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과 언론의 성적조작 주장은 정황뿐… 정확하게 증거 밝혀야
⊙ “이사장 비리로 영훈국제중 교육까지 폄하해선 안 돼”
⊙ ‘귀족학교’ 음해 터무니없어… 고아원 출신 매년 입학
郭相瓊
⊙ 76세.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美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통화위원, 고려대 기획실장 및 국제대학원장, 영훈국제중 교장 역임.
⊙ “이사장 비리로 영훈국제중 교육까지 폄하해선 안 돼”
⊙ ‘귀족학교’ 음해 터무니없어… 고아원 출신 매년 입학
郭相瓊
⊙ 76세.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美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금융통화위원, 고려대 기획실장 및 국제대학원장, 영훈국제중 교장 역임.
2013년 1월 13일, 필자는 모임에서 딸을 영훈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지인으로부터 “며칠 전 있었던 영훈국제중 추첨에서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 지호가 사회적배려대상자(한부모가정) 전형으로 합격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함께 얘기를 들은 사람들의 첫 반응은 재미있는 우스갯소리라는 것이었고, 나중엔 다들 ‘그럴싸하지만 설마’라고 생각했다. 추첨 현장에 있었던 학부모가 1000명이 넘는데, 뻔히 알려질 문제행위를 삼성이 할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1월 22일 인터넷 매체를 통해 보도됐고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영훈국제중은 ‘귀족학교’라는 전 국민적인 비난에 휩싸였다. 이사장은 구속됐고, 교감은 자살했으며, 전(前) 교장과 수많은 교사가 고발돼 검찰조사를 받았다. 서울시의회와 국회, 교육부 등 관련된 곳곳에서 국제중 폐지론이 들끓었다.
이재용 아들 소식을 알려줬던 지인은 “다른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 아이가) 어떻게든 (영훈국제중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들 어떻게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었다. 대체 영훈국제중은 어떤 곳이기에 ‘금수저 물고 태어난’ 아이들조차 들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영훈국제중은 어떤 곳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세워진 국제중학교는 서울의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 경기도의 청심국제중, 부산의 부산국제중 등 국내에 단 4곳뿐이다. 외국국적이나 외국체류를 입학조건으로 요구하는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와 달리 조건 없이 서류심사와 추첨을 통해 선발된다.
특히 2008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한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은 한 초등학교에서 한 명도 합격하기 힘든 ‘초일류학교’로 인식됐고, 사교육 1번지인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국제중 준비반’이 초등학생 중 최상위 레벨을 상징할 정도다.
영훈국제중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학교법인 대원학원과 영훈학원은 2006년 서울시교육청에 국제중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사립초와 특목고로 특성화돼 있는 가운데 중학교는 공립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특성화중학교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교육계에 어느 정도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진보단체와 해당 학교 인근 주민 등의 반발 및 헌법소원으로 두 학교법인은 신청을 철회했다. 그러나 두 법인은 2008년 다시 신청에 나서 2008년 10월 영훈중과 대원중은 국제중학교로 지정고시를 받았고, 즉시 2009년도 신입생 모집을 시작했다. 기존의 일반중학교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는 2011년 2월 영훈중은 교명을 영훈국제중으로 변경했다.
2008년 말 영훈국제중 초대 교장으로 취임한 사람은 곽상경 고려대 명예교수. 그는 당시 이미 71세로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상태였다.
영훈학원이 대학교수였던 그를 교장으로 초빙한 이유는 금융통화위원, 고려대 경제연구소장, 한국자원경제학회장 등 굵직한 직위를 역임한 ‘스펙’이 든든한 것은 물론, 2000년대 초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을 역임하며 외국 명문대를 국내에 유치하려고 시도하는 등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물로 평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곽 교수의 부인이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의 동생과 같은 학교(상명대) 교수여서 이전부터 이사장과 친분이 있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실세였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그의 조카뻘인 가까운 친척 관계로, 곽 위원장을 고려대로 이끈 사람도 곽 교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훈학원은 곽 교수를 초대 영훈국제중 교장에 적임자라고 판단한 듯하다.
2012년 가을 영훈국제중에 무슨 일이
2008년부터 2012년에 걸쳐 교장으로 재임한 곽 교수는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4년간 영훈국제중을 명문교로 만드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2012년 8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곽 교수는 애초 재단과 이야기했던 대로 5년 정도 교장직을 맡아 학교를 탄탄하게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여름방학이 지난 8월 말 어느 날, 매일 교장실로 들어오던 결재서류가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기던 중 8월 말로 임기가 종료된다는 이사회의 통보가 있었다.
이사회가 인사 전권을 갖고 있는 사립학교의 특성상 곽 교수는 인사에 대해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학교를 떠나게 됐다. 곽 교수는 다른 새로운 교장이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새 교장은 2013년 3월에 취임했고 그때까지 기존의 교감 김모씨가 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곽 교수는 원래의 명예교수 자리로 돌아가 학회와 세미나 등 학계 활동에 복귀했다. 그가 기반을 닦아놓은 학교에서 타의로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학교가 신뢰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깨끗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학부모들이 건네는 촌지는 물론 교사들 회식용으로 사용하라고 보낸 외식상품권도 모두 돌려보냈다. 학부모들이 성적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참교육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문의 메일을 보냈고 점수에 대한 컴플레인을 일절 받아주지 않았다. 이런 사실, 그를 불편해하는 시선들이 일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학교를 떠나게 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곽 교수는 막연히 생각했다.
