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식교육보다 희망·꿈·비전을 갖게 하는 것이 더 중요”
⊙ “교육감으로 기대는 가장 중요한 언덕은 헌법”
⊙ “自私高의 성적제한 폐지는 자사고·일반고가 다시 살아날 기회”
⊙ “교육감으로 기대는 가장 중요한 언덕은 헌법”
⊙ “自私高의 성적제한 폐지는 자사고·일반고가 다시 살아날 기회”
문용린(文龍鱗) 서울시 교육감은 작년 12월 보수 진영 단일 후보로 서울시 교육감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두 명의 교육감(공정택·곽노현)이 불법행위로 중도하차한, 가장 부끄러운 일이 서울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후보 추대 자리의 일성(一聲)이었다.
서울의 학부모들이 함께 부끄러워한 덕분일까. 전교조 위원장 출신의 이수호 후보를 누르고 그는 서울 25개 모든 구(區)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당선됐다. 취임사에서 “학자로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 눈으로 일주일에 최소 학교 2~3곳을 방문해 현장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임기 1년6개월 중 절반이 지난 지금, ‘행복교육’을 내건 문용린의 서울교육은 ‘곽노현식(式) 평등교육’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9월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을 찾아갔다.
그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다. “‘장관’과 ‘교육감’ 자리 중 어느 쪽이 더 무겁나”라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교육부장관 때는 추상적인 유령과 싸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돈키호테가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 오니까, 유령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현장과 싸우게 돼요. 아침 신문에 급식사고가 났다거나 입시문제로 학부모가 항의했다는 기사가 나오면 서울발(發)인지부터 봐요. 일단 서울이 아니면 안심이 돼요. 하하하. 장관 시절에는 교육에 관한 모든 사항에 씨름하고 걱정했지만, 여기는 서울 범주 내에서 아주 구체적인 것과 싸웁니다.”
문 교육감은 전날 찾은 ‘온종일 돌봄 교실’ 현장 얘기를 들려주었다. ‘돌봄 교실’은 저소득층과 맞벌이가정 아이를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위탁하는 서비스다. 올해부터 밤 10시로 시간을 늦췄다고 한다.
“어제 밤늦게 ‘온종일 돌봄 교실’을 찾아갔더니 그 늦은 시간까지 교사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어요. 교문은 항상 열려 있지, 어린 아이와 여선생님이 밤늦게까지 있잖아요. 혹시나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요.
오늘 출근하자마자 ‘돌봄 학교’가 서울에 몇 개인지부터 확인했어요. 75개교에 이른다고 해요. 실·국장들에게 ‘돌봄 학교’를 찾아가 시설을 둘러보고, 어린 아이를 맡기는 부모와도 만나보라고 긴급 지시를 했어요. 저마다 얼마나 사연이 많겠어요.”
—교육현장에서 우리 교육에 대한 걱정도, 희망도 함께 보시겠네요.
“그럼요. 실망도 희망도 갖지만 언제나 현장에는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묵묵히 애쓰는 분들이 참 많아요. 청각장애인학교인 ‘서울애화학교’에 갔더니 수녀님 두 분과 40여 명의 교사가 장애학생들과 씨름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눈빛을 봤더니 저마다 반짝반짝해요. 저는 그 눈빛에서 희망을 느꼈어요.
중도탈락 직전의 학생을 가르치는 공립 위탁형 대안학교가 서울에 두 곳 있어요. 학교 밖으로 떠나는 아이들을 벼랑 끝에서 마지막까지 붙잡아두는 곳이죠. 그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저는 ‘상록수’가 다른 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4곳을 더 늘리려고 해요.”
곽노현 체제와 다른 점은…
—지금의 서울교육은 곽노현 시절과 얼마나 다릅니까.
“글쎄요. 큰 차이보다는, 전임 교육감은 사교육을 줄이고, 외고니 과학고니 특목고를 차별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똑같이 평등교육을 하자는 것 아니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특목고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서울만 해도 학생 수가 120만명에 이릅니다. 곱하기 2를 하면 학부모가 250만명이에요. 저마다 자식에 대한 기대가 다 달라요.
그런 면에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나 특목고가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번에 국제중 입시비리가 나왔을 때 아예 국제중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어요. 제 생각은 입시비리는 엄벌해야 하되 진학을 원하는 국민도 있다는 겁니다. 한 해 국제중 응시자가 3000명이 넘어요. 그중에서 320명을 선발합니다. 다양한 교육적 수요가 있으면 그 수요에 맞게 교육제도와 학교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 (전임 교육감과) 다르다면 다른 것이죠.”
—또 다른 차이점이라면….
“우리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라기보다 지적(知的)으로 학생을 우수하게 키우는 교육으로 경도돼 왔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희망과 꿈, 비전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초중고 12년간 제일 중요한 희망, 꿈, 비전을 갖게 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감(感)을 잡게 하는 것이 보통교육의 목표라고 봐요.”
꿈과 비전을 갖기 위해선 세상에 대한 다양한 체험과 시각이 필요하다. 인생의 목적지가 외길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동안 진로교육과 진로직업 체험을 강화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본격 가동에 앞서 현재 11개 중학교를 시범학교로 선정했다. 중1 학생들은 진로탐색을 하면서 중간고사를 보지 않는다. 대신 학기 중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를 합산해 학기말 성적을 낸다.
