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姜德相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이 말하는 ‘日本과 나’ : 월간조선

현재 일본에는 약 60여만명의 재일(在日)동포들이 살고 있다. 다른 해외지역과 달리 재일동포 사회는 역사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 한반도 식민지 지배 상황에서 형성됐기 때문이다. 1905년의 을사조약과 관부(關釜)연락선의 취항을 재일동포 형성의 출발로 볼 때 그 역사는 100년이 넘는다.

재일동포의 역사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일부다. 그러나 재일동포의 삶을 기록하고 알린 것은 그리 오래지 않았다. 일본 도쿄 시내에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을 개관한 것도 2005년에서야 가능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과 동북아역사재단은 내년 7월 서울에서 <자이니치(在日)100년-재일동포의 타향살이>라는 제목으로 특별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 소장하고 있는 각종 자료를 통해 해방 전부터 현재까지 재일동포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재일동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조선근대사 연구의 大家

지난 8월 말 도쿄 시내 아자부(麻布) 지역에 있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이하 자료관)을 찾았다. 자료관 설립을 주도해 온 강덕상(姜德相·79) 관장이 기자를 맞았다. 그는 현재 시가현립(滋賀縣立)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불편한 한쪽 다리와 백발(白髮)이 성성한 그의 머리카락에서 재일동포의 애환(哀歡)을 엿볼 수 있었다.

강덕상 관장은 일본 사학계에서 조선근대사 연구의 대가(大家)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일본의 조선통치 불법성에 대해 상당한 연구성과를 냈다.

강덕상 관장은 인터뷰 내내 “일본을 조심해야 한다. 일본이 언제 어떻게 바뀔지 일본 자신도 모른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는 “이 같은 신념은 과거 나의 경험, 그리고 학문적 자료와 근거를 기반으로 평생 동안 연구한 결과”라고 했다. 일본에 대한 경계심이 기자의 상상(想像)을 뛰어넘었다. 재일동포로, 역사학자로 살아온 그의 ‘인생시계’를 거꾸로 돌려봤다.

강 관장은 1934년 연말 가족과 함께 경남 함양에서 도쿄로 건너왔다. 그의 나이 세 살 때였다. 어릴 적 기억은 많지 않지만 생각나는 기억의 단편(斷片)들이 있다고 한다.

“유치원생일 때의 기억이 조금 나요.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많이 했는데 나는 항상 나쁜 놈 역할을 했어요. 당시 중일(中日)전쟁 중이었는데 나는 ‘중국놈’ 역할을 했어요. 전쟁놀이 마지막에는 항상 친구들에게 항복했어요. 그저 나는 나쁜 놈이었던 겁니다. 소학교 2학년 때는 옆자리 여학생 친구로부터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저리 가라’는 말을 듣곤 했어요. 김치 때문이었지요.”

―어릴 때부터 ‘나는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라고 인식했던 겁니까.

“소학교 4~5학년이 되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차별이라는 것을 몸으로, 머리 속으로 느끼기 시작했죠. 부끄럽다는 생각 때문에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도 못했어요.”

―부친(父親)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일본으로 건너온 조선인 대부분이 막노동을 하며 살았지요. 선친(先親)도 마찬가지였어요. 고물상을 했습니다. 제가 살던 곳에 조선인들이 많았는데 저녁이면 서로 모여 화투도 치고 막걸리를 들이켜곤 했습니다.”

‘이제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일본 도쿄 시내에 있는 재일한인역사자료관.

―창씨개명은 언제 했습니까.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때였죠. 강덕상으로 불렸다가 신노도토쿠소(神農德相)로 바꿨어요. 창씨개명을 하면서 ‘나는 일본사람과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됐어요. 대학교 들어갈 때까지 ‘신노’라는 이름으로 불렸죠. 자라면서 ‘황국소년’이라는 의식도 점차 강해졌어요. 천황이 ‘죽어라’고 명령하면 영광스럽게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해인 1945년, 연합국은 일본 수도(首都)를 자주 공습했다. 그 무렵 강 관장의 부모와 형제들은 일본 동북부 지역으로 피란을 갔다고 한다. 강 관장은 학업 때문에 도쿄에 계속 머물렀다.

어린 ‘강덕상’은 전쟁 와중에도 일본사회에서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1945년 6월, 패전(敗戰) 2개월을 앞두고 강덕상은 ‘육군유년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유년학교를 졸업하면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할 수 있고 일본 장교가 되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역사의 장난일까요. 일본 패망으로 나의 꿈은 물거품이 됐어요. 만약 전쟁이 계속돼 일본 장교가 됐다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됐을까’를 가끔 생각해 봐요. 전쟁에 나가 어쩌면 이 세상을 일찍 마감했을 수도 있겠지요.”

―1945년 8월 15일 당일을 기억합니까.

