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림픽 이후 중국인 제자 배신, 사업 실패, 그래도 중국인 도움으로 일어섰다”
⊙ “단순히 돈 벌기 위해 중국 오는 韓流스타들에 대한 반감 높아져”
⊙ “단순히 돈 벌기 위해 중국 오는 韓流스타들에 대한 반감 높아져”
-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신들린 듯한 응원동작으로 유명해진 조수진씨는 중국 브랜드 ‘하오사’의 모델로도 활동했다.
“안녕하세요? 한국 기자분은 참 오랜만에 뵙네요. 올림픽 때는 그렇게도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더니, 올림픽 끝나자마자 한국 기자분들 연락이 ‘뚝’ 끊겼어요. 하하하.”
베이징 젠궈와이먼(建國外門)에 있는 LG 쌍둥이 빌딩 1층에서 조수진(趙守鎭)씨를 봤을 때, 조씨는 낯익은 서양인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씨는 그 남자와 작별인사를 한 후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조금전 조씨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연락이 끊겨서 섭섭했다는 건지, 오랜만에 본 한국기자라 반갑다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기자는 조수진씨의 인사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어떻게 지냅니까.”
그러자 조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까 저와 얘기하던 서양 남자 보셨어요? 중국 CCTV(중국중앙방송) 쇼 프로에 자주 나오는 호주 사람이에요. 요새는 중국 방송 인기 토크쇼에서 진행도 맡고 있고 방송일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제 얼굴 알아보는 중국인이 참 많아요. 중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요. 하하하.”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팀 응원단장을 한 덕분에 중국에서 방송일을 하게 된 겁니까.
“한국에 있는 분들은 올림픽 이후에 제가 엄청난 돈을 벌었고, 그야말로 ‘땡잡은’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은 전혀 아닌데…. 전부 한국 기자분들이 제게 관심이 없어서 그래요. 올림픽 응원단장을 한 게 영향을 안 준 건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방송일을 하게 된 건 아니에요. 사실 저는 베이징 올림픽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올림픽 끝나고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1994년 처음 중국에 왔을 때보다 그때가 더 힘들었어요.”
“중국에는 가죽천장이 있어요”
조수진씨는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중국대표팀 응원단장을 맡으며 유명세를 탔다. 당시 그녀의 공식 직위는 올림픽현장공연감독(奧運會現場表演導演). 조씨는 베이징 올림픽 내내 중국인 치어리더 380명의 안무(按舞)를 교육하고 현장에서 이들을 지도했다. 당시 중국 언론은 외국인, 특히 한국인으로 중국 응원단장이 된 그녀를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주목했다. 조씨의 말대로 “중국인들이 100년을 기다렸다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인이 자국(自國) 응원단장이 된 게 엄청 신기했던 모양”이다.
조수진씨가 중국 대표팀 응원단과 인연을 맺게 된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 때 중국팀 응원단의 주축이 조수진씨의 댄스팀인 ‘수진지무(守鎭之舞)’였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댄스팀을 이끌고 중국 축구대표팀을 응원했다. 그때까지 치어리더 응원문화가 생소했던 중국인들에게 ‘수진지무’의 응원은 깊은 인상을 심어 줬다. 이후 중국농구협회(CBA) 요청으로 중국 프로농구팀 치어리더를 양성했다. 2006년 한중(韓中) 프로농구 올스타전 때도 그녀의 댄스팀 ‘수진지무’가 중국팀 응원을 책임졌다.
―현재 중국에서 치어리더 응원의 대명사 격이 됐습니다만, 처음 시작한 건 에어로빅이라고 들었습니다. 에어로빅에서 치어리더로 방향을 돌린 이유가 있나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잘나가던 에어로빅 강사에게 왜 돌파구가 필요했던 겁니까.
“에어로빅은 중국에서 제가 처음 시작한 건 아니니까요. 이미 중국의 에어로빅계가 있고 저는 외국 여자일 뿐이었죠. 중국 에어로빅계가 못하고 안 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성공했지만, 한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미국엔 뭐 유리천장이 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가죽천장이 있어요. 어느 정도 다가서면, 저 멀리서도 두꺼운 가죽이 머리 위에 ‘턱’ 걸쳐져 있어요.”
“죽을 힘을 다한 내 일이 시들어 가는 걸 볼 수 없었다”
―차별을 당했나요.
“텃세죠. 제가 안무했던 팀이 가장 잘했다고 평가받았는데, 중국 에어로빅 간부가 운영하는 팀이 시합에서 1위를 하는 일이 늘어나더군요. ‘조수진 제자’라고 하면 예선에서 탈락하고요. 제가 점점 유명해지고 잘하니까 텃세가 그만큼 세진 거죠. 그렇다고 뭐, 죽을 만큼 억울하지는 않았어요. 하하하. 그래도 한국에 있었으면 대학도 못 가고 그냥 그렇게 다른 일 하면서 살았을 텐데 중국은 제게 많은 기회를 줬잖아요. 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서 이룬 일이 점점 시들어 가는 걸 보기는 싫었어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게 치어리더였어요.”
그녀는 처음 중국에서 에어로빅을 시작했을 때의 얘기를 꽤 길게 했다. 듣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힘들었던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그때를 얘기하면서 그녀는 참 밝은 표정이었고 행복해했다.
