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檢察] 특별수사통 심재륜의 苦言 : 월간조선

“요즘 검찰에 대해 말들이 많은데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여기에 다 들어있소.”

서울 서초동 변호사사무실에서 만난 심재륜(沈在淪) 전 고검장은 기자 앞에 ‘수사십결(搜査十訣)’을 내놓았다.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마라.’ ‘피의자를 굴복시키지 말고 승복시켜라.’ ‘끈질긴 수사가 능사가 아니다.’ ‘수사의 곁가지를 치지 마라.’ ‘실패하는 수사는 하지 마라.’ ‘수사는 종합예술이다.’ ‘칼을 심하게 휘두르면 자신도 다친다.’

2009년 검찰 조사를 받던 노무현(盧武鉉) 전 대통령이 자살하자 후배 검사들을 위해 썼던 글이다. 검사 재직 당시 자신의 경험을 10가지 수사 원칙으로 정리했다고 한다.

그의 말대로, 요즘 검찰을 두고 말들이 많다.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해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수사를 무리하게 한다’ ‘칼잡이 시대는 갔다’는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은 검찰의 입지를 더욱 좁아지게 만들고 있다. 한명숙(韓明淑) 전 총리의 1심 무죄판결,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혐의자에 대한 잇단 구속영장 기각, 스폰서 검사 사건 등이 검찰을 뼈아프게 하고 있다. 급기야 한화 사건을 지휘한 남기춘(南基春) 서울서부지검장이 물러났고 곧이어 검찰 고위급 간부인사도 느닷없이 이뤄졌다.

검찰의 특별수사 능력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사환경이 달라진 것일까.

검찰 경력 35년 중 3분의 2 이상을 특수부 검사로 활동했던 심재륜 전 고검장은 “가슴이 답답하다”고 했다.

“이순신(李舜臣) 장군은 지는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사는 종합예술인데 대내외 여건이 검찰을 외롭게 만들고 있어요.”

―얼마 전 고검장급 인사가 전격 이뤄졌습니다.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남기춘 검사장 때문에 촉발된 것 아니겠소. 그 사람만 처리하기에 모양새가 그러니까…. 정권 일각에서 ‘검찰 손 좀 봐야 한다’ ‘인사권으로 검찰을 견제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는 것 같아요. 검찰을 악(惡)의 축으로 보고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옳지 않아요. 이번 인사를 보면, 청와대의 입김이 세게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심재륜 전 고검장은 기자에게 질문할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과거 전두환(全斗煥) 정권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1982년 터진 연탄사건이었죠. 연탄생산업자들이 비용을 절감하려고 불량 무연탄을 썼어요. 서민들 불만이 대단했죠. 난리가 났어요. 그래서 서울지검 특수부가 나섰습니다. 업체 관계자를 소환하면서 수사에 불이 붙었어요. 전두환 대통령까지 수사검사에게 전화를 해 ‘잘하고 있다. 이게 바로 서민을 살리는 길이다’며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경제부처 장관이 대통령에게 ‘경제를 모르는 검사들이 막무가내로 수사를 해 연탄업계가 다 망할 지경이다’고 읍소했어요. 대통령도 수긍이 갔나 봐요. 얼마 후 ‘경제수사는 경제부처 장관과 상의한 다음에 하라’는 공문이 내려왔어요. 그런 후 검찰총장과 서울지검장, 담당 부장검사 등이 모두 교체됐습니다.

기업을 수사할 때면 항상 나오는 게 ‘검찰이 경제를 모른다’는 말이죠. 이번 대기업 수사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오더군요. ‘법 따로, 경제 따로’가 어디 있습니까. 법 속에는 정치·경제·사회·문화가 다 들어있어요.”

―김준규 검찰총장은 “대기업 수사는 신속·명확하게 끝내야 한다”고 했습니다.

“글쎄요. 제대로 수사할 여건을 만들어 줬는지 모르겠군요.”

―정치권력이 검찰을 자기 휘하에 두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까.

“항상 그래 왔죠. 검찰도 나름대로 몸부림쳐 왔습니다.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정부 때 검찰은 현직 대통령 아들을 구속시켰어요. 노무현 정부 때도 대선(大選) 비자금 사건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청와대 말발이 제대로 안 서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나는 검찰의 중립을 지키기 위해서 간섭 안 한다’고 했던 것 아닙니까.”

“한화가 조직적·전방위적으로 움직였을 것”

―서울서부지검은 한화그룹 본사와 계열사를 20여 차례 압수수색을 했고 200여 명의 임직원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구속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검찰이 무리한 수사를 한 겁니까.

