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림사건 관련자, 김일성은 인민이 뽑은 지도자라 생각”
⊙ “김광일, 이흥록 변호사에게 부림사건 변호 맡지 말라고 협박한 적 없다”
⊙ 내가 기억하는 변호사 盧武鉉은 감정적 변론을 했던 사람
⊙ “대통령, 再審 청구때도 국가보안법위반에 대해서는 有罪”
⊙ “김광일, 이흥록 변호사에게 부림사건 변호 맡지 말라고 협박한 적 없다”
⊙ 내가 기억하는 변호사 盧武鉉은 감정적 변론을 했던 사람
⊙ “대통령, 再審 청구때도 국가보안법위반에 대해서는 有罪”
역대 국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아바타>(제임스 캐머런 감독·1362만4328명)의 아성(牙城)을 넘보는 영화가 있다. <변호인>이다. 현재(1월 12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변호인>의 누적관객 수는 895만2845명이다. 흥행 속도로 봤을 때 1000만 돌파는 시간문제다. 한국 영화 중 지금껏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는 8개(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괴물·해운대·광해·왕이 된 남자·도둑들·7번방의 선물)뿐이다. 잘 알려져 있듯 <변호인>의 소재는 1981년 부산에서 일어났던 ‘부림사건(釜林事件)’이고, 주인공은 그 사건을 계기로 인권변호사로 거듭나게 된 고(故)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이다. 부림사건은 1980년대 대표적인 공안사건이다. 당시 교사와 학생 등 22명은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됐고 19명이 기소돼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부림사건 관련자들은 1983년 12월 전원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부림사건 관련자인 김재규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등 7명은 전부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再審)을 신청했고, 당시 공판을 진행했던 부산지법 형사항소3부는 김씨 등 재심 청구인 7명에 대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관련법 개정에 따라 면소 판결했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2012년 8월 고호석씨 등 또 다른 부림사건 관련자 5명은 2012년 8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사법경찰관으로부터 조사받으면서 구금된 사실이 증명돼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상 재심사유가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볼 이유가 있다”며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선고는 오는 2월 1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다.
참고로, 재심 청구 때와 같은 이유가 아니면 재재심 청구도 가능하다. 때문에 만약 2009년과 2012년 재심 청구자 명단 모두에 이름을 올린 부림사건 관련자가 있더라도 문제는 없다. 다만 재심 청구의 사유를 원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나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 또는 변조된 것으로 증명된 때, 원판결의 증거가 된 증서·감정·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로 증명된 때 등 7가지로 제한하기 때문에 끝도 없이 계속 재심을 요청할 수는 없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모순(矛盾)적인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와 관련, 영화 제작사인 위더스필름의 최재원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차용한 부분은 있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가공이고 법정 내용도 완전히 다르다. 허구를 만들었는데, 해석하는 과정에서 감정이입이 많이 이뤄졌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건 어차피 관객의 몫이다.”
최 대표의 이야기대로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관객이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같이 역사적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조합된 팩션(faction) 영화를 접한다면 자칫 허구마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매도(罵倒)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유명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변호인’을 치면 최병국(崔炳國) 전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이 뜬다. 영화 속 노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속물 변호사 송우석(배우 송강호 분)과 부림사건(영화에서는 부동련 사건으로 각색됨) 공판장에서 날 선 공방을 벌이던 ‘강 검사(배우 조민기 분)’가 최 전 의원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최 전 의원은 부산지검 재직 당시 부림사건의 주임검사였다.
영화에서 ‘강 검사’는 죄 없는 20대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몰아세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로 나온다. 그렇다 보니 최 전 의원의 이름을 클릭하면 그를 비판하는 글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는 침묵했다. 《한겨레》 기자가 그를 찾아 부림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사과할 생각이 없다. 당시 고문은 없었다”고 한 게 다였다. 최 전 의원이 입을 다문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영화 속 ‘강 검사’가 자신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 침묵하는 것은 아닐까.
“괜한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를 사양하는 최 전 의원을 설득해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마주 앉은 것은 지난 1월 10일이었다. 최 전 의원이 부림사건과 영화 <변호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자세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문 진짜 없었다”
그에게 영화 <변호인>을 관람했느냐는 질문부터 던졌다.
“제가 그 영화를 봐서 뭐 합니까. 사실관계가 엉터리인 것 같던데요. 제 집사람은 영화를 봤더군요. 영화를 보고 오더니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당신 역할로 나온 연기자 조민기씨 잘생겼던데, 당신 젊었을 때랑 비슷한 것 같던데’. 기분 풀어 주려고 하는 농담인 것 같아서 그냥 웃고 말았지요.”
—사실관계가 엉터리라고 했는데 영화는 관람하지 않았어도 〈변호인〉이 어떤 내용인지는 잘 아시지요.
