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인터뷰] 기를 쓰고 군대에 간 젊은이들의 이야기 : 월간조선

허원진(許原進)씨는 어렸을 때부터 키가 작아 항상 반에서 1번을 했다. 주변 사람들은 왜소한 체격의 그를 ‘군대는 갈 수 있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설마 했던 그 말은 2004년 여름 현실이 됐다. 대학 입학 후 징병 신체검사 때 작은 키와 저(低)체중으로 인해 4급 ‘공익근무요원’ 판정을 받은 것이다.(그는 구체적으로 키와 체중이 얼마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병무청은 신체등위 4급 판정을 받으려면 키가 158cm 이하 또는 키 159~160cm 에다 체중 37kg 이하, 또는 97kg 이상이어야 한다고 함.)

같이 신체검사를 받은 친구들은 그에게 ‘부럽다’, ‘축하한다’는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의 속은 쓰렸다. 어릴 때부터 귀가 따갑게 들었던 ‘나약한 남자’란 오명을 군에 가서 보란 듯이 씻어버리고 싶었는데 그 길이 막힌 것이다. 체중이야 나이가 들면 불릴 수 있지만 ‘키 때문에 공익근무를 했다’는 낙인은 평생 지우기 어려울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허씨는 그때부터 고민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군에 갈 수 있을까. 20세의 젊은이 허씨가 풀어야 할 숙제였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막연했다. 흔히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한 ‘묘수(妙手)’들은 많았지만 군 입대를 위한 ‘전략(戰略)’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에 물을라치면 눈을 치켜뜨면서 ‘미친 놈’ 소리를 해대기 일쑤였다. 더구나 공익근무 사유가 키라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불가능’이라며 조언을 해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3cm의 키와 6kg의 몸무게를 늘려 현역으로 자원입대한 허원진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그가 ‘현역입영대상자’ 판정을 위해 키워야 할 키는 3cm. 수소문 끝에 척추 교정술을 받으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때부터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꾸준히 척추 교정술을 받았다. 교정술을 받으면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였고 우유도 1.5L를 매일같이 마셨다. 필요한 것은 키뿐만이 아니었다. 저체중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근육을 만들기 위해 음식조절을 하며 운동도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났다. 다시 병무청의 신체검사장에 섰다. 결과는 기적과 같았다. 3cm의 키가 자랐고 체중은 6kg 늘었다. 판정은 3급 ‘현역입영대상자’였다. 판정을 듣고 기쁜 나머지 소리를 지르며 펄쩍 뛰자 신체검사장의 병무청 직원들은 ‘대단하다, 축하한다’며 박수를 쳤다. 그는 자신도 이제 남들 앞에 당당하게 남자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했다.

우여곡절 끝에 입대한 허원진씨는 2년의 군대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전역했다. 현재 대학 4학년으로 취업준비에 한창인 그는 자기소개서에 ‘자원현역입대’에 얽힌 사연을 빼놓지 않는다. 20년 남짓한 그의 인생 중에서 가장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성취’이기 때문이다.

현역 군 생활 때문에 취업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면접에서 많은 면접관이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언젠가 이런 노력이 취업에도 결정적인 ‘기여’를 해줄 것으로 믿고 있다.

강현권씨, 렌즈 삽입술로 시력 교정 후 현역 입대

시력저하로 징병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았지만 안구수술 후 현역으로 자원입대한 강현권씨(왼쪽에서 세 번째).

대부분의 사람이 새해가 되면 ‘건강한 한 해’를 기원한다.

그럼에도 한국에선 ‘없는 병(病)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병역(兵役)기피자들이다. 2010년 한 해도 ‘예외 없이’ 병역비리로 떠들썩했다. 인기 연예인 MC몽(본명 신동현)은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고의로 생니를 뽑았다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재판을 받게 됐다. 이를 계기로 인터넷상에서는 ‘발치몽(拔齒 MONG)’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져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작년에 있었던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에서도 병역과 관련한 의혹은 야당의 단골 공격 메뉴였다. 천안함 사건, 북한의 연평도 도발과 같은 안보사건이 터질 때마다 병역을 마치지 않은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들은 이중삼중으로 곤욕을 치르지 않으면 안됐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편으론 ‘군대에 가기 위해 있는 병을 없앤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2010년 9월 병무청은 질병치유 등을 통해 스스로 병역을 이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수기집 《사나이로 태어나서 2010》을 발간했다. 이 수기집은 군대를 안 가도 됐던 이들이 ‘굳이’ 입대하고자 겪었던 사연 40편을 담고 있다. 수기 공모에서 입상한 5명의 ‘사나이’를 만나보았다.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강현권(姜現權)씨는 시력이 좋지 않아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자 안과 치료를 받고 현역병으로 자원입대했다.