“물론이죠. 8월 15일, 그날 아주 더웠어요. 학교에서 노역(勞役)을 하고 있는데 선생님이 아침 일찍 ‘오늘 중대방송이 있다’고 하더군요. 잠시 후 큰 스피커를 통해 방송이 들려 왔습니다. 처음에는 방송 내용이 무엇을 뜻하는지 몰랐어요. 선생님이 ‘오늘 일은 이것으로 마친다. 다들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일을 안 해도 된다는 기쁜 마음에 집에 왔습니다. 지금 생각하건대, 그때 일본 학생들은 자신들이 전쟁에서 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일본 친구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봤습니다.”

―그때 기분이 어땠습니까.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어요. 일본의 항복 선언 며칠 후, 나는 부모님과 가족이 피란 가 있던 시골마을로 내려갔어요. 조선사람들이 밤새도록 잔치를 벌이고 있더군요. 그때 태극기를 처음 봤어요. 일장기에 덧칠해서 태극기를 만들었던 거예요. 그때 아버지께서 ‘너는 정말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 이제 인간답게 살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강덕상 관장의 가족은 얼마 후 도쿄로 돌아왔다. 강 관장의 가족은 한국으로 들어가려다 일본으로 되돌아오는 조선인들을 보고 도쿄에 눌러앉기로 결정했다. 귀국했던 재일동포들이 해방 직후 혼란스러운 조선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다시 일본으로 건너온 것이다.

강덕상 관장이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수백 명의 조선인이 학살당했던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학생운동으로 대학 1년 때 退學당해

해방 후 강덕상은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된다.

“그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아버지 세대와 달리 완벽한 조선인도, 완벽한 일본인도 아니었던 겁니다. 당시 일본에는 조련(朝聯·조선인연맹)이 결성돼 많은 조선인들이 가입했어요. 활동도 활발히 했고요. 그런데 나는 그 조직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었어요. 조련 사무실 앞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오곤 했어요. 조선말과 조선문화에 서툴렀기 때문이죠.”

강덕상은 혼란스러운 청소년기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침내 명문(名門) 와세다대학 사학과에 입학했다.

―역사학을 전공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사실 학창시절에는 역사과목을 제일 싫어했어요. 교과서에는 조선을 멸시하는 이야기로 가득찼어요. 조선인은 저급한 국민으로 묘사됐습니다. 역사 수업 시간만 되면 나는 ‘시간아, 빨리 지나가라’는 생각만 했어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동양사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중국사(中國史)를 배우면서 달라졌어요. 18~19세기 때 서양 열강의 침략으로 고난을 겪었던 중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았던 우리 민족이 비슷하다는 점을 알게 됐죠.”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퇴학 처분을 받았더군요.

“6·25전쟁 때 대학에 들어갔어요. 그 당시 일본사회에 공산당 추방(레드 퍼지)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학업보다는 학생운동을 하는 사람이 많았지요. 나도 학생운동에 일부 관계하고 있었죠. 어느 날 집회에 참석했다가 저를 포함해 많은 학생이 체포돼 퇴학처분을 받았어요. 이후 대학 교수들이 나서면서 ‘퇴학처분은 너무 가혹하다’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1년 후 복학할 수 있었습니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체포된 것은 아닌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당시만 해도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을 친구들은 몰랐어요. 내가 얘기를 안 했던 거죠.”

―복학한 후 학생운동을 계속했습니까.

“운동보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내가 조선인이라는 사실도 공개적으로 밝혔고요. 그때부터 조선근대사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그 무렵 일본에 조선근대사를 연구하던 분이 있었어요. 좌파 지식인 ‘야마베 겐타로’라는 사람이었는데 내게 ‘조선사람이 왜 중국사를 공부하느냐. 조선은 일본의 거울이다. 일본에 있는 조선인이 조선사를 연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대학 선배의 부친이었던 이데 다카시 도쿄대 교수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그분은 내게 자신이 쓴 《어느 철학청년의 수기》를 주셨어요. 책에는 ‘일본은 조선에 원죄를 졌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어요. 이데 다카시 교수는 당시 분위기에서 찾아볼 수 없는 양심적인 학자였어요.”

식민통치 官僚들의 방대한 증언자료 수집

일본으로 건너간 재일동포들의 주거시설.

강덕상 관장은 1958년 대학 선배들과 함께 ‘조선근대사료연구회’를 만들어 조선 식민시대 연구에 들어갔다. 당시 조선총독부 관료들의 모임인 ‘우방회’ 관계자들을 찾아가 증언도 많이 확보했다. 강 관장은 이때부터 일본 정부의 비밀문서와 정부 고위관료들의 수기(手記), 시민·경찰·군인의 증언을 닥치는 대로 수집했다. 그것을 토대로 일제의 조선침략을 학술적으로 정리했다. 마침내 이 분야에서 일본 학계의 최고봉에 오르게 된다.

