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대한민국 대표 문학상 수상작가를 찾아서 ③ 吳貞嬉 : 월간조선

안개의 도시 춘천으로 가는 열차는 청량리와 춘천에서 따와 청춘열차라고 부른다. 오전과 오후 사이의 시간에 열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관광을 떠나는 어르신이 주이다. 서울에서 한 시간 남짓,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부담 없는 나들이 도시인 것이다. 울긋불긋 환절기 옷을 입고, 일행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열차에 오르는 그들. 청춘열차를 통해 젊음이라는 천국으로 갈 수만 있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오정희 작가는 남편의 직장을 따라 서울에서 춘천으로 갔다. 대도시와 소도시를 오가는 동안 세월은 빨리 갔고 열차는 가까워졌다. 90년 한옥이 관광명소가 된 춘천 고택 옆에 작가가 사는 아담한 집이 있다. 마당 곳곳 서 있는 묘목이 집의 나이를 짐작게 한다. 전구 같은 가을빛에 보랏빛 가지가 바구니에 널린 채 마르고 있다. 빨간 플라스틱 대야는 작은 연못 같다. 그 안에는 부레옥잠이 아기자기 담겨 있다.

오정희 작가는 작은 키에 아담한 체형이고 눈빛은 맑게 빛나 소녀 같은 분위기다. 거기에 호호백발은 어쩐지 애교스럽다. 그런데 씩씩한 목소리는 강단이 있다. 소녀 같은 이미지는 목소리에서 어른으로 변한다. 어린 소녀에서 중년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작가가 쓴 소설 속의 여자들도 저렇게 씩씩했던가!

오정희 작가는 문학 평론가의 애찬을 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아름다운 자수가 연상되는 문체의 미학과 억압된 여성의 내면을 다양하게 형상화한 장점을 꼽을 수 있다. 여성작가는 가정생활과 병행하며 어떻게 글을 썼을까. 작가는 ‘나는 우렁각시’라고 스스로를 표현했다. 집 안에 아무도 없을 때만 글을 썼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며 무수히 스쳐가는 마음을 밥을 짓듯 지어냈다. 가족을 챙기는 것이 항상 먼저였다는, 너무나 아내적이고 너무나 엄마적인 그녀는 사후에 문학관도 시비도 다 부질없단다. 무엇이라도 자기 이름을 높일 만한 일을 하면 무덤에서 나오겠다고 말했다. 아내가 무덤에서 나올까 봐 두려운 남편은 그러자고 약속했다. 집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선물로 준다는 창가 수채화를 스마트폰에 찰칵!

이상문학상 수상작 《저녁의 게임》은 아빠와 딸이 민화투를 치며 무료한 저녁시간을 보내는 이야기다. 딸이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빠는 화투를 섞으며 유치한 속임수를 쓰는데 딸은 그런 아빠를 모른 척한다. 화투는 뒷장만 보아도 상대의 패를 알 수 있을 만큼 닳을 대로 닳아 있다. 겉보기에는 무료한 저녁시간 같아도 그들은 집 나간 아들과 오빠를 기다리고 있다. 셋이서 치다 둘이서 치는 화투는 재미가 없다. 그렇지만 화투를 손에 쥐고 있으면 평소에 참은 말도 술술 나온다. 부녀간의 어색한 마음을 화투라는 매개물을 통하여 소통하고 있는 점이 탁월하여 수작이 되지 않았을까. 한편 그 게임은 공허한 인간들의 소통과 구원의 도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동인문학상 수상작 《동경(銅鏡)》은 구리거울이자 만화경이다. 만화경 속 세상은 알쏭달쏭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세태를 비유한다. 노인에게는 한낮 구리거울에 불과하다. 하지만 소녀가 보는 만화경은 온통 호기심과 신기한 세상에 대한 동경이다. 노인은 소녀를 향한 묘한 연정을 품고 있다.

소설가 오정희. 그녀의 작품은 문체의 미학과 억압된 여성의 내면을 잘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렸을 때 이후로 화투 안 쳐”

―《저녁의 게임》으로 제3회 이상문학상을, 《동경》으로는 제15회 동인문학상을 받았는데, 먼저 이상문학상 수상작부터 질문을 드릴게요. 《저녁의 게임》은 부재한 가족에 대한 기다림 속에서 아버지와 딸의 화투놀이 하는 시간을 그린 소설인데, 어떻게 화투라는 도구를 생각했는지요.