곽 교수가 학교를 떠나고 2012년 10월부터 2013년 신입생 모집이 시작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몇 달 후에야 밝혀졌다. 2013년 1월, 삼성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사배자 전형 입학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으로 영훈국제중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3월 6일 진보 성향인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영훈국제중 교장과 영훈학원 김하주 이사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시교육청은 3월 8일 영훈국제중 감사에 착수했다. 5월 20일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 종합감사결과를 발표하고 김하주 이사장과 교감, 입학관리부장, 교무부장 등 1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영훈학원과 이사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행정실장 구속 등 조사에 나섰다. 언론에서는 “부유층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수백여 명의 입학성적을 조작했다”고 잇달아 보도했고, 서울시교육청은 6월 13일 국제중 신입생 전형을 전원 추첨방식으로 개선한다는 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6월 16일 영훈국제중 교감 김모씨가 학교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나 학교는 3일간 휴교에 들어갔다. 이사장은 구속수감됐고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들은 계속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교육의 질까지 매도되는 현실 안타까워”
8월 초 광화문 커피숍에서 만난 곽 교수는 “국제중은 폐지가 아니라 확대돼야 한다” “입학비리 의혹에 앞서 소문만 무성한 영훈국제중에 대해 정확한 진실을 알리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영훈국제중이 특수층을 위한 귀족학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영훈국제중의 입학정원은 160명, 서울시 초등학교 수는 588개로 영훈국제중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은 한 학교에 한 명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입학하기가 쉽지 않고 입학을 원하는 사람은 많다 보니 입시전형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학비도 비싸지 않습니까.
“공립중학교가 무상교육이다 보니 수업료를 받는 국제중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수업료는 분기별로 150만원 전후입니다. 사립초등학교나 자율형사립고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시설이나 교육의 질에 비하면 결코 비싼 게 아닙니다.”
—대학교수로 평생을 지냈는데, 어떻게 국제중 교장으로 가게 됐나요.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시절 외국 대학 분교를 국내에 유치하려고 노력을 했었던 것이 인상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국제중 인가 직후 인맥을 통해 영훈국제중 설립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기에 자문교수를 자처했는데,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 기반을 다져달라고 하더군요. 국제중 설립 취지에 동의하는 바가 많고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습니다.”
—대학에만 있다가 중학교에 처음 왔는데 교사나 학생, 학부모들과 이견은 없었는지.
“대학교는 학부모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아니지만 중학교는 다르더군요.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했지만 학부모들이 쉽게 받아들이질 못했어요. 첫 6개월 정도는 학부모들이나 저나 서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제 교육철학을 믿고 따라주시길 간곡히 부탁했고 점점 서로 이해하게 됐지요.”
곽 교수가 영훈국제중에서 내놓은 교육방침은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국제중이 사교육을 금지한다는 것이 일견 아이러니로 느껴집니다만.
“질 좋은 공교육을 하는데 사교육이 왜 필요합니까. 평생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학원에 끌려다닌 아이들보다 스스로 공부한 아이들의 결과가 월등히 좋아요. 중학교 때 자기주도학습법을 완성하면 고등학교 때 무리하게 시간을 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사교육 근절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던데요.
“교사들이 학원 다니지 말라고 여러 번 얘기한들 학생과 학부모는 잘 듣지 않습니다. 학원에 갈 시간이 없도록 학생들이 6시까지 학교에 있게 하고, 숙제를 많이 내줬어요. 학부모들에게 ‘학원이냐 학교냐 선택하라’고 엄포를 놓았죠. 굳이 학원에 가야겠으면 영훈국제중 다닐 필요가 없다고요.”
—시험도 객관식을 없애고 완전히 주관식으로 바꿨는데, 그러면 점수 산정이 힘들기도 하고 교사 주관적이거나 부정이 끼어들 소지가 있지 않습니까.
“2009년부터 학교에서 OMR카드(객관식답안지)를 완전히 폐기했습니다. 사실 주관식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학교와 교사가 학생 및 학부모로부터 완전한 신뢰를 얻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채점도 어렵고 논란의 소지도 있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주관식 서술형 평가가 학생들을 더욱 정확하고 심도 있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교사들에게 어떤 점수 관련 컴플레인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며,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교권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무감독 시험도 시행 중이더라고요.
“국제사회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이 매너와 약속, 타인에 대한 존중입니다. 이 덕목을 어릴 때부터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소용없어요. 무감독시험을 실시하며 ‘부정행위 시 무조건 퇴학’이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부정행위를 묵인하거나 방조하면 정학조치를 내리고요. 여태까지 시험 부정 사례는 딱 한 번 있었습니다.”
“교장실에서 농성한 학부모만 학기마다 수십 명”
곽 교수는 ‘성적보다 우선시한 것이 인성’이라고 했다. 영훈국제중에서는 ‘벌점제’를 운영했는데, 교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거나 나쁜 말을 했을 경우, 심하게 뛰어다녔을 경우, 수업자세가 불량할 경우 등 인성과 관련한 불량행위에 벌점을 주는 것이다. 특히 중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은 영훈국제중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곽 교수는 강조했다.
—예전엔 고등학생들이 다루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중학생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요.
“그런 얘길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아이들을 방치할 때 그런 문제가 생긴다고 봐요.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히는데 어떻게 교사가 모를 수가 있습니까. 영훈국제중은 각 반에 담임이 2명(원어민과 한국인)씩이다 보니 아이들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아이들 사이에 어떤 낌새만 보이면 교사들이 해결에 나서니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할 틈이 없습니다. 제가 재임하던 동안 가장 심각했던 일을 얘기하자면, 답안지에 욕을 쓴 학생 2명, 친구의 MP3를 훔친 학생 1명 등 총 3명이 퇴학처분을 받은 겁니다. 그 외에는 학교폭력과 관련한 징계 사례가 없습니다.”
