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미래 신기술 사회 시나리오 쓴 과학칼럼니스트 李仁植 지식융합연구소장 : 월간조선

한국공학한림원이 내놓은 20대(大) 미래 신기술 사회의 시나리오를 쓴 이는 과학칼럼니스트 이인식(李仁植) 지식융합연구소장이다. 공학한림원 소속 전문가 1000여 명이 선정한 신기술의 시나리오를 과학전문 필자 한 사람이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인식 소장은 “집필활동을 하면서 축적한 정보와 지식을 바탕으로 20년 뒤의 미래사회를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설명하려 노력했다”고 했다.

서울 강남 역삼동의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이 소장은 국내에서 비싸기로 소문난 서울 강남 요지의 50평짜리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생활 여건이 좋지 않으리라는 선입견을 단박에 깨트렸다. 1992년부터 24년 가까이 프리랜서 글쟁이로 살아온 그가 어떻게 이런 ‘대단한’ 아파트에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의 서재에는 과학기술 서적은 물론 다양한 인문사회학 도서들이 가득했다. 서재 구석에 있는, 고물상에 진작 넘겨 버렸을 것 같은 작고 낡은 나무 책걸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커피를 내온 그의 부인이 “남편이 총각 때부터 쓰던 것인데 40년 넘었을 것”이라 했다. 널찍한 아파트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기자의 마음을 알아챈 듯 이 소장은 겸연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동산 투기요?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오래 살던 31평짜리 아파트가 재건축되면서 분양받은 겁니다. 한때 종부세가 많이 나와 죽는 줄 알았지요. 글 써서 겨우 먹고 사는 처지에 유지비가 만만치 않아요.”

입력료 명목으로 부인이 원고지 1장당 1000원씩 떼

이인식 소장은 40년 된 낡은 나무책상에서 글을 쓰며 생계를 꾸리고 있다.

—과학분야 전문가답지 않게 글은 200자 원고지에 볼펜으로 쓴다면서요.

“볼펜이나 연필이 종이 위를 지나며 내는 그 소리, 그 느낌을 좋아해요. 원고를 끝내면 아내가 컴퓨터에 입력하지요. 아내는 내가 쓴 원고를 보며 지식도 늘리고,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기도 해요. 원고지는 나와 아내가 서로 소통하는 ‘통신망’이기도 하죠. 아내가 재미있다고 하는 원고일수록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요. 아내가 일반대중의 반응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는 셈이죠.”

그의 부인은 원고지 입력료 명목으로 1장당 1000원씩 떼어 간다고 한다.

이 소장의 서재에는 ‘융합’ ‘인지과학’ ‘뇌과학’ ‘나노기술’ ‘청색기술’ ‘포스트휴먼’ ‘섹스’ 등의 표지가 붙은 파일철이 100개 넘게 비치돼 있었다.

—과학기술로 미래를 전망하는 글을 수도 없이 써 왔는데, 해외 과학동향을 제일 먼저 소개한 것은 언젠가요.

“1992년 4월 《월간조선》에 내 이름이 들어간 칼럼을 난생 처음 연재했어요. 첫 칼럼에서 나노기술을 소개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나노기술을 웃기는 발상이라고 폄하했지요. 유비쿼터스 컴퓨팅, 신경망, 인공생명도 내가 처음으로 소개한 주제들입니다. 청색기술도 마찬가지죠. 이 용어는 공식적으로 저작권 등록까지 했어요.”

그는 이모작 인생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1945년 해방둥이로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광주서중과 광주제일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 1960년대 전자공학과는 서울대 커트라인이 가장 높은 인기학과였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대학 4년 동안 가정교사를 하며 간신히 졸업했다고 한다.

해군 통신장교로 3년간 복무한 뒤 럭키금성(현 LG)에 취직했다. 일요일도 회사에 자진해서 나갈 정도로 그는 일벌레였다.

“내 목표는 객지인 서울 하늘 아래에서 방 한 칸을 마련하는 것이었어요. 승진을 빨리 해 월급을 더 많이 받으려고 정말 열심히 일했지요. 퇴근 후에는 고3 수험생 영어 과외도 했지요. 마침내 1976년, 서른한 살에 잠실에 15평 아파트를 샀습니다. 내 인생에 기적이 일어난 거죠. 4년 뒤에는 금성반도체 기획부장으로 승진했어요. 고속 승진이었습니다.”