“부림사건과 관련한 내용이던데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네요. 저는 영화가 어떻든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한 사람 영웅 만들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저를 비판하거나 평가하려면 사실관계를 확실히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곡해 놓고 ‘최병국은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왜곡됐습니까.
“인터넷을 보니까 <변호인>에서 부림사건 관련자들이 심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 나오던데 고문은 절대 없었습니다.”
—최근에도 부림사건 관련자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통닭구이(막대기에 거꾸로 매달아 몽둥이질하는 것) 등 고문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저는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돼 온 그들을 의협심에 불타는 젊은 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벌을 준다기보다 교화, 순화시키려 했습니다. 그런 애들에게 고문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부림사건 피의자들은 경찰이 ‘너 김일성에게 지령받았지?’라고 물은 뒤 아니라고 부인하면 몽둥이로 이곳저곳 때리고,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않을 때는 태종대 앞바다에 데려가 빠뜨려 죽이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최 전 의원이 부림사건을 맡은 것은 81년 8월 말에서 9월 초 무렵이다. 경찰 조사는 그 전에 있었으니 고문이 있었다면 마무리된 시점이다. 때문에 그는 고문 여부를 확실히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고문 없다”고 確信하는 이유
—경찰 조사 때 고문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보면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만.
“당시 담당 경찰한테 혹시 ‘고문이 있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절대 없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거짓일 수 있지요. 그런데 언론을 보니, 고호석(1981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 부림사건으로 연행)씨가 검찰 조사를 위해 구치소로 넘어가기 전에 경찰들이 몸에 멍이 든 곳에 소염제 연고를 며칠씩 발라 고문의 흔적을 싹 지웠다고 했던데, 상식적으로 심한 고문에 상처가 깊었다면 며칠 사이에 흔적이 완전히 없어졌을까요. 반대론자들은 이 이야기도 틀리다고 하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고문이 없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확신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사건을 수사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제가 확실히 기억하는 게 있습니다. 제가 당시 피의자 중에서는 고호석, 이상록, 최준영씨를 조사했는데 이 중 한 명이 ‘고문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검사님, 우리가 때린다고 해서 안 한 말 했다고 하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해서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노 전 대통령 자서전에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고 나와 있다고 해서 말인데,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한날 법정에서 누군가(고호석씨)가 고문을 받아 발톱이 빠졌다고 진술하더군요. 깜짝 놀라서 제가 따로 불러 발톱을 좀 보자고 했어요.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쪽 엄지발톱의 1/2 정도가 피멍이 들었더라고요. 그래서 왜 이렇게 됐느냐고 물으니 슬리퍼를 신고 다니다 문턱에 걸려 생긴 상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왜 법정에선 고문당했다고 이야기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는 피의자들을 후원해 주는 목사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얘네들이 법정 투쟁을 할 모양이구나고 생각했습니다.”
—함께한 자리에 혹시 수사관이 있어서 대답을 못한 것은 아닐까요.
“그 자리에 수사관은 없었습니다.”
“혁명 모델은 공산국가인 중국”
부림사건 공소장에 나온 불온서적 13권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역사란 무엇인가(에드워드 카) ▲일반경제사론(이영협) ▲경제사관의 제문제(셀리그만) ▲전후 30년의 세계경제사조와 민족경제론(박현채) ▲한국경제의 실상과 허상(유인호) ▲전환시대의 논리(리영희) ▲우상과 이성(리영희) ▲8억인과의 대화(리영희) ▲경제학(리영희) ▲한국공산주의 운동사 4,5권(아세아문제연구소) ▲후진국경제론(조용범) ▲서양경제사론(최종식) ▲자본주의 발전의 이론 중 제3장 공황과 불황, 제4장 제국주의(폴 스위지).
여기서 <역사란 무엇인가>는 ‘에드워드 카’의 고전으로 중고생 필독 도서이고, <서양경제사론>은 1978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으며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책이다. 이런 책을 읽고 가르치는 것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일까.
—당시 관련자들이 읽은 책이 소위 ‘불온서적’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도 책을 다 읽어 봤는데 그렇게(불온서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책을 소지하고 읽었다고 해서 관련자들을 잡아넣은 게 아닙니다. 그들의 죄는 이런 책을 학습 교재로 삼아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좌익 의식화를 한 것입니다.”
—그들이 실제 공산국가 건설을 꿈꾸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까.
