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거운동 기간 하루 3시간 잤다”
⊙ “게으른 의정 활동 한다면 양심을 걸고 차기 총선 不出馬”
⊙ “동작을 출마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다”
⊙ “광주 공무원들 머리 쓰고 발로 뛰는 일 잘 못해”
⊙ “세월호 실종자 가족 만나 보니, 대통령 7시간 행적에 관심 없더라”
李貞鉉
⊙ 55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한나라당 상근 부대변인.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
대통령 정무·홍보수석, 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 “게으른 의정 활동 한다면 양심을 걸고 차기 총선 不出馬”
⊙ “동작을 출마 생각한 적 단 한 번도 없다”
⊙ “광주 공무원들 머리 쓰고 발로 뛰는 일 잘 못해”
⊙ “세월호 실종자 가족 만나 보니, 대통령 7시간 행적에 관심 없더라”
李貞鉉
⊙ 55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 한나라당 상근 부대변인.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
대통령 정무·홍보수석, 19대 국회의원. 새누리당 최고위원.
“대이변이 일어날 수도 있다.”
7·30 재·보선을 사흘 앞둔 7월 27일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여권(與圈)의 고위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이정현(李貞鉉) 새누리당 후보가 순천·곡성 재선거에서 승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자를 포함, 자리를 함께한 누구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일부는 그 관계자를 “정치를 알려면 아직 멀었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관계자가 근거로 이 후보가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지만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막판엔 야당 후보가 승리하는 게 정치권의 상식(常識)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선거를 앞두고 종편(종합편성채널)과 공중파의 시사대담 프로에 출연한 여론조사 전문가, 정치평론가들도 이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Zero)로 봤다.
그런데 이틀 뒤 많은 이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이 후보가 지역주의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버린 것이다. 이 후보는 7·30 순천·곡성 재선거에서 6만815표(49.43%)를 얻어 4만9611표(40.32%)를 얻은 서갑원(徐甲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1만1204표 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정치권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쾌거를 이뤄낸 이 후보를 향해 “어마어마한 사건”(청와대) “정치 혁명”(새누리당 이인제 의원) “새로운 역사 창조”(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발자취”(새정치민주연합 민현주 대변인) 등의 찬사를 보냈다. 당연했다. 1988년 선거구 1곳에서 국회의원 1명을 뽑는 소(小)선거구제를 도입한 이후 광주·전남 지역에서 현 여권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 후보가 처음이었다. 전북까지 넓혀 호남 지역 전체로 봐도 1996년 15대 때 군산을(乙)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소속이던 강현욱(姜賢旭) 후보가 당선된 이래 18년 만이다.
당선 이후 이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승리 요인으로 진정성을 담은 선거운동 방식을 꼽았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 중고 자전거를 타고, 하루 20시간 이상의 마라톤식 유세를 벌였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굳게 닫혔던 호남의 문을 연 이 의원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추석연휴 직전인 9월 5일 오전 이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사무실 안에는 이 의원이 선거 때 쓰던 밀짚모자가 걸려 있었다. 선거 때 사용한 물품에 관련한 것부터 물었다.
저녁 모임 21곳 방문한 적도
—밀짚모자 외 다른 선거 물품(중고 자전거, 손 마이크, 빨간 조끼)은 보관하지 못해 아쉽겠습니다.
“아닙니다. 저에게는 더 없는 영광이지요.”
이 의원이 선거에서 사용한 중고 자전거와 손 마이크, 빨간 조끼는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록관리실에 전시돼 있다. 중앙선관위는 이 의원의 선거운동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 이같이 결정했다.
—중고 자전거가 선거 승리의 ‘일등공신’이라는 평가가 나오던데요. 그 기어(gear)도 없는 낡은 자전거는 어떻게 구한 겁니까.
“제가 중학생 때 집에서 20리(8km)나 떨어진 순천의 주암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거리가 멀다 보니까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출마를 해 고향에 와보니 그때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저에게 익숙한 그 자전거를 타고 유세를 다니면 어떨까 생각을 했지요. 이 와중에 친지로부터 순천의 한 어르신께서 제가 중학교 때 탔던 기어 없는 자전거를 갖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분에게 샀습니다.”
—서민적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중고 자전거를 산 것은 아닌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는 중학교 때 제가 고향에서 타고 다녔던 자전거를 타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제게 가장 편하고 익숙한 자전거니까요.”
—2012년 19대 총선(광주 서구을) 때부터 ‘자전거 유세’를 했는데, 장점이 많은 모양이죠.
“이정현을 알리는 데 자전거만 한 게 없습니다. 차로 이동하면 이동 중에는 유권자를 못 만나지 않습니까.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이동 중에도 많은 분에게 저를 알릴 수 있습니다. 또 자전거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나 이면도로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습니다. 걸어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사실 걷기에는 거리가 좀 애매합니다. 저는 가장 유권자 프렌들리(friendly)한 선거 도구가 자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어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자전거 타는 것을 서민적이라고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어깨띠는 위화감 느끼게 해”
—빨간 조끼도 이슈가 됐습니다. 어깨띠 대신 빨간 조끼를 착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선거를 많이 치러보지 않았습니까. 어깨띠를 하고 다가가면 유권자들이 위화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권자가 후보자를 자신과는 다른 세상의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그래서 과감히 어깨띠를 벗어던지고 조끼를 대신 입은 것입니다. 조끼도 시장에서 산 것입니다.”
—선거운동 기간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하루 세 시간 잤습니다. 밤 12시30분에 자서 새벽 3시30분에 일어났습니다.”
—기상해서 어디를 가장 처음 방문했습니까.
“일반 택시기사님들이 모이는 택시 충전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인사드리고 새벽 5시가 되면 버스기사님들이 나오는 버스 차고지를 방문했습니다. 그 후 동네 작은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오전 7시가 되면 주변의 대중탕에 들러 시민과 함께 목욕을 했습니다. 8시가 되면 제 유세 트럭을 타고, 대로변을 돌았습니다. 여기서 저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유세 트럭으로 대로변을 돌 때는 조용히 손만 흔드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음악 틀고, 마이크 잡고 이야기하면 얼마나 시끄럽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유세차에 LED 전광판, 발전기, 음향 등 장비를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유세차도 1t짜리 조그마한 트럭으로 구했습니다.”
일반 선출직 후보자는 대개 LED 전광판, 발전기, 음향 등 약 8~9개 장비를 설치한 2.5~5t짜리 트럭을 유세차량으로 사용한다.
—유세 트럭으로 조용히 대로변을 도는 게 오전 일정의 마지막인가요.
“그렇지요. 점심, 저녁때는 5분 단위로 시간을 끊어서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예를 들어 어디서 ○○학교 동창회를 한다더라는 정보를 입수하면 무조건 쫓아갔지요. 점심 모임 7곳, 저녁 모임 21곳을 하루에 모두 방문한 적도 있었습니다.”
