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민-최우석의 유쾌한 직설 ③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李錫兌 위원장 : 월간조선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제 잊자”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련법이 통과되고, 책임자가 구속됐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둡고 차가운 검은 물속에서 죽거나 실종된 304명의 희생자를 생각하면 참으로 무책임하고 비겁한 말이 아닌가 싶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향한 험난한 항해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다 끝났다. 이제 그만 잊자”는 목소리다.

2015년은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출범하는 해이다. 진상조사위의 주 임무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지금껏 묻혀 있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眞相)을 캐내는 일이다. 진상조사위에 거는 국민적 기대감은 상당하다. 이런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 도록 국가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가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과연 진상조사위는 기대치를 충족시킬 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을까.

과거 사례에 비춰봤을 때 진상조사위의 미래는 대체로 비관적이다. 특검(特檢)을 예로 들어보면 엄청난 사회적 논란 끝에 시작됐지만 새로운 사실이 밝혀진 경우는 거의 없었고, 설령 새로운 범죄 혐의를 발견해 기소했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 처벌에 머물렀다.

진상조사위 추천권을 가진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추천, 진상조사위 위원장으로 내정된 이석태 변호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이 변호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창립 멤버로 이후 이 모임의 회장을 지낸 진보 성향의 법조인이다. 참여연대 공동대표와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 등을 맡기도 했다.

처음 이 변호사는 몇 차례 인터뷰 요청을 고사했다. 엄중한 역할을 맡은 만큼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위원장은 진상조사위가 나아갈 방향과 구체적인 계획에 대해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설득에 마음을 바꿨다. 지난 1월 8일 이 변호사와 마주앉았다. 장소는 그가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 덕수 사무실에서였다.

“스케줄대로 잘 가고 있다”

—현재 내정자 신분이죠. 언제 정식으로 임명됩니까.

“아직 (청와대 쪽에서) 연락이 없습니다. 청와대 내부 사정은 제가 잘 모르겠으나, 조만간 연락이 오지 않을까요.”

—마음이 급하겠습니다. 빨리 임명장을 받아야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준비 작업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정식 임명이) 지나치게 늦어지면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스케줄대로 가고 있다고 봅니다. 사무실도 최근 계약을 마쳤는걸요.”

—임시 사무실 생활에서 벗어나셨겠네요.(서울지방조달청에 임시로 사무실을 꾸렸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그렇게 될 거로 봅니다.”

—새 사무실은 어디에 얻었습니까.

“중구 저동의 나라키움빌딩에 마련했습니다.”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까.

“위원회 예산 확보를 위한 자료 준비를 하고 있고, 정부와 진상조사위 사무처 등 구성을 위한 논의도 진행 중입니다.”

—진상조사위 실무진은 어떻게 구성할 방침입니까.

“법에 적시한 대로 전체 120명가량의 절반 정도는 정부에서 파견된 행정공무원으로, 나머지는 민간 인력으로 구성되는데 민간 인력은 공개채용을 거쳐 선발할 계획입니다.”

—채용안은 확정했습니까.

“준비 중입니다.”

—만약 유가족이 지원한다면 채용할 수도 있습니까.

“안 될 것은 없지요. 그런데 진상조사위 밖에서, 저희가 제대로 잘하고 있나 살펴보셔야 할 터인데, 굳이 들어오려고 하실까요?”

진상조사위 구성(총 17명)

■ 유가족 추천(3명)-이석태 변호사·이호중 서강대 교수·장완익 변호사

■ 새누리당 추천(5명)-조대환 변호사·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감사·석동현 변호사·차기환 변호사·황전원 기장군 노사민정협 위원장

■ 새정치민주연합 추천(5명)-권영빈 변호사·류희인 희망제작소 재난안전연구소장·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최일숙 변호사·김진 변호사

■ 대한변협 추천(2명)-박종운 변호사·신현호 변호사

■ 대법원 추천(2명)-김선혜 연세대 교수·이상철 변호사

단원고, 일반인 유가족 모두 똑같은 피해자

지난 2013년 6월 26일 민주당 초청으로 시민사회단체 간담회가 열린 가운데 참여연대 공동대표인 이석태 변호사(오른쪽 두 번째)가 발언하고 있다.

조사위는 총 17명(유가족 추천 3명, 여야 추천 각 5명, 대한변협 추천 2명, 대법원 추천 2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조사위는 최소 18개월, 최장 21개월간 세월호 참사 관련 진상 규명 활동을 할 예정이다.

