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지역 지킴이’ 鄭仁壽씨의 국민 세금 지키기 : 월간조선

애초 기자의 관심은 전국 지자체가 벌이고 있는 하수관거정비 임대형 민자사업(BTL·Build-Transfer-Lease)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터무니없는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알고 보니 실상은 달랐다. 대형 건설사들이 비난을 받을 정도의 폭리를 취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사업은 다른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땅속에서 벌이고 있는 이 사업은 부실 공사 문제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공적 연금처럼 미래에 국가재정 압박 요인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지난해 11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수석전문위원실이 낸 〈2015년 환경부 예산안 검토보고서〉에 나온 BTL 사업에 대한 개요를 원용하면 다음과 같다.

〈BTL 사업은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제2조 제1호에 따른 도로, 철도, 상하수도, 학교시설 등의 신설·증설·개량 또는 운영에 민간의 투자를 유치한 후 해당 시설의 소유권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민간 사업자에게 시설임대료를 지급하는 사업방식으로, 주로 최종 이용자에게 사용료를 부과하여 투자비 회수가 어려운 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적용하는 방식임.〉

하수관거 정비 사업은 간단히 말해 오수(汚水)와 우수(雨水)가 흐르는 하수관로를 분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정이나 빌딩에 있는 정화조를 없애고 오수를 곧바로 하수관로로 연결해 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보내는 시스템도 구축하는 것이다.

환경부가 하수관거 확충 및 불량 하수관거 교체를 위해 BTL 방식을 본격 도입한 때는 2005년이다. 수질 개선 등 환경 차원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지만 재원을 당장 마련하기 어렵자 국가 재정이 투입되지 않는 BTL 방식을 도입하게 된 것이다.

2005년 도입 후 이듬해인 2006년 5월에 전국 최초로 김해시에서 이 사업을 착공했고 2008년 11월에는 충북 진천군이 이 사업을 최초로 준공했다.

이렇게 출발한 전국 지자체의 하수관거 정비 BTL사업은 2013년 12월 말 현재 총 97개 사업장에서 기본계획을 수립·고시했다. 사업비를 다 합치면 5조8817억원이다. 이 가운데 83곳이 2013년 말 현재 준공을 마치고 운영 중에 있다. 지자체의 총사업비 중 국고 지원 비중은 일반 시·군의 경우 70%, 도청소재지 50%, 광역시 30%이다. 시설임대 기간은 전국 지자체 공히 20년이다. 20년 동안 하수관거 공사 시행업체 측이 지자체로부터 운영비와 시설비 명목으로 임대료를 받는 것이다.

쏟아지는 하수관거 정비 사업 관련 민원

하수관거 부실 공사 확인을 위해 불법 매립 정화조를 파헤치고 있는 모습.

국가는 지자체별로 최고 70%까지를 국고에서 지원한다. 하지만 이 사업의 주체는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다. 시행사 선정에서 준공까지 모든 사업을 지자체가 주도한다. 이 때문에 지자체 공무원들이 비리 혐의에 연루되는 일들도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지난 1월 강원도 H군청 공무원 이모씨는 하수관거 정비사업 등 공사 편의 대가로 업체로부터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로 법원에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형도 하수관거 공사업체로부터 수천만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일이 있었다.

하수관거 건설업체와 이를 감리하는 감리담당자가 비리혐의로 실형을 받은 일도 있었다. 춘천지법은 지난 2월 6일 하수관거 정비업체 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감리업체 관계자 강모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과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또 강씨에게 돈을 전달한 건설업체 관계자 2명도 각각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선고했다.

준공 이후에도 시공 불량으로 인한 민원이 심심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2012년 10월 준공한 강원도 원주시 하수관거 정비사업은 준공 1년여 만에 배수관 연결 불량 등을 이유로 1400건이 넘는 민원이 쏟아졌다. 원주시는 975억원의 사업비가 든 이 하수관거 정비공사와 관련해 2032년까지 시설 임대료 2104억원, 시설 운영비 296억원 등 총 2400억원을 시공사에 지불해야 한다.