학생들은 직업과 어른들에 대해 묻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큰 물음(Big Questions)의 과정’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며 학생은 무한한 가능성의 한복판으로 걸어가게 된다.
교육부도 서울시교육청의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와 비슷한 ‘자유학기제’를 도입했다. 자유학기제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공약사항. 전국 37개교가 연구학교로 지정됐고 서울 지역은 5개교다.
“희망과 꿈, 비전은 교과서에서 찾을 수 없어요. 삼성전자도 견학시키고, 그 회사 직원 얘기도 들어보게 합니다. 그럼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어요? 은행에 가서 돈도 세어보고, 큰 식당도 가보고, 한강 유람선도 타보고, 사관학교도, 군대도 가보고 그런 체험을 교과서 밖에서 하자는 겁니다.”
문용린 교육감은 “서울에 있는 공공기관을 다 오픈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현재 100여 개 기관과 MOU를 맺어 아이들이 그곳에서 진로체험을 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교육의 슬로건은 ‘행복교육’입니다. ‘행복한’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과 행복은 등가(等價)입니다. 사람은 행복할 때 공부도 잘해요. 틀림없어요. 행복할 때 기억이 잘 되고, 주의집중이 잘 되며, 창의성이 높아져요. 행복할 때 문제해결이 잘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행복해지면 기강이 풀릴까 봐 의도적으로 (학생을) 잡았어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조사했더니, 부모가 잘났거나 부자여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없었어요. 행복한 아이들은 자신의 희망과 꿈을 가질 때 행복하고, 그것을 향해 노력할 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행복한 버릇에 익숙한 아이가 커서도 행복해집니다. 꿈과 비전을 갖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고 덩달아 공부도 잘하게 돼 있어요.”
문 교육감은 행복교육의 5가지 실천과제로 진로체험 활성화, 도덕·인성교육 활성화, 독서교육 활성화, 나라 사랑교육 강화, 학생과 교원의 상호 존중 문화조성 등을 마련했다.
“행복교육의 핵심이 청소년에게 희망과 꿈, 비전을 주자는 것이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도 살아나야 해요. 대한민국 선생님은 칭찬받기보다, ‘선생이 왜 그러느냐’, ‘선생이 체벌이나 하고 촌지나 받는다’고 계속 그랬잖아요. 앞으로 일방적으로 선생님들을 칭찬 좀 하려고 합니다. 지난 스승의 날에는 세종문화회관 음악당을 빌려 추첨을 통해 뽑힌 선생님들에게 콘서트를 제공했는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내년에도 할 생각입니다.”
“법이 허용하는 경쟁은 나쁘지 않아”
교단(敎壇)에서 특정이념에 편향된 교사들의 막말이 구설에 오르고 있다. 전교조 교사의 정치투쟁과 이념교육이 걱정되기도 한다. 그러나 가르치는 내용 중 서로 양립할 수 없는 사상과 지식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교사의 생각을 좌우의 어느 한 방향으로 재단할 수도 없다.
문 교육감은 “교사들은 자신의 신념보다는 헌법적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좌우이념의 스펙트럼이 강합니다. 이석기 사태에서 보듯 국회의원조차 이념적 혼란에 빠져 있잖아요. 선생님이 시민의 권리를 내세우며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는 세뇌(洗腦)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런 위험 때문에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제한하고, 선생님들의 정치, 정당 활동도 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입니다.
교육감에 당선되고 선언한 것이 있어요. ‘당신의 이념은 뭐냐는 식의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지 말자’고요. 제가 교육감으로 의지하고 기대는 가장 중요한 언덕은 헌법(憲法)입니다. 헌법에 나타난 이념과 가치를 아이들에게 충실히 가르치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감으로 5만명의 교사, 120만명의 학생을 헌법에 나타난 가치에 따라 가르치려 애쓰겠다고 했어요. 교총도 전교조도 있지만, 교육상황에 들어와서는 모두 헌법에 명시된 가치관과 이념에 따라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에 어긋날 때 제재(制裁)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헌법 얘기로 좀 더 들어가 보자. 개인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은 다양하게 허용돼야 하고, 그것이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학교, 예컨대 자사고, 자율학교, 특성화고 등의 복잡한 구조는 불필요한 경쟁과 사회적 낭비를 유발하는 위험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건전한 경쟁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가치고, 헌법에서 얘기하는 국가이념이기도 합니다. 공정한 경쟁은 자유민주국가의 가치이자 권리라는 얘기지요. 물론 경쟁이 나쁜 점도 있어요. 그러나 법이 허용하는 경쟁은 그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 않아요.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도 경쟁을 통해 국민이 가진 최선의 노력을 추출해 가능할 수 있었잖아요.”
