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사람들 ② 死後세계에 빠진 한국학 학자 : 월간조선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모든 것은 죽음과 함께 사라지기 마련 아닌가”라고, 이탈리아의 미술가이자 과학자·사상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잘 보낸 하루 끝에 행복한 잠을 청할 수 있듯이 한 생(生)을 잘 산 후에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시인인 월트 휘트먼은 “죽음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일어날 수 없다”, 중국의 도가(道家) 사상가인 장자(莊子)는 “삶은 죽음의 길을 따르는 것이요, 죽음이란 삶의 시작이니 어찌 그 근본 이유를 알 수 있으랴. 삶과 죽음이 서로 뒤따르는 것이라면 나는 또 무엇을 근심하겠느냐”고 했다. 죽음이란 동서고금을 통털어 철학자와 문인들의 단골 화두이고, 인류의 태생과 함께 시작된 풀지 못한 난제다.

강요받은 과학적 思考가 死後세계를 부정하는 것

대다수의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누구나 죽음을 맞지만, 정면으로 맞닥뜨리기 껄끄럽다. 지난 2005년 한국죽음학회를 만들어 죽음과 사후세계를 연구하는 최준식 교수는 이런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이화여대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최 교수는 “천동설(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고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이 지배하던 시절에 지동설(태양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나머지 행성이 그 주위를 공전한다)을 주장하면 이상한 취급을 받았듯이 사후세계를 얘기하면 비웃지만 실제로 존재한다. 사후세계를 인정하면 지금의 내 삶이 훨씬 여유롭고 풍족해진다”고 주장한다. ‘죽음’을 정면으로 직시해 강의하는 최 교수에게 가장 궁금한 질문부터 던졌다.

—정말 사후세계가 있습니까.

“죽음 공부를 한 이후에 수없이 들었던 질문입니다. 근사(近死)체험을 한 사람들의 증언이 차고 넘치는데 사후세계를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실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지 않겠다고 하면 도리가 없지요.”

—체험자 증언만이 사후세계를 증명할 수 있군요.

“오늘날 사후세계를 부정하는 것은 과학적 사고(思考)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이란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같은 조건에서 실험했을 때 언제, 어디서, 누가 하든 상관없이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실험할 수 없는 것은 비과학적으로 규정됩니다. 이 잣대로 본다면 ‘죽음 뒤에 삶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실험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비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이 싫어하는 단어 중 하나가 ‘주관적’이라는 겁니다. 최근 몇백 년 사이에 이런 세계관을 가진 과학이 전(全) 세계적으로 발흥하면서 인류가 과학적이지 않은 세계를 배격하게 됐습니다. 죽음 뒤의 삶을 긍정하는 태도를 미신처럼 생각하고, 사후생(死後生)을 부정해야만 지식인처럼 간주되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과학은 자신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므로 불가지론(不可知論)적 태도를 취해야 합니다. 사후생을 부정하는 것은 과학적 태도가 아닙니다.”

—과학적 입장을 배제하고, 체험자들의 증언을 100% 믿는다는 전제하에 사후세계는 존재하는군요.

“과학이 사후세계를 부정한다면, 반대로 여러 사람들이 동시에 경험한 사후세계의 경험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해야 합니다. 사후세계 연구의 권위자였던 고(故)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ubler Ross) 박사는 ‘어쨌든 그들은 죽을 때 알게 될 것이다(anyway they will know when they die)’라는 말로 일축했습니다.”

近死체험자, 뇌기능 손상커녕 오히려 증진돼

서양에서는 죽음의 문턱을 경험한 이들을 ‘죽음 근처 경험자(Near-death Experience)’라고 하고, 동양에서는 이를 번역해 ‘근사’ 혹은 ‘임사(臨死)’체험이라고 한다.

