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중견배우 인터뷰

탤런트 김혜옥

“다들 저보고 귀엽다네요”

글 : 서철인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서경리  월간조선 기자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내 딸 서영이>의 철없는 사모님과 <오자룡이 간다>의 소탈한 아줌마 役 동시 소화
⊙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1980년 MBC 특채로 데뷔, 20년 동안 <전원일기>에서 빨래하는 ‘서울댁’으로
    출연
⊙ 남편에 이어 남동생까지 잃고 충격, 불교에 귀의한 후 마음의 평화 찾아
⊙ MBC 새 수목드라마에서 소시민의 대변인이면서 암흑가와 손잡은 이중인격의 국회의원 연기

김혜옥
⊙ 55세.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
⊙ 드라마 <전원일기> <발리에서 생긴 일> <미안하다 사랑한다> <솔약국집 아들들> <여인의 향기>
    <내 딸 서영이>,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 <몽땅 내 사랑>,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동갑나기 괴외하기> <여자 정혜> <육혈포 강도단> <써니> 등 다수 출연.
⊙ 상훈: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문 신인연기상(1982년), KBS 연기대상 여자조연상(2007년),
    불자대상(2011년), SBS 연기대상 주말연속극부문 여자특별연기상(2011년).
  “저 괜찮아요? 나름 신경 써서 입고 나왔는데…. 평상시에는 이러고 안 다녀요. 오늘 사진촬영 한다니까 차려입은 거지.”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김혜옥씨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해맑게 웃었다. 초면인데도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람처럼 친근하게 다가왔다. 50대 중반의 여인이 ‘귀엽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김혜옥씨는 올해 상반기 ‘국민 드라마’로 인기를 끈 KBS 주말극 <내 딸 서영이>와 MBC 일일극 <오자룡이 간다>를 통해 다시 한번 존재감을 각인시킨 배우다. 그녀는 비슷한 시기에 방영된 이 두 드라마에서 상반된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내 딸 서영이>에서는 우아하지만 유치하고 철없는 회장 부인 차지선 역으로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고, <오자룡이 간다>에서는 넉넉지 않지만 밝고 따뜻한 품성의 주부 고성실 역을 열연해 막장 분위기를 상쇄시켰다.
 
  두 작품을 연달아 끝내고 새 드라마 촬영에 돌입하기 직전 김씨를 만났다. 인터뷰 장소는 서울 상도동 주택가에 위치한 불교 선원이었다. 독실한 불자인 김씨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찾는 곳인데, 이곳에 오면 말씀 공부도 하고 심신이 안정돼 좋다”고 말했다. 보살들이 정성껏 차려 낸 가정식 백반으로 점심 공양을 하며 그녀가 걸어온 생의 드라마 속으로 빠져들었다.
 
 
  만화를 그리던 소녀
 
  만년 소녀 같은 이미지의 김혜옥씨. 그녀의 성장 드라마는 평탄치 않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처럼 어둡고 처절한 부분이 있다.
 
  58년 개띠인 김씨는 이북 출신의 부모 사이에서 3남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유년기는 비교적 윤택하게 보냈다. 이북 사람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바지런함으로 재산을 일군 부모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양친의 보호망 아래 누린 안온한 삶은 딱 초등학교 때까지였다.
 
  “부모님이 중학교 때 이혼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하던 사업마저 잘 되지 않아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죠. 이때부터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는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습니다. 제가 상명여중과 홍대부속여고를 졸업했는데, 동창생 중 저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령처럼 지냈어요. 내 안으로 침잠하는 시기였죠.”
 
  공부에 흥미가 없던 김씨의 유일한 취미는 만화 삼매경과 그림 그리기였다. 가정 형편상 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던 그녀는 고교 졸업 후 출판사 일러스트레이터로 취직했다. 이곳에서 2년 동안 교과서에 들어갈 컷을 그렸다. 그녀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일러스트 솜씨가 서툰데도 취직이 된 것은 출판사가 워낙 영세해 제대로 된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할 수 없었고, 또 사장님이 워낙 좋은 분이셔서 그랬던 것 같다”고 말했다.
 
