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조선일보》 ‘오늘의 운세’ 13년째 연재 중인 嚴昌鎔 고산철학관장 : 월간조선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부암동으로 가는 자하문터널 부근에 허름한 한옥 한 채가 있다. 방문객이 드문 이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집안을 가득 메운 수많은 목조 작품과 함께 풍겨오는 진한 향나무 냄새에 누구든 눈이 휘둥그레진다. 천장에 빼곡히 매달린 목조 부적(符籍)은 신령스럽기까지 하다. 부적에 사용된 경면주사(鏡面朱砂·적색계의 광물성 안료) 때문일까. 방충망 없는 문을 하루종일 열어놓아도 이 집엔 벌레가 꼬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 집의 주인은 《조선일보》에 13년째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고 있는 엄창용(嚴昌鎔) 고산철학관장이다. 그는 역학자(易學者)인 동시에 국내 최초의 부적 모빌 작가다. 부적은 잡귀를 쫓고 화(禍)를 피할 목적으로 역술인이나 무속인들이 종이에 그려주는 붉은색 문자 혹은 그림이다. 고대 잉카 제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종의 운명 처방전이다. 엄씨는 이 부적을 종이가 아닌 향나무에 새겨 모빌처럼 매닮으로써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엄씨는 이미 여러 차례 국내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작년 5월에는 오스트리아 정부 초청으로 인스부르크에 있는 황궁에서 작품 전시회 겸 퍼포먼스를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대선(大選) 때 이명박(李明博) 후보의 당선을 정확히 예측해 화제가 됐던 엄창용씨를 철학관이 아니라 작업실에서 만났다. 그는 철학관에서 돌아오면 줄곧 이 작업실에서 향나무 부적을 만든다고 했다. 향나무를 얇게 잘라 다듬은 후 부적을 새기고 경면주사로 색을 입히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 삼아 반복하고 있노라 했다. 부적은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의 것이 없었다.

그가 올해로 12년째 쉬지 않고 향나무 부적을 만드는 것은 “미신(迷信)으로 폄하돼 사라져가는 우리 민속신앙을 발굴하고 지키기 위해서”라고 했다.

죽을 고비 숱하게 넘겨

엄창용씨는 1934년 충북 중원의 지독히 가난한 집에서 6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얼마나 가난했던지 동네 사람들이 외딴 곳에 있는 그의 집 굴뚝을 주시해서 관찰했다고 한다. 굴뚝에서 연기가 나면 살아 있는 것이고, 나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판단,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일정 때는 먹을 게 없어서 담배 농사짓는 집에 퇴비로 배급되는 깻묵을 훔쳐 먹곤 했어요. 깻묵은 기름을 짜고 남은 콩이나 깨의 찌꺼기죠. 한번은 썩은 깻묵을 먹고 배탈이 나서 죽을 뻔하기도 했어요.”

그 후로도 가난 때문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열네 살 때는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死境)을 헤맸고, 열일곱 살이었던 6ㆍ25 때는 의용군에 강제 징집돼 북으로 끌려가다 겨우 도망쳐 살아났다.

학력은 보통학교 2학년 다니다 중퇴한 것이 전부다. 그것도 일제 때 다녀 일본어는 알아도 한글은 깨치지 못했다. 그는 “한글 공부를 제대로 못해 지금도 받침을 많이 틀린다”고 말했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에 다닐 때 그는 아버지를 도와 얼마 되지 않는 농사를 지었고, 산에서 나무를 해다 장에 팔았다. 공부에 한이 맺혀 밤이면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읽고 또 읽었다. 《명심보감》은 3·1운동을 했던 친척 어른에게 배웠다고 한다.

그러던 중 군(軍)에 입대하게 됐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그의 보직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무계였다. 한글을 잘 몰라 한자를 반 이상 섞어 쓴 편지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편지 때문에 인사과 선임하사에게 엄청 두들겨 맞았어요. 대학 나온 놈이 신상명세서에 ‘무학’(無學)이라고 거짓 게재를 했다는 거였습니다. 그게 사실이라고 항변해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러곤 의무대 서무계로 발령을 내더군요.”

