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의 올림픽 챔피언 배출한 브라이언 오서(Orser) 코치 : 월간조선

먼저 고백해야겠다. 이 기사에는 통상적인 기사보다, 기자 개인의 설명이 좀 더 많이 들어가 있을 수 있다. 인터뷰의 주인공인 브라이언 오서 코치(이하 오서)와, 인터뷰에 언급되는 김연아(金姸兒) 선수(이하 김연아)가 함께했던 중요한 순간에 기자도 함께했던 경우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기자는 《월간조선》에서 일하기 전, 김연아의 매니저로 일했다. 캐나다 토론토에 머물며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까지 함께했고,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리기 직전에 한국으로 복귀했다.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나고 벌어진, 전 국민과 피겨계가 지켜본 스승과 제자의 분쟁을 한국에서 지켜봐야 했다.

그 자리에 없었지만, 함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올림픽이라는 산을 함께 올랐던, 어떤 의미에서는 가족보다 더 가까웠던 사람들이, 점점 안 좋은 상황으로 얽혀들어 가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건 상당히 고통스러웠다.

캐나다에서 오서라는 존재

최악의 순간은 김연아가 트위터에 ‘거짓말 좀 그만 해줄래요? 이건 내가 결정한 거예요’라는 글을 올렸을 때와 오서가 캐나다 방송과 인터뷰하는 걸 지켜봐야 했을 때다. 김연아가 어떤 선수였는가. 역대 최고 점수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며 피겨스케이팅의 역사를 새로 쓴 선수 아닌가. 미국과 일본 등의 유수 언론이 그토록 관심을 보였던 한국 사람이 김정일, 김정은 외에 또 있을까. 게다가 김연아와 오서의 관계는 단순히 트위터 메시지 하나로 어찌하기엔 그 연원이 너무 깊었다.

오서도 만만치 않다. 캐나다에서 오서는 말 그대로 유명인사다. 거리를 함께 걸으며, ‘오서, 반가워요’라며 악수를 청하는 사람들을 수도 없이 맞닥뜨리곤 했다. 오랫동안 현역선수로 활약한 데다, ‘브라이언의 전투(Battle of the Brians)’로 불렸던 드라마 같은 라이벌전의 역사도 한몫한 것이리라. 1988년 캐나다에서 열린 캘거리 동계올림픽에서 오서는 미국 선수였던 브라이언 보이타노에게 안타깝게 1위를 내줬다. 이때의 충격을 극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오서는 후에 고백하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시상식이 끝난 후, 밴쿠버 올림픽 링크 뒤편에서 김연아가 오서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줬을 때 오서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심지어 이런 에피소드도 있다. 해외 경기에 참석하기 위해 김연아는 캐나다 토론토 공항을 자주 들락날락해야 했다. 김연아 본인, 혹은 어머니 박미희씨나 트레이너 중 누구 하나가 출입국 관리소에 잡히는 일이 잦았다. 캐나다에서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자주 들락날락하니 잡는 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무리 김연아가 세계 최고 수준의 피겨 선수라고 해도 캐나다의 공항 직원까지 왜 얼굴을 못 알아보느냐고 질책할 순 없는 일이다. 결국 생각해 낸 아이디어가 ‘오서의 편지’였다.

오서에게 부탁해 ‘이 사람은 토론토의 크리켓 스케이팅 클럽에서 저의 지도 아래 훈련하고 있는 피겨스케이팅 선수입니다’라는 내용 아래 오서의 서명을 넣은 편지를 준비했다. 그건 토론토 공항 ‘통행증’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 오서가 캐나다의 대표적인 TV채널에 등장해 제자와의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구구절절 답하는 것 자체가 기자의 눈에는 난센스(nonsense)였다.

