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代史 인물 발굴] ‘독립운동가’ 김근제와 안태 : 월간조선

항일(抗日) 독립 만세 운동이 들불처럼 전국적으로 번졌던 1919년. 우리가 3·1 운동으로 기억하고 기념하는 그해 그들은 각각 만 15세와 20세였다. 15세 청년은 평북 정주 사람이었고 20세 청년은 충북 괴산 사람이었다. 생면부지의 두 사람은 1927년 중국 광저우(廣州)의 황포도(黃埔島)에서 만났다. 당시 중국 베이징(北京)에서도 기차로 일주일을 가야 했던 그 머나먼 이국땅에서 생면부지의 두 사람은 어떻게 해서 만나게 된 것일까.

황포도에는 그 시절 국민혁명군중앙군사정치학교가 있었다. 학교의 위치가 황포에 있어서 황포군관학교로 불렸고 당시나 훗날이나 사람들은 국민혁명군중앙군사정치학교를 황포군관학교로 불렀다. 황포군관학교는 일제와 봉건 군벌에 맞서기 위해 중국 국민당과 공산당이 손을 잡고 만든 학교다. 민족(民族), 민권(民權), 민생(民生)의 삼민주의(三民主義)를 주창한 쑨원(孫文)이 1924년 설립한 이 학교는 장제스(蔣介石)가 교장을 맡았고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정치부를 맡는 등 국민당과 공산당 주요 인사들이 함께 참여했다.

1924년 1월 있었던 중국의 제1차 국공(國共)합작 이래 황포군관학교가 설립된 광저우 지역은 중국 국민혁명의 대본령으로 자리 잡았다. 한인(韓人) 독립운동 세력이 광저우를 주목하게 된 이유다.

3·1 운동 후 국내에서의 항일 투쟁이 어려워지면서 군사훈련의 필요성을 절감한 독립운동가들은 장제스 등 국민당 관계자들과 담판을 벌여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을 황포군관학교에 입교시켰다. 여운형(呂運亨), 조소앙(趙素昻) 등이 대표적 인물들이다. 상해 임시정부 인사들이 장제스 등 국민당 요인들과 한국 젊은이들의 입교 교섭을 벌인 사실은 일제기관의 정보보고서 등의 자료로도 입증된다.

중국 국민당 정부 수립 이전부터 쑨원과 개인적 유대를 가져온 여운형이 한국인의 황포군관학교 입교를 위해 중국에 도착한 때는 1926년 1월 10일이었다. 중국 국민당 제2차 전국대표회의가 열리던 시기였다. 여운형이 광저우를 방문한 또 다른 목적이었던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운동 자금 지원 요청은 국제 관계 등을 이유로 무산됐지만 한인 젊은이들의 황포군관학교 입교 요청은 받아들여진다.

1926년 4월에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이 여운형의 요청을 국민당 정부가 수용한 내용을 일본 정부에 보고한 <고경(高警) 134호>는 여운형과 국민당 측의 교섭 결과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군관학교·국립대학 기타 국립학교 입학을 희망하는 한인에게는 어느 때든지 무조건 입학을 허가할 것이며, 군관학교 생도에게는 서적·식비·피복 등 일체를 무상 급여한다. … 졸업 후 24개월간은 혁명군 복무 의무가 있지만 이 기간 경과 후에는 본인의 자유의사에 일임한다. 장래 한국을 위한 어떠한 계획을 도모할 경우에는 혁명군에서 경비 보조를 제외한 가능한 한의 원조를 제공한다. 단 군대의 원조는 국제적 분쟁을 야기할 것이므로 불가능한 일이다.>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와 여운형 등이 합의한 대로 훗날 조선총독부 폭탄 투척 등 일제 등의 요인 암살 및 폭파 활동을 벌였던 의열단 단원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황포군관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에 나섰다.

국민당 정부와 여운형의 합의 직후인 1926년 3월과 11월에 입교한 4, 5기생 중 한인으로 확인되는 이만 30여 명이다. 김원봉(金元鳳)을 비롯한 의열단 간부들도 4기생으로 입교했다. 한국인에 한해 입오생(入伍生·예비생) 입학이 허락됐는데 1931년 학교가 해체될 때까지 황포군관학교 학생명단에서 확인된 한국인만 73명이다. 황포군관학교는 무한분교 등의 분교도 운영했는데 이 분교에 재학했던 한인 학생들까지 합치면 200명이 넘는다. 이들은 졸업 후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를 통해 군사간부 양성에 힘쓰는 한편 조선민족혁명당을 결성해 조선의용대를 조직하는 등 독립운동을 위한 군사적 기초를 닦으며 주요 간부로 활동했다.

