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스피스 병동에서 환자 2000명 임종 지켜봐, “죽음 너머까지 준비할 수 있는 임종문화 필요”
⊙ 10년째 아프리카에서 의료시설 개선하고 의료인력 양성하고 있는 아프리카미래재단 대표도
맡고 있어
⊙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을 진료했지만, 그 세대가 지나면 결국 원점…
현지 의료인력 양성 절실”
朴相恩
⊙ 58세. 고려대 의대 졸업. 前 고신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
⊙ 現 샘병원 대표원장, 아프리카미래재단 대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
⊙ 10년째 아프리카에서 의료시설 개선하고 의료인력 양성하고 있는 아프리카미래재단 대표도
맡고 있어
⊙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을 진료했지만, 그 세대가 지나면 결국 원점…
현지 의료인력 양성 절실”
朴相恩
⊙ 58세. 고려대 의대 졸업. 前 고신대 의대 신장내과 교수.
⊙ 現 샘병원 대표원장, 아프리카미래재단 대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
한국인 10명 중 7명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그만큼 청결히 관리된 죽음이 흔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죽음 너머라면 어떨까. 우리는 거기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걸까. 박상은 원장을 만나러 가며 든 생각이다. 박 원장은 안양 샘병원의 원장으로서, 지난해부터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들과 의료협력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미래재단(Africa Future Foundation)의 상임대표이기도 하다. 신장내과 전문의 출신으로, 의료봉사재단부터 정부 관련 조직에까지 관여하고 있으니 의사로서는 꽤 다양한 경험을 해 온 셈이다.
평양에서 시작해 아프리카로
만나자마자 대뜸 ‘왜 하필 아프리카를 택했는지’ 물었다. 그는 ‘북한’ 이야기를 꺼냈다.
“1998년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정권은 나선지구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었어요. 기업과 사람들이 들어갈 테니 의료 인프라를 갖추려 했지요. 의료인 확충을 도왔습니다. 나선지구에서 일할 의사들을 모집하고, 두만강에 가서 의사들을 훈련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막상 나선지구가 개방되자 의사를 들이려는 계획을 북한이 취소했어요. 주민들을 단속하려는 이유였습니다. 대신 평양으로 들어갔어요. 평양의과대학병원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7번 방북했어요.
2008년 박왕자씨 사건이 터지면서 이마저도 중단됐습니다. 마침 샘병원은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참이었어요. 아프리카에 있는 스와질랜드라는 나라에는 의과대학이 한 곳도 없습니다. 한국인 선교사가 스와질랜드 정부로부터 의대 설립 허가를 받아서 이를 도울 한국 내 병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희와 연락이 닿았지요. 이때 처음 아프리카에 가 봤습니다. 2006년의 일이었지요. 전 국민의 45%가 에이즈(AIDS)에 걸려 있는 곳이었습니다.”
2007년 설립된 아프리카미래재단은 말라위, 우간다, 잠비아, 짐바브웨, 탄자니아, 마다가스카르 등 6개국에서 에이즈퇴치 사업과 함께 모자보건 사업, 병원현대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지 이제 10년째인데, 가장 큰 성과는 무엇입니까.
“희망을 발견한 겁니다. 아프리카의 환경은 열악하지만, 순수하고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고 교육 여건만 갖춰지면 한국 못지않은 나라가 될 거라 믿습니다.
저희는 모자보건 사업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말라위와 에티오피아 두 곳에서 모자보건 사업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말라위’를 6년째 해 오고 있지요. 잠비아에서는 산과클리닉, 아동클리닉을 만들고 지역거점 병원의 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사실,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정확히 조사한 인구 데이터 자체가 없어서, 처음부터 저희가 인구통계를 내야 합니다. 어느 집에 가족이 몇 명이고, 아이가 몇 명인지 가구조사부터 해야 하는 식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한국 젊은이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젊은 세대를 약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막상 같이 일해 보니 상당히 진취적이에요. 저희 세대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글로벌 감각도 갖추고 있고, 자존감이 높습디다.”
