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년 창립 이래 처음으로 본사 직원 80명과 채탄 체험 함께하며 현장경영
⊙ “힘들지만 두 아이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직장은 흔치 않다”(50대 탄부)
⊙ 석유 고갈 시대 대비, 석탄에서 청정에너지 추출하는 석탄액화기술 개발
⊙ 만년 꼴찌 하다 지난해 고객만족도 조사서 2위로 급부상, 정부 경영평가서도 한 단계 상승
이강후
⊙ 58세. 강원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美 조지워싱턴대 경영행정학 석사.
고려대 행정학 박사.
⊙ 22회 행정고시 합격. 산업자원부 에너지관리과장·자원기술과장·전력산업과장, 중소기업청
기획관리실장, 지식경제부 우정사업정보센터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 역임.
⊙ 現 국회 기후변화·에너지대책연구회 신재생에너지분과 위원장.
⊙ 저서: 《한국의 벤처산업발전론》 《새로운 성장동력 대체에너지》.
⊙ “힘들지만 두 아이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직장은 흔치 않다”(50대 탄부)
⊙ 석유 고갈 시대 대비, 석탄에서 청정에너지 추출하는 석탄액화기술 개발
⊙ 만년 꼴찌 하다 지난해 고객만족도 조사서 2위로 급부상, 정부 경영평가서도 한 단계 상승
이강후
⊙ 58세. 강원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행정대학원 석사. 美 조지워싱턴대 경영행정학 석사.
고려대 행정학 박사.
⊙ 22회 행정고시 합격. 산업자원부 에너지관리과장·자원기술과장·전력산업과장, 중소기업청
기획관리실장, 지식경제부 우정사업정보센터장,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 역임.
⊙ 現 국회 기후변화·에너지대책연구회 신재생에너지분과 위원장.
⊙ 저서: 《한국의 벤처산업발전론》 《새로운 성장동력 대체에너지》.
“오늘 우리가 작업할 곳은 갱구(坑口)로부터 약 3.5km 떨어져 있으며, 지하 460m(해수면에서 110m 아래) 지점에 위치한 도계광업소 동덕생산부 15편 막장입니다.”
오전 8시, 채탄(採炭) 현장으로 가는 권양기(捲揚機·로프 등으로 짐을 실어나르는 장치의 일종)에서 도계광업소 이광선(李光善) 소장이 작업장 위치와 환경을 열심히 설명했다. 권양기에는 이강후(李康厚) 대한석탄공사 사장을 비롯해 본사 임직원 10여 명과 기자 일행이 탑승했다. 작업복에 안전등까지 빈틈없이 착용했지만 모두 초행길이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권양기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15도 경사의 사갱(斜坑)이 이무기의 목구멍인 양 깊고 어둡게 다가왔다. 가을 초입, 유난히 청명한 도계의 하늘과 푸른 숲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난생처음 입갱한 기자의 맥박이 빨라졌다.
사시사철 무더운 막장
지난 8월 말, 기자는 강원도 도계읍 상덕리에 위치한 탄광에서 대한석탄공사(이하 석공) 본사 임직원 틈에 섞여 반나절 동안 채탄 체험을 했다. 석공 본사 직원 80명은 장성광업소(강원 태백), 도계광업소(강원 도계), 화순광업소(전남 화순) 등 석공이 운영하는 3개 탄광에 분산 배치돼 하루 동안 석탄을 캤다. 본사 임직원들이 채탄 현장에서 직접 탄을 캐기는 1950년 석공 창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석공 관계자는 “이번 채탄 현장체험은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이강후 사장의 제안으로 시행했으며, 채탄 체험을 통해 생산 현장의 고충을 이해하고 현장과 본사 직원 간 소통을 강화하고자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강후 사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4월 강원도 태백에 있는 장성광업소 지하 900여m에서 채탄 체험을 했다. 이번이 두 번째 입갱인 셈이다. 그 때문인지 바짝 긴장한 젊은 직원들과는 달리 짐짓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승차감이 엉망인 권양기 위에서 잠깐잠깐 졸기까지 했다.
권양기는 분속 130m 속도로 사갱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일행은 갱구로부터 600여m 멀어진 지점에서 다른 권양기로 환승, 다시 800여m를 더 나아갔다. 이어 전차(電車)로 갈아탄 후 수평 갱도를 2km 가량 달려 막장에 도착했다. 갱구에서 채탄장까지 40분 정도가 걸렸다.
막장은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덥고 습했다. 이광선 소장은 “우리가 서 있는 15편(지하 15층에 해당, 편과 편의 층간은 50m로 동덕생산부는 현재 18편까지 작업 준비가 된 상태) 작업장의 현재 온도는 28℃, 습도는 84%”라고 설명했다. 그는 “갱도 내에 신선한 공기를 주입시키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주는 에어쿨링 시스템이 없으면 막장 안은 훨씬 덥고 습해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막장 안은 지열(地熱)뿐만 아니라 석탄이 품고 있는 온도에 착암기와 발파 장비가 품어내는 열기까지 더해져 1년 사시사철 무덥고 습하다는 것이었다.