자사고의 신입생 성적제한을 폐지하면
교육부는 최근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마련하며 자사고의 신입생 성적제한을 폐지했다. 지금까지는 중학교 내신 50% 이내의 학생들만 원서를 낼 수 있었다. 고교 서열화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해 일반고의 슬럼화 분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사고 인기도 시들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고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문 교육감은 “자사고와 일반고를 연계시키지 마라”며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위기에 빠졌다고 보는 이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애초에 자사고가 정체성을 잘못 가졌어요. 사립학교는 설립 당시의 고유한 이념이 있는데 그 이념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일반고에 묻혀 잘못 갔던 셈이에요. 거기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뽑았고 등록금도 일반고보다 3배를 내는 학생을 데려갔어요. 그래서 자사고의 정체성이 ‘나를 좋은 대학에 넣어야 한다’로 결정됐던 것이죠. 이것은 자사고의 설립이념과 다른 모습입니다. 자사고의 성적제한 폐지는 자사고가 다시 살아날 기회라고 생각해요. 공부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학교설립 이념에 맞는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사고의 장점이 사라지면 누가 자녀를 자사고에 보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부 잘하고 비싼 학비 낼 학생만 다니게 했으니 풀(pool)이 좁았지만, 이제는 성적이 좋지 않아도 학교 설립이념에 맞으면 오히려 더 많이 지원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진짜로 ‘잘 가르치기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죽었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봐요. 일반고가 180개교입니다. 자사고는 25개교예요. 25개교에서 몇 명이나 뽑아갔겠어요.”
서울시교육청은 일반고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일반고 점프업(jump up) 추진계획’을 내놓았다. 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진로 집중과정을 주변의 학교별, 교육청별로 ‘교육과정 거점학교’를 통해 가르친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올 2학기부터 음악 거점학교 4곳, 미술 거점학교 6곳, 체육 거점학교 7곳, 과학 거점학교 7곳, 제2외국어 거점학교 3곳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내년에는 27개교로 늘릴 계획이다.
“일반고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예고나 과학고, 외고에 가려다가 떨어진 아이들이 일반고로 배정받잖아요. 또 특성화고에 가서 취업하겠다는 학생도 다 못 가고 한 해 2000명 정도가 떨어져 나와 일반고로 진학해요. 일반고는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어요. 예고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공부보다 음악과 미술을 더 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일반고는 수능점수 올리는 강의만 하니 수업시간에 잠만 잘 수밖에요. 이런 아이를 깨워 한 주에 하루는 교육과정 거점학교에 보내자는 겁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예술계 고교 입학이 좌절된 학생 수가 2011년에는 1279명, 작년에는 1545명, 올해는 1891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문 교육감은 또 “직업교육을 희망하는 일반고 3학년 학생을 직업교육 거점학교로 보내 실용음악, 미용예술, 조리, 관광,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반고의 슬럼화를 거점학교 육성으로 극복하겠다는 방안은 메스를 일반고의 심장부에 대지 않고 주변부부터 치유하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일반고의 성적 우수생을 따로 모아 영어·수학 심화교육을 하는 거점학교 운영계획을 내놓았으나 우열반 논란이 일어 폐지하고 말았다.
수업시간, 자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하나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을 선생님이 깨워야 하나요, 그냥 둬야 하나요.
“당연히 깨워야죠. 그런데 아이가 선생님께 ‘이 공부 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수업방해 안 할 테니 놔두세요’라고,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러니 선생님도 포기하고 말아요.”
—그럼, 일선 학교에 ‘자는 학생 깨워라’는 공문을 보낼 수 있나요.
“하지만 깨워도 공부를 안 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래서 거점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깨워서 거점학교로 보내라고요. 지금까지는 깨워봤자 또 잠자거든요. 3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그런데 (거점학교가) 아직은 과도기예요. 다니던 학교 대신 인근의 거점학교로 등교해야 하니 부모도 갸우뚱합니다. 우리가 파악한 수요와 실제 참여한 학생 수가 일치하지 않아요. 거점학교에 학생이 안 모여 시작을 못 한 학교가 20개교 중에서 2~3곳입니다.”
곽노현 교육감 시절 만든 ‘학생인권조례’로 학교가 어수선하다. 두발·복장의 개성을 허용하고, 체벌 금지, 휴대폰 소지 허용까지 조례에 담겨 있다. 상위기관인 교육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교육감의 허락 없이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했지만,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에 인권침해라 주장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지친 교사들은 학생들의 일탈을 외면하고 만다.
—학생의 인권이 우선인가요, 교사의 인권이 우선인가요.
“둘 다 중요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선언’이 되어선 안 됩니다. 선언은 헌법에 있어요. 학생 인권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공동으로 잘 지켜지는 조례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학생의 소지품을 인권 수준으로 얘기하면, 누구도 학생 호주머니를 뒤질 수 없어요. 주머니에 담배나 흉기가 들어 있어도 학생인권조례에 의하면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상황은 다르다고 봅니다. 충분히 의심할 상황이고 교육적으로 필요하다면, 학생 의사와 상관없이 소지품 조사도 할 수 있어야 해요. 어느 부모가 내 자식의 주머니에 나쁜 물건이 있는데 인권을 생각해 방치하겠어요.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 앞에서 인권조례집을 펴놓고 ‘몇 조 몇 항에 뭐가 있다’고 따집니다. 휴대폰으로 찍으려 들고요. 그러니 대다수 선생님이 포기합니다. (인권조례를) 어기고라도 해야 하는데,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고, 학생의 호주머니가 의심스러워도 눈을 감아요. 그래서 학교생활지도가 개판이라는 말이 나오고, 아이들이 학교가 불안해 못 가겠다고 합니다.”
그는 “인권조항의 수정이 불가피하고 바꾸려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 고치겠다”
학생인권조례 5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학생은 임신 출산 성적(性的) 지향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문 교육감은 “맞는 말이지만 유초중등 학생이 읽는 자료에 그런 식의 표현이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학생이 임신해서는 안 되죠. 동성애도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고요.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이지, 그것을 ‘너희는 그렇게 해도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권리’로 가르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느냐, (학생들이) 설사 그렇더라도 차별을 해선 안 된다는 선생님의 ‘교육적 지침’으로 가르칩니다.”