“결국은 정치지도자가 국가미래 좌우”
—앞으로도 모자보건 사업을 중점 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인지요.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 점을 느꼈습니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을 진료했지만, 당시의 그 세대가 지나면 잊히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진료를 하며 시혜를 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곳의 사람들을 훈련시켜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메디컬 서비스’에서 멈추지 말고 ‘메디컬 에듀케이션’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식량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식후에 약 복용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말라위, 우간다에서 농업 쪽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농장을 운영하면서 농사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서 진행 중인 모자보건 사업은 산모들에게 식이를 제공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중 가장 마음이 가는 나라가 있는지요.
“말라위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하트 오브 아프리카(Heart of Africa)’라고 부릅니다. 가장 뜨겁다는 얘깁니다. 제가 가 본 13개 나라 중에서 말라위가 가장 사정이 열악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아프리카의 의료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라마다 편차가 큽니다. 르완다는 인종청소 등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요. 훌륭한 정치지도자들이 들어선 후에는 부패를 척결하려 애쓰는 등 나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짐바브웨는 한때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살았던 나라입니다. 세계 30위권의 부국이었어요. 짐바브웨의 의과대학이 서울의대보다 좋았습니다. 지금도 희토류 등이 많은 자원 부국이긴 하지요. 무가베 정권이 집권을 계속하며, 경제봉쇄를 겪은 결과 현재는 가장 못사는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결국은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미래 지도자인 젊은이들이 올바른 교육과 가치관을 갖추냐에 그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이유입니다. 준비된 나라는 흥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외부에서 도움을 줘도 한계가 있어요.”
대형 사건 피해자들 트라우마 치료 담당
박 원장의 독특한 이력 중 하나는 ‘트라우마(trauma)’ 치료에도 관여했다는 점이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2014년 이집트 버스 폭탄테러, 세월호 사건 등 큰 사건의 피해자나 유족들의 아픔과 회복을 지켜봤다. 그가 속한 안양 샘병원이 트라우마 치료를 할 수 있는 ‘전인치료’ 병동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란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며 입는 정신적 상처를 뜻한다.
—샘병원이 여러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맡게 된 계기는 뭡니까.
“2007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되었다 풀려난 피해자들의 경우, 원래는 세브란스병원에 가려고 했습니다. 병원 한 동을 다 비워야 해서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마침 이때 샘병원은 6개월 전부터 준비해 온 전인치료 병동을 막 열려는 상황이었어요. 21명의 귀환자들이 들어와서 치료를 받게 되었지요. 심리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전인적인 치료를 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검진받으면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오겠지만 이분들은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입원한 기간 중에, 지역축제 때문에 하늘에서 폭죽이 터진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두려움에 떨더군요. 1년 가까이 상담을 하며 회복이 됐습니다.
세월호의 주방장이었다가 돌아가신 희생자의 가족도 저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돌아가신 분은 사고 당시 300명 분의 돈가스를 튀기고 있었답니다. 배가 기울면서 기름을 뒤집어쓰고 중화상을 입은 채 복도까지 나와서 기절했는데, 선장 일행이 도망치면서 이분을 발로 걷어차며 지나갔다고 합니다. 끝에서 3번째로 시신이 인양되었어요. 자식 3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찾으려 팽목항에서 들어오는 시신마다 들춰본 겁니다. 그분들은 200여 구의 시신을 다 본 거지요. 그 마음의 상처란 엄청나겠지요.”