독립운동사를 연구해 온 역사학자들은 이런 황포군관학교 출신 한인들의 활동을 들어 우리 광복군 창설의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나라의 독립을 꿈꿨던 소년과 청년

황포군관학교에 자리하고 있는 동정진망열사묘원 내 학생군묘. 66기의 묘비 중에는 한국인인 김근제와 안태의 묘비도 있다.

정주 출신 소년의 꿈도 괴산 출신 청년의 꿈도 그랬다. 조국 독립에 한 몸을 바치기 위해 이역만리 땅을 찾아가 군사훈련 받기를 자청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광저우시 황포 장주도(長洲島·황포도의 다른 이름) 만송령(萬松嶺·황포도 안에 있는 산 이름) 동정진망열사(東征陳亡烈士) 묘원 가장 안쪽에 있는 학생군묘(學生軍墓)에 함께 누워 있다.

학생군묘에는 6줄로 66개의 묘비가 있는데 정주 소년의 비석은 셋째 줄 왼쪽에서 4번째에 있고 괴산 청년의 비석은 넷째 줄 왼쪽에서 3번째에 위치해 있다. 이 정주 소년의 이름은 1904년생인 김근제(金瑾濟)이고 괴산 청년은 1899년생인 안태(安台)이다.

이 학생군묘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장주도와 만송령에 흩어져 있던 황포군관학교 학생과 입오생의 묘가 오랫동안 제대로 관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묘비가 파괴되거나 없어진 것이 적지 않아 1984년 이곳으로 옮겨놓았다.>

‘한국인 김근제 지묘’라는 글씨가 또렷하다.

김근제의 묘비 전면 한가운데에는 내려쓰기로 ‘김근제지묘(金瑾濟之墓)’라고 씌어 있고 그 오른쪽에는 ‘제2학생(第二學生) ○○○’이라고 새겨져 있다. ‘김근제 지묘’ 위에는 오른쪽부터 시작하는 가로쓰기로 ‘한국인(韓國人)’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화강암에 글자를 쪼아 새긴 후 붉은색 덧칠을 해놓았는데 붉은색 덧칠은 1984년 이 묘역을 단장했을 때 칠한 것으로 짐작된다. 붉은색 덧칠이 벗겨진 왼쪽 글씨는 손으로 더듬으면 음각이 느껴지는데 약간씩 기록 형식이 다르기는 하지만 다른 비석들의 기록 형식을 통해 유추해 보면 ‘민국(民國·쑨원의 중화민국이 출발한 1911년을 연호로 삼는 중국식 연대 표기) ○○년 ○○일’로 사망 일시가 새겨져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안태의 비석 역시 내려쓰기로 한가운데에 ‘안태동지(安台同志)’라는 네 글자가 보이고 그 오른쪽에는 ‘동지’ 자(字)와 같은 높이에 같은 크기로 ‘심춘(心春)’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안태의 아명이나 아호로 짐작된다. 오른쪽에는 ‘한국괴산(韓國槐山)’이라고 적혀 있어 안태의 고향이 충북 괴산임을 밝히고 있다. 왼편에는 ‘민국 16년 11월 9일(民國十六年十一月九日)이라고 사망 일시가 적혀 있다. 서기로 환산하면 1927년이 된다.

묘비에 적힌 글자를 통해서 김근제와 안태의 일생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비석 뒷면에 기록돼 있을 사망자의 자세한 신상이나 삶에 관한 기록들은 1984년 비석을 다시 세우면서 사라져버렸다. 비석을 지탱하기 위해 뒷면을 시멘트로 발라버렸기 때문이다.

《황포군관학교 동학록》에 나오는 이름

안태의 묘비. 묘비에 ‘한국괴산’이라고 적어 그의 고향을 밝히고 있다.