“제가 피의자를 조사할 때 ‘너희가 목표로 하는 사회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혁명 모델은 중국이라고 하더군요.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인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그랬더니 ‘안 그렇다’고 말하더군요. 아마도 전환시대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의 서적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동호 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은 2005년 《월간조선》 9월호 <나의 사상적 스승 리영희를 비판한다>는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리영희는 1977년 발간된 《우상과 이성》에서 문화혁명 당시의 하방(下放·지식인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노동을 시키는 운동)을 ‘인간우선주의’의 실천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이러한 문화혁명의 과정이 (스탈린의 경우처럼) 무시무시한 내부 숙청이 아니라 이론정립과 토론, 자기비판, 설득 등 매우 인간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고 찬양했다. (중략) 리영희가 극찬했던 인류사상 최초의 거대한 ‘인간개조 실험’인 문화혁명은 실패했다. 애초부터 잘못된 가정에 입각한 오류였다. 문화혁명이 끝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는 당시 리영희가 보았던 것과는 정반대다. 홍위병들의 폭력에 의한 철저한 인간성 파괴와 문화파괴가 만연했고, 사회적 생산력의 저하에 따라 중국 인민은 고통을 겪었다. 중국 인민들은 이제 문화혁명을 ‘10년 동란’이라고 부른다.>
“김일성은 인민이 뽑은 지도자”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던가요.
“혁명 모델이 중국이라고 하기에 제가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그러니까 관련자 중 한 명이 당당하게 ‘남한은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선출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는데 북한은 지도자(김일성)를 인민이 선출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솔직히 전두환 대통령은 체육관 선거로 당선된 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인민이 김일성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북한도 100% 투표해서 100% 찬성으로 김일성이를 옹립한 것인데 체육관 선거와 뭐가 다르냐.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더니 ‘검사님 참 무식하시다. 북한은 지도자를 인민이 뽑았기 때문에 미국·중국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라며 저를 가르치려 하더라고요. 제가 공안검사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이런 사람들은 신기하게 김일성 김정일 욕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함께 부림사건을 수사했던 고영주(高永宙) 변호사는 ‘조선 pub’과의 인터뷰에서 피의자였던 이상록씨가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는데, 혹시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상록씨가 고 변호사가 조사할 때에도 그런 말을 한 모양이네요. 똑같은 이야기를 저한테도 했습니다. ‘지금은 검사님한테 조사받지만, 자기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되면 검사님이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부림사건 수사검사는 부산지검 공안부 소속 최병국(주임검사), 고영주, 장창호 3명이었다.
—당시 부림사건 관련자들이 북한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북한과 직접 연계됐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통일혁명당 목소리’에서 남한에서는 애국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최병국이라고 하는 놈은 펜찌로 애국 청년의 발톱을 뺐다는 방송을 했다더군요.”
북한은 대남 흑색선전을 위해 1967년 ‘남조선해방민주민족연맹’ 방송을 개설했다. 이듬해 남한의 지하당이었던 통일혁명당이 와해되자 1970년 방송 명칭을 ‘통일혁명당 목소리’로 바꿨다. 이 방송은 1985년에는 ‘구국의 소리’로, 2005년에는 ‘반제민전’으로 이름을 바꿔 대남 흑색선전에 주력했다.
“金光一 변호사가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영화에는 지역 인권변호사의 대부 격인 김광일 변호사(영화에서는 김상필 변호사)가 검찰의 압력으로 사건을 맡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 담당검사가 김광일(金光一), 이흥록(李興祿) 변호사에게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으면 학생들과 같이 엮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사실입니까.
“무슨 협박을 합니까. 아이고, 김광일 변호사가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사건을 조사하다가 피의자로부터 김광일 이흥록 변호사가 도피자들에게 자금을 대 줬다는 진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 김광일 이흥록 변호사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냈어요. 김 변호사는 ‘대단히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답변서를 보내 왔고, 이 변호사는 자신이 잘못했으니 교도소에 들어가겠다고 저를 찾아왔더군요. 깜짝 놀라서 ‘제발 돌아가 달라’고 부탁해서 겨우 돌려보냈습니다. 그분들이 서면 질의서 보낸 것이 압력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압력을 행사하려면 직접 불러 조사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압력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면, 재판 초반에 판사가 검찰과 변호인 측을 만나서 형량을 합의하라고 권유하는 내용도 나오던데요.
“1심 판사와 저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형량을 합의하라고 권유하다니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죠. 법원과 경찰, 검사가 짜고 재판을 진행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변호인단과 피고인들에 대해 위압적인 태도를 보인 판사(송영창 분)의 모델이 된 판사는 조창호 변호사(71)로 알려졌다. 최 전 의원은 사시 9회(서울대 법대), 조 변호사는 사시 14회(경희대 법대)였다.
“盧武鉉은 감정적이지만 담백한 사람”
영화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는 송 변호사(송강호 분)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는 곧 국민이다”고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송 변호사가 법정에서 흥분, 검사 판사와 말싸움을 벌이는 장면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실제로도 이런 식으로 변호했을까. 최 전 의원은 “부림사건 때 노 전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검사와 변호인으로 노 전 대통령을 처음 직접 만난 것은 부림사건 직후인 1982년 초에 발생한 부산 미(美) 문화원 방화사건 때였다”고 했다.