“아내는 내 인생의 대박”

이인식 소장은 37세에 회사를 옮긴다. 젊은 나이에 운전사가 딸린 승용차를 ‘굴린’ 것이다.

“일진그룹 허진규 회장이 자신의 처남 김흥식 전무(김황식 전 국무총리 친형)와 함께 일년 가까이 나를 집요하게 설득했어요. 그래서 1982년에 일진그룹 이사로 옮겨 컴퓨터사업을 맡았어요. 내 나이 서른일곱이었는데 그때 나온 신형 승용차 ‘맵시나’를 타고 다녔지요. 물론 운전기사가 따로 있었고요. 승승장구했지요. 몇 년 후 대성그룹 상무로 자리를 옮겼어요.”

1991년 가을 이 소장은 마흔여섯 살에 직장생활을 스스로 접었다.

“우연히 미국 인지(認知)과학자 더글러스 호프스태터의 처녀작 《괴델, 에셔, 바흐》라는 책을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논리학자 괴델, 화가 에셔, 작곡가 바흐가 서로 어떻게 지성적으로 융합돼 있는지를 분석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을 써서 퓰리처상을 받은 저자가 나와 동갑이더군요. 1979년 출간된 책이니까 서른넷에 대작을 낸 겁니다. 동갑내기가 이런 명작을 쓸 때 나는 뭘 하며 살았는가 하는 허무한 생각이 엄습했죠. 그래서 별 준비도 없이 덜컥 사표를 냈습니다.”

—가장(家長)으로서 대책 없이 회사를 그만두다니요.

“직장 다닐 때 《컴퓨터월드》라는 잡지를 기획해 주곤 했어요. 매달 컴퓨터 관련 해외잡지 50여 종을 읽고 유익한 기사를 골라 주면 잡지사는 이를 토대로 책을 만들었죠. 그런 경험을 살려 퇴직금을 몽땅 털어 1992년 《정보기술》을 창간했어요. 해외 기술동향을 실시간으로 소개해 인기가 대단했어요. 그러면서 《월간조선》에 과학칼럼을 쓴 겁니다.”

—잡지 《정보기술》은 성공했나요.

“2년도 안돼 문을 닫았어요. 기자들에게 월급도 제때 못 줬죠. 영업담당 창간 멤버들에게 속아 광고 수주에 실패한 겁니다. 퇴직금도 다 날리고….”

그는 “그 시절을 돌아보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이 소장은 2014년 《월간조선》 4월호 별책부록에 실린 ‘아내는 내 인생의 대박’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정보기술》의 간판을 내린 1994년 가을, 나는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다. 퇴직금은 일찌감치 날렸고, 대성산업 상무 자리를 괜스레 박차고 나온 것도 후회되었다. 그러나 나보다 더 고통스러워해야 할 아내는 생각이 달랐다. 아내는 나에게 도리어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남자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집안에서 월급으로 살림밖에 할 줄 모르던 아낙네의 입에서 이런 당찬 말이 나올 줄이야. 나는 다시 직장에 들어가지 않기로 작정했다. 과학저술에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1995년부터 직장도, 명함도, 사무실도, 급여도 없는 프리랜서 생활이 시작되었다. 정말 힘들고 외로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알량한 원고료와 인세, 강연료로 최저생활을 간신히 꾸려 가면서 아내와 두 아들에게 고통을 분담시키는 못난 가장 노릇을 한 것이다.〉

政治과학자 줄곧 비판

이인식 소장은 40년 된 낡은 나무책상에서 200자 원고지에 볼펜과 연필로 글을 쓴다. 그의 부인이 컴퓨터로 디지털화한다.

—혹시 그 무렵 부인이 직장생활을 했나요.

“평범한 가정주부로 평생을 살았어요. 유기농 먹거리에 관심이 많아 ‘한살림’의 강남지역 책임자로 10년, 천주교 우리농촌살리기운동 활동가로 10년간 자원봉사를 했을 뿐이죠.”

—생활비는 어떻게 벌었나요.

“1992년에 펴낸 《사람과 컴퓨터》가 호평을 받았어요. 곧바로 그해 《월간조선》 4월호부터 기명칼럼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과학전문 필자가 된 것이지요. 이곳저곳에서 원고 청탁과 출판 제안이 말 그대로 ‘쇄도’했지요.”