  출판사 업무에 어느 정도 숙달될 즈음 불현듯 이 사회에서 내 몫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는 과감하게 사표를 썼고, 이렇다 할 준비도 없이 홍익대 미대에 원서를 냈다. 결과는 당연히 낙방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그때도 앞뒤 상황을 계산할 줄 몰랐어요. 내 실력이 홍대 미대에 갈 수 있는 수준인지 파악하지도 않고 그냥 잘 아는 학교라 덥석 지원한 거죠. 실기시험을 치를 때서야 내가 얼마나 무모한 도전을 했는지 깨달았어요. 다른 지원자들은 석고데생을 하고 있는데, 저만 만화를 그리고 있더라고요.”
 
  보기 좋게 미역국을 먹고 2차로 지원한 곳이 서울예전(현 서울예대) 미술과였다. 실기고사 겸 면접시험을 치르던 날 그녀의 운명은 바뀌었다.
 
 
  대학 재학 중 연극 천재와 결혼
 
   “미술과 면접을 보던 날 교수님이 느닷없이 저한테 그래요. ‘자네는 미술과보다는 연극과에 가는 게 좋겠어. 그림에는 소질이 없어’라고요. 생각지도 않은 권유에 놀랐지만 교수님이 시키는 대로 연극과로 갔어요.”
 
  미술과 교수가 그녀를 연극과로 추천한 까닭은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다만 순진하고 어리버리한 여학생의 얼굴에서 묘하게 그늘진 구석을 읽어낸 것이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영문도 모른 채 입학한 연극과에서 김씨는 운명의 상대를 만났다. ‘연극’에 문외한이었던 그녀를 배우로 조련시켜 준 남편이었다. 그녀는 “남편 덕분에 생경한 분위기의 연극과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4년제 일반학과 재학 중 <에쿠우스>라는 작품으로 대학연극제에서 대상을 받은 실력파였어요. 대학 졸업 후 연극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 서울예전에 입학한 상황이라 나이도 많았고, 모든 면에서 리더 역할을 했죠. 어린 제가 보기에 그 사람은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어요. 선구자였고, 천재적 예술가였죠. 저는 지금껏 그 사람보다 뛰어난 연극인을 본 적이 없어요.”
 
  남편은 제2의 동랑레퍼토리극단을 만들겠다며 극단을 창립했다. 재학생 졸업생 할 것 없이 실력이 출중한 연극인들이 모여들었다. 이 중 정말 실력 있는 사람들만 선발됐다. 그런데 이 극단에 ‘생짜’인 김씨를 끼워 넣었다. 단원들끼리 첫 리딩이 있던 날 수줍음 많고 끼도 없던 그녀는 여지없이 대사를 버벅거렸다. 그러자 동료 단원들이 “김씨와는 수준이 맞지 않아 함께할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데도 남편은 그녀를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은 어리버리하고 순진하기만 한 제 모습에서 뭔가 가능성을 읽은 것 같아요. 나에게는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그늘이 있었는데, 남편은 그것을 저만의 매력으로 본 게 아닌가 싶어요.”
 
  김씨 역시 남편에게 매료돼 있었다. 똑똑하고 열정적인 데다 경제적으로 넉넉하기까지 한 그가 싫지 않았다. 남편은 상당한 재력의 가정에서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었다.
 
  “나는 공부를 싫어하는데, 이 남자는 공부를 좋아하는 거야. 글쎄 공부하는 게 그렇게 재미있대. 나로서는 너무 신기한 거지. 돈에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것도 좋아 보였고. 그 사람은 천상 예술가였어요.”
 
  두 사람은 대학 2학년 때 결혼, 17년을 부부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여느 부부처럼 권태기가 찾아왔다. 연애 시절 장점으로 보였던 것이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생활에 매이지 않고 예술만 고집하는 남편이 마냥 낭만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결국 이런저런 갈등 끝에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남편은 제 스승과 같은 사람이어서 이혼 후에도 제가 출연하는 연극을 보러 왔고, 잘못된 점을 끊임없이 지적하곤 했어요. 그런 사람이 어느 날 간암 판정을 받더니 곧 세상을 떠나더라고요. 저로서는 엄청난 충격이었죠. 그 여파로 앓아 눕게 되었고, 무려 3년 동안이나 병명도 알 수 없는 질환에 시달렸어요.”
 
