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인터뷰] 서태열 고려대 입학처장이 밝히는 입학사정관제 : 월간조선

2월 8일 고려대 지하광장 109호실에서 만난 서태열(徐泰烈·50) 고려대 입학처장은 이제 더 이상 침묵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표정이었다. 사범대 지리교육과 교수인 그는 2008년 고려대 입학처장이 된 뒤 지금까지 3년 동안 입시 풍파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고려대가 입시에서 부당하게 고교등급제(高校等級制)를 적용했다는 온갖 의혹이 불거졌던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지금까지 언론과의 접촉을 피해 왔던 서 처장이 처음으로 대면 인터뷰에 응했다. 다 밝히고 가겠다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기자들 전화를 아예 받지도 않은 걸로 유명한데요. 왜 입장을 분명히 설명하지 않았던 겁니까.

“이 일이 진행되면서 너무나 왜곡된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려대는 교육기관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말을 할 수 있는 입장이 못 됩니다. 작은 얘기를 해도 입시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이제 처장직을 마무리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 처장은 2월 말 이기수(李基秀) 총장과 함께 보직에서 물러난다.

2009년 수험생 24명이 고교등급제 적용 의혹 있다며 소송

지난해 9월 15일, 고려대 입학처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창원지법 제6민사부(재판장 이헌숙·李憲淑 부장판사)는 2009학년도 고려대 수시 2-2 일반전형에 응시했다가 1단계에서 탈락한 수험생 24명의 학부모가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학교 측은 위자료 700만원씩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고려대가 의도적으로 일류고 출신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고교별 학력차를 반영한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1심 패소와 함께 여론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본고사, 기여입학제와 함께 ‘3불(不) 정책’의 하나로 오랫동안 금기시됐던 고교등급제를 사학(私學)의 명문 고려대가 몰래 도입했다는 비난이었다.

‘교활한 방법으로 몰래 고교등급제를 적용했다’는 정도는 양반이었다. 지난해 9월 15일자 한겨레신문 사설은 “특목고생 몇 명을 더 뽑겠다고 고교 교육 전체를 왜곡하면서 ‘민족 고대’ 운운하니 낯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말까지 했다.

―얼마 전에 항소를 했다지요.

“1월 23일 창원지방고등법원에 했습니다. (서류를 들어 보이며) 이게 항소이유서입니다. 지금까지 어디에도 공개한 적이 없는 겁니다.”

50여 쪽에 이르는 장문의 항소이유서 표지에는 ‘대외비(對外秘)’란 빨간 글씨가 인쇄돼 있었다.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겁니까.

“결론적으로 고려대는 고교등급제를 한 적도 없고 특목고나 일류고를 우대한 적도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저희가 그 전형에서 내신성적을 보정(補正)해서 산출하는 산식(算式)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어딘가 특목고와 일류고를 우대하는 장치가 있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생겼지요. 판결도 이런 추측을 가지고 한 겁니다.”

들쭉날쭉 내신성적을 補正하는 과정에서 오해

통계학자인 박유성(朴裕聖) 전임 입학처장이 2007년부터 개발해 사용한 그 보정 산식은 ‘서울대 수학과 출신 입시전문가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두손 다 들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어렵고 복잡하기로 유명하다. 그 산식을 풀지 못하다 보니 ‘잘은 몰라도 분명히 고교등급제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이 담겨 있을 것’이란 추측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문제가 된 전형은 2008년 말에 치렀던 2009학년도 수시 일반전형이었고, 2009년 4월에 소송이 제기됐다.

―소송의 원고가 된 학생들이 모두 그 보정 산식 때문에 내신에서 손해를 봐서 탈락한 겁니까.

“그들이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당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24명 중에서 12명은 이 산식에 의해서 오히려 점수가 올라갔습니다. 1명은 같은 수준이었고, 나머지 11명만 점수가 떨어졌습니다. 이 11명이 탈락한 것은 내신 말고도 비교과 부문에서 성적이 낮은 것이 큰 원인이 됐습니다. 올라가거나 그대로인 13명은 처음부터 소송 원고로서의 자격조차 없었던 것이고, 나머지 11명은 원래 내신부터가 우수한 성적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지금까지는 해당 학생들을 고려하여 굳이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24명 중 12명은 오히려 점수 올라

그렇다면 고려대는 왜 이렇게 내신성적을 자체적으로 보정하는 식을 개발해서 적용했던 것일까. 고려대의 입장은 “지원자가 이수한 과목 시험문제의 난이도와 변별력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학업성취도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행 고교 내신성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불신(不信)이 깔려 있다.

