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성공에는 노력이라는 조건이 뒤따른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꾸준함을 더한다면 그 성공은 큰 성공이 됩니다.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준비하다 보면 설혹 잘못된다 하더라도 고양이는 그릴 수 있지요. 아무것도 그리려 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 세계 최초로 전기공급 중단 않고 검사하는 無停電檢査 개발
⊙ 예방차원의 新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 학창시절 가난 이겨내기 위해 詩 외워… 현재 詩 수백 편 암송
朴鐵坤
⊙ 60세. 방송대·한양대 졸업, 한양대 행정학 석사, 전주대 법학박사.
⊙ 行試 25회. 총무처 사무관, 국무조정실 기획총괄과장·총괄심의관·기획관리조정관·규제개혁기획단장,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 한양대 행정대학원 특임교수, 한국조폐공사 비상임이사 역임.
⊙ 세계 최초로 전기공급 중단 않고 검사하는 無停電檢査 개발
⊙ 예방차원의 新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 학창시절 가난 이겨내기 위해 詩 외워… 현재 詩 수백 편 암송
朴鐵坤
⊙ 60세. 방송대·한양대 졸업, 한양대 행정학 석사, 전주대 법학박사.
⊙ 行試 25회. 총무처 사무관, 국무조정실 기획총괄과장·총괄심의관·기획관리조정관·규제개혁기획단장,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 한양대 행정대학원 특임교수, 한국조폐공사 비상임이사 역임.
한국전기안전공사(사장 박철곤)는 일반인들에게 이름부터 낯설다. ‘전기’ 하면 대부분 한전(한국전력)만 떠올린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전기안전공사의 역할은 작지 않다. 정전(停電)이나 누전(漏電)이 발생했을 때 긴급 출동해 조치를 취하는 이들이 바로 전기안전공사 직원들이다. 전기안전 분야의 소방관인 셈이다.
한국전기안전공사(서울 강동구 명일동 소재) 본사에서 만난 박철곤(朴鐵坤·60) 사장은 ‘스피드콜 제도’를 한참 설명했다.
“1588-7500번을 누르면 우리 직원이 곧바로 달려갑니다. 특히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신경을 많이 씁니다. 전 국민이 이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전기, 좀 압니다”
―전기안전공사에 대해 모르는 이가 많습니다. 기자인 저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전력과 혼동하는 분이 많죠. 한전이 전기를 생산·공급하는 기관이라면, 저희는 건물 안으로 들어온 전기가 안전하게 사용되도록 하는 모든 업무를 관장합니다. 전기의 안전한 사용을 책임지는 ‘종합병원’이지요.”
―작년 9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전기안전공사에도 비상이 걸렸겠군요.
“당시 사고는 전기 생산과 공급 과정에서 발생했어요. 우리 공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전국사업소에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습니다. 정전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죠.”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진짜’ 이유는 뭡니까.
“글쎄요.”
박 사장은 “곤란한 질문”이라며 답을 피했다.
박철곤 사장은 30여 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국무총리실에서 보낸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다. 2009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한 후 작년 6월 공기업 CEO로 변신했다.
―고위공무원 출신인데 ‘전기’와는 인연이 없는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낙하산 인사, 비(非)전문가냐고 물어보는 거죠?”
―네.
박 사장은 통 크게 웃었다. 그런 후 이렇게 답했다.
“그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과 착각에 불과해요. 전기안전공사 사장이 현장에서 직접 배전반(配電盤)을 다루고 안전검사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평생을 행정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국가조직을 관리하고 정책을 결정·집행했습니다.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업무를 부여받은 전기안전공사를 운영하는 것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아요. 행정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 저는 전기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요. 취임 직후 기술파트 직원들이 전기의 ABC를 가르쳐주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전문용어를 영어로 받아쓰고 문장으로 만들어 질문까지 하니까 놀라더군요. 국무총리실에 있으면서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전기, 좀 압니다.”
―작년 여름 폭우로 서울시내에 산사태가 나고 도시 전체가 홍수로 난리가 났습니다. 전기안전 사고도 많이 발생했는데.
“취임 직후였어요. 밤샘을 여러번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복구지침을 내리는 한편, 직원들과 침수가옥을 직접 찾아갔어요. 수해가 나면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전기입니다. 물이 가득 찬 침수 현장에는 감전 위험도 없지 않아요. 어두컴컴한 침수 현장에 우리 직원들이 전선(電線)을 끌어다 전기를 복구해 드리니까 다들 ‘와’ 하고 정말 기뻐하더군요.”
