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인터뷰] ‘盧武鉉 차명계좌’로 검찰조사 받은 趙顯五前 경찰청장 : 월간조선

조현오(趙顯五) 전(前) 경찰청장이 청장직에서 물러난 때는 지난 4월 30일이다. 제16대 경찰청장에 취임한 지 1년8개월여 만이다.

2010년 8월 경찰청장에 취임하기 직전 그는 호된 시련을 겪었다. 서울경찰청장 재직 시절이던 2010년 3월 서울경찰청 대강당에서 경찰관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특강 때문이었다. 이날 특강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무엇 때문에 사망했습니까. 무엇 때문에 뛰어내렸습니까.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 이 계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차명계좌가, 10만원짜리 수표가,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이 됐는데….”

이 강연의 전체 맥락은 집회 및 시위 관리를 잘하자는 취지였지만 뒤늦게 이날 발언 중 차명계좌 관련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이른바 ‘노무현(盧武鉉) 차명계좌’ 존재 유무 공방이 시작된 것이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 등에서 이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조 전 청장이 이 발언으로 경찰청장 내정 직후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음은 물론이다.

이 강연이 있은 5개월여 후인 2010년 8월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과 노무현 재단은 조 전 청장을 ‘사자(死者)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다. 조 전 청장은 지난해 4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노무현 차명계좌’와 관련한 검찰 신문 서면 답변서를 제출했다.

경찰청장 내정 때도 조 전 청장을 화제의 중심에 서게 했던 ‘노무현 차명계좌’는 현직에서 물러나자마자 다시 그를 화제의 중심으로 불러냈다. ‘노무현 차명계좌’와 관련 청장 퇴임 직후인 지난 5월 9일 청장 재직 시절처럼 서면이 아닌 민간인 신분으로 검찰에 직접 출두해 조사를 받게 돼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의 입을 주목했고 《동아일보》 5월 4일자 1면에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 “어느 은행, 누구인지 다 까겠다”>는 제하(題下)의 기사가 실렸다.

이 보도 후 검찰에 출두하는 조 전 청장을 향한 언론의 관심은 더 뜨거워졌다. 《동아일보》의 보도대로 ‘다 깐다’면 사회적·정치적 파장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와 같은 유사한 보도들이 조 전 청장의 검찰 출두 때까지 이어졌다.

지난 5월 9일 밤늦게 검찰조사를 마치고 나오는 조 전 청장을 취재해 언론들이 보도한 내용은 ‘송구스럽다’, ‘후회한다’ 등의 조 전 청장 발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읽혔다. ‘차명계좌’의 존재 여부를 놓고 조 전 청장과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진검 승부를 기대했던 언론들로서는 김빠지는 이야기였다. 이어지는 보도들도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차명계좌 발언은 허위 또는 과장’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었다. 과연 그런가.

검찰조사 후 고향(부산)으로

2012년 5월 9일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 등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중앙지검에 출두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

조 전 청장과는 검찰조사를 받은 다음 날인 5월 10일 저녁 연락이 닿았다. 그는 고향인 부산에 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우리는 이틀 후인 12일 오후 부산 해운대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건은 경찰관으로서 지내오면서 겪고 느꼈던 소회도 함께 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만나기 하루 전인 11일 이른 아침 그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차명계좌 관련 발언은 일절 않을 겁니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저녁에는 전화를 걸어왔다. “모 라디오 방송이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질문지를 보내왔는데 ‘악의적’”이라는 것이었다. 그의 어투에서 자신의 검찰 출두와 관련된 언론들의 보도를 ‘악의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화 통화 중 그는 “그런 식의 취재면 오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 날 오후 우리는 봄철인데도 인파로 가득한 해운대 백사장이 보이는 곳에 마주 앉았다. 고향에 와 있어서인지 그의 얼굴은 편해 보였다. “형님과 누님들이 아직 부산에 살고 있어서 공직생활을 잘 마쳤다는 인사도 하고 쉬기도 할 겸해서 부산에 왔는데 역시 고향에 오니까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사실은 서울에 있으면 기자들 등쌀이 너무 심해서 피해온 것도 한 이유죠”하며 “허허” 웃었다. 하루 전 전화기 너머로 훔쳐봤던 모습과 달리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진 이 사내는 평상심을 완전히 회복한 것 같았다.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차명계좌 관련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죠?”

