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준호의 통산 550개 도루는 쉽게 깨질 수 없는 대기록
⊙ 책임을 동반한 자율야구가 메이저리그의 최대 강점
⊙ 야구는 내가 아닌 우리가 하는 스포츠
⊙ 책임을 동반한 자율야구가 메이저리그의 최대 강점
⊙ 야구는 내가 아닌 우리가 하는 스포츠
- 전준호 코치는 2011년 미국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에 연수를 다녀왔다.
출범 31년째를 맞이한 한국프로야구가 2012년 초 목표했던 700만 관중몰이에 성공하며 명실상부한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시킨 프로야구는 31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다. 프로 원년 박철순(전 OB베어스팀 투수)의 최고연봉이었던 2400만원은 2012년 시즌 한화 김태균의 15억원으로 상승했고 당초 6개 팀으로 시작했던 리그는 2011년 NC 다이노스의 가세와 최근 창단을 공식 선언한 KT까지 합치면 총10개 팀으로 그 몸집 또한 커졌다.
프로 원년 미국 대학야구 수준 정도로 취급받던 한국프로야구는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선전하며 실력 또한 향상됐다. 이처럼 국제무대에서 높아진 한국야구의 위상은 최근 한화투수 류현진(25)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크게 한몫하며 무려 2573만 달러(한화 약280억원)라는 초대박 이적료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낙후된 경기장 시설과 무리한 훈련스케줄 그리고 선수들의 안전과 권익향상 등 개선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들은 “국내에 조금이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식 선수관리나 훈련법 등이 도입되었더라면 더 많은 선수들이 지금도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을 것”이라며 체계화되지 못했던 국내 프로야구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
‘大盜’
프로야구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 프로야구는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현실에 공감한 전준호(43) 현 NC 다이노스 코치는 미국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의 초청을 받아 2011년 한 해 동안 미국 메이저리그 코치연수를 다녀왔다.
전 코치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SK 와이번스 코치로 재직 중일 때 처음 메이저리그 코치 연수를 제의받았는데 며칠 동안 심사숙고했을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해마다 수많은 선수가 유니폼을 벗고 호시탐탐 지도자 자리를 노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연수를 다녀온다고 코치 자리가 보전되는 것도 아닌데 1년씩이나 현장을 비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하지만 전 코치는 “지금 배우지 않으면 영영 선진야구를 경험해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아 결단을 내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당시 SK 김성근 감독은 전 코치의 메이저리그 연수 소식을 전해 듣고 개인적으로 그를 불러 만류했을 만큼 전 코치는 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전 코치는 영남대학교를 졸업하던 1991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면서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첫해부터 주전 외야수 자리를 꿰찬 그는 이듬해 그 어렵다는 3할 타율과 30도루를 기록하며 호타준족(好打駿足)의 선수로 성장했고 당시 그의 소속팀이었던 롯데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후 현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2009년 넥센에서 은퇴할 때까지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무려 19년 동안 현역생활을 지속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수 있는 19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가 한국프로야구사에 남긴 족적 또한 매우 크다.
전 코치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은퇴한 양준혁에 이어 국내 프로야구선수 중 두 번째로 2000안타 기록(통산 2018개)을 달성했다. 그는 또 통산 3루타 100개와 도루 550개를 기록하며 이 부문 개인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체계화된 지도법에 대한 갈증
현역시절 빠른 발과 성실함을 바탕으로 1루 베이스에 진루하면 끊임없이 2루와 3루 베이스를 훔친 그에게 대도(大盜)라는 별명이 허투루 생긴 게 아니었다. 특히 전 코치가 보유하고 있는 한국프로야구 최다도루(550개) 기록은 앞으로 쉽게 깨질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빠른 발과 정교한 타격을 바탕으로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한 유망주 나경민(21)은 “국내선수 중 전준호 코치를 가장 존경한다. 나 또한 발이 빠른 편이지만 통산도루 550개는 함부로 넘볼 수 없는 대기록”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한국프로야구 선수 중 메이저리그 구단의 초청을 받아 경비 일체를 지원받으며 연수를 다녀온 건 전 코치가 처음일 만큼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많은 야구인들은 이를 두고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전 코치의 대기록을 인정했다는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전준호 코치는 2011년 2월 24일 체계적인 지도자 기술을 습득하고 선진야구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샌디에이고 구단 고위층과의 상견례를 마치고 그들의 스프링캠프(춘계훈련) 장소가 있는 애리조나에 합류했다.