—학생인권조례 중에서 체벌조항이나 휴대폰 허용조항은 어떻게 할 겁니까.
“체벌은 법으로도 금지해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도 안 되게 돼 있어요. 휴대폰 사용이야말로, 논란이 많아요. 선생님이 휴대폰 사용을 규제하지만, 아이들은 책상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놓고 휴대폰을 해요.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를 응시하니 선생님도 깜빡 속아요.
교장선생님들은 휴대폰을 못 쓰게 하지만, 강제조항에 넣지는 않았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일단 등교를 하면 선생님께 휴대폰을 맡기게 하는 학교가 많아요. 그런데 분실사고가 가끔 생겨요. 그럼 선생님 보고 물어내라고 해서 물어낸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휴대폰을 안 걷으려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휴대폰 중독에 따른 심리적 질병이다. 휴대폰 게임에 중독돼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아이들이 많다. 컴퓨터 게임보다 휴대폰 중독이 더 위험하다는 말도 나온다.
“학생 시절에는 휴대폰에 집중해선 안 돼요. 심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학교 내에선 컨트롤해도, 학교 밖에서 쓰는 것까지… 휴대폰보다 독서가 더 재미있다고 알려주기 위해 독서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심리검사 결과를 개인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곤란
작년 교육부가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정서와 행동특성 검사’를 벌인 결과, 중학생이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648만명 초중고 학생 가운데 20%인 127만명이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고, 학교별로는 중학생이 가장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어떤 심리검사도 현장에서 행동적 돌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단순히 검사결과만으로 규제할 수 없어요. ‘자살염려군’으로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특별관리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검사결과가 예후(豫後)와 일치할 확률은 60%를 안 넘습니다. ‘이 학교 전교생이 다른 학교에 비해 비행성향이나 일탈성향이 높으니, 교장이 전체적으로 조심하자’는 지표는 되지만 그 자료를 개인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낙인(烙印)효과도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그럼, 어떻게 활용할 계획입니까.
“담임이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평균치로 활용하거나 학교 전체의 특성, 남녀 학생의 집단특성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만약 자살성향이 높다면, 교사가 혼자 알고 있어야지 특정 개인을 놓고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래도 교사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가져야죠. 하지만 자살성향, 비행성향이 주변에 알려져, 담임이 선입관을 갖고 대하는 것도 교육적인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획일적으로 검사결과를 학교현장에서 쓰는 것은 반대입니다. 자살이나 비행은 예방활동을 통해 막아야지, 개인의 심리테스트를 두고 누가 이렇고, 저렇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정신과 의사나 교육학자 모두 반대합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내년도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무상급식 탓에 원어민 교사가 학교현장에서 사라지고 고장 난 시설도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급식 질 저하, 수저나 식판의 훼손, 많이 남는 잔반 문제는 ‘보너스’다.
“한 해 무상급식 예산으로 4000억원을 쓰거든요. 어디서 나옵니까. 국가가 따로 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봉급에서도 못 떼잖아요. 학교 화장실 안 고치고, 깨친 유리창 안 고치고 밥 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것만이 아니라 누리과정(유치원과 어린이집 공통 교육보육과정)까지 하라니까. 누리과정은 급식예산보다 더 들어가요. 무상급식이 4000억원이 들면 누리과정은 2년에 7000억원이 듭니다.”
—내년 지방선거에도 출마한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내년 3월에 결정하겠습니다. 선거 얘기 자꾸 하면, 휘말릴 수 있어요. 그때까지 교육감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한 선거운동 아닙니까.”⊙
서울의 학부모들이 함께 부끄러워한 덕분일까. 전교조 위원장 출신의 이수호 후보를 누르고 그는 서울 25개 모든 구(區)에서 1위를 차지하며 당선됐다. 취임사에서 “학자로 갖고 있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 눈으로 일주일에 최소 학교 2~3곳을 방문해 현장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다.
임기 1년6개월 중 절반이 지난 지금, ‘행복교육’을 내건 문용린의 서울교육은 ‘곽노현식(式) 평등교육’과 얼마나 달라졌을까. 9월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을 찾아갔다.
그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 교육부장관을 역임했다. “‘장관’과 ‘교육감’ 자리 중 어느 쪽이 더 무겁나”라는 우문(愚問)을 던졌다.
“교육부장관 때는 추상적인 유령과 싸운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돈키호테가 보이지 않는 유령과 싸우는 것처럼 말이죠. 여기 오니까, 유령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현장과 싸우게 돼요. 아침 신문에 급식사고가 났다거나 입시문제로 학부모가 항의했다는 기사가 나오면 서울발(發)인지부터 봐요. 일단 서울이 아니면 안심이 돼요. 하하하. 장관 시절에는 교육에 관한 모든 사항에 씨름하고 걱정했지만, 여기는 서울 범주 내에서 아주 구체적인 것과 싸웁니다.”
문 교육감은 전날 찾은 ‘온종일 돌봄 교실’ 현장 얘기를 들려주었다. ‘돌봄 교실’은 저소득층과 맞벌이가정 아이를 오전 6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위탁하는 서비스다. 올해부터 밤 10시로 시간을 늦췄다고 한다.
