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빗 메이휴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
미국 중간선거가 막을 내렸다. 막판까지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됐던 이번 선거는 전쟁을 방불케 했다. 결과는 공화당의 압승이었다. 연방 상원의 경우 11월 15일 현재 공화당이 7석을 추가해 다수당이 됐다. 2006년 민주당에 내줬던 상원을 탈환했다. 하원에서는 의석 수를 두 자리 수나 늘렸다. 아직 개표가 완료되지 않았지만 113차 의회 개회 당시 233명이었던 공화당 하원의원 수는 247명까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버지니아대(大) 정치연구소(Center for Politics) 래리 사바토 (Larry Sabato) 소장의 지적처럼 1928년 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개표가 끝나자마자 새로운, 전쟁 아닌 전쟁의 막이 올랐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책임론과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논쟁이 뜨겁다. 리버럴 또는 친 민주당 진영에서는 선거 패배의 원인을 놓고 상호 비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공화당 지지 세력 내부에서는 승리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티파티(Tea Party), 개혁보수주의 (Reform Conservatism), 그리고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등 다양한 분파에 소속된 정치인들은 보수주의 운동의 기선을 잡기 위한 기싸움에 돌입했다.
언론계에서는 차기 대통령 선거 보도 경쟁의 서막이 올랐다. 미국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과연 대권에 도전할지, 출마를 한다면 승산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소란스럽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랜드 폴 상원의원, 폴 라이언 전 부통령 후보, 잽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등 공화당 잠룡들의 동선을 좇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들의 동정이 정치 뉴스의 주메뉴다. 이들의 발언이 시사 토크쇼의 단골 주제다. 이럴 때일수록 아쉬운 것은 역사를 꿰뚫는 안목으로 선거의 함의를 반추할 수 있는 경륜이다. 정치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국정 운영의 난맥상을 진단하고 다양한 개혁안의 장단점을 짚어낼 수 있는 객관성과 학식이다. 이와 관련, 데이비드 메이휴(David R. Mayhew)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를 만났다. 애머스트 칼리지(Amherst)에서 학사를,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8년, 예일 정치학과 최전성기에 교수진에 합류한 교수는 미국 정치, 특히 의회 정치의 대가(大家)다. 미국 정치학의 고전들을 저술하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인터뷰는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시에 위치한 대학 부설 정책사회연구소(Institution for Policy and Social Studies) 2층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연구실 문을 열자 책상 위에는 초콜릿과 과자 봉지가 가득했다. 일정에 쫓겨 연구를 할 때면 식사할 시간도 없다고 한다. ‘공연히 약속을 했구나’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교수의 얼굴에는 짜증은커녕 미소가 한가득이다. 안경 너머의 눈망울은 20대 학생들보다 초롱초롱하다. 인터뷰를 위해 수고를 자청한 대학 전속 사진가 마이클 마슬랜드 (Michael Marsland)에게 포즈를 취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먼저 인사를 올렸다.
예정된 패배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다른 분야도 많은데 미국 정치, 특히 의회정치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글쎄요. 현역에서 물러난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절반은 은퇴지만 절반은 현역이라고 해 두죠. 중간선거 관련 심포지엄 참석 요청이 많습니다. 그런데 5분밖에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5분 동안 무슨 말을 하라는건지.(웃음) 의회정치에 대한 관심은 소년 시절부터 갖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13살 때부터 의회정치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었죠. 어려서부터 신문을 보면 선거 기사부터 챙겼습니다.”
—정치학 신동이었군요. 그러기에 이번 중간선거에 대해서도 남다른 고견을 청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습니다. 언론이 떠들썩합니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여당인 민주당의 고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번에는 여당이 고전을 할 차례였습니다. 2차 대전 뒤 집권한 대통령들 가운데 연임을 했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집권 6년째, 또는 재임에 성공한 뒤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패배를 맛보곤 했습니다. 상원 의석의 경우 평균 약 5석을 야당에 내줬습니다. 6년 전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의 인기 덕분에 상원에 입성한 여당 초선 의원들이 재선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선거운동 과정을 보자면 문화 또는 가치 이슈들을 접하기 어려웠던 것이 눈에 띕니다. 10년 전인 2004년 대선 당시만 하더라도 총기 휴대, 동성 결혼, 그리고 신앙 활동의 자유 등의 사안을 놓고 양당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는 사뭇 달랐습니다.