—부림사건 때 노 전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요.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제 심문만 하고 법정에서 나왔습니다. 너무 바쁠 때였으니까요. 그리고 변호인들도 자신이 심문할 게 없으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변호인 한 명이 피의자 전체를 맡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때 처음 만난 노 전 대통령은 어땠습니까.
“한번은 법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수만의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있어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약용 같은 사람은 지금도 기억한다. 피고인 그렇지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제3자 입장에서는 감동적일 수 있지만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참 황당무계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복도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노변, 사회정의를 위해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해야지, 감정적으로 변호하면 되느냐’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나요.
“뭐, 자기가 법조계에서 저를 가장 존경한다고 하던데요.”
—듣기 좋아하라고 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참 담백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제 지역구인 울산을 방문, 시장 등 여러 명과 함께 맞이하러 나갔는데 만나자마자 ‘선배님, 여기 계셨습니까. 몇 선 되십니까. 저는 1.5선밖에 안 했는데 선배님 큰일 하셔야죠’라면서 저와만 이야기하더군요. 그때 사람이 정말 담백하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조작했다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인터넷 백과사전에 부림사건을 검색하면 ‘1981년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容共)조작 사건’이라고 나온다. 다른 백과사전의 내용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부림사건이 용공조작 사건입니까.
“부림사건 관련자들이 좌경화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었는데 좌경화한 사람들이었다고 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가 조작이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안검찰의 경우 정치사범이나 공안사범을 잘못 건드리면 그야말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소위 ‘칙사(勅使)대접’ 해 가면서 조사합니다.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솔직히 공안검사가 죄를 덮어씌울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그런 생각 하는 사람들은 이석기 사건도 조작됐다고 합니다. 공안검사도 죄가 없으면 끝까지 도와주려고 합니다.”
—담당한 공안사건 중 도와주고 싶었던 상대가 있었습니까.
“제가 공안검사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인데 1982년 조총련 거점 간첩단(13명)을 검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중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는데 4명 중에 김영희라는 아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조사했는데 그 아이는 재일동포이던 삼촌이 시키는 대로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비밀공작원이 돼서 국내로 침투, 교회, 학원, 노조 등에서 간첩활동을 했더군요. 수사에도 협조적이고, 간첩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해서 ‘사형’까지 갈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때 여론은 당연히 ‘사형’이었거든요. 부장검사에게 사형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보고하니까 ‘니, 정들었구나’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아니고 조사를 해 보니 사형까지는 아니라고 설득했지요. 그런데 암살 전문 비밀공작원에게 무기징역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법원에서 형이 낮춰지길 바라면서 ‘사형’을 구형했지요. 그리고 속초지청장으로 떠났는데, 알고 보니 사형이 그대로 집행됐더군요. 정말 슬프고 미안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김영희씨 관련 1982년 11월 12일 자 《경향신문》 기사다.
<국가안전기획부는 12일 군부와 종교계에 침투, 동조자 포섭을 기도하고 군기를 탐지해 오던 재일동포 양달진 등 일본 거점 우회침투 간첩단 일당 13명을 검거, 이 중 김영희 양정이 김영추 김영준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일본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양달진은 북괴의 재일공작 거점책인 김진성(조총련 동경 조선인 상공회 부이사장)에게 포섭돼 취업차 일본에 간 동생 양정이, 조카 김영희 등을 유인, 북괴의 재일공작 위장거점인 음식점 다이몽(大門) 다이꼬꾸야(大黑屋) 등에 위장취업시킨 다음 입북을 시키거나 비밀공작 아지트에서 간첩교육을 시켜 왔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은 이들은 다시 국내로 침투했다.>
“영화 보면 열 받을 듯”
—부림사건 관련자 가운데 8명은 2001년 7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는데요. 어떤 생각이 듭니까.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4월 동의대 사건 시위자 46명은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들이 던진 화염병에 경찰관 4명과 전투경찰 3명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동의대 사건은 1989년 5월 3일 부산 동의대에서 학생시위를 진압하던 경찰 7명이 숨진 사건이다. 유족대표 정유환(54)씨는 “가해자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시 사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화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부림사건이 지금 터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이석기 내란음모 등으로 북한에 대한 일반 국민의 여론이 악화한 현 시점에 부림사건이 발생한다면 80년대보다 더 큰 사건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담당 검사라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한겨레》 기자가 찾아왔을 때 (부림사건 관련자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요.
“잘못한 게 있어야지 사과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가장 처음 하고 싶었던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영화 <변호인>은 정말 안 볼 겁니까.
“보면 열만 받을 텐데요. 엉터리인데…. 안 볼 겁니다.”⊙
부림사건 관련자인 김재규 전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등 7명은 전부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再審)을 신청했고, 당시 공판을 진행했던 부산지법 형사항소3부는 김씨 등 재심 청구인 7명에 대한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 집시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관련법 개정에 따라 면소 판결했다.
