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무장 독립운동에 투신했지만, 독립운동사에 흔적도 없어”
⊙ 22세 해외 망명 후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에 전념
⊙ 상해 臨政의 군무위원, 홍범도 등과 국내 진공계획 결사대 조직
⊙ 봉오동ㆍ청산리 전투 참가 후 일본군에 쫓겨 자유시로
⊙ “장개석 총통과 절친한 사이로 상해 임시정부 활동 도와”
⊙ 광복 후 북한의 도시경영상, 사법상 지낸 후 정치 무대에서 사라져
⊙ 22세 해외 망명 후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독립운동에 전념
⊙ 상해 臨政의 군무위원, 홍범도 등과 국내 진공계획 결사대 조직
⊙ 봉오동ㆍ청산리 전투 참가 후 일본군에 쫓겨 자유시로
⊙ “장개석 총통과 절친한 사이로 상해 임시정부 활동 도와”
⊙ 광복 후 북한의 도시경영상, 사법상 지낸 후 정치 무대에서 사라져
“이준(李儁) 열사의 외동아들인 이용(李鏞) 장군은 평생 독립운동에 몸바치신 분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분의 이름 한 자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분의 치열했던 일생이 한 번만이라도 제대로 조명을 받았으면 합니다.”
기자는 인천 부평구 삼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인 조근송(趙根松)씨와 마주 앉았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이준 열사는 한국 독립운동사 초반을 비장하게 장식한 인물이다.
이준 열사는 1907년 7월 고종 황제의 특사로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조선침략 행위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려고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이준은 자결로써 이역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조근송씨에 따르면 함경북도 북청이 고향인 이준 열사는 1남2녀를 두었다. 조씨는 이준 열사의 첫째 딸인 이송선씨의 손자다. 이송선씨는 이준 열사의 서당 친구였던 조시범(《삼례록(三禮錄)》이란 예서를 편찬)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은 두 명의 아들(李烈, 李活)을 두었으나 광복 후 이들은 모두 고향인 북한에 남았다. 현재 남한에는 아들로 이어지는 이준 열사의 직계 후손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외증손자인 조근송씨가 열사의 유족대표를 맡고 있다고 했다.
조씨는 “이용 장군은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金佐鎭),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洪範圖), 광복군 총사령관인 이청천(李靑天), 시베리아를 누볐던 김경천(金擎天) 장군 등 독립운동사를 화려하게 빛낸 분들과 같이 무장독립 투쟁을 했다”며 “이용 장군처럼 무장 항일 투쟁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사람도 드문데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씨는 할아버지인 이용을 ‘장군’이라고 호칭했다. 독자적인 독립군 부대를 지휘한 대장을 통상 장군으로 부르는데, 이는 의병운동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내려오던 관례라고 한다.
‘생몰년(生歿年) 미상’의 한 인물
조근송씨는 최근 인터넷으로 이용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중이라고 했다. 이용에 대한 자료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고 했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조씨는 이용에 대한 연표도 나름 만들었다.
“조사를 하면서 국내에서 이용 장군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준 열사의 후손인 제가 나서서 그분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자료가 너무 제한적이라 이용 장군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조씨에게 기본적인 자료를 넘겨받은 기자는 본격적으로 이용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먼저 포털 사이트의 한 백과사전을 검색하자 이용에 대해 ‘생몰년(生歿年) 미상’이라고 기재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백과사전에 실린 원문은 1967년에 발간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라는 자료였다. 이곳은 이용에 대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간도 및 시베리아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한 군사 지도자’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도서관, 대형서점을 찾아가 이용에 대한 논문이나 학술 서적, 기타 독립적인 연구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정부 기관이나 독립운동 단체에서 펴낸 각종 독립운동사 자료에 ‘이용’이란 이름이 스쳐가듯 몇 군데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기록으로는 이용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각종 자료에 사회주의자로도 소개되어 있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 서적도 뒤졌으나 허사였다.
홍범도, 이청천 장군과 같이 무장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가려질 수가 있을까. 하지만 기자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료 조사 과정에서 이용이 국내에서 조명을 받지 못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와 우파정당 활동
이용은 광복 후 자진 월북하여 북한에서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공식 확인된 기록에 의하면 이용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월북을 했다. 이후 그는 북한의 첫 내각에서 도시경영상(相·우리의 장관에 해당)을 지냈다.
이어 1951년 12월에는 사법상, 1953년 12월에 무임소상이 되었다가, 1954년 8월 18일 사망해 현재는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 북한에서 장관을 지낸 이력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그의 삶이 조명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조근송씨는 “이용 장군은 민족주의자였지, 절대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씨의 설명이다.
“이용 장군은 한동안 초기 사회주의 운동가인 이동휘(李東輝·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 역임) 선생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든 상해파 고려공산당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또한 이용 장군의 주요 활동 무대가 러시아 연해주와 간도 북부 일대였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분류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독립투사가 그랬듯이 그가 고려공산당 계열에서 활동한 것은 그의 사상이 사회주의에 투철해서가 아니라, 조국독립을 위한 방편이었을 뿐입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그는 시종일관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독립투쟁을 벌였습니다.”
조씨는 이용이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유 중의 하나로 광복 후 행적을 들었다. 이용은 광복이 되자 한국민주당, 한국민족당, 신진당 등의 정당 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는 모두 민족주의 세력이 세운 우파 정당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용은 월북 전까지 신진당의 부당수를 지냈다. 여운형(呂運亨·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이 조직한 좌파정당인 조선인민당이나, 공산계열인 조선노동당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조씨는 “이용 장군에 대해 가장 많이, 자세히 알고 있었던 사람은 선친(先親)이었다”고 말했다.
조근송씨의 아버지 조서해(趙瑞海 혹은 趙潤, 1907~1971)씨는 이준 열사의 맏딸인 이송선씨의 외아들이었다. 조근송씨는 “아버지는 외손자였지만 외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외삼촌인 이용 장군과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고 말했다.
“저의 아버지는 어려서 《사서삼경》을 뗄 정도로 총명해서 이용 장군이 무척 귀여워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청진에서 민족계 자본으로 설립한 ‘동일상회’라는 회사의 전무로 일했습니다. 고향에서 큰 부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용 장군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전하기 위해 사업가로 위장하여 여러 차례 간도와 연해주 등지를 드나들었다고 이야기하곤 하셨습니다.
심지어 당시에 아버지 소유의 배를 한 척 팔아서 만주에 가서 이용 장군을 만나 돈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때 중국의 아편굴에서 이용 장군을 만나 돈을 전하던 이야기를 아주 실감나게 하시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용 장군에 대해 가장 많이 아시는 분이었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깝습니다.”
조근송씨가 일곱 살 무렵이던 어느 날 라디오를 듣고 있던 부친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그때 아버지께서 ‘김일성이 결국 외삼촌을 죽였다’며 며칠 동안 슬피 우셨다”고 기억했다.
불령선인(不逞鮮人) 활동 보고서
기자는 국사편찬위원회, 독립기념관, 보훈처 등에 흩어져 있는 단편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이용의 삶을 추적해 보았다. 하지만 이용이란 인물을 들여다볼수록 마치 헝클어진 실타래를 되감는 것처럼 복잡하게만 느껴졌다.
가장 많은 자료가 남아 있는 곳은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였다. 정보의 90% 이상은 일본 비밀경찰이 중국, 만주, 간도, 러시아 연해주 등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조선총독부나 본국에 보고한 기밀문서였다. 이용 개인에 대한 단독 자료는 아니지만, 이 보고서를 모두 출력해 연도별로 조합해 보니 그의 동선(動線)과 활동상황이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의 정보 보고서 제목에는 대부분 ‘불령선인(不逞鮮人)단의 정황에 관한 건’이라는 표현이 마치 무슨 공식처럼 들어 있었다. ‘불령선인’은 일제가 식민통치에 비협조적인 ‘요주의 인물’을 일컬은 말로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용’이란 이름이 등장하는 일경(日警)의 정보보고 문건은 100여 건 가까이 되었다. 처음 등장한 것은 1913년이며, 마지막은 1926년이다. 이후부터 이용이란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1919~24년 5년 동안 가장 집중적으로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이용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여러 가명(假名)을 사용했다. 이용의 본명은 이종승(李鍾乘)이다. 하지만 국외로 망명하면서 이용으로 개명(改名)했다. 1919년 정보 보고서에는 이종성(李鐘聲)이란 이름도 나타나는데, 이 또한 한동안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26년경에는 이추산(李秋山)이었다. 추산은 그의 아호다. 비슷한 시기 이객우(李客雨)란 이름으로도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해주로 망명
1888년생인 이용은 서울에 있는 보광(普光) 중학교를 졸업했다. 1908년 5월 발행된 《학계소식》이란 잡지에 서북 학생 중 이용(이종승)을 포함 10명 정도가 우등 졸업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조근송씨는 “아버지께서 ‘이용 외삼촌이 일본어, 중국어, 소련어, 만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이용 장군이 머리가 좋은 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용에 대한 최초의 연표는 1948년에 펴낸 《조선연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표를 작성할 당시 이용은 신진당 부당수였다. 연표에 따르면 이용은 중국 절강(浙江)체육학교를 나온 후, 1918년 절강성 육군 군관학교를 졸업했다.