조수진씨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체육으로 대학교를 가고 싶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에어로빅을 배웠다. 하지만 한국에서 에어로빅은 이미 한물가기 시작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편하게 공부할 집안 형편도 아니었다. 중국으로 오기 전까지 그녀의 식구들은 인천의 반(半)지하 단칸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녀는 19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아 둔 200만원을 들고 인천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톈진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한 그녀는 베이징 우다코(五道口)에 있는 중국 위옌대(語言大)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다. 동시에 학교 근처에 있는 에어로빅 학원에 가서 아르바이트 강사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한국 여자아이를 받아 줄 학원은 많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오라고 하지 않아도 제 발로 가서 청소하고 인사하고 다녔다. 겨우겨우 보조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1년반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몇 번이나 짐을 꾸렸다고 한다. 다시 조수진씨와 나눈 얘기다.
댄싱 에어로빅으로 중국 방송 진출
―어쨌든 중국 에어로빅계에서 살아남았군요. 비결이 뭡니까.
“나만의 방법, 조수진만 할 수 있는 에어로빅을 만들었어요. 중국 사람들은 시끄럽고 남 눈치 안 볼 것 같은데, 실상은 안 그래요. 남들 앞에 나서서 뭘 하는 걸 굉장히 민망해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중국인 강사보다 두세 배는 더 시끄럽게 말하고 더 움직이며 강의를 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중국인 강사들 수업에서는 잘 안 움직이던 수강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더군요.
거기에 착안을 해서 ‘댄싱 에어로빅’을 만들었어요. 빠른 리듬과 템포로 수업시간 1시간 동안 몇 배 더 움직이고 더 신나게 만들어 준 거예요. 또 그 시기 한국에서 인기 있던 댄스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매번 새로운 음악을 틀어 줬죠. 당시 중국인 강사들은 매일 듣던 지겨운 중국 댄스곡을 틀었어요. 지금도 우리 한국 음악이 좋지만 당시 중국 대중음악과 비교하면 우리 댄스곡은 정말 최고였잖아요.”
―누구 음악을 가장 많이 틀었나요.
“신나는 건 다 틀었지만, 당시는 김건모?”
―인기가 높아지니까, 중국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던가요.
“여기저기에서 강연 요청이 오니까 나중에는 몸이 정말 10개여도 모자랐어요. 1999년에 저와 친한 중국인 에어로빅 학원 원장이 방송국에 저를 소개해 줬습니다. TV에 나가면 몸이 하나면 되니까요. 하하하.”
조수진씨는 1999년부터 CCTV 채널 1과 베이징텔레비전(BTV) 에어로빅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점차 조씨의 에어로빅이 인기를 끌면서 CCTV 채널 3과 9에서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방송을 했다. BTV에서도 고정 출연 자리를 꿰찼다. 2002년에는 베이징에 조씨의 댄싱 에어로빅이 빅 히트를 하면서 베이징 여성들 사이에 에어로빅 열풍을 불러왔다. ‘이제 자리를 잡았구나’ 안심했는데, 다시 어려워졌다. 조수진씨의 얘기다.
“2002년 초에 제 에어로빅 인기가 정말 높았어요. 그랬더니 중국에어로빅협회에서 견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이 자기 안방에서 최고가 되는 걸 못 보겠다는 거였죠.”
―협회는 왜 가입을 안 했습니까.
“가입을 안 시켜 주더군요. 친한 중국인 에어로빅 원장, 선배 동료들에게 부탁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도와주는 한국 사람도 한 명 없고….”
대답 없는 한국 문화원
―치어리더단은 어떻게 차린 겁니까.
“2002년 한일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축구협회가 응원단을 뽑았어요 그때 제 에어로빅팀 다섯 명을 주축으로 응모를 해서 저희 팀이 응원단으로 뽑혔죠. 나머지 단원을 공모해서 20명을 만들어 월드컵 응원단을 만들었어요. 월드컵 이후에 치어리더 문화에 대해 중국 사회가 익숙해졌어요. 그때 중국 농구협회(CBT)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로서는 상당히 거금의 지원금을 주면서 치어리더단 구성을 도와주더군요.”
조수진씨가 만든 치어리더팀은 중국 프로농구협회와 계약을 하고 2003년부터 중국 프로농구팀 경기에서 관중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중국 지방도시에서는 관중 대부분이 치어리더들을 처음 볼 정도로 치어리더가 대중화되지 않았다. 조씨가 지도하는 치어리더단은 중국 스포츠 관중들에게 신선한 볼거리였다. 조씨는 2005년 4월 자신의 치어리더 댄스 그룹인 현재의 ‘수진지무’를 결성하고 제2의 댄스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베이징 올림픽 응원단장이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처음에는 응원단장으로 뽑힌 게 아니었어요.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에서 종목별로 응원단을 구성한다기에 뒤늦게 응모했어요. 이미 5개의 응원단이 있었는데, 나중에 저희가 마지막 6번째로 응원단이 됐죠. 제 치어리더팀은 처음에는 비치 발리볼과 농구쪽 치어리딩만을 담당했어요. 그런데 올림픽을 앞두고 같이 연습을 하는데, 다른 팀들이 너무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 올림픽 조직위가 제게 현장공연감독이라는 호칭을 주면서 다른 팀들의 안무지도를 도와 달라고 한 겁니다.”
―인터뷰 초반에 올림픽 때는 생각하기도 싫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힘들었나요.
“정말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어요. 섭섭하고 힘든 일들이 참 많았죠. 그때 가장 안타깝고 힘들게 했던 게 우리 문화원이에요. 올림픽은 전(全)세계 축제고 중국 문화부가 응원단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팀을 응원하지만 한국 문화를 접목해서 안무를 만들고 싶었어요. 당시 인기가 높았던 영화 <왕의 남자>나 <난타> <부채춤> 등을 중국식 안무에 넣으려고 했어요. 한국 문화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한국문화원에 수차례 연락하고 접촉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아무런 대답이 없을 수 있을까요? 전 지금도 이해가 안돼요. 제가 한국 문화를 알리자고 그렇게 혼자 뛰는데요.”