“어제 밤늦게 ‘온종일 돌봄 교실’을 찾아갔더니 그 늦은 시간까지 교사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어요. 교문은 항상 열려 있지, 어린 아이와 여선생님이 밤늦게까지 있잖아요. 혹시나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요.
오늘 출근하자마자 ‘돌봄 학교’가 서울에 몇 개인지부터 확인했어요. 75개교에 이른다고 해요. 실·국장들에게 ‘돌봄 학교’를 찾아가 시설을 둘러보고, 어린 아이를 맡기는 부모와도 만나보라고 긴급 지시를 했어요. 저마다 얼마나 사연이 많겠어요.”
—교육현장에서 우리 교육에 대한 걱정도, 희망도 함께 보시겠네요.
“그럼요. 실망도 희망도 갖지만 언제나 현장에는 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묵묵히 애쓰는 분들이 참 많아요. 청각장애인학교인 ‘서울애화학교’에 갔더니 수녀님 두 분과 40여 명의 교사가 장애학생들과 씨름하고 있었어요. 선생님 눈빛을 봤더니 저마다 반짝반짝해요. 저는 그 눈빛에서 희망을 느꼈어요.
중도탈락 직전의 학생을 가르치는 공립 위탁형 대안학교가 서울에 두 곳 있어요. 학교 밖으로 떠나는 아이들을 벼랑 끝에서 마지막까지 붙잡아두는 곳이죠. 그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저는 ‘상록수’가 다른 곳에 있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4곳을 더 늘리려고 해요.”
곽노현式 ‘혁신학교’ 논란
‘서울형 혁신학교’는 곽노현(郭魯炫) 교육감 재임 당시인 2011년 3월 처음 도입됐다. 현재 67개교(초등 36교, 중등 21교, 고등 10교)에 이른다. 연간 1억4000만원이 넘는 특별예산을 받아 체험학습 위주의 교육과정을 운영해 왔는데, 입시 위주의 획일적 학교교육에서 벗어났다는 긍정평가와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불러왔다는 부정평가가 엇갈렸다. 혁신학교의 여러 교내외 동아리에 전교조 성향 교사들이 적극적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울시의회는 지난 8월 27일 문 교육감의 반대로 본회 상정이 보류됐던 ‘서울 혁신학교 조례안’을 재석의원 91명 중 61명의 찬성으로 가결했다. 문 교육감은 “혁신학교는 자율학교로서, 초중등교육법에서 규정하는 자율학교 지정·취소에 관한 교육감의 고유권한을 하위법인 ‘조례’로 강제한다는 것은 상위법에 위배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혁신학교 조례에 대해 대법원에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한다는 계획이다. 문 교육감의 말이다. “혁신학교에 배부된 약 1억4000만원의 예산은 과다해서, 예산집행의 방만함과 고비용 체험학습, 학력저하 문제 등 여러 문제점으로 인해 세부 검토가 필요하고 일반학교와의 형평성 문제로 인해 갈등이 많아요. 혁신학교에서는 학교운영의 민주화로, 소수의 교사가 학교장의 법적 권한을 무시하고 학교운영을 좌지우지하는 등 학교현장의 혼란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그는 “여러 혁신학교의 문제점과 한국교육개발원의 평가용역 결과를 토대로 교육내용이 알차게 전개되도록 정책 방향을 수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곽노현 체제와 다른 점은…
—지금의 서울교육은 곽노현 시절과 얼마나 다릅니까.
“글쎄요. 큰 차이보다는, 전임 교육감은 사교육을 줄이고, 외고니 과학고니 특목고를 차별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똑같이 평등교육을 하자는 것 아니었나요? 저는 기본적으로 특목고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서울만 해도 학생 수가 120만명에 이릅니다. 곱하기 2를 하면 학부모가 250만명이에요. 저마다 자식에 대한 기대가 다 달라요.
그런 면에서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나 특목고가 필요하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번에 국제중 입시비리가 나왔을 때 아예 국제중을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어요. 제 생각은 입시비리는 엄벌해야 하되 진학을 원하는 국민도 있다는 겁니다. 한 해 국제중 응시자가 3000명이 넘어요. 그중에서 320명을 선발합니다. 다양한 교육적 수요가 있으면 그 수요에 맞게 교육제도와 학교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 (전임 교육감과) 다르다면 다른 것이죠.”
—또 다른 차이점이라면….
“우리 교육은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라기보다 지적(知的)으로 학생을 우수하게 키우는 교육으로 경도돼 왔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희망과 꿈, 비전이 먼저라고 생각해요. 초중고 12년간 제일 중요한 희망, 꿈, 비전을 갖게 해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감(感)을 잡게 하는 것이 보통교육의 목표라고 봐요.”
꿈과 비전을 갖기 위해선 세상에 대한 다양한 체험과 시각이 필요하다. 인생의 목적지가 외길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학교 1학년 동안 진로교육과 진로직업 체험을 강화하는 정책을 마련했다. 본격 가동에 앞서 현재 11개 중학교를 시범학교로 선정했다. 중1 학생들은 진로탐색을 하면서 중간고사를 보지 않는다. 대신 학기 중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를 합산해 학기말 성적을 낸다.
학생들은 직업과 어른들에 대해 묻고 경험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를 ‘큰 물음(Big Questions)의 과정’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이 과정을 거치며 학생은 무한한 가능성의 한복판으로 걸어가게 된다.