당시 의무대 의약품은 모두 미제(美製)라 영어를 모르면 보고서를 쓸 수가 없었다. 한글도 제대로 모르는 그는 두들겨 맞지 않기 위해 매일 밤을 지새우며 영어 공부를 했다. 덕분에 한글 실력까지 많이 늘었다.

神病에 걸리다

그는 지난해 5월 오스트리아 정부 초청으로 인스부르크에 있는 황궁에서 작품 전시 겸 퍼포먼스를 가졌다.

그렇게 4년 동안의 군 복무를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결혼했고 아들까지 얻었다. 식솔이 늘면서 집안 사정은 더욱 궁핍해졌다. 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부인과 아이를 남겨둔 채 상경한다. 그의 나이 스물여섯이었다.

“서울은 제게 먹을거리나 잠자리를 내주지 않았어요. 갈 곳이 없어 거리를 배회하다 서교동에 있는 한 보육원에 들어가 에나멜 코일선 만드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 기술로 청량리에 있는 한 공장에 들어가 특급 대우를 받으며 돈을 제법 벌었지요.”

그에게는 과학적으로 타고난 능력이 있었다. 그는 기초 기술을 익힌 후 혼자 연구해 더 나은 기술을 개발하곤 했다. 그 때문에 업계에서 그를 서로 데려가려 난리였다. 자연히 몸값도 올라갔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일이 좀 잘 풀린다 싶으니 폐결핵이 찾아와 그를 괴롭혔다. 폐결핵에 걸리면 무조건 죽는 것으로 알던 시절이라 회사에서 알면 당장 쫓겨날 판이었다. 어떡해서든 치료해 보려 온갖 처방을 다 써봤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무속인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신(神)이 들었으니 박수가 돼라”고 말했다. 그중 하나가 굿으로 신을 쫓아내겠다고 해 믿어보기로 했다.

“나을 수만 있다면 굿을 한들 어떠랴 싶었어요. 그런데 무속인이 한참 굿을 하다 말고 저보고 갑자기 큰절을 올리라고 하더군요. 영문을 몰라 우두커니 서 있으니까 ‘아주 높은 신이 오셨으니 빨리 절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작은 신을 쫓으려다 큰 신을 불러들이는 굿을 한 격이 됐지요.”

이후 몸이 좋아지기는커녕 극도로 쇠약해져 더 이상 직장을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하는 사업마다 이상하게 실패의 연속이었다. 건축업에 운수업까지 해보았지만 만년 적자였다. 건강에 이어 돈까지 잃고 나니 더 이상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는 죽기 전에 100일 기도를 해볼 요량으로 북한산으로 들어가 바위틈에 자리를 잡았다.

“기도를 시작한 지 한 40일쯤 되었을까요. 어느 날 일개 소대 병력이 출두해 저를 에워싸더니 마구 짓밟고 때렸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기도하고 있던 곳이 김신조(金新朝) 일당의 청와대 습격 사건 때문에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지역이더군요.”

죽을 각오로 임한 기도라 여기서 멈출 순 없었다. 이번에는 서울 도봉구에 있는 수락산으로 들어가 70일쯤 기도를 했는데, 경찰들이 출동했다. 등산객이 간첩으로 오해하고 신고를 한 것이다. 경찰서까지 연행된 그는 경위에게 산에서 기도를 하게 된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이 경위가 “내 운명을 맞히면 풀어주고 못 맞히면 영장을 청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한번 해보겠다”고 답하고 잠시 기도를 했다. 그러곤 “당신은 현재 위관급인데 며칠 내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이동수가 있다”고 했더니 간단한 신원조회만 하고 풀어줬다.

명리학, 자미두수 등 역학 공부

수락산에서 최초의 100일 기도를 마친 후 그는 전국 명산(名山)을 누비며 기도를 했다. 산에 있으면 몸이 아프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산 사람이 되더라고 했다. 비가 오건 눈이 오건 산중에서 기도를 하는 동안 영적(靈的) 체험도 많이 했다.

“절도 없는 심산에서 한밤중에 목탁 소리가 나기도 하고, 하늘에서 선녀들이 내려와 주문을 외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나 이외에 어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들이죠.”