고려대 입학처의 항소이유서에는 이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학생들은 보통 쉬운 과목에 집중하고 국사, 물리II, 화학II 같은 어려운 과목을 꺼린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지원자는 쉽게 출제돼 변별력이 없는 과목에서 석차등급 3등급을 받고, 다른 지원자는 어렵게 출제돼 변별력이 높은 과목에서 3등급을 받았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같은 3등급이라도 두 지원자가 같은 학업성취도를 보였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1점을 가지고 등급이 바뀌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쉽게 출제된 과목에서 한 학생이 사소한 실수를 해서 근소한 차의 낮은 점수를 받은 경우다. 이 학생은 학업성취도와는 무관하게 ‘시험문제가 너무 쉽게 출제됐다’는 우연한 이유 때문에 매우 낮은 석차등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도 있다. 이수자 수가 20명인 과목에서 3등급을 받은 지원자와 이수자 수가 500명인 과목에서 3등급을 받은 지원자가 같은 학업성취도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느냐는 얘기다. 이 때문에 이수자의 크기 역시 고려돼야 한다는 논리다.

학교 현장의 내신 부풀리기 심각

서 처장은 한 고등학생이 입학처로 보낸 이메일을 보여줬다. “보세요.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신 부풀리기가 이 정돕니다.”

<안녕하세요. 입학관리부장님께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로 시작되는 그 이메일에는 한 고교 안에서 일어나는 내신 왜곡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저희 학교는 거의 (무슨 문제가 나오는지) 알려주고 시험을 봅니다. 그러지 않으면 과목 전체 평균점수가 너무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20문제라면 17~18문제 정도는 알려주고 보는 셈입니다. 선생님들은 ‘얘들아, 이거 힌트다’ 하면서 대부분의 문제를 콕콕 찍어서 프린트해 주십니다. …>

―그렇다면 내신의 그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보정 산식을 만들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 산식을 통해 보정하면 학생의 상대적인 위치가 나옵니다. 현행 내신의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려는 것일 뿐이지, 특정 고교를 우대하려는 게 아닙니다.”

1심 재판부는 문제의 산식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일반고 최상위권 지원자의 경우에는 성적이 소폭 감소되거나 유지되는 데 반하여, 속칭 일류고 중상위권 지원자는 성적이 큰 폭으로 오르게 되는바 ….’

―결국 이 산식을 적용하면 ‘성적 나쁜 일류고 학생’이 ‘성적 좋은 일반고 학생’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게 재판부 얘기였는데요.

“원고들의 주장에 치우쳐 산식을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큰 폭으로 보정되는 경우는 ‘표준편차가 작거나 평균이 높거나 낮은 경우’일 뿐, 속칭 일류고인지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표준편차가 작거나 평균이 높은 경우’(성적이 비슷한 수준으로 좋게 나오는 경우)가 바로 일류고에 해당하리라는 것은 선입관입니다. 어느 학교에서나 문제를 쉽게 내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지요. 판결문은 수능등급과 내신등급을 완전히 혼동해서 쓰고 있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서 처장은 그동안 고려대가 모두 밝히지 않아 비판의 대상이 됐던 2009년도 입시 당시 산식의 다섯 가지 상수(常數)값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많은 사람이 마치 ‘일류고를 우대하는 마법의 숫자’인 것처럼 여겼던 이 ‘상수값’은 학생들의 내신성적을 어디까지 보정하느냐는 범위를 정하는 역할을 한다. 하향보정 비율인 α1이 1/4, 상향보정 비율인 α2는 3/4이었다. 사소한 실수로 불이익을 받은 수험생의 점수를 상향보정하는 것에 더 비중을 둬야 하기 때문에 α2가 α1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상수값 k1과 k2는 보정이 이뤄질 수 있게 하는 표준편차의 크기를 정한다. k1은 -1, k2는 0이었다. 이렇게 되면 표준편차가 아주 작은 경우에만 보정이 된다. 마지막 상수값인 k3는 보정의 기준점이 되는 숫자인데, 과거 고려대 합격자들의 평균 석차등급을 고려해 2등급인 1.226528로 정했다.

―고교마다 상수값을 다르게 적용한 것은 아닙니까.