보광학교 졸업 후 국내에 활동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이용은 졸업 후 곧바로 해외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용의 해외 망명에 관한 기록은 뜻밖에도 1931년 11월 28일자 국내 언론기사를 통해 나타난다. 1931년 11월 이용은 간도에서 일본 경찰에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된다.
체포된 이용이 이준 열사의 아들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 언론은 큰 관심을 보이며 비교적 자세하게 관련 기사를 남겼다. 이때 기사는 이용이 1910년 그의 계모 이일정(李日貞·이준 열사의 두 번째 부인)씨와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찾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조근송씨는 “1907년 이준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이용 장군이 어머니를 모시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용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길을 한번 나섰다 돌아왔으며, 그 후 1910년 독립운동을 작정하고 망명길에 올랐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독립기념관 자료에 의하면, 연해주에 간 이용은 권업회(勸業會) 설립에 관여하다가 일제가 조선을 완전히 강탈하자 곧바로 간도로 이주했다. 이용은 간도에서 안창호(安昌浩), 이동휘, 이동춘(李同春), 이갑(李甲) 등과 함께 1911년 제1회 대한민국 총회에 참가했다.
1913년 1월 일본 경찰의 정보보고에 간도로 이주한 후 이용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이용은 간민회(墾民會)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간민회는 중국 길림성의 북간도 지역에서 조직한 한국인 자치단체로 주로 문화계몽운동과 민족자치운동을 벌였다.
이후 1916년에 길림성 혼춘(琿春)에서 활동한 보고가 한 차례 나타나고 1919년까지 일경의 정보보고에 이용이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기간에 이용은 절강성에 있는 항주무관학교(절강성 육군 군관학교 포병과)를 다녔다. 조근송씨는 “이용 장군이 중국 군관학교에 다닌 것은 이동휘 선생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장독립 투쟁의 길로
이동휘는 이준 열사와 함께 개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준(북청)과 이동휘(단천)는 고향이 같았고, 기독교를 믿는 등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동휘가 대한제국의 육군 참령(參領)을 지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이용이 중국의 군관학교에 다녔을 것이란 것이다.
이동휘는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훗날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조직했는데, 이때 이용이 핵심 간부로 참여했다. 이용은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1916년까지 무력투쟁이 아닌 통상적인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동휘와 함께 일하면서 그의 독립운동은 무장투쟁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1919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의 비밀보고 문건에 이용이란 이름이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1919년 3ㆍ1 독립운동을 계기로 만주, 러시아 등 국외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용은 적극적인 무장 독립투쟁에 나섰다. 1919년 3ㆍ1 운동 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라는 임시정부 성격의 단체가 구성되었다(이해 8월에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통합하면서 대한국민의회는 해산). 대한국민의회는 3ㆍ1 운동 전후로 일본과 혈전(血戰)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19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평화조약을 협의하기 위해 파리강화회의를 열자, 해외 각지에 머물던 애국지사들과 독립단체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먼저 재미(在美) 한인회 대표들은 파리강화회의에 조선독립 문제를 제출하기로 결의하고, 회의에 파견할 대표로 안창호, 이승만(李承晩)을 선출했다.
이어 노령(露領·러시아 영토, 주로 시베리아 연해주 일대) 측 대표로는 이동휘가, 조선 측 대표로는 이용이 결정됐다. 당시 이용은 간도와 러시아를 오가며 활동 중이었다. 이용이 해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노령한족회는 이흥삼을 국내에 밀사로 보내 조선의 유력인사 수백 명이 연명 날인을 한 위임장을 받아 이용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3ㆍ1 독립만세 운동이 터지고, 러시아와 만주 무장 독립운동 단체의 국내진공 계획이 수립되는 등 정세가 급격하게 돌아가면서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대표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일본 측 정보보고에 의하면 파리강화회의로 출발하기 위해 이동하던 이동휘가 4월 러시아 관헌에 의해 저지되자 혼춘으로 갔으며, 이용은 이때 노령의 감사대(敢死隊·결사대) 상황을 시찰하기 위해 이동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독립군 인재 양성
1919년 중국의 북간도에서 대한국민회(북간도국민회)가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연길(延吉), 화룡(和龍), 왕청(汪淸), 혼춘 등지에 거주하던 한국인(韓國人)의 자치단체로 북간도의 4개 현에 거주하던 40만 한국인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간도국민회는 이용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간민회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1919년 이용은 러시아 연해주에 머물면서 임시정부 통합 문제와 의병 모집, 의연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한국독립운동사》에는 이때 이용이 상해 임정(臨政)의 군무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홍범도 등과 논의하면서 국내 진공계획 결사대를 조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20년 1월 이용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연해주 니콜리스크에 상해 임시정부 군정지부를 설치할 것을 논의한다.
이 무렵 이용은 상해 임시정부 소속 최초 독립군 동로군(東路軍·연해주) 사령관에 임명된다. 또한 그는 상해 임정 파견 대표위원으로 활동을 겸하는데, 중요 임무는 간도 일대에 흩어진 40여 개의 독립군 부대를 임정 소속으로 통합하는 것과 임정이 발행한 채권으로 항일 운동 자금을 확보하는 것 등이었다. 독립군의 국내 진공계획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한 것이다.
이해 5월 이용은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다시 옮긴다. 대한국민회의(간도국민회의)가 연길에 사관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중국 군관학교 출신의 이용을 교장으로 초빙했기 때문이다. 이용은 무관학교 설립위원장을 맡아 무관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국민회의 경호대 총사령직도 맡았다.
이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립군 인재 양성에 힘을 썼다. 1921년 연해주 이만에서 한국의용군사관학교 교장(교관은 金弘壹 등), 1923년 독립단의 사관학교 교장(교관 이청천)을 지냈고, 1926년에는 중국 황포군관학교 정치부 교관으로 지내면서 간도 국민회의 독립군 사관을 모집했다.
자유시 참변
1920년 10월 이용은 대한국민회 경호대 총사령 및 임정대표로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에 참가했다. 청산리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은 일본은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에 나선다. 이때 일본군은 독립군의 근거지를 말살하기 위해 1920년 10월부터 3~4개월간 간도의 동포들을 수만 명 학살하는 간도참변(경신참변)을 일으킨다. 일본군에 쫓긴 독립군 단체들은 새로운 활동 기지를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군은 중ㆍ소 국경지대인 밀산을 거쳐 러시아 자유시(스보보드니)로 이동했다. 독립군이 자유시로 집결한 것은 안전지대를 찾아 분산돼 있던 독립군 부대들의 힘을 합쳐 대일항전을 펼치려는 목적에서였다.
1921년 1월부터 3월까지 자유시에는 만주와 간도,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한인 독립군 3000여 명이 집결했다. 하지만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한곳에 모이게 되자, 군권(軍權)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련 적군(赤軍·볼셰비키)의 지원을 받고 있던 이르쿠츠크파 자유대대의 오하묵(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해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있던 이항군(상해파 고려공산당·이동휘 파)을 이끌고 있던 박일리아 간 군권 장악을 위한 암투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1917년 10월 혁명에 성공한 적군과 이에 반대하는 백군(反 볼셰비키) 간에 전투가 치열했다. 러시아에 있던 많은 한인(韓人) 무장단체는 러시아의 지원을 얻기 위해 적군 편에 가담했다. 적군도 한인 무장세력을 이용해 백군을 물리치려고 했기 때문에 양측은 서로 협조적이었다. 일본은 백군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에 출병했고, 이 기회에 한인무장 독립세력을 소탕하고자 했다.