전 코치에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처음 합류했을 당시의 소감을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더군요. 300여 명에 이르는 선수단의 규모도 그렇지만 천연잔디가 잘 관리되어 있는 최신 야구장 시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한국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2군 경기장 내야에는 잔디가 깔려 있지도 않거니와 경기 전 선수들이 직접 운동장에 나와 돌을 골라내야 할 만큼 상황이 열악합니다.”
한국프로야구는 1군과 2군으로 나뉘어 팀마다 대략 60명 안팎의 선수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프로야구는 우리의 1군이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와 2군에 해당하는 마이너리그에 루키(Rookie)부터 시작해 싱글 에이 로(Low), 싱글 에이 하이(High), 더블 에이, 트리플 에이까지 총 5개의 리그로 나누어 운영한다. 개중에는 싱글 에이 숏시즌(short season)을 추가하여 6개 리그를 운영하는 팀도 있다. 야구단 규모나 시설 자체가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율야구 속에 감춰진 무한경쟁 시스템
미국프로야구 스프링캠프는 2월 하순에 소집해 시즌을 개막하는 4월 초까지 약 45일간 진행한다. 구단마다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에 소속된 모든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참여해 쉬는 날 없이 시즌을 준비한다.
전 코치는 스프링캠프 첫날부터 초청코치(Invited Coach) 자격으로 샌디에이고 구단에 합류해 외야수비와 주루부문을 맡아 선수들을 지도했다. 19년 동안이나 한국프로야구 선수로 뛰었던 그에게 한미 프로야구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한국과는 다른 자율야구와 그에 따른 책임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오전 7시 코칭스태프 미팅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하는 선수단 훈련은 오후 3시에 끝난다. 이에 반해 한국프로야구 스프링캠프 공식훈련은 오후 5시에 끝난다. 하지만 저녁식사 후에도 투수와 야수조로 나뉘어 야간훈련을 진행한다.
분명 훈련량은 한국이 더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력은 메이저리그가 한 수 위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전 코치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미국은 우리처럼 강요하지 않는 자율야구가 뿌리를 내렸지만 그 이면에는 자율에 대해 책임감을 동반한 선수들 스스로의 무한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미국 역시 코치들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지도하지만 훈련 양만큼은 선수들 본인에게 맡깁니다. 열심히 노력한 자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엄청난 부와 명예를 맛볼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자는 언제든 팀에서 방출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선수들 스스로 더 열심히 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2012년 한국프로야구 선수의 평균연봉은 9441만원인 반면 메이저리그 평균은 약 33억원이다. 최고연봉 또한 한국은 앞서 언급했던 한화 김태균의 15억원이지만 미국은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선수가 받는 310억원으로 그 격차가 매우 크다.
국내에 없는 멘털코치 제도
전 코치는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기간 중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멘털(mental)코치 제도를 접하고 많이 부러웠다고 했다. 멘털코치는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점검하고 치료하는 일종의 상담자를 말한다. 그들은 심리분야의 전문가이며 특별히 야구공부를 따로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경기외적인 요소로 힘들어할 때 상담을 통한 치료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크게 일조한다고 한다.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도 지난해 음주운전 문제로 슬럼프를 겪었을 때 멘털코치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한국에는 아직 멘털코치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올 초 한화구단이 처음 도입했을 만큼 국내에는 아직 낯선 직업이다.
미국프로야구에는 한국과 달리 미디어교육 담당자가 상주한다. 이들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각종 언론과 인터뷰하는 요령뿐만 아니라 곤란한 질문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정기적으로 교육한다. 심지어 미소 짓는 법까지 가르쳐준다고 한다. 아울러,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면 모든 선수는 트위터(twitter) 같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구단에 제출하고 구단은 이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 그 이유는 선수들의 무분별한 언행으로 인해 구단이미지가 실추되거나 프로선수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문제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례로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의 한 남미선수는 미성년자와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가 발각되어 팀에서 방출됐다.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는 자신의 부상 때문에 대신 출전한 선수가 의외로 선전하며 계속 그 자리를 지키자 이에 대한 불만을 SNS에 토로했다가 구단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NC의 고창성 투수가 지난해 기아 타이거스의 나지환 선수를 조롱하는 글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가 문제가 돼 2군으로 강등되는 문책성 처벌을 받기도 했다.