하루 8시간 2교대 근무
채탄 작업을 시작했다. 탄부들은 3인1조가 되어 탄을 캤다. 앞의 두 사람은 착암기와 발파 장비를 이용해 바윗덩어리 같은 탄을 붕락(崩落)시키는가 하면 갱도가 붕괴되지 않도록 갱목과 철제 빔으로 천장과 측면을 고정시켜 나갔다. 나머지 한 명은 철제 빔과 갱목 등의 자재를 부지런히 조달했다.
이광선 소장은 “동덕탄광의 탄층은 폭 7m의 탄맥이 경사 50°로 50m 가량 길게 형성돼 있어 상부를 허물어뜨리는 붕락법(caving method)으로 채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인1조의 탄부들은 하루 40톤씩 월 800톤을 채탄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캘 수 있는 양은 8500톤이라고 한다.
이들의 보조로 나선 이강후 사장과 본사 직원들은 갱도에 쌓인 석탄을 삽으로 퍼서 갱도 한쪽에 설치한 컨베이어 벨트에 부지런히 퍼 담았다. 이 사장은 능숙한 솜씨로 삽질을 했다. 서너 번의 삽질에도 땀이 비 오듯 온몸을 타고 흘렀고, 방진 마스크를 벗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찼다. 30여 분 동안 침묵의 작업이 계속되고 있을 즈음 “발파가 있으니 뒤로 물러서라”는 신호가 떨어졌다.
얼마 후 “쾅”하는 굉음과 함께 갱도 안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탄가루로 가득 찼다. 검은 장막은 10여 분이 지나서야 걷혔다. 발파 현장에서는 연질(軟質)의 석탄이 쏟아져 내렸다. 안전등 불빛에 비친 석탄은 흑요석(黑曜石)처럼 아름다웠다. 이강후 사장은 “석탄이야말로 땅속의 검은 진주”라고 말했다. 태고의 잠에서 깨어난 석탄의 아름다움에 잠시 더위를 잊을 즈음 채탄 작업이 재개됐고, 12시가 되어서야 오전 일과가 끝이 났다.
점심은 막장 입구에 있는 휴게실에서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선두에서 발파와 붕락 작업을 했던 두 탄부는 작업복이 땀과 석탄으로 뒤범벅이었다. 물에 젖은 몸으로 잿더미 속을 뒹군 듯했다.
30대 젊은 탄부는 “점심 먹고 한 번, 오후 작업 끝내고 한 번, 매일 작업복을 두 번씩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막장에서 일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는 50대 중반의 탄부는 “힘들지만 두 아이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직장은 흔치 않다”며 유난히 흰 이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었다. 이들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던 이강후 사장은 “광산 근로자 자녀들에 한해 정부가 학자금 100%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많건 적건 탄부들은 말이 많지 않았다. 묵묵히 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40대 한 탄부는 “1일 채탄량을 일찍 채우면 그만큼 빨리 작업을 마칠 수 있다”며 빈 도시락을 들고 일어섰다.
석공의 3개 광업소 탄부들은 하루 2교대로 근무한다. 갑(甲)조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작업하고, 을(乙)조가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작업하는 식이다. 주 5일 근무이며, 갑·을조의 근무시간대는 정기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오후 1시, 이강후 사장과 본사 직원들은 갱구로 향하는 전차에 올랐다. 일행은 들어올 때의 역순으로 막장을 빠져나왔다. 이 사장은 지상으로 향하는 권양기에서도 내내 졸았다. 홍보실 직원은 “취임 이후 사장은 석공이 운영하는 3개 광업소는 물론 석공의 주요 고객인 전국 49개 연탄공장을 일일이 둘러보고 챙기느라 강행군을 해왔다”고 말했다.
1988년 347개였던 탄광 5개만 남아
지난해 4월 취임한 이강후 사장은 정통 관료 출신이다. 그는 행정고시로 공직에 입문한 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석탄산업과장·에너지관리과장(부이사관)·자원기술과장·전력산업과장 등을 역임하며 에너지 전문가로서 입지를 굳혔다. 석탄산업과장으로 있던 1997년 강원도 폐광지역의 대체산업으로 강원랜드 설립을 입안했고, 실행에 옮긴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가 석공 사장에 오른 데는 이 같은 경력이 뒷받침된 것으로 보인다.
석공은 1950년에 창립된 국내 최고(最古)의 공기업이다. 창립 이후 60여 년 동안 석탄을 생산·가공해 기업과 가정에 안정된 가격으로 공급해 왔다. 석탄은 국내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으로 한국 산업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었으나 1980년대 들어 에너지 자원이 석유와 가스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석탄을 국민들에게 안정된 가격에 공급하고자 출범한 석공의 존재 가치도 의식 밖으로 밀려났다.
석탄산업이 피크였던 1988년 347개였던 탄광이 하나 둘 문을 닫아 현재는 5개에 불과하다. 이 중 장성광업소, 도계광업소, 화순광업소 등 3개는 석공이 운영하고 있고, 나머지 태백탄광(강원 태백)과 경동탄광(강원 삼척)은 민영이다.
탄광이 폐광되면서 근로자도 6만2000여 명에서 4000여 명으로 급감했고, 생산량도 연간 2400만여 톤에서 200만여 톤(2010년)으로 10분의 1 이상 줄었다. 이강후 사장은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행되면서 계속된 폐광과 생산 감축으로 국내 석탄 생산량이 1988년의 9%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은 88올림픽 직후인 1989년 석유와 가스에 밀려 국내 석탄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자 정부가 석탄 관련 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내놓은 순차적 구조조정안이다.