황포군관학교 학생군묘 비석에서 발견되는 두 사람, 안태와 김근제. 그들의 이름을 또 발견할 수 있는 곳은 황포군관학교 학생·교직원 명부인 《황포군관학교 동학록(同學錄)》에서다. 황포군관학교 6기 명단에 이어지는 <사망동학(死亡同學)> 명부에는 34명의 6기 사망자 명단이 실려 있다. 재학 중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한 것인데 김근제와 안태의 이름도 거기에서 발견된다.

‘김근제, 연령: 23, 본적: 한국’ ‘안태, 연령: 28, 본적: 한국 충청도’ 등의 간단한 기록이다. 이런 간단한 기록조차 우리가 아닌 중국의 기록이다. 정부는 지금까지 그들의 이름을 독립운동가 명부에 올려놓지 않고 있다.

독립운동 연구가인 건국대 한상도(사학과) 교수는 “독립운동 연구자로서 볼 때 1920년대 중후반에 한국인으로서 황포군관학교를 선택했다는 이유만으로도 그들을 독립유공자로 지정하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한다.

한 교수는 “그 당시 한국인이 입신양명(立身揚名)하기 위해 광저우까지 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중국 국민당 관계자들과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교섭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면서 “황포군관학교 동학록에 기록된 이름만으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한 그들의 활동은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기 때문에 포상 등급의 높고 낮음의 차이는 몰라도 독립유공자로 지정은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생각은 다르다. 2013년 11월 국가보훈처는 김근제에 관한 독립유공자 공적심사 결과 독립유공자 지정이 어렵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통보했다.

“동일인 여부 및 활동내용 불분명.”

하지만 국가보훈처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인 독립기념관이 발행한 <국외독립운동사적지 실태조사보고서>에는 김근제와 안태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김근제는 1904년생이며 본적지는 평북 정주군 안흥면 안의동 395번지이다. 오산학교에 다니다가 만주로 건너갔다고 전해지는데 김근제는 집안 형제인 김은제와 함께 황포군관학교 6기생으로 입학했다. 충북 괴산 출신인 안태 역시 6기생이며 김근제와 안태는 《황포군관학교 동학록》 <사망동학> 명단에 있지만 자세한 자료가 없다. 이들은 당시 중국대륙을 항일투쟁의 근거로 삼아 한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했다.>

김근제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고 그들의 활동 내용을 “한국의 독립을 이루기 위해 황포군관학교에 입학했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주장이 맞더라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지 않고 있는 국가는 지금도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기 위한 일에 인색하다. 보훈처는 김근제 공적 심사 결과 통보문에서 “국가보훈처는 포상이 안 된 분들의 독립운동 공적 확인 작업을 앞으로도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최소한 김근제의 흔적을 찾으려는 일에서는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김근제에 대한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 신청도 정부의 노력이 아닌 11년간에 걸친 한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김근제, 안태 두 사람 중 안태에 관한 기록은 황포군관학교 기념관이 관리하고 있는 학생군묘에 새겨진 비석 글과 《황포군관학교 동학록》 명부뿐이다. 김근제의 경우는 그의 후손이 11년째 그 흔적을 찾아다니고 있다. 김기용(62)씨가 그 주인공이다. 현재 이북5도위원회 평안북도 정주군수를 맡고 있는 김기용씨의 ‘독립운동가 김근제 자취 찾기’는 2003년부터 시작됐다. 김근제는 김 군수의 작은할아버지다. 다음은 김 군수의 증언을 1인칭 시점으로 정리한 내용이다.

김근제의 자취를 찾아나선 후손 김기용의 증언

<2003년 가을이었다. 대기업에서 23년 동안 근무하다 그만두고 쉬고 있던 때였다. 하루는 집안 어른이 “나이 50이 됐으면 종중(宗中) 일과 고향 일에 관심을 가지라며 문중의 족보를 만드는 데 자녀들과 사촌까지 포함해서 족보에 기록할 내용을 정리해서 보내라”고 했다. 나는 그 집안 어른의 요청대로 족보에 들어갈 내용을 정리한 후 연락을 했다. 그분은 나에게 파종회(派宗會·연안김씨 개성부윤공파) 사무실로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파종회 사무실에 불려나간 그해 10월부터 나는 파종회 족보편찬위원이 돼 족보 전체를 기획하고 편집하는 업무를 맡게 됐다.