그에게 왜 가지 않아도 되는 군대를 갈 결정을 하게 됐는지 묻자 그는 “그냥 떳떳하게 군대에 갔다 오고 싶었다”고 했다. 국민의 4대 의무니 어쩌니 하는 대답을 기대했던 기자가 오히려 머쓱해질 정도로 그는 그게 질문거리냐는 반응이었다.

그는 현역병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안과를 찾았다. 시력(視力)을 교정하기 위해서였다. 안과에선 라식이 어렵다며 안내(眼內) 렌즈삽입 수술을 권했다. 뭔지 잘 몰랐던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생겼다. ‘부작용이 있진 않을까’, ‘수술을 하면 군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군대에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두려움을 이겨냈고 그는 마침내 수술대에 누웠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좋아진 눈으로 신청한 재검에서는 2급 현역병 판정을 받았고, 입대한 뒤에는 오히려 ‘안경 없는’ 군 생활이 편하기까지 했다. 그는 “군대에서의 2년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길에서 잠도 자고, 미치도록 걸어도 보고, 가슴 터질 듯 뛰어도 보고, 죽을 만큼 덥고 손발이 마비가 되는 추위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제 인생에서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추억입니다. 눈 수술을 했다는 것은 전혀 장애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학교 후배들에게 될 수 있으면 꼭 현역으로 갔다 오라고 추천합니다.”

최민석씨, 라식수술 후 재검에서 현역 판정받아

최민석(崔民錫)씨도 시력 때문에 4급판정을 받았다. 그는 평소 공익근무나 병역면제에 대해 아무런 반감도 갖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더구나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그에게 현역으로 입대할 수 없다는 사실은 큰 상처가 됐다. 어떻게든 군대에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고심 끝에 병무청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졌고, 마침내 그는 ‘병역처분 변경원 제도’에 대해 알게 됐다. 1차 신체검사에서 병역 감면사유였던 질병 등을 치유하고 나서 재검(再檢)을 받아 현역병 판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만류하는 아버지를 설득해 라식수술로 시력을 교정했고, 단번에 1급 현역병 판정을 받았다. 마침 그날 명예징병관으로 병무청에서 업무를 보던 가수 홍경민은 그에게 “이 친구 훌륭한데”라며 악수를 청했다고 한다.

“그날 재검에서 현역병 판정을 받고 ‘인생이 내 뜻대로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너무 기뻤습니다. 사실 당시 고민도 많고 공부하면서 많이 흔들리던 시기였는데 내 뜻대로 현역 판정을 받고 마음이 안정되고 편해지더라고요.”

최민석씨는 현재 고려대 로스쿨에 다니며 법무사관후보생으로 있다.

이들이 첫 징병검사에서 병역 감면 판정을 받고도 재검을 받아 현역 입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1999년 병역처분 변경원 제도가 도입됐기 때문이다. 병역처분 변경원 제도는 병무청의 징병검사 결과 현역병이나 공익근무요원으로 입영할 대상이 아니지만, 본인이 신청할 경우 질병을 치유하고 재검을 통해 현역 또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입영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병무청의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병역처분 변경을 한 인원은 2572명이다.

윤대진씨, 몸무게 60kg 감량해 자원입대

병무청에서는 이런 병역 자진이행 인원을 늘리기 위해 각종 우대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우대제도로는 희망입영시기 및 복무 부대 반영, 육군 모집병 선발 시 가산점, 복무 중 포상 및 문화탐방선발 등을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각종 행사와 병역설계 담당지정 및 사이버 홍보관 등재 등을 통해 자원입대한 이들의 사기를 높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 자진이행 인원을 늘리기 위해서 우대제도를 점점 늘리고 있는 추세”라며 “이번에 처음 발간한 수기집도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매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65사단에서 단기하사로 복무 중인 윤대진(尹大鎭)씨도 이 우대제도의 수혜자다. 그는 사병으로 복무 중 자원병역이행자로 문화탐방행사에 선발돼 여행을 다녀왔다. 사실 그는 입대 전 몸무게가 140kg이 넘었다. 당연히 신체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았다. 그는 열 군데가 넘는 방위산업체에도 신청을 해봤지만 뚱뚱한 그를 어느 한 곳도 받아주지 않았다. 남들은 가기 싫어하는 군대에서조차 뚱뚱한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살을 빼서 군대에 가야겠다는 오기가 생겼다. 하루에 6시간 운동하고 한 끼만 먹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8개월 후 그는 60kg을 감량했다. 재검을 신청했고 결국 2급 현역 판정을 받았다.