교육부도 서울시교육청의 ‘중1 진로탐색 집중학년제’와 비슷한 ‘자유학기제’를 도입했다. 자유학기제는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의 공약사항. 전국 37개교가 연구학교로 지정됐고 서울 지역은 5개교다.
“희망과 꿈, 비전은 교과서에서 찾을 수 없어요. 삼성전자도 견학시키고, 그 회사 직원 얘기도 들어보게 합니다. 그럼 진로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겠어요? 은행에 가서 돈도 세어보고, 큰 식당도 가보고, 한강 유람선도 타보고, 사관학교도, 군대도 가보고 그런 체험을 교과서 밖에서 하자는 겁니다.”
문용린 교육감은 “서울에 있는 공공기관을 다 오픈시키는 것이 목표”라며 “현재 100여 개 기관과 MOU를 맺어 아이들이 그곳에서 진로체험을 하게 만들겠다”고 했다.
“서울교육의 슬로건은 ‘행복교육’입니다. ‘행복한’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과 행복은 등가(等價)입니다. 사람은 행복할 때 공부도 잘해요. 틀림없어요. 행복할 때 기억이 잘 되고, 주의집중이 잘 되며, 창의성이 높아져요. 행복할 때 문제해결이 잘 됩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행복해지면 기강이 풀릴까 봐 의도적으로 (학생을) 잡았어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을 조사했더니, 부모가 잘났거나 부자여서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없었어요. 행복한 아이들은 자신의 희망과 꿈을 가질 때 행복하고, 그것을 향해 노력할 때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부터 행복한 버릇에 익숙한 아이가 커서도 행복해집니다. 꿈과 비전을 갖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이고 덩달아 공부도 잘하게 돼 있어요.”
문 교육감은 행복교육의 5가지 실천과제로 진로체험 활성화, 도덕·인성교육 활성화, 독서교육 활성화, 나라 사랑교육 강화, 학생과 교원의 상호 존중 문화조성 등을 마련했다.
“행복교육의 핵심이 청소년에게 희망과 꿈, 비전을 주자는 것이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도 살아나야 해요. 대한민국 선생님은 칭찬받기보다, ‘선생이 왜 그러느냐’, ‘선생이 체벌이나 하고 촌지나 받는다’고 계속 그랬잖아요. 앞으로 일방적으로 선생님들을 칭찬 좀 하려고 합니다. 지난 스승의 날에는 세종문화회관 음악당을 빌려 추첨을 통해 뽑힌 선생님들에게 콘서트를 제공했는데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내년에도 할 생각입니다.”
“법이 허용하는 경쟁은 나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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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19일 서울 강동구 풍성중학교에서 문용린 교육감이 학부모, 교직원, 경찰, 학생 등과 함께 학교폭력예방 캠페인을 하고 있다. |
문 교육감은 “교사들은 자신의 신념보다는 헌법적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은 좌우이념의 스펙트럼이 강합니다. 이석기 사태에서 보듯 국회의원조차 이념적 혼란에 빠져 있잖아요. 선생님이 시민의 권리를 내세우며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신념을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18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는 세뇌(洗腦)현상이 일어날 수 있어요.
그런 위험 때문에 정치적 신념과 종교적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제한하고, 선생님들의 정치, 정당 활동도 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법의 정신입니다.
교육감에 당선되고 선언한 것이 있어요. ‘당신의 이념은 뭐냐는 식의 진보냐, 보수냐를 따지지 말자’고요. 제가 교육감으로 의지하고 기대는 가장 중요한 언덕은 헌법(憲法)입니다. 헌법에 나타난 이념과 가치를 아이들에게 충실히 가르치는 게 제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감으로 5만명의 교사, 120만명의 학생을 헌법에 나타난 가치에 따라 가르치려 애쓰겠다고 했어요. 교총도 전교조도 있지만, 교육상황에 들어와서는 모두 헌법에 명시된 가치관과 이념에 따라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에 어긋날 때 제재(制裁)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해요.”
헌법 얘기로 좀 더 들어가 보자. 개인의 학교선택권과 학교의 학생선발권은 다양하게 허용돼야 하고, 그것이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다양한 학교, 예컨대 자사고, 자율학교, 특성화고 등의 복잡한 구조는 불필요한 경쟁과 사회적 낭비를 유발하는 위험물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건전한 경쟁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가치고, 헌법에서 얘기하는 국가이념이기도 합니다. 공정한 경쟁은 자유민주국가의 가치이자 권리라는 얘기지요. 물론 경쟁이 나쁜 점도 있어요. 그러나 법이 허용하는 경쟁은 그 자체가 나쁘다고 보지 않아요. 대한민국이 이만큼 성장한 것도 경쟁을 통해 국민이 가진 최선의 노력을 추출해 가능할 수 있었잖아요.”
자사고의 신입생 성적제한을 폐지하면
교육부는 최근 ‘일반고 교육역량 강화 방안’을 마련하며 자사고의 신입생 성적제한을 폐지했다. 지금까지는 중학교 내신 50% 이내의 학생들만 원서를 낼 수 있었다. 고교 서열화 문제를 다소나마 해소해 일반고의 슬럼화 분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사고 인기도 시들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고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도 아니다. 문 교육감은 “자사고와 일반고를 연계시키지 마라”며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위기에 빠졌다고 보는 이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했다.