“선거에 따라 상이한 사안들이 전면에 대두되곤 하기 때문이죠. 올해의 경우 경제 문제와 대외 정책 이슈가 부각됐습니다. 외교 문제의 부상에는 회교 극단주의 세력이 대두하고 러시아로 인해 유럽의 정세가 불안해지고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사태가 터진 것이 일조했습니다. 아울러 공화당이 가치 이슈에 관련한 입장을 선회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당 지도부는 2012년 선거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당시 공화당 일부 후보들이 낙태와 동성연애와 관련해서 여성 유권자들과 젊은 층 유권자들의 정서와 어긋나는 발언을 해서 큰 어려움을 자초했거든요.”
—이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선거비용이겠습니다만 이번 선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정치자금을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인 반응정치센터(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deral Election Commission)에 신고한 선거비용은 40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중간선거로 기록될 듯합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비용이 과도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금액만을 놓고 많다 적다를 논할 것이 아니라 선거가 치러지는 미국이란 나라를 함께 놓고 고민해 봐야 합니다. 미국은 3억3000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갖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국토가 광대합니다. 경제 규모도 크죠. 이런 나라에서 연방선거뿐 아니라 주와 지역단위 선거들을 동시에 진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선거비용이 과도하다고 우려합니다. 특히 극소수의 억만 장자들이 선거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뿌리는, 이른바 ‘큰 돈 정치(Big Money Politics)’를 문제삼습니다. 소득 상위 0.1%가 미국 정치를 좌우한다는 주장입니다.
“큰 돈 정치에 대해서는 감성적이고 통념적으로 접근을 할 것이 아니라 실증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과정으로 유입되는 자금 중 상당 부분은 정치광고에 사용하는데 정치광고의 효과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비방과 흑색선전으로 유권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더해 준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 주장도 있습니다.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던 시민들에게 주요 사안이나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혁신 중간선거 아니다
메이휴 교수는 현재 미국 정계와 학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논쟁을 설명하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큰 돈 정치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부(巨富)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정치권을 주물러서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소득 상위 0.1%의 정치 참여에 대한 과민반응을 경계한다.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억만장자들은 공화당 못지않게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지적이다. 거부들이 지지 또는 반대하는 이슈들이 다양하고 서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다. 메이휴 교수의 설명이 계속됐다.
“어느 주장이 맞건 간에 큰 돈 정치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을 듯합니다. 일부 집단들이 선거 과정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시각, 또 그러한 시각에 힘입은 개혁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반에는 거대 기업집단들의 역할을 제한하고자 했습니다. 20세기 중반에는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그렇지만 많은 경우 개혁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곤 했습니다. 억만장자들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한다면 이러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개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선거 이후의 정국에 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논문을 통해 이른바 ‘혁신 중간선거(Innovative Midterm)’가 있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중간선거의 중요성을 경시하지만 선거 뒤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입안하고 집행한 사례들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2014년 중간선거도 혁신 중간선거로 기록될 수 있을까요.
“1810년, 1866년, 1910년 그리고 1938년 중간선거의 경우 선거 뒤에는 주요 정책들이 대거 소개된 바 있습니다. 1810년 선거 뒤에는 영토팽창 시도가 있었고 1866년 선거 후에는 남북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부에 대한 정책이 마련됐습니다. 1910년 선거는 진보주의 개혁 (Progressive Reform)의 시발점이었고 1938년 선거는 뉴딜정책이 속도 조절을 하게 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이와 같은 혁신 중간선거가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예기치 못한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대통령과 의회가 서로를 견제하며 팽팽하게 대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거 이후 정국 전망
—그렇다면 오바마 대통령이 적잖은 어려움을 겪을 듯합니다. 미국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을 할 때만 하더라도 리버럴 진영의 로널드 레이건이 되겠다고, 미국 사회에 대대적인 변화를 불러오겠다고 야심찬 출발을 했습니다만 난기류를 만났습니다.