—우리나라의 트라우마 치료 수준은 어떻습니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갑자기 많은 사람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했습니다. 응급상황이었지요. 전국의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가들이 헌신을 했습니다. 세월호 이후에도 많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전문적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기관과 관련 프로그램이 평상시에도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트라우마 자체는 비극이지만, 잘 극복하면 의미 있는 경험으로 승화해 인생을 더 넓은 안목으로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연명치료 중단 대상 오도되면 안 돼”
박 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생명윤리위)의 탄생 배경에는 황우석 박사가 있다. 황 박사가 체세포를 복제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촉발됐고 한국 사회가 들끓었다. 생명윤리와 그에 관련한 정책에 대해 상시적이고, 전문적으로 기준점을 제공해 줄 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 결과가 생명윤리위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은 3기 생명윤리위가 권고했던 내용이다. 지난해 출범한 4기 생명윤리위는 조만간 ‘생명존중헌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연명의료 관련 법안이 통과된 후 ‘죽음’에 대한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논란이 됐습니다.
“사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 대해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이 아닙니다. 임종이 임박한,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상황에 있는 환자에게 단지 죽음을 미루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법의 요점입니다. 그 대상을 식물인간이나 혼수상태의 환자로 자의적으로 해석할까 봐 우려됩니다.
뇌사와 식물인간은 분명히 다릅니다. 뇌사는 뇌의 기능이 정지되고 다른 기능은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대로 두면 한 달 정도 더 살 수 있습니다. 환자 본인이 의식이 있었을 때 ‘뇌사 시 장기 기증하겠다’고 밝혔을 경우에 한해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장기를 적출할 수 있습니다. 한 달을 더 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요. 장기이식 때문에 장기를 적출하는 것 자체는 일종의 초법적인 행위이지요.
식물인간은 뇌가 기능을 완전히 정지한 게 아니라 회복할 가능성을 1~2%라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절대 치료를 중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군대에서 구타당했다가 식물인간이 된 후 2년이 지나 깨어나 구타한 병장 이름을 댄 환자도 있었어요. 법안이 잘못 인식되는 이유는 아마 ‘김씨 할머니’ 사건 때문인 듯합니다. 그 자녀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자고 주장한 김씨 할머니의 경우 식물인간이었습니다. 뇌사와 식물인간을 구분하는 엄정한 의학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뇌파 검사가 그 하나입니다. 뇌파가 있다면 뇌사가 아니에요.
처음 우리나라에서 뇌사자 장기이식을 허용할 때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이 기준을 만드는 데도 제가 관여했어요. 왜 그렇게 엄격하게 하냐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장기이식을 더 어렵게 하려는 것인가’라는 질타도 받았어요. 그런데 뇌사진단 기준을 엄격하게 하니까, 오히려 국민들이 뇌사진단에 대해 신뢰성을 갖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뇌사진단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장기기증 서약을 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연명치료 중단도 마찬가지예요. 신중하게 법안을 만든 것도 그 때문입니다.”
—법안 내용을 제대로 알려야 하는군요.
“당장 2018년부터 법이 시행됩니다. 얼마 안 남은 기간 동안 법의 취지와 정확한 내용을 알리고 현장의 의사들도 교육해야 합니다. 법안을 보면, ‘사전의료의향서’를 본인이 의식이 있을 때 작성하게 되어 있어요. 시중에 도는 사전의향서를 보니 기가 막히더군요.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을 때도 의료거부를 하겠냐고 묻는 문항이 있었어요. 표준양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의료의향서를 등록하는 기관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상당수 환자들은 자기가 임종에 가까이 와 있는지 모르는 채 죽음에 가까워지곤 합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본인에게 얘기를 안 합니다. 그건 아니지요.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내야지요. 임종이 다가와야 비로소 뭐가 가장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죽음 너머까지 준비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샘병원에서는 18년째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 중입니다. 2000명의 임종을 지켜봤습니다. 두 부류로 나뉩니다.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알면서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도망가다가 끌려가듯이 죽는 사람이 한 부류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 준비하고 환한 얼굴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다른 부류지요.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진을 하는데 옷을 잡아당기면서 ‘석 달만 살려달라’는 환자가 있었어요. 뭘 하시겠냐고 묻자 답하더군요. ‘가족들과 조금만 더 일상의 삶을 보내고 싶습니다.’”