—선거 때 내걸었던 ‘슬로건’이 상당히 독특했습니다.(이 의원은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이런 일들이 정말 현실이 됩니다’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저는 평생 비(非)주류, 비일류로만 살아왔습니다. 다수의 국민도 저와 마찬가지로 비주류, 비일류입니다. 이런 분들의 애환을 대변하는 것이 저의 오랜 꿈입니다. 그래서 일반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선거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가장 ‘이정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특한 슬로건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태백산맥》 읽으며 전라도 사투리 감각 회복”
—유권자 눈높이에 맞는, ‘이정현다운’ 선거운동이 정확히 무엇입니까.
“‘위세’를 완전히 지우고 낮은 자세로 하는 선거운동입니다. 저는 유권자가 앉아 계시면 무릎부터 꿇었습니다. 순천·곡성 현안을 말씀하시면 무조건 수첩에 메모했습니다. 비서진을 대동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요. 문자 하나 보낼 때도 ‘이정현 드림’이 아니라 ‘이정현 올림’이라고 적었습니다. 저를 소개할 때도 ‘곡성에서 나서 주암 순천에서 배운 목사동 촌놈 정현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작은 것 하나도 유권자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또 지역민들과 가감 없이 소통하기 위해 사투리도 따로 공부했습니다.”
—서울에서 오래 생활해서 사투리 구사가 어려웠던 모양이지요.
“그렇죠. 혹시나 사투리 쓰는 게 어설퍼 보일까 봐 순천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쓰신 《태백산맥》을 다시 읽으면서 제 혀의 사투리 감각을 회복시켰습니다. 《태백산맥》 보면 전라도 사투리가 엄청 나옵니다. 그것을 따라 읽었지요. 금방 적응되더라고요. 유권자와 본토 발음으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지역민도 저를 더욱 친근감 있게 바라봐 주셨습니다.”
—유권자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던가요.
“그럼요. 처음 출마선언을 하고 얼마 안 돼서 새벽에 순천 황전면 재래시장인 괴목장을 방문, 명함을 돌리는데 한 아주머니가 제 명함과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먼 당이다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옆에 있으니까 가까운 당이구먼’이라고 답했지요. 그러니까 ‘아니, 그러니까 뭔 당이냐는 말이요’라고 성질을 팍 내더라고요. 그래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새누리당입니다’라고 했더니 ‘됐어라’하고 가시더라고요. 그런데 진심으로 몇 날 며칠을 새벽부터 밤까지 죽을 각오로 열심히 뛰니까 ‘이정현이 소탈하더라’ ‘겸손하더라’ 이런 이야기가 돌더군요.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새정치민주연합의 덕을 본 것도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덕을 봤다니요.
“제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경선 시기에 정말 무지막지하게 뛰어다녔거든요. 새정치연합 후보 경선 기간이 제 입장에서는 정말 좋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7월 6일 경선을 실시, 서갑원 후보를 순천·곡성 지역 후보로 선출했다.
—유권자가 마음을 열었다고 판단했을 때는 어떤 식으로 유세를 펼쳤습니까. 좀 더 공격적으로 했나요.
“평소랑 똑같이 했어요. 다만 유권자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만큼 제가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쉽게 설명했습니다.”
19대 총선 때는 이름 알리기에만 急急
—어떻게 쉽게 설명했나요.
“‘통진당도 뽑았는데, 새누리당 뽑는다고 순천·곡성이 망하겠느냐. 그냥 속는 셈치고 한번 밀어줘 달라. 1년10개월 써보고 잘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버리시면 되지 않느냐. 양심을 걸고 이야기하는데 1년10개월 임기 동안 제가 조금이라도 게으름 피운다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아주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일반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니까 유권자들이 좋아하셨어요.”
원래 순천·곡성 지역구 의원은 통합진보당 소속의 김선동 의원이었다.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린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런데 정말 1년10개월 임기 내에 조금이라도 게으름 피운다면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 같은 촌놈만이 할 수 있는 다짐입니다.”
—혹시 선거 앞두고 정치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았습니까.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모두 제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의 산물입니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던 19대 총선 때도 낡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며 재선거 때와 비슷하게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때는 왜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까요.
“겉모습은 비슷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제 얼굴, 이름을 알리는 데만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깊이 없이 유권자들을 만난 것이죠. 19대 총선에서 저 자신만을 내세우는 선거운동을 했다면 이번 재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이정현을 내세워주게끔 하는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이번 선거운동 하면서 절실히 느낀 점은 100명 모인 100군데에서 대충 얼굴 알리는 것보다 10명 모인 10군데 가서 성의를 다해 자신을 알리는 것이 훨씬 도움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의원은 19대 총선 때와는 달리 “저는 호남 외에 갈 곳이 없습니다. 미치도록, 정말 미치도록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제발 제 손 한 번만 잡아주십시오”라며 온몸을 던진 읍소이자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하였지만, 이 의원의 경쟁상대였던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는 선거운동원을 병풍처럼 앞에 세우고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량에 올라 연설했다.
—이 의원처럼 선거운동을 하는 의원이 현 국회에도 있을까요.
“그럼요. 강창희 전 국회의장,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말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거 자금 2억5000만원 知人 5명에게 빌려
—박근혜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만큼 선거 과정에서 자금(資金)을 대주겠다는 제의가 꽤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저에게 조직을 팔겠다는 제안이 몇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안 받고 안 주는 운동만 해왔습니다. 사실 친인척들이 선거에 보태라고 돈을 조금 모아줬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돈이란 것이 있으면 쓰게 되지 않습니까. ‘돈 주면 조직을 넘기겠다’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국회의원직에 환장한 사람 아니다. 그렇게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면 국회의원 안 하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물러나더군요.”
—안 받고 안 주는 선거운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활동비는 줘야 하지 않습니까.
“가능합니다. 기존 후보들의 자원봉사자들은 율동을 하며, 지지를 호소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1시간만 지나도 녹초가 됩니다. 녹초가 된 분들에게 계속 율동을 요구하려면 아마 어느 정도 보상은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자원봉사자들은 전원이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모두 제 당선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이었지요. 그들에게 저는 ‘편한 시간에 나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나를 알려달라. 그리고 시간이 남는다면 경로당이나 보육원 등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들 이유가 없었습니다.”
—선거사무실, 유세차량 대여 등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자금은 어떻게 충당했습니까.
“지인 5명에게 5000만원씩 공식적으로 빌렸습니다. 환급받으면 법정이자까지 쳐서 갚을 것입니다.”
지난 3월 28일 정부공직자윤리회가 관보를 통해 공개한 ‘2014년 정기 재산 변동사항(2013년 말 기준)’에 따르면 당시 홍보수석이었던 이 의원의 신고 재산은 4억5027만원으로 청와대 내 공직자 중 재산이 가장 적었다.