그때 족보 작업을 하면서 떠오른 분이 작은할아버지인 김근제였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 등 가족들로부터 김근제 할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근제 할아버지는 내 친할아버지(김찬제)의 동생이었다. 내 부친을 비롯한 김찬제 할아버지 슬하의 3형제는 6·25 전쟁 때 고향인 평북 정주를 떠나 남한으로 내려왔다. 나는 어린 시절 부친 등으로부터 김근제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김근제 할아버지는 평소 과묵하고 힘은 장사였다. 의협심이 강해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했고 3·1 운동 이후 일본 순사를 때려눕히고 만주로 독립운동을 하러 갔다. 그 후 상하이로 가서 독립군 장교 교육을 받고 독립투사로 활약하시다가 23세 나이에 돌아가셨다.”

간단히 말해 김근제 할아버지가 독립투사였다는 것이다. 나는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이 이야기를 확인하고 싶었다. 족보를 만들면서 어린 시절 수없이 들었던 김근제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증언해 줄 수 있는 종친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한 종친으로부터 김여제(金與濟·1896년생)라는 집안 어른의 독립운동 참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같은 제(濟)자를 돌림자로 쓰고 있는 두 분은 21대 할아버지에서 갈라진 집안으로 평안북도 정주군 안흥면 연안김씨 집성촌에서 함께 살았다. 김여제 할아버지는 일본 와세다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상하이로 가서 상해 임시정부에 입각해 국무원 비서실장, 임시정부 사료편찬 위원, 《독립신문》 편찬위원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직접적인 연관 관계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우리 집안에 흐르는 독립운동의 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2004년 12월 족보 작업을 마친 뒤 얼마 지나지 않은 2005년 봄, 나는 김근제 할아버지의 누나인 김옥선의 아들 박도화(1922년생)를 만나 김근제 할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도화는 “외삼촌인 김근제는 오산학교를 다니다가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다 다시 상하이로 가서 독립군 장교 교육을 받고 독립투사로 활동하다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여기까지는 내가 어린 시절 부친 등으로부터 듣던 이야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박도화의 증언은 김은제(金恩濟·1905년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은제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으로 김근제 할아버지의 고향 안흥면과 인접한 마을이다. 한 살 차이의 두 청년은 어려서부터 함께 어울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두 사람은 황포군관학교 6기생으로 함께 입교했다. 박도화는 두 사람이 고향 정주를 떠나 상하이로 가서 임시정부에서 일하는 집안사람인 김여제를 만나 임시정부의 추천서를 받아서 독립군 장교 교육을 받았을 것이라고 증언했다.

함께 入校한 김은제는 申翼熙 선생 사위

황포군관학교 재학 중 사망한 김근제와 달리 김은제에 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었다. 김은제는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후 난징의 중국중앙항공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중국 공군 조종사가 된 김은제는 신익희(申翼熙) 선생의 딸과 결혼한 후인 1938년 6월 중일전쟁 중 호남전선에서 일본군 비행기와 공중전을 벌이다가 산화했다.

나는 김은제 할아버지만큼은 아니더라도 김근제 할아버지에 관한 기록도 어디엔가는 남아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족보 작업이 끝난 이후 나는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이면 도서관을 찾았다. 한국 독립운동사와 관련돼 있는 책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300여 권의 책을 뒤졌지만 ‘김근제’라는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300여 권의 책을 뒤지는 동안 또 2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2007년 낙망하고 있던 차에 광복회 김우전 전(前) 회장을 만나게 됐다. 김 회장은 마침 종친이었다. 그동안 있었던 김근제 할아버지의 기록 찾기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김 회장은 함께 알아보자고 했다. 그런 만남이 있은 지 두 달여 후 김 회장은 “《한국 독립운동과 중국 군관학교》라는 책 속에 김근제 이름이 나온다”며 그 책을 구해 보라고 했다.

《한국 독립운동과 중국 군관학교》라는 책을 구하기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1994년에 출간된 이 책은 2007년 당시에는 이미 절판이 된 상태였다. 시중서점은 물론이고 청계천의 중고서적 등을 모두 뒤졌지만 구할 수 없었다. 출판사를 찾아갔더니 “혹시 파주 출판단지 창고에 있을지 모르니 그곳에 가서 찾아보라”고 했다. 이틀간 파주 출판단지 창고를 뒤져 책을 찾았다. 밤을 새워 책을 읽다가 ‘김근제’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었다. ‘김근제’라는 단 세 글자뿐이었지만 김근제 할아버지의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다는 점만으로도 뛸 듯이 기뻤다.