샌디에이고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라면 적어도 그에 걸맞은 품위를 유지해야 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45일간의 스프링캠프가 끝나자 샌디에이고 구단은 전 코치에게 “어떤 팀을 맡아 시즌을 치르고 싶은가”라며 선택권을 주었다. 전 코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루키 팀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 상위 팀 선수들은 이미 다 완성된 선수들이기 때문에 코치 입장에서 특별히 가르칠 게 없어 편합니다. 하지만 루키리그 선수들은 코치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들을 가르치다 보면 코치도 배울 게 많을 것 같아 비록 몸은 고단해도 루키리그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선수를 가리켜 루키(rookie)라고 한다. 신인선수인 만큼 코치입장에서는 야구이론과 실기뿐만 아니라 인성교육 등 가르칠 게 많다. 전 코치의 말을 듣고 보니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끝내고 지도자로 거듭난 그가 어느 정도 야구를 사랑하고, 아울러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야구선수와 팬들의 안전이 우선인 메이저리그
전 코치는 스프링캠프가 끝나자 샌디에이고 구단의 배려로 LA로 건너가 약 한 달간 메이저리그 경기를 참관할 수 있었다. 이에 전 코치는 “거의 매일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며 경기외적인, 특히 선수와 관중들의 안전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장 안전문제를 언급하며 후배였던 고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롯데 자이언츠 포수였던 고 임수혁 선수는 2000년 4월 18일 LG를 상대로 가진 잠실경기에서 안타를 치고 2루에 진루한 후 갑자기 쓰러졌다. 그 후 의식을 되찾지 못한 그는 병상에 누워 식물인간 상태를 유지하다 2010년 2월 7일 끝내 사망선고를 받고 영면했다. 임수혁 선수가 쓰러졌을 때 야구장에 응급사태를 대비한 의료진이 상주해 신속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임수혁 사건을 계기로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국내 2군 경기장에는 종종 의료진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경기장에는 항상 의료진이 상주해 있으며 경기 전 선수들의 건강상태 점검은 물론이거니와 경기장 곳곳에는 구단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팬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 전 코치는 “만에 하나라도 철저히 대비하는 그들의 안전의식을 지켜보며 야구외적으로도 느낀 바가 크다”고 했다.
한 달간의 메이저리그 경기참관을 마치고 다시 애리조나로 돌아온 전 코치는 샌디에이고 루키들과 함께 시즌을 시작했다. 사막지대인 애리조나의 한낮 기온은 무려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전 코치는 선진야구를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즐거워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즐거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야구는 내가 아닌 우리가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강조하는 미국야구를 경험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 팀에는 당시 약 73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초대형 신인선수가 있었다고 한다. 전 코치는 “한국이었다면 분명 다수의 코치가 이 선수를 특별 관리하여 하루라도 빨리 1군에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초대형 신인이나 일반신인이나 차별 없이 관리하고 지도한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야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팀 전체가 함께 하는 단체운동이라는 걸 신인 때부터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도 하루빨리 이런 평등한 지도문화가 도입되어야 차별로 인한 자괴감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 선수들의 이탈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코치는 메이저리그 감독의 루키리그 경기장 방문도 잊을 수 없는 추억 중에 하나라고 기억했다. 원정경기차 애리조나를 방문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버드 블랙 감독이 바쁜 일정을 쪼개어 루키리그 경기장을 찾아왔던 것. 전 코치는 “한국에서는 1군 감독이 시즌 중에 2군 경기장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감독이 루키리그 경기장을 방문해 ‘너희들이 우리 팀의 희망이며 우리는 하나’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혼란을 방지하는 순회코치 제도
전준호 코치는 한국에는 없는 미국의 순회코치(Roving coach) 제도 역시 인상 깊었다고 했다. 순회코치는 마이너리그 전체 팀을 관리하는 코치로 어느 한 팀에 상주하지 않고 시즌 내 팀을 옮겨 다니며 스프링캠프 때 각 팀의 코치들과 선수 개인별 지도방법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관리하고 상의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코칭스태프가 바뀌면 선수들을 지도하는 방법도 코치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코치가 자주 교체될수록 선수들은 다른 훈련과 지도방식으로 인해 혼란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미국은 순회코치 제도가 있어 일단 시즌이 시작되면 중간에 코치가 바뀌어도 시즌 전에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시작된 훈련이나 지도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속 유지된다. 이는 지도자의 권위보다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우선시하는 실용적인 지도방법이자 배려라고 볼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는 팀마다 차이는 있으나 9월 말에 정규시즌이 끝나면 12월 중순까지 마무리 훈련을 실시한다. 그 후 2~3주 정도의 짧은 휴식을 갖고 1월 중순에 다시 모여 3월 초에 시작하는 시범경기 전까지 동계훈련을 한다. 결국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은 일년 내내 경기와 훈련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중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도 선수들은 운동장에 나와 훈련을 한다. 2011년 KIA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 트레비스 블랙클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쉬는 날도 단체훈련을 하느라 제대로 쉰 기억이 없다. 덕분에 광주에 살면서도 인근에 있는 무등산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에 반해 메이저리그는 9월 말 정규시즌이 끝나면 모든 선수는 스프링캠프가 시작하는 2월 말까지 장시간 휴식기를 갖는다. 왜 그럴까?