“저는 이 소설에서 나약한 인간의 속성을 그려내고 싶었어요. 주인공 엄마는 병으로 죽어 애초에 집에 없는 사람이잖아요. 화자인 오빠하고 세 식구가 살다가 오빠마저 집을 나가버렸어요. 삼각의 구도를 이루던 것이 하나가 빠져나감으로 인해서 균형을 잃은 거죠. 딸과 아빠는 암울하고 비전이 안 보이는 삶의 상실감에 시달리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살아요. 저녁을 먹고 무료한 시간에 아무것도 달리할 것도 없는 부녀는 화투놀이로 그나마의 소통을 하는 거죠. 화투라는 것은 덧없는 것이잖아요. 그걸 서로 알지만 영원할 수 없는 것에 잠깐이라도 매이려는 욕망, 그런 것에라도 자기를 끌어내면서 지탱해 나가고자 하는 안간힘이 인간에게는 있는 거죠.”

―작품 속에서 아빠가 딸에게 유치한 속임수를 써가며 화투를 치는데 딸은 그것을 알고도 눈감아 주잖아요. 그 부분이 무척 사실적이고 흥미를 주었는데 혹시 화투를 쳐본 적이 있나요.

“사실 저 자신은 화투놀이를 거의 해보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이북에서 내려온 분이었어요. 이북 분들이 대체로 생활력이 강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는 노름이나 주색(酒色)잡기는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엄하게 금기시했어요. 그런데 열 살 무렵인가 집에 놀러 왔던 친척이 민화투를 아버지 몰래 나한테 가르쳐 주었어요. 어린 마음에 신기하고 너무 재밌어서 그때 놓고 간 화투를 주머니에 몰래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보는 사람마다 치자고 조르곤 했어요. 그러다가 어머니한테 들켜 몹시 매를 맞았어요. 어머니는 도대체 커서 뭐가 될라고 그러느냐고 말했어요. 그 후로 다시는 치지 않게 되었죠.”

―어린 시절 호기심에 배운 잠깐의 경험으로 《저녁의 게임》이라는 작품이 탄생한 셈이네요.

“그런 셈이죠.”

―동인문학상 수상작 《동경》은 4·19혁명이 배경에 깔려 있는데, 그 사건에 관여한 가족이 실제로 있었습니까.

“《동경》은 오랜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의 일상에서 단서를 얻은 소설이에요. 4·19가 일어나던 당시 저는 중학교 1학년이었어요. 큰오빠가 의대생이었는데 밤늦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았어요. 오빠는 그때 다친 사람들을 보고 의대생의 소임을 다했던 것 같아요. 노부부의 하루를 그린 소설은 아들이 그 사건에서 죽은 것으로 설정되었지만, 실제 제 오빠는 무사히 집에 돌아왔어요.”

―《동경》에서 소녀가 잃어버린 ‘만화경’을 이웃 노인이 훔쳐가는 걸로 설정했는데 노인은 어떤 욕망으로 그랬을까요.

“만화경 안을 들여다보면 현란한 모양이 모였다 흩어졌다 하면서 전혀 예측지 않은 어떤 무늬를 만들어내잖아요. 부질없는 환영(幻影)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우리가 산다는 것 자체가 환영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건데, 그게 아이한테는 순수한 호기심과 신기함 같은 현상일 테죠. 소녀를 바라보는 노인네한테는 안쓰러움이죠. 세상을 다 살아버린 노인에게 그게 뭐 그렇게 신기하겠어요. 그런데도 노인은 아이의 거울을 훔치잖아요. 그건 아이에게 갖는 일종의 소아성애증 같은 거예요. 박범신의 소설 《은교》에서도 손에 쥘 수 없는 어떤 것들에대한 탐닉과 관음증 같은 것이 밑에 깔려 있잖아요. 노인은 만화경이 탐이 나는 것이 아니라 그 애가 갖고 있는 것이 탐이 났던 거죠. 그렇다고 그것이 어떤 구체적 욕망도 아니죠. 회색빛의 칙칙한 일상과 죽음을 앞둔 갇힌 상황 속에서 빛나고 변형되는 어떤 것들에 대한 동경일 테지요.”

―많은 작품에서 어둡고 비극적인 요소가 강한 편인데 그 연원은 무엇이라고 스스로 분석하는지요.