올림픽 기간 동안 무료 자원봉사
한국 문화원에선 소식이 없었지만, 미국 미식축구협회인 NFL에서는 조수진씨에게 적극적으로 접촉했다. NFL은 인민폐 50만 위안(약 1억원)을 조씨의 치어리더팀에 투자를 하고 NFL 소속 치어리더 360명을 베이징으로 보내 조씨가 이끄는 치어리더들을 교육시켰다.
―올림픽 기간 동안 보수는 어느 정도 받았습니까.
“다들 제가 엄청난 보수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랐어요. 올림픽은 전부 자원봉사예요. 전부 자비로 했어요. 단원들 응원복도 식사비, 간식도 제 돈으로 썼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돈은 못 버는데 나가는 데가 많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참 고마운 게 한국 기업인 EXR에서 단원들 응원복 지원해 주고, 파리바게트에서 아침과 간식을 무료로 제공했어요. 당시 응원단 사이에서 파리바게트 인기는 최고였죠.”
―그럼 ‘수진지무’ 단원들도 자원봉사로 응원단에 참여한 겁니까.
“처음에는 자원봉사로 시작을 했는데 올림픽이 거의 다가오자 몇몇 단원들이 돈을 달라고 했어요. 다른 응원단에 비해서 우리팀 단원들의 실력이 높았기 때문에 스카우트 제의가 많았거든요. 올림픽을 앞두고, 힘들게 연습을 시킨 단원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단원들에게 제가 일당을 줬습니다.
―외국인들도 자원봉사를 하는데 중국인이 돈을 달라는 건 모순 아닙니까.
“제가 몇 번이나 ‘니네들 부끄럽지 않아?’라고 얘기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중국 사람들 돈에는 정말 인정이 안 통하거든요.”
애제자에게 배신당해
―올림픽 이후에는 엄청난 부(富)와 명예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닌 것 같네요.
“참, 그때 일들은 다시 말하기도 싫어요. 결론적으로 배신, 소송,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올림픽 이후에 ‘애제자(愛弟子)’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맡겼던 중국인 단원이 단원 10명 정도를 데리고 회사를 떠났어요. 하루아침에 그냥 배신을 한 거죠.
그렇게 회사를 나가서는 ‘올림픽 치어리더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평소에 그 아이가 회사 주요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많은 고객과 업체가 저희와 계약을 끊고 이 아이와 계약을 하더군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몇몇 단체는 응원단의 이름이 바뀐 줄 알고 계약했다고 했어요.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저희 회사 마크가 찍힌 응원복을 들고 나가서는 그 응원복을 그대로 입고 다른 무대에 섰습니다. 그러니까 대다수 사람들이 ‘저쪽도 조수진 무용단이구나’라고 생각하더군요.”
―그래서 이름을 도용한 단원을 고소한 겁니까.
“네. ‘뭔가 내 손해를 만회하자가 아니라, 외국인이라고 나를 깔보지 마라, 조수진도 만만치 않은 한국 여자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재판을 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모두 뜯어말렸어요. 중국에서 외국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재판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거죠. 게다가 당시 회사 재정상태도 어려웠기 때문에 제일 싼 변호사를 1000위안(약20만원)의 수임료를 주고 고용했습니다. 변호사에게만 일을 맡기지 않고 제가 직접 뛰어다니며 저쪽의 문제점을 일일이 조사하고 찾아냈어요.”
―손해배상 소송이었나요.
“네. 하지만 손해배상 금액은 운동복 한 벌당 한국돈 10만원으로 계산해서 3000위안(약 60만원)이었어요. ‘정말 저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중국 사회에 알려주고 싶었어요.”
―법정에서 힘들지 않았나요.
“상대 측의 아버지가 참고인으로 나와서는 되레 제게 큰소리를 치는 겁니다. ‘니가 제대로 응원복을 관리하지 못한 거지. 우리 딸이 무슨 잘못이냐’는 거죠. 그래서 제가 중국인 판사에게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사람을 믿고 사업을 하고 싶다. 운동복 못 가져가게 막고 돌려달라는 식의 치졸한 짓을 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냐, 아니면 남의 회사 이름이 적힌 운동복을 입고 남의 회사 이름을 도용한 게 잘못이냐?’고 따졌어요.”
당초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인민법원에서는 조씨의 손을 들어줬다. 배상금액도 조씨가 원한 것보다 많은 인민폐 1만위안(200만원)이 나왔다. 하지만 한 번 떠난 고객은 잘 돌아오지 않았다. 재판을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중국 고객들이 조씨의 응원단과 계약을 하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씨의 이름을 보고 투자하겠다던 한국 회사 몇몇이 투자를 번복하거나 그녀를 이용하려 들었다. 결국 합작한 사업 몇 개가 실패로 끝나면서 조씨의 치어리더단도 어려워졌다.
중국 언론의 격려
다시 조씨와 나눈 얘기다.
“재판에서 이겼지만 사업은 어려워졌어요. ‘정말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러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쯤 중국 《법제만보(法制晩報)》에서 애제자의 배신, 사업실패에 관한 기사를 실어 줬습니다. 당시 제목이 <서우전 자유>(守鎭加油·수진씨 힘내요)였어요. 이 기사가 실리고 나서 정말 많은 중국분이 제게 위로와 격려를 해 줬습니다. 다른 신문사와 방송국에서도 저에 대한 기사를 싣고 제 다큐멘터리를 찍어 갔어요. 회사 사정은 크게 안 나아졌지만, 이 덕분에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중국 후난성에서 운영하는 후난TV에서 연락이 왔죠. 이 방송국의 인기 프로그램인 <천하여인>의 공동사회자를 맡아 달라는 거예요. 조금 생각해 보다가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해서 승낙했어요.