한때 1만5000명에 달했던 석공 임직원 수도 1700여 명으로 줄었다. 끝없는 구조조정에 석공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그 영향으로 정부의 각종 평가에서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석공은 정부 경영평가에서 2008년에 이어 2009년까지 2년 연속 기관장 경고를 받았다. 게다가 적지 않은 금융부담까지 떠안고 있었다. 석탄합리화정책 후 조기 퇴직금으로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1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매년 발생하는 이자만 500억원이었다. 누가 봐도 부실공기업인 석공에 이강후 사장이 투입됐다.
경영평가 만년 꼴찌 탈출
그는 취임 첫해부터 사양산업의 대명사로 굳어진 석탄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현장경영을 강조하며 장성광업소 지하 975m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채탄 작업을 하는가 하면, 주요 고객인 전국 49개 연탄공장을 찾아가 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개선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21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만년 꼴찌였던 석공이 지난해에는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 사장의 혁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석탄만큼이나 낡은 느낌의 석공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대대적인 조직 정비도 했다. 연공서열 위주의 보직관행을 탈피, 직무역량 중심의 드래프트제를 도입한 인사를 단행했다. 본사 1급 직위 50%를 2급 직원 중에서 선발하는가 하면, 2급 자리에 4급 팀원을 발탁하기도 했다. 또한 일반직(광산 근로자 제외) 400여 명을 대상으로 매년 인사평가를 실시, 3년 연속 하위 5%에 들 경우 퇴출이 가능토록 했다.
조직을 어느 정도 정비하자 이번에는 해외탄광 개발과 석탄가스화 사업에 나서며 글로벌 경영에 도전했다. 석공은 작년 12월 몽골 누르스트 훗고르 탄광 지분 51%를 200억원에 인수했고, 지난 7월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석탄가스화 사업의 경우 석탄을 청정에너지로 바꾸는 기술개발은 추진 단계이고, 석탄과 폐플라스틱을 혼합한 성형연료 가스화 기술은 이미 개발에 성공해 2012년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석공은 올해 실시된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1단계 상승한 C등급을 받았고, 이강후 사장은 ‘2011 올해의 CEO 대상’ 가치 경영(공공)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사장은 “만년 D등급만 받다 C등급을 받아 탄광 근로자(그는 광부 대신 이 표현을 써달라고 했다)들에게 좀 더 많은 성과급이 돌아가 기쁘다”고 말했다.
국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매년 치르는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도계광업소 동덕생산부 건물 외벽에는 ‘경영평가 C등급, 성과급 240%→320%’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사장은 “광산 근로자들은 지난해는 물론 그 이전 해에도 똑같이 일했지만 경영평가 결과가 낮게 나와 성과급을 적게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광산 근로자들은 늘 A등급을 받아도 좋을 만큼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 왔습니다. 석공이 정부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느냐 D등급을 받느냐는 경영진이 얼마나 열심히 자료를 준비하고 평가위원들에게 어필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요. 광산 근로자들을 위해 내년에는 더 나은 등급을 받고 싶습니다.”
워낙 어렵다 보니 채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
이강후 사장은 채탄 직후 탄가루로 뒤범벅된 자신의 얼굴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보관하고 있다. 그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광산 근로자들의 노고를 상기하고자 사진을 저장해 놓았다”고 말했다.
―현장경영에 대한 의지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지도자라면 현장을 파악해야 하고, 근로자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취임하자마자 광업소로 달려갔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땀흘리는 가운데 소통하고 싶었지요. 제가 강원도 촌놈이라 노동 현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 삽질이건 톱질이건 안 해본 것이 없지요.”
그는 강원도 원주 출신에 농군의 아들이지만 광산 근로자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석탄산업이 활황이던 1970년대와 80년대 친형이 정선군 고한의 탄광촌에서 교편을 잡았기 때문이란다.
“형님은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 즈음 교편을 놓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습니다. 형님께서는 제가 석공 사장에 임명되었다니까 득달같이 전화해 ‘늘 광산 근로자 편에 서는 사장이 돼라’고 당부하더군요. 탄광촌에서 교편을 잡았을 당시에는 붕락 사고로 목숨을 잃는 근로자가 많았다며, 수업 중 아이를 불러내 집으로 보내는 일이 가장 가슴 아프고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과 고한읍은 한때 인구가 1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번성했던 대표적인 국내 탄광도시였다. 폐광이 된 지금은 인구 1만명이 겨우 넘을 정도로 작은 소읍으로 전락했다. 1981년 인구가 각각 12만명과 5만명에 달했던 태백과 도계도 현재 5만여 명과 1만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이 사장은 “태백이나 도계는 지금도 경제의 70%를 광업소에 의존하고 있는 곳”이라면서 “광업소가 없어지면 두 도시는 폐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석탄은 생산원가가 높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국내에 매장돼 있는 석탄은 지하 깊숙이 탄맥을 형성하고 있는 무연탄입니다. 오늘 체험해 봐서 아시겠지만 각종 장비를 동원해 수백 미터 이상 들어가야 탄을 캘 수 있죠. 그러다 보니 채산성이 떨어집니다. 톤당 생산비가 20만원이 넘어 석탄이 아니라 금탄이라 불러야 할 형편이에요. 그런데도 연탄 가격이 저렴한 것은 정부에서 보전해 주기 때문입니다.”