곽 교수의 얘기를 듣는 와중 기자는 또 다른 의구심이 들었다. 교장 이하 교사들이 나이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든 다잡을 수 있었겠지만, 자녀를 각고의 노력 끝에 국제중에 보낸 학부모들을 다루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곽 교수는 “대학과 가장 다른 문화적 충격이 바로 그거였다”고 말했다.
2009년 2월 18일, 영훈중학교 교무실에서 곽상경 교장은 전 교사가 모인 앞에서 “촌지를 받으면 내가 직접 사직당국에 고발하겠다”며 “학교 밖에서 개인적으로 학부모를 만나는 것, 꽃 한 송이 이상의 선물을 받는 것 모두 완전히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촌지나 성적청탁 등은 대학교와 크게 다른 점이죠.
“촌지나 입학 추천 관련 청탁 등의 문제는 오기 전부터 예상을 했었기 때문에 취임하자마자 교무회의, 학교 홈페이지, 학부모 메일 등을 통해 깨끗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어요. 한번은 부장교사가 교사들 회식하라고 어머니들이 보내온 외식상품권은 돌려보내기 곤란하다고 해서, 내 신용카드를 회식하라고 주고 상품권은 폐기한 적도 있습니다.”
—주관식 시험이나 사교육 근절 등에 학부모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성적 이의를 제기하러 왔다가 이를 들어주지 않자 서너 시간씩 교장실에 버티고 앉아 나가지 않는 학부모만 학기마다 수십 명이었을 겁니다. 정학처분을 받고 일주일 내내 울며불며 교장실로 출근한 학부모도 있었고, 협박에 가까운 언행을 하는 학부모도 있었지요.”
“언론에 나온 ‘귀족학교’는 근거없는 이야기”
학부모 이야기가 나온 김에 ‘특권층 귀족학교’라는 여론에 대해 질문했다.
—국제중 학부모들은 대부분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상위에 속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제가 언론보도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 그겁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입학전형이 2배수 추첨도 아닌 3배수 추첨입니다. 교육자로서 똑똑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만 뽑고 싶어도 뽑을 수가 없는데, 돈이나 권력 있는 집 아이들만 뽑는다는 건 불가능해요.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요.”
—빈곤층은 합격해도 다니기 어렵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평구에 알로이시오 초등학교라는 곳이 있어요. 은평구의 고아원인 소년의집에서 생활하는 아동들의 교육을 위해 1975년 개교한 초등학교입니다. 이 학교가 매년 영훈국제중에 3~4명은 원서를 내고, 매년 입학생을 배출하고 있어요. 영훈국제중 1회 때는 3명이 들어와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그중 한 명은 제가 지금도 학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도 하고 특별활동비가 비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수학여행 후보지에 대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적이 있어요. 단순한 설문조사였고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것도 아닌데 언론의 설레발이 심했다고 봅니다.”
—그래도 재학생 중 부유층 자녀들이 적지 않은데, 교장은 몰라도 교사들이 암암리에 부정한 행동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영훈국제중 정교사가 19명인데, 14명이 20~30대예요. 5명이 40대 초반이고요. 젊고 정의감에 가득 찬 교사들입니다. 또 교장이 참교육을 향해 강력하게 나아가고 있는데 몰래 부정을 행할 간 큰 교사는 영훈엔 없다고 봐요. 70대 교장이 촌지 받으면 바로 고발한다고 여러 번 엄포를 놓는데 젊은 교사들이 촌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공부보다 인성을 중시한다고 했는데, 고입 입시 결과는 어떤가요.
“1회 졸업생 160명 중 107명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하나고에 15명, 대원외고에 26명, 대부분이 민사고와 외국어고, 과학고 등 원하는 곳에 가 처음 교육방식에 의구심을 갖던 부모들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성적조작이란 게 불가능한데…
영훈국제중 내부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본격적으로 입시부정 이야기로 들어가기로 했다. 곽 교수는 2012년 8월에 학교를 그만뒀으니 현재 불거진 2013년도 신입생 입학전형부정사건(2012년 10~12월)과는 무관하다. 일부 언론에는 곽 교수가 영훈국제중 전 교장으로서 영훈 학부모들로부터 고발당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곽 교수 고발건은 최근 있었던 영훈국제중 교사(校舍) 증축 비용과 관련한 배임 혐의다. 교사 증축 비용은 이사회가 부담해야 하는데 학교가 이를 부담했기 때문에 학교장에게 배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곽 교수는 입시부정과 관련해서는 참고인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것이 전부다. 그는 “입시부정이 절대로 없었다는 증거를 내가 댈 수는 없지만, 이미 알려진 ‘성적조작’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당 입시사건 직전 학교를 그만뒀습니다만.
“9월부터 신입생 모집이 시작되기에 한창 준비에 나서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만두게 됐어요. 이번 연도에 어떤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눈엣가시가 될 수 있는 저를 그만두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원인은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입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 생각일 뿐입니다. 사실 영훈초 교장에게 들은 바로는 그 학생은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봐도 매우 심성이 바르고 태도와 인성이 좋은 학생이라고 합니다.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하더군요. 국제중에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추첨이니만큼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여론의 쟁점은 ‘특권층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했다’는 것과 ‘입학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거나 금품을 받고 입학시켜 줬다’는 것입니다.
“그 성적조작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국제중 신입생 모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드리죠. 각 초등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와 추천서를 작성해 학생과 학부모가 볼 수 없게 밀봉하고, 해당 학생은 자기계발계획서를 작성해 이를 함께 국제중학교에 제출합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석차와 점수가 기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이 원서를 받으면 학교는 일단 훑어본 후 지나치게 무성의하거나 분량 또는 양식이 기준에 못 미치는 원서를 분류합니다. 국제중에 어울리는 인재가 아닌데 학생이나 학부모의 요구로 인해 교사가 마지못해 써준 추천서는 누가 봐도 티가 납니다. 이런 원서들은 모두 통과되지 못합니다. 통과한 서류를 심사해 총 입학인원의 3배수를 뽑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공개추첨을 통해 최종합격자를 선발합니다.”