조수진씨가 지난 2010년 5월부터 공동진행자로 출연하고 있는 <천하여인(天下女人)>은 중국 후난(湖南) 위성 TV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천하여인>은 중국 대표 아나운서 양란(楊瀾), 모델 출신 리아이(李艾)가 조씨와 함께 진행을 맡고 있고, 매주 토요일 오후 11시40분부터 1시간씩 중국 전역에서 방송된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Baidu)에 따르면, <천하여인>은 중국 중앙방송국 시청률조사 연구소의 시청률 집계에서 시청률 순위 5위권에 자주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연구소 계산에 의하면, 평균 시청자 수가 800만명에서 1300만명에 이른다. 조수진씨의 얘기다.
중국에서 처음 하는 일이 벌써 세 번째
“<천하여인>을 함께 진행하는 양란은 중국의 대표 아나운서예요. 찰스 왕세자, 미국 힐러리 국무장관 등 유명인들만 인터뷰했던 사람이에요. 중국판 ‘오프라 윈프리’라고 생각하면 쉽죠. 제목 그대로 ‘천하의 여인’이라는 주제로 중국 최고 인기 연예인인 장쯔이, 양자경 등의 천하 여인을 초청하여 진행하는 토크쇼예요.”
―그런 프로그램에 어떻게 발탁됐을까요.
“저의 직설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 프로그램 콘셉트에 맞은 거죠. 유명 연예인들에게 중국 진행자들은 직설적으로 질문을 못하지만 외국인은 좀 센 질문을 할 수 있죠. 우리 연예 관련 뉴스에도 나왔지만 장쯔이가 출연했을 때, ‘너 내숭 좀 그만 떨어. 재수 없어’라고 이야기하고 ‘여자 애들이 너 싫어하지?’라고 유명 여배우를 당황하게 만드니까 시청자들이 좋아하죠.”
―장쯔이에게만 그렇게 말한 겁니까.
“아니에요. 좀 마음에 안 드는 연예인들에게는 더 세게도 말했어요. 요새 한창 뜨는 인기 여배우 중에 ‘유역비’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가 나와서 말을 하도 흐리고 성의가 없어서 ‘너 자꾸 그렇게 성의 없이 대답할래?’라고 소리쳤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나중에 갈 때는 제게 ‘너 참 대단하다’ 그러면서 손을 치켜세워요. 작년에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천하여인>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왔어요. 그때 양란이 제 인기 비결을 ‘외국인이 내숭 없이 시원하게 얘기해서 인기 여배우들을 꼼짝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어요.”
―어떻게 보면 밉상 이미지인데 싫지 않아요.
“할 말을 다 하는 이미지이지, 악역을 맡은 건 아니에요. 에어로빅이나 치어리더 할 때처럼 남 눈치 안 보고 내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 중에 중국 방송계에서 활동하는 게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방송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가끔 있지만 중국어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제가 처음이라고 해요. 중국에 와서 처음 하는 일 참 많아요. 이번이 세 번째네요. 댄싱 에어로빅, 치어리더, 토크쇼 진행자.”
“건방진 韓流 스타에게 반감 높아”
―방송국에서 일하다 보면 한류(韓流)에 대해서도 말할 기회가 많지 않습니까. 현재 중국에서 한류는 어떻습니까.
“이제 많이 시들해졌어요. 이전에 드라마를 통해서 간간이 지속되던 한류조차 시들해졌다고 보면 됩니다. 얼마 전에 <천하여인> 진행자 양란과 한류에 대해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양란도 한류 문제점을 지적하더군요. 일부 여성그룹을 제외하고는 너무 아시아 일부만 바라보고 있다는 겁니다. 좀 더 큰 콘셉트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고 활동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요. 게다가 일부 한류 스타들의 자질도 문제예요.”
―어떤 자질 말입니까.
“중국 팬과 대중을 대하는 태도요. 쓸데없이 콧대만 높아진 스타나 오만한 매니지먼트 회사에 대해서 중국 방송계가 아주 치를 떨더군요. 한류 스타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와서 가식을 떨거나 건방을 떤다고 반감이 커요. 중국 메이저 방송사에서 더 이상 한류 스타들을 부르지 않는 현실을 잘 봐야 합니다.”
조수진씨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다시 중국 《런민르바오(人民日報)》의 자매지인 《환치우스바오(環球時報)》 기자와 인터뷰를 하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그녀는 다음 인터뷰 이후, 광저우(廣州)로 이동한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광저우와 선전(深?)의 예술학교에서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버릇없는 중국 아이들 혼내니까 아이들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너무 좋아해요. 저는 천생 내 성격대로 살아야 성공하나 봐요”라며 또 ‘하하하’ 웃었다.⊙
〈취재지원 金勇桓 北京大 신문방송학과 3학년〉
베이징 젠궈와이먼(建國外門)에 있는 LG 쌍둥이 빌딩 1층에서 조수진(趙守鎭)씨를 봤을 때, 조씨는 낯익은 서양인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조씨는 그 남자와 작별인사를 한 후 우리에게 다가왔다. 우리는 조금전 조씨의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어리둥절했다. ‘연락이 끊겨서 섭섭했다는 건지, 오랜만에 본 한국기자라 반갑다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기자는 조수진씨의 인사에 이렇게 답할 수밖에 없었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에 어떻게 지냅니까.”