올해 지경부가 고시한 연탄 소비자 가격은 개당 4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생산원가만 700원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가는 1000원쯤 돼야 하지만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가격을 동결하는 대신 차액을 보전해 주고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국내 가구의 70% 가량이 연탄을 난방연료로 썼지만 지금은 불과 20만 가구(1.5%)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경쟁력이 없는 석탄산업을 유지하는 건 혈세 낭비 아닌가요.
“석탄산업은 눈앞의 손익만으로 존폐 여부를 결정할 분야가 아닙니다. 폐광이 되면 광산도시 경제가 붕괴된다는 점, 20만 연탄 수요자 대부분이 서민층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고, 머지않아 고갈될 석유와 가스를 대신할 에너지 자원이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죠. 남북통일 후 탄광개발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북한의 경우 무연탄 매장량이 남한보다 10배나 많지만 채탄 기술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거든요.”
그는 “지하 1km까지 파고들어가는 한국의 채탄 기술은 세계 수준”이라고 말했다.
몽골 탄광서 매년 100만 톤 생산
―국산 석탄은 연탄 외에 사용처가 없나요.
“영동화력(남동발전), 서천화력(중부발전), 동해화력(동서발전) 등 일부 화력발전소에서 수입 유연탄과 섞어 연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화력발전소에서는 무연탄에 비해 칼로리가 월등히 높은 유연탄을 쓰고 있죠.”
유연탄은 화력발전소뿐만 아니라 포스코 같은 제철소에서 매년 1억 톤씩 소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연탄이 나지 않는 까닭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석탄을 캐는 과정은 세계 어느 나라든 비슷한가요.
“무연탄은 탄맥 형성이 비슷해 채탄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연탄의 경우 흙만 걷어내면 포클레인과 같은 장비로 퍼 담을 수 있는 노천탄광이 많아 채산성이 높지요. 저희가 작년 말 경영권을 인수해 지난 7월부터 생산에 들어간 몽골 누르스트 훗고르 탄광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훗고르 탄광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1500km 떨어진 오지에 위치해 있다. 이 사장은 “이곳의 유연탄은 7000㎉/kg으로 탄질이 좋고 가채광량이 7600만 톤에 이르러 채산성이 높다”며 “한국신용평가에 경제성 분석을 의뢰한 결과 5년3개월 정도면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유통 구조상 국내에 들여오기는 힘들다고 들었는데, 판로가 있습니까.
“탄광에서 가까운 러시아 알타이공화국과 투바공화국, 중국 신장성 등지에 판매할 계획입니다. 중국 바이오스틸 신장성 공장과는 지난해 10월 생산탄 공급에 관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예요.”
훗고르 탄광 개발에는 석공을 비롯해 민간기업인 (주)앤알디와 선진그룹(몽골현지법인)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석공 측은 “올해는 30만 톤을 생산하고, 내년부터는 100만 톤씩 70년 동안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른 연간 예상 수익은 30만 톤이 12억원, 100만 톤이 43억원이다.
폐목 이용 바이오에너지 사업 추진
이강후 사장은 석탄에서 석유와 가스를 추출하는 CTL(석탄액화기술)에 관심이 많다. 그는 “CTL은 고압으로 열을 가해 추출하는 방식이라 아직까지는 코스트(cost)가 높아 경쟁력이 없지만 40, 50년 후 석유와 가스가 고갈되고 나면 석탄만 남기 때문에 선점해야 할 기술”이라고 말했다.
“CTL 기술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가장 앞서 있습니다. 남아공은 과거 인종차별 정책 때문에 유엔으로부터 석유 수입을 차단당했는데, 그 때문에 석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요. 현재 미국과 중국이 남아공과 합작으로 대규모 CTL 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난번 중국 출장길에 양쯔강 유역에 갔는데, 엄청난 규모의 가스 발전소 부지가 조성되고 있더군요.”
―무연탄과 폐플라스틱을 혼합해 만드는 청정가스는 상용화할 날이 멀지 않았다면서요.
“지난해 10월 화순광업소에 가스화 장치를 설치,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유류 대비 30%의 연료비 절감 효과를 보고 있지요. 우려했던 다이옥신 등의 오염물질은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국내에 연간 250만 톤의 폐플라스틱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 기술은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녹색성장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 사장은 이 사업 외에 채탄할 때 나오는 폐목(廢木)을 난방용 보일러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에너지 사업도 추진 중이다. 뿐만 아니라 석탄 생산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카이스트(KAIST) 등과 함께 채탄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2012년 원주 혁신도시로 이전
이렇듯 바쁜 와중에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석공의 원주 혁신도시 이전 문제이다. 석공의 이주 예정일은 2012년으로 코앞이다.
―원주시에 부지가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석탄공사 이주 부지가 마련된 지역이 공교롭게도 제 고향입니다. 고향 분들이 이주 보상비를 받고 떠난 자리에 공사가 들어가게 됐으니 저와는 참 묘한 인연이 있는 듯싶네요. 다른 공기업들의 경우 내려간다는 말만 무성할 뿐 아직 부지 조성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국내 1호 공기업인 저희가 가장 먼저 내려가 모범을 보일 생각입니다.”