같은 사업을 2011년 6월에 준공한 전북 군산시의 경우는 국민권익위원회에서까지 조사에 나서야 할 정도로 많은 민원이 야기됐다.

군산시 하수관거 BTL사업은 총사업비 716억원을 들여 군산시 2개 동과 6개 읍·면 일원 114km에 이르는 하수관로와 5797개소에 배수설비를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이 가운데 일부 사업 구간에서 정화조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악취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민원이 국민권익위원회에까지 제기되는 일이 벌어졌던 것이다.

하수관거 공사로 쓸모가 없게 된 정화조를 흙 등으로 메워야 하나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오물이 그대로 방치되고 정화조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악취가 난다는 등의 민원이었다. 이 같은 민원에 따라 국민권익위가 2012년 4월 사흘에 걸쳐 군산시 하수관거 BTL사업 구간 324곳을 표본으로 전수조사를 벌였는데 이 가운데 169곳에 이르는 정화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절반이 넘는 정화조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하수관거 BTL 사업과 관련한 민원은 원주나 군산에 국한된 일만은 아니다. 아직 통계 수치로 잡히지는 않고 있지만 사업장마다 크고 작은 민원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수관거 정비사업은 사업규모가 커지면서 대형 건설사들도 참여하고 있다. 기자는 4월 중순 대형 건설사들이 하수관거 BTL사업을 통해 폭리에 가까운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를테면 공사비는 800억원을 쓴 건설업체가 향후 20년간 지자체로부터 부가세를 제외하고 임대료 등 2400억원가량을 회수해 간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임대료는 5년 만기 국고채에 따라 변경되고 운영비도 물가지수에 연동돼 있어 건설업체가 가져가게 될 돈은 엄청나다는 주장이었다.

20년간 회수해 가는 비용이 건설원가의 3배라면 문제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나 확인해 본 결과, 이 제보자는 건설사가 쓴 공사비 800여억원까지도 건설사 몫의 회수비용에 포함해 계산했다. 실제는 건설사가 2400억원에서 800억원을 뺀 1600억원을 회수해 가게 돼 있었던 것이다.

이 제보자의 주장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만난 대형 건설업체 출신의 전직 임원은 “하수관거 BTL사업이 큰 흑자를 내는 사업이 아니기 때문에 처음에는 대형 건설업체들이 참여를 주저하기도 했다”면서 “지금도 크게 흑자를 내는 사업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교통부 산하 기관에 근무할 당시 BTL 사업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하수관거 BTL 사업은 땅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검증이 어렵고 은폐도 쉬운 사업”이라면서 “건설사들의 폭리보다는 사실상 외상 공사인 이 사업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국민연금 개정이나 공무원 연금 개혁 문제처럼 미래 세대에 부담을 준다는 방향에서 접근해 보는 게 나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땅속에 암장돼 있던 진실은 ‘부실 공사’

땅속에 묻혀 있는 불법 공사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 포클레인 등 중장비도 동원됐다.

이런 과정에서 기자는 하수관거 BTL 사업과 관련한 부실 공사 문제로 지난한 싸움을 벌였던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주문진 하수관거공사 의혹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위원장 정인수(鄭仁壽)씨다. 정 위원장은 강릉시와 대형 건설사를 상대로 금년 1월 말까지 2년여에 걸쳐 이 문제를 놓고 다퉈 왔다. 2년여에 걸친 그의 싸움은 건교부 산하기관에 근무했던 한 인사의 “땅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 검증이 어렵고 부실 은폐도 쉬운 사업”이라는 점과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사업”이라는 말을 증명해 주는 증언에 다름 아니었다.

정 위원장은 ‘지역 지킴이’와 ‘세금 지킴이’로서 벌인 2년여 싸움을 꼼꼼하게 기록해 놓고 있었다. 기록의 말미 에필로그 부분에 적혀 있는 그의 소감부터 보자.

