에 가기로 결심을 한 거죠.”

— 부인이 김 대표에게는 최고의 정치적 조언자입니까.

“우리 집사람도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래도 제 옆에서 오랫동안 제가 하는 일을 지켜봐 왔으니까 그런 판단을 한 것 같아요. 어쨌든 그래서 다시 시작하게 된 겁니다.”

— 더민주로 갈 때 측근 등 정치적 조언자를 한 명도 데려가지 않았습니까.

“단 한 명도요. 그런데 저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김 대표가 당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을 보니까 누구의 조언을 받고 있나 보다’ 하고 추측하면서 억울하게 당한 사람이 박영선 의원이에요.”

— 더민주 공천 당시 공천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손’ 중 한 명으로 박 의원이 꼽혔었는데요.

“박 의원하고 저하고 가까우니까 제가 뭐 박 의원 얘기를 듣고 다 하는 것처럼 모함하는 사람이 많았죠. 제가 공천관리위원들을 임명할 때 정치권과 관련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어요.”

— 문재인 전 대표가 대표께 내년 대선까지 당을 책임져 달라고 부탁한 것은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지난번 중앙위 사태 때도 우리 집에 와서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 문 전 대표가 김 대표와 한 대화를 바꿔서 전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요.

“사람은 상황에 따라서 바뀌는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비례대표직 유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판단

— 처음에 더민주에 갔을 때 당의 문제는 뭐라고 봤습니까.

“저는 더민주가 항상 자기 나름의 정체성이라는 것을 극복 못하면 수권정당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 없는 정체성을 어떻게 극복합니까.

“자기들이 있다고 하는 정체성이 있어요. 운동권 시각이라고 할까요. 남북관계에서 6·15선언이나 햇볕정책 등에 대해 제가 조금 다르게 얘기를 하니까 비난하는 소리가 나오잖아요. 시대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면 우리가 전략전술을 놓고 얘기를 할 적에 전략적인 목표는 평화통일에 놓고 전술은 상황에 따라서 바뀔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이걸 고정해 놓고 바꾸지 않으려는 것을 당의 정체성처럼 생각해요.”

— 사고가 특정한 시기에서 화석처럼 굳어 버렸다는 거죠?

“예를 들어 과거 김대중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주장했던 것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양 만들어 버려요. 세종대왕이 훌륭했다고 해서 그분이 당시 가졌던 가치가 지금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잖아요?”

— 더민주는 화석처럼 굳어 버린 사고를 버리고 바뀌어야 한다?

“무조건 변화하라는 게 아니라 시대에 맞춰서 변화해야 한다는 거죠. 저는 어느 정당이 수권을 하려면 과거부터 내려오는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힘들다고 확신합니다. 독일의 사민당을 보면 선거에 몇 번 패하다가 보니까 이 사람들이 도저히 과거의 정당정책을 가지고는 집권이 불가능하다 생각해서 정강정책을 바꾸고 집권했잖아요. 영국의 토니 블레어가 정권을 잡은 것도 노동당의 고약한 정당정책을 바꿔서 가능했던 것 아니겠습니까. 시대가 바뀌고 유권자들의 사고가 바뀐 것 같으면 정당도 적응을 해야지, 그러지 않은 정당은 집권이 불가능해요. 일본의 사회당이 몰락한 것도 시대상황 변화에 적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잖아요.”

— 처음부터 더민주를 시대상황 변화에 발맞추는 정당으로 탈바꿈시킬 자신이 있었던 겁니까.

“당의 분위기와는 별개로 국민을 상대로 하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 대표를 그만둬도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까.

“그건 모르죠. 제가 대표를 안 하면 제 책임이 아니니까요.”

— 더 이상 앞장서서 당의 변화를 이끌지 않겠다는 뜻인가요.

“제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거죠. 제가 의사라고 가정을 하고 응급환자를 치료하러 갔는데 응급처방 후 본격적인 치료를 하려면 메스를 대야 하는데 그걸 환자가 거부하면 더 이상 못하는 것 아니겠어요?”

— 비례대표는 계속 유지할 생각입니까.

“그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판단을 해야죠.”

운동권도 변할 것

2011년 12월 30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당시 위원장)이 김종인 대표(당시 위원)와 이야기하고 있다.

— 연립정부가 탄생할까요.