근사체험이란 임상적으로 죽었다고 판단되지만 후에 다시 살아난 사람들의 체험이다. 죽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5~15분간 맥박이나 숨이 끊긴 상태에 있다. 한 시간이 넘는 동안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다. 이 체험은 나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근사체험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에 살았던 스위스의 지질학자 앨버트 하임(Albert Heim)의 발표에서다. 하임 박사는 알프스 등반 중 조난당했던 사람들의 체험이 유사한 것을 발견하고 치명적인 사고를 당한 사람들, 즉 큰 부상을 당한 군인이나 노동자들의 체험을 수집해 발표했다. 본격적으로 근사체험 연구의 붐을 일으킨 것은 미국의 레이먼드 무디 2세(Raymond Moody)가 《잠깐 보고 온 사후의 세계(Life after life)》라는 책(1975년)을 출간한 이후다. 의사였던 무디 박사는 150여 명의 근사체험자를 만나 면담한 끝에 정리한 책을 낸다. 미국 코네티컷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케네스 링(Kenneth Ring)이 《Life at Death》라는 책을 쓴 후에 과학적인 연구가 시작됐고, 사후세계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영국의 《텔레그래프》는 지난 1월 4일 “임상적으로 사망했다가 다시 심장이 뛴 생존자의 39%가 사후세계를 경험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영국의 사우스햄턴대 연구팀인 미국·영국·오스트리아의 15개 병원에서 심장마비 환자(2060명) 중 의료진이 소생시킨 3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40명이 사후세계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최준식 교수의 얘기다.

“의학적으로 뇌에 3~5분 동안 산소공급이 되지 않으면 뇌가 위중한 손상을 입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하지만 근사체험자들은 뇌가 손상되기는커녕, 사후세계를 경험한 후에 뇌의 기능이 놀랄 만큼 증진됐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게다가 이들이 증언한 내용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서로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동시에 경험한 일이 있는 겁니다.”

—어떤 공통점입니까.

“체험자들은 우선 자신이 죽었다는 말을 어디선가 듣습니다. 영혼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고, 빛의 존재를 느끼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과정을 겪습니다. 이윽고 어떤 경계에 다다르면 깊은 평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體外이탈 경험은 산소결핍으로 인한 환각?

근사체험자들은 어떤 터널(동굴)로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체외이탈 체험이지요.

“목숨이 경각에 있는 사람의 의식이 몸을 빠져나가 자신의 몸이나 주위 사람들을 보는 체험을 말합니다. 이 체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무디 박사가 든 소녀의 체험은 체외이탈의 전형입니다.”

최 교수가 말한 레이먼드 무디의 《잠깐보고 온 사후의 세계》 중 일부다.

〈약 2년 전, 내가 열아홉 살 나던 해였다. 차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다른 차가 빠르게 달려들어 크게 부딪쳤다. 차 옆 부분이 깨지는 폭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깜깜하게 닫힌 공간 속으로 뚫고 지나가는 기분을 느꼈다. 나는 길바닥 위 약 5피트, 차체 위 5야드쯤 되는 위치에 떠올라 있는 상태에서 사고의 폭음이 메아리져 가는 것을 들었다. 사람들이 달려와 자동차 둘레에 모여들었다. 나는 내 친구가 차 밖으로 기어 나오는 것을 봤고, 내 육체가 부서진 차체 부스러기 틈 사이에 누워 있는 모습을 봤다. 사람들은 그것을 끌어내려고 야단이었다.〉

최 교수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만신창이가 된 자기 모습을 흔들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는 체험을 하는 이의 사례는 굉장히 많다”고 말했다. 물론 이 장면을 지켜보는 영혼이 ‘나는 여기에 살아 있다’고 말해 봐야 육체(?)의 인간들은 알아듣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체외이탈 체험은 진실일까요.

“이 체험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체외이탈 현상이 뇌 속에서 일어난 이미지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조사에 따르면 여러가지 이유로 뇌에 일정한 자극이 생기면 피실험자가 스스로 상상 속에서 체외이탈했을 때와 똑같은 이미지를 그린다고 합니다. 이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산소결핍설입니다. 뇌는 산소에 지극히 민감해서 잠깐이라도 산소공급이 끊기면 몽롱한 상태에서 체외이탈과 비슷한 체험을 한다는 것이죠. 또 대뇌의 측두엽에 자극이 가면 간질발작 같은 것을 도출할 수 있는데, 이때 체험이 체외이탈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환각으로 보기도 합니다.”

—환각이요?

“약물투여 현상과 비슷하다는 겁니다. 서양 의학자들은 1970년대에 인체에서 모르핀을 닮은 약물이 분비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근사체험에서 죽어 가는 뇌가 임종에 처한 자신의 고통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엔도르핀과 같이 진통 효과를 가진 물질을 산출한다는 겁니다. 이런 물질로 환각을 느끼는 것이 근사체험이라는 겁니다.”

—과학의 입장에서는 그럴듯한 주장입니다만.