총리실의 해결사
박철곤 사장은 행정고시 합격 후 사무관 시절부터 줄곧 총리실에서 근무했다. 시쳇말로 ‘뼛속까지 총리실 공무원’인 것이다. 국무차장 시절 그는 정부의 주요 현안을 직접 관장했다. 그가 겸직한 직책이 한두 개가 아니다.
국가정책조정실무회의 의장, 쌀직불금 부정수급 대책팀 단장, 여수엑스포 정부지원실무위원장, 노사갈등대책지원협의회 의장, 먹을거리안전확보팀장, 기후변화대책기획단장, 성매매방지대책추진점검단장….
그는 한때 전 세계를 위협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정부 대책반 팀장으로서 몸으로 위기를 막았다.
박철곤 사장은 공무원 시절 ‘총리실의 해결사’라 불렸다.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때면 예외 없이 그가 해결사로 나섰다. 박 사장의 설명이다.
“조정하고 협상하는 능력이 있었나 봐요. 총리실은 정부와 민간, 정부와 언론, 청와대와 중앙부처 등 각 분야의 중요 사안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총리실 공무원은 정부 시각만으로 국민을 봐서는 안 되고, 국민이나 민간기관 입장만 생각해서도 안 돼요. 저는 갑(甲)도, 을(乙)도 아닌 중간자 입장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안 풀리는 일이 없더군요. ‘총리실 해결사’라는 별명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공무원 같지 않은 공무원’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으로 온 후 가장 먼저 해결한 일은 뭐였습니까.
“조직 분위기에 문제가 있었어요. 전기안전이라는 업무 특성 때문인지 직원 다수(多數)가 경직된 사고(思考), 틀에 박힌 생각을 많이 하더군요. 그래서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라’고 주문했죠.”
―반대하지 않던가요.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잘 해결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저의 생각을 이해하고 따라주더군요.”
―취임 후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은 뭡니까.
“전기안전공사의 업무는 대부분 전기 사고를 복구하고 관리하는 겁니다. 앞으로는 업무 방향을 바꿔 보려고 해요.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사전적, 예방적 차원의 신(新)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글로벌 역량을 높여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길도 찾고 있어요.”
―얼마 전 중동 출장을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인가요.
“해외 일감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런 사례가 있었어요. 해외 건설현장을 책임진 우리 기업이 전기검사 부분을 외국업체에 도급을 줬는데 3개월이 넘게 해결을 못하다가 우리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한달 만에 끝냈습니다. 현장 감독이 ‘한국에선 전기검사를 귀찮은 일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기술로 회사 일을 도와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답니다. 그 후 여러 기업으로부터 ‘컨소시엄으로 해외사업에 같이 뛰자’는 제안까지 받았어요. 달러도 벌고 우리 기업들에 도움도 줄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전기안전과 관련한 우리의 노하우가 선진국이나 개도국에서 존경받을 정도입니다.”
주식시장형 인사시스템 도입
최근 전기안전공사는 무정전검사(無停電檢査·Power On Inspection) 시스템을 구축, 현장에 선보이고 있다. 이 검사기법은 운전 중인 전기설비에 정전(停電)을 수반하지 않은 채 안전검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수준이라고 한다. 제철소, 반도체 공장 등 24시간 가동되어야 하는 산업현장의 경우, 정전상태로 전기검사를 할 때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안전공사는 무정전검사 기술을 개발해 와 최근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
박철곤 사장은 취임 후 신입사원 채용방식을 확 바꿨다. 고졸자 30% 의무채용과 인턴사원의 정규직 채용이 그것이다.
“저희 공사는 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격증만 있으면 고졸이든 대졸이든 상관없어요. 자격증만 있다면 고졸 출신도 30% 이상 할당해 채용할 생각입니다. 또 앞으로는 채용을 전제로 인턴사원으로 뽑아 능력과 품성이 검증된 사람을 신입사원으로 쓸 생각입니다. 젊은이들이 젊은 나이에 곧바로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블루칩 인재 발탁 시스템을 실시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입니까.