―저는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을 뿐인데요.

조 전 청장은 말머리를 돌려 청장 재직 시절 《조선일보》와 갈등을 빚게 된 일 등을 길게 설명했다.

말을 마치고 그는 “여기까지 부득이한 사정으로 기차도 아니고 승용차로 7시간을 달려서 왔는데 성의를 봐서라도 차명계좌와 관련해 한두 마디만이라도 해주시죠”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기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검찰에 다녀온 후 차명계좌와 관련된 발언이 허구 내지는 과장이라는 게 언론들의 시각인 것 같습니다.

“내가 그런 이야기(차명계좌) 안 한다고 했는데….”

잠시 침묵이 흐른 후 그는 갑자기 생각이 떠오른 듯 “이 이야기는 《월간조선》에서 꼭 써주시면 좋겠습니다”하며 말을 이었다. 《동아일보》 5월 4일자 1면에 실린 <조현오 전 경찰청장 “어느 은행, 누구인지 다 까겠다”>는 제하 기사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차명계좌 이야기로 넘어갔다.

“다 까겠다”고 말한 적은 없어

2012년 4월 30일 경찰청에서 열린 이임식 후 조 청장이 경찰청을 떠나며 도열한 직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 1면 톱을 보면 내가 ‘다 까겠다’고 말한 것으로 돼 있잖아요. 나는 그런 표현을 결코 사용한 적이 없어요.”

―작문(作文)이라는 말입니까.

“내용은 뭐 대충 맞아요. 기자가 검찰에 들어가 조사받을 때 어떻게 대답할 거냐고 자꾸 묻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한 이야기가 ‘내가 현직 경찰청장으로 있을 때 자꾸 송구스럽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검찰에 직접 가서 조사를 받을 때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으냐, 검찰조사 받을 때는 어느 은행에 누구 명의의 계좌, 이 정도는 밝힐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한 이야기가 답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그렇게 표현한 거죠.”

―언뜻 듣기에는 그게 그 말인 것 같은데요.

“내가 그 기자한테 전화를 걸어서 ‘어떻게 그렇게 원색적이고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가지고 나를 천박한 사람으로 만드느냐’고 항의를 했어요. 나하고 가까운 사람들도 표현을 왜 그렇게 원색적으로 했느냐고 하더라고요. 내용을 보면 맞는 이야기이고 내가 한 이야기지만 ‘다 까겠다’에서 ‘다’라는 말도 ‘까겠다’는 자극적인 말을 한 적도 없는데 그걸 그런 식으로 자극적이고 원색적으로 쓰면 내 개인적으로는 좀 그렇죠.”

―검찰에 갔다온 후 “후회스럽다”, “노무현 대통령 유족에게 송구스럽고 미안하다”고 말한 진짜 의미는 어떤 겁니까. 없는 차명계좌를 있다고 해서 “후회스럽고 송구스럽다”는 말이었습니까.

“그것도 내가 이야기를 할게요. 검찰조사를 받고 나오면서 내가 ‘검찰수사 받고 나오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자꾸 이야기하니까 기자들의 질문이 ‘그럼 차명계좌 진위 여부를 떠나서 유족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조 전 청장은 《월간조선》 2010년 11월호와 인터뷰에서 차명계좌의 진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거 이야기 않겠습니다. 지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에게 죄송스럽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했다) 지금도 저는 나의 부적절한 발언 때문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는 아주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계속 그렇게 말해 왔잖아요?”

―“후회한다” 이런 발언은 차명계좌의 존재 유무(有無)와는 상관없는 발언이다?

“그날 강연은 내가 집회 및 시위 관리를 잘하자고 한 것이지 노 전 대통령을 비난하고 유족들 비난하자고 한 것은 아니잖아요. 어쨌든 나 자신은 물론이고 많은 국민들,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많은 사람에게 내 부적절한 발언 때문에 논란이 되게 만든, 거기에 대해서 후회를 하지, 그걸 잘했다고 생각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걸 내가 당연히 후회한다고 했죠. 유족들한테 송구스러운 생각은 당연히 지금 이 순간까지도 가지고 있습니다.”