검찰이 성적조작 혐의 제대로 조사 안 했다
—언론에 보도된 바를 보면, 성적이 높은 학생이 주관적인 점수(추천서 심사 등)를 잘 못 받아 불합격하고, 성적이 낮은 학생이 주관적 점수에서 만점을 받아 합격했다는 겁니다.
“영훈국제중은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뽑는 학교가 아닙니다. 인성과 국제적인 인재로서의 소양을 중요시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도 반문하고 싶은 것은, 점수와 석차가 없는 초등학생에게 객관적인 ‘성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는 겁니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모두 알지 않습니까. 국제중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거의 전부가 ‘전 과목 매우 잘함(◎)’입니다.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성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요.”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불합격자들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습니다.
“‘성적이 좋았는데 떨어졌다’는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봅니다. 제가 교장으로 재직할 때 학부모들에게 그런 원망을 한두 번 들었겠습니까. 답안지를 흔들며 ‘이렇게 잘 썼는데 왜 점수가 이렇게밖에 안 나오느냐’고 소리치던 학부모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 말은 곧 점수를 주는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교사가 있는 곳에 보내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검찰은 ‘성적조작의 정황이 확인됐다’고 했는데요.
“성적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나온 교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떤 식으로 조사를 받았느냐고요. 지난 9월에 그들이 채점했던 지원자의 추천서 몇 장을 지금 다시 보여주고 점수를 매기라고 했답니다. 수개월 만에 본 추천서였고, 상당수의 추천서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추천서에 이전과 똑같은 점수를 매길 수는 없었겠지요. 그 결과를 본 검찰이 ‘일부 추천서는 외압을 받고 주관적인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며 ‘성적이 조작되었다는 정황증거’라고 했다는 겁니다. 일선 교사들이 알면 기가 찰 일 아니겠습니까.”
화제는 영훈국제중 전 교감 김모씨의 자살로 이어졌다. 김 전 교감은 6월 16일 ‘학교를 잘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학교에서 목을 매 숨졌다.
—학교를 잘 부탁한다며 숨진 것은 어떤 의미라고 보는지. 학교의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일개 사학의 교감이 무슨 힘이 있어서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신입생 모집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개인적인 축재를 했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다가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극단적인 선택은 안타깝습니다.”
“이사회 바로 서지 않으면 같은 사태 재발”
곽 교수는 사학재단의 이사회가 바로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0년대 초 고려대에서 기획실장으로 재임하며 ‘교육에 도움을 주지 않는 재단은 필요 없다’며 고려대 재단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또 영훈 재직 시에도 이사장 의붓아들의 부정 편입과 이사장 일가의 축재 등 이사회의 부정을 눈치채, 증거를 수집해 고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학교 측에 잘못은 없다는 주장입니까.
“솔직히 학교나 이사회 관계자 누군가 금품을 받고 불법적으로 편입을 시킨 사례가 아예 없다고 단정은 못 하겠습니다. 고위 관계자 중 재물에 눈이 멀었던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또 어쩔 수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학교가 조직적으로 성적을 조작하고, 부유층이나 권력층을 골라 선발하고, 빈곤층은 배제시켰다는 이런 오해는 정말 억울합니다.”
—영훈국제중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다른 사학도 마찬가지지만, 이사회가 학교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시스템은 교육의 질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재를 하고 싶으면 다른 사업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에 도움을 주지 않는 재단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번 사태도 재단 일부 인사들의 부정과 그들이 조장한 사태임이 명확한데, 애꿎은 교육자들만 시달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사장을 비롯한 일부의 부정으로 그동안 전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들이 공들여 쌓아온 영훈국제중의 명성까지 매도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사실은 1월 22일 인터넷 매체를 통해 보도됐고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영훈국제중은 ‘귀족학교’라는 전 국민적인 비난에 휩싸였다. 이사장은 구속됐고, 교감은 자살했으며, 전(前) 교장과 수많은 교사가 고발돼 검찰조사를 받았다. 서울시의회와 국회, 교육부 등 관련된 곳곳에서 국제중 폐지론이 들끓었다.
이재용 아들 소식을 알려줬던 지인은 “다른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그 아이가) 어떻게든 (영훈국제중에)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들 어떻게 들어갔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었다. 대체 영훈국제중은 어떤 곳이기에 ‘금수저 물고 태어난’ 아이들조차 들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영훈국제중은 어떤 곳
‘글로벌 인재 양성’을 목표로 세워진 국제중학교는 서울의 대원국제중과 영훈국제중, 경기도의 청심국제중, 부산의 부산국제중 등 국내에 단 4곳뿐이다. 외국국적이나 외국체류를 입학조건으로 요구하는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와 달리 조건 없이 서류심사와 추첨을 통해 선발된다.
특히 2008년부터 신입생을 모집한 영훈국제중과 대원국제중은 한 초등학교에서 한 명도 합격하기 힘든 ‘초일류학교’로 인식됐고, 사교육 1번지인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는 ‘국제중 준비반’이 초등학생 중 최상위 레벨을 상징할 정도다.
영훈국제중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학교법인 대원학원과 영훈학원은 2006년 서울시교육청에 국제중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사립초와 특목고로 특성화돼 있는 가운데 중학교는 공립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특성화중학교가 필요하다는 인식은 교육계에 어느 정도 퍼져 있는 상황이었다.