“동작을 출마 요청에 망설임 없이 NO”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 의원은 지난 6·4 지방선거 직후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고 청와대를 나왔다. 직후 다수 언론은 ‘이 의원이 7·30 재·보선 서울 동작을 지역구 출마를 결심했다’고 보도했다. 결론적으로 오보(誤報)가 됐지만 다수의 언론이 왜 이렇게 보도했는지 궁금했다. 혹시 동작을에 출마하려다 어떤 이유 때문에 순천·곡성 출마로 결심을 선회한 것은 아닐까. 실제 새누리당 사무총장으로 7·30 재·보선을 진두지휘한 윤상현(尹相現) 의원은 지난 8월 3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의원과 관련 “당초 서울 동작을 출마를, ‘정권 심판론’으로 흐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고 본인이 포기했다”고 말했다.
—실제 동작을 출마를 준비했었습니까.
“제가 1995년 광주 광산 제2선거구에 민자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14대 총선(광주 서구을), 2012년 19대 총선(광주 서구을) 때까지 왜 모두 광주에서만 출마한지 아십니까.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가 호남 사람이라서입니다. 호남이 발전 못 한 이유는 일당독재(一黨獨裁)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고향 사람으로서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실종됐던 호남에서의 경쟁을 살리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런 제가 동작을 출마를 준비했겠습니까.”
—혹시 새누리당에서 동작을 출마 요청을 하진 않았나요.
“많은 사람이 나에게 동작에 출마하라고 했지만 단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노(NO)’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순천·곡성 재선거 출마 결심을 굳힌 시기는 언제입니까.
“국회에서 최루탄을 투척한 혐의로 기소된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며칠 전입니다.”
김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6월 12일에 있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출마선언을 하면서 당선 자신감을 표시했는데 실제 당선될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아니면 강한 척 연기한 것입니까.
“자신이 없이는 선거에 출마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때문에 민심도 상당히 좋지 않았고…, ‘낙선하면 절대로 정치권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이 의원 지역구인 순천·곡성의 최대 현안은 ‘순천대 의대’ 유치다. 이 의원도 선거 과정에서 ‘순천대 유치’를 역점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공약 이행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목포에 거점을 둔 박지원(朴智元)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미 지난 2008년부터 전남권 의대(醫大) 유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전남권 醫大 입지 놓고 朴智元과 대립 불가피
박 의원은 “전남은 전국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곳”이라며 “이 중 특히 신안·진도·완도 등 서남권 도서 벽지 주민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있어, 광주까지 가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목포대에 의대가 유치돼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한 이 의원의 견해는 어떨까. 그의 이야기다.
“전남에 들어올 의대는 산업단지가 밀집한 동부권을 대표하는 순천대에 설치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남 제조업 생산의 75%가 동부권에 집중돼 산업재해가 빈번한 데다, 인근 남해·하동에서 찾아올 주민들까지 고려하면 100만명의 의료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남 지역 ‘의대 유치’를 놓고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의 대립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 문제는 잘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박지원 의원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의대 유치는 선수(選數)와 힘이 아니라 논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박 의원을 충분히 설득, 양보를 얻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박 의원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분과 특별한 인연이 있지는 않지만, 박 의원은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분 중 한 분입니다.”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고 한 달쯤 뒤였을 겁니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이정현 의원이요? 나 박지원이오’하는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 의원님과 인사를 나눈 적도 없던 차라 깜짝 놀랐었죠. ‘아, 장관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그랬더니, ‘내가 우리 이정현 의원에게 칭찬 한마디 하려고 전화를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랬더니 ‘우리 호남 사람들이 배신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참 유감인데, 장세동씨나 김덕룡씨나 나를 봐라. 자기가 모셨던 분들 어려운 처지에 처했을 때 끝까지 의리 지킨 사람은 호남 사람 아니냐. 요즘 박근혜 대표 옆에 항상 붙어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전남 곡성 출신 이정현이라 하더라. 호남의 의리의 맥을 이어주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만나면 정치 선배로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주군(主君)을 잘 모시는 법’ 같은 것을 가르쳐줬나요.
“그건 아니고, 연설의 달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설할 때면 원고를 써서 녹음하고 숙달할 때까지 연습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며 항상 노력하라, 또 다른 일화를 예로 들며 ‘성실해라’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습니다.”
메기 효과
인터뷰 도중에도 그의 휴대폰은 끊임없이 울렸다. 기자들 사이에 이 의원은 ‘배터리 12개’로 유명하다. ‘018’로 시작하는 2세대(2G) 폴더형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는 그는 기자들의 전화 취재에 빼놓지 않고 응대하기 위해 휴대전화기 배터리를 최대 12개까지 가지고 다닌다.
인터뷰 도중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던 이 의원이 양해를 구했다. 전화를 받기 위해서였다. 내용을 듣자 하니 지역구 예산과 관련한 전화였다.
안 그래도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을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날(5일) 이 의원이 ‘호남 예산 챙기기’에 본격 돌입한 것을 보고 놀란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의원들도 지역 챙기기를 당 지도부에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등 ‘메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기 효과’는 메기 한 마리를 수조에 넣어두면 다른 물고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면서 상태가 건강해지는 것을 뜻한다.
—정체돼 있던 호남 정치권에 변화를 가져오는 ‘메기’ 역할을 한다는 것에 동의하세요?
“앞서 이야기했지만 제가 호남에서 당선되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30년 동안 공천장만 넣으면 당선증(當選證)이 나오는 ‘자판기 선거’가 호남의 정치경쟁을 실종시켰습니다. 제가 국회에 들어온 만큼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의원 29명보다 제가 지역 발전에 훨씬 기여한다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 것입니다.”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순천시와 곡성군 두 시·군이 내년도에 확보할 수 있는 국비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 시·군이 내년도 국비 신청 규모를 결정한 것이 지난 4월 말인 만큼 향후 기재부 심의 및 국회 심의 과정에 추가 반영한다고 해도 ‘예산 폭탄’이라는 말에 어울릴 만한 증액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잘못된 논리입니다. 예산은 절차라는 게 있습니다. 예산을 확정하고 처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년 초 각 지자체와 일선기관에서 다음해에 필요한 예산을 해당부처에 신청 → 부처별로 선별, 취합 후 기획재정부로 이관 → 기재부 총괄 조정 → 국무회의 심의·의결 및 대통령 승인 → 국회에 정부여당안(案) 제출 → 국회 상임위별 예비심사 → 예결위 본심사 →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세부심사 → 예결위 처리 → 본회의 처리.