200원이 없어 죽는 아프리카 아이들
—생명과 죽음에 관한 윤리라는 게 생각보다 일상에 가까이 있는 문제인 듯합니다.
“생명윤리에는 4대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이에요. 의식이 없는 환자는 스스로 결정을 못 내리니, 보호자가 내려야 하는데 이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1997년에 ‘보라매병원 사건’이 일어났어요. 병원에서 응급수술로 살려 놓은 환자를 부인이 의료진의 만류에도 각서까지 쓰고 퇴원시켜,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었지요. 환자의 형제가 의료진과 부인을 살인 및 살인방조 사건으로 고발했어요.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환자가 의식이 있었다면 내리지 않았을 결정이라는 것이지요.
두 번째 원칙은 ‘악행금지의 원칙(Do no Harm)’입니다. 일반적인 윤리는 선행을 강조하지만 생명윤리는 악행금지를 더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환자를 뇌사라고 판정하면 다른 7명을 살릴 수 있겠지만, 잘못된 판정으로 그 환자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논리이지요.
세 번째는 ‘선행의 원칙’이고, 마지막은 ‘정의의 원칙’입니다. 정의의 원칙은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분배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기가 돈 많은 사람들에게 편중되어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권역을 나눴어요. 예를 들어 전라도에서 뇌사자가 발생하면 일단 전라도 환자 중에서 이식받을 환자를 찾는 식입니다.”
—자원배분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 듯합니다.
“전세계 차원에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나라에서 암환자가 한 달 더 살려고 지출하는 비용으로 아프리카나 북한에서 수천 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암환자의 의료비를 줄여서 다른 나라를 돕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제는 우리 사회가 지구촌 차원의 자원분배에 대해 고민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깁니다.
아프리카에서는 200원짜리 주사바늘(butterfly needle)이 없어서 아이들이 죽기도 합니다. 1800년대 우리나라도 그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때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을 떠나 이곳으로 온 분들이 있었습니다. 고려대 의대의 전신을 세운 로제타 홀이라는 여자 의사도 그런 분이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조선에서 남편을 잃었습니다. 둘째 딸은 이질에 걸려서 죽었어요. 홀 여사는 남편과 딸을 양화진에 묻고 조선에서 44년 동안 여자들을 치료하고 여의사를 양성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그 시대에 전 세계 의료수준의 평균을 올린 겁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가장 열악한 나라에서 최상위권 나라가 됐어요. 우리가 이제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정의의 원칙에 맞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짐바브웨 심장센터 혜택 고루 봤으면”
—북한 의료 지원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도 있겠네요.
“로제타 홀 여사가 죽은 남편을 기리기 위해 평양에 ‘기홀병원’이라는 기념병원을 세웠어요. 이것이 후에 평양연합기독병원이 되고 나중엔 평양도립병원이 됐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부속병원인 평양의과대학병원의 전신이지요. 평양연합기독병원 시절 장기려 박사님이 근무하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장기려 박사님 밑에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평양의대병원에 의료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홀 여사와 장 박사님 두 분에게 은혜를 갚는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다시 북한 의료개선 사업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 사업을 한다고 해서 북한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가족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프리카미래재단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스스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확인되면, 시설과 사업을 이양하고 떠나는 게 목표입니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내일 의료팀과 함께 짐바브웨에 들어갑니다. 심장수술을 하기 위해 가는 겁니다. 단지 수술을 하러 굳이 그 팀을 이끌고 장비를 가지고 가는 게 아닙니다. 짐바브웨 국립병원 안에 심장센터를 세팅하기 위해 가는 겁니다.
그동안 현지 의사들을 한국에 데려와 연수시켰어요. 현지에서 그들과 함께 수술하면서 짐바브웨 상황에 맞춰 그들에게 최종적으로 기술이양을 완료하는 게 목표입니다. 짐바브웨에 심장센터가 생기면 인근 나라도 그 혜택을 입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재단이 아프리카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날도 오지 않겠습니까.”⊙
평양에서 시작해 아프리카로
만나자마자 대뜸 ‘왜 하필 아프리카를 택했는지’ 물었다. 그는 ‘북한’ 이야기를 꺼냈다.