“주식시장형 인사시스템이라고 보면 됩니다. 블루칩(우량주)에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고 수요자들이 몰리는 것처럼, 간부들에게 신망과 평판이 좋은 인재를 팀원으로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처장은 같이 일할 팀장을, 팀장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할 차장을 직접 선발하는 방식입니다.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우수 인재를 업무 일선으로 끌어내기 위한 조치입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우대받는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박 사장은 “CEO로 취임한 후 출신 지역, 출신 대학 등을 따지지 않고 ‘능력’ 위주의 인사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 공허(空虛)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의 이력(履歷)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사장은 자신을 소개할 때 “고시3관왕 출신입니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시(行試), 사시(司試), 외시(外試)가 아니라, 두 차례의 검정고시와 행정고시를 합쳐 그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사실 그의 농담 속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두 차례의 검정고시, 그리고 행정고시
박 사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전북 진안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 시절 학비가 없어 학교를 제때 졸업할 수 없었다.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한 후 그는 부산진고에 다니다 다시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쳐야 했다.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고 나서는 신문배달과 막노동을 하며 저녁에는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해 대학 과정을 끝냈다. 이후 그는 한양대에 편입해 학사학위를 갖게 된다. 방송대와 한양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며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중·고등학교도 어렵게 졸업했는데 일반 대학을 꿈이나 꾸겠습니까. 시쳇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했지요.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그랬더니 ‘행정고시’라는 문이 성큼 열리더군요. 두 차례의 검정고시와 행정고시, 이른바 ‘고시3관왕’이라는 타이틀만 봐도 제가 자란 환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워야 했어요. 굶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저는 모든 성공에는 노력이라는 전제조건이 뒤따른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꾸준함을 더한다면 그 성공은 큰 성공이 됩니다.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준비하다 보면 설혹 잘못된다 하더라도 고양이는 그릴 수 있지요. 아무것도 그리려 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박 사장은 시(詩)를 암송하는 공무원으로 유명했다. 그는 학창시절 힘들 때면 시를 외웠다고 한다. 그가 암송하는 시는 수백 편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를 버릇처럼 외웠어요. 그게 지금은 큰 도움이 돼요.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상황에 맞는 시를 낭송하면 다들 좋아해요. 시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서로 공감하는 데 묘한 매력을 갖고 있지요.”
박철곤 사장은 현재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정무직 퇴직자 모임인 ‘선진한반도포럼’의 간사를 맡고 있다.⊙
한국전기안전공사(서울 강동구 명일동 소재) 본사에서 만난 박철곤(朴鐵坤·60) 사장은 ‘스피드콜 제도’를 한참 설명했다.
“1588-7500번을 누르면 우리 직원이 곧바로 달려갑니다. 특히 사회 취약계층을 위해 신경을 많이 씁니다. 전 국민이 이 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전기, 좀 압니다”
―전기안전공사에 대해 모르는 이가 많습니다. 기자인 저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전력과 혼동하는 분이 많죠. 한전이 전기를 생산·공급하는 기관이라면, 저희는 건물 안으로 들어온 전기가 안전하게 사용되도록 하는 모든 업무를 관장합니다. 전기의 안전한 사용을 책임지는 ‘종합병원’이지요.”
―작년 9월 사상 초유의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을 때 전기안전공사에도 비상이 걸렸겠군요.
“당시 사고는 전기 생산과 공급 과정에서 발생했어요. 우리 공사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사태가 끝날 때까지 전국사업소에 ‘비상대기’ 명령을 내렸습니다. 정전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서였죠.”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한 ‘진짜’ 이유는 뭡니까.
“글쎄요.”
박 사장은 “곤란한 질문”이라며 답을 피했다.
박철곤 사장은 30여 년의 공직생활 대부분을 국무총리실에서 보낸 정통 행정관료 출신이다. 2009년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차관급)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한 후 작년 6월 공기업 CEO로 변신했다.
―고위공무원 출신인데 ‘전기’와는 인연이 없는 것 아닙니까.
“한마디로 낙하산 인사, 비(非)전문가냐고 물어보는 거죠?”
―네.
박 사장은 통 크게 웃었다. 그런 후 이렇게 답했다.
“그건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과 착각에 불과해요. 전기안전공사 사장이 현장에서 직접 배전반(配電盤)을 다루고 안전검사를 하는 건 아닙니다. 저는 평생을 행정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국가조직을 관리하고 정책을 결정·집행했습니다.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라는 업무를 부여받은 전기안전공사를 운영하는 것도 큰 틀에서 다르지 않아요. 행정의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해요.