“국정운영이 녹록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내 정책의 경우 많은 사안에서 공화당의 반대가 예상됩니다. 그렇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대외 정책을 통해 업적을 남기려 할 수 있습니다. 대외 정책은 국내 정책보다 의회의 견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거든요. 이와 관련, 아마도 무역협정 체결을 시도하리라고 봅니다. 성공한다면 자신의 업적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에 비해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기 쉬운 사안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민주당에 비해 친(親) 기업적 성향이 강하고 보호무역을 반대해 왔죠.”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다고 해서 공화당의 앞날이 장밋빛으로 가득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공화당 지도부는 현재 큰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2016년 대선 승리를 갈망하는 공화당은 국민들로부터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얻고 싶어합니다. 그러자니 당의 이미지가 땅으로 떨어진 것이 큰 부담입니다. ‘민생은 없고 정치에만 치중한다’ ‘젊은층, 여성, 소수인종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서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대통령에게 사사건건 반대만 할 수는 없습니다. 맹목적으로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대신 입법 과정에서 가시적인 결과물들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허니문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열성 지지층을 실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면서도 선명성을 잃지 않는 법안들을 발굴하면 되겠네’라고 하겠지만 이게 말로는 쉬워도 현실 정치에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정국이 전개된다면 정쟁만 거듭될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의회에 대한 미국민들의 실망감이 더 심해질 듯합니다. 이와 관련, 이미 의회에 대한 미국민의 여론은 사상 최저치에 이르렀습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갤럽에 따르면 1970년 대 초반 40%대였던 의회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10% 초반으로까지 떨어졌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요. 언론의 책임은 없을까요.
“일부 언론은 책임을 통감해야겠지요. 24시간 내내 뉴스만 하는 보도 전문 케이블 방송이 등장하고 온라인 매체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보도가 선정성 위주로 흐르고 속보경쟁이 격화되면서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채 리포트가 남발되곤 합니다. 정치뉴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언론 탓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언론은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권력을 견제했을 뿐 아니라 데이비드 브로더(David Broder)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등 언론인들은 역사의 초안을 쓰는 중책을 맡아 왔습니다. 기억하겠지만 브로더의 책은 수업 교재로도 사용됐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유권자들의 책임도 작지 않아 보입니다. 의회정치 전문가인 리처드 페노(Richard Fenno)가 지적했듯이 미국 유권자들은 말로는 의회에 대해, 의원들에 대해 실망을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선거 때가 되면 현직 의원들을 선출하곤 하는, 어찌 보면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일삼습니다.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미국 정치의 고유한 현상 중 하나입니다. 유권자들은 의회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하지만 자신의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줍니다. 그 결과 현직 의원들의 재선율이 매우 높습니다. 하원의 경우 1960년대 중반 이후 80% 이상의 재선율을, 상원의 경우에도 80년대 말 이후 대부분의 경우 80% 이상의 재선율을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원들의 책임은 없을까요. 이와 관련, 부루킹스연구소의 토머스 만(Thomas Mann)과 자유기업연구소의 노먼 언스틴(Norman Ornstein)은 《고장난 의회(Broken Branch)》라는 책에서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낙제점을 줬습니다.
“만과 언스틴과 달리 저는 의정 난맥상이 공화당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상원 원내총무였던 해리 리드(Harry Reid) 민주당 상원의원 등도 의회에 대한 국민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를 했습니다. 공화당이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진행 과정에서 지나치게 전권을 휘둘렀습니다. 여야 간에 대립을 악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의원들이 의회의 고유 기능인 감사(Oversight)와 심의(Deliberation) 활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만과 언스틴의 지적은 적절해 보입니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여당 의원들은 행정부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곤 합니다. 정치자금을 모으고 지역구를 챙기느라 바쁜 나머지 법안를 만들고 심의하는 것은 뒷전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법안의 내용도 숙지하지 못한 채 법안을 발의하는 모습도 연출됩니다.