그러자 조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까 저와 얘기하던 서양 남자 보셨어요? 중국 CCTV(중국중앙방송) 쇼 프로에 자주 나오는 호주 사람이에요. 요새는 중국 방송 인기 토크쇼에서 진행도 맡고 있고 방송일을 많이 해요. 그래서 제 얼굴 알아보는 중국인이 참 많아요. 중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도요. 하하하.”
―베이징 올림픽 때 중국팀 응원단장을 한 덕분에 중국에서 방송일을 하게 된 겁니까.
“한국에 있는 분들은 올림픽 이후에 제가 엄청난 돈을 벌었고, 그야말로 ‘땡잡은’ 걸로 알고 있어요. 사실은 전혀 아닌데…. 전부 한국 기자분들이 제게 관심이 없어서 그래요. 올림픽 응원단장을 한 게 영향을 안 준 건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방송일을 하게 된 건 아니에요. 사실 저는 베이징 올림픽을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올림픽 끝나고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1994년 처음 중국에 왔을 때보다 그때가 더 힘들었어요.”
“중국에는 가죽천장이 있어요”
조수진씨는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중국대표팀 응원단장을 맡으며 유명세를 탔다. 당시 그녀의 공식 직위는 올림픽현장공연감독(奧運會現場表演導演). 조씨는 베이징 올림픽 내내 중국인 치어리더 380명의 안무(按舞)를 교육하고 현장에서 이들을 지도했다. 당시 중국 언론은 외국인, 특히 한국인으로 중국 응원단장이 된 그녀를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부터 주목했다. 조씨의 말대로 “중국인들이 100년을 기다렸다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인이 자국(自國) 응원단장이 된 게 엄청 신기했던 모양”이다.
조수진씨가 중국 대표팀 응원단과 인연을 맺게 된 건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가 처음은 아니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 때 중국팀 응원단의 주축이 조수진씨의 댄스팀인 ‘수진지무(守鎭之舞)’였다. 당시 그녀는 자신의 댄스팀을 이끌고 중국 축구대표팀을 응원했다. 그때까지 치어리더 응원문화가 생소했던 중국인들에게 ‘수진지무’의 응원은 깊은 인상을 심어 줬다. 이후 중국농구협회(CBA) 요청으로 중국 프로농구팀 치어리더를 양성했다. 2006년 한중(韓中) 프로농구 올스타전 때도 그녀의 댄스팀 ‘수진지무’가 중국팀 응원을 책임졌다.
―현재 중국에서 치어리더 응원의 대명사 격이 됐습니다만, 처음 시작한 건 에어로빅이라고 들었습니다. 에어로빅에서 치어리더로 방향을 돌린 이유가 있나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어요.“
―잘나가던 에어로빅 강사에게 왜 돌파구가 필요했던 겁니까.
“에어로빅은 중국에서 제가 처음 시작한 건 아니니까요. 이미 중국의 에어로빅계가 있고 저는 외국 여자일 뿐이었죠. 중국 에어로빅계가 못하고 안 하던 새로운 방식으로 성공했지만, 한계가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미국엔 뭐 유리천장이 있다고 하지만 여기는 가죽천장이 있어요. 어느 정도 다가서면, 저 멀리서도 두꺼운 가죽이 머리 위에 ‘턱’ 걸쳐져 있어요.”
“죽을 힘을 다한 내 일이 시들어 가는 걸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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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중국팀 응원단장으로 유명세를 탔다가 방송진행자로 변신한 조수진씨. |
“텃세죠. 제가 안무했던 팀이 가장 잘했다고 평가받았는데, 중국 에어로빅 간부가 운영하는 팀이 시합에서 1위를 하는 일이 늘어나더군요. ‘조수진 제자’라고 하면 예선에서 탈락하고요. 제가 점점 유명해지고 잘하니까 텃세가 그만큼 세진 거죠. 그렇다고 뭐, 죽을 만큼 억울하지는 않았어요. 하하하. 그래도 한국에 있었으면 대학도 못 가고 그냥 그렇게 다른 일 하면서 살았을 텐데 중국은 제게 많은 기회를 줬잖아요. 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서 이룬 일이 점점 시들어 가는 걸 보기는 싫었어요. 그때 제 눈에 들어온 게 치어리더였어요.”
그녀는 처음 중국에서 에어로빅을 시작했을 때의 얘기를 꽤 길게 했다. 듣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힘들었던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그때를 얘기하면서 그녀는 참 밝은 표정이었고 행복해했다.
조수진씨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체육으로 대학교를 가고 싶어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에어로빅을 배웠다. 하지만 한국에서 에어로빅은 이미 한물가기 시작했고, 대학교에 들어가서 편하게 공부할 집안 형편도 아니었다. 중국으로 오기 전까지 그녀의 식구들은 인천의 반(半)지하 단칸방에서 지냈다고 한다. 그녀는 1994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모아 둔 200만원을 들고 인천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탔다.
톈진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한 그녀는 베이징 우다코(五道口)에 있는 중국 위옌대(語言大)에서 중국어를 공부했다. 동시에 학교 근처에 있는 에어로빅 학원에 가서 아르바이트 강사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한국 여자아이를 받아 줄 학원은 많지 않았다. 영화에서나 나오는 것처럼 오라고 하지 않아도 제 발로 가서 청소하고 인사하고 다녔다. 겨우겨우 보조강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1년반 동안은 너무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몇 번이나 짐을 꾸렸다고 한다. 다시 조수진씨와 나눈 얘기다.