여기서 ‘정부여당안’이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정부와 여당이 협의를 한 안이란 뜻 아닙니까. 제가 여당 소속 아닙니까. 저는 정부여당안을 심의·의결하는 예결특위원이고, 여당의 최고위원입니다. 그리고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하면서 수도 없이 예산을 확보한 경험이 있습니다. 충분히 호남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예산 폭탄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왜 전라도의 시장, 도지사, 구청장, 군수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제 의원사무실을 찾아오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 아닐까요. 다만 그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報恩人事 하는 분 아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제가 고향 발전을 위해 죽자사자 예산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데 광주는 머리를 쓰고 발로 뛰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 없이 안 되는 것을 5년, 6년, 7년 매달리고 있는데, 빡빡 우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산 처리가 끝나면 지역 신문 1면 톱에 ‘8조 얼마 신청했는데 4조 얼마밖에 반영 안 돼…’ 이렇게 나올 것인데, 이런 언론플레이를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 의원은 인터뷰 전날인 9월 4일 공직 인사에서 출신지역 차별을 금지토록 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공직인사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호남 민심을 염두에 둔 법안이었다.
개정안은 공직인사의 임용, 보직관리, 승진과 관련한 원칙을 담은 현행법 조항에 ‘특정지역 출신을 우선 또는 우대하거나 차별 또는 배제할 수 없다’는 문구를 추가토록 했다. 이 의원은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의 채용과 승진, 보직 부여와 관련해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또 다른 역(逆)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보인다. 법안으로 인해 호남 인사를 대거 발탁할 경우 타지역에서도 ‘역차별’이라고 반발할 수 있는 까닭이다.
—법안으로 인해 공정성이 훼손돼 역차별 논란이 일지 않을까요.
“인사차별을 안 받은 지역 출신 사람들은 ‘왜 호남 사람들만 저렇게 징징댈까?’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별을 받은 지역 사람들은 정말 엄청난 상처를 받습니다. 호남에 탯줄을 묻은 게 죄입니까? 똑같이 엉덩이에 진물 나게 고시공부를 해 과장까지는 똑같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후부터 많은 호남 출신이 숙명처럼 자포자기하고 힘없이 물러나는 것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하늘이 준 능력을 인치에 의해 매장시키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막는 것은 죄악입니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입니다. 유달리 호남을 차별하는 장관이나 국영기업체 사장이 (있다고) 제 귀에 들어오면 조사하겠습니다. 보좌진을 총동원해 검증하고, 사실로 밝혀지면 공개적으로 밝히고 그분들과 싸울 것입니다.”
—솔직히 박근혜 정부에서도 호남 출신들은 소외됐지 않습니까.
“제가 분명히 밝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정권처럼 자기 동향이나 동문을 챙긴 적이 없습니다. 선거 때 도와준 인사는 무조건 요직에 앉힌다고 비판하는데 박 대통령은 절대 그런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반박 질문을 하려고 하자, 이 의원은 “나는 청와대를 나온 사람”이라며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선 후 일주일 행적
—당선되고 일주일이나 지역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뭐 했습니까.
“당선 인사 다녔습니다. 순천·곡성 유권자들에게 매우 고마웠고 가슴이 벅차 도저히 내 눈을 순천·곡성 주민들에게서 뗄 수가 없었습니다. 순천시민, 곡성군민 모두가 저에게 억만금을 준 분들입니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했습니까.
“선거운동 했을 때와 똑같이 했습니다. 새벽 3시30분부터 돌아다니며 시·군민 한 분 한 분과 눈을 마주치고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절 찍어준 분 중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1번 찍었다’ ‘내가 이정현 때문에 고향을 배신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너무너무 가슴이 벅찼습니다.
시민께서 어떻게 보면 자신의 신념, 이념을 바꾸는 어려운 선택을 해주셨는데 어떻게 의정 활동을 한답시고 서울로 훌쩍 떠날 수 있겠습니까. 인사를 하면서 한 분 한 분 눈을 마주치며, 속으로 다짐하고 또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갚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속으로 말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정치인은 환경에 따라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지요. 마음속에 보은하겠다는 못을 박고, 프린트하고 또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 순천·곡성에만 머문 것입니까.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사실 31일 오후 4시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분들과 정말 진솔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실종자 가족은 어떤 하소연을 하던가요.
“딴 건 관심도 없었습니다. 생때같은 내 자식이 왜 그리 억울하게 죽었는지, 누구 잘못인지, 무엇을 고쳐야 비슷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지 그것만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습니다.”
“‘국회해산’ 얘기 많이 들어”
이 의원이 전한 세월호 유족의 공통적 하소연이 사실이라면 특별법 조문에 수사권·기소권 문항을 넣을지 말지를 놓고 그토록 오랜 시간 샅바싸움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예상외로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지금 야권에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뭐 했느냐고 묻는데 이것이 세월호 유족들의 하소연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참고로 대통령이 집무실에 계시든, 집무실 내 방에 계시든, 관저에 계시든, 벙커에 계시든, 비서들이 근무하는 건물에 계시든, 큰 사태에 대비한 또 다른 벙커에 계시든 청와대에는 경내에만 있으면 어디서든 집무를 볼 수 있는 통신, 경호, 접견 시설이 완비돼 있습니다. 그때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세월호 사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의원이 ‘박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 보고받은 그날 오전 10시부터 박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까지 7시간 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따져 묻고 있다. 정부 초기 대응 문제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7시간 미스터리’와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야권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가 기소권·수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야권이 ‘세월호의 진실’을 부르짖는 진짜 속내는 참사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든 청와대 쪽으로 돌려 박근혜 대통령을 흔들고 싶다는 것일 터이다. 참고로 검찰과 특검에만 맡겨서는 그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추석 연휴 직후 세월호 특별법으로 인한 대치 정국을 바라보는 호남 민심을 묻기 위해 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의원이 전한 호남 민심은 이랬다.
“정치에 대해 물으면 국회 해산시키라는 얘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합니다. ‘그런 X의 국회의원들은 필요 없다’ ‘먹고 노는 국회는 해산시켜야 한다’고 흥분하면서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바로 욕이 나오고, 해산시키라고 하고, 한마디로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큽니다.”
이 의원은 추석 연휴 동안 순천·곡성·무안·신안·목포·해남·완도·강진·장흥·화순·나주·담양을 돌아다니며 민심을 청취했다.⊙
7·30 재·보선을 사흘 앞둔 7월 27일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여권(與圈)의 고위 관계자는 이같이 말했다. 이정현(李貞鉉) 새누리당 후보가 순천·곡성 재선거에서 승리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기자를 포함, 자리를 함께한 누구도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일부는 그 관계자를 “정치를 알려면 아직 멀었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관계자가 근거로 이 후보가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제시했지만 매한가지였다. 아무리 그래도 막판엔 야당 후보가 승리하는 게 정치권의 상식(常識)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선거를 앞두고 종편(종합편성채널)과 공중파의 시사대담 프로에 출연한 여론조사 전문가, 정치평론가들도 이 후보의 승리 가능성을 사실상 제로(Zero)로 봤다.
그런데 이틀 뒤 많은 이의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이 후보가 지역주의의 한 귀퉁이를 허물어버린 것이다. 이 후보는 7·30 순천·곡성 재선거에서 6만815표(49.43%)를 얻어 4만9611표(40.32%)를 얻은 서갑원(徐甲源)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1만1204표 차로 누르고 승리했다.