“1998년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정권은 나선지구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었어요. 기업과 사람들이 들어갈 테니 의료 인프라를 갖추려 했지요. 의료인 확충을 도왔습니다. 나선지구에서 일할 의사들을 모집하고, 두만강에 가서 의사들을 훈련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막상 나선지구가 개방되자 의사를 들이려는 계획을 북한이 취소했어요. 주민들을 단속하려는 이유였습니다. 대신 평양으로 들어갔어요. 평양의과대학병원을 현대화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7번 방북했어요.
2008년 박왕자씨 사건이 터지면서 이마저도 중단됐습니다. 마침 샘병원은 아프리카와 인연을 맺은 참이었어요. 아프리카에 있는 스와질랜드라는 나라에는 의과대학이 한 곳도 없습니다. 한국인 선교사가 스와질랜드 정부로부터 의대 설립 허가를 받아서 이를 도울 한국 내 병원을 찾고 있었습니다. 저희와 연락이 닿았지요. 이때 처음 아프리카에 가 봤습니다. 2006년의 일이었지요. 전 국민의 45%가 에이즈(AIDS)에 걸려 있는 곳이었습니다.”
2007년 설립된 아프리카미래재단은 말라위, 우간다, 잠비아, 짐바브웨, 탄자니아, 마다가스카르 등 6개국에서 에이즈퇴치 사업과 함께 모자보건 사업, 병원현대화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활동한 지 이제 10년째인데, 가장 큰 성과는 무엇입니까.
“희망을 발견한 겁니다. 아프리카의 환경은 열악하지만, 순수하고 열정이 있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고 교육 여건만 갖춰지면 한국 못지않은 나라가 될 거라 믿습니다.
저희는 모자보건 사업에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말라위와 에티오피아 두 곳에서 모자보건 사업을 체계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말라위’를 6년째 해 오고 있지요. 잠비아에서는 산과클리닉, 아동클리닉을 만들고 지역거점 병원의 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사실,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에요. 정확히 조사한 인구 데이터 자체가 없어서, 처음부터 저희가 인구통계를 내야 합니다. 어느 집에 가족이 몇 명이고, 아이가 몇 명인지 가구조사부터 해야 하는 식입니다.
사업을 하면서 한국 젊은이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젊은 세대를 약간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는데 막상 같이 일해 보니 상당히 진취적이에요. 저희 세대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글로벌 감각도 갖추고 있고, 자존감이 높습디다.”
“결국은 정치지도자가 국가미래 좌우”
—앞으로도 모자보건 사업을 중점 사업으로 진행할 예정인지요.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면서 이런 점을 느꼈습니다. ‘슈바이처가 아프리카에서 많은 사람을 진료했지만, 당시의 그 세대가 지나면 잊히고 결국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겁니다. 진료를 하며 시혜를 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그곳의 사람들을 훈련시켜 스스로 해결하게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메디컬 서비스’에서 멈추지 말고 ‘메디컬 에듀케이션’까지 제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식량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끼니를 때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식후에 약 복용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말라위, 우간다에서 농업 쪽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농장을 운영하면서 농사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서 진행 중인 모자보건 사업은 산모들에게 식이를 제공하는 것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중 가장 마음이 가는 나라가 있는지요.
“말라위 사람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하트 오브 아프리카(Heart of Africa)’라고 부릅니다. 가장 뜨겁다는 얘깁니다. 제가 가 본 13개 나라 중에서 말라위가 가장 사정이 열악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 몇 년이 지나야 아프리카의 의료환경이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라마다 편차가 큽니다. 르완다는 인종청소 등 아픈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요. 훌륭한 정치지도자들이 들어선 후에는 부패를 척결하려 애쓰는 등 나라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어요.