“애초에 자사고가 정체성을 잘못 가졌어요. 사립학교는 설립 당시의 고유한 이념이 있는데 그 이념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냥 일반고에 묻혀 잘못 갔던 셈이에요. 거기다 공부 잘하는 학생만 뽑았고 등록금도 일반고보다 3배를 내는 학생을 데려갔어요. 그래서 자사고의 정체성이 ‘나를 좋은 대학에 넣어야 한다’로 결정됐던 것이죠. 이것은 자사고의 설립이념과 다른 모습입니다. 자사고의 성적제한 폐지는 자사고가 다시 살아날 기회라고 생각해요. 공부 잘하고, 못하고와 상관없이 학교설립 이념에 맞는 아이들을 키우겠다고 선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사고의 장점이 사라지면 누가 자녀를 자사고에 보낼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공부 잘하고 비싼 학비 낼 학생만 다니게 했으니 풀(pool)이 좁았지만, 이제는 성적이 좋지 않아도 학교 설립이념에 맞으면 오히려 더 많이 지원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되면 진짜로 ‘잘 가르치기 경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사고 때문에 일반고가 죽었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봐요. 일반고가 180개교입니다. 자사고는 25개교예요. 25개교에서 몇 명이나 뽑아갔겠어요.”
서울시교육청은 일반고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일반고 점프업(jump up) 추진계획’을 내놓았다. 학교에서 개설하기 어려운 진로 집중과정을 주변의 학교별, 교육청별로 ‘교육과정 거점학교’를 통해 가르친다는 것이 골자다.
이를 위해 올 2학기부터 음악 거점학교 4곳, 미술 거점학교 6곳, 체육 거점학교 7곳, 과학 거점학교 7곳, 제2외국어 거점학교 3곳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내년에는 27개교로 늘릴 계획이다.
“일반고 학생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예고나 과학고, 외고에 가려다가 떨어진 아이들이 일반고로 배정받잖아요. 또 특성화고에 가서 취업하겠다는 학생도 다 못 가고 한 해 2000명 정도가 떨어져 나와 일반고로 진학해요. 일반고는 다양한 아이들이 모여 있어요. 예고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들은 공부보다 음악과 미술을 더 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일반고는 수능점수 올리는 강의만 하니 수업시간에 잠만 잘 수밖에요. 이런 아이를 깨워 한 주에 하루는 교육과정 거점학교에 보내자는 겁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예술계 고교 입학이 좌절된 학생 수가 2011년에는 1279명, 작년에는 1545명, 올해는 1891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문 교육감은 또 “직업교육을 희망하는 일반고 3학년 학생을 직업교육 거점학교로 보내 실용음악, 미용예술, 조리, 관광, 바리스타 과정을 배우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반고의 슬럼화를 거점학교 육성으로 극복하겠다는 방안은 메스를 일반고의 심장부에 대지 않고 주변부부터 치유하겠다는 발상으로 보인다.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일반고의 성적 우수생을 따로 모아 영어·수학 심화교육을 하는 거점학교 운영계획을 내놓았으나 우열반 논란이 일어 폐지하고 말았다.
수업시간, 자는 아이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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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부장관 시절인 2000년 3월 20일 나카소네 히로후미 일본 문부상과 문용린 장관이 한일교육교류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한 후 악수를 나누고 있다. |
“당연히 깨워야죠. 그런데 아이가 선생님께 ‘이 공부 해봤자, 아무 도움이 안 돼요. 수업방해 안 할 테니 놔두세요’라고,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그러니 선생님도 포기하고 말아요.”
—그럼, 일선 학교에 ‘자는 학생 깨워라’는 공문을 보낼 수 있나요.
“하지만 깨워도 공부를 안 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래서 거점학교를 만들었습니다. 깨워서 거점학교로 보내라고요. 지금까지는 깨워봤자 또 잠자거든요. 3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그런데 (거점학교가) 아직은 과도기예요. 다니던 학교 대신 인근의 거점학교로 등교해야 하니 부모도 갸우뚱합니다. 우리가 파악한 수요와 실제 참여한 학생 수가 일치하지 않아요. 거점학교에 학생이 안 모여 시작을 못 한 학교가 20개교 중에서 2~3곳입니다.”
곽노현 교육감 시절 만든 ‘학생인권조례’로 학교가 어수선하다. 두발·복장의 개성을 허용하고, 체벌 금지, 휴대폰 소지 허용까지 조례에 담겨 있다. 상위기관인 교육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교육감의 허락 없이 학교장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했지만, 학생들은 교사의 지시에 인권침해라 주장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지친 교사들은 학생들의 일탈을 외면하고 만다.
—학생의 인권이 우선인가요, 교사의 인권이 우선인가요.
“둘 다 중요하지만, 학생인권조례가 ‘선언’이 되어선 안 됩니다. 선언은 헌법에 있어요. 학생 인권이 아니라 학교 구성원 모두의 인권이 공동으로 잘 지켜지는 조례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학생의 소지품을 인권 수준으로 얘기하면, 누구도 학생 호주머니를 뒤질 수 없어요. 주머니에 담배나 흉기가 들어 있어도 학생인권조례에 의하면 소지품 검사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교상황은 다르다고 봅니다. 충분히 의심할 상황이고 교육적으로 필요하다면, 학생 의사와 상관없이 소지품 조사도 할 수 있어야 해요. 어느 부모가 내 자식의 주머니에 나쁜 물건이 있는데 인권을 생각해 방치하겠어요.