이때 진보단체와 해당 학교 인근 주민 등의 반발 및 헌법소원으로 두 학교법인은 신청을 철회했다. 그러나 두 법인은 2008년 다시 신청에 나서 2008년 10월 영훈중과 대원중은 국제중학교로 지정고시를 받았고, 즉시 2009년도 신입생 모집을 시작했다. 기존의 일반중학교 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는 2011년 2월 영훈중은 교명을 영훈국제중으로 변경했다.
2008년 말 영훈국제중 초대 교장으로 취임한 사람은 곽상경 고려대 명예교수. 그는 당시 이미 71세로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직을 정년퇴임한 상태였다.
영훈학원이 대학교수였던 그를 교장으로 초빙한 이유는 금융통화위원, 고려대 경제연구소장, 한국자원경제학회장 등 굵직한 직위를 역임한 ‘스펙’이 든든한 것은 물론, 2000년대 초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을 역임하며 외국 명문대를 국내에 유치하려고 시도하는 등 글로벌 마인드를 갖춘 인물로 평가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 곽 교수의 부인이 김하주 영훈학원 이사장의 동생과 같은 학교(상명대) 교수여서 이전부터 이사장과 친분이 있기도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실세였던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그의 조카뻘인 가까운 친척 관계로, 곽 위원장을 고려대로 이끈 사람도 곽 교수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훈학원은 곽 교수를 초대 영훈국제중 교장에 적임자라고 판단한 듯하다.
2012년 가을 영훈국제중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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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미아동에 위치한 영훈국제중학교. |
이사회가 인사 전권을 갖고 있는 사립학교의 특성상 곽 교수는 인사에 대해 별다른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고, 자연스레 학교를 떠나게 됐다. 곽 교수는 다른 새로운 교장이 올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새 교장은 2013년 3월에 취임했고 그때까지 기존의 교감 김모씨가 교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곽 교수는 원래의 명예교수 자리로 돌아가 학회와 세미나 등 학계 활동에 복귀했다. 그가 기반을 닦아놓은 학교에서 타의로 떠나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학교가 신뢰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깨끗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고, 학부모들이 건네는 촌지는 물론 교사들 회식용으로 사용하라고 보낸 외식상품권도 모두 돌려보냈다. 학부모들이 성적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면 참교육의 의미를 설명하는 장문의 메일을 보냈고 점수에 대한 컴플레인을 일절 받아주지 않았다. 이런 사실, 그를 불편해하는 시선들이 일부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학교를 떠나게 된 원인이 아니었을까 곽 교수는 막연히 생각했다.
곽 교수가 학교를 떠나고 2012년 10월부터 2013년 신입생 모집이 시작됐다.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몇 달 후에야 밝혀졌다. 2013년 1월, 삼성 이재용 부회장 아들의 사배자 전형 입학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사건으로 영훈국제중은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3월 6일 진보 성향인 서울교육단체협의회는 영훈국제중 교장과 영훈학원 김하주 이사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서울시교육청은 3월 8일 영훈국제중 감사에 착수했다. 5월 20일 서울시교육청은 국제중 종합감사결과를 발표하고 김하주 이사장과 교감, 입학관리부장, 교무부장 등 1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영훈학원과 이사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행정실장 구속 등 조사에 나섰다. 언론에서는 “부유층 학생들을 선발하기 위해 수백여 명의 입학성적을 조작했다”고 잇달아 보도했고, 서울시교육청은 6월 13일 국제중 신입생 전형을 전원 추첨방식으로 개선한다는 안을 발표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6월 16일 영훈국제중 교감 김모씨가 학교에서 목을 매 숨진 채로 발견되는 사건이 일어나 학교는 3일간 휴교에 들어갔다. 이사장은 구속수감됐고 학부모와 학교 관계자들은 계속 검찰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2013. 1. 22 삼성 이재용 부회장 아들 사배자 전형 합격 언론보도 3. 6 서울교육단체협의회, 영훈학원 이사장 검찰고발 3. 8 서울시교육청, 영훈국제중 감사 착수 5. 20 서울시교육청 영훈학원 검찰고발, 합동수사팀 편성 5. 28 영훈국제중 등 16곳 압수수색 및 계좌추적 5. 31 영훈국제중 행정실장 구속 6. 13 서울시교육청, 2015학년도 국제중 신입생 일반전형 전원 추첨방식 개선안 발표 6. 16 영훈국제중 김모 교감 학교에서 자살 7. 2 영훈학원 김하주 이사장 구속 7. 16 영훈 관계자 7명 불구속 기소, 9명 약식기소 교육부, 영훈국제중 이사 전원 승인 취소 |
“교육의 질까지 매도되는 현실 안타까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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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훈국제중 학부모들이 7월 1일 서울 소공동 서울시의회 별관 앞에서 검찰의 입시비리 사건에 대한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성과 과시를 위한 사실왜곡 및 과대포장’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
—영훈국제중이 특수층을 위한 귀족학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영훈국제중의 입학정원은 160명, 서울시 초등학교 수는 588개로 영훈국제중에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은 한 학교에 한 명도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입학하기가 쉽지 않고 입학을 원하는 사람은 많다 보니 입시전형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그렇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학비도 비싸지 않습니까.
“공립중학교가 무상교육이다 보니 수업료를 받는 국제중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수업료는 분기별로 150만원 전후입니다. 사립초등학교나 자율형사립고와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시설이나 교육의 질에 비하면 결코 비싼 게 아닙니다.”