자유시에 모인 독립군 간 갈등이 번지면서 소수의 이르쿠츠크파 측은 1921년 6월 28일 소련 적군과 힘을 합쳐 다수인 사할린 의용대(자유시에 집결 후 개편된 독립군 이름)를 공격했다.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순수한 독립을 원하던 민족주의 계열의 상해파 고려공산당과는 달리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채 소비에트식 공산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조직한 당이다. 훗날 북한의 부수상이 되는 박헌영(朴憲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시 연해주로
이때 소련 적군의 공격을 받아 600여 명의 독립군이 사망 및 실종됐으며 생존자 전원인 900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자유시 참변’이다. 이용은 이때 포로가 되어 이르쿠츠크로 압송되던 중 탈출하여 연해주 이만으로 몸을 피했다. 이용은 자유시 참변 당시 원동(遠東)의 소비에트 정부와 교섭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 이항군이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으나, 결국 소련 적군의 배반으로 독립군 세력이 거의 와해되는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공산 혁명 사상으로 무장한 이르쿠츠크파들이 소련 정부 및 적군과 내통하여 일으킨 참변이기도 하다.
근래 여러 자료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이미 소련은 1921년경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한인 독립단체의 무장을 해제한다는 방침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대다수 독립군의 믿음과 달리 소련 적군의 배신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연해주 이만으로 돌아온 이용은 그해 10월 대한의용군 및 전한군사위원회를 재건하고 대한의용군사회(大韓義勇軍事會) 사령관이 되었다. 당시 2중대장은 김홍일(金弘壹·국군 창시자로 불림. 전 외무부장관), 3중대장은 한운용(韓雲用)이었다. 이들 대한의용군은 소련 적군 편에 서서 일본의 지원을 받고 있던 백군과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1921년 12월 일본 시베리아 출정군은 이만에서 러시아 백군과 연합해 이용이 지휘하는 대한의용군을 공격했다(이만 전투). 포위된 3중대 1소대는 전멸했고, 중대장 한운용도 전사했다. 백군도 6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이 당시 많은 항일 무장단체가 러시아 백군 및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 당시 백군이 일본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한인 무장독립단체들은 자동으로 적군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생 소비에트 정부 입장에서도 한인 무장단체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였다.
《한국공산주의운동사》에 의하면, 1922년 적군은 백군에 빼앗겼던 하바롭스크를 수복하자 한인의용대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특별보병대대로 편성했고, 이용을 대대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한인의용대 적군 특별보병대대가 몰로차예프카 전투에서 승리하자 적군 사령부는 니콜라예프카로부터 인스크에 이르는 500리의 치안유지를 의용대에 맡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립군의 무장해제
자유시 참변을 겪은 독립군들은 1922년 9월 연길에서 의병장 출신인 김규식(金圭植)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고려혁명군을 조직했다. 이용은 이때 고려혁명군 총지부 북부사령관에 임명된다(김경천 장군은 동부사령관). 하지만 1922년에 들어서자 소련 정부는 갑자기 노령 내의 모든 독립군에 대해 무장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일제가 시베리아 철병의 조건으로 노령 내 모든 한인 항일단체와 독립군 부대의 해산과 무장해제를 계속 요구하자 소련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독립군은 조국 독립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 여겨 소련 적군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배신뿐이었다.
당시 한인 무장세력 대부분이 일본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 영토로 넘어가 있었기 때문에 독립군 무장해제로 대일 무력투쟁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강제 무장해제를 당한 많은 독립군이 간도나 만주 등지로 이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용도 이때 연해주를 떠났다.
조근송씨는 “연해주를 떠난 이후 이용 장군은 공산주의와 인연을 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의 행적에서 공산주의 당과 직접 연계되는 기록을 더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용은 1923년 소련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찰의 비밀보고 문건에서 1923년 6월부터 이용의 활동 무대가 만주로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주에 온 이용은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는다.
1923년 9월 12일자 《동아일보》에 ‘이추산이라는 사람이 길림성 액목현(額穆縣)에서 북만주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생도 330명을 수용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교장은 이추산, 교사는 이청천 등 5명이라고 보도했다. 추산은 이용의 아호다. 이용은 소련에서 빠져나오면서 추산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24년 한해 동안 이용은 상해 임시정부와 긴밀한 협조를 맺으면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었던 것 같다. 3월경 임시정부 활동보고에 이용의 이름이 등장한다. 10월에는 대동회 총부 중앙위원회 위원이란 직함을 사용하는 것이 발견되는데, 당시 《동아일보》는 대동회에 대해서 ‘3ㆍ1 운동 이후 만주 각지에서 활동하던 각종 독립단 대표와 유력독립인사가 만든 단체’라고 보도했다.
장개석 군대에 합류하다
1925년 일본 광동총영사 보고 문건에 의하면 이용은 중국국민혁명군(중화민국의 군대)의 포병대장과 참모장을 역임하면서 광주(廣州)에서 장개석(蔣介石·황포군관학교 교장)과 함께 황포군관학교 정치부를 만든다.
조근송씨는 “저의 부친은 ‘이용 장군이 장개석 총통과 동년배로 무척 절친한 사이’라고 말했다”며 “내가 어릴 때 이용 장군이 장개석 총통과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이용은 이객우란 이름도 썼다. 이용은 1926년까지 손두환(孫斗煥)과 함께 광동군 내 조선인 장교로 일본 경찰의 집중적인 관찰 대상에 올랐다. 이용은 장개석과 함께 행동하며 북벌에 참가했다.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에 보관된 일본 측의 보고 자료에 황포군관학교 시절 이용을 임정 대표위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여운형(呂運亨)이 자금난으로 곤경에 처한 임시정부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개석을 만나러 왔을 때 이용이 함께 회의한 기록이 일본 광동성 총영사 보고 기록에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종합하면 이용은 무력독립 운동 초기 상해 임정의 채권 등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주 일대에 일본군이 대규모로 침공하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용은 러시아 연해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적군의 지원을 받으며 항일운동을 기도하였다. 이후 소련의 변심으로 무장해제를 당한 후 다시 간도 지방으로 나와서 군관학교에서 인재 양성을 하다가, 광동성(廣東省)으로 간 것이 된다.
당시 광동성에는 장개석의 중국혁명군이 있었다. 이때부터 이용은 광복 때까지 장개석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훗날 상해 임시정부는 장개석의 도움으로 황포군관학교에서 조선독립군을 양성하고, 자금을 지원받고, 중국혁명군에 참가한 김홍일(후에 중국군 2성장군)을 통해 무기를 지원받는데, 그러한 사전 작업에 이용이 깊이 관여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26년 장개석과 활동을 함께하면서 이용은 일경의 보고 기록에서 사라진다. 이용이란 이름은 5년 후인 1931년 국내 일간지를 통해 다시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용이 이해 11월 25일 간도의 조양천(朝陽川)에서 일경에 체포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용의 검거를 ‘공산당 공작위원회사건’이라고 불렀다.
체포 후 국내로 압송
일본 경찰은 이용 등 230여 명을 붙잡았다.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는 ‘검거된 이 중에 이창일 등은 중국공산당 동만 특파원인데 동지들과 조선공산당 재건위 공작위원회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하다 검거되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용은 검거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용은 검거 당시 중국 남경정부 하응음의 군대 소속으로 소좌참모라는 계급을 달고 있었다. 신문은 “이용이 자기 소유의 토지를 팔고자 왔다가 공산당 혐의로 엄중 취조를 받고 있으나 아직 공산당의 혐의는 박약하다”고 전했다. 이용은 이후 서울로 이송되어 얼마간 복역하다가 고향인 북청에서 거주제한 조치를 받았다.
중국국민군 관동 1군 포병대장이란 현역 신분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용은 1932년 5월에 고향 북청에서 중국어 학원을 세운다. 곧바로 간도로 탈출한 것으로 보이지만, 1942년 임시정부에서 이용 장군에게 연락했다는 것 외에 그 후 이용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근송씨는 “당시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설립되고 난 후 일본의 감시가 심할 때이므로 이용 장군도 아마 다른 독립운동가들처럼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했을 것”이라며 “나의 부친이 생전에 광복될 때까지 자금을 들고 만주에 계신 이용 장군을 자주 만나러 갔다고 하신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남북연석회의 후 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기자는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교수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들은 이용이란 존재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었지만,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연구위원인 김주용(46) 박사는 “이용 같은 분은 북에서 장관을 했기 때문에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볼 때 무척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단 독립운동의 역사만 놓고 보면 재평가를 받을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저는 이동휘 선생이나 이용 같은 분이 사회주의 사상에 투철해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일본이 백군을 지원하니까 한국인으로서 백군 편에 가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독립군들은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독립운동사에서 이용은 김일성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광복 당시 김일성이 겨우 33세였는데 기존의 민족주의계 독립군 지도자들에 비하면 독립운동사에서 별로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김 박사는 “북에서는 김일성보다 더 뛰어나고 많은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의 기록은 모두 삭제를 했다”며 “조선의용대 출신들처럼 광복 후 북에 들어갔던 항일 공산주의자들도 대부분이 김일성의 정권 장악 과정에서 숙청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알려진 이용에 대한 공식 기록에는 그가 광복 후 신진당 등 우파계열의 정당 활동을 하다가 1948년 4월 김구와 함께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제정당 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월북한 후 그대로 눌러앉은 것으로 되어 있다.