확인 없이 기사 인용하는 언론

오서와 김연아는 지난 2009년 한 에어컨 광고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이미 벌어진 일, 시간이 흐르면 대중의 기억에서 잊히리라 기대했다. 현실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심지어 소치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인터넷에는 오서와 김연아의 관계를 저울질하는 기사가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오서가 소치에서 김연아보다 코스트너가 잘했다고 말했다’는 식이었다. 당사자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은 없었다. 러시아 매체나 일본 매체의 보도를 인용하는 식이었다. 오서에게 직접 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2월 10일부터 15일까지 목동 아이스링크에서는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가 열렸다. 2월 11일 기자가 링크를 찾았을 땐, 선수별로 공식 연습을 진행하고 있었다. 링크 주변은 기대보다 한산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김연아의 현역 시절 그랬듯, 공식 연습부터 미디어가 총력 취재전을 벌이고, 팬들이 까치발을 하고 입구 주변을 서성이는 건 이미 예전 이야기가 됐다.

오서는 캐나다 선수 남 은구옌(Nguyen)과 함께 4대륙 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9일 입국했다. 프레스룸에 오서가 보였다. 일단의 일본 기자들과 함께였다. 피겨 종목을 오랫동안 담당해 온 낯익은 기자들의 얼굴도 보였다. 소치 금메달리스트 하뉴 유즈루에 대한 질문들이 들려왔다.

“하뉴의 현재 컨디션은 어떤가?” “하뉴의 정신력(mental strength)은 어떻다고 보는가?” “다음 시즌은 어떻게 예상하나.”

김연아를 가르치던 시절, 오서가 매일같이 들었던 질문과 정확히 같은 질문들. 오서의 세계는 여전히 그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프레스룸을 나와 주차장으로 가며 오서에게 물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 한국 매체로부터 인터뷰 요청을 받은 적이 있나요?”

‘그런 적 없다’고 대답했다. 외신 보도를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왜 ‘누리지’ 않는 걸까, 의아했지만, 곧 깨달았다. 확인하지 않는 편이 기사의 흥미를 위해서는 더 나을 수도 있으리라.

한식을 좋아하는 오서를 위해 여의도의 한 식당으로 가는 길, 지나가던 직장인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다가왔다. 팬이라는 얘기를 한 것도 같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줬다. 스마트폰 화면 속 오서의 웃음이 환했다. 문득 김연아와 오서가 함께 찍었던 에어컨 CF가 떠올랐다.

“답을 정해놓고 인터뷰하는 언론”

인터뷰를 시작하자 오서는 ‘김연아와의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나는 (연아와 헤어진 이후에도) 쭉 앞으로 전진해 왔다. 코치로서의 커리어를 계속 이어왔다. 가르치는 선수들 가운데 올림픽 챔피언(하뉴 유즈루)도 나왔고, 유럽선수권대회 챔피언(하비에르 페르난데스)도 나왔다. 이번에 함께 온 남 은구옌은 주니어 세계선수권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했다. 왜 내가 과거의 얘기만을 해야 할까.”

오서는 일부 한국 매체들로부터 ‘대가를 지불할 테니 김연아와 왜 그렇게 끝났는지 독점 인터뷰를 해달라’라는 요청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거절했다. 올림픽을 앞둔 연아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나. 무엇보다 과거의 얘기만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연아도 연아의 길을 성공적으로 가고 있고, 나도 나의 길을 가고 있다.”

기자는 좀 다른 얘기를 꺼냈다.

—많은 한국인이 얼마나 큰 사랑을 당신에게 보냈는지 잊었는가. 당신은 마치 ‘히딩크 감독’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한국 미디어에는 외신을 인용해 마치 당신이 김연아를 폄하하는 듯한 기사가 몇 번이나 보도됐다. 당신이 일본에서 낸 책 《팀(Team) 브라이언》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당신과 김연아 모두 그런 식으로 이름이 오르내리지 않아도 될 사람들 아닌가. 당신에게 직접 설명을 들을 권리가 한국 사람들에게 조금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받았던 사랑과 존경을 기억하고 있다. 행복했던 기억이다. 감사(grateful)할 뿐이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연아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많은 얘기를 하곤 한다. 얼마나 열심히 훈련했는지, 점프는 어땠는지 등등. 물론 말하면서도 알고 있다. 나의 말 중 몇 문장만 기사화된다는 걸.