기도하는 틈틈이 호구지책으로 건축업을 했으나 시원치 않았다. 손재주가 좋아 돌솥을 예쁘게 만들어 내놓아도 이 역시 팔리지 않았다. 뭘 해도 잘 되지 않아 부인이 노점에서 음료수를 판 돈으로 근근이 먹고살았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부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견디다 못해 그는 집을 나와 여인숙 생활을 했다. 그러다 역학에 입문하게 됐다.

“서울 신당동에 있는 모 여인숙에 있을 때예요. 하루는 신당동 로터리에 나가 보니 같은 여인숙에 묵는 이가 노상에서 돗자리를 깔아놓고 사주를 보더라고요. 할 일도 없고 옆에서 구경을 해보니 나도 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한 번 해보고 싶다고 했더니 옆자리를 내어주며 해보라고 하더군요. 세상에 자기 밥그릇을 양보하는 사람도 있다 싶어 감격했습니다.”

십이지(十二支)는 알고 있어서 당사주(唐四柱) 책을 구입해 공부하면서 사주를 봤다. 초기에는 사주풀이가 서툰데다 노점상이라 경찰에 쫓기는 일이 많아 수입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신촌으로 옮겨 일수 방을 얻어 놓고 영업을 했는데 손님이 꽤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얕은 실력이 점점 바닥을 보여 오행(五行) 사주를 공부했고, 나중에는 독학으로 사주 명리학(命理學)까지 익히게 되었다.

“명리학까지 공부를 했는데도 부족한 점이 많았어요. 이 부분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자미두수(紫微斗數)밖에 없다고 여겨 이 분야에 달통한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분에게 내가 아는 십이지법을 가르쳐주는 조건으로 자미두수를 배우게 되었지요.”

자미두수는 고대 중국의 도인 진희이(陳希夷) 선생이 기도하던 중 천기(天氣)를 헤아려 창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자미두수는 별의 이치를 통해 인간과 세상의 흐름을 예언하는 성리학(星理學)이다.

역학은 과학이고 통계학

그는 역학을 과학과 통계학으로 해석,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각만 입력하면 운세를 알아볼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다.

자미두수까지 익히니 적중률이 훨씬 높아졌다. 당연히 손님이 늘었다. 명망 있는 정치인과 사업가들은 물론 기독교 재단 대학의 교수들까지 그의 철학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들은 자기 사주는 물론 함께 일할 윗분들의 사주까지 가져와 그 앞에 꺼내놓곤 했다. 상대의 사주에 따라 팔자가 바뀐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든 사주가 있고, 그에 따른 팔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팔자가 좋다고 안심하거나 사납다고 낙담하기에는 이릅니다. 팔자라는 것은 어떤 사람과 인연을 맺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팔자가 나쁘더라도 자신과 궁합이 잘 맞는 사람을 만나면 불운이 상쇄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팔자가 좋아도 상대와 궁합이 맞지 않으면 복을 놓친다고 했다. 그 예로 부부 궁합이 나쁜 경우를 들어 설명했다.

“팔자가 좋은 사람이라도 부부 궁합이 맞지 않으면 사는 게 힘듭니다. 궁합이 나쁜 경우 대화가 안 돼 얼굴만 보면 다투는 반면, 궁합이 좋으면 콩떡같이 말해도 쑥떡같이 알아듣죠. 상대가 ‘어디 어디에 가면 금궤가 있으니 빨리 가져가라’고 하면 이유 불문하고 달려가 금궤를 가져오는 경우 궁합이 잘 맞습니다. 궁합이 맞지 않으면 ‘그 금궤가 왜 거기에 있고, 누구 것이냐’고 따지느라 다른 사람에게 놓치기 십상이죠.”