원주 혁신도시는 총 100만 평 부지 중 56% 조성을 마친 상태다. 석공의 이주 예정 인원은 본사 직원과 협력업체까지 3000여 명이다.
―부채가 많은데, 건물은 무슨 돈으로 짓습니까.
“자체 예산으로 지을 계획입니다. 다행히 저희는 과거 갱목 확보용으로 매입해 놓은 임야가 많습니다. 강원도 등 전국에 2000만 평 정도 있지요. 자산 가치로 치면 4000억원 정도 됩니다. 이 임야를 산림청에 조금씩 매각해 그 대금으로 사옥을 건립할 생각입니다.”
이강후 사장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강원도에서 마쳤다. 그는 “나는 강원대가 배출한 최초의 고시 합격자”라면서 “석탄공사를 석유공사나 가스공사 못지않은 글로벌 공기업으로 만들어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오전 8시, 채탄(採炭) 현장으로 가는 권양기(捲揚機·로프 등으로 짐을 실어나르는 장치의 일종)에서 도계광업소 이광선(李光善) 소장이 작업장 위치와 환경을 열심히 설명했다. 권양기에는 이강후(李康厚) 대한석탄공사 사장을 비롯해 본사 임직원 10여 명과 기자 일행이 탑승했다. 작업복에 안전등까지 빈틈없이 착용했지만 모두 초행길이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권양기가 덜컹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하자 15도 경사의 사갱(斜坑)이 이무기의 목구멍인 양 깊고 어둡게 다가왔다. 가을 초입, 유난히 청명한 도계의 하늘과 푸른 숲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난생처음 입갱한 기자의 맥박이 빨라졌다.
사시사철 무더운 막장
지난 8월 말, 기자는 강원도 도계읍 상덕리에 위치한 탄광에서 대한석탄공사(이하 석공) 본사 임직원 틈에 섞여 반나절 동안 채탄 체험을 했다. 석공 본사 직원 80명은 장성광업소(강원 태백), 도계광업소(강원 도계), 화순광업소(전남 화순) 등 석공이 운영하는 3개 탄광에 분산 배치돼 하루 동안 석탄을 캤다. 본사 임직원들이 채탄 현장에서 직접 탄을 캐기는 1950년 석공 창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석공 관계자는 “이번 채탄 현장체험은 현장경영을 중시하는 이강후 사장의 제안으로 시행했으며, 채탄 체험을 통해 생산 현장의 고충을 이해하고 현장과 본사 직원 간 소통을 강화하고자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강후 사장은 취임 직후인 지난해 4월 강원도 태백에 있는 장성광업소 지하 900여m에서 채탄 체험을 했다. 이번이 두 번째 입갱인 셈이다. 그 때문인지 바짝 긴장한 젊은 직원들과는 달리 짐짓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승차감이 엉망인 권양기 위에서 잠깐잠깐 졸기까지 했다.
권양기는 분속 130m 속도로 사갱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일행은 갱구로부터 600여m 멀어진 지점에서 다른 권양기로 환승, 다시 800여m를 더 나아갔다. 이어 전차(電車)로 갈아탄 후 수평 갱도를 2km 가량 달려 막장에 도착했다. 갱구에서 채탄장까지 40분 정도가 걸렸다.
막장은 가만히 서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덥고 습했다. 이광선 소장은 “우리가 서 있는 15편(지하 15층에 해당, 편과 편의 층간은 50m로 동덕생산부는 현재 18편까지 작업 준비가 된 상태) 작업장의 현재 온도는 28℃, 습도는 84%”라고 설명했다. 그는 “갱도 내에 신선한 공기를 주입시키고 온도와 습도를 조절해 주는 에어쿨링 시스템이 없으면 막장 안은 훨씬 덥고 습해서 작업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막장 안은 지열(地熱)뿐만 아니라 석탄이 품고 있는 온도에 착암기와 발파 장비가 품어내는 열기까지 더해져 1년 사시사철 무덥고 습하다는 것이었다.
하루 8시간 2교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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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하 460m 갱도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 |
이광선 소장은 “동덕탄광의 탄층은 폭 7m의 탄맥이 경사 50°로 50m 가량 길게 형성돼 있어 상부를 허물어뜨리는 붕락법(caving method)으로 채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3인1조의 탄부들은 하루 40톤씩 월 800톤을 채탄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캘 수 있는 양은 8500톤이라고 한다.
이들의 보조로 나선 이강후 사장과 본사 직원들은 갱도에 쌓인 석탄을 삽으로 퍼서 갱도 한쪽에 설치한 컨베이어 벨트에 부지런히 퍼 담았다. 이 사장은 능숙한 솜씨로 삽질을 했다. 서너 번의 삽질에도 땀이 비 오듯 온몸을 타고 흘렀고, 방진 마스크를 벗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찼다. 30여 분 동안 침묵의 작업이 계속되고 있을 즈음 “발파가 있으니 뒤로 물러서라”는 신호가 떨어졌다.
얼마 후 “쾅”하는 굉음과 함께 갱도 안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탄가루로 가득 찼다. 검은 장막은 10여 분이 지나서야 걷혔다. 발파 현장에서는 연질(軟質)의 석탄이 쏟아져 내렸다. 안전등 불빛에 비친 석탄은 흑요석(黑曜石)처럼 아름다웠다. 이강후 사장은 “석탄이야말로 땅속의 검은 진주”라고 말했다. 태고의 잠에서 깨어난 석탄의 아름다움에 잠시 더위를 잊을 즈음 채탄 작업이 재개됐고, 12시가 되어서야 오전 일과가 끝이 났다.