위원장은 유가족 추천 3명 중 희생자가족대표회의가 선출한 이 변호사가, 부위원장은 여당 몫의 조대환 변호사(법무법인 하우림 대표 변호사)가, 진상조사위 내 진상규명 소위원회 위원장은 야당 몫의 권영빈 변호사가 선정됐다.

—희생자가족대책위원회에서 투표인 243명 중 242명의 압도적 지지와 신뢰로 위원장으로 선출됐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글쎄요. 조사위의 성격상 다른 분야의 분보다는 아마 변호사가 낫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아요. 제가 시민사회에 연관을 두고 활동한 경력도 고려해 주신 것 같고요.”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변호사님의 위원장 선출과 관련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의견만 반영한 사안이라고 하던데요.

“그렇습니까? 내정자 입장에 있는 저는 거기까지는 잘 모르고요. 위원장으로 내정되고 나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이 인천에 마련한 분향소를 찾아 분향하고 대책위 사무실에 가 인사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일반인 희생자 피해자 측에서 자신들이 추천하려 했던 위원 후보자 한 분에 대하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선임한 위원장이 아니다”며 배척하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나요.

“당시 전영선 단원고 희생자 대표님의 안내를 받아 갔었고요. 일반인 유가족 대표님은 만나뵙지 못하고 부대표님이랑 저녁을 같이 먹었습니다.”

2014년 12월 1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세월호 일반인 유가족 ‘진상위원 일방적 선출’ 반발이라는 제하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이 유족 추천 진상조사위원 선정 과정에 유감을 표시하고 나섰다.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의견만 반영했다는 주장이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은 15일 성명서를 내고 “진상조사위원이 다수의 유가족(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정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최근 유가족 추천 조사위원으로 이석태 전 민변 회장과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장완익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가 추천된 데 반발한 것이다. 이들은 “그동안 중도 성향의 인물이 선정되길 재차 요청했지만, 소수의 의견은 묵살되고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의 의견만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선입견 없이 모든 희생자 위해 일할 것”

세월호 유가족들로부터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 추천받은 이석태 변호사(왼쪽)가 2014년 12월 1일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 분향했다.

—일반인 유가족 분향소가 있는 인천을 찾았다고 하셨는데, 단원고 희생자 분향소는 안산에 있지 않습니까. 분향소도 같이 쓰지 않을 만큼 일반인 유가족과 단원고 유가족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원고 학생들이나 일반인 피해자들이나 세월호 참사의 피해자들인 점에서는 동일하므로 혹 그런 갈등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피해자들 외부에 있는 저로서는 아직은 그 원인 등에 대하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2014년 9월 29일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안산 합동분향소에 안치된 일반인 희생자 영정을 모두 철수했다. 단원고 유가족 대책위원회 유경근 대변인이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을 폄하하고 명예훼손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유 대변인이 9월 23일 오후 고려대에서 열린 ‘세월호 유가족 간담회’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취임 후 일반인 희생자 가족과 간담회를 가졌다”며 “김 대표는 특별법안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줄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며 종이 한 장을 꺼내 ‘청와대’라는 글자를 써서 보여줬고, 이후 바로 일반인 희생자들의 입장이 정리됐다”고 말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이다.

앞서(8월 25일)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은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지 않은 데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특별법을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을 벌였다.

—변호사님도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의 입장과 같았던 것으로 아는데요. 조사위가 단원고 희생자 중심으로 돌아가지는 않을까요.

“수사권과 기소권 부여 문제는 당시 제가 참여하고 있었던 시민사회의 일반적인 입장이었고요. 또 그건 이미 지나간 사안입니다. 저희 위원회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모든 희생자와 그의 가족을 위해 일할 것입니다.”