이 소장은 ‘대한민국 과학칼럼니스트 1호’이다. 그만큼 많은 글과 책을 썼다. 《조선일보》 등 각종 신문에 530편 이상의 고정칼럼을, 《월간조선》 등 잡지에 170편 이상의 기명칼럼을 연재했다. 2011년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월간지 《PEN》에 나노기술 칼럼을 연재해 국제적인 과학칼럼니스트로 인정받기도 했다. 저서는 46종(기획공저 13종 포함)이다. 중·고교 교과서에 20여 편의 글도 수록됐다. 제1회 한국공학한림원 해동상, 제47회 한국출판문화상, 2006년 《과학동아》 창간 20주년 최다 기고자 감사패, 2008년 서울대 자랑스런 전자동문상을 받았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나왔지만 박사 학위를 가진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대학 교수도 아니면서 과학칼럼니스트로 성공했습니다. 혹시 해당 전공 교수들로부터 공격을 받은 경우는 없나요.

“왜 없겠어요.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았죠. 《사람과 컴퓨터》가 인기를 끌자 인지과학 전공 교수들이 내가 어디선가 내용을 베꼈을 것으로 생각하고 관련 논문을 샅샅이 뒤진 적도 있어요. 속 좁은 양반들이지요. 지금도 강단 학자 중에 ‘안티 세력’이 더러 나타나곤 해요. 하지만 이제는 대놓고 나를 욕하는 사람은 없지요.”

—전공 교수들도 결국 ‘이인식’을 인정한다는 의미인가요.

“학위도 없는 내가 과학계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고 교수들보다 먼저 새로운 과학 흐름에 대해 말하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요. 나는 과학자 중에서 ‘정치과학자들’을 줄곧 비판해 왔는데 그들이 나를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 같아요. 얼마나 눈엣가시였으면 정부가 주는 ‘대한민국 과학문화상’을 100여 명이나 받았는데 나는 늘 빠졌어요. 심사위원들은 죄다 교수들이었죠. 이제는 그런 상을 안 받아도 돼요. 나를 믿고 인정해 주는 사회 각층의 여러분들이 있으니까요.”

—한국 과학계의 문제점이 뭐라고 생각합니까.

질문이 나오자 이인식 소장은 작심한 듯 거친 말들을 쏟아 냈다. 순화해서 정리했다.

“첫째, 국책연구소 과학자들은 대부분 코스트 개념이 없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먹고산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아요. 둘째, 과학이 좋아서라기보다 대부분 생계형 연구자들입니다.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대학이나 연구소에 안착하면 그냥 안주해 버립니다. 셋째, 정치과학자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연구실에 틀어박혀 학문에만 매진해야 하는데 기관장 감투를 쓰기 위해 쟁탈전을 벌여요. 이런 일은 역대 정권이나 지금 정권이나 비일비재합니다. 넷째, 과학계에도 패거리 문화가 뿌리 깊이 박혀 있습니다. 분야별로 계보가 너무 많고 연구비, 보직 등을 둘러싼 암투가 언론에 안 나와서 그렇지 횡행합니다. 투서를 가장 많이 하는 집단이 바로 과학기술자들입니다.”

性과학 칼럼으로 여대생 반발 사기도

—개인적으로 그런 유의 일에 연루된 적이 있습니까.

“한국과학문화재단(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자리 때문에 두 번이나 곤욕을 치렀어요.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의 일입니다. 당시 과학기술부 장관이 집 근처로 찾아와 그 자리를 맡아 달라고 간청했어요. 과학문화 창달 기관이라 나를 적임자로 여긴 사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무렵 과학기술부 차관은 내게 기관운영 계획서까지 건네주며 인사 개편을 미리 생각해 두라고 했어요. 하지만 국회의원 출신이었던 장관이 공무원들의 반발로 막판에 입장을 바꿨어요. 그 자리는 퇴임 관료가 가는 게 당시 관행이었죠. 또 한 번은 노무현(盧武鉉) 정부 시절 인사수석실에서 내가 과학문화재단 이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과학문화와 전혀 관계 없는 인사가 그 자리에 앉았죠.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정치권 실세의 압력이 있었다고 해요.”