점심은 막장 입구에 있는 휴게실에서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해결했다. 선두에서 발파와 붕락 작업을 했던 두 탄부는 작업복이 땀과 석탄으로 뒤범벅이었다. 물에 젖은 몸으로 잿더미 속을 뒹군 듯했다.
30대 젊은 탄부는 “점심 먹고 한 번, 오후 작업 끝내고 한 번, 매일 작업복을 두 번씩 갈아입는다”고 말했다. 막장에서 일한 지 30년이 다 되어간다는 50대 중반의 탄부는 “힘들지만 두 아이 등록금 걱정 없이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직장은 흔치 않다”며 유난히 흰 이를 드러낸 채 환하게 웃었다. 이들과 나란히 앉아 식사를 하던 이강후 사장은 “광산 근로자 자녀들에 한해 정부가 학자금 100%를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많건 적건 탄부들은 말이 많지 않았다. 묵묵히 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40대 한 탄부는 “1일 채탄량을 일찍 채우면 그만큼 빨리 작업을 마칠 수 있다”며 빈 도시락을 들고 일어섰다.
석공의 3개 광업소 탄부들은 하루 2교대로 근무한다. 갑(甲)조가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작업하고, 을(乙)조가 오후 4시부터 밤 12시까지 작업하는 식이다. 주 5일 근무이며, 갑·을조의 근무시간대는 정기적으로 바뀐다고 한다.
오후 1시, 이강후 사장과 본사 직원들은 갱구로 향하는 전차에 올랐다. 일행은 들어올 때의 역순으로 막장을 빠져나왔다. 이 사장은 지상으로 향하는 권양기에서도 내내 졸았다. 홍보실 직원은 “취임 이후 사장은 석공이 운영하는 3개 광업소는 물론 석공의 주요 고객인 전국 49개 연탄공장을 일일이 둘러보고 챙기느라 강행군을 해왔다”고 말했다.
1988년 347개였던 탄광 5개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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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 임원실에 근무하는 강민경(앞쪽)씨와 성과평가팀에 근무하는 민은미씨. |
석공은 1950년에 창립된 국내 최고(最古)의 공기업이다. 창립 이후 60여 년 동안 석탄을 생산·가공해 기업과 가정에 안정된 가격으로 공급해 왔다. 석탄은 국내 유일의 부존 에너지 자원으로 한국 산업 발전을 이끈 원동력이었으나 1980년대 들어 에너지 자원이 석유와 가스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석탄을 국민들에게 안정된 가격에 공급하고자 출범한 석공의 존재 가치도 의식 밖으로 밀려났다.
석탄산업이 피크였던 1988년 347개였던 탄광이 하나 둘 문을 닫아 현재는 5개에 불과하다. 이 중 장성광업소, 도계광업소, 화순광업소 등 3개는 석공이 운영하고 있고, 나머지 태백탄광(강원 태백)과 경동탄광(강원 삼척)은 민영이다.
탄광이 폐광되면서 근로자도 6만2000여 명에서 4000여 명으로 급감했고, 생산량도 연간 2400만여 톤에서 200만여 톤(2010년)으로 10분의 1 이상 줄었다. 이강후 사장은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시행되면서 계속된 폐광과 생산 감축으로 국내 석탄 생산량이 1988년의 9%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은 88올림픽 직후인 1989년 석유와 가스에 밀려 국내 석탄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자 정부가 석탄 관련 산업의 붕괴를 막기 위해 내놓은 순차적 구조조정안이다.
한때 1만5000명에 달했던 석공 임직원 수도 1700여 명으로 줄었다. 끝없는 구조조정에 석공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그 영향으로 정부의 각종 평가에서 최하위권을 맴돌았다. 석공은 정부 경영평가에서 2008년에 이어 2009년까지 2년 연속 기관장 경고를 받았다. 게다가 적지 않은 금융부담까지 떠안고 있었다. 석탄합리화정책 후 조기 퇴직금으로 금융권에서 빌린 돈이 1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매년 발생하는 이자만 500억원이었다. 누가 봐도 부실공기업인 석공에 이강후 사장이 투입됐다.
경영평가 만년 꼴찌 탈출
그는 취임 첫해부터 사양산업의 대명사로 굳어진 석탄업계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현장경영을 강조하며 장성광업소 지하 975m에서 근로자들과 함께 채탄 작업을 하는가 하면, 주요 고객인 전국 49개 연탄공장을 찾아가 그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개선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21개 공기업을 대상으로 한 고객만족도 조사에서 만년 꼴찌였던 석공이 지난해에는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이 사장의 혁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석탄만큼이나 낡은 느낌의 석공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대대적인 조직 정비도 했다. 연공서열 위주의 보직관행을 탈피, 직무역량 중심의 드래프트제를 도입한 인사를 단행했다. 본사 1급 직위 50%를 2급 직원 중에서 선발하는가 하면, 2급 자리에 4급 팀원을 발탁하기도 했다. 또한 일반직(광산 근로자 제외) 400여 명을 대상으로 매년 인사평가를 실시, 3년 연속 하위 5%에 들 경우 퇴출이 가능토록 했다.