짐바브웨는 한때 아프리카에서 가장 잘살았던 나라입니다. 세계 30위권의 부국이었어요. 짐바브웨의 의과대학이 서울의대보다 좋았습니다. 지금도 희토류 등이 많은 자원 부국이긴 하지요. 무가베 정권이 집권을 계속하며, 경제봉쇄를 겪은 결과 현재는 가장 못사는 나라로 전락했습니다.
결국은 지도자들에게 달려 있습니다. 미래 지도자인 젊은이들이 올바른 교육과 가치관을 갖추냐에 그 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는 이유입니다. 준비된 나라는 흥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외부에서 도움을 줘도 한계가 있어요.”
대형 사건 피해자들 트라우마 치료 담당
박 원장의 독특한 이력 중 하나는 ‘트라우마(trauma)’ 치료에도 관여했다는 점이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 2014년 이집트 버스 폭탄테러, 세월호 사건 등 큰 사건의 피해자나 유족들의 아픔과 회복을 지켜봤다. 그가 속한 안양 샘병원이 트라우마 치료를 할 수 있는 ‘전인치료’ 병동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란 충격적인 일을 경험하며 입는 정신적 상처를 뜻한다.
—샘병원이 여러 피해자들의 트라우마 치료를 맡게 된 계기는 뭡니까.
“2007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납치되었다 풀려난 피해자들의 경우, 원래는 세브란스병원에 가려고 했습니다. 병원 한 동을 다 비워야 해서 난감한 상황이었는데, 마침 이때 샘병원은 6개월 전부터 준비해 온 전인치료 병동을 막 열려는 상황이었어요. 21명의 귀환자들이 들어와서 치료를 받게 되었지요. 심리치료, 음악치료, 미술치료 등 전인적인 치료를 했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검진받으면 신체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오겠지만 이분들은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어요. 입원한 기간 중에, 지역축제 때문에 하늘에서 폭죽이 터진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두려움에 떨더군요. 1년 가까이 상담을 하며 회복이 됐습니다.
세월호의 주방장이었다가 돌아가신 희생자의 가족도 저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돌아가신 분은 사고 당시 300명 분의 돈가스를 튀기고 있었답니다. 배가 기울면서 기름을 뒤집어쓰고 중화상을 입은 채 복도까지 나와서 기절했는데, 선장 일행이 도망치면서 이분을 발로 걷어차며 지나갔다고 합니다. 끝에서 3번째로 시신이 인양되었어요. 자식 3명이 직장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찾으려 팽목항에서 들어오는 시신마다 들춰본 겁니다. 그분들은 200여 구의 시신을 다 본 거지요. 그 마음의 상처란 엄청나겠지요.”
—우리나라의 트라우마 치료 수준은 어떻습니까.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후 갑자기 많은 사람의 트라우마를 치료해야 했습니다. 응급상황이었지요. 전국의 정신과 전문의, 심리상담가들이 헌신을 했습니다. 세월호 이후에도 많은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전문적으로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기관과 관련 프로그램이 평상시에도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트라우마 자체는 비극이지만, 잘 극복하면 의미 있는 경험으로 승화해 인생을 더 넓은 안목으로 보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박 원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이하 생명윤리위)의 탄생 배경에는 황우석 박사가 있다. 황 박사가 체세포를 복제해 인간배아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논란이 촉발됐고 한국 사회가 들끓었다. 생명윤리와 그에 관련한 정책에 대해 상시적이고, 전문적으로 기준점을 제공해 줄 기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생겼다. 그 결과가 생명윤리위다.
최근 국회에서 통과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안’은 3기 생명윤리위가 권고했던 내용이다. 지난해 출범한 4기 생명윤리위는 조만간 ‘생명존중헌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연명의료 관련 법안이 통과된 후 ‘죽음’에 대한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논란이 됐습니다.
“사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 대해 걱정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건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이 아닙니다. 임종이 임박한, 현대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상황에 있는 환자에게 단지 죽음을 미루는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법의 요점입니다. 그 대상을 식물인간이나 혼수상태의 환자로 자의적으로 해석할까 봐 우려됩니다.