하지만 사건의 핵심인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해서는 유죄 판단을 유지했다. 이에 2012년 8월 고호석씨 등 또 다른 부림사건 관련자 5명은 2012년 8월 부산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사법경찰관으로부터 조사받으면서 구금된 사실이 증명돼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상 재심사유가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살펴볼 이유가 있다”며 재심을 결정했다. 재심 선고는 오는 2월 13일 부산지법에서 열린다.
참고로, 재심 청구 때와 같은 이유가 아니면 재재심 청구도 가능하다. 때문에 만약 2009년과 2012년 재심 청구자 명단 모두에 이름을 올린 부림사건 관련자가 있더라도 문제는 없다. 다만 재심 청구의 사유를 원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나 증거물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위조 또는 변조된 것으로 증명된 때, 원판결의 증거가 된 증서·감정·통역 또는 번역이 확정판결에 의하여 허위로 증명된 때 등 7가지로 제한하기 때문에 끝도 없이 계속 재심을 요청할 수는 없다.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라는 모순(矛盾)적인 자막으로 시작한다. 이와 관련, 영화 제작사인 위더스필름의 최재원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노 전 대통령의 자서전을 차용한 부분은 있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가공이고 법정 내용도 완전히 다르다. 허구를 만들었는데, 해석하는 과정에서 감정이입이 많이 이뤄졌다. 영화를 받아들이는 건 어차피 관객의 몫이다.”
최 대표의 이야기대로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객의 몫이다. 하지만 관객이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이같이 역사적 사실(fact)과 허구(fiction)가 조합된 팩션(faction) 영화를 접한다면 자칫 허구마저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매도(罵倒)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유명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변호인’을 치면 최병국(崔炳國) 전 새누리당 의원의 이름이 뜬다. 영화 속 노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속물 변호사 송우석(배우 송강호 분)과 부림사건(영화에서는 부동련 사건으로 각색됨) 공판장에서 날 선 공방을 벌이던 ‘강 검사(배우 조민기 분)’가 최 전 의원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최 전 의원은 부산지검 재직 당시 부림사건의 주임검사였다.
영화에서 ‘강 검사’는 죄 없는 20대 학생들을 국가보안법 위반자로 몰아세우는 피도 눈물도 없는 인물로 나온다. 그렇다 보니 최 전 의원의 이름을 클릭하면 그를 비판하는 글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는 침묵했다. 《한겨레》 기자가 그를 찾아 부림사건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사과할 생각이 없다. 당시 고문은 없었다”고 한 게 다였다. 최 전 의원이 입을 다문 이유가 궁금했다. 혹시 영화 속 ‘강 검사’가 자신의 모습과 너무 흡사해 침묵하는 것은 아닐까.
“괜한 논란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인터뷰를 사양하는 최 전 의원을 설득해 그의 변호사 사무실에서 마주 앉은 것은 지난 1월 10일이었다. 최 전 의원이 부림사건과 영화 <변호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자세히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고문 진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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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월 8일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 영화관을 찾은 시민들이 〈변호인〉 광고판 앞을 지나치고 있다. |
“제가 그 영화를 봐서 뭐 합니까. 사실관계가 엉터리인 것 같던데요. 제 집사람은 영화를 봤더군요. 영화를 보고 오더니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당신 역할로 나온 연기자 조민기씨 잘생겼던데, 당신 젊었을 때랑 비슷한 것 같던데’. 기분 풀어 주려고 하는 농담인 것 같아서 그냥 웃고 말았지요.”
—사실관계가 엉터리라고 했는데 영화는 관람하지 않았어도 〈변호인〉이 어떤 내용인지는 잘 아시지요.
“부림사건과 관련한 내용이던데요.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네요. 저는 영화가 어떻든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한 사람 영웅 만들려고 하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저를 비판하거나 평가하려면 사실관계를 확실히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왜곡해 놓고 ‘최병국은 이런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다’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왜곡됐습니까.
“인터넷을 보니까 <변호인>에서 부림사건 관련자들이 심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 나오던데 고문은 절대 없었습니다.”
—최근에도 부림사건 관련자들은 언론 인터뷰에서 통닭구이(막대기에 거꾸로 매달아 몽둥이질하는 것) 등 고문이 있었다고 하던데요.