샌디에이고 구단 트레이너 라이언(Ryan)은 “시즌 중 같은 부위 근육의 반복적인 사용 때문에 쌓인 근육의 피로와 마모현상은 휴식으로 달래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정기간 휴식으로 피곤이 풀어지면 그때부터 개인별로 특화된 훈련프로그램을 시작해 스프링캠프 직전까지 서서히 몸을 만든다”고 했다.
라이언은 또 “정규시즌이 끝나면 선수들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각자의 몸 상태에 맞는 특화된 훈련프로그램을 나누어 준다. 부상이 없는 선수라면 11월 중순부터 산책이나 러닝 등 가벼운 개인운동으로 시작해 서서히 강도를 높여 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전준호 코치는 각기 다른 두 나라의 차별화한 마무리 훈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한국의 마무리 훈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 획일화한 단체훈련보다는 미국처럼 개인별로 특화한 훈련법이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와의 인연이 값져
전 코치에게 메이저리그 코치연수에 대한 에필로그를 부탁하자 그는 “선진야구를 경험하며 늘 부족했던 2%를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더 값진 것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과의 소중한 인연”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샌디에이고 코칭스태프와 꾸준히 연락하며 한미야구의 다른 기술이나 지식 등을 공유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샌디에이고 구단관계자들은 전 코치를 어떻게 기억할까? 기자가 샌디에이고 루키팀 감독 짐 가벨라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코치는 야구실력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아 선수는 물론 구단 관계자 모두가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전 코치는 선수들에게 존경받는 코치로, 구단 직원들에겐 늘 함께하고 싶은 좋은 사람으로, 모든 이들이 그가 미국에서 우리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감사해합니다.”
근 1년간의 메이저리그 연수를 마친 전 코치가 2011년 11월 귀국하자 그의 현역시절 커리어와 메이저리그 코치연수 경험을 높이 산 신생구단 NC 다이노스는 기다렸다는 듯 전 코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귀국 전부터 여러 구단으로부터 코치자리를 제의받은 전 코치는 결국 자신의 고향인 경남창원의 야구발전을 위해 NC 유니폼을 선택했다.
전준호 코치에게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냐고 묻자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진실로 성실히 현실에 충실하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는 현역시절 그가 아버지에게 받은 가르침이라며 “늘 ‘진실-성실-충실’을 가슴에 새기고 그라운드에 나섰다”고 했다.
전 코치는 “선수에서 지도자로 역할만 바뀌었을 뿐 계속해서 진실로 성실히 현실에 충실하면 지도자로도 좋은 결과가 있을것”이라며 “선수시절 경험과 메이저리그 연수를 통해 축적한 노하우를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쏟아 붓겠다”고 다짐했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이 출범시킨 프로야구는 31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발전을 이루어 냈다. 프로 원년 박철순(전 OB베어스팀 투수)의 최고연봉이었던 2400만원은 2012년 시즌 한화 김태균의 15억원으로 상승했고 당초 6개 팀으로 시작했던 리그는 2011년 NC 다이노스의 가세와 최근 창단을 공식 선언한 KT까지 합치면 총10개 팀으로 그 몸집 또한 커졌다.