원하는 답이 정해져 있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러시아 언론이 소트니코바와 연아를 비교하는 질문을 할 때, 그들이 나에게 어떤 답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답을 제공해 줘야 할 의무가 나에게 있을까? 난 긴 답을 했고, 그중 몇 문장만 기사화됐다.

《팀 브라이언》도 마찬가지다. 연아는 내 코치 인생에서 중요한 선수다. 연아의 장점과 훌륭한 결과를 이뤄낸 과정에 대해 한 장(chapter)을 할애한 이유다. 내가 거기에 연아에 대한 안 좋은 얘기를 썼겠는가? 직접 읽어보면 맥락과 내용을 알 수 있다.”

피겨는 정치적인 종목

올해 갑자기 한국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지만 《팀 브라이언》은 지난해 11월에 출간됐다. 여기엔 ‘ISU가 선수에게 요구하는 것을 정확히 포착했다. 기회가 닿으면 심판진과도 적극적으로 대화하여 어떻게 채점하는지를 파악했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게 무슨 얘기일까.

당당히 올림픽 종목으로 자리하고 있지만, 피겨스케이팅은 사실 독특한 종목이다. 다른 스포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PCS 점수’, 즉 프로그램 구성 점수(예술 점수)라는 걸 매긴다(하계 종목 중 리듬체조에도 비슷한 채점 요소가 있다). ‘예술적으로 아름다워 보이는 것’ 외에는 사실상 별다른 채점 기준이 있을 수 없는 점수다. 논란의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자주 국제대회에 나와 얼굴을 알리고, 지속적으로 심판과 피겨계 인사들에게 선수의 장점을 어필해야만 PCS 점수가 올라간다고 볼 수 있다. 가끔 올림픽 피겨 종목에 북한 선수가 출연하는 경우가 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 때도 남자 싱글에 리성철 선수가 출전했다.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급의 경기를 펼쳤다. 하지만 점수는 짜디 짰다. 당연한 일이다. 시쳇말로 ‘나라 백’은커녕 국제대회 경험 또한 전무하다시피 한 선수에게 링크를 내어줄 리 없었다.

기자가 직접 겪은 피겨는, 최고의 수준으로 올라가면 지극히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스포츠다.

오서는 이런 피겨계의 문화에 익숙했다. 피겨의 불모지에서 온 선수가 국제무대에서 겪을 수 있는 난관을 그만의 부드러운 소통 방식과 넓은 인맥으로 세련되게 헤쳐나갔다. 때로는 한국의 빙상경기연맹이 할 수 없는 부분까지 메워줬다. 몇 번의 그랑프리와 밴쿠버 올림픽 기간 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기자가 직접 경험한 부분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경기 직전 웜업(몸풀기)을 할 때부터 벌써 본경기는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 오서는 끊임없이 심판들, 테크니컬 패널, ISU 임원들, 각국 연맹의 관계자들과 때로는 눈으로 혹은 손으로 인사를 나눈다. ‘우리 선수의 컨디션이 얼마나 좋은지 보이시죠?’라는 식의 제스처도 가볍게 보여준다.

아니, 어쩌면 본경기는 경기가 열리기 한참 전, 심판진 명단이 발표될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는지 모른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크리켓 스케이팅 클럽으로 초대받아 방문했던 이름이 보이기도 한다. 선수가 스케이팅을 하는 걸 보며 ‘이 부분은 이렇게 고치는 게 좋겠다’며 조언을 해준 기억이 난다. 모든 조언은 깊은 감사와 함께 접수된다. 피겨계 전반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일이 경기의 일부처럼 느껴졌다면 단순히 기자의 착각일까? 피겨는 그런 종목이다.

물론 김연아처럼 세계 최고의 월등한 실력을 갖춘 선수에겐 불필요한 것들이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ISU 부회장의 모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준비하며, 부회장뿐 아니라 많은 심판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코치와 훈련하는 게 김연아에게 마이너스만 되는 요소였을까.

오서에게 이에 대해 물었다. 오서는 한마디로 압축해 표현했다. ‘점수를 위해선 선수를 알릴 필요가 있다.’