조근송씨도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씨는 집에 보관하고 있던 옛날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조씨의 설명이다.
“이용 장군이 독립운동가들과 찍은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사진 상단에는 단기 4281년 음력 5월 14일이라는 날짜가 표시되어 있더군요. 서기(西紀)로 하면 사진을 찍은 날짜가 1948년 6월 10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용 장군은 연석회의 참석 후 서울로 내려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일성 공산당에 협조하기 위해 북에 눌러앉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죠.”
조씨가 보여준 사진에는 이청천과 이범석 장군도 함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당시에 북한에 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 선생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왜 월북을 했을까요?
“이용 장군이 북에 갈 때 ‘지금 서울에 있다가는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르겠다’며 고향에 들러 정리하고 중국으로 가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송진우(宋鎭禹), 여운형, 장덕수(張德秀) 등 민족계 지도자들이 연이어 암살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신변에 위험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실제 김구 선생도 얼마 후 바로 암살을 당하셨잖습니까.
또 가족이 모두 북한에 있었기 때문에 신변 정리를 하러 북에 들어가야 했을 겁니다. 이용 장군이 중국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광복 전까지 중국군 신분을 유지했고, 장개석 총통과 친했기 때문에 무슨 논의를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1948년 장개석은 상해에 있었다)
이용은 남한 단독정부 설립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서울신문》 1946년 6월 8일)하는 등 다른 많은 민족주의자들과 같이 미군정 및 이승만의 노선과는 상당한 시각차를 가지고 있었다.
‘북한 원로들의 말로’
―이용 선생님이 북에 간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요.
“그 후에는 어떤 기록도 확인할 수가 없으니 선친의 말씀과 당시 정황을 놓고 추측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친께서는 당시 함경도에서는 이준 열사와 독립군 대장 출신인 이용 장군의 지명도가 상당히 높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조만식(曺晩植) 선생님보다 인지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일성도 이용 장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일성은 초반에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특히 이용 장군은 김일성이 반드시 잡아놓고 싶은 대상이었을 겁니다. 갖은 회유와 설득을 해서 각료직을 주어 그를 잡아놓았다고 봅니다.”
조근송씨는 이용이 김일성에게 숙청을 당했다고 믿고 있었다.
“이용 장군도 이준 열사처럼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독립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분이 김일성이 하는 우상화 놀음에 곱게 찬성했겠습니까. 하지만 이용 장군은 아무 실권이 없는 상태에서 김일성에게 이용당하는 신세였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용 장군의 매제인 유자후(柳子厚·사학자·이준의 사위로 이준 열사 전기 저술)가 6ㆍ25 때 납북되어 수용소에 간 후 김일성에게 죽임을 당했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조 선생님 부친은 어떻게 남으로 나왔나요.
“광복 후 이용 장군이 아버지보고 ‘빨리 남으로 피하라’고 하셨답니다. 우리 집안이 엄청난 지주 집안이라 화가 미칠 것을 예상하셨던 겁니다. 그만큼 이용 장군은 공산주의자를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유시에서 공산당에 배신을 당해 봤고, 무장해제를 겪었기 때문에 소련과 공산당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그들을 믿지 않았을 겁니다. 저의 아버지는 ‘이용 외삼촌이 소련 각지로 끌려가서 행방을 모르는 옛 동지들의 소식을 무척 궁금해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근송씨는 “아버지는 생전에 이용 장군이 공산주의였다는 말씀을 들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며 “특히 장개석 총통이 북벌을 개시하기 전에 군 내부에 있는 공산당 척결을 시작했는데, 공산주의자였으면 장개석 총통과 어떻게 한 길을 걸었겠느냐”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의 김일성은 가짜’라고 하셨습니다. 이용 장군이 그랬다고 했습니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김장군’으로 불리며 전설적인 영웅으로 알려진 분은 김경천 장군입니다. 김경천 장군은 이용 장군과 같은 북청 출신 동갑내기로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시베리아에서 명성을 떨친 독립군 대장들의 명성을 자기 것으로 가로챈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당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용 선생님은 지금 북한 애국열사릉에 안장돼 있는데요.
“제가 중국 측 기록을 찾다가 <북한 원로들의 말로>란 문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용 사형(死刑)’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아버지께서 ‘이용 외삼촌이 김일성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평소 하신 말씀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조근송씨가 찾은 중국 자료는 북한의 소위 혁명 원로 24명의 최후를 기록하고 있었다. 박헌영, 이승엽, 장시우, 주영하, 김원봉, 최창일, 장평상 등 총 17명이 사형을 당했고, 기타 사고사, 의문사, 원인 불상사도 한 명씩 있었다. 자연사라고 된 사람은 김일성, 최용건, 홍명희, 백남운뿐이었다. 확인 결과 사실과 부합했다.
그가 살아온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김일성이 이용을 처형했다면 왜 애국열사릉에 안장한 것일까. 북한 무용가 출신 탈북자 김영순(崔承喜의 제자)씨는 “김일성이 탄광에 보냈다가 총살한 최승희도 현재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며 “북한을 우리가 아는 정상국가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1997년 반체제 인사라며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한 노동당 농업담당비서 서관히를 다시 열사릉에 갖다 묻은 짓을 하는 게 북한 정권입니다. 저의 스승인 최승희도 총살당했는데, 애국열사릉에 갖다 놨습니다. 아마 북에서 일 점 일 획도 고칠 수 없는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김일성 회고록에 최승희를 칭찬한 대목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기자는 국회도서관에서 김일성의 회고록을 살펴보았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8권에 김일성이 이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대목을 발견했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로 대치되어 있던 두 세력이 이 시기(1940년)에 와서는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다시 합작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용이 공산주의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원래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것도 우리 아버지뻘이나 되는 노(老) 세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용은 우리와 걸음을 같이하였습니다. 진실로 애국을 하는 사람에게는 공산주의냐, 민족주의냐 하는 것이 문제로 되지 않습니다.>
조근송씨는 “저의 아버지는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1949년 사망)이 이용 장군을 무척 높이 평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것 때문이라도 김일성은 장군을 더욱 북에 잡아놓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회고록 6권에 “김정숙이 농민운동을 준비하던 중에 이원의 차호 앞바다에 있던 이용을 찾아갔다”는 내용이 있었다. 조근송씨의 설명이다.
“이용 장군이 북에서 장관을 하는 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김일성에게 죽어나가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김일성은 6ㆍ25 때 이승엽(사법상)이라는 악질 친일파를 서울시 인민 위원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이승엽은 국내의 애국인사와 독립지사의 납북을 주도하고, 수많은 사람을 처형했습니다. 자기의 일제 때 행적을 알고 있는 독립지사와 애국인사들이 눈엣가시 같았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김일성에게 고분고분 협조를 했을지 의문입니다.”
이준 열사 기념사업회 전재혁 회장은 “북한의 해방사는 거의 100% 조작된 것인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오히려 북한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이용 같은 분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 장군은 남과 북에서 모두 잊힌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평생 나라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을 제대로 조명할 때 우리의 정통성은 강화되고, 그런 애국자를 죽인 북한 정권에 뼈아픈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기자는 인천 부평구 삼산동의 한 아파트에서 이준 열사의 외증손자인 조근송(趙根松)씨와 마주 앉았다.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이준 열사는 한국 독립운동사 초반을 비장하게 장식한 인물이다.
이준 열사는 1907년 7월 고종 황제의 특사로 이상설(李相卨), 이위종(李瑋鍾)과 함께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여 일본의 조선침략 행위를 세계만방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려고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비분강개(悲憤慷慨)한 이준은 자결로써 이역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의 나이 49세였다.
조근송씨에 따르면 함경북도 북청이 고향인 이준 열사는 1남2녀를 두었다. 조씨는 이준 열사의 첫째 딸인 이송선씨의 손자다. 이송선씨는 이준 열사의 서당 친구였던 조시범(《삼례록(三禮錄)》이란 예서를 편찬)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이준 열사의 아들인 이용은 두 명의 아들(李烈, 李活)을 두었으나 광복 후 이들은 모두 고향인 북한에 남았다. 현재 남한에는 아들로 이어지는 이준 열사의 직계 후손이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외증손자인 조근송씨가 열사의 유족대표를 맡고 있다고 했다.