이인식 소장은 서울대 교수로 ‘임용될 뻔’했던 적도 있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김도연 포스텍 총장이 서울공대 학장 때 공대생들에게 글쓰기 교육을 시키기 위해 서울대 기초교육원에 강좌를 개설하고 나를 전담교수로 추천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임용 심사과정에서 이화여대 출신 교수가 반대해 무산됐다고 들었어요. 1998년 《말》지(誌)에 성(性)과학 칼럼을 연재할 때 이화여대 대학원 여성학과 학생들이 집단반발을 해 도중 하차한 적이 있는데 이를 빌미로 나를 배척했다고 해요. 자리를 탐내는 건 아니지만, 공학기술에 대해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로서 후배들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울 뿐입니다.”

—혹시 감투를 써 본 적이 있나요.

“왜요?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으로 두 차례 위촉된 적이 있지요. 노 대통령과 사진도 찍고 청와대 국무회의장에서 여러 차례 회의도 한 사람이오. 정치권에서 몇 차례 접촉을 해 온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들은 한순간에 불과해요. 감투를 쓰면 글을 못 써요. 나는 글 쓰는 게 정말 좋아요. 이 일은 내가 하고 싶을 때까지 계속할 수 있지요.”

—요즘 강연 많이 하시죠.

“한 달에 평균 네 번 정도 기업이나 연구소, 대학에서 융합, 청색기술, 포스트휴먼에 대해 얘기해요. 강연 비율은 융합 60%, 청색기술 30%, 포스트휴먼 10% 정도 되는 것 같네요.”

—한때 ‘융합전도사’로 불렸지요. 현재 타이틀도 지식융합연구소장이고요. 물론 연구소는 이 소장께서 만든 개인연구소이지만요.

“2008년 《지식의 대융합》을 펴낸 이후 융합 강연 요청이 많았어요. 21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서로 다른 학문, 기술, 산업 영역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융합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융합 바람이 대학과 연구소의 울타리를 벗어나 산업계 등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문학과 과학기술이 어떻게 만나고 섞여서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 파악해서 융합시대의 3대 물결인 지식융합, 기술융합, 산업융합의 본질과 발전 추세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자리든 나를 소개하는 말로 ‘융합전도사’라는 표현을 제일 좋아하지요.”

“통섭은 知的詐欺”

이인식 소장은 KAIST에서 겸직교수로 ‘융합’에 대해 강의하기도 했다. 지금은 KAIST 영재기업인교육원에서 지식융합 과목과 기술융합 과목을 동영상으로 강의하고 있다. 대학 학부에서 격주 3시간짜리 강의를 맡았는데, 서울과 대전을 왕복하는 것이 번거롭고 시간 소모가 많아 겸직교수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융합과 통섭은 어떻게 다른가요.

“통섭은 미국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 펴낸 《컨실리언스》를 번역한 책 제목입니다. 컨실리언스는 추론 결과 등의 부합, 일치를 뜻하는 보통명사예요. 그러나 윌슨이 《컨실리언스》에서 생물학을 중심으로 모든 학문을 통합하자는 이론을 제시함에 따라 컨실리언스는 윌슨 식의 지식통합을 의미하는 고유명사로도 자리매김했지요. 그러나 컨실리언스는 원산지인 미국에서조차 지식융합 또는 기술융합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한 사례가 없어요. 우리나라에는 2005년 《통섭》이 번역·출간되면서 번역자들이 만들었다는 용어 ‘통섭’에 원효대사의 사상(思想)이 담겨 있다고 선전해 대중의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김지하 시인 등 많은 학자가 윌슨의 컨실리언스와 원효의 불교 사상은 아무런 관련성이 없다고 비판했죠. 그런데도 많은 지식인이 지금도 통섭을 융합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어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도 창조경제와 통섭을 연결시키는 발언을 한 적이 있어요. 두 개념은 서로 다릅니다.”

이인식 소장은 컨실리언스와 통섭의 오류를 지적한 김지하 시인, 이남인 서울대 철학과 교수 등의 글을 모아 지난해 《통섭과 지적 사기》를 펴냈다. 이 책은 정부가 선정한 ‘2014년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뽑히기도 했다.

—《통섭과 지적 사기》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얼마나 많은 저명인사들이 현학적 표현으로 통섭을 남용했는지 금방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 ‘통섭’을 지적 사기라고 비판했는데도 이 책에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주요 언론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요. 이는 결코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지요. 합리적 비판은 지적 성숙을 가져와요.”