—대학교수로 평생을 지냈는데, 어떻게 국제중 교장으로 가게 됐나요.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시절 외국 대학 분교를 국내에 유치하려고 노력을 했었던 것이 인상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국제중 인가 직후 인맥을 통해 영훈국제중 설립에 도움을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기에 자문교수를 자처했는데, 책임 있는 자리를 맡아 기반을 다져달라고 하더군요. 국제중 설립 취지에 동의하는 바가 많고 한번 해볼 만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락했습니다.”
—대학에만 있다가 중학교에 처음 왔는데 교사나 학생, 학부모들과 이견은 없었는지.
“대학교는 학부모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 아니지만 중학교는 다르더군요. 새로운 교육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했지만 학부모들이 쉽게 받아들이질 못했어요. 첫 6개월 정도는 학부모들이나 저나 서로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제 교육철학을 믿고 따라주시길 간곡히 부탁했고 점점 서로 이해하게 됐지요.”
곽 교수가 영훈국제중에서 내놓은 교육방침은 ‘사교육 없이 스스로 공부하는 학생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국제중이 사교육을 금지한다는 것이 일견 아이러니로 느껴집니다만.
“질 좋은 공교육을 하는데 사교육이 왜 필요합니까. 평생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느끼는 거지만 학원에 끌려다닌 아이들보다 스스로 공부한 아이들의 결과가 월등히 좋아요. 중학교 때 자기주도학습법을 완성하면 고등학교 때 무리하게 시간을 들여 공부하지 않아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습니다.”
—사교육 근절을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던데요.
“교사들이 학원 다니지 말라고 여러 번 얘기한들 학생과 학부모는 잘 듣지 않습니다. 학원에 갈 시간이 없도록 학생들이 6시까지 학교에 있게 하고, 숙제를 많이 내줬어요. 학부모들에게 ‘학원이냐 학교냐 선택하라’고 엄포를 놓았죠. 굳이 학원에 가야겠으면 영훈국제중 다닐 필요가 없다고요.”
—시험도 객관식을 없애고 완전히 주관식으로 바꿨는데, 그러면 점수 산정이 힘들기도 하고 교사 주관적이거나 부정이 끼어들 소지가 있지 않습니까.
“2009년부터 학교에서 OMR카드(객관식답안지)를 완전히 폐기했습니다. 사실 주관식으로 평가한다는 것은 학교와 교사가 학생 및 학부모로부터 완전한 신뢰를 얻지 않는 이상 불가능합니다. 채점도 어렵고 논란의 소지도 있는 게 사실이죠. 하지만 주관식 서술형 평가가 학생들을 더욱 정확하고 심도 있게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교사들에게 어떤 점수 관련 컴플레인도 받아주지 않을 것이며, 학생이나 학부모로부터 교권을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어요.”
—무감독 시험도 시행 중이더라고요.
“국제사회에서 가장 우선시되는 덕목이 매너와 약속, 타인에 대한 존중입니다. 이 덕목을 어릴 때부터 배우지 않으면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소용없어요. 무감독시험을 실시하며 ‘부정행위 시 무조건 퇴학’이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부정행위를 묵인하거나 방조하면 정학조치를 내리고요. 여태까지 시험 부정 사례는 딱 한 번 있었습니다.”
| 영훈학원은 영훈학원은 서울시 초대 교육감(1956~1960)을 지낸 김영훈씨가 1965년 설립한 사학재단이다. 1965년 영훈국민학교, 1969년 영훈여중, 1973년 영훈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영훈여중은 1970년부터 남녀공학 영훈중학교가 됐다. 김영훈 초대 이사장은 1986년 작고했으며 그 아들인 김하주 이사장이 1981년부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에서 비교적 외진 곳(미아동)에 위치한 영훈이 현재와 같은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다. 1984년 영훈초 교장으로 취임한 박성방 교장은 김하주 이사장의 전 부인이다. 사교육 없는 학교, 시험 없는 학교, 체벌 없는 학교 등을 표방하며 ‘열린교육’을 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교장은 2002년까지 18년 동안 영훈초 제8대 교장으로 재직하며 열린교육뿐만 아니라 영어이머전 교육도 도입해 영훈초를 명문교로 발돋움시켰다. 특히 2007년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유일한 친손자이며 이재용 부회장의 장남인 지호군이 입학해 유명세를 탔다. |
“교장실에서 농성한 학부모만 학기마다 수십 명”
곽 교수는 ‘성적보다 우선시한 것이 인성’이라고 했다. 영훈국제중에서는 ‘벌점제’를 운영했는데, 교사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거나 나쁜 말을 했을 경우, 심하게 뛰어다녔을 경우, 수업자세가 불량할 경우 등 인성과 관련한 불량행위에 벌점을 주는 것이다. 특히 중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학교폭력은 영훈국제중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고 곽 교수는 강조했다.
—예전엔 고등학생들이 다루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중학생들이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요.
“그런 얘길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아이들을 방치할 때 그런 문제가 생긴다고 봐요. 친구를 따돌리고 괴롭히는데 어떻게 교사가 모를 수가 있습니까. 영훈국제중은 각 반에 담임이 2명(원어민과 한국인)씩이다 보니 아이들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요. 아이들 사이에 어떤 낌새만 보이면 교사들이 해결에 나서니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할 틈이 없습니다. 제가 재임하던 동안 가장 심각했던 일을 얘기하자면, 답안지에 욕을 쓴 학생 2명, 친구의 MP3를 훔친 학생 1명 등 총 3명이 퇴학처분을 받은 겁니다. 그 외에는 학교폭력과 관련한 징계 사례가 없습니다.”