“대형(大型) 경제사건에서 그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3개월이라는 수사기간은 긴 게 아닙니다. 과거 한보 사건은 5개월 동안 수사했어요.”

―‘수사십결’에서 ‘불필요한 소환조사는 하지 마라’고 썼더군요.

“물론 한화 수사에서 불필요한 소환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검찰이 왜 그렇게 했을 것 같아요? 법원이 영장을 자꾸 기각하니까 재소환했던 겁니다. 실체적 진실을 추적하는 검사는 시간적·장소적 제한을 받아요. 그래서 피의자 ‘구속’이라는 제도가 있지요. 물론 범죄자의 인권은 보장해야 합니다. 피해자의 인권보장도 생각해야죠. 수사 과정에서 비리 혐의자의 인권을 과도하게 옹호하면 결과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힐 수 없습니다.”

―서울서부지검이 대형 사건을 맡은 것 자체가 무리였습니까.

“서부지검, 북부지검, 동부지검이 각자 경쟁을 하듯 사건을 맡아 자기 존재와 명예를 알리려 한 측면이 있습니다. 특별수사를 중구난방으로 진행한 거죠.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봐요. 대검(大檢)에서 할 게 있고 중앙지검이 할 게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대검 중앙수사부가 한화 사건을 다루지 않았을까요.

“여러 설(說)이 있어요. 결론적으로 대검 중수부가 해야 할 사건을 안 하니까 문제가 된 겁니다.”

―남기춘 전 검사장은 내부 통신망에 “살아 있는 권력보다 살아 있는 재벌이 더 무섭다”고 토로했습니다.

“자기가 맡은 한화 사건에 대한 억울함이겠지요. 살아 있는 권력은 5년을 못 가지만 살아 있는 재벌은 몇 대에 걸쳐 내려가잖아요. 한화는 조직적으로 움직였을 겁니다. 전방위적으로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와 통하는 게 있잖아요.

한화의 경우, 법원이 도와준 셈입니다. 핵심인물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 검찰은 기댈 데가 없어요. 대형 경제사건이나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핵심인물은 반드시 구속해야 해요. 증거인멸을 막고 관련 자료 보존을 위해서죠. 이번처럼 법원이 핵심인물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니까 주변 인물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 겁니다. 법원의 태도가 옳지 못하다고 봐요. 사법적 견제라고 얘기하겠지만 법관이 항상 옳을 수는 없어요.”

심재륜·남기춘의 묘한 因緣

―최근 들어 법원은 피의자의 인신구속에 대해 부정적인 경향을 보입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죠. 요새는 안 그래요. 서울중앙지검에서 구속 사건이 한 건도 없었던 때가 있었어요. 법원이 왜 검찰 수사에 제동을 걸까요? 여러 정권을 거치면서 검찰의 힘이 그동안 너무 셌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법원이 더 세요. 불구속 수사라는 미명하에 재판을 진행하면서 느닷없이 법정구속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범죄는 발생 즉시 제압해야 합니다. 구속할 사람은 구속해야 사회질서가 유지돼요. 불구속 상태로 놔두면 법적 안정성이 위협을 받아요.”

―남기춘 전 검사장과 개인적으로 가까운 사이로 알고 있습니다.

“인연이 깊지요. 각별한 관계라고 할까요. 내가 1992년 서울지검 강력부를 재건할 때 남기춘 검사가 창설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안대희(安大熙·대법관), 조승식(趙承植), 함승희(咸承熙) 검사 같은 맹장(猛將)들 밑에서 실무 검사로 일했지요. 남 검사는 조폭 두목 조양은, 김태촌을 잡아들였고 수사 실적도 대단했어요.”

―심 고검장이 1999년 항명(抗命)파동으로 물러날 때 남기춘 검사도 한직(閑職)으로 쫓겨났지요.

“내가 대구고검장으로 발령받고 얼마 후 남 검사가 따라오더군요. 그런데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터지면서 내가 당시 검찰 수뇌부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대구에서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까지 직접 올라가 기자들 앞에서 성명을 발표했어요. 그때 나를 수행한 사람이 남기춘 검사입니다. 그 일로 남 검사는 감찰조사를 받고 ‘유배’를 갔지요. 반란군 두목을 수행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내가 2001년 복직판결을 받고 검찰로 되돌아와 부산고검을 맡았는데 그때는 남 검사가 부산고검에 먼저 와 있더군요. 인연이 참 묘합니다.”

―남기춘 검사장은 한화 수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상 경질된 것으로 보이는데요.