엄씨에 따르면 현재 결혼한 부부의 80% 이상은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 집 걸러 이혼이고, 암에 걸려 고통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배우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팔자가 달라지므로 결혼을 제2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학관 경력이 쌓이면 쌓일수록 고객도 다양화되고 많아졌다. 그렇게 십수 년을 하다 보니 사주에도 일정한 패턴이 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사주가 유사한 사람은 인생사도 비슷하게 흘러갔던 것. 그는 “역학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고 통계학”이라는 깨달음을 경험으로 얻었고, 이를 그만의 컴퓨터 시스템에 담았다. 그렇게 태어난 해와 시(時)를 입력하면 운명을 알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해 냈다. 그는 “명리학과 달리 자미두수는 시를 알아야 정확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오늘의 운세’ 13년째 연재

미신으로만 알았던 역학을 과학화하고 통계화하면서 그의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식자층들이 제법 몰려들었다. 수십 명에 이르는 그의 제자 중에는 소위 명문대 출신이 많다. 그는 “초등학교도 안 나온 나를 석사 박사까지 한 사람들이 선생님, 선생님 하며 따른다”며 웃었다.

“국내에 기독교가 유입돼 번성한 근대 이후 역학은 미신으로 치부돼 빛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여러 대학에서 역학을 하나의 학문 영역으로 간주해 연구는 물론 후학까지 양성하고 있어 기분이 좋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그의 영향력이 적지 않았다. 그는 일간지 신문에 ‘오늘의 운세’를 선보이고 연재한 국내 최초의 역학자이다. 그는 이 일을 어떻게 하게 됐을까.

“1999년 가을이었어요. 제자 하나가 충북 충주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하여 주례를 보러 내려가는 길이었는데 《조선일보》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기자는 대뜸 내일까지 ‘오늘의 운세’를 하나 써달라고 하더군요. 무슨 영문인지 몰라 자초지종을 물으니 경희대 국문과 서정범(徐廷範) 교수 추천으로 청탁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합디다.”

고(故) 서정범 교수는 무속 연구의 대가로 불릴 만큼 민속신앙에 조예가 깊은 국문학자였다. 그는 부적 때문에 서 교수와 알게 됐고,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좋은 친분 관계를 유지했다. 당시 《조선일보》 기자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오늘의 운세’를 연재하려 하는데, 마땅한 후보가 없어서 물색하던 중 서정범 교수가 엄창용씨를 강력히 추천해 연락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그는 서정범 교수가 추천했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원고를 작성했고, 주위의 도움으로 간신히 팩스로 전달했다. 그러곤 “급하다니 우선 쓰긴 했는데, 나는 초등학교도 못 나온 사람이니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말했다 한다.

“처음에는 하루만 쓰겠다고 했고, 다음에는 1년만 하겠다 했는데 벌써 햇수로 13년째 해오고 있네요. ‘오늘의 운세’를 뒤따라 연재한 경쟁 신문사들은 벌써 여러 차례 필자를 바꾼 것으로 압니다. 제가 잘났기보다 조선일보사 의리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오늘의 운세’ 원고는 그가 손으로 써 주면 제자가 컴퓨터에 옮겨 보내고 있다고 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는?

엄창용씨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향나무 부적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수백 개에 이르는 이 향나무 부적은 언제부터 만들게 됐을까. 그는 자신이 부적을 그리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대 입구에서 철학관을 운영할 때였어요. 하루는 근처 대학 교수가 찾아와서 부인이 암에 걸려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으니 부적 하나만 써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당신은 기독교인인데 부적의 힘을 믿느냐’고 물었더니 ‘동료 교수가 효험이 있다고 전해줘 찾아왔다’며 무조건 해달라고 사정하더군요. ‘거 참, 이상한 사람도 있다’ 싶으면서도 사정이 딱해 하나 써주었습니다.”

이 부적이 효험이 있었던지 두어 달 후 그 교수는 부인과 함께 철학관을 찾아왔다. 다 죽어간다던 부인은 멀쩡한 모습이었다. 이후 소문이 났는지 같은 대학교수들이 “부적을 써달라”며 수도 없이 밀려들었다. 1980년대 후반이었다.