“그런데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멕시코 출신으로 미국에서 이주하다 갑자기 심장발작을 일으켰던 마리아라는 여성의 경우입니다. 그는 자신이 혼수상태일 때 영혼상태로 몸에서 빠져나와서 자기 주위에 일어난 일을 다 목격했다고 실토했습니다. 마리아는 영혼상태로 공중에 떠서 3층 창틀에 놓인 신발을 봤다며 정확하게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말한 창틀은 혼수상태의 몸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뇌가 만든 환각이라고 하기에는 정확한 지식이었습니다. 칼 베커(Carl Becker) 박사가 제시한 사례 역시 이를 뒷받침합니다.”

최 교수가 말한 칼 베커 박사는 종교학자로 사후세계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베커 박사는 지난 2004년 11월, 한림대학교에서 사후세계에 대해 강연했을 때 다음의 사례를 들었다.

“일본에서 한 청년이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가 되어서 병원에 실려 갔다. 응급조치를 받고 소생했는데, 그는 자신이 병원에 실려오는 동안 돌아가신 할머니와 사촌을 만났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할머니야 돌아가신 분이니 만날 수 있지만 멀쩡히 살아 있는 사촌을 만났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사촌이 그가 죽기 바로 직전에 죽었다는 전갈이 왔다.”

최준식 교수에 따르면 이외에도 ‘체외이탈’을 단순히 산소결핍으로 인한 뇌의 이상 작용으로 보기 어려운 사례는 많다. 최 교수의 얘기다.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 당시에 죽음 직전에 갔던 병사들의 영혼이 미국에 있는 자기 집으로 찾아가 당시 상황을 정확하게 증언한 목격담이 많습니다. 만일 단순 산소결핍증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냈다면 사고 당시 자신을 구하러 왔던 구급차의 번호나 대원의 이름까지 기억하는 체험자들의 증언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터널 건너면 예쁘고, 아름다운 세계가 펼쳐져

최 교수가 말하는 정신세계의 단계.

근사체험자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경험 중 하나는 영혼이 몸을 빠져나가서 어딘가 어두운 공간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컴컴한 동굴이기도 하고, 소음이 심한 어딘가이기도 하다. 근사체험자들은 그 끝에 따뜻한 느낌의 환한 빛이 있다고 증언한다. 사후세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를 ‘터널체험’이라고 부른다. 최준식 교수는 코네티컷 대학의 교수였던 케네스 링 식(式)으로 설명한다.

“링의 연구에 의하면 터널체험은 우리의 의식이 3차원적인 감각의 차원에서 그것을 넘어서는 영혼의 4차원적 세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생긴 것으로 보입니다. 링에 따르면 4차원적 세계는 물질이 아닌 에너지의 진동만으로 구성돼 있어서 육체만 존재하는 3차원과는 많이 다릅니다. 이 터널을 통과하면 매우 아름다운 세계를 만납니다. 근사체험자들은 이승에서 보았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예쁘고, 아름다움을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합니다. 체험자들은 이때 편안함을 느끼는데, 자신의 영혼이 저승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입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안내자와의 만남이다. 이 안내자는 아주 밝은 빛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보통 ‘빛의 존재(Figure of Light)’로 불린다고 한다.

최 교수의 얘기다.

“근사체험을 하고 살아 돌아온 사람들 중 대부분은 과거와 180도 다른 삶을 삽니다. 이타적인 일을 하거나, 환경 관련 일을 하는 경우가 많고요. 이유 중 하나는 이 빛의 존재를 경험하고 나서라고 보입니다. 체험자들에 따르면 이 단계에서 빛의 존재와 함께 자기의 삶을 영상으로 회고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한 일들이 아주 생생한 영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는 겁니다. 이 과정에서 체험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무모하고 이기적이었나를 철저히 깨닫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빛의 존재는 영혼을 질책하는 것이 아닌 시종일관 사랑으로 대한다고 합니다. 이승에서 느낄 수 없는 무조건적 사랑을 느낀다고 답한 근사체험자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근사체험자들이 나중에 이생으로 돌아오고 난 후에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겁니다.”

삶의 회고를 마친 영혼들은 이승의 마지막 지점에 이른다. 이른바 ‘장벽’을 만나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혼들은 이 장벽을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도로 돌아올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최준식 교수의 얘기다.

“마지막 단계에서 만나는 장벽이 사람마다, 문화마다 다릅니다. 서양인들에게 나타나는 장벽은 담장, 벽입니다. 근사체험을 한 아랍인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막을 장벽으로 봅니다. 바다 근처에서 살았던 이들에게는 물로 형상화된다고 합니다.”