—2012년에 낸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청색기술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시죠.

“생물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해 경제적 효율성이 뛰어나면서도 자연친화적인 물질을 창조하려는 신생기술이 과학·산업계에서 주목을 받고 있어요. 이는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물영감’과 생물을 본떠 만든 ‘생물모방’이라 할 수 있지요.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을 아우르는 용어가 해외에서도 아직 없어요. 말하자면 세계 최초로 만든 전문용어인 셈이죠. 청색기술은 녹색기술의 한계를 보완하는 겁니다. 녹색기술은 환경오염이 발생하고서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측면이 강해요. 반면에 청색기술은 환경오염 물질의 발생을 사전에 억제하는 기술이죠.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인류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해법을 모색하는 청색기술은 단순한 과학기술이 아닙니다. 미래를 바꾸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이지요.”

나이만 많은, 젊은 미래과학자

이인식 소장이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를 낸 후 이 책을 본 일부 각계 전문가들은 ‘청색기술연구회’를 만들었다. 연구회는 자체 연구결과물을 토대로 《자연에서 배우는 청색기술》이란 책도 냈다.

이 소장이 만든 ‘청색기술’은 여러 분야에 전파되고 있다. 내년부터 청색기술이 본격 활용될 전망이다. 경상북도는 경북 경산 지역에 국내 최초로 청색기술센터를 건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광주과학기술원은 2016년 과제 공모에서 청색기술 개발을 위해 연간 3억~5억원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장께서 하는 강연 중에는 ‘포스트휴먼’이 들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과학기술이 인류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는 겁니다. 2020년 융합기술, 2025년 현상파괴적 기술, 2030년 게임 체인저 기술을 예측한 뒤 2050년 이후 포스트휴먼 시대를 전망하는 거죠. 이번 한국공학한림원이 선정한 ‘2035년 20대 도전기술’ 시나리오를 나 혼자 쓸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포스트휴먼 공부를 했기 때문이지요.”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국내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를 ‘보기 드문 비저너리(visionary)’로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지식과 열정 그리고 상상력이 뛰어난, 나이만 많은 젊은 ‘미래과학자’이다.

이인식 소장은 새벽 3시 반에 잠에서 깬다고 한다. 과학 관련 해외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다가 조간신문을 훑어보고 다시 잠든 후 8시에 일어난다.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책상에 앉아 공부한다. 점심은 집 근처 식당에서 지인과 같이 한다. 다시 집에 들어와 저녁 6시까지 또 책을 보고, 청탁원고를 만진다. 저녁식사 시간 이후에는 그냥 쉰다. 머리를 완전히 비우는 것이다. 프로야구 중계를 보거나 텔레비전 연속극도 즐겨 본다. 가급적 술 약속을 하지 않지만 밤 10시 전에는 꼭 잠자리에 든다.

휴대폰·이메일 없는 남자

그에게는 그 흔한 휴대폰이 없다. 개인 이메일도 없다. 그와 연락하는 방법은 집전화뿐이다. 그래서일까. 그가 꼭 필요한 사람만 그와 연락이 닿는다.

“피땀 흘려 원고 써서 번 돈이 아무렇게나 쓰이는 건 딱 질색이에요. 처음에는 한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휴대폰을 사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쓰려고 해도 쓸 수 없게 됐어요. 뭔 휴대폰 기능이 그리도 많은지…. 이제 휴대폰을 안 쓰는 게 일종의 브랜드가 된 것 같아요. 물론 휴대폰이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는 걸 모르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메일로 중요한 사람들과 정보를 주고받기 때문에 소통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

—올해 우리나라 나이로 일흔하나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신의 삶에 대해.

“개인적인 얘기를 잘 안 하는데, 나는 여섯 살부터 부모 없이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항상 생존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것만으로도 내 인생의 큰 행운이지요. 이제 글도 쓸 만큼 썼다고 생각해요. 언론과 출판계 여러분에게 정말 많은 신세를 졌지요. 남은 시간은 내가 받은 은혜에 보답하며 살아갈 생각이에요.”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는 기자의 등을 두드린 이 소장은 “한 가지 빠진 게 있다”고 했다.

—뭐죠.

“손자 선재(宣載)가 막 말을 하기 시작했는데 너무 예뻐요.”

—축하합니다.

영락없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그제서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