“한번은 체격이 건장하고 잘생긴 대위가 암 투병으로 머리가 다 빠진 여자와 함께 찾아와 ‘결혼하고 싶으니 낫게 해주는 부적을 하나 써달라’고 하더군요. 근데 여자를 보니까 암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청년 시절의 저처럼 신이 들어 있더라고요. 잡귀를 쫓는 부적을 하나 써주며 ‘이 여자와 사는 건 힘드니 다른 여자에게 장가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대위는 ‘암 걸렸어도 좋다’며 끝내 여자와 결혼했고, 지금도 잘살고 있습니다. 기적이죠.”

엄씨는 “부적은 무당이 굿을 하는 것과 같은 효험이 있지만 남발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부적은 해결책이 없을 때 해주는 최후의 처방전이라는 것이다.

“부적은 앉은 자리에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도 끝에 나오는 것입니다. 귀신을 달래는 제사 같은 것이어서 귀신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차리노라면 시간과 정성을 들일 수밖에 없죠. 즉석에서 쓴 후 돈 받고 파는 부적은 진짜가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그의 작업실에 똑같은 부적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3시간이 넘게 걸린 그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야 할 때쯤 좀 생뚱맞지만 “차기 대권 도전자 중 유력한 당선자는 누구냐”고 물었다. 그는 “과거에 당선 예상 후보를 말했다가 낙선하는 것으로 나온 후보들에게 항의받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며 부담스러워했다. 다만 “차기 대통령은 의외의 인물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언질만 주었다.⊙

▣ 엄창용씨가 풀이한 2012 대권 예상 후보들 사주

◎ 김두관(金斗官) 경남도지사: 성급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관대로 밀고 나가는 성격이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널 만큼 심사숙고하고 철저한 사람이다. 참모로는 1인자이나 지나친 완벽주의 때문에 최고의 자리에는 무리가 있다. 타의든 본의든 대권(大權)에 나올 가능성이 많은 인물이다.

◎ 김문수(金文洙) 경기도지사: 성격이 깐깐하면서 흑백(黑白)이 분명하다. 내 편이라도 잘못은 지적하고, 적이라도 잘한 것은 인정하는 성격. 노력형으로 사심 없이 투신하고, 인간 차별 없이 누구하고도 손을 잡는다. 통솔력은 조금 부족한 감이 있으나 열심히 노력해 무엇이든지 매듭을 잘 짓는 인물이다.

◎ 김태호(金台鎬) 의원: 사나이 중의 사나이다. 주관이 뚜렷해 본인이 옳다고 판단하면 끝까지 실천하는 사람이다. 너무 강한 것이 걸림돌이 될 때도 있으나 스스로를 통제할 줄 안다. 강자한테는 강하나 약자한테는 약한 것이 흠이다. 앞장서기보다는 뒷전에서 상황판단을 잘하는 인물이다.

◎ 남경필(南景弼) 의원: 성격이 날카로워 보이나 깊이 알면 이해도 잘하는 사람이다. 처음과 끝이 일치하지 않고 신중함이 부족하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것은 남보다 월등하나 마무리가 좀 약하니 서로 친분을 다지면 일품이 되겠다. 적이 많은 편이라 큰일을 할 때는 애로가 있으니 미리 대비해야 한다.

◎ 문재인(文在寅) 노무현재단 이사장: 숨어서 일을 많이 한다. 남의 일은 철저하게 성공시키나 정작 본인에게는 인색하다. 세월이 갈수록 인정을 받는 사람이니 앞날을 보고 서서히 진행하면 성공할 수 있다. 이 세상은 목소리 큰 사람을 제일로 보나 이 사람은 거기에 휘둘리지 않고 의지대로 나가야 한다. 좀 늦기는 해도 크게 성공할 사람이다.

◎ 박근혜(朴槿惠) 의원: 정월 초하루나 섣달 그믐이나 변화가 전혀 없는 사람. 정치라는 것은 오르고 내림이 있어야 하는데 너무 완벽하다 보니 본인도 괴롭고 주변 사람도 힘들다. 남이 할 때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자신이 하려면 생각했던 것과 다르다. 길을 가다 보면 개도 보고 말도 보는 법.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도 있게 마련인데, 같은 일을 해도 매정한 것보다는 부드럽게 대처함이 필요하다.