美에서 베스트셀러였던 뇌의학 권위자 이븐 알렉산더의 책.

—우리는 어떤가요.

“한국인을 지칭한 연구가 정확지는 않지만, 일본의 경우를 보면 삼도천(三途川)이라는 강을 이승의 마지막 관문으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치바나라는 학자의 조사에 따르면 많은 일본인들은 근사체험 때 삼도천을 만납니다. 이미 타계한 부모나 조부모가 서 있는 것을 보는 경우도 심심찮습니다. 이들이 ‘이곳으로 넘어오면 안 된다’는 식의 권유를 받는데 이때 당사자들은 직관적으로 ‘저곳을 넘어가면 돌아올 수 없구나’라는 것을 깨닫는다고 합니다.”

—문화마다 다르군요.

“장벽을 본 근사체험자들이 자기의 거취를 정합니다. 빛의 존재, 무형의 목소리로부터 ‘당신은 아직 이곳에 올 때가 아니다’는 통보를 받는 경우가 있고, 빛의 존재가 그들에게 스스로 의견을 묻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돌아가게끔 유도하는 것이지요. 근사체험자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이승으로 다시 돌아올 때 그냥 온 것이 아니라 할 일은 갖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일종의 ‘소명’이지요.”

지난 2012년 10월, 미국의 시사주간지인 《뉴스위크》는 뇌의학 권위자인 이븐 알렉산더(Eben Alexander) 박사의 ‘사후세계 체험기’를 표지 기사로 실었다. 알렉산더 박사는 박테리아성 뇌막염으로 7일간 뇌사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근사체험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뇌 부위가 완전히 정지된 채 혼수상태였다가 사망선고 직전에 기적적으로 깨어났다. 그가 체험하고 쓴 《나는 천국을 보았다(Proof of heaven)》는 베스트셀러가 됐다. 알렉산더 박사는 책에서 ‘죽음의 냄새가 나는 암흑세계를 지나 회전하는 관문을 통과해 중심근원을 만났다. 찬란하고 생기 넘치고, 아름다운 세계를 여행하면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기술했다.

최면 속에서 지옥에 빠진 자신을 바라본 학생

최준식 교수는 기존의 교육을 받아 온 대로 과학적 입장에서 접근하는 기자의 질문에 답답해했다. 최 교수는 “명확하게 실체가 있는데 믿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느냐”고 했다. 이제 과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저 너머 세상의 얘기를 믿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영계에서의 삶은 어떤 겁니까.

“죽은 뒤의 세계를 다루려면 신비주의자들의 얘기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스웨덴의 신비자인 에마뉴엘 스웨덴보르그(Emanuel Swedenborg)에 따르면 영계는 비슷한 영혼들이 끼리끼리 하나의 사회를 이루어 사는 곳이라고 합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날개 달린 천사가 있고, 지옥의 처참한 불속에서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 낸 이미지가 있는 곳이 영계라는 겁니다. 우리의 영혼은 일정한 파동을 지닌 에너지라는 주장이 오랫동안 학계에 있어 왔습니다. 그래서 죽어서 육체를 벗어나면 우리는 에너지의 형태로만 남습니다. 각 영혼에는 결이 있습니다. 그 결(파동)은 그가 그때까지 지니고 발전시켜 왔던 자신의 고유한 성품이자 성향입니다. 그런데 파동은 비슷한 것들끼리 모여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영적 수준이 높은 영혼들은 깊은 사랑과 지혜가 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곳에서 기쁨만을 느끼며 지냅니다. 반대로 남을 해치고 욕심만 가득한 영혼들이 있다면 역시 자기네와 성품이 매우 비슷한 사람들만 모이는 겁니다. 그런 곳에서는 계속해서 남을 해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모든 영혼들이 지상에서 하던 일을 반복하는 겁니다. 서로 해치는 영혼들만 모여 있으니, 이런 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옥과 매우 닮아 있을 겁니다.”

—사후에 먼저 돌아가신 부모나 조부모, 사랑했던 사람들을 만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은데요.

“충분히 가능합니다. 영계에서의 삶은 자신의 영혼 수준에 맞춰 나타납니다. 에너지 상태이기 때문에 모습은 언제든 바뀝니다. 쉽게 말해 내 어린 모습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어린 모습으로, 성인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에게는 그 모습으로 비칩니다. 영혼에 결이 있어서, 생전에 친했던 영혼들끼리 그 결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겁니다.”