댄싱 에어로빅으로 중국 방송 진출
―어쨌든 중국 에어로빅계에서 살아남았군요. 비결이 뭡니까.
“나만의 방법, 조수진만 할 수 있는 에어로빅을 만들었어요. 중국 사람들은 시끄럽고 남 눈치 안 볼 것 같은데, 실상은 안 그래요. 남들 앞에 나서서 뭘 하는 걸 굉장히 민망해합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중국인 강사보다 두세 배는 더 시끄럽게 말하고 더 움직이며 강의를 했어요. 그러니까 다른 중국인 강사들 수업에서는 잘 안 움직이던 수강생들이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더군요.
거기에 착안을 해서 ‘댄싱 에어로빅’을 만들었어요. 빠른 리듬과 템포로 수업시간 1시간 동안 몇 배 더 움직이고 더 신나게 만들어 준 거예요. 또 그 시기 한국에서 인기 있던 댄스 음악을 테이프에 녹음해서 매번 새로운 음악을 틀어 줬죠. 당시 중국인 강사들은 매일 듣던 지겨운 중국 댄스곡을 틀었어요. 지금도 우리 한국 음악이 좋지만 당시 중국 대중음악과 비교하면 우리 댄스곡은 정말 최고였잖아요.”
―누구 음악을 가장 많이 틀었나요.
“신나는 건 다 틀었지만, 당시는 김건모?”
―인기가 높아지니까, 중국 방송국에서 연락이 오던가요.
“여기저기에서 강연 요청이 오니까 나중에는 몸이 정말 10개여도 모자랐어요. 1999년에 저와 친한 중국인 에어로빅 학원 원장이 방송국에 저를 소개해 줬습니다. TV에 나가면 몸이 하나면 되니까요. 하하하.”
조수진씨는 1999년부터 CCTV 채널 1과 베이징텔레비전(BTV) 에어로빅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점차 조씨의 에어로빅이 인기를 끌면서 CCTV 채널 3과 9에서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번 방송을 했다. BTV에서도 고정 출연 자리를 꿰찼다. 2002년에는 베이징에 조씨의 댄싱 에어로빅이 빅 히트를 하면서 베이징 여성들 사이에 에어로빅 열풍을 불러왔다. ‘이제 자리를 잡았구나’ 안심했는데, 다시 어려워졌다. 조수진씨의 얘기다.
“2002년 초에 제 에어로빅 인기가 정말 높았어요. 그랬더니 중국에어로빅협회에서 견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외국인이 자기 안방에서 최고가 되는 걸 못 보겠다는 거였죠.”
―협회는 왜 가입을 안 했습니까.
“가입을 안 시켜 주더군요. 친한 중국인 에어로빅 원장, 선배 동료들에게 부탁해도 방법이 없었어요. 도와주는 한국 사람도 한 명 없고….”
대답 없는 한국 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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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단원들과 함께한 조수진씨 (가운데줄 왼쪽에서 7번째). 하지만 올림픽 후 조수진씨는 중국인 단원들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
“2002년 한일 올림픽을 앞두고 중국 축구협회가 응원단을 뽑았어요 그때 제 에어로빅팀 다섯 명을 주축으로 응모를 해서 저희 팀이 응원단으로 뽑혔죠. 나머지 단원을 공모해서 20명을 만들어 월드컵 응원단을 만들었어요. 월드컵 이후에 치어리더 문화에 대해 중국 사회가 익숙해졌어요. 그때 중국 농구협회(CBT)에서 연락이 왔어요. 당시로서는 상당히 거금의 지원금을 주면서 치어리더단 구성을 도와주더군요.”
조수진씨가 만든 치어리더팀은 중국 프로농구협회와 계약을 하고 2003년부터 중국 프로농구팀 경기에서 관중의 흥을 돋우는 역할을 했다. 2000년 초반만 해도 중국 지방도시에서는 관중 대부분이 치어리더들을 처음 볼 정도로 치어리더가 대중화되지 않았다. 조씨가 지도하는 치어리더단은 중국 스포츠 관중들에게 신선한 볼거리였다. 조씨는 2005년 4월 자신의 치어리더 댄스 그룹인 현재의 ‘수진지무’를 결성하고 제2의 댄스 인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베이징 올림픽 응원단장이 된 계기가 있었습니까.
“처음에는 응원단장으로 뽑힌 게 아니었어요.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에서 종목별로 응원단을 구성한다기에 뒤늦게 응모했어요. 이미 5개의 응원단이 있었는데, 나중에 저희가 마지막 6번째로 응원단이 됐죠. 제 치어리더팀은 처음에는 비치 발리볼과 농구쪽 치어리딩만을 담당했어요. 그런데 올림픽을 앞두고 같이 연습을 하는데, 다른 팀들이 너무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 올림픽 조직위가 제게 현장공연감독이라는 호칭을 주면서 다른 팀들의 안무지도를 도와 달라고 한 겁니다.”
―인터뷰 초반에 올림픽 때는 생각하기도 싫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힘들었나요.
“정말 좋은 기억은 하나도 없어요. 섭섭하고 힘든 일들이 참 많았죠. 그때 가장 안타깝고 힘들게 했던 게 우리 문화원이에요. 올림픽은 전(全)세계 축제고 중국 문화부가 응원단을 적극 지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팀을 응원하지만 한국 문화를 접목해서 안무를 만들고 싶었어요. 당시 인기가 높았던 영화 <왕의 남자>나 <난타> <부채춤> 등을 중국식 안무에 넣으려고 했어요. 한국 문화도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한국문화원에 수차례 연락하고 접촉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어요. 어떻게 그렇게 아무런 대답이 없을 수 있을까요? 전 지금도 이해가 안돼요. 제가 한국 문화를 알리자고 그렇게 혼자 뛰는데요.”