 
  남편과 사별 후 병석에 누워
 
우아하지만 철없는 회장 부인 차지선으로 출연해 사랑받은 <내 딸 서영이>.
  김혜옥씨는 1980년 MBC 방송에 특채되면서 드라마에 데뷔했다. <베니스의 상인> <오델로> 등의 연극에서 주인공으로 열연하는 그녀를 드라마 감독이 스카우트한 것이다. 그녀는 “연극 무대가 좋았지만 당시 돈이 필요해 방송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일찌감치 결혼했지만 친정 살림이 어려워 제가 계속 도와줘야 할 형편이었어요. 시엄마는 제가 번 돈은 알아서 쓰라고 배려해 주셨죠. 얼마나 고마운지, 그런 시엄마 없을 거예요. 친정엄마나 동생들은 나름 열심히 사는데도 늘 돈이 궁했어요. 열심히 벌어서 갖다줘도 밑 빠진 독인 양 친정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죠.”
 
  방송가는 연극판과 달리 경쟁이 치열해 텃세가 있었다. 분장도 의상도 도와주는 이가 없어 혼자서 해결해야 했다. 연극무대에서 스타 대접을 받았지만 방송가에서는 ‘초짜’ 취급을 받았다. <수사반장>에서 범인으로 나오는 등 단역을 전전하다 고정배역으로 맡은 것이 <전원일기>의 ‘서울댁’이었다.
 
  “고정배역이긴 했지만 비중이 크지 않은 조연이어서 주위에서는 하지 말라고 만류했어요. 그런 역을 하면 이미지가 굳어져 다른 역을 하기 힘들다는 거였죠. 그래도 돈이 필요해 출연했는데, 20년 동안 빨래만 했어요. 이미지 쇄신을 위해 중도에 하차하고 싶어도 그게 친정집을 도울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라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당시 <전원일기> 출연료는 저한테 월급이나 다름없었거든요.”
 
  <전원일기> 출연 중 당시 멜로 황제로 인기를 누리던 이정길·박근형씨 상대역으로 낙점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녀가 출연하는 작품은 빛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서서히 주연급에서 밀려났다. 나중에는 섭외 자체가 뜸해졌다. 이런 그녀를 두고 <전원일기>에 함께 출연 중이던 김혜자씨가 “너 같은 배우를 감독들이 왜 쓰지 않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격려해 주곤 했다.
 
  “김혜자 선생님의 그 말씀이 연기를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저를 붙들어 준 힘이 됐어요. 자존심 버리고 죽어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내 상황에 버팀목이기도 했죠. 비중이 크지 않은 역이었지만 좋은 선배님들 속에 섞여 하다 보니 배우는 것도 많고 나름 괜찮았어요. 제가 어리버리해도 일단 적응을 하면 잘 참고 견디는 성격이에요.”
 
  그러나 남편의 급작스런 죽음은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김씨는 모든 활동을 접고 세상과 단절하고 지냈다. ‘저 사람은 나를 돌봐줬는데, 이혼하지 않고 내가 저 사람을 돌봐주었더라면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텐데’라는 자책감에 스스로를 마음의 감옥에 유폐시켰다. 그녀는 “죽고 싶은 마음에 매일 유서를 썼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를 징벌한 것 같다”고 말했다.
 
 
  뜻하지 않은 시트콤으로 재기
 
김수미, 나문희씨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 <육혈포강도단>.
  김씨의 닫힌 마음을 열어 준 이는 남동생이었고, 마음의 병을 치료해 준 이는 부처였다.
 
  “제 남동생은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했어요. 천식이 심해 죽은 것으로 알고 얼굴을 천으로 덮어 놓은 적도 있죠. 그 동생이 음악을 했는데, 지방 소도시 나이트클럽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시간이 날 때마다 전국에 있는 사찰을 순례하곤 했어요. 제가 집에서 누워만 있으니까 동생이 어느 날 ‘바람 쐬러 가자’며 손을 잡더니 계룡산에 있는 한 사찰로 인도하더군요.”
 
  부처님의 뜻이었는지 그날 태어나 처음 가 본 사찰에서 운 좋게 주지 스님을 만났다. 김씨는 초면인 스님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몸이 아픈데 원인을 몰라 괴롭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스님은 “집에 가거든 108배를 하라”고 진언했다.
 
  그날 이후 꾸준히 108배를 했다. 김씨는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정성껏 108배를 올렸다”고 말했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하데요. 그리고 거짓말인 듯 병이 나았어요. 참 신기했죠. 이게 모두 부처님의 가피 덕분이라 생각해요.”
 
  김씨가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자 이번에는 남동생이 앓아누웠다. 위암이었다. 그녀는 친정어머니와 함께 동생이 평소 “존경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은 남동생의 사주를 보더니 “43세 이후의 생은 보이지가 않으니 편안하게 부처님 곁으로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말했다. 동생은 스님이 예언한 즈음에 더없이 편안한 얼굴로 눈을 감았다.
 