조직을 어느 정도 정비하자 이번에는 해외탄광 개발과 석탄가스화 사업에 나서며 글로벌 경영에 도전했다. 석공은 작년 12월 몽골 누르스트 훗고르 탄광 지분 51%를 200억원에 인수했고, 지난 7월부터 생산에 들어갔다. 석탄가스화 사업의 경우 석탄을 청정에너지로 바꾸는 기술개발은 추진 단계이고, 석탄과 폐플라스틱을 혼합한 성형연료 가스화 기술은 이미 개발에 성공해 2012년 상용화를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석공은 올해 실시된 정부의 경영평가에서 1단계 상승한 C등급을 받았고, 이강후 사장은 ‘2011 올해의 CEO 대상’ 가치 경영(공공)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사장은 “만년 D등급만 받다 C등급을 받아 탄광 근로자(그는 광부 대신 이 표현을 써달라고 했다)들에게 좀 더 많은 성과급이 돌아가 기쁘다”고 말했다.
국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은 매년 치르는 경영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도계광업소 동덕생산부 건물 외벽에는 ‘경영평가 C등급, 성과급 240%→320%’라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사장은 “광산 근로자들은 지난해는 물론 그 이전 해에도 똑같이 일했지만 경영평가 결과가 낮게 나와 성과급을 적게 받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광산 근로자들은 늘 A등급을 받아도 좋을 만큼 열심히 성실하게 일해 왔습니다. 석공이 정부 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느냐 D등급을 받느냐는 경영진이 얼마나 열심히 자료를 준비하고 평가위원들에게 어필했느냐에 달려 있다고 봐요. 광산 근로자들을 위해 내년에는 더 나은 등급을 받고 싶습니다.”
워낙 어렵다 보니 채탄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
이강후 사장은 채탄 직후 탄가루로 뒤범벅된 자신의 얼굴을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 보관하고 있다. 그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광산 근로자들의 노고를 상기하고자 사진을 저장해 놓았다”고 말했다.
―현장경영에 대한 의지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지도자라면 현장을 파악해야 하고, 근로자들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취임하자마자 광업소로 달려갔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땀흘리는 가운데 소통하고 싶었지요. 제가 강원도 촌놈이라 노동 현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 삽질이건 톱질이건 안 해본 것이 없지요.”
그는 강원도 원주 출신에 농군의 아들이지만 광산 근로자들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석탄산업이 활황이던 1970년대와 80년대 친형이 정선군 고한의 탄광촌에서 교편을 잡았기 때문이란다.
“형님은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 즈음 교편을 놓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습니다. 형님께서는 제가 석공 사장에 임명되었다니까 득달같이 전화해 ‘늘 광산 근로자 편에 서는 사장이 돼라’고 당부하더군요. 탄광촌에서 교편을 잡았을 당시에는 붕락 사고로 목숨을 잃는 근로자가 많았다며, 수업 중 아이를 불러내 집으로 보내는 일이 가장 가슴 아프고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과 고한읍은 한때 인구가 1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번성했던 대표적인 국내 탄광도시였다. 폐광이 된 지금은 인구 1만명이 겨우 넘을 정도로 작은 소읍으로 전락했다. 1981년 인구가 각각 12만명과 5만명에 달했던 태백과 도계도 현재 5만여 명과 1만여 명으로 줄어든 상태다. 이 사장은 “태백이나 도계는 지금도 경제의 70%를 광업소에 의존하고 있는 곳”이라면서 “광업소가 없어지면 두 도시는 폐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석탄은 생산원가가 높아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국내에 매장돼 있는 석탄은 지하 깊숙이 탄맥을 형성하고 있는 무연탄입니다. 오늘 체험해 봐서 아시겠지만 각종 장비를 동원해 수백 미터 이상 들어가야 탄을 캘 수 있죠. 그러다 보니 채산성이 떨어집니다. 톤당 생산비가 20만원이 넘어 석탄이 아니라 금탄이라 불러야 할 형편이에요. 그런데도 연탄 가격이 저렴한 것은 정부에서 보전해 주기 때문입니다.”
올해 지경부가 고시한 연탄 소비자 가격은 개당 4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생산원가만 700원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비자가는 1000원쯤 돼야 하지만 정부가 저소득층을 위해 가격을 동결하는 대신 차액을 보전해 주고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국내 가구의 70% 가량이 연탄을 난방연료로 썼지만 지금은 불과 20만 가구(1.5%)만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정부가 경쟁력이 없는 석탄산업을 유지하는 건 혈세 낭비 아닌가요.
“석탄산업은 눈앞의 손익만으로 존폐 여부를 결정할 분야가 아닙니다. 폐광이 되면 광산도시 경제가 붕괴된다는 점, 20만 연탄 수요자 대부분이 서민층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하고, 머지않아 고갈될 석유와 가스를 대신할 에너지 자원이라는 사실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죠. 남북통일 후 탄광개발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북한의 경우 무연탄 매장량이 남한보다 10배나 많지만 채탄 기술은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거든요.”
그는 “지하 1km까지 파고들어가는 한국의 채탄 기술은 세계 수준”이라고 말했다.
몽골 탄광서 매년 100만 톤 생산
―국산 석탄은 연탄 외에 사용처가 없나요.