―조선총독부 관료들은 일본의 조선 통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던가요.

“당시 우방협회 이사장이었던 호즈미 신로쿠로가 3·1운동에 관해 논문을 준비하던 나의 동료 미야다 세쓰코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일본이 조선을 통치한 36년이 과연 일본에게 이로울 것이냐 죄가 될 것이냐는 판단은 미래에 맡겨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지금은 자료가 부족하니 당시 관료로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 증언을 들어 보고 자료도 확보하라’고 했습니다.”

―듣기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최소한의 양식(良識)은 있었던 사람으로 보이는군요.

“인간성은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분은 나를 조선인이라고 경계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자신에게 아부하는 조선인이 싫다고 했습니다.”

―연구회 모임은 얼마나 지속했습니까.

“10년 넘게 계속했고 모임 횟수도 500회를 넘었어요. 헌병, 경찰, 변호사 등 식민통치에 가담했던 다양한 사람들이 증언자로 나왔어요. 증언 분량도 대단했지요. 책자 형태로 묶은 자료를 현재 일본 황실 산하 기관인 학습원대학(學習院大學) 동양문화연구소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방대한 녹음작업에는 강덕상 관장의 역할이 컸다. 강 관장은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굵직한 역사적 사실들을 발굴해 냈다. 친일파 송병준(宋秉畯)이 조선의 국권(國權)을 일본에 양도하는 대가로 1억5000만엔을 요구했다는 증언을 비롯해 이승만(李承晩)과 안창호(安昌浩) 등 상해(上海) 임시정부 요인 간의 반목과 대립, 김일성(金日成)에 대한 일본 관리들의 평가, 민족주의자 윤치호(尹致昊)의 변절과정 등을 밝혀 냈다.

―증언자들 중에는 일본의 조선 통치를 정당화했던 사람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정당성과 민족적 우월감을 나타냈지요.”

―당시 증언을 들으면서 반론을 제기하지 않았습니까.

“왜 안 했겠습니까. 무례할 정도로 따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니, 내게 친절하기까지 했어요.”

―기억나는 인물이 있습니까.

“다나카 다케오(田中武雄)라는 사람입니다. 조선총독부에서 정무총감을 지낸 인물인데 많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경찰 출신인데 조선의 행정·사법을 총괄했어요. 그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을 하면서 독립운동가를 마구잡이로 잡아들였죠.”

呂運亨 존경한다는 정무총감

―우리 입장에서는 불구대천(不俱戴天)의 원수(怨讐)로군요.

“그런데 그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수많은 조선의 독립운동가 중에 여운형(呂運亨)을 진심으로 존경한다’고요. 자기가 직접 체포해 유치장에 가뒀다고 합디다. 여운형을 심문하면서 그 사람을 인간적으로 존경하게 됐다는 거예요. 김구(金九)와 이승만은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했지만 여운형은 조선 땅에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독립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나카는 조선총독부가 여운형을 석방하려 하자 끝까지 반대했다고 해요. 여운형을 석방하는 것은 호랑이를 산에 풀어놓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는 여운형을 존경했지만 조선총독부 입장에서는 대단히 위험한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강덕상 관장은 다나카 정무총감의 증언과 관련 자료를 모아 《조선 3·1독립운동-여운형 평전1》과 《상해임시정부-여운형 평전2》를 냈다.

―조선근대사 전문가로서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하다가 친일파로 돌아선 사람, 또는 친일파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사람 등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단순하게 평가하는 것은 아주 위험합니다.”

―얼마 전 한국 정부는 위암(偉庵) 장지연(張志淵) 선생이 일본을 찬양하는 글을 썼다고 독립운동가 서훈을 취소했습니다.

“민족을 팔아먹고 출세를 했다면 친일파죠. 장지연 선생의 행적에 대해 자세히 연구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 낮에는 친일(親日)하고 밤에는 독립운동하는 이들이 많았어요. 친일행위 하나로만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의 한 민간단체가 만든 친일파 인명사전을 본 적이 있습니까.

“친일파로 평가한 기준이 너무 단순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동안 조선근대사와 관련해 발표한 논문과 책이 상당하더군요.

“1970년대 초까지 조선경제사에 관심이 많았어요. 일본의 조선 침탈 과정을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했지요. 당시 가지무라 히데키라는 사람과 연구를 같이 했습니다. 한편, 내 나름대로 관심 있는 분야를 계속 파고들었어요. 그런 와중에 ‘관동(關東·간토)대지진과 조선인’에 대해 연구하게 됐습니다. 일본 국회도서관에 있던 한 직원이 내게 ‘미국에서 일본에 반환한 자료가 왔으니 와서 한번 보라’고 하더군요. 미국이 일본을 점령했을 때 여러 자료들을 마이크로필름으로 찍어 가져갔는데 그게 다시 일본에 돌아온 것입니다.”