―실체적 진실은 뭡니까.

조 전 청장의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지금 검찰수사가 진행 중인데 검찰수사 단계에서는 진실 여부, 즉 차명계좌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여부가 논란의 핵심이잖아요? 그러면 문제가 거기로 가야죠. 정서나 감정 문제를 실체적 진실 문제하고 같이 오버랩시켜가지고 내가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 후회를 한다, 이렇게 해가지고 마치 내가 차명계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완전히 틀리죠. 나는 분명히 이야기하지만 거짓말하는 것을 굉장히 혐오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만약 착오에 의해서 그 차명계좌가 없는 것을 있다고 이야기했고, 지금 언론에서 이야기한 10만원짜리 수표 20장 가지고 거액(巨額)의 차명계좌라고 이야기했다면 나는 벌써 사과를 하고 경찰청장을 그만두었든지 그런 조치를 취했을 겁니다.”

이어지는 조 전 청장의 말이다. 그는 자신의 검찰 출두 후 ‘노무현 차명계좌’ 사건을 바라보는 일부 언론의 시각이 잘못됐음을 거듭 지적했다.

“지금 차명계좌가 있는가, 그 진위 여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내가 후회를 한다는 것은 달라요. 내가 그런 발언을 안 했으면 이런 논란에 휩쓸리지 않았을 것이고, 인사청문회 때도 순탄하게 잘 넘어갔을 거고, 청장을 그만두고서도 검찰조사를 안 받았을 거고, 내 개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 경찰조직을 위해서도 그렇고, 국민들께도 그렇고, 내가 얼마나 홀가분하고 부담이 없겠어요. 그런 면에서 내가 후회를 한다고 한 것이죠. 또 여러 번 이야기한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과 유족들께 송구스럽다는 마음은 차명계좌 진실 여부를 떠나 가지고 있죠. 차명계좌가 있다고 나는 확신을 하는 사람인데, 분명히 있습니다. 있는데, 이걸 나중에 다 밝혀졌다고 해서 노무현 대통령과 그 유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송구스러운 마음이 없어지겠습니까. 내가 그걸 이야기한 겁니다.”

盧 대통령 측과 訴 취하 위해 노력했지만

―언론이 팩트와 감정의 문제를 혼동한다?

“그렇죠. 그건 어디까지나 틀리죠. 나는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거짓말을 굉장히 혐오한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했고 우리 직원들한테도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해왔습니다. 나는 내 개인적인 이해관계,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이런 거를 굉장히 혐오합니다.”

―지난해 검찰 서면 답변에서 이미 ‘노무현 차명계좌’ 해당 은행과 계좌에 대해 밝혔다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그건 아니에요. 그 당시는 내가 소(訴)를 취하시키려고 (노무현 대통령 측과) 나름 노력을 하던 때였습니다. 그 단계에서 검찰에 그런 답변서를 냈다가 이야기가 밖으로 아주 악의적으로 새나가 버리면 소를 취하시키려던 그런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 버리기 때문에 서면 답변에서 밝히지는 않았어요. 그거는 잘못된 거예요. 이제 차명계좌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합시다.”

조 전 청장이 몸을 뒤로 젖혔다.

―하나만 더요. 차명계좌와 관련된 정보는 경찰 내부 정보였나요?

“그런 보도가 있는데 사실하고 틀려요. 내가 뭐 ‘내부 정보 보고받고 했다. 10만원짜리 20장 그거 가지고 이야기했다’ 그러는데 그거 다 실체적 진실하고 틀려요. 조금만 확인하면 되는 일인데 그렇게 악의적으로 거짓을 이야기하면서 허위 보도를 하면 그건 굉장히 잘못된 거죠.”

―노무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한 대검찰청 중수부 수사기록을 공개하면 다 해결될 일 아닌가요?

조 전 청장은 기자의 녹음기를 끄라고 했다. 사건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한 후 그는 녹음을 다시 허용했다. 녹음이 허용된 후에 이어진 그의 이야기다.