“영동화력(남동발전), 서천화력(중부발전), 동해화력(동서발전) 등 일부 화력발전소에서 수입 유연탄과 섞어 연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나머지 화력발전소에서는 무연탄에 비해 칼로리가 월등히 높은 유연탄을 쓰고 있죠.”
유연탄은 화력발전소뿐만 아니라 포스코 같은 제철소에서 매년 1억 톤씩 소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유연탄이 나지 않는 까닭에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석탄을 캐는 과정은 세계 어느 나라든 비슷한가요.
“무연탄은 탄맥 형성이 비슷해 채탄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연탄의 경우 흙만 걷어내면 포클레인과 같은 장비로 퍼 담을 수 있는 노천탄광이 많아 채산성이 높지요. 저희가 작년 말 경영권을 인수해 지난 7월부터 생산에 들어간 몽골 누르스트 훗고르 탄광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훗고르 탄광은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1500km 떨어진 오지에 위치해 있다. 이 사장은 “이곳의 유연탄은 7000㎉/kg으로 탄질이 좋고 가채광량이 7600만 톤에 이르러 채산성이 높다”며 “한국신용평가에 경제성 분석을 의뢰한 결과 5년3개월 정도면 투자금 회수가 가능한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유통 구조상 국내에 들여오기는 힘들다고 들었는데, 판로가 있습니까.
“탄광에서 가까운 러시아 알타이공화국과 투바공화국, 중국 신장성 등지에 판매할 계획입니다. 중국 바이오스틸 신장성 공장과는 지난해 10월 생산탄 공급에 관한 MOU(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예요.”
훗고르 탄광 개발에는 석공을 비롯해 민간기업인 (주)앤알디와 선진그룹(몽골현지법인)이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석공 측은 “올해는 30만 톤을 생산하고, 내년부터는 100만 톤씩 70년 동안 생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른 연간 예상 수익은 30만 톤이 12억원, 100만 톤이 43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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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탄 체험 후 본사 임직원들과 함께한 이강후 사장(앞줄 오른쪽에서 세 번째). |
폐목 이용 바이오에너지 사업 추진
이강후 사장은 석탄에서 석유와 가스를 추출하는 CTL(석탄액화기술)에 관심이 많다. 그는 “CTL은 고압으로 열을 가해 추출하는 방식이라 아직까지는 코스트(cost)가 높아 경쟁력이 없지만 40, 50년 후 석유와 가스가 고갈되고 나면 석탄만 남기 때문에 선점해야 할 기술”이라고 말했다.
“CTL 기술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가장 앞서 있습니다. 남아공은 과거 인종차별 정책 때문에 유엔으로부터 석유 수입을 차단당했는데, 그 때문에 석탄에서 석유를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해요. 현재 미국과 중국이 남아공과 합작으로 대규모 CTL 단지를 조성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지난번 중국 출장길에 양쯔강 유역에 갔는데, 엄청난 규모의 가스 발전소 부지가 조성되고 있더군요.”
―무연탄과 폐플라스틱을 혼합해 만드는 청정가스는 상용화할 날이 멀지 않았다면서요.
“지난해 10월 화순광업소에 가스화 장치를 설치,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유류 대비 30%의 연료비 절감 효과를 보고 있지요. 우려했던 다이옥신 등의 오염물질은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국내에 연간 250만 톤의 폐플라스틱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이 기술은 환경과 에너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녹색성장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이 사장은 이 사업 외에 채탄할 때 나오는 폐목(廢木)을 난방용 보일러 연료로 사용하는 바이오에너지 사업도 추진 중이다. 뿐만 아니라 석탄 생산의 경제성을 높이기 위해 카이스트(KAIST) 등과 함께 채탄 로봇도 개발하고 있다.
2012년 원주 혁신도시로 이전
이렇듯 바쁜 와중에 우선적으로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석공의 원주 혁신도시 이전 문제이다. 석공의 이주 예정일은 2012년으로 코앞이다.
―원주시에 부지가 조성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석탄공사 이주 부지가 마련된 지역이 공교롭게도 제 고향입니다. 고향 분들이 이주 보상비를 받고 떠난 자리에 공사가 들어가게 됐으니 저와는 참 묘한 인연이 있는 듯싶네요. 다른 공기업들의 경우 내려간다는 말만 무성할 뿐 아직 부지 조성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국내 1호 공기업인 저희가 가장 먼저 내려가 모범을 보일 생각입니다.”
원주 혁신도시는 총 100만 평 부지 중 56% 조성을 마친 상태다. 석공의 이주 예정 인원은 본사 직원과 협력업체까지 3000여 명이다.
―부채가 많은데, 건물은 무슨 돈으로 짓습니까.
“자체 예산으로 지을 계획입니다. 다행히 저희는 과거 갱목 확보용으로 매입해 놓은 임야가 많습니다. 강원도 등 전국에 2000만 평 정도 있지요. 자산 가치로 치면 4000억원 정도 됩니다. 이 임야를 산림청에 조금씩 매각해 그 대금으로 사옥을 건립할 생각입니다.”
이강후 사장은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초중고는 물론 대학까지 강원도에서 마쳤다. 그는 “나는 강원대가 배출한 최초의 고시 합격자”라면서 “석탄공사를 석유공사나 가스공사 못지않은 글로벌 공기업으로 만들어 강원도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