올림픽 기간 동안 무료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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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연습을 하는 응원단원들. |
―올림픽 기간 동안 보수는 어느 정도 받았습니까.
“다들 제가 엄청난 보수를 받았다고 생각해서 깜짝 놀랐어요. 올림픽은 전부 자원봉사예요. 전부 자비로 했어요. 단원들 응원복도 식사비, 간식도 제 돈으로 썼습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돈은 못 버는데 나가는 데가 많아서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도 참 고마운 게 한국 기업인 EXR에서 단원들 응원복 지원해 주고, 파리바게트에서 아침과 간식을 무료로 제공했어요. 당시 응원단 사이에서 파리바게트 인기는 최고였죠.”
―그럼 ‘수진지무’ 단원들도 자원봉사로 응원단에 참여한 겁니까.
“처음에는 자원봉사로 시작을 했는데 올림픽이 거의 다가오자 몇몇 단원들이 돈을 달라고 했어요. 다른 응원단에 비해서 우리팀 단원들의 실력이 높았기 때문에 스카우트 제의가 많았거든요. 올림픽을 앞두고, 힘들게 연습을 시킨 단원들을 포기할 수 없어서 단원들에게 제가 일당을 줬습니다.
―외국인들도 자원봉사를 하는데 중국인이 돈을 달라는 건 모순 아닙니까.
“제가 몇 번이나 ‘니네들 부끄럽지 않아?’라고 얘기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중국 사람들 돈에는 정말 인정이 안 통하거든요.”
애제자에게 배신당해
―올림픽 이후에는 엄청난 부(富)와 명예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전혀 아닌 것 같네요.
“참, 그때 일들은 다시 말하기도 싫어요. 결론적으로 배신, 소송, 실패의 연속이었어요. 올림픽 이후에 ‘애제자(愛弟子)’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맡겼던 중국인 단원이 단원 10명 정도를 데리고 회사를 떠났어요. 하루아침에 그냥 배신을 한 거죠.
그렇게 회사를 나가서는 ‘올림픽 치어리더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어요. 평소에 그 아이가 회사 주요 업무를 담당했기 때문에, 많은 고객과 업체가 저희와 계약을 끊고 이 아이와 계약을 하더군요. 나중에 들은 얘긴데 몇몇 단체는 응원단의 이름이 바뀐 줄 알고 계약했다고 했어요. 하지만 정말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당시 저희 회사 마크가 찍힌 응원복을 들고 나가서는 그 응원복을 그대로 입고 다른 무대에 섰습니다. 그러니까 대다수 사람들이 ‘저쪽도 조수진 무용단이구나’라고 생각하더군요.”
―그래서 이름을 도용한 단원을 고소한 겁니까.
“네. ‘뭔가 내 손해를 만회하자가 아니라, 외국인이라고 나를 깔보지 마라, 조수진도 만만치 않은 한국 여자다’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재판을 한다고 하니 주위에서 모두 뜯어말렸어요. 중국에서 외국인이 중국인을 상대로 재판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거죠. 게다가 당시 회사 재정상태도 어려웠기 때문에 제일 싼 변호사를 1000위안(약20만원)의 수임료를 주고 고용했습니다. 변호사에게만 일을 맡기지 않고 제가 직접 뛰어다니며 저쪽의 문제점을 일일이 조사하고 찾아냈어요.”
―손해배상 소송이었나요.
“네. 하지만 손해배상 금액은 운동복 한 벌당 한국돈 10만원으로 계산해서 3000위안(약 60만원)이었어요. ‘정말 저들이 잘못했다는 것’을 중국 사회에 알려주고 싶었어요.”
―법정에서 힘들지 않았나요.
“상대 측의 아버지가 참고인으로 나와서는 되레 제게 큰소리를 치는 겁니다. ‘니가 제대로 응원복을 관리하지 못한 거지. 우리 딸이 무슨 잘못이냐’는 거죠. 그래서 제가 중국인 판사에게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사람을 믿고 사업을 하고 싶다. 운동복 못 가져가게 막고 돌려달라는 식의 치졸한 짓을 하지 않은 내가 잘못이냐, 아니면 남의 회사 이름이 적힌 운동복을 입고 남의 회사 이름을 도용한 게 잘못이냐?’고 따졌어요.”
당초 주위의 우려와는 달리, 인민법원에서는 조씨의 손을 들어줬다. 배상금액도 조씨가 원한 것보다 많은 인민폐 1만위안(200만원)이 나왔다. 하지만 한 번 떠난 고객은 잘 돌아오지 않았다. 재판을 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중국 고객들이 조씨의 응원단과 계약을 하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씨의 이름을 보고 투자하겠다던 한국 회사 몇몇이 투자를 번복하거나 그녀를 이용하려 들었다. 결국 합작한 사업 몇 개가 실패로 끝나면서 조씨의 치어리더단도 어려워졌다.
중국 언론의 격려
다시 조씨와 나눈 얘기다.