“불가능한 소리죠. 대통령책임제인데 어떻게 연립정부를 합니까. 대통령이 여소야대라 해서 나라를 못 다스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죠.”

— 개헌은 해야 합니까.

“87년 체제가 30년 가까이 가는데 5년제 대통령중심제는 일반 국민이 보기에 효율적이지 못하니까 권력구조의 변화를 생각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 지금이 개헌에 적절한 시기라고 보십니까.

“현실적으로는 굉장히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 정파의 입장에 따라서는 이원집정부제를 거론하는 집단도 있는데요.

“이원집정제라는 게 실현이 어려워요. 대통령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권력구조 개편을 원치 않습니다.”

— 4·13 총선에 대한 민심은 여야가 합치(合治)하라는 거였는데 여야 합치가 잘될까요.

“대통령의 자세에 달려 있습니다. 대통령이 여야를 상대해서 조화를 이끌어 나가면 협치가 가능할 것이고 독단적으로 처리를 하려 하면 야당이 따르지 않을 것이고요.”

— 대통령의 변화뿐만 아니라 19대 국회에서 무기력함을 보여준 정치권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치권 전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한쪽이 지나친 주장을 하면 조화를 맞출 수 없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19대 때 보세요. 청와대와 야당 사이의 완충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여당의 기능인데 그 기능이 제대로 작동했습니까?”

— 야당이 발목을 잡은 점도 있지 않습니까.

“책임이 없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야당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반대입니다. 물론 반대를 하다가도 표결에 참여하는 식의 야당 변화도 필요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국민들 입장에 서서 절대 해서는 안 될 것을 빼 놓고는 협력을 하는 자세도 필요하죠. 이걸 대통령이 잘 조정했어야죠.”

— 20대 국회에서 선진화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봅니까.

“지금은 여야 상황이 달라져서 각 정당이 선진화법에 어떤 자세를 취할지 모르겠지만 이 선진화법 자체 내용에도 문제가 있는 게 있습니다. 선진화법으로 인해 정부예산은 무조건 12월 2일에 통과되는 걸로 해 놓았기 때문에 예산심의가 졸속으로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분은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 총선 이후 더민주의 원내대표 경선과 원내부대표 임명 등의 행보를 보면 다시 ‘운동권 당’이 돼 가는 느낌을 주는데요.

“중심이 80년대 운동권이라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그것 때문이라면 크게 염려할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그 사람들이 정치에 들어온 지 벌써 15~16년이 돼서 시대 흐름에 맞게 많이 순화된 점도 있어요. 독일 사민당의 슈뢰더 전 총리를 보세요. 그분은 68학생운동 세대예요. 그러다가 정치에 입문했는데 그분이 오늘날의 독일 경제를 개혁을 통해 다시 일으켜 세웠잖습니까. 그분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사회주의 이념보다 독일과 독일 국민을 위한 길을 걸었습니다. 운동권 출신이라고 해서 시대 흐름에 맞는 정치에 적응을 못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 그게 ‘도로 친노당’의 이미지를 주니까 문제 아닌가요.

“물론 그런 식으로 이미지가 고착되면 수권정당이 될 수 없어요. 지금 당선자가 123명인데 그중 대다수는 더민주가 수권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느 한 계파에 몰입하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 더민주의 변화 조짐이라고 할까, 관료 출신인 변재일 의원을 정책위의장에 임명하는 등 최근 정책위 인사에서 전문가 출신을 중용했는데 우상호 원내대표와 협의한 겁니까.

“발표하기 전날 우상호 원내대표와 점심 먹으면서 배경 설명과 임명 이유를 설명했더니 동의했어요.”

— 협의가 아니고 통보를 한 거네요.

“뭐, 별로 이의는 없었으니까.”

4·13 총선과 87 대선 결과 유사

— 새누리당의 내년 대선후보는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최근에 와서는 50대 기수론도 나오고 하던데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 새누리당이 친박, 비박 이런 식으로 분당이 되면 더민주에서 김 대표를 따르는 분들과 그 세력 중 하나가 연합 내지 통합이 가능할 것 같습니까.

“새누리당이 갈라지게 될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 상상으로라도 그런 가정은 안 해 봤습니까.

“일각에서는 정계개편이 이루어지지 않겠느냐 하지만 우리나라의 정당이 고착돼 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지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 내년 대선을 앞두고 야권이 통합할 가능성은요.