“진상조사위 성과 미흡하다면 책임은 나에게”

—수사권과 기소권이 부여되지 않았지만, 조사권한은 역대 특위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위원회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지만 비교적 많은 권한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수사권, 기소권은 없지만, 조사기관으로서 조사 대상자나 참고인에게 출석과 진술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필요하면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단체에 대해서 국가기밀로 분류되지 않은 사항에 관한 한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도 있고, 청문회를 열 수도 있습니다. 조사 결과 범죄 혐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검찰총장에게 고발할 수도 있고, 사안에 따라서 특별검사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엔 국회에 두 번까지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진상조사위의 권한을 보면, 자료제출이나 조사 협조를 거부할 경우 처벌할 수 있다. 증인·참고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특위의 조사에 불응할 경우 동행명령권을 행사할 수 있고, 동행명령을 거부하면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특위가 소집한 공개 청문회에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선서·증언을 하지 않거나 위증을 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수사·기소권을 가진 특검은 특위 활동 기간 중 2회 실시할 수 있다.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은 회당 최장 110일(준비기간 20일+활동기간 60일+기간연장 30일)간 활동할 수 있다. 특위 활동기간인 1년6개월 안에 길게는 220일에 걸쳐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위원회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가능하다고 생각합니까.

“세월호 특별법은 유족들의 간절함이 만든 슬픈 법이자 국민의 희망이 담긴 법이기도 합니다. 처음 조사위원장직 요청을 받았을 땐 두렵기도 했지만, 광화문 농성장에 전시된 사진 속 단원고 아이들의 해맑은 눈망울을 보며 이 일이 제 소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진상 규명에 상당히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래도 진상조사위 활동이 끝났을 때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진상조사위는 여러 위원과 조사관들이 힘을 합쳐 최선을 다하여 운영해 나갈 것이므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으로 믿지만, 혹시 아쉬운 부분이 생긴다면, 그 책임은 위원장인 저의 개인적인 한계와 능력 부족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대통령도 조사 대상이 된다면 성역 없이 수사

—진상 규명을 위해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조사할 계획입니까.

“세월호가 어떤 이유나 결과로 급격하게 방향을 바꿔 운항하게 됐는지와 당시 배의 항해 경로 등을 점검하는 해경 등 관련 기관들의 운영이 적정했는지 여부 등이 1차적인 조사 대상이 될 수 있겠지요.”

이 변호사는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는 요청에 ‘해외 사례에서 본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 워크숍 자료를 꺼내왔다. 이 워크숍은 2014년 12월 9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열렸다. 자료에는 밝혀야 할 9가지 쟁점을 나열한 부분이 있었다. 자료에 나온 내용이다.

〈쟁점 1. 침몰 원인은 조타 미숙? 쟁점 2. 구조 실패는 해경 123정 탓? 쟁점 3. 왜 선원만 먼저 구조했나, 조사 중인 선장을 왜 해경대원 집에 재웠나? 쟁점 4.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었나. 쟁점 5.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나? 쟁점 6.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의 실체는? 쟁점 7. 해군 함정들은 무슨 역할을 했나? 쟁점 8. 언딘을 위해 해군과 민간잠수사의 구조활동을 막았나. 쟁점 9. 유병언을 도와준 정계인사는 정말 없나?〉

—이 9가지 쟁점을 모두 파헤칠 것입니까.

“이것들은 예시에 불과하므로, 이 쟁점들만을 한정해서 꼭 진상조사위가 조사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일반적으로 말해 그것이 무엇이든 진상조사위에서 조사하기로 의결한 사안들에 대해서는 낱낱이 규명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예를 들어 진상조사위 전체회의에서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나’에 대해 조사하자는 결론이 나오면 대통령도 수사하겠다는 말씀인가요.

“‘대통령은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나’를 특정 지어 이야기하는 것은 좀 그렇지만, 진상조사위원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겠지요. 조사 대상이 된다면 성역 없이 수사할 것입니다.”

야권은 그동안 박 대통령이 첫 서면 보고를 받은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부터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 사이 어디에서 무엇을 했느냐며 ‘7시간 행적 의혹’을 제기해 왔다. 이에 청와대는 이날(4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국가안보실로부터 10번(서면 3번, 유선 7번), 대통령정무수석실로부터 11번(모두 서면) 등 총 21번의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7시간 동안 대면보고나 회의를 열지 않은 데 대해서는 “현장의 구조활동이 회의 개최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회의 개최 시) 브리핑 준비와 의전 등으로 신속한 상황 파악에 지장을 줄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는 정파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인양 여부를 검토할 다목적 해양연구선 이어도호.

—진상조사위 멤버를 보면 친노·민변과 친박·공안통으로 양분된다는 언론 보도도 있던데 조사해야 할 쟁점을 두고 위원 사이의 이견이 클 것 같습니다.