곽 교수의 얘기를 듣는 와중 기자는 또 다른 의구심이 들었다. 교장 이하 교사들이 나이 어린 학생들은 어떻게든 다잡을 수 있었겠지만, 자녀를 각고의 노력 끝에 국제중에 보낸 학부모들을 다루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곽 교수는 “대학과 가장 다른 문화적 충격이 바로 그거였다”고 말했다.
2009년 2월 18일, 영훈중학교 교무실에서 곽상경 교장은 전 교사가 모인 앞에서 “촌지를 받으면 내가 직접 사직당국에 고발하겠다”며 “학교 밖에서 개인적으로 학부모를 만나는 것, 꽃 한 송이 이상의 선물을 받는 것 모두 완전히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촌지나 성적청탁 등은 대학교와 크게 다른 점이죠.
“촌지나 입학 추천 관련 청탁 등의 문제는 오기 전부터 예상을 했었기 때문에 취임하자마자 교무회의, 학교 홈페이지, 학부모 메일 등을 통해 깨끗한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했어요. 한번은 부장교사가 교사들 회식하라고 어머니들이 보내온 외식상품권은 돌려보내기 곤란하다고 해서, 내 신용카드를 회식하라고 주고 상품권은 폐기한 적도 있습니다.”
—주관식 시험이나 사교육 근절 등에 학부모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성적 이의를 제기하러 왔다가 이를 들어주지 않자 서너 시간씩 교장실에 버티고 앉아 나가지 않는 학부모만 학기마다 수십 명이었을 겁니다. 정학처분을 받고 일주일 내내 울며불며 교장실로 출근한 학부모도 있었고, 협박에 가까운 언행을 하는 학부모도 있었지요.”
“언론에 나온 ‘귀족학교’는 근거없는 이야기”
학부모 이야기가 나온 김에 ‘특권층 귀족학교’라는 여론에 대해 질문했다.
—국제중 학부모들은 대부분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상위에 속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제가 언론보도에서 가장 안타까운 점이 그겁니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입학전형이 2배수 추첨도 아닌 3배수 추첨입니다. 교육자로서 똑똑하고 예의 바른 아이들만 뽑고 싶어도 뽑을 수가 없는데, 돈이나 권력 있는 집 아이들만 뽑는다는 건 불가능해요. 그래야 할 이유도 없고요.”
—빈곤층은 합격해도 다니기 어렵다고 소문이 나 있습니다.
“어디서 그런 얘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은평구에 알로이시오 초등학교라는 곳이 있어요. 은평구의 고아원인 소년의집에서 생활하는 아동들의 교육을 위해 1975년 개교한 초등학교입니다. 이 학교가 매년 영훈국제중에 3~4명은 원서를 내고, 매년 입학생을 배출하고 있어요. 영훈국제중 1회 때는 3명이 들어와서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고 그중 한 명은 제가 지금도 학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도 하고 특별활동비가 비싸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수학여행 후보지에 대해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이 언론에 유출된 적이 있어요. 단순한 설문조사였고 외국으로 수학여행을 가기로 결정한 것도 아닌데 언론의 설레발이 심했다고 봅니다.”
—그래도 재학생 중 부유층 자녀들이 적지 않은데, 교장은 몰라도 교사들이 암암리에 부정한 행동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영훈국제중 정교사가 19명인데, 14명이 20~30대예요. 5명이 40대 초반이고요. 젊고 정의감에 가득 찬 교사들입니다. 또 교장이 참교육을 향해 강력하게 나아가고 있는데 몰래 부정을 행할 간 큰 교사는 영훈엔 없다고 봐요. 70대 교장이 촌지 받으면 바로 고발한다고 여러 번 엄포를 놓는데 젊은 교사들이 촌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공부보다 인성을 중시한다고 했는데, 고입 입시 결과는 어떤가요.
“1회 졸업생 160명 중 107명이 원하는 고등학교에 갔습니다. 하나고에 15명, 대원외고에 26명, 대부분이 민사고와 외국어고, 과학고 등 원하는 곳에 가 처음 교육방식에 의구심을 갖던 부모들이 전폭적인 신뢰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 국제중 폐지론 서울시교육청은 폐지반대 영훈국제중 사태의 여파가 지속되면서 지난 7월 12일, 서울시의회에서 최홍이 교육위원장을 비롯한 서울시의원 11명이 공동발의한 ‘서울시의회 대원·영훈국제중에 대한 특성화중 승인 취소 촉구결의안’이 가결됐다. 결의안은 국제중의 성적조작과 학생 강제 전출, 편입생 뒷돈 입학 등 불법행위에 대한 비판과 국제중 승인 취소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울시의회 측은 “결의안 자체는 법적 효력이 없지만 국제중 승인 취소에 대한 여론이 높은 만큼 국제중에 우호적인 문용린 교육감과 교육청을 압박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도 나섰다. 7월 23일 박근혜 대통령은 “설립 목적에 벗어난 국제중은 언제든 그 지위에서 배제시킬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 역시 국제중 취소를 위한 법령 개정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76조에는 국제중학교를 비롯한 특성화중학교에 대해 시·도교육감이 5년마다 운영 성과를 평가해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따라서 당장 지정 취소는 불가능하며, 2015년에야 가능한 상황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측은 최근 “국제중의 지정목적 달성이 현저히 불가능한 경우 교육감이 지정기간 내에도 지정을 취소할 수 있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부 측은 9월 안에 시행령 개정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취소 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부정적이다. 문용린 교육감은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엄정히 처벌해야 하지만 학교를 지정 취소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며 지정 취소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국제중 폐지 여부는 근시일 내에 결론나지 않을 전망이다. |
성적조작이란 게 불가능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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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6일 최종원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가 영훈국제중학교의 입학 성적 비리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곽 교수는 입시부정과 관련해서는 참고인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것이 전부다. 그는 “입시부정이 절대로 없었다는 증거를 내가 댈 수는 없지만, 이미 알려진 ‘성적조작’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해당 입시사건 직전 학교를 그만뒀습니다만.