조씨는 “이용 장군은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金佐鎭), 봉오동 전투의 홍범도(洪範圖), 광복군 총사령관인 이청천(李靑天), 시베리아를 누볐던 김경천(金擎天) 장군 등 독립운동사를 화려하게 빛낸 분들과 같이 무장독립 투쟁을 했다”며 “이용 장군처럼 무장 항일 투쟁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사람도 드문데 완전히 잊힌 존재가 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씨는 할아버지인 이용을 ‘장군’이라고 호칭했다. 독자적인 독립군 부대를 지휘한 대장을 통상 장군으로 부르는데, 이는 의병운동이 처음 일어났을 때부터 내려오던 관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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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과 그의 동지들. 1948년 6월 10일 찍은 것으로 되어 있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청천 광복군 사령관, 세 번째가 이용이고, 둘째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이범석 초대국무총리다. |
‘생몰년(生歿年) 미상’의 한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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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 황제의 특사로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이준, 이상설, 이위종(좌로부터). |
“조사를 하면서 국내에서 이용 장군에 대한 연구는 전무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준 열사의 후손인 제가 나서서 그분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자료가 너무 제한적이라 이용 장군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조씨에게 기본적인 자료를 넘겨받은 기자는 본격적으로 이용에 대한 자료를 찾았다.
먼저 포털 사이트의 한 백과사전을 검색하자 이용에 대해 ‘생몰년(生歿年) 미상’이라고 기재해 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 백과사전에 실린 원문은 1967년에 발간된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라는 자료였다. 이곳은 이용에 대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간도 및 시베리아에서 무장 투쟁을 전개한 군사 지도자’라고 소개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도서관, 대형서점을 찾아가 이용에 대한 논문이나 학술 서적, 기타 독립적인 연구 자료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정부 기관이나 독립운동 단체에서 펴낸 각종 독립운동사 자료에 ‘이용’이란 이름이 스쳐가듯 몇 군데 등장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기록으로는 이용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각종 자료에 사회주의자로도 소개되어 있어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 서적도 뒤졌으나 허사였다.
홍범도, 이청천 장군과 같이 무장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철저하게 가려질 수가 있을까. 하지만 기자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자료 조사 과정에서 이용이 국내에서 조명을 받지 못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았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와 우파정당 활동
이용은 광복 후 자진 월북하여 북한에서 장관까지 지낸 인물이었다. 공식 확인된 기록에 의하면 이용은 1948년 4월 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기 위해 월북을 했다. 이후 그는 북한의 첫 내각에서 도시경영상(相·우리의 장관에 해당)을 지냈다.
이어 1951년 12월에는 사법상, 1953년 12월에 무임소상이 되었다가, 1954년 8월 18일 사망해 현재는 애국열사릉에 안장되어 있다. 북한에서 장관을 지낸 이력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그의 삶이 조명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조근송씨는 “이용 장군은 민족주의자였지, 절대로 공산주의자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조씨의 설명이다.
“이용 장군은 한동안 초기 사회주의 운동가인 이동휘(李東輝·상해임시정부 국무총리 역임) 선생이 러시아 연해주에서 만든 상해파 고려공산당에서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또한 이용 장군의 주요 활동 무대가 러시아 연해주와 간도 북부 일대였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국내에서는 그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분류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독립투사가 그랬듯이 그가 고려공산당 계열에서 활동한 것은 그의 사상이 사회주의에 투철해서가 아니라, 조국독립을 위한 방편이었을 뿐입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그는 시종일관 민족주의자 입장에서 독립투쟁을 벌였습니다.”
조씨는 이용이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이유 중의 하나로 광복 후 행적을 들었다. 이용은 광복이 되자 한국민주당, 한국민족당, 신진당 등의 정당 활동에 참여했는데, 이는 모두 민족주의 세력이 세운 우파 정당들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용은 월북 전까지 신진당의 부당수를 지냈다. 여운형(呂運亨·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이 조직한 좌파정당인 조선인민당이나, 공산계열인 조선노동당에는 접근조차 하지 않았다.
조씨는 “이용 장군에 대해 가장 많이, 자세히 알고 있었던 사람은 선친(先親)이었다”고 말했다.
조근송씨의 아버지 조서해(趙瑞海 혹은 趙潤, 1907~1971)씨는 이준 열사의 맏딸인 이송선씨의 외아들이었다. 조근송씨는 “아버지는 외손자였지만 외가에서 자랐기 때문에 외삼촌인 이용 장군과는 아주 각별한 사이였다”고 말했다.
“저의 아버지는 어려서 《사서삼경》을 뗄 정도로 총명해서 이용 장군이 무척 귀여워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일제시대 청진에서 민족계 자본으로 설립한 ‘동일상회’라는 회사의 전무로 일했습니다. 고향에서 큰 부자였습니다. 아버지는 생전에 이용 장군에게 독립운동 자금을 전하기 위해 사업가로 위장하여 여러 차례 간도와 연해주 등지를 드나들었다고 이야기하곤 하셨습니다.
심지어 당시에 아버지 소유의 배를 한 척 팔아서 만주에 가서 이용 장군을 만나 돈을 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때 중국의 아편굴에서 이용 장군을 만나 돈을 전하던 이야기를 아주 실감나게 하시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이용 장군에 대해 가장 많이 아시는 분이었는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안타깝습니다.”
조근송씨가 일곱 살 무렵이던 어느 날 라디오를 듣고 있던 부친이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조씨는 “그때 아버지께서 ‘김일성이 결국 외삼촌을 죽였다’며 며칠 동안 슬피 우셨다”고 기억했다.
불령선인(不逞鮮人) 활동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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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경찰의 독립운동가 동태 보고 문건. 이용의 경우 현재 100여 건의 보고서에 이름이 나타난다. |
가장 많은 자료가 남아 있는 곳은 국사편찬위원회 데이터베이스였다. 정보의 90% 이상은 일본 비밀경찰이 중국, 만주, 간도, 러시아 연해주 등지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에 관한 정보를 조선총독부나 본국에 보고한 기밀문서였다. 이용 개인에 대한 단독 자료는 아니지만, 이 보고서를 모두 출력해 연도별로 조합해 보니 그의 동선(動線)과 활동상황이 어렴풋하게나마 떠오르기 시작했다.
일본 경찰의 정보 보고서 제목에는 대부분 ‘불령선인(不逞鮮人)단의 정황에 관한 건’이라는 표현이 마치 무슨 공식처럼 들어 있었다. ‘불령선인’은 일제가 식민통치에 비협조적인 ‘요주의 인물’을 일컬은 말로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용’이란 이름이 등장하는 일경(日警)의 정보보고 문건은 100여 건 가까이 되었다. 처음 등장한 것은 1913년이며, 마지막은 1926년이다. 이후부터 이용이란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1919~24년 5년 동안 가장 집중적으로 그의 이름이 등장했다.
이용은 독립운동 과정에서 여러 가명(假名)을 사용했다. 이용의 본명은 이종승(李鍾乘)이다. 하지만 국외로 망명하면서 이용으로 개명(改名)했다. 1919년 정보 보고서에는 이종성(李鐘聲)이란 이름도 나타나는데, 이 또한 한동안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26년경에는 이추산(李秋山)이었다. 추산은 그의 아호다. 비슷한 시기 이객우(李客雨)란 이름으로도 활동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해주로 망명
1888년생인 이용은 서울에 있는 보광(普光) 중학교를 졸업했다. 1908년 5월 발행된 《학계소식》이란 잡지에 서북 학생 중 이용(이종승)을 포함 10명 정도가 우등 졸업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조근송씨는 “아버지께서 ‘이용 외삼촌이 일본어, 중국어, 소련어, 만주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이용 장군이 머리가 좋은 분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용에 대한 최초의 연표는 1948년에 펴낸 《조선연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연표를 작성할 당시 이용은 신진당 부당수였다. 연표에 따르면 이용은 중국 절강(浙江)체육학교를 나온 후, 1918년 절강성 육군 군관학교를 졸업했다.
보광학교 졸업 후 국내에 활동 기록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이용은 졸업 후 곧바로 해외로 활동 무대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이용의 해외 망명에 관한 기록은 뜻밖에도 1931년 11월 28일자 국내 언론기사를 통해 나타난다. 1931년 11월 이용은 간도에서 일본 경찰에 공산당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체포된다.
체포된 이용이 이준 열사의 아들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국내 언론은 큰 관심을 보이며 비교적 자세하게 관련 기사를 남겼다. 이때 기사는 이용이 1910년 그의 계모 이일정(李日貞·이준 열사의 두 번째 부인)씨와 함께 아버지의 시신을 찾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조근송씨는 “1907년 이준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이용 장군이 어머니를 모시고 블라디보스토크까지 갔다는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용은 처음에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기 위해 길을 한번 나섰다 돌아왔으며, 그 후 1910년 독립운동을 작정하고 망명길에 올랐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독립기념관 자료에 의하면, 연해주에 간 이용은 권업회(勸業會) 설립에 관여하다가 일제가 조선을 완전히 강탈하자 곧바로 간도로 이주했다. 이용은 간도에서 안창호(安昌浩), 이동휘, 이동춘(李同春), 이갑(李甲) 등과 함께 1911년 제1회 대한민국 총회에 참가했다.