〈우리의 싸움은 주문진 하수관거 공사에서 불법·부실 시공돼 땅속에 암장돼 있는 것을 파헤친 것이다. 만일 비대위가 나서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암장돼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찾아낸 땅속의 진실은 ‘부실 공사’였다. 부실 공사는 하자 보수 등 사업비의 증가를 의미하고 이는 곧 국민 세금 부담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정 위원장이 이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때는 2013년 2월부터다. 2010년 8월 사업 준공 2년6개월여 후였다. 이 사업은 강릉시 사업의 일부다. 강릉시 사업은 다른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BTL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고 70%, 지방비 30%를 투자하는 사업이었던 것이다.

강릉시 전체 하수관거 사업비 816억원 중 주문진 사업비는 32억원 정도다. 시행사는 강릉 아랫물길 주식회사로 돼 있으나 사실상 서울 소재 대형 건설사가 운영하는 곳이다. 다른 곳도 대략 이런 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 정씨 설명이다.

강릉지역 하수관거 공사 가운데 주문진 지역에서 문제가 발생한 이유는 주문진 지역의 분뇨수거를 담당하고 있는 D환경 업체가 2013년 초 지역 내 400여 개의 정화조가 불법 매립됐다는 폭로를 하면서부터다. 분뇨 수거 과정에 발견했다는 것이다. 정화조를 불법 매립했다면 부실 공사는 물론이고 그 안에 있던 인분 등으로 인해 토양·수질 오염까지 염려되던 상황이었다.

정 위원장 등 주문진 주민들은 그해 2월 비대위를 구성하고 주문진 일대 하수관거 공사에 포함돼 있는 800개의 정화조 전수조사와 토양, 수질 오염 등 환경 피해 여부를 규명하는 역학조사 실시, 하수관로 공사 부실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CCTV 조사 등을 요구했다.

정 위원장이 이 일에 뛰어들자 주변의 우려와 만류도 만만치 않았다. “(건설을 맡은) 재벌회사와 싸워 이길 수 있느냐, 막강한 조직력을 갖춘 행정기관과 싸워 이길 수 있느냐, 준공한 지 2년6개월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무슨 수로 땅속에 묻혀 있는 불법 현장을 찾아낼 수 있느냐” 등등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정 위원장은 비대위 결성 후 건설사와 주무 관청으로부터 회유와 압박을 수없이 받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 위원장은 이에 굴히지 않고 주민 서명 운동 등을 전개했다. 다행히 주민들의 호응이 따랐다. 이에 힘입어 그해 5월 23일에는 기자회견을 열어 본격 여론화 작업에 나섰다.

하수관거 부실 문제를 주문진의 문제에서 강릉시 전체의 문제로 확산하기 위한 시도였다. 결국 강릉시 의회는 그해 7월 1일 주문진 하수관거 공사와 관련해 전수조사를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비대위 결성 143일 만이었다.

시의회는 8월 본회의 의결로 민간조사위원 3명, 시의원 3명, 공무원 3명, 건설사 직원 1명으로 구성한 주문진 하수관거 공동조사단을 꾸렸다. 이들은 매월 조사활동을 협의했다.

하지만 강릉시청은 지방선거를 앞둔 지난해 4월 기자회견을 열고 주문진 하수관거 공사에 대해 전수조사를 벌인 결과, 정화조 분뇨 미수거 등 문제가 발견된 곳은 경미한 수준으로 전체의 6.3% 정도라고 발표했다. 이에 대한 정 위원장의 반박이다.

“2013년 12월 27일 주문진읍 사무소에서 열린 제7차 공동조사단 회의에서도 굴착조사 대상 145개소 가운데 51개소에서 문제가 나온 것으로 보고가 된 회의록이 있습니다. 하자율이 35% 정도라는 것인데 제가 주민 신고를 받을 때는 50~60% 정도 문제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조사활동이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하자율을 6.3%라고 한 것은 다른 의도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공동조사단 회의에서 5월에 공동조사단 차원의 전수조사 결과 발표를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아는 강릉시가 발표를 서둘렀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이겠습니까.”