정치권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긋는 쾌거를 이뤄낸 이 후보를 향해 “어마어마한 사건”(청와대) “정치 혁명”(새누리당 이인제 의원) “새로운 역사 창조”(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발자취”(새정치민주연합 민현주 대변인) 등의 찬사를 보냈다. 당연했다. 1988년 선거구 1곳에서 국회의원 1명을 뽑는 소(小)선거구제를 도입한 이후 광주·전남 지역에서 현 여권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 후보가 처음이었다. 전북까지 넓혀 호남 지역 전체로 봐도 1996년 15대 때 군산을(乙)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소속이던 강현욱(姜賢旭) 후보가 당선된 이래 18년 만이다.
당선 이후 이 의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승리 요인으로 진정성을 담은 선거운동 방식을 꼽았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 중고 자전거를 타고, 하루 20시간 이상의 마라톤식 유세를 벌였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굳게 닫혔던 호남의 문을 연 이 의원만의 비결은 무엇일까. 추석연휴 직전인 9월 5일 오전 이 의원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사무실 안에는 이 의원이 선거 때 쓰던 밀짚모자가 걸려 있었다. 선거 때 사용한 물품에 관련한 것부터 물었다.
저녁 모임 21곳 방문한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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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했던 이정현 의원은 재·보선 다음날인 7월 31일에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당선인사를 했다. |
“아닙니다. 저에게는 더 없는 영광이지요.”
이 의원이 선거에서 사용한 중고 자전거와 손 마이크, 빨간 조끼는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록관리실에 전시돼 있다. 중앙선관위는 이 의원의 선거운동이 의미가 있다고 판단, 이같이 결정했다.
—중고 자전거가 선거 승리의 ‘일등공신’이라는 평가가 나오던데요. 그 기어(gear)도 없는 낡은 자전거는 어떻게 구한 겁니까.
“제가 중학생 때 집에서 20리(8km)나 떨어진 순천의 주암중학교를 다녔습니다. 거리가 멀다 보니까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출마를 해 고향에 와보니 그때 생각이 나는 겁니다. 그래서 저에게 익숙한 그 자전거를 타고 유세를 다니면 어떨까 생각을 했지요. 이 와중에 친지로부터 순천의 한 어르신께서 제가 중학교 때 탔던 기어 없는 자전거를 갖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전해듣고 그분에게 샀습니다.”
—서민적으로 보이기 위해 일부러 중고 자전거를 산 것은 아닌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저는 중학교 때 제가 고향에서 타고 다녔던 자전거를 타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제게 가장 편하고 익숙한 자전거니까요.”
—2012년 19대 총선(광주 서구을) 때부터 ‘자전거 유세’를 했는데, 장점이 많은 모양이죠.
“이정현을 알리는 데 자전거만 한 게 없습니다. 차로 이동하면 이동 중에는 유권자를 못 만나지 않습니까. 하지만 자전거를 타면 이동 중에도 많은 분에게 저를 알릴 수 있습니다. 또 자전거는 자동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골목이나 이면도로를 마음대로 다닐 수 있습니다. 걸어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사실 걷기에는 거리가 좀 애매합니다. 저는 가장 유권자 프렌들리(friendly)한 선거 도구가 자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어 “만나는 사람마다 제가 자전거 타는 것을 서민적이라고 좋아했다”고 덧붙였다.
“어깨띠는 위화감 느끼게 해”
—빨간 조끼도 이슈가 됐습니다. 어깨띠 대신 빨간 조끼를 착용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가 선거를 많이 치러보지 않았습니까. 어깨띠를 하고 다가가면 유권자들이 위화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유권자가 후보자를 자신과는 다른 세상의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죠. 그래서 과감히 어깨띠를 벗어던지고 조끼를 대신 입은 것입니다. 조끼도 시장에서 산 것입니다.”
—선거운동 기간 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고 하던데요.
“하루 세 시간 잤습니다. 밤 12시30분에 자서 새벽 3시30분에 일어났습니다.”
—기상해서 어디를 가장 처음 방문했습니까.
“일반 택시기사님들이 모이는 택시 충전소로 갔습니다. 거기서 인사드리고 새벽 5시가 되면 버스기사님들이 나오는 버스 차고지를 방문했습니다. 그 후 동네 작은 교회에 들러 새벽기도에 참석하고, 오전 7시가 되면 주변의 대중탕에 들러 시민과 함께 목욕을 했습니다. 8시가 되면 제 유세 트럭을 타고, 대로변을 돌았습니다. 여기서 저만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유세 트럭으로 대로변을 돌 때는 조용히 손만 흔드는 것입니다. 아침부터 음악 틀고, 마이크 잡고 이야기하면 얼마나 시끄럽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유세차에 LED 전광판, 발전기, 음향 등 장비를 설치하지 않았습니다. 유세차도 1t짜리 조그마한 트럭으로 구했습니다.”
일반 선출직 후보자는 대개 LED 전광판, 발전기, 음향 등 약 8~9개 장비를 설치한 2.5~5t짜리 트럭을 유세차량으로 사용한다.
—유세 트럭으로 조용히 대로변을 도는 게 오전 일정의 마지막인가요.
“그렇지요. 점심, 저녁때는 5분 단위로 시간을 끊어서 모임이란 모임은 다 찾아다녔습니다. 예를 들어 어디서 ○○학교 동창회를 한다더라는 정보를 입수하면 무조건 쫓아갔지요. 점심 모임 7곳, 저녁 모임 21곳을 하루에 모두 방문한 적도 있었습니다.”
—선거 때 내걸었던 ‘슬로건’이 상당히 독특했습니다.(이 의원은 자신의 이름을 이용해 ‘이런 일들이 정말 현실이 됩니다’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저는 평생 비(非)주류, 비일류로만 살아왔습니다. 다수의 국민도 저와 마찬가지로 비주류, 비일류입니다. 이런 분들의 애환을 대변하는 것이 저의 오랜 꿈입니다. 그래서 일반 유권자의 눈높이에 맞는 선거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게 가장 ‘이정현다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특한 슬로건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태백산맥》 읽으며 전라도 사투리 감각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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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현 의원은 철저히 자기를 낮추는 선거운동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었다. |
“‘위세’를 완전히 지우고 낮은 자세로 하는 선거운동입니다. 저는 유권자가 앉아 계시면 무릎부터 꿇었습니다. 순천·곡성 현안을 말씀하시면 무조건 수첩에 메모했습니다. 비서진을 대동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요. 문자 하나 보낼 때도 ‘이정현 드림’이 아니라 ‘이정현 올림’이라고 적었습니다. 저를 소개할 때도 ‘곡성에서 나서 주암 순천에서 배운 목사동 촌놈 정현이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작은 것 하나도 유권자 입장에서 생각했습니다. 또 지역민들과 가감 없이 소통하기 위해 사투리도 따로 공부했습니다.”