“그럴 거였으면 국민의당이 안 생겼겠죠.”

— 그렇게 되면 대선에서 야권이 불리한 것 아닌가요.

“이번 총선을 보면 그건 모르는 거죠.”

— 표 결집 정도에 있어서 국회의원 선거와 대선은 다르지 않습니까.

“이번 총선을 87년 대선 결과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점이 있어요. 당시 여당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나왔고 야당에선 소위 ‘3김’이 나왔잖아요. 당시 노태우 후보가 36.8%, 김영삼 후보가 28%, 김대중 후보가 27%, 김종필 후보가 8%를 얻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정당투표를 보면 새누리 33%, 국민의당 26%, 더민주 25%, 정의당 7% 이렇게 나왔죠.”

— 수치로만 보면 상당히 유사하네요.

“대선까지 남은 1년 6개월 동안 3당이 어떻게 각축을 벌이는지에 따라 형태가 달라지겠죠.”

— 그 구도면 87년처럼 보수여당인 새누리당이 유리한 것 아닌가요.

“그러니까 새누리당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겠죠.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분열됐지만 야권연대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더민주가 의석수에서는 1당을 차지한 것을 유의 깊게 봐야죠.”

— 더민주가 내년 대선 승리를 위해서는 ‘친노 청산’이 우선돼야 한다고 보고 있는 거죠?

“옳고 그름을 떠나 그것이 일반 국민으로부터 배척을 받는 요인이니까요. 문 대표가 대통령 자리를 추구한다면 본인 스스로가 그거(친노 패권)에 대한 자제력을 발동해야 한다고 봅니다.”

— 자제력 발휘가 쉬울까요.

“그거야 본인 사정이지, 뭐.”

— 더민주 손혜원 당선자가 김 대표를 겨냥해 “친노를 말살시키고 종편만 보는 것 같다. 노인은 생각을 잘 안 바꾼다”고 했는데요.

“전 종편을 볼 시간이 없어서요. 뭐 손혜원 당선자가 문재인 대표를 각별히 생각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입장에서 얘기를 한 거라고 봅니다.”

— 2012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한 후 사실상 결별했는데 박 대통령에 대한 감정이 안 좋습니까.

“감정이 안 좋고 그럴 것은 없어요.”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아쉬움만

— 서운한 건가요.

“제가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야겠다는 사유가 제 나름 있었죠. 경제민주화를 선거 내내 외쳤는데 그런 것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아쉬움이 있을 뿐입니다.”

— 노태우 대통령을 시작으로 많은 분의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들었는데 정말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안 된 분은 누가 있습니까.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봐야겠다고 노력을 했던 것은 사실인데, 아쉽죠.”

— 8월 말이나 9월 초에 예정된 더민주 전당대회 후의 계획은 있습니까.

“그때 가서 결정을 해야죠.”

— 내년 대선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도 정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그때 가서 판단을 해 봐야죠. 다음 대선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은 틀림없어요. 다음 대통령마저 실기하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현상 유지냐, 퇴보냐 하는 기로에 서게 될 겁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인터넷상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13일 광주에서 한 “뒤로 숨지 않고 역사 대열에 앞장서겠다”는 발언이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이라는 해석을 달고 소개되고 있었다.

다시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 박 시장이 오늘 광주에서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을 했는데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거야 뭐 본인의 자유죠. 대통령 하겠다고 생각하면 후보로 나오는 거지, 뭐.”

— 가능성을 높게 보십니까.

“가능성이요? 지금 현재로 보면 우리 당의 대권후보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여럿 있잖아요. 문재인 대표, 박 시장뿐만 아니고 안희정 충청남도 도지사 같은 사람도 갑자기 나올 수도 있고 김부겸 의원도 있고요. 하여튼 여론조사상에 나타나는 후보들이 여럿 있으니까 그중의 한 분으로 나올 수도 있는 거죠.”

— 아까 말한 대로 거론되는 여럿 중에 한 분일 뿐이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죠.”

— 박 시장을 따로 도와줄 생각은 없고요.

“아이, 나는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의 격전을 치렀던 대통령 선거 중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을 정확히 예측했다는 김종인 대표. 그가 예측하는 야당의 대통령 후보 또는 대통령 당선자는 기존의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어감상 그랬다.⊙

(녹취=박건영 월간조선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