또 하나, 저는 전기에 대해서도 많이 알아요. 취임 직후 기술파트 직원들이 전기의 ABC를 가르쳐주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들의 전문용어를 영어로 받아쓰고 문장으로 만들어 질문까지 하니까 놀라더군요. 국무총리실에 있으면서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전기, 좀 압니다.”
―작년 여름 폭우로 서울시내에 산사태가 나고 도시 전체가 홍수로 난리가 났습니다. 전기안전 사고도 많이 발생했는데.
“취임 직후였어요. 밤샘을 여러번 했습니다. 직원들에게 복구지침을 내리는 한편, 직원들과 침수가옥을 직접 찾아갔어요. 수해가 나면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전기입니다. 물이 가득 찬 침수 현장에는 감전 위험도 없지 않아요. 어두컴컴한 침수 현장에 우리 직원들이 전선(電線)을 끌어다 전기를 복구해 드리니까 다들 ‘와’ 하고 정말 기뻐하더군요.”
총리실의 해결사
박철곤 사장은 행정고시 합격 후 사무관 시절부터 줄곧 총리실에서 근무했다. 시쳇말로 ‘뼛속까지 총리실 공무원’인 것이다. 국무차장 시절 그는 정부의 주요 현안을 직접 관장했다. 그가 겸직한 직책이 한두 개가 아니다.
국가정책조정실무회의 의장, 쌀직불금 부정수급 대책팀 단장, 여수엑스포 정부지원실무위원장, 노사갈등대책지원협의회 의장, 먹을거리안전확보팀장, 기후변화대책기획단장, 성매매방지대책추진점검단장….
그는 한때 전 세계를 위협했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정부 대책반 팀장으로서 몸으로 위기를 막았다.
박철곤 사장은 공무원 시절 ‘총리실의 해결사’라 불렸다. 민감한 사안이 발생할 때면 예외 없이 그가 해결사로 나섰다. 박 사장의 설명이다.
“조정하고 협상하는 능력이 있었나 봐요. 총리실은 정부와 민간, 정부와 언론, 청와대와 중앙부처 등 각 분야의 중요 사안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총리실 공무원은 정부 시각만으로 국민을 봐서는 안 되고, 국민이나 민간기관 입장만 생각해서도 안 돼요. 저는 갑(甲)도, 을(乙)도 아닌 중간자 입장에서 해결책을 모색하곤 했어요. 그러다 보니 안 풀리는 일이 없더군요. ‘총리실 해결사’라는 별명은 그래서 나온 겁니다. ‘공무원 같지 않은 공무원’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으로 온 후 가장 먼저 해결한 일은 뭐였습니까.
“조직 분위기에 문제가 있었어요. 전기안전이라는 업무 특성 때문인지 직원 다수(多數)가 경직된 사고(思考), 틀에 박힌 생각을 많이 하더군요. 그래서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라’고 주문했죠.”
―반대하지 않던가요.
“다행히 큰 문제 없이 잘 해결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저의 생각을 이해하고 따라주더군요.”
―취임 후 중점적으로 추진해 온 사업은 뭡니까.
“전기안전공사의 업무는 대부분 전기 사고를 복구하고 관리하는 겁니다. 앞으로는 업무 방향을 바꿔 보려고 해요. 단순한 복구가 아니라 사전적, 예방적 차원의 신(新)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할 생각입니다. 글로벌 역량을 높여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길도 찾고 있어요.”
―얼마 전 중동 출장을 다녀온 것도 그 때문인가요.
“해외 일감을 찾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런 사례가 있었어요. 해외 건설현장을 책임진 우리 기업이 전기검사 부분을 외국업체에 도급을 줬는데 3개월이 넘게 해결을 못하다가 우리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 한달 만에 끝냈습니다. 현장 감독이 ‘한국에선 전기검사를 귀찮은 일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훌륭한 기술로 회사 일을 도와줘 너무 감사하다’고 했답니다. 그 후 여러 기업으로부터 ‘컨소시엄으로 해외사업에 같이 뛰자’는 제안까지 받았어요. 달러도 벌고 우리 기업들에 도움도 줄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전기안전과 관련한 우리의 노하우가 선진국이나 개도국에서 존경받을 정도입니다.”