“중도하차한 것이지요. 남기춘 검사장을 내가 비호할 이유는 없지만 이번처럼 수사 도중에 수사 지휘자가 경질된 일은 아주 드뭅니다. 그 전에 딱 하나 있지요. 내가 인천지검장을 할 때 최병국(崔炳國)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장이 김현철 사건으로 곤경에 처했습니다. ‘현직 대통령 아들 봐주기 수사’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었어요. 결국 중수부장이 3개월 만에 전격 교체됐는데 그 자리를 내가 맡았어요. 대형 사건을 수사하다가 수사책임자가 교체된 게 이번이 두 번째인 셈이죠.”

“남기춘은 외로운 檢事”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

―선후배 사이로 가끔 통화는 합니까.

“전에는 자주 했는데 이번 사건 이후 통화를 못했습니다. 조만간 얼굴 한번 보겠지요. 내가 보기에 남기춘 검사장은 후회 없는 검사생활을 했다 싶어요.”

―선배(심재륜)에게서 배운 자존심만큼은 지키려 한 것 같습니다. 선배가 항명파동으로 떳떳이 물러난 것처럼 말입니다.

“때가 됐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겁니다. 그 일이 생각나는군요. 내가 항명파동 때 검찰을 떠나면서 ‘이제 때가 됐습니다’로 시작하는 성명서를 공개했는데 원고 초안(草案)을 남기춘 검사가 썼어요.”

―수사 스타일과 관련해 심재륜과 남기춘은 비슷했습니까.

“글쎄, 보는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남 검사는 항우장사(項羽壯士)였습니다. 유방(劉邦)과 한신의 지혜를 조금 더 가졌다면 좋았을 텐데…. 이번에 물러난 데는 그를 보좌하는 후배 검사들의 책임도 없지 않아요. 검사장이 수사를 직접 하는 건 아니잖아요. 후배 검사들이 제대로 못 따라 준 것 같아요. 수사는 예측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중요해요. 특히 작전상 후퇴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해요. 잘못하면 수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죽고 맙니다.”

―남 검사장이 수사상 어려움에 처할 때 조언을 구한 적이 있습니까.

“알아서 잘해 왔어요. 가끔 옛날 얘기를 들려준 적은 있지요.”

―남기춘 검사장에 대한 검찰 내(內) 평가가 엇갈리더군요.

“그 사람은 남의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에요. 옳고 곧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검찰 내에서 소금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를 두고 ‘타협할 줄 모르는 사람’, ‘표현이 거친 사람’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사람을 깎아 내리기 위한 표현에 불과해요. 그는 의(義)를 추구했습니다. 그 때문에 외로웠지요. 이번처럼 거대(巨大)권력에 맞섰다가 결국 좌초한 셈입니다. 언론도 비겁합니다. 칭찬할 때는 언제고 지금 와서 ‘마구잡이 검사’ ‘칼잡이’로 빗대면 안 되지요. 칼잡이 시대는 지났다고 하는데 지나긴 뭐가 지나요. 한화 수사는 아직 재판도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고시 합격했다고 수사 다 잘하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5월 자살할 때도 검찰 수사에 대해 말이 많았습니다.

“그때 언론 지면을 통해 ‘검찰의 자화상’이라는 글로 심하게 나무랐지요. 검찰이 피의자(노무현)를 구속하느냐 안 하느냐를 놓고 자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수사를 하는 사람이 법대로 하면 될 것을, 남의 눈치는 왜 봅니까. 검찰이 우왕좌왕하니까 결국 피의자가 자살한 것 아닙니까. 차라리 노무현 대통령을 구속했으면 자살은 막을 수 있었을 겁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 본인은 물론 가족, 주변인물을 다 살렸어요. 그런 면에서 그는 결단력, 과감성이 있는 분이에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기록이 역사의 뒤안길로 묻혀 버렸습니다. 고인(故人)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수사기록은 공개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인규(李仁圭·당시 대검 중수부장) 부장한테 물어보시오. 그런데 수사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내용이 많을 겁니다. 흔히 수사할 때 기록에 담지 않는 메모가 많아요.”

―일련의 대형 사건들을 처리한 검찰을 보면 과거에 비해 수사능력이 저하된 것으로 보입니다.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 그렇다고 봅니까.