입대 후 복무 중에 그는 자원병역이행자 자격으로 생각지도 않게 문화탐방도 가고 포상휴가도 받았다. 그는 “자원해서 왔지만 이런 것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휴가도 받고 여행도 갔다 와서 좋았다”며 “덕분에 군생활 중 좋은 추억을 남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군에 뜻을 두고 전문하사로 연장복무를 신청해 현재 복무 중이다.

중졸 신익환씨, 고졸 검정고시 합격 후 입대

검정고시 후 학력변동을 통해 현역 입대한 신익환씨(가운데 휴가 봉투를 들고 있는 병장)

병역처분 변경을 한 자원병역이행자 중에는 위와 같이 신장체중, 안과치료 등의 질병치유뿐 아니라 학력변동을 통해 입대한 사례도 있다. 병무청은 2001년부터는 학력에 의한 제2국민역 또는 보충역 대상이 검정고시 등을 통한 학력상승으로 병역처분을 변경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꿨다.

신익환씨는 검정고시 합격으로 중졸에서 고졸로 학력을 변동하고 자원입대한 케이스다. 그의 수기는 “저는 학창시절 성적이 좋지 않고 행실이 바르지 못해 고등학교를 자퇴했다”로 시작한다. 고등학교 자퇴 후 그는 일도 안 하고 꿈도 없는 소위 ‘잉여인간’으로 살았다. 그러던 중 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받았고 학력 때문에 군대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충격이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살았지만,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가는 군대를 못 간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그래서 그는 검정고시를 결심했다. 검정고시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했고 굳은 결심 덕분인지 한 번에 합격했다. 그는 고졸로 학력이 바뀌었고 병역처분 변경으로 현역 입대에 ‘성공’했다.

애초에 군대에 가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지만 입대 후에도 그는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흥미를 갖기 시작한 영어 공부를 남는 시간에 틈틈이 했고 상병 때 외박 나와 본 토익시험에서 845점을 받았다.

각종 자격증도 땄다. 그는 입대 후 육군종합군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트레일러 운전 자격증을 받았다. 하지만 그가 배치받은 부대에선 트레일러보다 대형버스를 운전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는 부대 수송관의 권유로 대형버스 운전을 결심했고 이를 위해 야전수송교육단에서 어렵사리 대형면허를 땄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의 부대에 필요했던 토잉 카 운전병이 제대를 하자 그는 또 새로운 길을 가게 된다. 또다시 야전수송교육단에 갔고 교육을 받아 시험을 치르고 토잉 카 자격증까지 받았다. 이후 그는 부대의 모든 차량을 몰 수 있는 ‘만능 운전병’이 됐다. 그는 “남들이 하지 못한 것을 해내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사회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성취의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익환씨는 제대 후에도 운전을 하면서 돈을 모으고 영어공부를 계속했다. 지금 그는 번역사무소에서 번역 업무를 하고 시간 외로 영어학원의 교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질병치유 등 자원병역이행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병역처분 변경사유. 남자로서 병역의무는 당연하다는 의견과 향후 사회활동 및 경력에 도움을 받고자 한다는 의견이 다수를 차지한다. 병무청 제공

군대에 가려고 했던 이유도, 병역처분을 변경하게 된 사연도 제각각이지만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군 입대를 스스로 결정했고,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안 가도 되는 군대를 굳이 가서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군대에 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목표였던 이들에게 군생활은 오히려 성공의 열매였는지 모른다.

군 관련 일이 유달리도 많았던 2010년이었다. 천안함은 침몰했고, 연평도는 북한의 포탄을 맞았다. 국방부장관이 교체됐고 군은 이제 야전형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며 대대적인 수술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전투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다.

남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군 생활을 스스로 원해서 선택한 젊은이들. 그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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