—종교에서 보면 심판자가 있고, 그 심판에 의해 천국, 극락, 지옥 등을 가던데요.

“사후세계는 철저하게 자기가 만드는 겁니다. 정신적 은하계(mental universe)라 볼 수 있죠. 평생 돈만 세다가 죽는 은행원은 영계에서도 자신만의 은행을 만들어 놓고 계속 돈만 셉니다(웃음).”

—사후세계를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쉽게 믿겠는데 안타깝군요.

“저는 수많은 방법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모를 뿐이죠. 우리가 자는 사이에 무의식의 세계에 와서 꿈으로 얘기를 해 줍니다. 누군가가 옆에 있는 느낌이 들 때, 어쩌면 그 영혼이 내 곁에 있는 것 아닐까요.”

—과거에 살았던 영계 생각이 나면 참 좋겠습니다.

“지난 여름에 일어난 일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영계에서의 일을 어떻게 기억합니까(웃음). 하지만 최면과 연관지어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최면을 걸어 보면 자신의 과거로 돌아갑니다. 그때 최면에 걸린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웃다가, 울다가, 괴로워하다가 합니다. 만약 그들이 정말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 아카데미 주연상을 줘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예요.”

인터뷰를 하고 있는 와중에 최 교수의 제자 여학생이 들어왔다. 이 학생은 “한 번도 사후세계를 믿은 적이 없다”고 했다. 생생한 얘기인 만큼 지면에 싣는다.

“제가 과거에서는 삶을 제대로 못 살았어요. 최면상태에서 이번에 태어나기 이전의 영계로 갔는데 지옥이었습니다. 몸을 불로 지지거나 칼로 자르는 것이 아니에요. 제 육체는 머리와 두 손, 두 발이 한군데에 묶여 있었어요. 노끈으로 묶어 놓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이 그렇게 움직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마음은 계속 불안하고 공포스러웠습니다. 눈앞에 심판자가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떤 눈이 계속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았어요. 마음 속에서 누구를 원망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곧장 고통이 시작됐습니다. 나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나쁜 생각을 품는 자체만으로 마음에 고통이 전해졌습니다.”

최 교수는 이 학생이 최면에서 풀려나면서도 “잘못했다”며 울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나를 감시하는 눈’은 바로 내 내면이라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이 학생은 최면에서 풀린 이후에 삶을 바라보는 관점이 크게 달라졌다고 했다. 그는 “최면 전에는 그 뜻을 몰랐는데 이제는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안다. 의식상태에서 보는 것은 극히 작은 부분이며 그 이외의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삶에 집착하지 말고 충분히 정리하라

건강보험정책연구원이 전국의 만 20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죽음을 생각할 때 가장 걱정되는 것’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죽기 전까지의 고통’을 선택한 응답자가 전체의 29.9%였다. ‘가족의 처지’(27.3%), ‘생이 끝남에 대한 두려움’(25.1%), ‘못이룬 꿈’(11.1%)의 순이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죽음은 여러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끼친다. 최 교수의 얘기다.

“과거 성수대교 사고 때 사망한 여중생 아버지가 3년 뒤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조금만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사회적으로 관심 가지면 이런 문제는 막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 걷지 못해서 지팡이에 의지하다가, 휠체어를 탔다가, 일반병실에 입원했다가 병이 위중해지면 중환자실에 갔다가 그냥 죽는 것이 한국에서의 죽음입니다. 이것은 죽음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위 삶을 정리하고 충분히 작별해야 합니다. 죽음 앞에서 다른 근심은 없습니다. 지금의 전전긍긍은 사사로운 것이 됩니다. 그만큼 위중하고 위협적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삶을 정리하기보다 집착합니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약에 취해서 정신 못 차리고 가는 것보다는 편안히 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혼불》의 작가 최명희씨가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운 감정이 없다’고 종종 말했습니다. 저는 《혼불》과 같은 작품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학식이 출중하고 인생에서 많은 경험을 했을 테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실제로 큰 병으로 죽음 앞에 이르자 아주 인간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신은 죽음 앞에 담대할 줄 알았는데 막상 닥쳐 보니 그 심정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무명의 여성이라도 좋으니 지금 죽지 않고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지인에게서 이 얘기를 듣고 대작가는 인간적으로 솔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게 죽음입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을 무력화하고 왜소하게 만듭니다. 왜소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무로 만듭니다. 그런 죽음을 이제는 심각하게, 누구보다 인간적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