뇌사와 식물인간은 분명히 다릅니다. 뇌사는 뇌의 기능이 정지되고 다른 기능은 살아 있는 상태입니다. 그대로 두면 한 달 정도 더 살 수 있습니다. 환자 본인이 의식이 있었을 때 ‘뇌사 시 장기 기증하겠다’고 밝혔을 경우에 한해서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장기를 적출할 수 있습니다. 한 달을 더 살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것이지요. 장기이식 때문에 장기를 적출하는 것 자체는 일종의 초법적인 행위이지요.
식물인간은 뇌가 기능을 완전히 정지한 게 아니라 회복할 가능성을 1~2%라도 가지고 있는 상태입니다. 절대 치료를 중단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군대에서 구타당했다가 식물인간이 된 후 2년이 지나 깨어나 구타한 병장 이름을 댄 환자도 있었어요. 법안이 잘못 인식되는 이유는 아마 ‘김씨 할머니’ 사건 때문인 듯합니다. 그 자녀들이 인공호흡기를 떼자고 주장한 김씨 할머니의 경우 식물인간이었습니다. 뇌사와 식물인간을 구분하는 엄정한 의학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뇌파 검사가 그 하나입니다. 뇌파가 있다면 뇌사가 아니에요.
처음 우리나라에서 뇌사자 장기이식을 허용할 때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습니다. 이 기준을 만드는 데도 제가 관여했어요. 왜 그렇게 엄격하게 하냐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장기이식을 더 어렵게 하려는 것인가’라는 질타도 받았어요. 그런데 뇌사진단 기준을 엄격하게 하니까, 오히려 국민들이 뇌사진단에 대해 신뢰성을 갖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뇌사진단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장기기증 서약을 하기 힘들지 않겠습니까. 연명치료 중단도 마찬가지예요. 신중하게 법안을 만든 것도 그 때문입니다.”
—법안 내용을 제대로 알려야 하는군요.
“당장 2018년부터 법이 시행됩니다. 얼마 안 남은 기간 동안 법의 취지와 정확한 내용을 알리고 현장의 의사들도 교육해야 합니다. 법안을 보면, ‘사전의료의향서’를 본인이 의식이 있을 때 작성하게 되어 있어요. 시중에 도는 사전의향서를 보니 기가 막히더군요. 교통사고를 당해 중상을 입었을 때도 의료거부를 하겠냐고 묻는 문항이 있었어요. 표준양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의료의향서를 등록하는 기관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다뤄야 합니다.”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도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우리나라의 상당수 환자들은 자기가 임종에 가까이 와 있는지 모르는 채 죽음에 가까워지곤 합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아요. 본인에게 얘기를 안 합니다. 그건 아니지요. 지나온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시간을 좀 더 보내야지요. 임종이 다가와야 비로소 뭐가 가장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죽음 너머까지 준비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샘병원에서는 18년째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 중입니다. 2000명의 임종을 지켜봤습니다. 두 부류로 나뉩니다. 죽음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걸 알면서 죽음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면서 도망가다가 끌려가듯이 죽는 사람이 한 부류입니다.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면서 준비하고 환한 얼굴로 돌아가시는 분들이 다른 부류지요. 죽음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진을 하는데 옷을 잡아당기면서 ‘석 달만 살려달라’는 환자가 있었어요. 뭘 하시겠냐고 묻자 답하더군요. ‘가족들과 조금만 더 일상의 삶을 보내고 싶습니다.’”
200원이 없어 죽는 아프리카 아이들
—생명과 죽음에 관한 윤리라는 게 생각보다 일상에 가까이 있는 문제인 듯합니다.