“사법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고시(高試) 합격해 검사가 됐다고 모두가 수사를 잘하는 건 아닙니다. 수사는 경찰관이 더 잘하지요. 경제 사건 같은 대형 사건은 관련 지식이 필수적입니다. 유능한 검사는 발탁인사를 통해 특수부에 배치해야 해요. 그리고 특수부를 전문화시켜야 합니다. 특수부 경력을 출세의 지름길로 생각하니까 궁여지책으로 6개월이나 1년마다 보직을 바꾸는 게 현실입니다.”

―노무현 정부 때 순환보직을 시작했지요.

“그 전에도 있었어요. 수사능력을 인정받는 검사는 조금 더 근무하곤 했습니다. 나는 같은 검사라도 똑같지 않다고 봐요. 경제사범 수사에 능력을 발휘하는 검사가 있고, 특별수사에 기지를 나타내는 검사가 있고, 형사사건에서 조정을 잘해 주는 검사가 있고, 공판에 탁월한 검사가 있습니다. 검사 조직에도 전문화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특수부가 당대 정권과 결탁된 사건을 다루다 보니 ‘정치검사 양산’이라는 폐해도 없지 않습니다.

“그렇게 봐서는 안 돼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는 권력형 비리, 고위공무원 범죄 수사 이외에 다양한 사건들을 다뤄 왔어요. 그래서 일본 검찰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수사·재판 길어지면 변호사만 이득

―요즘 특수부는 야전형 특수부가 아니라 관료형 특수부라는 평이 있습니다.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 얘기죠.”

―스폰서 검사로 검찰의 도덕성도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스폰서는 과거 지방 검찰들이 누렸던 악습 중 하나지요. 아무튼 없어져야 될 환부가 이번에 드러난 겁니다.”

―검찰의 위상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서는 어떤 조치가 필요합니까.

“우선 검찰 스스로가 바뀌어야 해요. 사람들의 의식구조가 옛날과 판이하게 달라졌어요. 공권력에 대한 불신·불만으로 검사의 영(令)도 안 서요. 검사가 출두하라고 해도 안 나옵니다. 국회의원처럼 사회 고위층부터 그럽니다. 여당을 건드리면 정권에서 압력이 들어오고, 야당을 건드리면 시민단체나 노조(勞組)를 동원해 수사를 막아요. 검찰수사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수사능력 향상을 위해 검사 재교육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코페르니쿠스적 전향(轉向)이 절실해요. 지금 특수부에는 제대로 훈련된 검사가 없어요. 교육과 선배들의 경험·지혜까지 체득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생각을 가졌다고 해도 능력이 부족하면 수사는 성공할 수 없어요. 검찰 지휘부가 그런 점을 감안해 인사제도를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해요. 특수부가 출세하는 자리가 아닌 수사 전문 부서라는 인식도 갖도록 해야 합니다.

법원도 무리한 영장 기각을 지양해야 해요. 수사나 재판이 길어지면 결국 변호사만 이득을 봐요. 양형(量刑)도 체계화해서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독일의 경우, 판례가 형성되면 곧바로 법제화합니다.”⊙

▣ 심재륜의 搜査十訣

1.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마라.
검사(檢事)는 검(劍)을 다루는 직업이다. 수사를 하는 것을 상대방을 칼로 찌르는 것에 비유한다. 범죄 혐의자는 수사로 인해 신체, 재산, 명예 등 전부를 잃게 된다. 공연히 칼을 비틀어 찌르거나, 찌른 칼을 비틀게 되면, 불필요한 고통을 주는 수사가 된다. 불필요한 반복소환, 가혹행위, 인격모독, 압박용 계좌추적, 회사신용 실추용 압수수색 등이 그 예이다.

2. 피의자를 굴복시키려 들지 마라, 승복시켜라.
흔히 검사와 범죄자 간에는 수사 이후 평생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피의자 자신도 자존심과 체면, 명예가 있는 법이다. 검사는 모름지기 수사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 다시 한번 점검해 보고 피의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한다. 형평에 맞는 정확한 수사결과라면 어느 누가 승복하지 않겠는가. 입을 틀어막는 수사, 군림하려는 수사, 굴복을 강요하는 수사는 평생 누군가의 저주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3. 끈질긴 수사만이 능사가 아니다, 외통수 수사는 금물이다.
집념은 수사의 필수요소이긴 하지만, 무조건 집념이 강한 검사가 존경받는 것은 아니다. 단시간에 사건을 끝장낼 수 있는 수사능력도, 예측력도 수사검사의 능력이고 책임이다. 장마가 길면(수사가 장기화되면) 폭풍우가 몰아치고 천둥번개 등 온갖 것들이 소용돌이치는 것이다. 시간을 끌면 당연히 상대방도 대오를 정비해 집단적 저항을 한다. 그 책임은 수사검사의 수사능력에 관한 몫이다.