황포군관학교 6기생으로 입교한 한국인 명단 9명 중 김근제 할아버지의 이름이 있었다. 물론 김은제 할아버지의 이름도 6기생 명단에 함께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김근제 할아버지 이름 옆에는 ‘재학 중 사망’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몇 년이 지난 후 나는 건국대 한상도 교수의 글을 통해 김근제 할아버지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2011년 4월 독립기념관이 발행하는 책자 278호에 실린 한상도 교수의 글 일부다.

“작년 말 나는 중산대학(中山大學) 아태연구원 초청으로 광저우에 갈 기회가 있었다.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중산대학을 방문했고 간 김에 황포군관학교 옛터를 찾았다. 20년 전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황포군관학교를 졸업한 한인 독립운동가들의 발자국을 되밟는 작업이 주요 주제 중 하나였기에 남다른 애착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바로 이곳에서 나는 잠들어 있는 독립의 영혼을 만났다.”

한 교수가 말한 ‘잠들어 있는 독립의 영혼’이란 김근제 할아버지를 말하는 것이었다. 김근제 할아버지의 묘비가 황포군관학교 옛터에 있다는 것이다.

2011년 4월 24일, 그날은 일요일이었는데 친동생(김성용)으로부터 다급한 전화가 왔다. 4월 17일 자 인터넷 《월드코리아 뉴스 아시아》 뉴스를 보라는 것이었다. ‘중국 황포군관학교 열사묘역에 한국인 묘 발견’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그 기사 역시 김근제 할아버지의 이름이 언급돼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독립기념관 선임연구원인 김주용 박사를 만나려고 마음먹었다. 김 박사가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를 담당하고 있었고 고증을 위해서도 전문가인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 박사는 2011년 계획은 이미 다 확정돼 있기 때문에 2012년에 상황을 보자고 했다. 2012년에도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 계획은 수립되지 않았다.

김근제의 묘원을 찾던 날

2013년 8월, 작은할아버지인 김근제의 묘비 옆에서 김기용씨가 태극기를 들고 있다.

2년이 넘는 오랜 기다림 끝에 2013년 8월에 김주용 박사팀이 중국 광저우를 포함한 국외 독립운동 사적지 실태조사를 실시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도 동행하기로 했다. 내가 광저우로 가기 전 생존해 계신 숙부님은 당신의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DNA 검사를 위해서였다.

나는 김주용 박사팀과 황포군관학교로 향했다. 황포군관학교 담당자가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동정진망열사묘원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했다. 묘원에서 5분 정도 더 걸어가자 학생군묘가 나왔다. 그곳에 세워져 있는 김근제 할아버지의 비석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다음날 광저우성 당안관(한국의 문서기록보존서 같은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황포군관학교 6기생인 김근제, 김은제 할아버지의 기록을 요청했다. 김은제 할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돼 있는 황포군관학교 동학록과 김근제 할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는 사망 동학록 등 3장을 받았다. 동학록을 기록할 때 사용됐을 학생들의 신상이 세세하게 기록돼 있을 원본도 요청해 봤지만 그곳에 없었다.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저우로 출발할 때는 비석의 탁본을 떠볼까, 비석 뒤를 덮은 시멘트를 깨볼까, 뼈를 한국으로 가져와 DNA 검사를 해볼까 등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지만 그것 역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이상은 국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보지만 지금까지 보훈처가 보인 반응으로 유추해 보면 기대난망이다.>

김우전 회장은 “국가보훈처가 동일인 여부가 불분명하다고 하지만 김근제의 경우는 황포군관학교에 묘비도 있고 족보에 독립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나온다”며 “독립유공자 지정의 경우 공무원들이 책임 회피를 위해 ‘불분명’을 이유로 드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고 정부가 그 ‘불분명’ 해소를 위해 한 일도 없다”고 지적한다. 김 회장은 또 “국가의 일을 개인의 문제로 보는 보훈처는 문제가 많다”면서 “9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고 있는 독립운동 흔적을 개인의 힘으로 입증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김근제의 경우는 황포군관학교에 묘비가 있으므로 독립운동가로 포상해 주는 게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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