“생명윤리에는 4대원칙이라는 게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율성 존중의 원칙’이에요. 의식이 없는 환자는 스스로 결정을 못 내리니, 보호자가 내려야 하는데 이때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1997년에 ‘보라매병원 사건’이 일어났어요. 병원에서 응급수술로 살려 놓은 환자를 부인이 의료진의 만류에도 각서까지 쓰고 퇴원시켜,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었지요. 환자의 형제가 의료진과 부인을 살인 및 살인방조 사건으로 고발했어요.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판결을 내렸습니다. 환자가 의식이 있었다면 내리지 않았을 결정이라는 것이지요.
두 번째 원칙은 ‘악행금지의 원칙(Do no Harm)’입니다. 일반적인 윤리는 선행을 강조하지만 생명윤리는 악행금지를 더 강조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환자를 뇌사라고 판정하면 다른 7명을 살릴 수 있겠지만, 잘못된 판정으로 그 환자에게 해를 끼치면 안 된다’는 논리이지요.
세 번째는 ‘선행의 원칙’이고, 마지막은 ‘정의의 원칙’입니다. 정의의 원칙은 ‘자원을 누구에게 먼저 분배할 것인가’라는 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장기가 돈 많은 사람들에게 편중되어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권역을 나눴어요. 예를 들어 전라도에서 뇌사자가 발생하면 일단 전라도 환자 중에서 이식받을 환자를 찾는 식입니다.”
—자원배분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문제인 듯합니다.
“전세계 차원에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나라에서 암환자가 한 달 더 살려고 지출하는 비용으로 아프리카나 북한에서 수천 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암환자의 의료비를 줄여서 다른 나라를 돕자는 얘기가 아니에요. 이제는 우리 사회가 지구촌 차원의 자원분배에 대해 고민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깁니다.
아프리카에서는 200원짜리 주사바늘(butterfly needle)이 없어서 아이들이 죽기도 합니다. 1800년대 우리나라도 그런 모습이었을 겁니다. 그때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국을 떠나 이곳으로 온 분들이 있었습니다. 고려대 의대의 전신을 세운 로제타 홀이라는 여자 의사도 그런 분이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조선에서 남편을 잃었습니다. 둘째 딸은 이질에 걸려서 죽었어요. 홀 여사는 남편과 딸을 양화진에 묻고 조선에서 44년 동안 여자들을 치료하고 여의사를 양성했습니다. 이런 분들이 그 시대에 전 세계 의료수준의 평균을 올린 겁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가장 열악한 나라에서 최상위권 나라가 됐어요. 우리가 이제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정의의 원칙에 맞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 의료 지원도 그런 관점에서 볼 수도 있겠네요.
“로제타 홀 여사가 죽은 남편을 기리기 위해 평양에 ‘기홀병원’이라는 기념병원을 세웠어요. 이것이 후에 평양연합기독병원이 되고 나중엔 평양도립병원이 됐습니다. 김일성종합대학의 부속병원인 평양의과대학병원의 전신이지요. 평양연합기독병원 시절 장기려 박사님이 근무하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장기려 박사님 밑에서 수련을 받았습니다. 평양의대병원에 의료지원 사업에 참여하면서, 홀 여사와 장 박사님 두 분에게 은혜를 갚는 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북관계가 정상화되면 다시 북한 의료개선 사업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의료 사업을 한다고 해서 북한을 외면할 수는 없어요. 가족을 외면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프리카미래재단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아프리카 사람들이 스스로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확인되면, 시설과 사업을 이양하고 떠나는 게 목표입니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내일 의료팀과 함께 짐바브웨에 들어갑니다. 심장수술을 하기 위해 가는 겁니다. 단지 수술을 하러 굳이 그 팀을 이끌고 장비를 가지고 가는 게 아닙니다. 짐바브웨 국립병원 안에 심장센터를 세팅하기 위해 가는 겁니다.
그동안 현지 의사들을 한국에 데려와 연수시켰어요. 현지에서 그들과 함께 수술하면서 짐바브웨 상황에 맞춰 그들에게 최종적으로 기술이양을 완료하는 게 목표입니다. 짐바브웨에 심장센터가 생기면 인근 나라도 그 혜택을 입을 겁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재단이 아프리카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날도 오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