1913년 1월 일본 경찰의 정보보고에 간도로 이주한 후 이용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에 따르면, 이용은 간민회(墾民會)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간민회는 중국 길림성의 북간도 지역에서 조직한 한국인 자치단체로 주로 문화계몽운동과 민족자치운동을 벌였다.
이후 1916년에 길림성 혼춘(琿春)에서 활동한 보고가 한 차례 나타나고 1919년까지 일경의 정보보고에 이용이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 기간에 이용은 절강성에 있는 항주무관학교(절강성 육군 군관학교 포병과)를 다녔다. 조근송씨는 “이용 장군이 중국 군관학교에 다닌 것은 이동휘 선생의 영향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장독립 투쟁의 길로
이동휘는 이준 열사와 함께 개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준(북청)과 이동휘(단천)는 고향이 같았고, 기독교를 믿는 등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동휘가 대한제국의 육군 참령(參領)을 지냈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이용이 중국의 군관학교에 다녔을 것이란 것이다.
이동휘는 1918년 러시아 하바롭스크에서 한인사회당(훗날 상해파 고려공산당)을 조직했는데, 이때 이용이 핵심 간부로 참여했다. 이용은 헤이그 특사 사건 이후 1916년까지 무력투쟁이 아닌 통상적인 독립운동을 한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동휘와 함께 일하면서 그의 독립운동은 무장투쟁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1919년부터 1926년까지 일본의 비밀보고 문건에 이용이란 이름이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1919년 3ㆍ1 독립운동을 계기로 만주, 러시아 등 국외에서는 독립운동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용은 적극적인 무장 독립투쟁에 나섰다. 1919년 3ㆍ1 운동 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라는 임시정부 성격의 단체가 구성되었다(이해 8월에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통합하면서 대한국민의회는 해산). 대한국민의회는 3ㆍ1 운동 전후로 일본과 혈전(血戰)을 치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1919년 1월 제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들이 평화조약을 협의하기 위해 파리강화회의를 열자, 해외 각지에 머물던 애국지사들과 독립단체의 발걸음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먼저 재미(在美) 한인회 대표들은 파리강화회의에 조선독립 문제를 제출하기로 결의하고, 회의에 파견할 대표로 안창호, 이승만(李承晩)을 선출했다.
이어 노령(露領·러시아 영토, 주로 시베리아 연해주 일대) 측 대표로는 이동휘가, 조선 측 대표로는 이용이 결정됐다. 당시 이용은 간도와 러시아를 오가며 활동 중이었다. 이용이 해외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노령한족회는 이흥삼을 국내에 밀사로 보내 조선의 유력인사 수백 명이 연명 날인을 한 위임장을 받아 이용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3ㆍ1 독립만세 운동이 터지고, 러시아와 만주 무장 독립운동 단체의 국내진공 계획이 수립되는 등 정세가 급격하게 돌아가면서 파리강화회의에 보낼 대표는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일본 측 정보보고에 의하면 파리강화회의로 출발하기 위해 이동하던 이동휘가 4월 러시아 관헌에 의해 저지되자 혼춘으로 갔으며, 이용은 이때 노령의 감사대(敢死隊·결사대) 상황을 시찰하기 위해 이동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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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산리대첩을 승리로 이끈 북로군성서군. 맨 앞에 앉아 있는 이가 김좌진 장군이다. |
독립군 인재 양성
1919년 중국의 북간도에서 대한국민회(북간도국민회)가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연길(延吉), 화룡(和龍), 왕청(汪淸), 혼춘 등지에 거주하던 한국인(韓國人)의 자치단체로 북간도의 4개 현에 거주하던 40만 한국인을 기반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간도국민회는 이용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던 간민회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1919년 이용은 러시아 연해주에 머물면서 임시정부 통합 문제와 의병 모집, 의연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다. 《한국독립운동사》에는 이때 이용이 상해 임정(臨政)의 군무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홍범도 등과 논의하면서 국내 진공계획 결사대를 조직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1920년 1월 이용 등의 독립운동가들은 연해주 니콜리스크에 상해 임시정부 군정지부를 설치할 것을 논의한다.
이 무렵 이용은 상해 임시정부 소속 최초 독립군 동로군(東路軍·연해주) 사령관에 임명된다. 또한 그는 상해 임정 파견 대표위원으로 활동을 겸하는데, 중요 임무는 간도 일대에 흩어진 40여 개의 독립군 부대를 임정 소속으로 통합하는 것과 임정이 발행한 채권으로 항일 운동 자금을 확보하는 것 등이었다. 독립군의 국내 진공계획을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한 것이다.
이해 5월 이용은 중국으로 활동 무대를 다시 옮긴다. 대한국민회의(간도국민회의)가 연길에 사관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중국 군관학교 출신의 이용을 교장으로 초빙했기 때문이다. 이용은 무관학교 설립위원장을 맡아 무관학교 설립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국민회의 경호대 총사령직도 맡았다.
이용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독립군 인재 양성에 힘을 썼다. 1921년 연해주 이만에서 한국의용군사관학교 교장(교관은 金弘壹 등), 1923년 독립단의 사관학교 교장(교관 이청천)을 지냈고, 1926년에는 중국 황포군관학교 정치부 교관으로 지내면서 간도 국민회의 독립군 사관을 모집했다.
자유시 참변
1920년 10월 이용은 대한국민회 경호대 총사령 및 임정대표로 청산리와 봉오동 전투에 참가했다. 청산리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은 일본은 대대적인 독립군 토벌에 나선다. 이때 일본군은 독립군의 근거지를 말살하기 위해 1920년 10월부터 3~4개월간 간도의 동포들을 수만 명 학살하는 간도참변(경신참변)을 일으킨다. 일본군에 쫓긴 독립군 단체들은 새로운 활동 기지를 찾아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독립군은 중ㆍ소 국경지대인 밀산을 거쳐 러시아 자유시(스보보드니)로 이동했다. 독립군이 자유시로 집결한 것은 안전지대를 찾아 분산돼 있던 독립군 부대들의 힘을 합쳐 대일항전을 펼치려는 목적에서였다.
1921년 1월부터 3월까지 자유시에는 만주와 간도, 연해주에서 활동하던 한인 독립군 3000여 명이 집결했다. 하지만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한곳에 모이게 되자, 군권(軍權)을 놓고 갈등과 대립이 생기기 시작했다. 소련 적군(赤軍·볼셰비키)의 지원을 받고 있던 이르쿠츠크파 자유대대의 오하묵(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해 임시정부를 지지하고 있던 이항군(상해파 고려공산당·이동휘 파)을 이끌고 있던 박일리아 간 군권 장악을 위한 암투가 일어난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1917년 10월 혁명에 성공한 적군과 이에 반대하는 백군(反 볼셰비키) 간에 전투가 치열했다. 러시아에 있던 많은 한인(韓人) 무장단체는 러시아의 지원을 얻기 위해 적군 편에 가담했다. 적군도 한인 무장세력을 이용해 백군을 물리치려고 했기 때문에 양측은 서로 협조적이었다. 일본은 백군을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러시아에 출병했고, 이 기회에 한인무장 독립세력을 소탕하고자 했다.
자유시에 모인 독립군 간 갈등이 번지면서 소수의 이르쿠츠크파 측은 1921년 6월 28일 소련 적군과 힘을 합쳐 다수인 사할린 의용대(자유시에 집결 후 개편된 독립군 이름)를 공격했다.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은 순수한 독립을 원하던 민족주의 계열의 상해파 고려공산당과는 달리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한 채 소비에트식 공산혁명을 꿈꾸는 이들이 조직한 당이다. 훗날 북한의 부수상이 되는 박헌영(朴憲永)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시 연해주로
이때 소련 적군의 공격을 받아 600여 명의 독립군이 사망 및 실종됐으며 생존자 전원인 900여 명이 포로가 되었다.이것이 이른바 ‘자유시 참변’이다. 이용은 이때 포로가 되어 이르쿠츠크로 압송되던 중 탈출하여 연해주 이만으로 몸을 피했다. 이용은 자유시 참변 당시 원동(遠東)의 소비에트 정부와 교섭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결과 이항군이 주도권을 잡는 데 성공했으나, 결국 소련 적군의 배반으로 독립군 세력이 거의 와해되는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은 공산 혁명 사상으로 무장한 이르쿠츠크파들이 소련 정부 및 적군과 내통하여 일으킨 참변이기도 하다.