프로 원년 미국 대학야구 수준 정도로 취급받던 한국프로야구는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등 각종 국제무대에서 선전하며 실력 또한 향상됐다. 이처럼 국제무대에서 높아진 한국야구의 위상은 최근 한화투수 류현진(25)의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에도 크게 한몫하며 무려 2573만 달러(한화 약280억원)라는 초대박 이적료를 가능케 했다. 하지만 이면에는 낙후된 경기장 시설과 무리한 훈련스케줄 그리고 선수들의 안전과 권익향상 등 개선해야 할 문제도 산적해 있다.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들은 “국내에 조금이라도 빨리 메이저리그식 선수관리나 훈련법 등이 도입되었더라면 더 많은 선수들이 지금도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었을 것”이라며 체계화되지 못했던 국내 프로야구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 못내 아쉬워했다.
‘大盜’
프로야구 초창기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한국 프로야구는 갈 길이 멀다는 게 중론이다. 이런 현실에 공감한 전준호(43) 현 NC 다이노스 코치는 미국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구단의 초청을 받아 2011년 한 해 동안 미국 메이저리그 코치연수를 다녀왔다.
전 코치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SK 와이번스 코치로 재직 중일 때 처음 메이저리그 코치 연수를 제의받았는데 며칠 동안 심사숙고했을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해마다 수많은 선수가 유니폼을 벗고 호시탐탐 지도자 자리를 노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연수를 다녀온다고 코치 자리가 보전되는 것도 아닌데 1년씩이나 현장을 비우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하지만 전 코치는 “지금 배우지 않으면 영영 선진야구를 경험해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면 두고두고 후회가 될 것 같아 결단을 내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로 당시 SK 김성근 감독은 전 코치의 메이저리그 연수 소식을 전해 듣고 개인적으로 그를 불러 만류했을 만큼 전 코치는 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전 코치는 영남대학교를 졸업하던 1991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면서 프로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입단 첫해부터 주전 외야수 자리를 꿰찬 그는 이듬해 그 어렵다는 3할 타율과 30도루를 기록하며 호타준족(好打駿足)의 선수로 성장했고 당시 그의 소속팀이었던 롯데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끄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 후 현 넥센 히어로즈의 전신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되어 2009년 넥센에서 은퇴할 때까지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함을 바탕으로 무려 19년 동안 현역생활을 지속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수 있는 19년이란 긴 세월 동안 그가 한국프로야구사에 남긴 족적 또한 매우 크다.
전 코치는 삼성 라이온즈에서 은퇴한 양준혁에 이어 국내 프로야구선수 중 두 번째로 2000안타 기록(통산 2018개)을 달성했다. 그는 또 통산 3루타 100개와 도루 550개를 기록하며 이 부문 개인타이틀도 보유하고 있다.
체계화된 지도법에 대한 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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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2월, NC 다이노스 미국 전지훈련지인 애리조나의 투손(Tucson)에서 전준호 코치가 나성범, 마낙길 선수에게 도루 요령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한국프로야구 선수 중 메이저리그 구단의 초청을 받아 경비 일체를 지원받으며 연수를 다녀온 건 전 코치가 처음일 만큼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다. 많은 야구인들은 이를 두고 “야구의 종주국인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도 전 코치의 대기록을 인정했다는 증거”라고 입을 모았다.
전준호 코치는 2011년 2월 24일 체계적인 지도자 기술을 습득하고 선진야구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로스앤젤레스(LA)에 도착한 그는 그곳에서 샌디에이고 구단 고위층과의 상견례를 마치고 그들의 스프링캠프(춘계훈련) 장소가 있는 애리조나에 합류했다.
전 코치에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처음 합류했을 당시의 소감을 묻자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더군요. 300여 명에 이르는 선수단의 규모도 그렇지만 천연잔디가 잘 관리되어 있는 최신 야구장 시설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한국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2군 경기장 내야에는 잔디가 깔려 있지도 않거니와 경기 전 선수들이 직접 운동장에 나와 돌을 골라내야 할 만큼 상황이 열악합니다.”