“제 경우 한국동란 후 유년기에 겪은 상처들이 근원적 정서로 작용하는 것 같아요. 애정의 결핍과 굶주림으로 인한 심신의 허기가 무의식 깊이 자리 잡혀 있다고 할까요. 전쟁을 겪은 사람들의 피폐한 삶과 상처, 사회를 그린 전후(戰後)작가들의 소설들을 많이 읽은 탓에 소설이란 그런 것이라는, 문학에 대한 의식화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난 아이였는데 제가 쓰는 글 속의 ‘나’에게는 언제나 가족과 집을 버리고 멀리 떠나고자 하는 욕구, 외로움과 슬픔과 불행함이 가득했지요. 현실적 세계와 문학적 세계와의 차이 혹은 문학이란 결코 편안하고 행복함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유치하고 막연한 대로 싹트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음은 항상 깃발처럼 흔들리는 것”

동료 문인들과 함께한 오정희. 지난 2008년 9월 26일 강원도 양양의 한 호텔에서 동인문학상 심사위원들과 함께. 왼쪽부터 정과리, 신경숙, 김주영, 이문열, 김화영, 유종호, 오정희.

―남들보다는 좀 이른 나이인 20대 초반에 소설로 등단했잖아요. 이미 작가가 된 상태에서 남편을 만났는데, ‘작가의 남편’은 어떤 역할이었나요. 이를테면 외조(外助)라든가.

“글쎄요. 마음으로는 다 외조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냥 가만두면은 그게 외조였어요. 대체로 남편들이 아내가 뭘 하면 하나보다 하면서도, 머리로는 다 이해해도 자기 생활에 불편이 오면 싫은 내색을 하잖아요. 저는 옛날 사람이었고 가정교육을 엄하게 받아 제 일을 하면서 남편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가장 가까운 독자가 남편이라던데, 부군께서는 아내가 쓴 소설을 읽나요.

“저는 결혼할 때 남편더러 절대 내 소설을 읽지 말라고 했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남편이 제 글을 본다는 게 불편했어요. 이게 다 지(자기) 마음에서 나온 거겠거니 피해의식을 갖고 상대를 추측하게 되는 것도 창작에 부담이니까요. 저는 그런 경우를 별로 겪지 않았지만, 주변 사람들 보면 자기가 말해 놓고 자기 얘기 절대 소설로 쓰지 말라고도 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편은 그 약속을 지키던가요.

“잘은 모르겠지만, 작품을 보고 왜 이렇게 썼느냐는 일은 없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고맙죠.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누구랑 같이 산다는 게 힘들긴 해요. 자기 안에 누구를 들이는 의식, 그럴 때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잖아요. 그게 고독이기도 한데, 자기 안에 들어가면 어떤 관계적인 것을 차단하기도 하잖아요. 그 사람만의 특별한 것이 아닌, 우리 마음속에 지나가는 무수히 많은 어떤 것들인데, 그런 것들이 표출이 될 때는 과민해지잖아요. 그러니까 글 쓰는 주변 사람들이 일종의 피해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마당 앞에 벼가 익어가는 집 풍경이 참 좋은데, 서울에서 출생하고 학교도 거기에서 다녔는데 춘천에서 사는 특별한 이유라도.

“남편이 원래 춘천 사람이에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직장도 다녔어요. 그때 남편을 만났어요. 결혼하고 한 3년쯤 있다가 남편이 강원대학교 교수로 발령을 받았어요. 그때 함께 춘천으로 내려왔어요. 애가 돌이 막 지났을 때부터 이곳에서 살았어요. 남매인 아이들은 다 출가를 했고 정년퇴임한 남편하고 단둘이서 전원생활 하며 살아요. 저를 보러 오는 손님에게 계절마다 달라지는 창밖 풍경을 보여주는 게 제 선물이에요.”

―연애소설은 연애를 많이 경험해 본 사람만이 쓸 수 있나요.

“저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주위에서 연애소설을 써보라 하고, 어떤 시인은 연애소설을 써야 진짜 소설가라고 하는데, 저는 연애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쓰느냐고 했어요. 그러자 체험이 없는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연애소설이지 체험이 있는 사람은 이미 다 해버렸기 때문에 글을 못 쓰는 거라네요. 연애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기에 대한 어떤 환상도 있고 그게 더 생생하다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연애경험이 그렇게도 없나요. 문단에서 글 잘 쓰는 분 짝사랑 같은 것도 안 해 보셨나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소설이나 시 같은 데 보면 문학소녀라는 거.