—강릉시가 주장하는 하자율 6.3%라는 수치는 어떻게 나온 겁니까.

“원래 주문진 지역 조사 대상 정화조가 803곳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145개소만 조사한 상태에서 803곳 전체를 조사한 것처럼 발표한 것이죠. 803곳 중 51곳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면 6.3%가 맞죠. 하지만 당시 조사 대상은 145개소였고 그 가운데 51곳에서 하자가 발견됐으니까 하자율은 35%가 맞는 겁니다.”

폐쇄하지 않은 정화조 등 부실 발견

건설 폐자재로 메워진 정화조 내부.

강릉시의 발표가 있기 전인 2013년 9월 공동조사단은 2개월여에 걸쳐 1차 현장 확인 조사를 벌였다. 1차 조사에서 ▲폐쇄돼야 할 정화조가 방치된 경우 ▲기록상 폐쇄로 돼 있으나 실제로는 폐쇄되지 않은 경우 ▲악취로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경우 ▲업체가 부담해야 할 분뇨 수거비를 건물주에게 부담하게 한 경우 ▲정화조를 폐자재 등으로 메우거나 분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 등의 부실이 드러났다.

공동조사단의 법적 지위는 2014년 6월 30일까지였다. 7월 1일부터는 새로운 의회가 구성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후 조사활동은 민간조사단 주도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정 위원장은 도의원을 지낸 경력 덕분에 가가호호를 방문해야 했던 조사활동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민간조사단의 활동은 금년 1월 26일로 막을 내렸다. 민간조사단은 그 날짜로 ‘활동보고서’를 냈다. 1차 조사에서 밝혀졌던 ▲정화조를 콘크리트 덩어리 등 폐자재로 메우거나 ▲분뇨를 그대로 방치하는 등의 부실공사 문제 외에 땅속 하수관로 이음 부분 문제 등을 새롭게 밝혀냈다. 민간조사단은 이를 근거로 강릉시 사업 현장에 있는 수천 개 정화조에 대한 전수조사 등을 요구했다.

왜 이런 부실이 준공 이전에 발견되지 않은 걸까. 2013년 3월 19일에 열린 ‘강릉시의회 특위 회의록’에서 그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업의 준공을 심사, 결정하는 준공심사평가위 구성과 관련한 내용이다.

〈위원: 준공하기 전에 성과평가위가 결과 보고를 했어요. 근데 결과 보고는 100% 합격으로 했거든요. 여기에 참여한 평가위원이 11명이더라고요. 평가위원은 누가 선정해요?

생활하수과장: 평가위원은 강릉시공무원 3명, 전문가 4명, 사업시행자 2명, 주민대표 1명, 전문가는 주무관청에서 3명을 추천하고 사업 시행자가 2명을 추천합니다.〉

평가위원 11명 중 사실상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주민대표 1명뿐이었던 것이다.

정 위원장의 하자율 35% 주장과 강릉시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 요구에 대해 강릉시 담당 공무원의 입장을 들어봤다.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민간조사단으로 참여했던 분들은 조사 결과 하자율이 35%라고 주장하고 있는데요.

“그걸 하자율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지만 문제가 된 곳은 전체 조사 대상 중 6.3%가 맞습니다.”

—민간위원들은 강릉시 전체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현재로서는 그런 계획이 없습니다.”

—6.3% 하자율은 미미하다고 보는 겁니까.

“전수조사를 한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주문진 지역에서 애초 제기됐던 부실 공사 의혹(천공을 통해 정화조의 인분을 그대로 버렸다는 의혹-편집자 주)은 안 나왔어요.”

—폐자재로 정화조를 메우고 인분이 정화조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경우 등의 부실이 전수조사에서 밝혀졌는데도요.

“조그만 부실 공사는 있었지만 모두 원상복구했습니다.”