근래 여러 자료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이미 소련은 1921년경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한인 독립단체의 무장을 해제한다는 방침을 정해 놓은 상태였다. 대다수 독립군의 믿음과 달리 소련 적군의 배신은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연해주 이만으로 돌아온 이용은 그해 10월 대한의용군 및 전한군사위원회를 재건하고 대한의용군사회(大韓義勇軍事會) 사령관이 되었다. 당시 2중대장은 김홍일(金弘壹·국군 창시자로 불림. 전 외무부장관), 3중대장은 한운용(韓雲用)이었다. 이들 대한의용군은 소련 적군 편에 서서 일본의 지원을 받고 있던 백군과 크고 작은 전투를 치렀다.
1921년 12월 일본 시베리아 출정군은 이만에서 러시아 백군과 연합해 이용이 지휘하는 대한의용군을 공격했다(이만 전투). 포위된 3중대 1소대는 전멸했고, 중대장 한운용도 전사했다. 백군도 6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다. 이 당시 많은 항일 무장단체가 러시아 백군 및 일본군과 전투를 치렀다. 당시 백군이 일본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한인 무장독립단체들은 자동으로 적군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신생 소비에트 정부 입장에서도 한인 무장단체의 지원이 절실한 상태였다.
《한국공산주의운동사》에 의하면, 1922년 적군은 백군에 빼앗겼던 하바롭스크를 수복하자 한인의용대의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특별보병대대로 편성했고, 이용을 대대장으로 임명했다. 이후 한인의용대 적군 특별보병대대가 몰로차예프카 전투에서 승리하자 적군 사령부는 니콜라예프카로부터 인스크에 이르는 500리의 치안유지를 의용대에 맡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독립군의 무장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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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의 검거소식을 보도한 1931년 11월 28일자 《동아일보》. 중국 국민당군 복장을 하고 있다. |
일제가 시베리아 철병의 조건으로 노령 내 모든 한인 항일단체와 독립군 부대의 해산과 무장해제를 계속 요구하자 소련이 이를 수용한 것이다. 독립군은 조국 독립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 여겨 소련 적군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결국 돌아온 것은 배신뿐이었다.
당시 한인 무장세력 대부분이 일본의 탄압을 피해 러시아 영토로 넘어가 있었기 때문에 독립군 무장해제로 대일 무력투쟁은 결정적인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강제 무장해제를 당한 많은 독립군이 간도나 만주 등지로 이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용도 이때 연해주를 떠났다.
조근송씨는 “연해주를 떠난 이후 이용 장군은 공산주의와 인연을 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의 행적에서 공산주의 당과 직접 연계되는 기록을 더는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용은 1923년 소련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일본 경찰의 비밀보고 문건에서 1923년 6월부터 이용의 활동 무대가 만주로 옮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주에 온 이용은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힘을 쏟는다.
1923년 9월 12일자 《동아일보》에 ‘이추산이라는 사람이 길림성 액목현(額穆縣)에서 북만주 사관학교를 설립하여 생도 330명을 수용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인다. 교장은 이추산, 교사는 이청천 등 5명이라고 보도했다. 추산은 이용의 아호다. 이용은 소련에서 빠져나오면서 추산이라는 가명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924년 한해 동안 이용은 상해 임시정부와 긴밀한 협조를 맺으면서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었던 것 같다. 3월경 임시정부 활동보고에 이용의 이름이 등장한다. 10월에는 대동회 총부 중앙위원회 위원이란 직함을 사용하는 것이 발견되는데, 당시 《동아일보》는 대동회에 대해서 ‘3ㆍ1 운동 이후 만주 각지에서 활동하던 각종 독립단 대표와 유력독립인사가 만든 단체’라고 보도했다.
장개석 군대에 합류하다
1925년 일본 광동총영사 보고 문건에 의하면 이용은 중국국민혁명군(중화민국의 군대)의 포병대장과 참모장을 역임하면서 광주(廣州)에서 장개석(蔣介石·황포군관학교 교장)과 함께 황포군관학교 정치부를 만든다.
조근송씨는 “저의 부친은 ‘이용 장군이 장개석 총통과 동년배로 무척 절친한 사이’라고 말했다”며 “내가 어릴 때 이용 장군이 장개석 총통과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이용은 이객우란 이름도 썼다. 이용은 1926년까지 손두환(孫斗煥)과 함께 광동군 내 조선인 장교로 일본 경찰의 집중적인 관찰 대상에 올랐다. 이용은 장개석과 함께 행동하며 북벌에 참가했다.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에 보관된 일본 측의 보고 자료에 황포군관학교 시절 이용을 임정 대표위원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여운형(呂運亨)이 자금난으로 곤경에 처한 임시정부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장개석을 만나러 왔을 때 이용이 함께 회의한 기록이 일본 광동성 총영사 보고 기록에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기록을 종합하면 이용은 무력독립 운동 초기 상해 임정의 채권 등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확보하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주 일대에 일본군이 대규모로 침공하면서 상황이 여의치 않자 이용은 러시아 연해주로 활동 무대를 옮겨 적군의 지원을 받으며 항일운동을 기도하였다. 이후 소련의 변심으로 무장해제를 당한 후 다시 간도 지방으로 나와서 군관학교에서 인재 양성을 하다가, 광동성(廣東省)으로 간 것이 된다.
당시 광동성에는 장개석의 중국혁명군이 있었다. 이때부터 이용은 광복 때까지 장개석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한다. 훗날 상해 임시정부는 장개석의 도움으로 황포군관학교에서 조선독립군을 양성하고, 자금을 지원받고, 중국혁명군에 참가한 김홍일(후에 중국군 2성장군)을 통해 무기를 지원받는데, 그러한 사전 작업에 이용이 깊이 관여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1926년 장개석과 활동을 함께하면서 이용은 일경의 보고 기록에서 사라진다. 이용이란 이름은 5년 후인 1931년 국내 일간지를 통해 다시 등장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용이 이해 11월 25일 간도의 조양천(朝陽川)에서 일경에 체포된 것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용의 검거를 ‘공산당 공작위원회사건’이라고 불렀다.
체포 후 국내로 압송
일본 경찰은 이용 등 230여 명을 붙잡았다. 공산당원으로 활동했다는 혐의였다. 이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는 ‘검거된 이 중에 이창일 등은 중국공산당 동만 특파원인데 동지들과 조선공산당 재건위 공작위원회를 조직하기 위해 활동하다 검거되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용은 검거된 지 2개월이 지났지만,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용은 검거 당시 중국 남경정부 하응음의 군대 소속으로 소좌참모라는 계급을 달고 있었다. 신문은 “이용이 자기 소유의 토지를 팔고자 왔다가 공산당 혐의로 엄중 취조를 받고 있으나 아직 공산당의 혐의는 박약하다”고 전했다. 이용은 이후 서울로 이송되어 얼마간 복역하다가 고향인 북청에서 거주제한 조치를 받았다.
중국국민군 관동 1군 포병대장이란 현역 신분 때문에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용은 1932년 5월에 고향 북청에서 중국어 학원을 세운다. 곧바로 간도로 탈출한 것으로 보이지만, 1942년 임시정부에서 이용 장군에게 연락했다는 것 외에 그 후 이용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근송씨는 “당시 일본 괴뢰정부인 만주국이 설립되고 난 후 일본의 감시가 심할 때이므로 이용 장군도 아마 다른 독립운동가들처럼 여러 개의 가명을 사용했을 것”이라며 “나의 부친이 생전에 광복될 때까지 자금을 들고 만주에 계신 이용 장군을 자주 만나러 갔다고 하신 것을 기억한다”고 말했다.
“남북연석회의 후 북에 남아 있지 않았다”
기자는 독립운동사를 전공한 교수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수들은 이용이란 존재에 대해 인지를 하고 있었지만,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연구위원인 김주용(46) 박사는 “이용 같은 분은 북에서 장관을 했기 때문에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볼 때 무척 아슬아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일단 독립운동의 역사만 놓고 보면 재평가를 받을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저는 이동휘 선생이나 이용 같은 분이 사회주의 사상에 투철해서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했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일본이 백군을 지원하니까 한국인으로서 백군 편에 가담할 수가 없었습니다. 러시아에서 활동하던 대부분의 독립군들은 한국 독립을 지지하는 편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독립운동사에서 이용은 김일성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습니다. 광복 당시 김일성이 겨우 33세였는데 기존의 민족주의계 독립군 지도자들에 비하면 독립운동사에서 별로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김 박사는 “북에서는 김일성보다 더 뛰어나고 많은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의 기록은 모두 삭제를 했다”며 “조선의용대 출신들처럼 광복 후 북에 들어갔던 항일 공산주의자들도 대부분이 김일성의 정권 장악 과정에서 숙청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알려진 이용에 대한 공식 기록에는 그가 광복 후 신진당 등 우파계열의 정당 활동을 하다가 1948년 4월 김구와 함께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 제정당 연석회의 참석을 위해 월북한 후 그대로 눌러앉은 것으로 되어 있다.