“아직 조사위가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그동안의 준비단 활동 중 혹시 문제가 일어났다는 이야기 들으신 적 있습니까? 세월호라는 게 어떤 사건입니까? 단원고 학생들의 경우 그 어린 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4월의 꿈 같은 봄날 제주도를 향해 가다가 갑자기 참변을 당한 사건입니다. 이건 정파나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위원들의 선출 과정에서 어떤 정당, 혹은 생각의 결이 다소 다른 경우가 보인다고 하더라도 이 진상조사위에 들어오는 순간 세월호 참사의 성격 때문에 모두 열심히들 힘을 합쳐 일하시리라 봅니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지 않을까요.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상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모든 위원이 각자 충분히 의견을 표명하는 가운데 자유롭고 합리적인 토론을 거쳐 좋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17명 중 숫자상으로 야권 성향을 가진 분들이 더 많은 듯한데요. 투표에 부치면 무조건 가결(可決)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것은 전혀 아닙니다. 매 사안 표로 가부를 묻는다면 조사위가 어찌어찌해서 굴러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모든 분이 다른 분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숙의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할 것입니다.”

여당과 야당·유가족은 조사위원 구성에 거부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서로 인선에 대한 불만이 크다. 여당은 야당과 유가족이 추천한 조사위원에 대해 친노·민변 일색이라고 비판한다. 조사위 위원장인 이석태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류희인 비상임위원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을 지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추천한 최일숙·김진 변호사는 각각 민변 부회장·사무차장 출신이다. 반면 야당과 유가족은 새누리당이 추천한 위원에 대해 친박·공안통이라고 지적한다. 새누리당 몫으로 특위 부위원장을 맡은 조대환 변호사는 지난 대선 이후 대통령직인수위 법질서·사회안전 분과 전문위원을 지냈다. 황전원 기장군 노사민정협 위원장은 박 대통령 공보특보를 역임했었고, 차기환 변호사는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 가족들이 요구하는 특별법 제정에 반대하고 ‘유민 아빠’로 알려진 김영오씨의 단식을 비난한 적이 있다.

—유가족은 A 사안에 대한 진상조사를 원하는데 조사위 심사를 통과 못 하면 유가족의 비판이 심할 것 같은데요.

“아직 진상조사위가 구성되지 않았으므로, 지금 단계에서 어떤 사안이 조사위 통과를 못 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면이 있습니다. 저는 직함은 위원장이지만, 조사관의 심정으로서, 위원회 활동 전 과정을 통해 피해자들이 언제 어디서나 저의 활동이 적절한지 묻고 있고, 그에 대하여 제가 제대로 답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일하려 생각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선체 인양 필요하다고 생각”

지난 2014년 2월 13일 서울 서초동 서울지방법원에서 가진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재심 무죄판결 기자회견에서 이석태 변호사가 판결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강기훈씨.

—유민 아빠 김영오씨의 단식을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 어떻게 평가합니까.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절실함에 그렇게 장기간 단식하셨다고 봅니다. 저도 시민사회 단체에 관여하면서 활동가 등과 함께 부분 단식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제로 끼니를 굶는 단식은 몹시 어려운 일이지만,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의 미래도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그때 폭넓게 공유되어 각자의 처지에서 각자 다른 형태의 단식으로 나타난 것으로 생각합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월 10일 침몰한 세월호 선체의 인양 여부를 검토하기 위한 조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수중에서 초음파를 이용해 물체를 촬영할 수 있는 ‘고해상도 사이드 스캔 소나’와 해저지형 탐사 및 수심측정기, 초음파 해류계, 기상관측장비 등 첨단 장비를 갖춘 이어도호(357t급)를 전남 진도 사고해역에 투입한 것이다. 이어도호의 조사는 3단계로 나눠 3월 23일까지 진행하며 해수부는 조사보고서를 바탕으로 선체 인양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선체 인양과 관련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선체 인양까지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과 1천억원 이상의 비용이 예상되는 만큼 인양을 하지 말자는 의견과 정확한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인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부딪치는 것이다.

—세월호 선체 인양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이 있는데요. 인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돈이 적지 않게 든다고 하는데, 아홉 분의 실종자 문제와 함께, 진상 규명을 생각한다면, 유일무이한 물증 그 자체라 할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누가 쉽게 동의하겠습니까. 국민적 참사가 된 세월호 사건에서 국민은 그 진상 규명의 실체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요?”