  “짧은 기간 내 주변에 있던 젊은 사람이 두 명이나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 둘 곳이 없어 마곡사 주지 스님께서 선물로 주신 책을 읽었어요.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 교리가 담긴 책이었죠. 그 책을 읽으니 죽음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마음 깊은 곳에 진리에 대한 믿음이 생겼어요. 불안하고 두려웠던 것들이 사라지고 마음속에 평화가 깃들었죠.”
 
  김씨가 방송에 복귀한 것이 40대 중반이다. 이 무렵 슬프고 어두운 캐릭터만 소화하던 그녀에게 색다른 역할이 들어왔다. 2004년 방영된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에 김영옥·한영숙씨와 함께 할머니 3총사 중 막내할머니로 캐스팅된 것. 김씨가 맡은 역할은 여고시절 이후 정신연령이 멈춰 할머니이기를 거부하는 만년 사춘기 소녀 같은 캐릭터였다. 그녀는 장르가 낯선 시트콤인 데다 40대 중반에 60대 할머니 역을 소화해야 한다는 데 겁을 먹었다. 처음 캐스팅 제의가 들어왔을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역할이라 깜짝 놀랐다고 했다.
 
 
  지금껏 친정가족 돌봐
 
남자 없이 못 사는 엄마로 출연한 영화 <가족의 탄생>.
  그런데 막상 큐사인이 떨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철부지 할머니 역할을 소화해 냈다. 그녀의 연기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할머니가 정말 깜찍하고 귀엽다”는 평이 쏟아졌다.
 
  “저는 이 작품을 하기 전까지 내 안에 그렇게 밝고 유쾌한 면이 있는지 추호도 몰랐어요. 막상 해 보니까 걱정했던 거와 달리 너무 재미있는 거 있죠. 그러고 보면 김석윤 감독이 대단한 분 같아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나를 꿰뚫어 보고 끄집어냈으니 말이죠.”
 
  시트콤 출연은 김씨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우선 무겁고 우울하기만 했던 그녀의 삶이 가볍고 경쾌해졌다. 또한 인기가 오르면서 드라마 출연 섭외가 줄을 이었다. 이전과 달리 밝고 화사한 역할이 많이 들어왔다. 이때부터 ‘철없는 엄마’나 ‘푼수 마담’ 혹은 ‘재벌가 사모님’ 등 개성이 강하면서 코믹한 역할을 수도 없이 했다. 그런가 하면 <여자, 정혜> <내가 살았던 집> <가족의 탄생> <육혈포 강도단> 등의 영화를 통해 엄마지만 자아가 강한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김씨는 “<올드미스 다이어리> 이후 신기할 정도로 많은 일이 들어왔다”며 “이건 내 힘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먼저 가신 분들이 집안 식구들 잘 다독거리며 살라고 힘을 주시는 것 같아요. 집안에서 내가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밀어 주시는 거죠. 아버지는 작년에 돌아가셨고, 엄마는 30년째 당뇨로 고생하고 계세요. 저는 여전히 몸이 불편한 친정엄마를 돌보고 있지만 힘들지 않아요. 그것도 다 수행이라고 생각합니다.”
 
 
  BBS 생방송 토크쇼 8년째 진행
 
극단 신화의 연극 <맨발의 청춘>.
  김씨는 아파서 누워 있던 3년을 빼곤 줄곧 드라마와 영화, 연극 등의 현장을 오가며 쉬지 않고 일해 왔다. 그녀에게 “지금껏 출연한 작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몰라요.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요. 제가 숫자에 약해요. 몇 년도에 어떤 드라마를 했고, 어떤 영화에 출연했는지 등을 도무지 외우지 못해요. 계산에도 약해서 손해 볼 때가 많아요. 어쩌겠어요. 그렇게 생겨먹은 걸.”
 
  김씨는 최근 <내 딸 서영이>와 <오자룡이 간다> 외에 SBS 미니시리즈 <내 연애의 모든 것>에도 출연했다. 세 드라마가 비슷한 시기에 방영돼 촬영이 겹칠 때도 있었다. 대사 암기에 애로사항이 없었을까.
 