개혁의 어려움
각각 리버럴 성향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와 보수 성향의 자유기업연구소 소속인 만과 언스틴은 관록의 의회 연구가들이다. 고장난 의회와 그 증보판 격인 《보기보다 안 좋은 상태(It’s Even Worse Than It Looks)》는 많은 화제를 모았다. 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당 개혁에 대한 견해를 묻고자 했다. 마침 두 사람의 저서에는 미국 정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등장한다. 오늘날 민주당과 공화당은 오랫동안 일부 미국 정치학자들이 열망하던 ‘책임정당(Responsible Party)’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는데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일부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지만 저 역시 만과 언스틴의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만과 언스틴의 주장은 오늘날 미국 정당이 과거에 비해 상대당의 이념과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이념을 추구하고 이에 근거한 공약을 제시하며 이를 실천하려 하는 이념정당 또는 책임정당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의 헌정 시스템은 곳곳에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타협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국정이 돌아가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념정당은 타협과 대화를 적대시합니다. 이에 따라 정당과 정치 시스템 사이의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확연한 이념적 차이를 갖는 두 정당이 상호 경쟁하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자는, 1950년 미국정치학회가 발표한 정당 개혁을 통한 정치 개혁안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 보고서 자체도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과도한 것이 문제다”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은 없을까요. 미국의 경우 19세기를 고비로 대통령의 권한은 크게 늘어났지만 의회의 권한은 그렇지 못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사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힘의 불균형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의회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의회는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계층, 인종, 지역 그리고 문화를 단 한 명의 대통령이 올곧게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의회는 다릅니다. 수백 명의 의원들이 국민들의 요구를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중심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장점이 많은 제도입니다. 단, 모든 제도의 속성상 제도로서의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가능한 한 늘리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회는 대통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제도의 우수성을 스스로 저해하는 것을 막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입법부도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고 의정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감사와 같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 권한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회 운영 방침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다수당의 독주를 막되 소수당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 개혁, 다수결의 원칙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개혁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역시 한국에서 최근 큰 화두로 떠오른 사안입니다. 국회 선진화법의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소수당의 발언권을 보장해 준다고 하다가 국정 마비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문제입니다. 모든 대의민주주의 국가가 고민하는 사안인바, 미국에서도 유사한 논쟁이 상원의 필리버스터(Filibuster) 제도를 둘러싸고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장시간 동안 발언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진행을 가로막아 다수당이 입법 과정을 독점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소수당의 방종을 방치하는 제도라는 시각도 있어 왔죠.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고 중차대한 개혁을 막는 주범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1960년대 미국 남부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흑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시민권 개혁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악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필리버스터 개혁 노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필리버스터 제도를 고치거나 아예 없애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상원에서도 하원에서처럼 다수결로 법안을 처리하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이러한 노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필리버스터를 개혁하려는 측과 개혁을 무력화하려는 측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의회 제도 개혁은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곤 한다는, 개혁은 좋은 의도만 가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습니다.”
—개혁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기에 난관을 극복하고 개혁을 성공리에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혁을 수행하는 주체, 즉 의원들의 자질과 역량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미국 의회(America’s Congress)》라는 저서에서 남다른 자질과 역량을 가진 의원들과 그들의 역사적 업적을 연구한 적도 있죠.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공영역(Public Sphere) 이론에 주목해서 1789년에서 1988년 사이 연방의회 소속 상·하원 의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의회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의원들의 투표 기록이나 법안 발의 등 입법활동에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국민 여론을 형성하는 등 의원들이 입법활동 이외에도 의미있는 기여를 많이 해 왔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영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의원들, 즉, 이념의 맹목적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근시안적인 정쟁에 얽매이려 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의원들의 역할이 긴요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개표가 끝나자마자 새로운, 전쟁 아닌 전쟁의 막이 올랐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책임론과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논쟁이 뜨겁다. 리버럴 또는 친 민주당 진영에서는 선거 패배의 원인을 놓고 상호 비방전이 가열되고 있다. 공화당 지지 세력 내부에서는 승리 이후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신경전이 벌어지는 중이다. 티파티(Tea Party), 개혁보수주의 (Reform Conservatism), 그리고 자유지상주의(Libertarianism) 등 다양한 분파에 소속된 정치인들은 보수주의 운동의 기선을 잡기 위한 기싸움에 돌입했다.