—인양하는 데 1년이 더 걸린다고 하던데요. 진상조사위 활동이 마감할 때까지 인양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지만, 미국의 경우 전투지역에서 실종되거나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수색 등에 대하여는 그 시기에서 제한이 없습니다. 오래전에 발생한 존 F. 케네디 암살사건을 여전히 조사하는 위원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1991년 분신자살한 5월 8일 당시 민주화 운동의 중추 세력이던 전국 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당시 25세)씨가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유서를 남기고 몸에 불을 붙인 뒤 투신해 숨졌는데 그의 유서를 강기훈씨가 대신 작성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옥살이를 한 사건이다.

“정치는 나와 맞지 않다”

1989년 시민단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을 창립하고 환경운동연합, 참여연대 등 굵직한 시민단체들의 산파 역할을 해온 ‘시민운동의 대부’ 임현진(林玄鎭)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시민운동가들의 정치권 진출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몇 세대에 걸쳐 시민운동이 자리를 잡도록 해야 하는데 일부 운동가들이 시민운동을 정치권 입문의 디딤돌로 삼아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설명했듯 이 변호사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장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을 역임했고,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과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아 시민운동에도 오랫동안 몸담아왔다. 시민운동가들의 정치권 진출에 관한 그의 견해는 어떨까.

이 변호사의 이야기다.

“만약 어떤 분이 정치권 입문의 디딤돌로 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시민운동을 시작한다면, 곧 한계에 다다르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시민사회 활동가로 일한다는 말은, 비유하자면, 총알이 빗발치는 야전에서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일한다는 것이므로, 순수하고 높은 헌신성과 열정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오랜 기간 시민사회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레 정치적 능력이 생긴 인사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 영입을 마다할 이유가 없겠지요.”

—그럼 현재 시민사회 운동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은 의정 활동을 잘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름을 들기는 그렇지만 제가 아는 한 다들 성실히 의정생활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대개 야권이지만, 새누리당에서도 영입하려 한다면 그쪽으로도 갈 수 있다고 봅니다.”

대표적인 참여연대 출신 국회의원은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정의당 박원석 의원이다.

—정치권에 진출할 생각이 없습니까.

“저는 성격이 다소 내향적인데다가 남 앞에 나서는 걸 꺼려 하는 편입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정치인 덕목과는 조화를 이루기 어려운 개성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제 주변에는 정치하고자 하는 유능한 분들이 많습니다. 필요하다면 오히려 이런 분들에게 자리를 내 드리는 것이 보다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상조사위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면 정치권 영입 제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에 관한 한 아마도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위원회에 국한하여 말한다면 혹 다른 분들에게 좋은 정치적 제의가 들어올지 모르겠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처음에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소위 말하는 정치인이 다 됐지 않습니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박원순 시장은 오랜 시민사회 활동 경험이라는 커다란 자산을 가지고 그 공공선의 실현을 위해 보다 넓은 영역으로 자신의 활동 무대를 옮긴 것으로 생각합니다.”

23년간 辯護

—최근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 ‘유서 대필 사건’의 피고인 강기훈씨를 23년간 변호,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이끌어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당시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것 아닙니까. 이번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한 검찰수사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판단하고 있습니까.

“정윤회씨 사안은 제가 변론한 사건이 아니라 잘 모르겠습니다.”

—검찰은 바뀌어야 할 조직이라고 보십니까.

“판사들의 경우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에는 정치권력의 영향을 일부 받아왔다 하지만, 몇 차례 사법파동을 겪으면서 기본적으로 독립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변해왔습니다. 하지만 검찰은 안타깝게도 법원처럼 스스로 자정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보통 얘기합니다. 조직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기소 독점 기관이 앞으로 어떻게 국민의 신뢰에 부응하는 역할을 하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강기훈 사건 외에 기억나는 사건이 있습니까.

“시간적으로 가까운 예로 호주제 폐지, 재일교포 간첩사건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동성애 관련 사건도 있고요. 트랜스젠더 성별 전환 정정 신청을 해서 법원이 받아들인 경우도 있지요. 지금은 받아들여지는 범위가 넓어졌는데, 예전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진상조사위원장 임기 중 중요한 사건이 있다면 변론도 맡을 것입니까.

“위원장으로 있는 동안 변호사 겸업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미 진상조사위원장 역할에 ‘올인’하고 있습니다. 조사위 활동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다시는 발생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대형 참사가 혹 발생했을 때 보다 잘 대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제 역할을 마치는 날 저는 담담히 내려와 일상으로 돌아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