“재판에서 이겼지만 사업은 어려워졌어요. ‘정말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러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때쯤 중국 《법제만보(法制晩報)》에서 애제자의 배신, 사업실패에 관한 기사를 실어 줬습니다. 당시 제목이 <서우전 자유>(守鎭加油·수진씨 힘내요)였어요. 이 기사가 실리고 나서 정말 많은 중국분이 제게 위로와 격려를 해 줬습니다. 다른 신문사와 방송국에서도 저에 대한 기사를 싣고 제 다큐멘터리를 찍어 갔어요. 회사 사정은 크게 안 나아졌지만, 이 덕분에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중국 후난성에서 운영하는 후난TV에서 연락이 왔죠. 이 방송국의 인기 프로그램인 <천하여인>의 공동사회자를 맡아 달라는 거예요. 조금 생각해 보다가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해서 승낙했어요.
조수진씨가 지난 2010년 5월부터 공동진행자로 출연하고 있는 <천하여인(天下女人)>은 중국 후난(湖南) 위성 TV의 인기 프로그램이다. <천하여인>은 중국 대표 아나운서 양란(楊瀾), 모델 출신 리아이(李艾)가 조씨와 함께 진행을 맡고 있고, 매주 토요일 오후 11시40분부터 1시간씩 중국 전역에서 방송된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Baidu)에 따르면, <천하여인>은 중국 중앙방송국 시청률조사 연구소의 시청률 집계에서 시청률 순위 5위권에 자주 오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연구소 계산에 의하면, 평균 시청자 수가 800만명에서 1300만명에 이른다. 조수진씨의 얘기다.
중국에서 처음 하는 일이 벌써 세 번째
“<천하여인>을 함께 진행하는 양란은 중국의 대표 아나운서예요. 찰스 왕세자, 미국 힐러리 국무장관 등 유명인들만 인터뷰했던 사람이에요. 중국판 ‘오프라 윈프리’라고 생각하면 쉽죠. 제목 그대로 ‘천하의 여인’이라는 주제로 중국 최고 인기 연예인인 장쯔이, 양자경 등의 천하 여인을 초청하여 진행하는 토크쇼예요.”
―그런 프로그램에 어떻게 발탁됐을까요.
“저의 직설적이고 외향적인 성격이 프로그램 콘셉트에 맞은 거죠. 유명 연예인들에게 중국 진행자들은 직설적으로 질문을 못하지만 외국인은 좀 센 질문을 할 수 있죠. 우리 연예 관련 뉴스에도 나왔지만 장쯔이가 출연했을 때, ‘너 내숭 좀 그만 떨어. 재수 없어’라고 이야기하고 ‘여자 애들이 너 싫어하지?’라고 유명 여배우를 당황하게 만드니까 시청자들이 좋아하죠.”
―장쯔이에게만 그렇게 말한 겁니까.
“아니에요. 좀 마음에 안 드는 연예인들에게는 더 세게도 말했어요. 요새 한창 뜨는 인기 여배우 중에 ‘유역비’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가 나와서 말을 하도 흐리고 성의가 없어서 ‘너 자꾸 그렇게 성의 없이 대답할래?’라고 소리쳤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나중에 갈 때는 제게 ‘너 참 대단하다’ 그러면서 손을 치켜세워요. 작년에 미국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천하여인>에 관해 다큐멘터리를 찍으러 왔어요. 그때 양란이 제 인기 비결을 ‘외국인이 내숭 없이 시원하게 얘기해서 인기 여배우들을 꼼짝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했어요.”
―어떻게 보면 밉상 이미지인데 싫지 않아요.
“할 말을 다 하는 이미지이지, 악역을 맡은 건 아니에요. 에어로빅이나 치어리더 할 때처럼 남 눈치 안 보고 내 할 일만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람 중에 중국 방송계에서 활동하는 게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영어로 진행되는 방송에 나오는 외국인들이 가끔 있지만 중국어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 것은 제가 처음이라고 해요. 중국에 와서 처음 하는 일 참 많아요. 이번이 세 번째네요. 댄싱 에어로빅, 치어리더, 토크쇼 진행자.”
“건방진 韓流 스타에게 반감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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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진씨는 현재 1000만명이 시청하는 TV프로그램 〈천하여인〉을 진행하고 있다. |
“이제 많이 시들해졌어요. 이전에 드라마를 통해서 간간이 지속되던 한류조차 시들해졌다고 보면 됩니다. 얼마 전에 <천하여인> 진행자 양란과 한류에 대해 이야기해 볼 기회가 있었는데 양란도 한류 문제점을 지적하더군요. 일부 여성그룹을 제외하고는 너무 아시아 일부만 바라보고 있다는 겁니다. 좀 더 큰 콘셉트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고 활동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아요. 게다가 일부 한류 스타들의 자질도 문제예요.”
―어떤 자질 말입니까.
“중국 팬과 대중을 대하는 태도요. 쓸데없이 콧대만 높아진 스타나 오만한 매니지먼트 회사에 대해서 중국 방송계가 아주 치를 떨더군요. 한류 스타들이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와서 가식을 떨거나 건방을 떤다고 반감이 커요. 중국 메이저 방송사에서 더 이상 한류 스타들을 부르지 않는 현실을 잘 봐야 합니다.”
조수진씨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다시 중국 《런민르바오(人民日報)》의 자매지인 《환치우스바오(環球時報)》 기자와 인터뷰를 하러 간다며 자리를 떴다. 그녀는 다음 인터뷰 이후, 광저우(廣州)로 이동한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광저우와 선전(深?)의 예술학교에서 주말마다 아이들에게 에어로빅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씨는 “버릇없는 중국 아이들 혼내니까 아이들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너무 좋아해요. 저는 천생 내 성격대로 살아야 성공하나 봐요”라며 또 ‘하하하’ 웃었다.⊙
〈취재지원 金勇桓 北京大 신문방송학과 3학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