“이 차명계좌 문제가 검찰수사로까지 진전된 것을 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내가 여러 차례 이야기했잖아요. 내 개인을 위해서도 그렇고 유족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해서도 그렇고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걸 다시 꺼내가지고 누구한테 득이 되겠습니까. 저로서도 괴롭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족분들한테도 결코 유쾌한 일이 안 되지 않습니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따랐던 이런 사람들한테도 얼마나 바람직하지 못합니까. 그런데 참 이게 나름 (소 취하) 노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검찰수사를 받게 되고 국민적 핫이슈가 된 사태에 대해서 안타깝습니다.”

말을 멈추었던 그가 불현듯 생각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내 이런 말이 ‘차명계좌가 없다’는 이야기하고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 측근들이나 유족들이 고소한 게 결과적으로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 아닙니까.

“거기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않겠습니다.”

조 전 청장은 “차명계좌 이야기는 정말 그만하자”며 손사래를 쳤다. 그는 자신이 경찰청장 재직 중의 일을 이야기하자고 했다.

황운하 총경 승진 청와대 민정 측이 반대했지만

수원 여성 피살사건 등 경찰 기강이 문제가 되고 있던 2012년 4월 13일 경찰청에서 전국 경찰지휘부 회의가 열렸다.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과 이강덕 서울경찰청장 등 참석자들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1년8개월간 경찰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이룬 경찰개혁 중 가장 높게 평가받는 분야 중 하나가 인사개혁이다.

―경찰청장 재임 1년8개월 동안 수많은 경찰개혁 과제 중 ‘인사 정의(正義)’로 표현되는 인사개혁에 상당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경찰 부패의 진원지가 인사 문제예요. 그래서 경찰서장 시절부터 공정하고 투명하게 인사를 했다고 자부합니다. 서울청장 시절 인사 청탁한 사람 16명을 내가 공개한 적도 있잖아요. 대통령께서도 제가 서울청장 시절부터 인사를 공평하게 잘한다고 칭찬한 것으로 알고 있고요. 특히 임태희(任太熙) 대통령 실장과 정진석 정무수석 이 두 분은 내가 소신대로 인사를 하는 데 굉장히 힘을 실어줬어요. 100% 내 뜻대로 인사를 했습니다.”

―100% 자신의 뜻대로 인사를 했다고 하지만 경찰 수사권 독립의 상징적 인물인 황운하 현(現) 경찰청 수사기획관의 경무관 승진은 청와대 정무와 민정라인에서 강하게 반대해 무산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황 총경의 경무관 승진 문제를 놓고 관행상 서울에서 경찰서장을 안 한 사람을 승진시키는 것은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서장도 안 한 사람을 승진시키면 너무 자의적으로 인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이 많았죠. 내가 그 의견을 수용한 겁니다.”

―청와대 쪽에서 그런 주장을 한 겁니까.

“그쪽 이야기도 있었고 우리 경찰 내부의 의견도 그랬습니다. 당시 대통령 실장과 정무수석 두 분은 나한테 ‘조 청장이 황 총경을 승진시키려면 시켜라’고까지 했습니다. (황 총경 승진 보류는) 내가 결정한 겁니다.”

―검찰 출신 수석이 있는 민정에서는 황 총경 승진을 반대한 것이 맞지 않나요.

“그쪽에서 안 된다고 이야기할 때는 내면적으로는 어떤 이유를 갖고 이야기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관행에 어긋나고 기본원칙을 지키는 데 무리를 주는 인사를 하는 것은 ‘인사 정의’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고, 제가 결정했습니다.”

―당시 황운하 총경에게는 그런 인사 배경을 설명해 주었습니까.

“직접 이야기해 주었죠. 본인도 이해를 했고요.”

제대로 먹힌 “인사 청탁자 이름 공개하겠다”

지난해 6월 20일 국회 사법개혁특위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

―국회의원 10여 명으로부터 인사 청탁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하나만 이야기하면 청탁 전화가 오면 ‘내가 청탁하는 사람의 이름을 공개한다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해 주면 협조들을 잘해 주셨습니다.”