한국프로야구는 1군과 2군으로 나뉘어 팀마다 대략 60명 안팎의 선수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미국프로야구는 우리의 1군이라 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와 2군에 해당하는 마이너리그에 루키(Rookie)부터 시작해 싱글 에이 로(Low), 싱글 에이 하이(High), 더블 에이, 트리플 에이까지 총 5개의 리그로 나누어 운영한다. 개중에는 싱글 에이 숏시즌(short season)을 추가하여 6개 리그를 운영하는 팀도 있다. 야구단 규모나 시설 자체가 한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자율야구 속에 감춰진 무한경쟁 시스템
미국프로야구 스프링캠프는 2월 하순에 소집해 시즌을 개막하는 4월 초까지 약 45일간 진행한다. 구단마다 마이너리그와 메이저리그에 소속된 모든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참여해 쉬는 날 없이 시즌을 준비한다.
전 코치는 스프링캠프 첫날부터 초청코치(Invited Coach) 자격으로 샌디에이고 구단에 합류해 외야수비와 주루부문을 맡아 선수들을 지도했다. 19년 동안이나 한국프로야구 선수로 뛰었던 그에게 한미 프로야구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한국과는 다른 자율야구와 그에 따른 책임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는 오전 7시 코칭스태프 미팅을 시작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오전 8시부터 시작하는 선수단 훈련은 오후 3시에 끝난다. 이에 반해 한국프로야구 스프링캠프 공식훈련은 오후 5시에 끝난다. 하지만 저녁식사 후에도 투수와 야수조로 나뉘어 야간훈련을 진행한다.
분명 훈련량은 한국이 더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실력은 메이저리그가 한 수 위이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해 전 코치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미국은 우리처럼 강요하지 않는 자율야구가 뿌리를 내렸지만 그 이면에는 자율에 대해 책임감을 동반한 선수들 스스로의 무한경쟁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큰 틀에서 보면 미국 역시 코치들이 선수들의 장단점을 파악하여 지도하지만 훈련 양만큼은 선수들 본인에게 맡깁니다. 열심히 노력한 자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 엄청난 부와 명예를 맛볼 수 있지만 그러지 않은 자는 언제든 팀에서 방출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선수들 스스로 더 열심히 합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2012년 한국프로야구 선수의 평균연봉은 9441만원인 반면 메이저리그 평균은 약 33억원이다. 최고연봉 또한 한국은 앞서 언급했던 한화 김태균의 15억원이지만 미국은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스 선수가 받는 310억원으로 그 격차가 매우 크다.
국내에 없는 멘털코치 제도
전 코치는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기간 중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멘털(mental)코치 제도를 접하고 많이 부러웠다고 했다. 멘털코치는 선수들의 심리상태를 점검하고 치료하는 일종의 상담자를 말한다. 그들은 심리분야의 전문가이며 특별히 야구공부를 따로 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수들이 슬럼프에 빠지거나 경기외적인 요소로 힘들어할 때 상담을 통한 치료로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크게 일조한다고 한다.
유일한 한국인 메이저리거 추신수도 지난해 음주운전 문제로 슬럼프를 겪었을 때 멘털코치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했다. 한국에는 아직 멘털코치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올 초 한화구단이 처음 도입했을 만큼 국내에는 아직 낯선 직업이다.
미국프로야구에는 한국과 달리 미디어교육 담당자가 상주한다. 이들은 선수들을 대상으로 각종 언론과 인터뷰하는 요령뿐만 아니라 곤란한 질문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정기적으로 교육한다. 심지어 미소 짓는 법까지 가르쳐준다고 한다. 아울러, 스프링캠프를 시작하면 모든 선수는 트위터(twitter) 같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구단에 제출하고 구단은 이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한다. 그 이유는 선수들의 무분별한 언행으로 인해 구단이미지가 실추되거나 프로선수로서의 품위를 손상하는 문제 등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실례로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의 한 남미선수는 미성년자와 편의점에서 주류를 구매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가 발각되어 팀에서 방출됐다. 시애틀 매리너스 선수는 자신의 부상 때문에 대신 출전한 선수가 의외로 선전하며 계속 그 자리를 지키자 이에 대한 불만을 SNS에 토로했다가 구단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NC의 고창성 투수가 지난해 기아 타이거스의 나지환 선수를 조롱하는 글을 자신의 SNS 계정에 올렸다가 문제가 돼 2군으로 강등되는 문책성 처벌을 받기도 했다.