―무슨 내용이었습니까.

“1923년 관동대지진 때 일본 정부가 조선인을 계획적으로 학살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였어요. 선친께서 어린 내게 ‘관동대지진 때 일본인이 조선사람을 이유 없이 죽였다’고 한 말이 떠올랐어요. 미국에서 온 자료를 분석해 1975년에 《일본 관동대지진과 조선인》이라는 책을 냈어요. 한국과 일본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지요.”

―당시 일본 정부는 조선인을 왜 죽였던 겁니까.

“지진이 발생하기 4년 전 조선에서 3·1운동이 일어났잖아요. 또 만주에서 독립운동과 의병전투가 계속됐고,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죽었는데 그것에 대한 보복이었습니다.”

1930년대 당시 다마가와(玉川) 강변에 살았던 조선인들의 생활상을 재현한 모형.

일본 天皇制의 폐단

창씨개명으로 한국 이름이 지워진 통신표의 실물.

―일본은 왜 조선을 미워했던 걸까요.

“일본사회에 1000년이 넘도록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천황제(天皇制) 때문입니다. 한반도는 과거 신라, 백제, 고구려 시대 때부터 천황이 통치했다고 생각하는 게 일본입니다. 따라서 한반도는 일본 영토라고 보는 건 일본 입장에서 당연합니다.”

―일본은 지금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어린 학생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본이 민주국가라는 말은 거짓입니다. 일본은 천황 중심의 국가입니다. 과거와 비교할 때 아무 것도 변한 게 없어요. 더군다나 과거 일본이 조선에 대해 나쁜 짓을 했다고 고백하는 이들이 나이가 들어 죽어 가면서 역사 왜곡은 더 심해지고 있어요.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에 가 보세요. 봄, 가을에 이곳에서 벌어지는 꼴을 보면 일본의 ‘정체’를 알 수 있어요. 그들은 과거 역사에 대해 아직도 반성하지 않아요. 일본은 조선을 침략했다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학습원대학 동양문화연구소에 있는 조선총독부 관료 증언 자료들이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의 근거가 되는 측면은 없습니까.

“그 자료를 제대로 읽어 본다면 요즘 발간되는 잘못된 역사교과서를 만들 수 없지요. 양심에 찔려 도저히 그런 교과서를 낼 수가 없습니다. 총독부 관료들의 증언을 들으면서 나를 포함해 그 자리에 참석했던 수많은 학자, 연구자들이 치열한 논쟁을 벌였어요. 그 내용을 읽어 본다면 일본의 잘못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까요.

“물론입니다. 한국은 일본의 진실을 알아야 해요.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어요.”

―변하지 않는 일본을 옆에 둔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통일을 해야죠. 일본은 한반도의 분단이 국익(國益)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합니다. 남북간 대립, 북한의 미사일 발사, 핵실험 등을 의도적으로 부각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통일이 된다면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를 건드릴 수 없을 겁니다. 문화적으로 우리나라만큼 강한 나라는 없어요.”

―그렇다면 통일을 어떻게 해야 실현할 수 있을까요.

“힘이 있는 나라가 도와줘야죠.”

美日이 한국 배제할 때를 준비해야

―1986년 충남 천안에 들어선 독립기념관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당시 강 관장은 독립기념관의 방향을 제시하고 소장하고 있던 자료까지 기증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 학자들이 전두환(全斗煥) 정부를 독재정권이라며 협조하지 않았다고 해요. 그런 와중에 내가 일본 관련 자료를 많이 갖고 있다는 얘기를 접한 도쿄 한국문화원장이 나를 찾아와 도와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나는 한국의 독립기념관이 개관할 때 소장된 자료가 형편없다면 일본이 우리를 우습게 볼 것 같아 도와줬습니다. 개관을 전후로 두 달에 한 번씩 천안을 찾았지요. 자료도 기증했고요.”

―과거 역사를 볼 때 동북아지역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큰 소용돌이가 있어 왔습니다. 강대국 속에서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일본을 평생 들여다본 사람으로서 일본의 정체를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군요. 일본이 변화를 시도할 때마다 한반도에 항상 어려움이 뒤따랐어요. 일본이 대륙으로 향할 때 그 첫 번째 대상이 한반도였잖아요. 현재 남과 북이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일본은 서로 손을 잡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은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잘 살펴봐야 해요. 일본과 미국이 뜻을 같이해 한국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봐요. 한국으로서는 치명적입니다.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요? 불행하게도 그런 사례는 역사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어요. 1951년 6·25전쟁 와중에 연합국(미국)과 일본이 체결했던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봐요. 한반도가 전쟁으로 피바다가 될 때 미국과 일본은 서로 조약을 맺었던 겁니다. 이 조약을 근거로 일본은 지금도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