조근송씨도 당연히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조씨는 집에 보관하고 있던 옛날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조씨의 설명이다.
“이용 장군이 독립운동가들과 찍은 아버지의 사진 한 장을 발견했습니다. 사진 상단에는 단기 4281년 음력 5월 14일이라는 날짜가 표시되어 있더군요. 서기(西紀)로 하면 사진을 찍은 날짜가 1948년 6월 10일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당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용 장군은 연석회의 참석 후 서울로 내려왔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일성 공산당에 협조하기 위해 북에 눌러앉았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죠.”
조씨가 보여준 사진에는 이청천과 이범석 장군도 함께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당시에 북한에 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 선생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왜 월북을 했을까요?
“이용 장군이 북에 갈 때 ‘지금 서울에 있다가는 언제 변을 당할지 모르겠다’며 고향에 들러 정리하고 중국으로 가야겠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송진우(宋鎭禹), 여운형, 장덕수(張德秀) 등 민족계 지도자들이 연이어 암살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신변에 위험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실제 김구 선생도 얼마 후 바로 암살을 당하셨잖습니까.
또 가족이 모두 북한에 있었기 때문에 신변 정리를 하러 북에 들어가야 했을 겁니다. 이용 장군이 중국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광복 전까지 중국군 신분을 유지했고, 장개석 총통과 친했기 때문에 무슨 논의를 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1948년 장개석은 상해에 있었다)
이용은 남한 단독정부 설립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서울신문》 1946년 6월 8일)하는 등 다른 많은 민족주의자들과 같이 미군정 및 이승만의 노선과는 상당한 시각차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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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이준 열사 추도식에 모인 이준열사기념사업회 회원들과 유족. 이준 열사의 유해는 1963년 환국해 서울 수유리 순국선열 묘역에 안장됐다. 한가운데 양복 입고 지팡이를 든 이가 조서해씨로 이용의 조카다. |
‘북한 원로들의 말로’
―이용 선생님이 북에 간 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요.
“그 후에는 어떤 기록도 확인할 수가 없으니 선친의 말씀과 당시 정황을 놓고 추측을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친께서는 당시 함경도에서는 이준 열사와 독립군 대장 출신인 이용 장군의 지명도가 상당히 높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조만식(曺晩植) 선생님보다 인지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일성도 이용 장군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을 겁니다. 김일성은 초반에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독립운동가들을 많이 활용했습니다. 특히 이용 장군은 김일성이 반드시 잡아놓고 싶은 대상이었을 겁니다. 갖은 회유와 설득을 해서 각료직을 주어 그를 잡아놓았다고 봅니다.”
조근송씨는 이용이 김일성에게 숙청을 당했다고 믿고 있었다.
“이용 장군도 이준 열사처럼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독립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분이 김일성이 하는 우상화 놀음에 곱게 찬성했겠습니까. 하지만 이용 장군은 아무 실권이 없는 상태에서 김일성에게 이용당하는 신세였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용 장군의 매제인 유자후(柳子厚·사학자·이준의 사위로 이준 열사 전기 저술)가 6ㆍ25 때 납북되어 수용소에 간 후 김일성에게 죽임을 당했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조 선생님 부친은 어떻게 남으로 나왔나요.
“광복 후 이용 장군이 아버지보고 ‘빨리 남으로 피하라’고 하셨답니다. 우리 집안이 엄청난 지주 집안이라 화가 미칠 것을 예상하셨던 겁니다. 그만큼 이용 장군은 공산주의자를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자유시에서 공산당에 배신을 당해 봤고, 무장해제를 겪었기 때문에 소련과 공산당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그들을 믿지 않았을 겁니다. 저의 아버지는 ‘이용 외삼촌이 소련 각지로 끌려가서 행방을 모르는 옛 동지들의 소식을 무척 궁금해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조근송씨는 “아버지는 생전에 이용 장군이 공산주의였다는 말씀을 들으면 불같이 화를 냈다”며 “특히 장개석 총통이 북벌을 개시하기 전에 군 내부에 있는 공산당 척결을 시작했는데, 공산주의자였으면 장개석 총통과 어떻게 한 길을 걸었겠느냐”고 말했다.
“아버지는 ‘지금의 김일성은 가짜’라고 하셨습니다. 이용 장군이 그랬다고 했습니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김장군’으로 불리며 전설적인 영웅으로 알려진 분은 김경천 장군입니다. 김경천 장군은 이용 장군과 같은 북청 출신 동갑내기로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은 시베리아에서 명성을 떨친 독립군 대장들의 명성을 자기 것으로 가로챈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당시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용 선생님은 지금 북한 애국열사릉에 안장돼 있는데요.
“제가 중국 측 기록을 찾다가 <북한 원로들의 말로>란 문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이용 사형(死刑)’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 아버지께서 ‘이용 외삼촌이 김일성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평소 하신 말씀이 맞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조근송씨가 찾은 중국 자료는 북한의 소위 혁명 원로 24명의 최후를 기록하고 있었다. 박헌영, 이승엽, 장시우, 주영하, 김원봉, 최창일, 장평상 등 총 17명이 사형을 당했고, 기타 사고사, 의문사, 원인 불상사도 한 명씩 있었다. 자연사라고 된 사람은 김일성, 최용건, 홍명희, 백남운뿐이었다. 확인 결과 사실과 부합했다.
그가 살아온 삶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김일성이 이용을 처형했다면 왜 애국열사릉에 안장한 것일까. 북한 무용가 출신 탈북자 김영순(崔承喜의 제자)씨는 “김일성이 탄광에 보냈다가 총살한 최승희도 현재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며 “북한을 우리가 아는 정상국가의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1997년 반체제 인사라며 인민의 이름으로 총살한 노동당 농업담당비서 서관히를 다시 열사릉에 갖다 묻은 짓을 하는 게 북한 정권입니다. 저의 스승인 최승희도 총살당했는데, 애국열사릉에 갖다 놨습니다. 아마 북에서 일 점 일 획도 고칠 수 없는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김일성 회고록에 최승희를 칭찬한 대목이 있기 때문일 겁니다.”
기자는 국회도서관에서 김일성의 회고록을 살펴보았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8권에 김일성이 이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대목을 발견했다.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로 대치되어 있던 두 세력이 이 시기(1940년)에 와서는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어 다시 합작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용이 공산주의자입니까. 아닙니다. 그는 원래 민족주의자였습니다. 그것도 우리 아버지뻘이나 되는 노(老) 세대였습니다. 그렇지만 이용은 우리와 걸음을 같이하였습니다. 진실로 애국을 하는 사람에게는 공산주의냐, 민족주의냐 하는 것이 문제로 되지 않습니다.>
조근송씨는 “저의 아버지는 김일성의 부인 김정숙(1949년 사망)이 이용 장군을 무척 높이 평가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것 때문이라도 김일성은 장군을 더욱 북에 잡아놓고 싶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회고록 6권에 “김정숙이 농민운동을 준비하던 중에 이원의 차호 앞바다에 있던 이용을 찾아갔다”는 내용이 있었다. 조근송씨의 설명이다.
“이용 장군이 북에서 장관을 하는 동안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김일성에게 죽어나가는 것을 수수방관하고 있지 않았을 겁니다. 김일성은 6ㆍ25 때 이승엽(사법상)이라는 악질 친일파를 서울시 인민 위원장 자리에 앉혔습니다. 이승엽은 국내의 애국인사와 독립지사의 납북을 주도하고, 수많은 사람을 처형했습니다. 자기의 일제 때 행적을 알고 있는 독립지사와 애국인사들이 눈엣가시 같았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할아버지가 김일성에게 고분고분 협조를 했을지 의문입니다.”
이준 열사 기념사업회 전재혁 회장은 “북한의 해방사는 거의 100% 조작된 것인데도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오히려 북한이 정통성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며 “이럴 때일수록 이용 같은 분을 재조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용 장군은 남과 북에서 모두 잊힌 존재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한평생 나라독립을 위해 헌신한 인물을 제대로 조명할 때 우리의 정통성은 강화되고, 그런 애국자를 죽인 북한 정권에 뼈아픈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