—서울에서 오래 생활해서 사투리 구사가 어려웠던 모양이지요.
“그렇죠. 혹시나 사투리 쓰는 게 어설퍼 보일까 봐 순천 출신의 유명한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쓰신 《태백산맥》을 다시 읽으면서 제 혀의 사투리 감각을 회복시켰습니다. 《태백산맥》 보면 전라도 사투리가 엄청 나옵니다. 그것을 따라 읽었지요. 금방 적응되더라고요. 유권자와 본토 발음으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하니까 지역민도 저를 더욱 친근감 있게 바라봐 주셨습니다.”
—유권자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던가요.
“그럼요. 처음 출마선언을 하고 얼마 안 돼서 새벽에 순천 황전면 재래시장인 괴목장을 방문, 명함을 돌리는데 한 아주머니가 제 명함과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먼 당이다요?’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옆에 있으니까 가까운 당이구먼’이라고 답했지요. 그러니까 ‘아니, 그러니까 뭔 당이냐는 말이요’라고 성질을 팍 내더라고요. 그래서 기어드는 목소리로 ‘새누리당입니다’라고 했더니 ‘됐어라’하고 가시더라고요. 그런데 진심으로 몇 날 며칠을 새벽부터 밤까지 죽을 각오로 열심히 뛰니까 ‘이정현이 소탈하더라’ ‘겸손하더라’ 이런 이야기가 돌더군요.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이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새정치민주연합의 덕을 본 것도 있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덕을 봤다니요.
“제가 새정치민주연합 후보 경선 시기에 정말 무지막지하게 뛰어다녔거든요. 새정치연합 후보 경선 기간이 제 입장에서는 정말 좋았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지난 7월 6일 경선을 실시, 서갑원 후보를 순천·곡성 지역 후보로 선출했다.
—유권자가 마음을 열었다고 판단했을 때는 어떤 식으로 유세를 펼쳤습니까. 좀 더 공격적으로 했나요.
“평소랑 똑같이 했어요. 다만 유권자가 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만큼 제가 당선돼야 하는 이유를 쉽게 설명했습니다.”
19대 총선 때는 이름 알리기에만 急急
—어떻게 쉽게 설명했나요.
“‘통진당도 뽑았는데, 새누리당 뽑는다고 순천·곡성이 망하겠느냐. 그냥 속는 셈치고 한번 밀어줘 달라. 1년10개월 써보고 잘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버리시면 되지 않느냐. 양심을 걸고 이야기하는데 1년10개월 임기 동안 제가 조금이라도 게으름 피운다면 출마하지 않겠다’고 아주 직설적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가 일반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니까 유권자들이 좋아하셨어요.”
원래 순천·곡성 지역구 의원은 통합진보당 소속의 김선동 의원이었다. 그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트린 혐의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런데 정말 1년10개월 임기 내에 조금이라도 게으름 피운다면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을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저 같은 촌놈만이 할 수 있는 다짐입니다.”
—혹시 선거 앞두고 정치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았습니까.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모두 제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의 산물입니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던 19대 총선 때도 낡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누비며 재선거 때와 비슷하게 선거운동을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그때는 왜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을까요.
“겉모습은 비슷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제 얼굴, 이름을 알리는 데만 급급했던 것 같습니다. 깊이 없이 유권자들을 만난 것이죠. 19대 총선에서 저 자신만을 내세우는 선거운동을 했다면 이번 재선거에서는 유권자가 이정현을 내세워주게끔 하는 선거운동을 했습니다. 이번 선거운동 하면서 절실히 느낀 점은 100명 모인 100군데에서 대충 얼굴 알리는 것보다 10명 모인 10군데 가서 성의를 다해 자신을 알리는 것이 훨씬 도움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의원은 19대 총선 때와는 달리 “저는 호남 외에 갈 곳이 없습니다. 미치도록, 정말 미치도록 고향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제발 제 손 한 번만 잡아주십시오”라며 온몸을 던진 읍소이자 절규에 가까운 호소를 하였지만, 이 의원의 경쟁상대였던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는 선거운동원을 병풍처럼 앞에 세우고 트럭을 개조한 유세차량에 올라 연설했다.
—이 의원처럼 선거운동을 하는 의원이 현 국회에도 있을까요.
“그럼요. 강창희 전 국회의장,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정말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거 자금 2억5000만원 知人 5명에게 빌려
—박근혜 정권의 실세로 알려진 만큼 선거 과정에서 자금(資金)을 대주겠다는 제의가 꽤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럴 것으로 예상하고 저에게 조직을 팔겠다는 제안이 몇 번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동안 안 받고 안 주는 운동만 해왔습니다. 사실 친인척들이 선거에 보태라고 돈을 조금 모아줬는데 받지 않았습니다. 돈이란 것이 있으면 쓰게 되지 않습니까. ‘돈 주면 조직을 넘기겠다’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국회의원직에 환장한 사람 아니다. 그렇게 선거운동을 해야 한다면 국회의원 안 하겠다’고 분명히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물러나더군요.”
—안 받고 안 주는 선거운동이 현실적으로 가능합니까. 자원봉사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활동비는 줘야 하지 않습니까.
“가능합니다. 기존 후보들의 자원봉사자들은 율동을 하며, 지지를 호소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1시간만 지나도 녹초가 됩니다. 녹초가 된 분들에게 계속 율동을 요구하려면 아마 어느 정도 보상은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 자원봉사자들은 전원이 대학생들이었습니다. 모두 제 당선을 간절히 원하는 아이들이었지요. 그들에게 저는 ‘편한 시간에 나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나를 알려달라. 그리고 시간이 남는다면 경로당이나 보육원 등 사회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돈이 들 이유가 없었습니다.”
—선거사무실, 유세차량 대여 등 반드시 들어가야 할 자금은 어떻게 충당했습니까.
“지인 5명에게 5000만원씩 공식적으로 빌렸습니다. 환급받으면 법정이자까지 쳐서 갚을 것입니다.”
지난 3월 28일 정부공직자윤리회가 관보를 통해 공개한 ‘2014년 정기 재산 변동사항(2013년 말 기준)’에 따르면 당시 홍보수석이었던 이 의원의 신고 재산은 4억5027만원으로 청와대 내 공직자 중 재산이 가장 적었다.
“동작을 출마 요청에 망설임 없이 NO”
청와대 홍보수석이던 이 의원은 지난 6·4 지방선거 직후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하고 청와대를 나왔다. 직후 다수 언론은 ‘이 의원이 7·30 재·보선 서울 동작을 지역구 출마를 결심했다’고 보도했다. 결론적으로 오보(誤報)가 됐지만 다수의 언론이 왜 이렇게 보도했는지 궁금했다. 혹시 동작을에 출마하려다 어떤 이유 때문에 순천·곡성 출마로 결심을 선회한 것은 아닐까. 실제 새누리당 사무총장으로 7·30 재·보선을 진두지휘한 윤상현(尹相現) 의원은 지난 8월 3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 의원과 관련 “당초 서울 동작을 출마를, ‘정권 심판론’으로 흐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고 본인이 포기했다”고 말했다.