“우린 방금 해고된 거야”

항간에는 김연아와 오서의 결별이 ‘돈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돌았다. 과연 그럴까. 오서의 말이다.

“연아나 나나 우리 모두 돈 문제 때문에 얽히는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나는 선수와 계약서를 쓰거나 하지 않았다. 당시 나는 연아에게 시간당 수업료(fee)를 받았다. 시간당 100달러였다.”

참고로 캐나다 달러의 2009년 평균 환율은 1117원이었다.

김연아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5일 훈련을 했고, 토요일에는 보통 코치 없이 혼자 훈련을 하곤 했다. 평일에는 링크에서 1시간30분과 30분, 총 2시간가량을 두 세션으로 나눠 연습을 했다. 올림픽 준비 당시 언론을 통해 보도됐듯, 하루 내내 오서하고만 훈련한 게 아니라 보조코치 격이었던 트레이시 윌슨과 훈련을 하기도 했고, 데이비드 윌슨과 안무를 다듬기도 했다.

오서는 계약서를 언급했다. 실제로 피겨 선수와 코치가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명 코치 중에는 ‘선수가 번 모든 수입(후원 수입 포함)의 5%를 코치에게 지불한다’는 조항을 넣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기자가 계약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외국의 스포츠 에이전트에게 그 존재를 들은 적은 있다.

—당신이 일본의 아사다 마오 선수를 가르치려고 김연아에게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일단, 아사다 마오의 소속사인 IMG로부터 그런 제의를 받았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만약 연아가 선수 생활을 은퇴한다면 마오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나는 이런 제의를 받았다고 연아 쪽에 알렸다. 더불어 ‘연아는 전에도 그랬듯이 지금도, 앞으로도 나에게 최우선순위에 있는 선수다. 앞으로의 계획이 정해지면 알려달라’는 얘기도 했다. 당시 연아는 현역 선수를 은퇴할지 여부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상황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출전도 망설였던 걸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어느 날 김연아의 어머니인 박미희씨가 모임을 소집했다. 나와 트레이시가 함께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이제 더 이상 당신은 연아의 코치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당시 연아의 매니저를 맡고 있던 직원이 통역을 했다. 이유는 들을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코치실로 걸어오면서 트레이시가 이런 말을 한 게 기억난다. ‘브라이언,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래서 내가 말했다. ‘우린 방금 해고된 거야.’ 그러자 트레이시가 말했다. ‘올림픽을 준비하며, 연아와 그 모든 일을 함께 겪었는데 이제 해고라고?’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긴 마찬가지다.”

살해 위협 메일 받기도

밴쿠버 올림픽 당시 쇼트프로그램의 점수가 발표된 후 좋아하는 김연아와 오서.

—하지만 그때 김연아 측보다 먼저 결별에 대한 보도자료를 내지 않았나.

“그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주니어 선발전이 열렸다. 크리켓 클럽의 코치 중 한 명인 지슬란이 선발전에 참가하는 윤예지 선수를 위해 한국으로 갔다. 거기에서 지슬란이 연아와 나의 결별에 관한 얘기를 취재진에게 했다. 그 직후부터 며칠간 전화와 이메일이 불통이 될 지경이었다. 휴대폰으로도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상황을 끝내려면,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게 필요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단순하게 그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바람직한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그럼 캐나다 방송과 인터뷰는 왜 했나.

“연아가 한국 언론과 취재원-취재진의 관계를 맺고 있듯, 나도 캐나다 언론과 취재원으로서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해 했다. 왜 캐나다에서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훈련했던 선수와 내가 그런 식으로 끝났는지 어떻게 궁금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한국에서 끊임없이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왔다. ‘돈을 요구했다던데 사실이냐’는 식이었다. 거짓 얘기가 흘러다니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나도 내 입장을 설명해야 했다.”

—언젠가 김연아와 당신이 그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눌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솔직히 나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는데 연아는 어떨까, 잘 모르겠다.”