—주문진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그것이 35%이든 6.3%이든 다른 지역에서도 부실이 나올 개연성은 있는 것 같은데도 전수조사 필요가 없다는 말인가요.

“그렇죠.”

사직 당국에 문제 제기할 생각

하수관거 정비 사업은 汚水와 雨水가 흐르는 하수관로를 분리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사진은 하수관 내부 모습이다.

강릉시 담당 공무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정인수 위원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이렇게 말했다.

“같은 시기에 같은 시행사가 동일한 방법으로 행한 공사인만큼 강릉시 관내의 공사 대상 다른 지역에도 주문진과 같은 불법·부실의 개연성이 있는 만큼 실체적 확인을 위해 강릉시가 지금이라도 전수조사를 해야 마땅합니다. 지금 부실을 바로잡지 않으면 먼 훗날 더 많은 세금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강릉시가 전수조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이를 더 이상 파헤치는 일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요.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이죠. 제가 처음 이를 여론화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도 상황은 같았습니다. 하지만 결과야 어찌됐든 저희는 이를 여론화하고 문제점이 드러나게 하는데 일조했다고 자부합니다. 지금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으로 감사원을 비롯한 사직 당국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70을 눈앞에 둔 나이에 세상의 잘못된 것에 눈을 감아 버리고 편하게 살면 그만이지 왜 그렇게 사서 고생하냐고 말리고 있습니다만.”

—가족들의 말대로 이제는 적당히 쉴 나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 사업은 강릉시만이 아니라 전국 100곳에 가까운 지자체가 지금까지 사업을 벌였거나 벌이고 있는 사업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자체들이 벌일 사업이기도 하고요. 이건 한마디로 외상사업입니다. 지금 당장은 국고가 덜 들어가도 차츰 국고 지원이 늘어나면서 우리 후대에 큰 짐이 될 사업입니다. 지금이라도 미래 부담을 덜어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국고가 잘못 사용되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연금 문제 못지않게 이 문제도 중요합니다. 땅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안 보인다고 모두가 모른 체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상대적으로 할 일이 적은 나 같은 노인네라도 나서야죠. 허허.”

하수관거 정비 BTL 사업과 관련, 연도별 임대료 지급액은 최초로 지급된 2009년에는 46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2년 만인 2011년 지급액이 1300억원으로 1000억대를 돌파한데 이어 지난해에는 346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방비를 포함하면 금년에만 6603억원이 소요되고 2018년에는 7018억원이 될 전망이다. 2019년 이후에만 지자체별 임대 기간 20년이 끝날 때까지 소요될 정부지급금은 10조7954억원으로 전망된다.

정 위원장 말대로 자칫 후대에 큰 짐이 될 수 있는 국가 재정 지출인 것이다.

국회가 작성한 〈2015년 환경부 예산안 검토보고서〉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BTL 사업이 단기적으로는 재정 부족 문제를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정부지급금 지출이 본격화하는 시점부터는 경직성 경비의 비중이 높아지는 원인이 되고, 장기적인 재정운용계획과의 연동이 되지 않을 경우 재정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음.

또한, 비용 부담의 측면에서 현세대가 부담해야 할 부분을 일정부분 후세대에 전가한다고 볼 수 있는데 저출산으로 인해 경제활동인구의 감소가 예상되는 점을 고려할 때 후세대의 1인당 부담액이 과다하게 커질 수 있음도 고려할 필요가 있음.〉

환경부 담당 공무원도 이런 말을 했다.

“하수관거 정비 사업은 꼭 해야 할 사업인데 지금 당장 국고나 지방비가 부족하기 때문에 BTL 사업으로 하는 겁니다. 국가 재정을 미리 당겨서 하는 사업이니까 외상 사업은 외상 사업이죠.”

이 환경부 공무원의 말을 바꾸어 말하면 BTL 사업은 우리 후손으로부터 돈을 빌려다 쓰는 사업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정인수 위원장 같은 ‘지역 지킴이’들의 감시 활동은 더욱 부추겨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