—실제 동작을 출마를 준비했었습니까.
“제가 1995년 광주 광산 제2선거구에 민자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한 것을 시작으로 2004년 14대 총선(광주 서구을), 2012년 19대 총선(광주 서구을) 때까지 왜 모두 광주에서만 출마한지 아십니까.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가 호남 사람이라서입니다. 호남이 발전 못 한 이유는 일당독재(一黨獨裁)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고향 사람으로서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실종됐던 호남에서의 경쟁을 살리는 것을 평생의 과업으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런 제가 동작을 출마를 준비했겠습니까.”
—혹시 새누리당에서 동작을 출마 요청을 하진 않았나요.
“많은 사람이 나에게 동작에 출마하라고 했지만 단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노(NO)’라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순천·곡성 재선거 출마 결심을 굳힌 시기는 언제입니까.
“국회에서 최루탄을 투척한 혐의로 기소된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며칠 전입니다.”
김 전 의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은 6월 12일에 있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출마선언을 하면서 당선 자신감을 표시했는데 실제 당선될 것이라 생각했습니까, 아니면 강한 척 연기한 것입니까.
“자신이 없이는 선거에 출마할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세월호 때문에 민심도 상당히 좋지 않았고…, ‘낙선하면 절대로 정치권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하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이 의원 지역구인 순천·곡성의 최대 현안은 ‘순천대 의대’ 유치다. 이 의원도 선거 과정에서 ‘순천대 유치’를 역점 공약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공약 이행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목포에 거점을 둔 박지원(朴智元)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미 지난 2008년부터 전남권 의대(醫大) 유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전남권 醫大 입지 놓고 朴智元과 대립 불가피
박 의원은 “전남은 전국 광역시·도 중 유일하게 의대가 없는 곳”이라며 “이 중 특히 신안·진도·완도 등 서남권 도서 벽지 주민들이 의료 사각지대에 있어, 광주까지 가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목포대에 의대가 유치돼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한 이 의원의 견해는 어떨까. 그의 이야기다.
“전남에 들어올 의대는 산업단지가 밀집한 동부권을 대표하는 순천대에 설치해야 한다고 봅니다. 전남 제조업 생산의 75%가 동부권에 집중돼 산업재해가 빈번한 데다, 인근 남해·하동에서 찾아올 주민들까지 고려하면 100만명의 의료 수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전남 지역 ‘의대 유치’를 놓고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의 대립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그 문제는 잘 해결될 것으로 봅니다.”
—박지원 의원과의 경쟁에서 이길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의대 유치는 선수(選數)와 힘이 아니라 논리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박 의원을 충분히 설득, 양보를 얻어낼 자신이 있습니다.”
—박 의원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분과 특별한 인연이 있지는 않지만, 박 의원은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분 중 한 분입니다.”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하고 한 달쯤 뒤였을 겁니다. 사무실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가 와서 받았는데 ‘이정현 의원이요? 나 박지원이오’하는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박 의원님과 인사를 나눈 적도 없던 차라 깜짝 놀랐었죠. ‘아, 장관님께서 어쩐 일이십니까?’ 그랬더니, ‘내가 우리 이정현 의원에게 칭찬 한마디 하려고 전화를 했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랬더니 ‘우리 호남 사람들이 배신 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참 유감인데, 장세동씨나 김덕룡씨나 나를 봐라. 자기가 모셨던 분들 어려운 처지에 처했을 때 끝까지 의리 지킨 사람은 호남 사람 아니냐. 요즘 박근혜 대표 옆에 항상 붙어다니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전남 곡성 출신 이정현이라 하더라. 호남의 의리의 맥을 이어주는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만나면 정치 선배로서 조언도 많이 해주셨습니다.”
—‘주군(主君)을 잘 모시는 법’ 같은 것을 가르쳐줬나요.
“그건 아니고, 연설의 달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설할 때면 원고를 써서 녹음하고 숙달할 때까지 연습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며 항상 노력하라, 또 다른 일화를 예로 들며 ‘성실해라’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해주셨습니다.”
메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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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보선 당선 직후 부인 김민경씨와 함께한 이정현 의원. |
인터뷰 도중 한 통의 전화도 받지 않던 이 의원이 양해를 구했다. 전화를 받기 위해서였다. 내용을 듣자 하니 지역구 예산과 관련한 전화였다.
안 그래도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용을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날(5일) 이 의원이 ‘호남 예산 챙기기’에 본격 돌입한 것을 보고 놀란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의원들도 지역 챙기기를 당 지도부에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등 ‘메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메기 효과’는 메기 한 마리를 수조에 넣어두면 다른 물고기들이 살아남기 위해 바쁘게 움직이면서 상태가 건강해지는 것을 뜻한다.
—정체돼 있던 호남 정치권에 변화를 가져오는 ‘메기’ 역할을 한다는 것에 동의하세요?
“앞서 이야기했지만 제가 호남에서 당선되고 싶어 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30년 동안 공천장만 넣으면 당선증(當選證)이 나오는 ‘자판기 선거’가 호남의 정치경쟁을 실종시켰습니다. 제가 국회에 들어온 만큼 새정치민주연합의 호남 의원 29명보다 제가 지역 발전에 훨씬 기여한다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 것입니다.”
—《문화일보》 보도에 따르면 순천시와 곡성군 두 시·군이 내년도에 확보할 수 있는 국비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 시·군이 내년도 국비 신청 규모를 결정한 것이 지난 4월 말인 만큼 향후 기재부 심의 및 국회 심의 과정에 추가 반영한다고 해도 ‘예산 폭탄’이라는 말에 어울릴 만한 증액은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잘못된 논리입니다. 예산은 절차라는 게 있습니다. 예산을 확정하고 처리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매년 초 각 지자체와 일선기관에서 다음해에 필요한 예산을 해당부처에 신청 → 부처별로 선별, 취합 후 기획재정부로 이관 → 기재부 총괄 조정 → 국무회의 심의·의결 및 대통령 승인 → 국회에 정부여당안(案) 제출 → 국회 상임위별 예비심사 → 예결위 본심사 → 예결위 계수조정소위 세부심사 → 예결위 처리 → 본회의 처리.