―경찰청장 취임 초기 경찰 인사권을 지방청장에게 대폭 이양하겠다고 했는데 약속대로 했습니까.

“실제로 대폭 인사권을 이양했습니다. 내가 승진시키고 싶은 사람도 승진시키지 못할 정도로 인사권을 넘겨줬습니다. 인사를 권력이라고 생각하고 휘두르려고 하면 인사권자도 망가지고 그 조직도 망가진다는 게 제 일관된 생각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그 수장의 권력은 인사권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과 원칙이 있고 정해진 기준에 따라 인사가 돼야지 자의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이 인사에 개입되면 그 조직은 망가집니다. 나는 보복 인사도 하지 않았어요. 직전 청장 시절 나를 음해했던 사람들도 안고 갔고 그 사람들을 승진까지 시켰습니다. 보복 인사를 하지 않아야 줄을 서지 않습니다. 그러면 조직이 분열되는 것은 당연지사고요. 능력과 성과가 인사의 기준이 됐는데 성과를 공개해서 인사권자의 자의적인 호불호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없앴습니다. 지방청장이 추천한 순서 그대로 승진시켰습니다.”

―그래도 지방청장들 입장에서는 청장 눈치를 보게 되지 않나요?

“16개 시·도 지방청장 대부분은 내 뜻에 따라 자기가 직접 인사안을 올리는데 일부 지방청장이 ‘청장님, 이렇게 올려도 되겠습니까’ 하는 경우가 없었던 것은 아니죠. 내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게 받아들여졌고요.”

경찰 수사권 독립으로 상징되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는 두 기관 마찰의 원인인 동시에 서로 시원하게 풀지 못하는 오랜 숙제다. 지난해 6월 수사권 조정안이 처음 발표됐을 때 경찰 내부에서는 ‘개악’이라며 거센 반발이 일기도 했지만 조현오 전 청장은 역대 어느 청장보다 수사권 조정 문제 해결에 앞장을 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경백 사건을 검경 갈등으로 보면 안 돼

‘노무현 차명계좌’ 발언과 관련 조 전 경찰청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렀다. 경찰청장에 내정된 후인 2010년 8월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을 하고 있는 조 전 청장.

―수사권 조정 문제에 있어서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까.

“기대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우리 경찰이 수사 주체성을 엄연히 인정받았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경찰 내부에서조차 반발이 컸는데요.

“나한테 경찰청장을 그만두라고까지 했어요. 그래서 ‘그만두겠다. 하지만 너희같이 국가와 국민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경찰 입장만을 생각하는 극단주의자들을 쳐내고 그만두겠다’고까지 하는 일이 있었죠. 앞으로 수사권 조정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좀 더 본질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본질적인 접근이라는 게 어떤 방향을 말하는 겁니까.

“수사권 조정 문제는 지금 내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경찰청장이 수사 구조 개혁 문제를 강하게 밀어붙이니까 불편해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모르겠습니다. 경찰과 검찰이 자꾸 부딪치고 그러니까 어느 대통령이 맘 편할 수가 있겠습니까(웃음).”

―검찰이 복역 중인 ‘룸살롱 황제’ 이경백씨와 경찰의 유착 관계를 파헤치고 있습니다. 경찰에서 수사를 했던 사건이지만 검찰로 넘어가면서 이경백씨와 유착됐던 경찰들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검경 대립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데요.

“그건 국가와 국민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경백 사건은 우리 경찰이 강력한 자정 의지를 갖고 수사를 했기 때문에 12년 동안 수면 밑에 숨어 있던 사건이 떠오른 겁니다. 2007년 경찰청 특수수사과에서도 수사를 했지만 이경백 구속에 실패를 했던 일이 있습니다. 이 사건은 내가 직접 황운하 총경에게 수사를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구속시킬 수 있었고 그와 유착된 경찰을 찾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이경백이 경찰에서는 제대로 자백하지 않던 경찰과의 유착 관계를 검찰에 가서 털어놓았는데요.