샌디에이고 구단 운영팀 관계자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팬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라면 적어도 그에 걸맞은 품위를 유지해야 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45일간의 스프링캠프가 끝나자 샌디에이고 구단은 전 코치에게 “어떤 팀을 맡아 시즌을 치르고 싶은가”라며 선택권을 주었다. 전 코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루키 팀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메이저리그나 마이너리그 상위 팀 선수들은 이미 다 완성된 선수들이기 때문에 코치 입장에서 특별히 가르칠 게 없어 편합니다. 하지만 루키리그 선수들은 코치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들을 가르치다 보면 코치도 배울 게 많을 것 같아 비록 몸은 고단해도 루키리그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프로에 갓 입단한 신인선수를 가리켜 루키(rookie)라고 한다. 신인선수인 만큼 코치입장에서는 야구이론과 실기뿐만 아니라 인성교육 등 가르칠 게 많다. 전 코치의 말을 듣고 보니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끝내고 지도자로 거듭난 그가 어느 정도 야구를 사랑하고, 아울러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야구선수와 팬들의 안전이 우선인 메이저리그
전 코치는 스프링캠프가 끝나자 샌디에이고 구단의 배려로 LA로 건너가 약 한 달간 메이저리그 경기를 참관할 수 있었다. 이에 전 코치는 “거의 매일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며 경기외적인, 특히 선수와 관중들의 안전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장 안전문제를 언급하며 후배였던 고 임수혁 선수 이야기가 나오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롯데 자이언츠 포수였던 고 임수혁 선수는 2000년 4월 18일 LG를 상대로 가진 잠실경기에서 안타를 치고 2루에 진루한 후 갑자기 쓰러졌다. 그 후 의식을 되찾지 못한 그는 병상에 누워 식물인간 상태를 유지하다 2010년 2월 7일 끝내 사망선고를 받고 영면했다. 임수혁 선수가 쓰러졌을 때 야구장에 응급사태를 대비한 의료진이 상주해 신속한 조치를 취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임수혁 사건을 계기로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국내 2군 경기장에는 종종 의료진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메이저리그 경기장에는 항상 의료진이 상주해 있으며 경기 전 선수들의 건강상태 점검은 물론이거니와 경기장 곳곳에는 구단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이 팬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늘 최선을 다한다. 전 코치는 “만에 하나라도 철저히 대비하는 그들의 안전의식을 지켜보며 야구외적으로도 느낀 바가 크다”고 했다.
한 달간의 메이저리그 경기참관을 마치고 다시 애리조나로 돌아온 전 코치는 샌디에이고 루키들과 함께 시즌을 시작했다. 사막지대인 애리조나의 한낮 기온은 무려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뜨거웠지만 전 코치는 선진야구를 경험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게 즐거워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즐거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야구는 내가 아닌 우리가 하는 스포츠’라는 것을 강조하는 미국야구를 경험하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 팀에는 당시 약 73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한 초대형 신인선수가 있었다고 한다. 전 코치는 “한국이었다면 분명 다수의 코치가 이 선수를 특별 관리하여 하루라도 빨리 1군에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초대형 신인이나 일반신인이나 차별 없이 관리하고 지도한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야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팀 전체가 함께 하는 단체운동이라는 걸 신인 때부터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는 또 “한국도 하루빨리 이런 평등한 지도문화가 도입되어야 차별로 인한 자괴감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유니폼을 벗는 선수들의 이탈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 코치는 메이저리그 감독의 루키리그 경기장 방문도 잊을 수 없는 추억 중에 하나라고 기억했다. 원정경기차 애리조나를 방문했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버드 블랙 감독이 바쁜 일정을 쪼개어 루키리그 경기장을 찾아왔던 것. 전 코치는 “한국에서는 1군 감독이 시즌 중에 2군 경기장을 찾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감독이 루키리그 경기장을 방문해 ‘너희들이 우리 팀의 희망이며 우리는 하나’라고 격려하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혼란을 방지하는 순회코치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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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전준호 코치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 경기장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 소속 선수들을 지도했다. |
한국의 경우 코칭스태프가 바뀌면 선수들을 지도하는 방법도 코치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코치가 자주 교체될수록 선수들은 다른 훈련과 지도방식으로 인해 혼란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미국은 순회코치 제도가 있어 일단 시즌이 시작되면 중간에 코치가 바뀌어도 시즌 전에 선수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시작된 훈련이나 지도법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계속 유지된다. 이는 지도자의 권위보다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우선시하는 실용적인 지도방법이자 배려라고 볼 수 있다.