“9월부터 신입생 모집이 시작되기에 한창 준비에 나서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만두게 됐어요. 이번 연도에 어떤 부정이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눈엣가시가 될 수 있는 저를 그만두게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원인은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입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제 생각일 뿐입니다. 사실 영훈초 교장에게 들은 바로는 그 학생은 배경을 모르는 상태에서 봐도 매우 심성이 바르고 태도와 인성이 좋은 학생이라고 합니다.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하더군요. 국제중에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추첨이니만큼 떨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죠.”
—여론의 쟁점은 ‘특권층 학생을 입학시키기 위해 성적을 조작했다’는 것과 ‘입학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거나 금품을 받고 입학시켜 줬다’는 것입니다.
“그 성적조작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국제중 신입생 모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려드리죠. 각 초등학교에서는 생활기록부와 추천서를 작성해 학생과 학부모가 볼 수 없게 밀봉하고, 해당 학생은 자기계발계획서를 작성해 이를 함께 국제중학교에 제출합니다. 초등학교 생활기록부에 석차와 점수가 기재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아실 겁니다. 이 원서를 받으면 학교는 일단 훑어본 후 지나치게 무성의하거나 분량 또는 양식이 기준에 못 미치는 원서를 분류합니다. 국제중에 어울리는 인재가 아닌데 학생이나 학부모의 요구로 인해 교사가 마지못해 써준 추천서는 누가 봐도 티가 납니다. 이런 원서들은 모두 통과되지 못합니다. 통과한 서류를 심사해 총 입학인원의 3배수를 뽑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공개추첨을 통해 최종합격자를 선발합니다.”
검찰이 성적조작 혐의 제대로 조사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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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훈학원 김하주 이사장은 입학 성적 비리 혐의로 검찰에 구속수감됐다. |
“영훈국제중은 공부만 잘하는 학생을 뽑는 학교가 아닙니다. 인성과 국제적인 인재로서의 소양을 중요시하는 곳입니다. 그리고 저도 반문하고 싶은 것은, 점수와 석차가 없는 초등학생에게 객관적인 ‘성적’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는 겁니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모두 알지 않습니까. 국제중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거의 전부가 ‘전 과목 매우 잘함(◎)’입니다.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성적으로 우열을 가릴 수가 없어요.”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불합격자들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습니다.
“‘성적이 좋았는데 떨어졌다’는 주장은 지극히 주관적이라고 봅니다. 제가 교장으로 재직할 때 학부모들에게 그런 원망을 한두 번 들었겠습니까. 답안지를 흔들며 ‘이렇게 잘 썼는데 왜 점수가 이렇게밖에 안 나오느냐’고 소리치던 학부모도 많이 만났습니다. 그 말은 곧 점수를 주는 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교사가 있는 곳에 보내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검찰은 ‘성적조작의 정황이 확인됐다’고 했는데요.
“성적조작 혐의로 조사를 받고 나온 교사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떤 식으로 조사를 받았느냐고요. 지난 9월에 그들이 채점했던 지원자의 추천서 몇 장을 지금 다시 보여주고 점수를 매기라고 했답니다. 수개월 만에 본 추천서였고, 상당수의 추천서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추천서에 이전과 똑같은 점수를 매길 수는 없었겠지요. 그 결과를 본 검찰이 ‘일부 추천서는 외압을 받고 주관적인 점수를 준 것으로 보인다’며 ‘성적이 조작되었다는 정황증거’라고 했다는 겁니다. 일선 교사들이 알면 기가 찰 일 아니겠습니까.”
화제는 영훈국제중 전 교감 김모씨의 자살로 이어졌다. 김 전 교감은 6월 16일 ‘학교를 잘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학교에서 목을 매 숨졌다.
—학교를 잘 부탁한다며 숨진 것은 어떤 의미라고 보는지. 학교의 명예회복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일개 사학의 교감이 무슨 힘이 있어서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신입생 모집에서 부정을 저지르고 개인적인 축재를 했겠습니까. 시키는 대로 하다가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요. 극단적인 선택은 안타깝습니다.”
“이사회 바로 서지 않으면 같은 사태 재발”
곽 교수는 사학재단의 이사회가 바로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0년대 초 고려대에서 기획실장으로 재임하며 ‘교육에 도움을 주지 않는 재단은 필요 없다’며 고려대 재단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또 영훈 재직 시에도 이사장 의붓아들의 부정 편입과 이사장 일가의 축재 등 이사회의 부정을 눈치채, 증거를 수집해 고발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학교 측에 잘못은 없다는 주장입니까.
“솔직히 학교나 이사회 관계자 누군가 금품을 받고 불법적으로 편입을 시킨 사례가 아예 없다고 단정은 못 하겠습니다. 고위 관계자 중 재물에 눈이 멀었던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또 어쩔 수 없이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학교가 조직적으로 성적을 조작하고, 부유층이나 권력층을 골라 선발하고, 빈곤층은 배제시켰다는 이런 오해는 정말 억울합니다.”
—영훈국제중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다른 사학도 마찬가지지만, 이사회가 학교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시스템은 교육의 질과 독립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축재를 하고 싶으면 다른 사업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에 도움을 주지 않는 재단은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이번 사태도 재단 일부 인사들의 부정과 그들이 조장한 사태임이 명확한데, 애꿎은 교육자들만 시달림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사장을 비롯한 일부의 부정으로 그동안 전 교직원과 학생, 학부모들이 공들여 쌓아온 영훈국제중의 명성까지 매도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