“저는 경찰에서 검찰로 송치돼 온 그들을 의협심에 불타는 젊은 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벌을 준다기보다 교화, 순화시키려 했습니다. 그런 애들에게 고문이라니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부림사건 피의자들은 경찰이 ‘너 김일성에게 지령받았지?’라고 물은 뒤 아니라고 부인하면 몽둥이로 이곳저곳 때리고,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않을 때는 태종대 앞바다에 데려가 빠뜨려 죽이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최 전 의원이 부림사건을 맡은 것은 81년 8월 말에서 9월 초 무렵이다. 경찰 조사는 그 전에 있었으니 고문이 있었다면 마무리된 시점이다. 때문에 그는 고문 여부를 확실히 모를 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고문 없다”고 確信하는 이유
—경찰 조사 때 고문을 받았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를 보면 <얼마나 맞았는지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고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만.
“당시 담당 경찰한테 혹시 ‘고문이 있었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절대 없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거짓일 수 있지요. 그런데 언론을 보니, 고호석(1981년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 중 부림사건으로 연행)씨가 검찰 조사를 위해 구치소로 넘어가기 전에 경찰들이 몸에 멍이 든 곳에 소염제 연고를 며칠씩 발라 고문의 흔적을 싹 지웠다고 했던데, 상식적으로 심한 고문에 상처가 깊었다면 며칠 사이에 흔적이 완전히 없어졌을까요. 반대론자들은 이 이야기도 틀리다고 하겠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고문이 없었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확신을 갖는 이유가 있나요.
“사건을 수사한 지 30년이 넘었지만 제가 확실히 기억하는 게 있습니다. 제가 당시 피의자 중에서는 고호석, 이상록, 최준영씨를 조사했는데 이 중 한 명이 ‘고문이 있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검사님, 우리가 때린다고 해서 안 한 말 했다고 하는 사람인 줄 아십니까.’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해서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노 전 대통령 자서전에 발톱이 새까맣게 죽어 있었다고 나와 있다고 해서 말인데, 확신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한날 법정에서 누군가(고호석씨)가 고문을 받아 발톱이 빠졌다고 진술하더군요. 깜짝 놀라서 제가 따로 불러 발톱을 좀 보자고 했어요. 오른쪽인지 왼쪽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쪽 엄지발톱의 1/2 정도가 피멍이 들었더라고요. 그래서 왜 이렇게 됐느냐고 물으니 슬리퍼를 신고 다니다 문턱에 걸려 생긴 상처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왜 법정에선 고문당했다고 이야기했느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도 안 하더라고요. 그 자리에는 피의자들을 후원해 주는 목사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때 얘네들이 법정 투쟁을 할 모양이구나고 생각했습니다.”
—함께한 자리에 혹시 수사관이 있어서 대답을 못한 것은 아닐까요.
“그 자리에 수사관은 없었습니다.”
“혁명 모델은 공산국가인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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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변호인〉 개봉 이후 부림사건 주임 검사였던 최병국 전 의원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한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사진. |
여기서 <역사란 무엇인가>는 ‘에드워드 카’의 고전으로 중고생 필독 도서이고, <서양경제사론>은 1978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으며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던 책이다. 이런 책을 읽고 가르치는 것이 북한을 이롭게 하는 행위일까.
—당시 관련자들이 읽은 책이 소위 ‘불온서적’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저도 책을 다 읽어 봤는데 그렇게(불온서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희는 이 책을 소지하고 읽었다고 해서 관련자들을 잡아넣은 게 아닙니다. 그들의 죄는 이런 책을 학습 교재로 삼아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좌익 의식화를 한 것입니다.”
—그들이 실제 공산국가 건설을 꿈꾸고 있었다는 이야기입니까.
“제가 피의자를 조사할 때 ‘너희가 목표로 하는 사회가 무엇이냐’고 물으니 혁명 모델은 중국이라고 하더군요.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인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그랬더니 ‘안 그렇다’고 말하더군요. 아마도 전환시대 논리, 우상과 이성 등의 서적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동호 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연대사업국장은 2005년 《월간조선》 9월호 <나의 사상적 스승 리영희를 비판한다>는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리영희는 1977년 발간된 《우상과 이성》에서 문화혁명 당시의 하방(下放·지식인을 지방으로 내려보내 노동을 시키는 운동)을 ‘인간우선주의’의 실천으로 부르고 있다. 그는 ‘이러한 문화혁명의 과정이 (스탈린의 경우처럼) 무시무시한 내부 숙청이 아니라 이론정립과 토론, 자기비판, 설득 등 매우 인간적인 방법으로 진행되었다’고 찬양했다. (중략) 리영희가 극찬했던 인류사상 최초의 거대한 ‘인간개조 실험’인 문화혁명은 실패했다. 애초부터 잘못된 가정에 입각한 오류였다. 문화혁명이 끝난 지 30년이 지난 지금 문화혁명에 대한 평가는 당시 리영희가 보았던 것과는 정반대다. 홍위병들의 폭력에 의한 철저한 인간성 파괴와 문화파괴가 만연했고, 사회적 생산력의 저하에 따라 중국 인민은 고통을 겪었다. 중국 인민들은 이제 문화혁명을 ‘10년 동란’이라고 부른다.>
“김일성은 인민이 뽑은 지도자”
—북한에 대해서는 아무 말 하지 않던가요.