언론계에서는 차기 대통령 선거 보도 경쟁의 서막이 올랐다. 미국 사상 최초의 여성 대통령을 노리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과연 대권에 도전할지, 출마를 한다면 승산은 얼마나 있는지에 대한 호사가들의 입방아가 소란스럽다.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 랜드 폴 상원의원, 폴 라이언 전 부통령 후보, 잽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 등 공화당 잠룡들의 동선을 좇는 발걸음이 분주하다. 이들의 동정이 정치 뉴스의 주메뉴다. 이들의 발언이 시사 토크쇼의 단골 주제다. 이럴 때일수록 아쉬운 것은 역사를 꿰뚫는 안목으로 선거의 함의를 반추할 수 있는 경륜이다. 정치적 득실을 따지지 않고 국정 운영의 난맥상을 진단하고 다양한 개혁안의 장단점을 짚어낼 수 있는 객관성과 학식이다. 이와 관련, 데이비드 메이휴(David R. Mayhew) 예일대 정치학과 교수를 만났다. 애머스트 칼리지(Amherst)에서 학사를,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68년, 예일 정치학과 최전성기에 교수진에 합류한 교수는 미국 정치, 특히 의회 정치의 대가(大家)다. 미국 정치학의 고전들을 저술하고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인터뷰는 코네티컷 주 뉴헤이븐 시에 위치한 대학 부설 정책사회연구소(Institution for Policy and Social Studies) 2층 연구실에서 진행했다. 연구실 문을 열자 책상 위에는 초콜릿과 과자 봉지가 가득했다. 일정에 쫓겨 연구를 할 때면 식사할 시간도 없다고 한다. ‘공연히 약속을 했구나’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교수의 얼굴에는 짜증은커녕 미소가 한가득이다. 안경 너머의 눈망울은 20대 학생들보다 초롱초롱하다. 인터뷰를 위해 수고를 자청한 대학 전속 사진가 마이클 마슬랜드 (Michael Marsland)에게 포즈를 취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먼저 인사를 올렸다.
예일대에서 가장 권위 있는 스털링 석좌교수(Sterling Professor)로 봉직 중인 교수이다. 예일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옥스퍼드대와 모교 하버드대는 물론 스탠퍼드대 부설 행동과학고등연구센터(Center for Advanced Study in the Behavioral Sciences), 프린스턴대 부설 우드로윌슨 스쿨과 캘리포니아 공대 등 세계 유수의 연구기관에서 초빙 학자로 활약했다. 의회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다루지 않은 주제가 드물 정도로 폭넓은 연구와 저술 활동을 전개해 왔다. 독창적인 주장과 방법론으로 많은 박수를 받아 왔다. 이 같은 업적을 기려 미국정치학회는 리처드 뉴스타트(Richard Neustadt)상과 제임스 메디슨(James Madison)상을 수여했고 구겐하임재단과 후버연구소는 각각 구겐하임 펠로(Guggenheim Fellow)와 미국정치연구 펠로(Hoover National Fellow) 자격을 부여해서 교수의 연구활동을 도왔다. 미국선거연구위원회(National Election Studies), 미국학예원(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과 미국철학학회(American Philosophy Society) 등 유서 깊은 학술단체의 멤버를 역임해 온 메이휴 교수는 2013년, 1863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에 의해 설립된 이래 500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는 미국학술원(National Academy of Sciences) 멤버로 선출됐다. |
예정된 패배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정년 퇴임을 앞두고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다른 분야도 많은데 미국 정치, 특히 의회정치를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글쎄요. 현역에서 물러난다고는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절반은 은퇴지만 절반은 현역이라고 해 두죠. 중간선거 관련 심포지엄 참석 요청이 많습니다. 그런데 5분밖에 발언권을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5분 동안 무슨 말을 하라는건지.(웃음) 의회정치에 대한 관심은 소년 시절부터 갖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13살 때부터 의회정치를 눈여겨보기 시작했었죠. 어려서부터 신문을 보면 선거 기사부터 챙겼습니다.”
—정치학 신동이었군요. 그러기에 이번 중간선거에 대해서도 남다른 고견을 청할 수 있을 듯합니다.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습니다. 언론이 떠들썩합니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여당인 민주당의 고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 지지율이 낮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이번에는 여당이 고전을 할 차례였습니다. 2차 대전 뒤 집권한 대통령들 가운데 연임을 했던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집권 6년째, 또는 재임에 성공한 뒤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패배를 맛보곤 했습니다. 상원 의석의 경우 평균 약 5석을 야당에 내줬습니다. 6년 전 선거에서 대통령 후보의 인기 덕분에 상원에 입성한 여당 초선 의원들이 재선에 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선거운동 과정을 보자면 문화 또는 가치 이슈들을 접하기 어려웠던 것이 눈에 띕니다. 10년 전인 2004년 대선 당시만 하더라도 총기 휴대, 동성 결혼, 그리고 신앙 활동의 자유 등의 사안을 놓고 양당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는 사뭇 달랐습니다.