4. 상사를 결코 적으로 만들지 마라.
직무상 상사는 사건수사에서 종적인 동반자이며 자기편이다. 결코 외압을 행사하는 사람이나 방해자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상사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은 오히려 수사 실패를 막아 주는 방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상사를 믿지 못해 사전에 정확한 보고를 게을리하거나 적절한 지침을 받지 못해, 그 상사가 외부에서 수사에 대해 다른 얘기를 듣고 왔다면 그 수사는 처음부터 실패한 것이다.

5. 수사의 곁가지를 치지 마라.
검사는 동일 유형의 모든 사건을 다 수사할 수 없다. 검사 한 사람은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 사회제도나 범죄정책을 바꾸는 대표적 사례 1~2건을 수사할 수밖에 없다. 수사는 어느 시기에는 매듭이 지어져야 한다. 무작정 장기화되거나 방치되면 부작용을 낳게 된다. ‘곁가지 수사’ ‘가지치기 수사’는 입건 수사할 수도 있고 아니할 수도 있어서 그만큼 비리와 야합하기 쉽다. 수사는 뒷마무리도 잘해야 한다. 병법에도 퇴각시(時) 지혜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6. 독이 든 범죄정보는 피하라.
경쟁관계에서 제공되는 정보는 피해라. 수사의 반사적 이익을 보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항상 따져 본 후 수사에 들어가야 한다. 흔히 수사기관을 이용,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부당한 폭리를 취하게 되는 범죄정보가 그럴듯한 범죄정보로 위장돼 흘러 들어오는 수가 있다. 수사에 목말라 있을 때 이런 정보를 덥석 무는 경우가 많다. 훌륭한 사냥개는 독이 든 고기는 결코 물지 않는 법이다. 독이 든 정보인지를 판별하는 능력은 수사검사가 갖추어야 할 필수능력이다.

7. 실패하는 수사는 하지 마라.
심증이나 의심이 가는 사건이라도, 증거가 인멸되거나 더 이상 증거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된 경우는 수사에 나서지 마라. 수사 사실이 공개되면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에 뛰어든 셈이 된다. 수사의 실패는 검사 본인은 물론 검찰청의 수사력 부재라는 욕을 얻어먹기 쉽다. 봐주기 수사니 외압 때문에 수사중단을 했다느니 온갖 의혹과 억울한 누명도 쓰게 된다. 이순신 장군은 왕명(王命)을 어기면서도 ‘지는 전쟁’은 하지 않았다.

8. 수사는 종합예술이다, 절차탁마하라.
살아있는 수사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수사는 지식과 기술이 총동원되는 예술과 같다. 수사의 크기, 규모, 방법, 수사단서의 진실성, 수사기간, 용의자의 상호연락 차단방법, 동시검거 여부, 수사·연행시기, 공휴일·휴가철 시기조절 등이 사전각본(수사계획서)에서 치밀히 준비돼야 한다. 수사 대상자의 배후, 조종세력의 사전 파악, 돌출변수까지 사전에 예측해야 한다. 이런 준비도 없이 무조건 피의자를 불러 수사하는 검사가 의외로 많다. 바둑으로 치면 하수(下手)다.

9. 언론은 불가근 불가원이다.
언론을 지나치게 가까이하는 수사검사는 매명(賣名)검사의 오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언론을 적으로 돌리는 검사는 매우 위험하고 미련하다. 언론은 호락호락 이용당하는 존재가 아니다. 특정 기자에게 밑밥을 던져주고 재미 보는 수사검사가 있다면 다른 언론의 표적이 되어 두 배 앙갚음을 받게 될 것이 뻔하다. 성공하는 수사는 신뢰받는 언론관계에도 있음을 명심하라.

10. 칼에는 눈이 없다.
수사가 성공하는 순간 거기에 당했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의 원한은 산이 높을수록 높고 그 골이 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수사검사치고 명예롭게 임기를 마치는 사람은 드물다. 중도하차가 많은 이유를 생각하라. 칼에는 눈이 없어 그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는 법이다. 칼을 쥐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찔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동귀어진(同歸於盡·파멸의 길로 함께 들어감)하겠다고 덤비는 수사 상대방도 있다. 이는 업보(業報)다. 업보가 얼마나 깊고 두려운 것인지 아는가. 저승까지 따라감을 알아야 한다.⊙

상단주메뉴

위기의 檢察

특별수사통 심재륜의 苦言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마라!

0건

사이트 이용안내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