“혁명 모델이 중국이라고 하기에 제가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그러니까 관련자 중 한 명이 당당하게 ‘남한은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선출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없는데 북한은 지도자(김일성)를 인민이 선출했기 때문에 정통성이 있다’고 말하더군요. 솔직히 전두환 대통령은 체육관 선거로 당선된 게 맞는 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인민이 김일성을 선택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북한도 100% 투표해서 100% 찬성으로 김일성이를 옹립한 것인데 체육관 선거와 뭐가 다르냐.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했더니 ‘검사님 참 무식하시다. 북한은 지도자를 인민이 뽑았기 때문에 미국·중국과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라며 저를 가르치려 하더라고요. 제가 공안검사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인데, 이런 사람들은 신기하게 김일성 김정일 욕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함께 부림사건을 수사했던 고영주(高永宙) 변호사는 ‘조선 pub’과의 인터뷰에서 피의자였던 이상록씨가 ‘지금은 우리가 검사님한테 조사받고 있지만, 공산주의 사회가 오면 우리가 검사님을 심판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는데, 혹시 비슷한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상록씨가 고 변호사가 조사할 때에도 그런 말을 한 모양이네요. 똑같은 이야기를 저한테도 했습니다. ‘지금은 검사님한테 조사받지만, 자기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사회가 되면 검사님이 조사를 받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부림사건 수사검사는 부산지검 공안부 소속 최병국(주임검사), 고영주, 장창호 3명이었다.
—당시 부림사건 관련자들이 북한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북한과 직접 연계됐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통일혁명당 목소리’에서 남한에서는 애국 청년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한다. 최병국이라고 하는 놈은 펜찌로 애국 청년의 발톱을 뺐다는 방송을 했다더군요.”
북한은 대남 흑색선전을 위해 1967년 ‘남조선해방민주민족연맹’ 방송을 개설했다. 이듬해 남한의 지하당이었던 통일혁명당이 와해되자 1970년 방송 명칭을 ‘통일혁명당 목소리’로 바꿨다. 이 방송은 1985년에는 ‘구국의 소리’로, 2005년에는 ‘반제민전’으로 이름을 바꿔 대남 흑색선전에 주력했다.
“金光一 변호사가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나”
영화에는 지역 인권변호사의 대부 격인 김광일 변호사(영화에서는 김상필 변호사)가 검찰의 압력으로 사건을 맡지 못하게 되는 것으로 나온다. 담당검사가 김광일(金光一), 이흥록(李興祿) 변호사에게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으면 학생들과 같이 엮어 버리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사실입니까.
“무슨 협박을 합니까. 아이고, 김광일 변호사가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사건을 조사하다가 피의자로부터 김광일 이흥록 변호사가 도피자들에게 자금을 대 줬다는 진술을 받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와 관련해 김광일 이흥록 변호사에게 서면 질의서를 보냈어요. 김 변호사는 ‘대단히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고 답변서를 보내 왔고, 이 변호사는 자신이 잘못했으니 교도소에 들어가겠다고 저를 찾아왔더군요. 깜짝 놀라서 ‘제발 돌아가 달라’고 부탁해서 겨우 돌려보냈습니다. 그분들이 서면 질의서 보낸 것이 압력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압력을 행사하려면 직접 불러 조사를 하지 않았겠습니까. 압력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를 보면, 재판 초반에 판사가 검찰과 변호인 측을 만나서 형량을 합의하라고 권유하는 내용도 나오던데요.
“1심 판사와 저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습니다. 형량을 합의하라고 권유하다니요.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죠. 법원과 경찰, 검사가 짜고 재판을 진행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변호인단과 피고인들에 대해 위압적인 태도를 보인 판사(송영창 분)의 모델이 된 판사는 조창호 변호사(71)로 알려졌다. 최 전 의원은 사시 9회(서울대 법대), 조 변호사는 사시 14회(경희대 법대)였다.
“盧武鉉은 감정적이지만 담백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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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명함 사진. |
—부림사건 때 노 전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요.
“기억이 나지 않네요.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제 심문만 하고 법정에서 나왔습니다. 너무 바쁠 때였으니까요. 그리고 변호인들도 자신이 심문할 게 없으면 잘 나오지 않습니다. 변호인 한 명이 피의자 전체를 맡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부산 미 문화원 방화사건 때 처음 만난 노 전 대통령은 어땠습니까.
“한번은 법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수만의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있어도 우리는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정약용 같은 사람은 지금도 기억한다. 피고인 그렇지요’라고 말하는 겁니다. 제3자 입장에서는 감동적일 수 있지만 사건과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 아닙니까. 참 황당무계하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복도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노변, 사회정의를 위해 앞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 법정에서 논리적으로 해야지, 감정적으로 변호하면 되느냐’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노 전 대통령의 반응은 어땠나요.