“선거에 따라 상이한 사안들이 전면에 대두되곤 하기 때문이죠. 올해의 경우 경제 문제와 대외 정책 이슈가 부각됐습니다. 외교 문제의 부상에는 회교 극단주의 세력이 대두하고 러시아로 인해 유럽의 정세가 불안해지고 아프리카에서 에볼라 사태가 터진 것이 일조했습니다. 아울러 공화당이 가치 이슈에 관련한 입장을 선회한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 당 지도부는 2012년 선거의 실책을 되풀이하지 않으려 애를 썼습니다. 당시 공화당 일부 후보들이 낙태와 동성연애와 관련해서 여성 유권자들과 젊은 층 유권자들의 정서와 어긋나는 발언을 해서 큰 어려움을 자초했거든요.”
—이슈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선거비용이겠습니다만 이번 선거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정치자금을 모니터링하는 시민단체인 반응정치센터(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민주당과 공화당이 연방선거관리위원회(Federal Election Commission)에 신고한 선거비용은 40억 달러에 육박할 것이라고 합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비싼 중간선거로 기록될 듯합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비용이 과도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금액만을 놓고 많다 적다를 논할 것이 아니라 선거가 치러지는 미국이란 나라를 함께 놓고 고민해 봐야 합니다. 미국은 3억3000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갖고 있습니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로 구성되어 있을 뿐 아니라 국토가 광대합니다. 경제 규모도 크죠. 이런 나라에서 연방선거뿐 아니라 주와 지역단위 선거들을 동시에 진행하는 데 소요되는 비용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선거비용이 과도하다고 우려합니다. 특히 극소수의 억만 장자들이 선거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정치자금을 뿌리는, 이른바 ‘큰 돈 정치(Big Money Politics)’를 문제삼습니다. 소득 상위 0.1%가 미국 정치를 좌우한다는 주장입니다.
“큰 돈 정치에 대해서는 감성적이고 통념적으로 접근을 할 것이 아니라 실증적인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과정으로 유입되는 자금 중 상당 부분은 정치광고에 사용하는데 정치광고의 효과에 대해선 많은 의견이 있습니다. 비방과 흑색선전으로 유권자들에게 정치에 대한 실망감을 더해 준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정반대 주장도 있습니다.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던 시민들에게 주요 사안이나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것입니다.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것입니다.”
이번 선거는 혁신 중간선거 아니다
메이휴 교수는 현재 미국 정계와 학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논쟁을 설명하고 있었다. 일부에서는 큰 돈 정치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거부(巨富)들이 자기 입맛에 맞게 정치권을 주물러서 미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일각에서는 소득 상위 0.1%의 정치 참여에 대한 과민반응을 경계한다. 이들이 한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억만장자들은 공화당 못지않게 민주당을 지지한다는 지적이다. 거부들이 지지 또는 반대하는 이슈들이 다양하고 서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다. 메이휴 교수의 설명이 계속됐다.
“어느 주장이 맞건 간에 큰 돈 정치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을 듯합니다. 일부 집단들이 선거 과정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시각, 또 그러한 시각에 힘입은 개혁 시도는 과거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세기 초반에는 거대 기업집단들의 역할을 제한하고자 했습니다. 20세기 중반에는 노동조합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움직임이 있었죠. 그렇지만 많은 경우 개혁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곤 했습니다. 억만장자들의 영향력을 줄이려고 한다면 이러한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개혁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할 것입니다.”
—선거 이후의 정국에 대한 견해도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는 논문을 통해 이른바 ‘혁신 중간선거(Innovative Midterm)’가 있었다고 한 바 있습니다. 많은 이들은 중간선거의 중요성을 경시하지만 선거 뒤 굵직굵직한 정책들을 입안하고 집행한 사례들이 있었다고 지적했습니다. 2014년 중간선거도 혁신 중간선거로 기록될 수 있을까요.