  “저는 말주변도 없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편이에요. 그래서 오락프로 섭외는 일절 거절하고 있죠. 연기할 때도 대본에 없는 대사는 하지 않아요. 애드리브를 치지 않는다는 거죠. 오직 대본에 있는 대사에 집중합니다. 완벽하게 내 것이 될 때까지 열 번 스무 번 읽어서 암기하죠.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 출연 중일 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또 드라마가 끝나면 달달 외웠던 대사도 새까맣게 잊어버려요. 두뇌 용량이 크지 않아 비워 내지 않으면 다음 작품을 할 수 없어요. 그게 몸에 배어 있다 보니 두 개 세 개 동시에 출연해도 큰 문제는 없는 편이에요. 대신 대사가 외워지지 않을 때는 밤을 새우기 일쑤죠.”
 
  김씨는 드라마 외에 불교방송의 생방송 토크쇼 ‘김혜옥의 아름다운 초대’를 벌써 8년째 진행하고 있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은 생방송이지만 라디오여서 부담이 덜하고 주요 출연진이 스님들이라 저절로 말씀 공부가 된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이 프로그램은 이제 일이라기보다 힐링이 된 듯했다.
 
  “평범한 불자라면 쉽게 접할 수 없는 스님들을 가까이서 보고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참 좋아요. 따로 공부할 시간이 없는 저로서는 안성맞춤인 프로그램이죠. 그래서 힘들어도 쉬지 않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김혜옥씨는 길어 봐야 한 달도 채 되지 않을 터이지만 나름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다. 두문불출, 집에서 책을 읽거나 에너지 보강 차원에서 병원에 다니는 것이 그녀의 휴식 방법이다. 김씨는 “한때는 ‘에너지의 여왕’으로 불릴 정도로 체력이 좋았지만 50이 넘고부터는 밤샘 촬영이 힘들 만큼 체력이 고갈됐다”고 말했다.
 
  “나이가 드니까 밤 11시나 12시가 되면 벌써 몸이 다운돼요. 그동안 쓰기만 해서 에너지가 방전된 것 같아요. 요즘은 9시 뉴스를 보다가도 그대로 잠이 든다니까요. 좀 쉬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드라마가 나를 놔두질 않네요.”
 
 
  내 안의 나를 보여주는 연기가 좋아
 
  김씨는 오는 8월부터 방영하는 MBC 새 수목드라마 <투윅스>에 출연한다. <내 딸 서영이>의 소현경 작가가 집필한 이 작품은 살인 누명을 쓴 한 남자가 백혈병에 걸린 어린 딸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주요 줄거리다. 그녀는 이 드라마에서 야누스적 삶을 사는 여성 국회의원 역을 맡았다. 김씨는 “그동안 해 왔던 역할과는 판이하게 다른 캐릭터여서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서민 아파트에 전세로 살면서 소시민을 대변하지만 뒤로는 암흑가와 거래하며 부를 축적하는 지역 국회의원 역할이에요. 주인공 이준기씨와 대척점에 있는 악역이죠. 카리스마 있는 정치인이면서 탐욕스러운 여자라 소화하기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그래도 열심히 할 거예요.”
 
  <투윅스>는 소현경 작가가 오래 전부터 준비해 온 작품으로 원래 김혜옥씨가 맡은 역할은 남성이었다. 그런데 <내 딸 서영이>를 하면서 소현경 작가가 김씨를 염두에 두고 배역을 여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녀는 “야누스적인 국회의원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바뀌면서 자칫 잘못하면 상투적일 수 있는 드라마 내용이 훨씬 참신해졌다”며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을 깰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내 딸 서영이>에 출연하면서 남녀 팬이 많이 생겼어요. 글쎄 50이 넘은 저보고 ‘귀엽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제 성격은 <오자룡이 간다>의 고성실에 더 가까워요. 소탈하고 내성적인 편이죠. 그런데 어떤 팬들은 고성실보다 차지선이 더 잘 어울린다며 청승 떠는 역할은 하지 말래요. 팬들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간섭해 주니까 저는 너무 좋아요. 그리고 제 안에는 고성실의 소박함과 차지선의 화려함은 물론 영화 <가족의 탄생>에서 맡았던 매자처럼 끊임없이 사랑을 갈구하는 열정도 있답니다. 그래서 저는 연기가 좋아요. 내 안의 여러 얼굴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으니까요.”
 
  활짝 웃는 그녀에게서 ‘여인의 향기’가 느껴졌다.⊙
조회 : 13747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스팸방지 [필수입력] 그림의 영문, 숫자를 입력하세요.

201903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 마음챙김 명상 클래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