주식시장형 인사시스템 도입
최근 전기안전공사는 무정전검사(無停電檢査·Power On Inspection) 시스템을 구축, 현장에 선보이고 있다. 이 검사기법은 운전 중인 전기설비에 정전(停電)을 수반하지 않은 채 안전검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세계 최초이자 최고의 수준이라고 한다. 제철소, 반도체 공장 등 24시간 가동되어야 하는 산업현장의 경우, 정전상태로 전기검사를 할 때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전기안전공사는 무정전검사 기술을 개발해 와 최근부터 본격적으로 서비스를 하고 있다.박철곤 사장은 취임 후 신입사원 채용방식을 확 바꿨다. 고졸자 30% 의무채용과 인턴사원의 정규직 채용이 그것이다.
“저희 공사는 기술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격증만 있으면 고졸이든 대졸이든 상관없어요. 자격증만 있다면 고졸 출신도 30% 이상 할당해 채용할 생각입니다. 또 앞으로는 채용을 전제로 인턴사원으로 뽑아 능력과 품성이 검증된 사람을 신입사원으로 쓸 생각입니다. 젊은이들이 젊은 나이에 곧바로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블루칩 인재 발탁 시스템을 실시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제도입니까.
“주식시장형 인사시스템이라고 보면 됩니다. 블루칩(우량주)에 더 높은 가격이 매겨지고 수요자들이 몰리는 것처럼, 간부들에게 신망과 평판이 좋은 인재를 팀원으로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죠. 처장은 같이 일할 팀장을, 팀장은 같은 부서에서 근무할 차장을 직접 선발하는 방식입니다. 진흙 속에 묻혀 있는 우수 인재를 업무 일선으로 끌어내기 위한 조치입니다. 성과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고 열심히 일한 사람이 우대받는 기업문화를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봐요.”
박 사장은 “CEO로 취임한 후 출신 지역, 출신 대학 등을 따지지 않고 ‘능력’ 위주의 인사 시스템을 정착시키려고 애를 쓰고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이 공허(空虛)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뭘까.
그의 이력(履歷)에서 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박 사장은 자신을 소개할 때 “고시3관왕 출신입니다”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행시(行試), 사시(司試), 외시(外試)가 아니라, 두 차례의 검정고시와 행정고시를 합쳐 그는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다. 사실 그의 농담 속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숨어 있다.
두 차례의 검정고시, 그리고 행정고시
박 사장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졸업했다. 전북 진안이 고향인 그는 중학교 시절 학비가 없어 학교를 제때 졸업할 수 없었다.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한 후 그는 부산진고에 다니다 다시 검정고시로 학업을 마쳐야 했다. 육군 병장으로 제대하고 나서는 신문배달과 막노동을 하며 저녁에는 방송통신대학에 등록해 대학 과정을 끝냈다. 이후 그는 한양대에 편입해 학사학위를 갖게 된다. 방송대와 한양대에서 행정학을 공부하며 행정고시를 준비했다.
“중·고등학교도 어렵게 졸업했는데 일반 대학을 꿈이나 꾸겠습니까. 시쳇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했지요. 이를 악물고 공부했어요. 그랬더니 ‘행정고시’라는 문이 성큼 열리더군요. 두 차례의 검정고시와 행정고시, 이른바 ‘고시3관왕’이라는 타이틀만 봐도 제가 자란 환경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어릴 적부터 지긋지긋한 가난과 싸워야 했어요. 굶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저는 모든 성공에는 노력이라는 전제조건이 뒤따른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꾸준함을 더한다면 그 성공은 큰 성공이 됩니다. 호랑이를 그리기 위해 준비하다 보면 설혹 잘못된다 하더라도 고양이는 그릴 수 있지요. 아무것도 그리려 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박 사장은 시(詩)를 암송하는 공무원으로 유명했다. 그는 학창시절 힘들 때면 시를 외웠다고 한다. 그가 암송하는 시는 수백 편이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를 버릇처럼 외웠어요. 그게 지금은 큰 도움이 돼요. 모임이나 술자리에서 상황에 맞는 시를 낭송하면 다들 좋아해요. 시는 사람의 마음을 얻고 서로 공감하는 데 묘한 매력을 갖고 있지요.”
박철곤 사장은 현재 이명박(李明博) 정부의 정무직 퇴직자 모임인 ‘선진한반도포럼’의 간사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