“1810년, 1866년, 1910년 그리고 1938년 중간선거의 경우 선거 뒤에는 주요 정책들이 대거 소개된 바 있습니다. 1810년 선거 뒤에는 영토팽창 시도가 있었고 1866년 선거 후에는 남북전쟁으로 폐허가 된 남부에 대한 정책이 마련됐습니다. 1910년 선거는 진보주의 개혁 (Progressive Reform)의 시발점이었고 1938년 선거는 뉴딜정책이 속도 조절을 하게 되는 전환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이와 같은 혁신 중간선거가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예기치 못한 국가 비상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한 대통령과 의회가 서로를 견제하며 팽팽하게 대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선거 이후 정국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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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의원. |
“국정운영이 녹록지는 않을 것입니다. 국내 정책의 경우 많은 사안에서 공화당의 반대가 예상됩니다. 그렇기에 오바마 대통령은 대외 정책을 통해 업적을 남기려 할 수 있습니다. 대외 정책은 국내 정책보다 의회의 견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거든요. 이와 관련, 아마도 무역협정 체결을 시도하리라고 봅니다. 성공한다면 자신의 업적으로 남길 수 있습니다.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에 비해 상·하원을 장악한 공화당 의원들의 지지를 받기 쉬운 사안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민주당에 비해 친(親) 기업적 성향이 강하고 보호무역을 반대해 왔죠.”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다고 해서 공화당의 앞날이 장밋빛으로 가득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공화당 지도부는 현재 큰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봅니다. 2016년 대선 승리를 갈망하는 공화당은 국민들로부터 수권정당으로서의 신뢰를 얻고 싶어합니다. 그러자니 당의 이미지가 땅으로 떨어진 것이 큰 부담입니다. ‘민생은 없고 정치에만 치중한다’ ‘젊은층, 여성, 소수인종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 ‘서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대통령에게 사사건건 반대만 할 수는 없습니다. 맹목적으로 대결 국면을 조성하는 대신 입법 과정에서 가시적인 결과물들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과 허니문을 보낼 수도 없습니다. 열성 지지층을 실망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수권정당의 이미지를 제고시키면서도 선명성을 잃지 않는 법안들을 발굴하면 되겠네’라고 하겠지만 이게 말로는 쉬워도 현실 정치에선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정국이 전개된다면 정쟁만 거듭될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의회에 대한 미국민들의 실망감이 더 심해질 듯합니다. 이와 관련, 이미 의회에 대한 미국민의 여론은 사상 최저치에 이르렀습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갤럽에 따르면 1970년 대 초반 40%대였던 의회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10% 초반으로까지 떨어졌습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지요. 언론의 책임은 없을까요.
“일부 언론은 책임을 통감해야겠지요. 24시간 내내 뉴스만 하는 보도 전문 케이블 방송이 등장하고 온라인 매체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보도가 선정성 위주로 흐르고 속보경쟁이 격화되면서 사실관계에 대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은 채 리포트가 남발되곤 합니다. 정치뉴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언론 탓만을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역사적으로 언론은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습니다. 권력을 견제했을 뿐 아니라 데이비드 브로더(David Broder)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 등 언론인들은 역사의 초안을 쓰는 중책을 맡아 왔습니다. 기억하겠지만 브로더의 책은 수업 교재로도 사용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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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장난 의회》의 저자인 토머스 만(왼쪽)과 노먼 언스틴. |
한국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는 미국 정치의 고유한 현상 중 하나입니다. 유권자들은 의회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하지만 자신의 지역구를 대표하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후한 점수를 줍니다. 그 결과 현직 의원들의 재선율이 매우 높습니다. 하원의 경우 1960년대 중반 이후 80% 이상의 재선율을, 상원의 경우에도 80년대 말 이후 대부분의 경우 80% 이상의 재선율을 기록해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원들의 책임은 없을까요. 이와 관련, 부루킹스연구소의 토머스 만(Thomas Mann)과 자유기업연구소의 노먼 언스틴(Norman Ornstein)은 《고장난 의회(Broken Branch)》라는 책에서 의원들이 의정활동에 낙제점을 줬습니다.
“만과 언스틴과 달리 저는 의정 난맥상이 공화당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상원 원내총무였던 해리 리드(Harry Reid) 민주당 상원의원 등도 의회에 대한 국민 여론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를 했습니다. 공화당이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의사진행 과정에서 지나치게 전권을 휘둘렀습니다. 여야 간에 대립을 악화시켰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의원들이 의회의 고유 기능인 감사(Oversight)와 심의(Deliberation) 활동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만과 언스틴의 지적은 적절해 보입니다.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 여당 의원들은 행정부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곤 합니다. 정치자금을 모으고 지역구를 챙기느라 바쁜 나머지 법안를 만들고 심의하는 것은 뒷전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법안의 내용도 숙지하지 못한 채 법안을 발의하는 모습도 연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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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어려움
각각 리버럴 성향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와 보수 성향의 자유기업연구소 소속인 만과 언스틴은 관록의 의회 연구가들이다. 고장난 의회와 그 증보판 격인 《보기보다 안 좋은 상태(It’s Even Worse Than It Looks)》는 많은 화제를 모았다. 책 이야기가 나온 김에 정당 개혁에 대한 견해를 묻고자 했다. 마침 두 사람의 저서에는 미국 정당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등장한다. 오늘날 민주당과 공화당은 오랫동안 일부 미국 정치학자들이 열망하던 ‘책임정당(Responsible Party)’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는데 그게 문제라는 것이다. 교수의 생각은 어떨까.