지난해 4월 기자는 김연아와 심층 인터뷰를 했다. 당시 기사엔 쓰지 않았지만 인터뷰 도중 오서 이야기가 나왔다. 어떻게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연아의 옆에는 구동회(具東會) 올댓스포츠 사장이 앉아 있었다. 구 사장은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김연아의 옆에 앉아, 질문에 대신 답하기도 했다. 오서 얘기가 나오자 김연아는 구 사장에게 “그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라고 물었고, 구 사장은 “너는 몰라도 돼”라고 답했다.

—한국 사이트에 올라오는 당신에 관한 글들을 읽나?

“전혀. 읽지 않는다. 연아와 헤어진 후, 연아의 팬이 나의 개인 이메일로, 토론토로 건너와 나를 죽이겠다는 살해 위협 메일을 보낸 적도 있었다. 영어로 할 수 있는 모든 욕이 한 문장에 모여 있는 것도 목격했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에 대해 욕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일부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금메달 이후엔 정직이 최선

조금 잔인한 질문을 던져봤다.

“코치로서 김연아와 함께 훈련했던 시간들이 그리운가요?”

오서는 잠시 생각했다.

“그립다. 그때 우리는 완벽한 팀이었다. 나와 트레이시, 데이비드. 우리는 연아가 소녀로 와서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가는 걸 옆에서 지켜봤다. 몸과 마음이 성숙해 가고, 인간으로서 좀 더 큰 사람이 되어가는 걸 지켜보는 게 행복했다. 수줍었던 소녀가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 나가고 웃음이 많아지고 다른 선수들과 농담을 하고….

심지어 나는, 언젠가 연아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참석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함께 인간으로서 성숙해지면서 늙어가는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연아는 좋은 제자이기도 했다. 훈련에 충실하고, 조언에 꼼꼼히 귀를 기울였다. 그때는 어떤 오해나 소문, 소동(Drama) 없이 그저 하루하루 훈련만 했다. 돌아보면 행복한 시간이었다. 연아를 가르치며 나 또한 코치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아쉬운 점은 이거다. 연아와 내가 헤어지는 방법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일어날 필요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때 연아가 만약 뭔가 방향을 바꾸고 싶었다면, 내가 누구보다 더 큰 후원자가 될 수 있었다. ‘더 성장하기 위해 다른 코치와 훈련하고 싶다’고 말하면 함께 코치를 물색해 볼 수도 있었고, 훈련 지역 자체를 옮기고 싶었다면 어디가 좋을지 함께 고민해 줄 수도 있었다. 아쉽다. 그리고 연아가 나를 싫어하게(dislike) 된 게 슬프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후에는 상황이 예민하게 흐른다. 당사자도 알 수 없게 상황이 꼬이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직해야 한다. 솔직하게 의사소통하는 것만이 최선이다.”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솁 골드버그(Goldberg)라는 에이전트였다. 솁은 미셸 콴(Kwan)과 에반 라이사첵의 에이전트였다. 라이사첵은 김연아와 함께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미국의 피겨 선수다. 솁은 오랫동안 콴의 옆을 지켰다. 콴은 많은 사랑 속에 현역에서 은퇴한 후, 국제 문제 쪽으로 진로를 바꿔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미국 유수 언론들이 부고에 이런 말을 썼다. ‘그는 정직했고, 콴을 위험에서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콴에게 해가 될 것 같은 광고나 후원은 거부했다. 그는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사람이다.’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솁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금메달의 한 귀퉁이라도 떼어가려는 사람들이 앞길에 나타난다. 거기에서 선수를 잘 지켜주고 옳은 길로 함께 가는 게 에이전트가 할 일이다.”

인터뷰가 끝나고 오서는 남은 경기 일정을 위해 링크 안으로 사라졌다. 오서는 인터뷰 내내 ‘나는 모든 일어났던 일들을 극복해 앞으로 전진했다’고 말했다.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처럼 들렸다. 그렇게 되면 기자 또한 지금은 글로 옮기지 못하는 많은 얘기를 풀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상단주메뉴

두 명의 올림픽 챔피언 배출한 브라이언 오서(Orser) 코치

“아직도 연아와 결별한 이유 모른다”

1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