“뭐, 자기가 법조계에서 저를 가장 존경한다고 하던데요.”
—듣기 좋아하라고 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이 참 담백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제 지역구인 울산을 방문, 시장 등 여러 명과 함께 맞이하러 나갔는데 만나자마자 ‘선배님, 여기 계셨습니까. 몇 선 되십니까. 저는 1.5선밖에 안 했는데 선배님 큰일 하셔야죠’라면서 저와만 이야기하더군요. 그때 사람이 정말 담백하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조작했다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인터넷 백과사전에 부림사건을 검색하면 ‘1981년 군사독재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일으킨 부산 지역 사상 최대의 용공(容共)조작 사건’이라고 나온다. 다른 백과사전의 내용도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부림사건이 용공조작 사건입니까.
“부림사건 관련자들이 좌경화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었는데 좌경화한 사람들이었다고 죄를 뒤집어씌운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가 조작이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안검찰의 경우 정치사범이나 공안사범을 잘못 건드리면 그야말로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소위 ‘칙사(勅使)대접’ 해 가면서 조사합니다.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솔직히 공안검사가 죄를 덮어씌울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그런 생각 하는 사람들은 이석기 사건도 조작됐다고 합니다. 공안검사도 죄가 없으면 끝까지 도와주려고 합니다.”
—담당한 공안사건 중 도와주고 싶었던 상대가 있었습니까.
“제가 공안검사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인데 1982년 조총련 거점 간첩단(13명)을 검거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중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는데 4명 중에 김영희라는 아이가 기억에 남습니다. 제가 조사했는데 그 아이는 재일동포이던 삼촌이 시키는 대로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비밀공작원이 돼서 국내로 침투, 교회, 학원, 노조 등에서 간첩활동을 했더군요. 수사에도 협조적이고, 간첩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지 않고 해서 ‘사형’까지 갈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때 여론은 당연히 ‘사형’이었거든요. 부장검사에게 사형까지는 아닌 것 같다고 보고하니까 ‘니, 정들었구나’ 하는 겁니다. 그래서 그게 아니고 조사를 해 보니 사형까지는 아니라고 설득했지요. 그런데 암살 전문 비밀공작원에게 무기징역을 주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법원에서 형이 낮춰지길 바라면서 ‘사형’을 구형했지요. 그리고 속초지청장으로 떠났는데, 알고 보니 사형이 그대로 집행됐더군요. 정말 슬프고 미안했던 순간이었습니다.”
김영희씨 관련 1982년 11월 12일 자 《경향신문》 기사다.
<국가안전기획부는 12일 군부와 종교계에 침투, 동조자 포섭을 기도하고 군기를 탐지해 오던 재일동포 양달진 등 일본 거점 우회침투 간첩단 일당 13명을 검거, 이 중 김영희 양정이 김영추 김영준 등 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일본에서 음식점을 경영하는 양달진은 북괴의 재일공작 거점책인 김진성(조총련 동경 조선인 상공회 부이사장)에게 포섭돼 취업차 일본에 간 동생 양정이, 조카 김영희 등을 유인, 북괴의 재일공작 위장거점인 음식점 다이몽(大門) 다이꼬꾸야(大黑屋) 등에 위장취업시킨 다음 입북을 시키거나 비밀공작 아지트에서 간첩교육을 시켜 왔다는 것이다. 교육을 받은 이들은 다시 국내로 침투했다.>
“영화 보면 열 받을 듯”
—부림사건 관련자 가운데 8명은 2001년 7월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아 명예를 회복했는데요. 어떤 생각이 듭니까.
“김대중 정부 때인 2002년 4월 동의대 사건 시위자 46명은 민주화 운동가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들이 던진 화염병에 경찰관 4명과 전투경찰 3명은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렇게만 이야기하겠습니다.”
동의대 사건은 1989년 5월 3일 부산 동의대에서 학생시위를 진압하던 경찰 7명이 숨진 사건이다. 유족대표 정유환(54)씨는 “가해자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당시 사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거나 화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고 했다.
—만약 부림사건이 지금 터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연평도 포격, 천안함 폭침, 이석기 내란음모 등으로 북한에 대한 일반 국민의 여론이 악화한 현 시점에 부림사건이 발생한다면 80년대보다 더 큰 사건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담당 검사라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한겨레》 기자가 찾아왔을 때 (부림사건 관련자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했는데요.
“잘못한 게 있어야지 사과를 하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가장 처음 하고 싶었던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영화 <변호인>은 정말 안 볼 겁니까.
“보면 열만 받을 텐데요. 엉터리인데…. 안 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