“일부 방법론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하지만 저 역시 만과 언스틴의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공유합니다. 만과 언스틴의 주장은 오늘날 미국 정당이 과거에 비해 상대당의 이념과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이념을 추구하고 이에 근거한 공약을 제시하며 이를 실천하려 하는 이념정당 또는 책임정당으로 변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정당은 미국의 정치 시스템에 적합하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의 헌정 시스템은 곳곳에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타협과 대화를 하지 않으면 국정이 돌아가기 힘든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념정당은 타협과 대화를 적대시합니다. 이에 따라 정당과 정치 시스템 사이의 엇박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확연한 이념적 차이를 갖는 두 정당이 상호 경쟁하는 정치 시스템을 만들자는, 1950년 미국정치학회가 발표한 정당 개혁을 통한 정치 개혁안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군요.
“그렇습니다. 저는 그 보고서 자체도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권한이 과도한 것이 문제다”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해야 할 필요성은 없을까요. 미국의 경우 19세기를 고비로 대통령의 권한은 크게 늘어났지만 의회의 권한은 그렇지 못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가속화되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미국과 유사한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대통령과 국회 사이의 힘의 불균형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우선 의회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의회는 대통령이 할 수 없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양한 계층, 인종, 지역 그리고 문화를 단 한 명의 대통령이 올곧게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의회는 다릅니다. 수백 명의 의원들이 국민들의 요구를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중심제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장점이 많은 제도입니다. 단, 모든 제도의 속성상 제도로서의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가능한 한 늘리려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회는 대통령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제도의 우수성을 스스로 저해하는 것을 막아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입법부도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잊지 말고 의정활동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한편, 감사와 같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 권한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회 운영 방침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다수당의 독주를 막되 소수당의 전횡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 개혁, 다수결의 원칙을 저해하지 않으면서도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는 개혁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 역시 한국에서 최근 큰 화두로 떠오른 사안입니다. 국회 선진화법의 존폐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소수당의 발언권을 보장해 준다고 하다가 국정 마비를 자초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요하지만 어려운 문제입니다. 모든 대의민주주의 국가가 고민하는 사안인바, 미국에서도 유사한 논쟁이 상원의 필리버스터(Filibuster) 제도를 둘러싸고 계속되어 오고 있습니다. 필리버스터는 장시간 동안 발언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진행을 가로막아 다수당이 입법 과정을 독점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하지만 소수당의 방종을 방치하는 제도라는 시각도 있어 왔죠. 국정운영을 마비시키고 중차대한 개혁을 막는 주범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1960년대 미국 남부에 지역구를 둔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흑인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시민권 개혁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악용하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필리버스터 개혁 노력이 본격화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필리버스터 제도를 고치거나 아예 없애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상원에서도 하원에서처럼 다수결로 법안을 처리하자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때마다 이러한 노력을 무력화하기 위한 반발이 있었습니다. 필리버스터를 개혁하려는 측과 개혁을 무력화하려는 측 사이에서 줄다리기가 계속되는 과정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의회 제도 개혁은 의도와는 다른 결과를 낳곤 한다는, 개혁은 좋은 의도만 가진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줬습니다.”
—개혁은 말처럼 쉽지 않다는 말씀이군요. 그렇기에 난관을 극복하고 개혁을 성공리에 완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개혁을 수행하는 주체, 즉 의원들의 자질과 역량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미국 의회(America’s Congress)》라는 저서에서 남다른 자질과 역량을 가진 의원들과 그들의 역사적 업적을 연구한 적도 있죠.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공영역(Public Sphere) 이론에 주목해서 1789년에서 1988년 사이 연방의회 소속 상·하원 의원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의회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의원들의 투표 기록이나 법안 발의 등 입법활동에 집중되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국민 여론을 형성하는 등 의원들이 입법활동 이외에도 의미있는 기여를 많이 해 왔다는 사실을 밝혀 냈습니다. 영국과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의원들, 즉, 이념의 맹목적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고 근시안적인 정쟁에 얽매이려 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에 앞장서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던 의원들의 역할이 긴요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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