◎ 손학규(孫鶴圭) 민주당 대표: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자기 꾀에 넘어갈 사람. 탑을 다 쌓아놓고 마무리를 다른 사람한테 넘긴다. 돌은 자신이 던졌으나 밤은 다른 사람이 주워 가는 격이다. 의리가 강하고, 말은 안 하지만 속으로 안다. 남의 흠만 지적 말고 자성(自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인내를 가지고 인생을 길게 보면 큰 인물이 되겠다.

◎ 오세훈(吳世勳) 서울시장: 너무 고지식하여 스스로 힘들게 한다. 매사에 확실한 것만 실천에 옮기다 보니 과정이 힘들다. 원리원칙을 주장해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한다. 모든 일을 자신이 꼭 챙겨야 된다는 정신력 때문에 주변에 사람이 부족한 것이 흠이다. 일에 차질이 없고 빈틈이 없으나 때로는 그것도 손해 볼 때가 많다.

◎ 원희룡(元喜龍) 의원: 청렴결백하고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인물. 성격이 깔끔하고 마무리가 확실하다. 무슨 일이든 신중한 편이며 자신이 말한 것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순수한 사람이나 큰일을 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아직 이르다.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 유시민(柳時敏) 국민참여당 대표: 혁명가 중에 이런 사람이 많다. 머리도 비상하고 자기 주관도 확실하다. 너무 강한 나무는 부러지는 법. 독불장군은 타협에 인색하다. 주변 사람이 부족하고 매사 선두주자는 좋으나 끝마무리가 부족하다. 지나치게 솔직한 것이 흠이다. 큰일을 하는 데는 적도 많고 내 편도 많다. 세월이 가면 1인자가 되겠다.

◎ 이재오(李在五) 특임장관실 장관: 내 것 다 주고도 좋은 소리 못 듣는다. 의리와 경우 빼면 시체. 오늘 살다가 내일 죽어도 후회 없이 이 세상을 살다가 갈 사람이다. 일확천금형 인물도 아니다. 공수래공수거이니 아무 곳에나 가도 부끄러움 한 점 없다. 남자다운 사람이다.

◎ 정동영(鄭東泳) 의원: 덜 익은 곡식은 작은 바람에도 수선거림이 요란하다. 언젠가 그 곡식이 여물 터이니 참고 기다려야 한다. 말이 많으면 실언도 많은 법. 입술 두 번 깨물면 큰 인물이 될 사람이다. 남을 꾸짖는 것보다 칭찬을 많이 하면 귀한 대접을 받는다. 스스로 미성숙한 인물임을 깨닫는 순간 큰 희망이 보일 것이다.

◎ 정두언(鄭斗彦) 의원: 팔방미인. 어느 곳에 가도 적응을 잘하지만 너무 나서면 손해 볼 가능성이 많다. 그래도 흐름을 타고 잘살 사람이다. 재물보다는 명예를 좇을 필요가 있고,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아껴두면 훗날 좋은 결실로 돌아온다. 의리의 사나이로 적중률이 높은 예지력이 있다.

◎ 정몽준(鄭夢準) 의원: 정직하고 확실한 것을 주장하나 이웃집도 돌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홀아비 사정은 과부가 아는 것. 내 것이 아까우면 남의 것도 아까워할 줄 알아야 한다. 베푸는 데 인색하지 않아야 많은 사람을 이끌 수 있다. 시야를 좀 더 넓히고, 어려운 사람한테서 인심이 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 정운찬(鄭雲燦)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 공동위원장: 태풍이 불어와도 자기 위치를 지킬 줄 아는 사람. 돈과 명예에 매달리지 않고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다. 소신껏 일하며, 아부 없이 큰일을 소화할 수 있다. 처한 곳이 노동판이라면 중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환경에 적응할 줄 아는 사람이라 적이 별로 없다.

◎ 한명숙(韓明淑) 前 국무총리: 머리가 비상한 사람. 손해 볼 일은 추호도 하지 않으나 때로는 손해도 볼 줄 알아야 진정한 사람이 된다. 자기 주관이 확실하고 주어진 일은 차질 없이 잘 진행하나 새로운 것을 찾기에는 역부족이니 충전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