“상수값에는 ‘특목고 값’ ‘일류고 값’ ‘일반고 값’이 따로 없습니다. 이 전형 지원자에게 다 똑같이 적용했습니다. 상수는 상수지 변수(變數)가 아닙니다. 특정 학교에 따라 정해지는 게 아니라 그 전형에 지원한 학생들의 상대적 성적에 따라 정해지는 겁니다.”

―그걸 왜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던 겁니까.

“인터넷상에서 본인 내신성적을 넣어 보고 다 알 수 있게 했습니다. 굳이 공개할 필요가 없었지요.”

―그런데 소송을 낸 쪽에서는 ‘일류고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에 피해를 봤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대단히 흥미로운 대목이 있습니다. 이 자료를 좀 보세요.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의 학교를 조사한 겁니다.”

서 처장이 내미는 자료를 보니 학생들의 출신학교 중에는 서울의 전통적인 명문고도 있었고, 비평준화 지역인 경기도 한 시(市)에서 성적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학교도 눈에 띄었다.

“같은 해 같은 전형에서 원고와 같은 출신고 지원자들의 1단계 합격 비율을 봤습니다. 5개교가 70% 이상 합격했습니다. 60% 이상 합격자 배출 학교는 9개나 되고요. 대부분 합격률이 상당히 높은 학교 출신들입니다. 과연 이 학교들이 ‘일류고’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일류고 출신이 아니라서 피해를 봤다’는 게 말이 될까요. 심지어 한 학교는 고려대 전체에서 입학 성적이 46위였습니다.”

2010년 현재 전국 고교는 모두 2253개다.

―거기서 일류고란 특목고를 말하는 게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처음에는 ‘고려대가 특목고 학생들을 우대해서 일반고 학생들이 손해를 봤다’고 하다가 중간에 ‘일류고 학생들을 우대했다’로 말을 바꿨어요.”

과학고·국제고 합격률이 평균 합격률에 못미쳐

고려대의 항소이유서에는 2009학년도 1단계 전형에서 특목고 출신들이 거둔 합격률에 대해서 밝히고 있다. 뜻밖에도 평균 합격률 52.8%인 가운데 과학고 출신의 합격률은 36.2%에 그쳤다. 국제고 역시 50.0%로 평균을 밑돌았다. 특목고라고 해서 유리한 게 없었다는 얘기다. 고려대는 원고측이 말을 바꾼 데는 이런 사정도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목고라고 해도 수준차가 있기 때문에 기준과 범위가 애매한 ‘일류고’라는 용어를 쓰게 됐으리라는 것이다.

소송을 주도한 사람은 권영길(權永吉) 민주노동당 의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민태식(閔太植) 내외법무법인 변호사, 박종훈(朴鍾勳) 전 경상남도 교육위원 등이었다. 그런데 서 처장은 “소송 배경을 자세히 보면 이 사람들이 계속 학생들을 모아서 소송을 벌이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나서서 소송을 한 게 아닌가요.

“학생들을 끌어모아서 정치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엔 100명을 모집한다고 큰소리를 쳤다가 결국 25명밖에 못 모았죠. 그런데 한 명은 소를 취하했어요. 알고 보니 1단계에 합격하고 2단계 논술시험을 결시한 학생이었습니다. 얼마나 엉터리인지 드러나는 거죠. 학생들은 선의의 피해자일 수도 있습니다.”

권영길 의원 등은 지난 1월 고려대에 대한 추가소송을 부산지방법원에 냈다. 그런데 서 처장은 여기서도 재미있는 점이 있다며 원고 명단이 적힌 서류를 가리켰다.

“부산에 사는 K라는 이 학생 보이죠? 그런데 이 학생은 원래 창원에 소송을 냈던 원고 명단에 있는 K와 동일 인물입니다. 한 학생을 거듭 원고로 내세우고 있어요. 소송 중에 있으면서 또 소송을 하고 있는 겁니다. 말이 안되지요.”

권영길 의원, 세계선도인재전형을 인문계 전체로 왜곡

서 처장은 권영길 의원이 지난해 11월에 낸 자료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자료는 표지에 ‘고려대 입학사정관 전형, 인문계 합격생 절반이 외고(外高)’라고 쓰여 있었다.

―사실과 다른 지적이라는 겁니까.

“내용을 보면 2011학년도 우리 학교의 여러 전형 중에서 ‘세계선도인재 전형’ 하나만을 놓고 외고 합격률이 50.4%라고 한 거예요. 인문계 전체도 아닐뿐더러 이 전형은 원래 외국어 능력이 탁월한 학생을 뽑는 전형입니다. 과거엔 합격률이 70%였는데 자연스럽게 떨어진 겁니다. 우리가 한 적도 없는 영어면접을 했다는 얘기까지 나왔고 신문 사설에까지 실렸습니다. 자료에는 ‘외고 전형’이라고 했는데 외고 전형이라는 것 자체가 없습니다.”