“이경백은 관계 공무원에게 뇌물, 성매매 알선 등으로 유착고리를 형성해 대한민국에서 자기를 건드릴 사람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던 자예요. 그걸 우리 경찰이 구속시켰는데 자기가 빠른 시일 안에 당연히 풀려날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죠. 그래서 경찰에서 자백을 하지 않고 있다가 징역 3년6월에 추징금 30억원을 선고받고 나니까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돌아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경찰관들의 이름을 슬슬 대기 시작한 거죠. 물론 이경백 사건이 발생한 시기는 과거의 일이지만 우리 경찰은 부끄럽게 생각하고 반성하고 질책받아 마땅하죠. 그래도 이경백 사건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 것이 우리 경찰이었다는 사실만은 바뀌지 않습니다.”

청장직 언제든 그만둘 준비돼 있었다

―지난해 연말 포항 출신 인사의 후임 경찰청장 내정설이 돌았는데 그때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까.

“나는 청장에 취임하면서부터 청장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을 단 하루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자리에 붙어 있지 않겠다, 직위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습니다. 지난 연말에 내 잔여 임기, 후임 청장의 임기 등을 고려해 볼 때 교체되겠구나, 하는 생각은 했습니다.”

―수원 20대 여성 토막살인 사건이 청장직 사퇴에 직접적인 요인인데 청와대에서 경질 통보가 온 건가요?

“사퇴는 제가 먼저 결정했어요. 이 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니까 누군가 책임을 져야 했고 그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경찰청장인 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내 뜻을 이야기하고 다음 날 군에서 외박 나온 아들에게도 ‘내가 그만둬야겠다’고 했죠.”

―스스로 사퇴 결심을 하긴 했지만 청와대에서도 경질 통보는 왔던 거죠?

“그것은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스스로 사퇴를 결심하기 전 청와대가 정무적으로 경질 결정을 먼저 한 것은 아닌가 해서요.

“그건 아닙니다. 내 양심을 걸고 이야기합니다.”

조 전 청장은 디도스 특검팀에 의해 출국정지를 당한 상태다. 경찰의 디도스 수사 당시 청와대의 압력을 받아 수사의 은폐, 축소를 지시했다는 이유다. 조 전 청장은 이와 관련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이 은폐, 축소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데.

“내가 은폐, 축소를 지시했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나는 디도스 수사 당시 우리 직원들에게 ‘민주주의의 근간을 해치는 선거제도를 무력화시키려는 이런 짓은 사명감을 가지고 반드시 철저하게 밝혀내 처벌해야 한다’고 얘기를 열 번 스무 번 했어요. ‘경찰 조직의 자존심을 걸고 수사해라. 적당히 해서 검찰로 넘겨서 우리가 못 밝힌 것 검찰이 밝혀내면 수사권 독립 문제 가지고 이러고 있는데 들 낯이 없어진다’고 거듭 강조했죠.”

―당시 청와대 김효재(金孝在) 정무수석하고 전화통화를 했다면서요.

“내가 김효재 수석으로부터 불법적이고 부당한 지시를 받아서 사건을 축소, 은폐할 사람으로 보입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통화는 두 번 했어요. 은폐, 축소가 아니라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전화였습니다. 나는 그런 식으로 경찰 생활한 적 없는 사람입니다.”

―경찰청장을 장관 직급으로 격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그 가능성은 보고 퇴임한 건지요.

“꼭 필요한 일입니다. 총선이나 대선에 공약이 될 수 있도록 나름 노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야당까지 넘나들면서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정치 얘기 나온 김에, 앞으로 국회의원 출마할 생각은 없습니까.

“총선도 다 끝났는데 국회의원은 무슨… 당분간은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고문직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무보수 봉사직이죠. 저는 지금까지 정치권 기웃거리면서 살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기웃거리지 않을 겁니다. 다만 모든 것이 물 흐르듯 순조롭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런 계기가 있거나 기회가 오면 그때는 생각해 볼 겁니다.”

인터뷰 말미 조 전 총장에게 또 물었다.

―‘노무현 차명계좌’ 관련 발언은 사실에 부합하는 내용입니까.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숨을 고른 그가 대답했다.

“거듭 말하지만 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이해관계 도모를 위해 거짓말하는 사람을 굉장히 혐오합니다.”

여전히 그의 목소리는 듣기에 좋은 중저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