요즘 학생들은 선생님 앞에서 인권조례집을 펴놓고 ‘몇 조 몇 항에 뭐가 있다’고 따집니다. 휴대폰으로 찍으려 들고요. 그러니 대다수 선생님이 포기합니다. (인권조례를) 어기고라도 해야 하는데, 모르는 척하고 넘어가고, 학생의 호주머니가 의심스러워도 눈을 감아요. 그래서 학교생활지도가 개판이라는 말이 나오고, 아이들이 학교가 불안해 못 가겠다고 합니다.”
그는 “인권조항의 수정이 불가피하고 바꾸려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 고치겠다”
학생인권조례 5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학생은 임신 출산 성적(性的) 지향 등의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문 교육감은 “맞는 말이지만 유초중등 학생이 읽는 자료에 그런 식의 표현이 필요하냐”고 반문했다.
“학생이 임신해서는 안 되죠. 동성애도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고요.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얘기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이 사회적 합의이지, 그것을 ‘너희는 그렇게 해도 차별받지 아니한다’는 ‘권리’로 가르칠 필요가 있느냐는 겁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느냐, (학생들이) 설사 그렇더라도 차별을 해선 안 된다는 선생님의 ‘교육적 지침’으로 가르칩니다.”
—학생인권조례 중에서 체벌조항이나 휴대폰 허용조항은 어떻게 할 겁니까.
“체벌은 법으로도 금지해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도 안 되게 돼 있어요. 휴대폰 사용이야말로, 논란이 많아요. 선생님이 휴대폰 사용을 규제하지만, 아이들은 책상 한가운데에 구멍을 뚫어놓고 휴대폰을 해요. 고개를 숙이고 책상 위를 응시하니 선생님도 깜빡 속아요.
교장선생님들은 휴대폰을 못 쓰게 하지만, 강제조항에 넣지는 않았어요. 어쩔 수가 없어요. 일단 등교를 하면 선생님께 휴대폰을 맡기게 하는 학교가 많아요. 그런데 분실사고가 가끔 생겨요. 그럼 선생님 보고 물어내라고 해서 물어낸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휴대폰을 안 걷으려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휴대폰 중독에 따른 심리적 질병이다. 휴대폰 게임에 중독돼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아이들이 많다. 컴퓨터 게임보다 휴대폰 중독이 더 위험하다는 말도 나온다.
“학생 시절에는 휴대폰에 집중해선 안 돼요. 심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하지만 학교 내에선 컨트롤해도, 학교 밖에서 쓰는 것까지… 휴대폰보다 독서가 더 재미있다고 알려주기 위해 독서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심리검사 결과를 개인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곤란
작년 교육부가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정서와 행동특성 검사’를 벌인 결과, 중학생이 정서적으로 어려움을 가장 많이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648만명 초중고 학생 가운데 20%인 127만명이 ‘관심’과 ‘주의’가 필요하고, 학교별로는 중학생이 가장 비중이 높았다고 한다.
“어떤 심리검사도 현장에서 행동적 돌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단순히 검사결과만으로 규제할 수 없어요. ‘자살염려군’으로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특별관리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검사결과가 예후(豫後)와 일치할 확률은 60%를 안 넘습니다. ‘이 학교 전교생이 다른 학교에 비해 비행성향이나 일탈성향이 높으니, 교장이 전체적으로 조심하자’는 지표는 되지만 그 자료를 개인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조심해야 합니다. 낙인(烙印)효과도 있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그럼, 어떻게 활용할 계획입니까.
“담임이 아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평균치로 활용하거나 학교 전체의 특성, 남녀 학생의 집단특성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만약 자살성향이 높다면, 교사가 혼자 알고 있어야지 특정 개인을 놓고 활용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그래도 교사들이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요.
“가져야죠. 하지만 자살성향, 비행성향이 주변에 알려져, 담임이 선입관을 갖고 대하는 것도 교육적인 문제가 될 수 있어요. 획일적으로 검사결과를 학교현장에서 쓰는 것은 반대입니다. 자살이나 비행은 예방활동을 통해 막아야지, 개인의 심리테스트를 두고 누가 이렇고, 저렇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정신과 의사나 교육학자 모두 반대합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내년도 무상급식 예산을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무상급식 탓에 원어민 교사가 학교현장에서 사라지고 고장 난 시설도 방치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급식 질 저하, 수저나 식판의 훼손, 많이 남는 잔반 문제는 ‘보너스’다.
“한 해 무상급식 예산으로 4000억원을 쓰거든요. 어디서 나옵니까. 국가가 따로 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선생님 봉급에서도 못 떼잖아요. 학교 화장실 안 고치고, 깨친 유리창 안 고치고 밥 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것만이 아니라 누리과정(유치원과 어린이집 공통 교육보육과정)까지 하라니까. 누리과정은 급식예산보다 더 들어가요. 무상급식이 4000억원이 들면 누리과정은 2년에 7000억원이 듭니다.”
—내년 지방선거에도 출마한다고 보면 되겠습니까.
“내년 3월에 결정하겠습니다. 선거 얘기 자꾸 하면, 휘말릴 수 있어요. 그때까지 교육감 잘하는 게 제일 중요한 선거운동 아닙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