한국프로야구는 팀마다 차이는 있으나 9월 말에 정규시즌이 끝나면 12월 중순까지 마무리 훈련을 실시한다. 그 후 2~3주 정도의 짧은 휴식을 갖고 1월 중순에 다시 모여 3월 초에 시작하는 시범경기 전까지 동계훈련을 한다. 결국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은 일년 내내 경기와 훈련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즌 중 경기가 없는 월요일에도 선수들은 운동장에 나와 훈련을 한다. 2011년 KIA에서 뛰었던 외국인 투수 트레비스 블랙클리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쉬는 날도 단체훈련을 하느라 제대로 쉰 기억이 없다. 덕분에 광주에 살면서도 인근에 있는 무등산에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에 반해 메이저리그는 9월 말 정규시즌이 끝나면 모든 선수는 스프링캠프가 시작하는 2월 말까지 장시간 휴식기를 갖는다. 왜 그럴까?
샌디에이고 구단 트레이너 라이언(Ryan)은 “시즌 중 같은 부위 근육의 반복적인 사용 때문에 쌓인 근육의 피로와 마모현상은 휴식으로 달래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정기간 휴식으로 피곤이 풀어지면 그때부터 개인별로 특화된 훈련프로그램을 시작해 스프링캠프 직전까지 서서히 몸을 만든다”고 했다.
라이언은 또 “정규시즌이 끝나면 선수들과 일대일 면담을 통해 각자의 몸 상태에 맞는 특화된 훈련프로그램을 나누어 준다. 부상이 없는 선수라면 11월 중순부터 산책이나 러닝 등 가벼운 개인운동으로 시작해 서서히 강도를 높여 가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프로야구를 모두 경험한 전준호 코치는 각기 다른 두 나라의 차별화한 마무리 훈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한국의 마무리 훈련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단, 획일화한 단체훈련보다는 미국처럼 개인별로 특화한 훈련법이 도입되었으면 합니다.”
메이저리그 관계자와의 인연이 값져
전 코치에게 메이저리그 코치연수에 대한 에필로그를 부탁하자 그는 “선진야구를 경험하며 늘 부족했던 2%를 채울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더 값진 것은 메이저리그 관계자들과의 소중한 인연”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샌디에이고 코칭스태프와 꾸준히 연락하며 한미야구의 다른 기술이나 지식 등을 공유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샌디에이고 구단관계자들은 전 코치를 어떻게 기억할까? 기자가 샌디에이고 루키팀 감독 짐 가벨라에게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자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 코치는 야구실력뿐만 아니라 성격도 좋아 선수는 물론 구단 관계자 모두가 그와 함께 있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전 코치는 선수들에게 존경받는 코치로, 구단 직원들에겐 늘 함께하고 싶은 좋은 사람으로, 모든 이들이 그가 미국에서 우리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해 감사해합니다.”
근 1년간의 메이저리그 연수를 마친 전 코치가 2011년 11월 귀국하자 그의 현역시절 커리어와 메이저리그 코치연수 경험을 높이 산 신생구단 NC 다이노스는 기다렸다는 듯 전 코치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귀국 전부터 여러 구단으로부터 코치자리를 제의받은 전 코치는 결국 자신의 고향인 경남창원의 야구발전을 위해 NC 유니폼을 선택했다.
전준호 코치에게 앞으로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냐고 묻자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진실로 성실히 현실에 충실하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이는 현역시절 그가 아버지에게 받은 가르침이라며 “늘 ‘진실-성실-충실’을 가슴에 새기고 그라운드에 나섰다”고 했다.
전 코치는 “선수에서 지도자로 역할만 바뀌었을 뿐 계속해서 진실로 성실히 현실에 충실하면 지도자로도 좋은 결과가 있을것”이라며 “선수시절 경험과 메이저리그 연수를 통해 축적한 노하우를 한국야구 발전을 위해 쏟아 붓겠다”고 다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