“사랑, 이런 것보다도 뭐 사람 혼자 좋아하고 그런 짝사랑이야 많죠. 그리고 집안이 워낙 평범한 집안이고 엄격한 가정에서 자라서 일탈이라는 이런 것들은 잘 몰랐죠.”

―짝사랑이라도 성장하는 시기마다 사랑의 대상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나요.

“근데 그런 감정은 어떤 기질대로 가지 않겠어요. 사랑하면 막 달려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번 되짚어보고 멈추는 사람도 있고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대개 나에게서 일어나서 나에게로 스러지는 거니까, 마음이라는 것은 항상 깃발처럼 흔들리잖아요. 그런데 그 깃발을 잡고 있는 것도 나잖아요. 나 자신이 깃대잖아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마음 가는 대로 달려가려고 하면 그게 꼭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아닌 것 같아요. 깃대를 잡고 있는 내가 인생이라는 전체적인 틀 안에서 수렴해야 한다고 봐요.”

소설과 가정도 양립 가능

춘천 출신 소설가 전상국(왼쪽)과 오정희. 춘천 실레마을 ‘김유정문학촌’에 복원된 김유정 생가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여성작가로서 작가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작가란 인생과 세계를 읽고 해석하고, 보다 좋은 세상을 향한 꿈꾸기를 하면서 이를 실현하는 사람이라고 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을 글쓰기를 통하여 이루어보려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속에서 우글거리는 어떤 것들을, 말로 하면 불편해지는 것들을 작가는 작품에다 작정하고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글도 잘 쓰고 집안일도 잘해 내려는 완벽주의적인 강박도 있었겠네요. 혹, 글 쓰다가 밥하는 것 까먹은 적은 없나요.

“저는 글 쓴다고 밥을 안 해놓은 적은 없어요. 제가 집에서 글을 쓸 때는 우렁각시처럼 아무도 몰래 썼어요. 식구들 있을 때는 거의 글을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는 가족에 대한 책임이 강했어요. 제가 스물한 살 때 신춘문예에 당선하고 여성작가 세 명과 텔레비전에 출연했어요. 그해에 소설 쪽에서 여성작가 세 명이 문단에 나왔거든요. 지금은 여성작가가 많이 나오지만, 그때는 아주 드물었죠. 그래서 그게 작은 사건이라고 정연희 작가가 좌장인 프로에 출연했어요. 그때 정연희 작가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가정과 문학의 양립이 너무너무 어렵다, 그것을 어떻게 해나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죠. 다른 사람 대답은 기억 안 나고 저는 그때 현명하게 잘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고 대답했어요. 아주 일찍부터 가정의 중요성을 느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지만 좋은 가정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강했던 것 같아요.”

―가끔은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어 본 적은 없습니까. 왜, 보따리 싸서 다른 곳으로 글 쓰러 가고 싶다는…. 소설가들은 칩거하면서 글을 쓰곤 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꼭 옛날에 고시공부 하듯이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은 대로 갖고 싶은 대로 마음내키는 대로 하고 살면 큰일 난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어요. 특별히 가정생활에 대한 회의도 없었고 ‘힘이 들어도, 이런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삶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응석 떨고 어리광부리며 살지 말자. 나에 대한 독립적 존재로서 함께 더불어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공초 오상순 선생이 말년에 이런 말을 하셨대요. ‘자유가 나를 구속하였구나.’ 또 박경리 선생은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살았을 뿐이다.’ 삶이 글이었다는 것이죠.”

―음식은 잘하세요.

“저는 요리 이런 거는 못하고요. 세 끼 밥하는 것만 잘해요. 그런 걸 전수받을 기회가 없었거든요. 시어머니도 안 계시고 친정에서 일하다 온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음식 솜씨가 느는 게 주부들이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남의 집 가서도 먹어보고 음식점에 가서도 관심을 갖고 그러면서 레시피를 얻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어울려 다닐 친구도 여유도 없었어요. 그저 세 끼 밥하는 것만 하니까 어쩔 때는 가족에게 미안했어요. 아이들은 길든 입맛이니까 엄마 하는 것은 다 맛있다고 했죠.”