여기서 ‘정부여당안’이 무엇입니까. 말 그대로 정부와 여당이 협의를 한 안이란 뜻 아닙니까. 제가 여당 소속 아닙니까. 저는 정부여당안을 심의·의결하는 예결특위원이고, 여당의 최고위원입니다. 그리고 18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하면서 수도 없이 예산을 확보한 경험이 있습니다. 충분히 호남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예산 폭탄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왜 전라도의 시장, 도지사, 구청장, 군수들이 하루도 빠짐없이 제 의원사무실을 찾아오겠습니까.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 아닐까요. 다만 그분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報恩人事 하는 분 아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제가 고향 발전을 위해 죽자사자 예산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데 광주는 머리를 쓰고 발로 뛰고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 없이 안 되는 것을 5년, 6년, 7년 매달리고 있는데, 빡빡 우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산 처리가 끝나면 지역 신문 1면 톱에 ‘8조 얼마 신청했는데 4조 얼마밖에 반영 안 돼…’ 이렇게 나올 것인데, 이런 언론플레이를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이 의원은 인터뷰 전날인 9월 4일 공직 인사에서 출신지역 차별을 금지토록 하는 내용의 국가공무원법 및 지방공무원법 개정안을 조만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공직인사에서 소외감을 느껴온 호남 민심을 염두에 둔 법안이었다.
개정안은 공직인사의 임용, 보직관리, 승진과 관련한 원칙을 담은 현행법 조항에 ‘특정지역 출신을 우선 또는 우대하거나 차별 또는 배제할 수 없다’는 문구를 추가토록 했다. 이 의원은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의 채용과 승진, 보직 부여와 관련해 출신지역에 따른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또 다른 역(逆)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어 보인다. 법안으로 인해 호남 인사를 대거 발탁할 경우 타지역에서도 ‘역차별’이라고 반발할 수 있는 까닭이다.
—법안으로 인해 공정성이 훼손돼 역차별 논란이 일지 않을까요.
“인사차별을 안 받은 지역 출신 사람들은 ‘왜 호남 사람들만 저렇게 징징댈까?’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차별을 받은 지역 사람들은 정말 엄청난 상처를 받습니다. 호남에 탯줄을 묻은 게 죄입니까? 똑같이 엉덩이에 진물 나게 고시공부를 해 과장까지는 똑같이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후부터 많은 호남 출신이 숙명처럼 자포자기하고 힘없이 물러나는 것을 수없이 봐왔습니다.
하늘이 준 능력을 인치에 의해 매장시키고,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막는 것은 죄악입니다.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입니다. 유달리 호남을 차별하는 장관이나 국영기업체 사장이 (있다고) 제 귀에 들어오면 조사하겠습니다. 보좌진을 총동원해 검증하고, 사실로 밝혀지면 공개적으로 밝히고 그분들과 싸울 것입니다.”
—솔직히 박근혜 정부에서도 호남 출신들은 소외됐지 않습니까.
“제가 분명히 밝히는데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정권처럼 자기 동향이나 동문을 챙긴 적이 없습니다. 선거 때 도와준 인사는 무조건 요직에 앉힌다고 비판하는데 박 대통령은 절대 그런 인사를 하지 않습니다.”
반박 질문을 하려고 하자, 이 의원은 “나는 청와대를 나온 사람”이라며 “대통령과 관련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고 했다.
당선 후 일주일 행적
—당선되고 일주일이나 지역에 머물렀습니다. 그때 뭐 했습니까.
“당선 인사 다녔습니다. 순천·곡성 유권자들에게 매우 고마웠고 가슴이 벅차 도저히 내 눈을 순천·곡성 주민들에게서 뗄 수가 없었습니다. 순천시민, 곡성군민 모두가 저에게 억만금을 준 분들입니다.”
—일주일 동안 어떻게 했습니까.
“선거운동 했을 때와 똑같이 했습니다. 새벽 3시30분부터 돌아다니며 시·군민 한 분 한 분과 눈을 마주치고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절 찍어준 분 중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1번 찍었다’ ‘내가 이정현 때문에 고향을 배신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너무너무 가슴이 벅찼습니다.
시민께서 어떻게 보면 자신의 신념, 이념을 바꾸는 어려운 선택을 해주셨는데 어떻게 의정 활동을 한답시고 서울로 훌쩍 떠날 수 있겠습니까. 인사를 하면서 한 분 한 분 눈을 마주치며, 속으로 다짐하고 또 했습니다. ‘제가 은혜를 갚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속으로 말했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정치인은 환경에 따라 쉽게 흔들리기 때문이지요. 마음속에 보은하겠다는 못을 박고, 프린트하고 또 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 순천·곡성에만 머문 것입니까.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사실 31일 오후 4시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을 찾아 세월호 실종자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분들과 정말 진솔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실종자 가족은 어떤 하소연을 하던가요.
“딴 건 관심도 없었습니다. 생때같은 내 자식이 왜 그리 억울하게 죽었는지, 누구 잘못인지, 무엇을 고쳐야 비슷한 사고를 막을 수 있는지 그것만은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호소했습니다.”
“‘국회해산’ 얘기 많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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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현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오랜 측근이다. 사진은 2011년 10월 27일 이정현 의원 출판기념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 |
그가 말을 이었다. 예상외로 대통령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지금 야권에서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뭐 했느냐고 묻는데 이것이 세월호 유족들의 하소연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참고로 대통령이 집무실에 계시든, 집무실 내 방에 계시든, 관저에 계시든, 벙커에 계시든, 비서들이 근무하는 건물에 계시든, 큰 사태에 대비한 또 다른 벙커에 계시든 청와대에는 경내에만 있으면 어디서든 집무를 볼 수 있는 통신, 경호, 접견 시설이 완비돼 있습니다. 그때 대통령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세월호 사태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 의원이 ‘박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야권에서는 박 대통령이 세월호 침몰 소식을 처음 보고받은 그날 오전 10시부터 박 대통령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한 오후 5시15분까지 7시간 동안 뭘 하고 있었는지 따져 묻고 있다. 정부 초기 대응 문제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필연적으로 ‘7시간 미스터리’와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야권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 시 구성되는 진상조사위가 기소권·수사권을 가져야 한다고 고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야권이 ‘세월호의 진실’을 부르짖는 진짜 속내는 참사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든 청와대 쪽으로 돌려 박근혜 대통령을 흔들고 싶다는 것일 터이다. 참고로 검찰과 특검에만 맡겨서는 그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추석 연휴 직후 세월호 특별법으로 인한 대치 정국을 바라보는 호남 민심을 묻기 위해 이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의원이 전한 호남 민심은 이랬다.
“정치에 대해 물으면 국회 해산시키라는 얘기를 너무 자연스럽게 합니다. ‘그런 X의 국회의원들은 필요 없다’ ‘먹고 노는 국회는 해산시켜야 한다’고 흥분하면서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국회의원이라고 하면 바로 욕이 나오고, 해산시키라고 하고, 한마디로 정치권 전체에 대한 분노와 실망이 큽니다.”
이 의원은 추석 연휴 동안 순천·곡성·무안·신안·목포·해남·완도·강진·장흥·화순·나주·담양을 돌아다니며 민심을 청취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