―그 전형에서 아무래도 외고 출신이 유리한 건 사실이잖습니까.

“자신에게 맞는 전형을 택하면 됩니다. 500명 전원을 일반고 학생으로만 뽑는 ‘지역우수인재전형’도 있어요. 일반고 학생들에게 충분히 기회를 준 건 물론이고, 수능 잘하는 전형도 다 둬서 지원할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런데 권 의원은 다른 전형은 언급하지도 않았습니다. 당시 (대학 입시 업무를 교과부로부터 위탁받은 기관인) 대교협(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고교등급제가 아니다’고 했는데도 그대로 소송을 제기했어요.”

그는 작심한 듯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고려대를 정치적으로 공격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소송 주체들은 소송이 진행되는 중에도 계속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통해 고려대를 공격했다. 서 처장은 “이들은 입시에 큰 영향을 주고 고려대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흔들고 있는데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왜 그렇게 고려대가 타깃이 되고 있다고 봅니까.

“기본적으로 그들은 입시에서 평등주의자들입니다. 지난 정부에서 내신을 무조건 믿으라고 했지요. 대학의 자율성은 깡그리 무시했어요. 내신등급이 절대적인 것이 아닌데도 ‘모든 학교가 평준화됐다’는 전제하에서 똑같이 여기고 뽑으라는 겁니다.”

“대학입시 안정화 위해 고려대가 가만 있지 않겠다”

그는 “MB정부 초기 대학입시에 대해 평등주의자들과 자율주의자들이 대립한 결과 고려대 입시 사건이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서부터 그는 좀 더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내신 9등급, 수능 9등급을 가지고 왜 선발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 자기들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서죠. MB정부가 추진하는 대학입시 자율화의 첨단에 서 있는 대학이 고려대입니다. 그러니까 고려대 입시에 대해 집중적으로 견제하는 것이지요.”

―요즘엔 정부 초기에 세운 그런 원칙이 잘 유지되지 않고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네. 정부가 자율주의와 선진화라는 기조를 과연 유지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대학 자율로 선발하게 한다고 해 놓고 여전히 통제와 규제에 의한 입시정책을 펴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이 틀은 반드시 깨야 합니다. 다양한 학생을 선발해 세계적인 인재로 키워 내기 위해서는 대학이 추구하는 학풍과 가치에 따라 뽑을 수 있는 자율성이 주어져야 합니다.”

―고려대도 결국은 성적이 더 좋은 학생을 뽑으려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입시에서 점수를 걷어내고 학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는 쪽으로 초점을 맞춰 왔습니다. 점수 1~2점이 모든 것을 말해 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하지도 못합니다. 점수 잘 받아서 점수대로 대학 가는 시대는 끝나야 합니다.”

―점수가 아닌 다른 걸 본다는 얘긴가요.

“지난 3년 동안 전국에서 여러 번 입학설명회를 했지만 한 번도 ‘점수 가지고 고대 와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소송이 일어났던 전형만 해도 비교과(非敎科)란 이름으로 리더십, 봉사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등 다 보고 평가했습니다.”

그는 “수시모집 지원자와 (성적을 더 따지는) 정시모집 지원자를 비교해 보면 수시모집으로 들어오는 학생이 훨씬 우수하다”고 털어놨다. 정시에 맞춰 대학에 들어오는 아이들은 열정과 관심, 자기계발 등의 면에서 떨어지는 반면, 자기 적성에 맞춰 수시에 합격한 학생들은 학업성취도와 자아존중 열정이 높다는 것이다. “이렇게 시대가 바뀌고 사회가 바뀌어도 여전히 관치(官治)와 규제로 ‘점수 가지고 학생을 뽑자’고 해서야 되겠습니까.”

서 처장은 자신의 후임 처장은 더 이상 이런 일들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침묵을 지키는 것처럼 보였어도 이미 ‘준비’를 끝냈다는 얘기다.

“저는 대학입시 안정화를 위해서 그렇게 하지 못했는데, 다음 처장은 상당히 강력하게 대응할 것입니다. 지난 2년 동안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는 토대를 준비해 왔습니다. 이제부턴 고려대가 그냥 있지는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