―사람은 저마다 한두 가지씩의 신경증적 장애가 있다고 해요. 소설에서 그런 인물을 주로 그렸는데 현실에서는 그런 장애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설 속에서 장애가 없는 사람은 없지요. 그러니까 소설이 되는 거고요. 현실에서는 심각한 우울증이 있으면 병원에 가야지요.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방법이 효과가 있다고 할 수 없어요. 받아들이는 각자의 몫이니까요. 교회를 다니는 사람은 교회를 다니라 하겠죠. 마음을 비우라고도 하지요. 근데 사실 그런 건 굉장히 공허한 소리들이잖아요. 자기 안에 깊은 욕구가 있어서 외부적인 것과 만났을 때라야 교회도 가고 마음도 비우게 되죠. 그런 것도 당장 내 맘대로 안 되고 방법을 모르니까 괴로운 거잖아요. 방법이 없을 수도 있고. 제 주변에도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면 그냥 나는 들어요. 섣부르게 욕심을 버려라, 마음을 버려라, 이건 이렇게 생각해라, 그런 말은 굉장히 공허한 소리예요. 본인이 변하고자 하지 않으면 어떤 소리도 아무것도 안 들어와요.”

“무엇을 다루든 인간의 삶이 문제”

지난 1996년 장편소설 《새》를 펴낼 때의 오정희.

―요즘 젊은 작가들의 독특하고 난해한 기법의 소설에서는 어떤 느낌을 받는지요. 정말 읽기 어려운 소설들이 많더라고요.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문학은 당대적 삶과 풍속에서 생겨나는 것이라 할 때 이러한 현상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죠. 그러나 세상의 풍속과 삶의 양식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태어나고 살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죽는 인간 본연의 운명과 본질은 변하지 않아요. 그것이 존재하는 한 문학은 진정한 가치추구와 삶의 의미탐구, 성찰과 정화라는 묵직한 고전적 명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요. 어떤 소재를 어떤 식으로 다루든 언제나 인간의 삶이 문제인 것이죠.”

―최근 《성서이야기》라는 새 책을 냈는데 그 책은 어떤 책인가요.

“오래전부터 성경을 좀 읽어봐야지 하고 생각했어요. 인간 기저에 깃든 불안과 고독, 슬픔의 뿌리가 궁금했어요. 중고등학교를 미션스쿨(mission school)을 다녀 성경에 익숙해 있지만 정식세례는 2002년에 받았어요. 그러니까 한 10년 됐죠. 어찌 보면 늦게 받은 거죠. 성당 나가면서도 성경을 읽게 되는데 꼭 한번 작정하고 필사를 해보고 싶었어요. 읽는 것하고 쓰는 것은 다르잖아요. 나같이 모르는 사람 위해 성경의 복잡한 구조나 어려운 말을 쉽게 전달하기 위한 동기였는데 굉장히 조심스러웠어요. 성경 읽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먼저 이 책을 읽으면 이해하는 데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 듦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이가 들어보니까 나를 위해 산다는 게 진정한 평화가 아닌가 싶어요. 세월은 그 평화를 얻기 위한 투자와 헌신이죠. 내부의 평화가 밖에서 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를 위해 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제가 66세거든요. 나는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를 깊이 생각했어요. 이건가 저건가, 그러면 아니고, 좋은 소설 쓰는 거 꼭 그게 다는 아냐. 그럼 또 뭐지, 돈이 많은 거, 그것도 꼭 아냐. 자식 다 잘되는 거 그것도 아냐. 부분 부분들 말고 총체적으로 생각해 볼 때 그게 무얼까, 고민했었죠. 결국 세상을 사랑해야 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하고, 나도 사랑해야 하고, 그런 지점에 닿게 되더라고요.”

―단편 중에 《중국인 거리》가 한영 대역판으로 출간되었는데 한류열풍에 문학도 동참한다고 봐야 할까요.

“현재 실정은 외국에서 한국문학을 접하기가 힘들고 찾기도 어렵잖아요. 어떤 동기와 취지는 있는 거지요. 출판사에서 번역도 잘하고 좋게 만들어 대량보급하려는 거래요. 책값도 6000원으로 하고 한국문학을 영어로 읽으면 영어공부도 자연스레 되고요. 계간 아시아라는 출판사에서 냈는데 단편이어서 아주 얇은 책이에요. 출판사에서 이런 책을 지속적으로 내서 뿌린다고 하니까, 한류열풍에 한국문학도 붐을 일으킬 수 있는 분수령이 되지 않을까요.”

―연륜도 쌓이고 그러면 문학관 같은 게 있잖아요. 그것도 소설가로서 사회와 소통할 수 있는 장치인데요. 앞으로 계획은 없나요.

“이런 얘기는 진짜 조심스러운 건데요. 저는 제 이름을 딴 문학관이고 시비(詩碑) 이런 거 정말 싫어요. 그런 일에는 도통 관심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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