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정부, 탕산대지진 다룬 영화 <얀마이>의 유통 막아
⊙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중국”
⊙ “탕산대지진은 人災”
⊙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며 관련 강의 하는 등 투쟁하는 예술가들 있지만, 예술가들의 시위는
상상 못해”
⊙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중국”
⊙ “탕산대지진은 人災”
⊙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며 관련 강의 하는 등 투쟁하는 예술가들 있지만, 예술가들의 시위는
상상 못해”
저 하늘의 별처럼 사람이 많다고 해도, 24초 만에 24만명이 죽었다. 1초에 만 명이, 귀천(歸天)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생매장(生埋葬)을 당했다. 10만명이 다쳤다. 1976년 7월 28일의 일이다. 탕산(唐山)대지진. 사람 귀한 줄 모른다는 중국. 하지만 중국 대륙은 지난 34년 동안 이 사건을 가슴속 깊이 담아 두고 있었다. 그만큼 아프고 그만큼 생생해서다.
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28분. 쓰촨(四川)에서 9만명이 죽었다. 다시 생매장이었다. 몇 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32년 동안 가슴에만 묻어 둔 악몽(惡夢)이 중국 대륙에 재래(再來)했다. 쓰촨대지진이다. 32년 전 탕산대지진 때 화궈펑(華國鋒)처럼, 총리인 원자바오(溫家寶)는 악몽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악몽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때 인간은 얼마나 무력(無力)한 존재일지. 하지만 시간은 무력한 인간들마저 변하게 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자존심을 버리고 전(全)세계의 지원을 받았다. 1976년에는 어떤 지원도 받지 않았던 그들이다. 달라진 건 정부뿐만이 아니다. 중국 인민들도 더 이상 슬픔을, 분노를 가슴에만 담아 두지 않았다. 다시 무력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들은 탕산대지진의 악몽을 영화로, 문학으로 되살려냈다.
그렇게 나온 영화가 2010년 7월 22일 개봉돼 중국 대륙을 눈물로 적신 <탕산대지진>이다. 중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펑샤오강(馮小剛)이 작정을 하고 만든 영화다. 슬픔을 이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한바탕 눈물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왕리보 감독의 <얀마이>
<탕산대지진>이 눈물로 슬픔을 이기는 영화라면, 여기 ‘분노’로 슬픔과 싸우는 영화가 하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왕리보(王利波)의 <얀마이>(掩埋). 영어 제목은 ‘Buried’, 우리 말로 ‘매장(埋葬)’이다.
왕리보 감독은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수십만 명의 운명이 매장됐고, 진실이 매장됐다”는 의미라고 했다. 왕 감독이 말하는 누군가는 34년 전 중국 지진국(地震局) 관리들과 그 ‘윗선’의 누군가들이다. 왕리보 감독은 당시 탕산지진국의 직원들과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탕산대지진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9년 완성돼 홍콩 독립영화제에 출품됐고, 2010년 서울 인디(indie)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얼마 전에는 홍콩 중국어 다큐멘터리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드물다. 이 영화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중국 정부가 이 영화의 상영과 유통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영화를 보는 건 물론, 이 영화의 제목을 입력해도 관련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왕리보 감독은 “‘탕산대지진’이라고 입력해야 내 영화의 내용을 글로라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중국 지식인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한국의 상영금지 영화처럼 복제 DVD가 중국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입소문을 타고 있는 중이다.
2010년 10월에는 베이징대(北京大)에서 왕리보 감독 특별 강연이 열리기도 했다. 왕리보 감독을 초청한 베이징대 신문방송학과 후영(湖泳) 교수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진실을 파헤치고 규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왕리보 감독과 그의 작품 <얀마이>는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인 상황”
필자는 지인(知人)을 통해 왕리보 감독에게 인터뷰를 신청했다. 중국 정부가 신경을 쓰는 주제를 다룬 영화인 탓에, 다리를 놔 준 지인도, 왕 감독도 외국 언론과 인터뷰를 조심스러워했다. 이들과 여러 차례 전화와 이메일이 오간 끝에, 11월 10일 왕리보 감독을 베이징 차오양취(朝陽區) 왕징(望京)에서 만났다. 왕리보 감독은 ‘베이징의 코리아 타운’으로 알려진 왕징에 살고 있었다. 그는 필자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다큐멘터리 영화 <얀마이> DVD를 건넸다. 내가 당연히 자신의 영화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 듯했다.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왕 감독 영화를 못 찾겠더군요. 영화도 못 보고 영화에 대해 인터뷰를 하게 돼서 유감입니다.
“(웃음) 정부가 명확히 금지를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인터넷에 업로드될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거나 검색이 금지될 뿐이죠(웃음). 비록 이러한 상황이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중국의 환경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중국입니다.”
―한국에서 2010년 11월 초에 펑샤오강 감독의 <탕산대지진>이 개봉됐습니다. 이 영화를 봤습니까.
“안 봤습니다.”
―안 본 이유가 있나요.
“원래 중국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외국 영화를 즐겨 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주변에서 왕 감독 영화와 <탕산대지진>을 비교하지는 않나요.
“주변 사람들과 두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얀마이>와 <탕산대지진>은 소재는 같지만 관점과 방식이 전혀 달라요. 비교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탕산대지진>이 연일 중국의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많은 중국 사람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상처의 치유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상업적으로 보았을 때 중국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영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치유의 감정을 느꼈다고요? 글쎄요. 그건 의문입니다. 내가 탕산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탕산경세록>(唐山警世錄)
―영화를 만든 계기가 있습니까.
“탕산의 작가 장칭저우(張慶洲)가 2005년 펴낸 <탕산경세록>(唐山警世錄)이 이 영화의 모티브죠. 책을 읽고 나서 쓰촨대지진과 같이 탕산대지진 때도 정부가 지진예측을 무시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 후에 장칭저우와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당시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했죠.”
다큐멘터리 영화 <얀마이>는 탕산대지진 희생자들의 위령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위령탑에 적힌 희생자의 이름이 클로즈업(close-up)되다가 장면이 전환되면서 중년 남성과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이 사람이 작가 장칭저우다. 장칭저우는 지난 1996년 <지진도시>(震城)라는 소설 한 권을 썼다. 그는 책이 발간된 지 얼마 후 한 명의 독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익명의 독자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책 표지에 10만명의 원혼(寃魂)이라고 쓴 걸 보고 전화를 했소. 탕산대지진이 일어날 때, 나는 탕산 지진국에 있었는데, 지진 직전에 지진국 내에서는 지진예측 보고가 있었어요. 당시 지진국에 있던 양유천(楊友宸)을 찾아가면 모든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거요.”
장칭저우는 이 남자의 말대로, 양유천을 찾아가 탕산 대지진의 숨겨졌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를 토대로 <탕산경세록>을 썼고 왕리보 감독은 이를 1차 텍스트로 해서 재(再)취재에 들어갔다. 다시 왕리보와 나눈 얘기다.
“양유천에 따르면, 탕산대지진에 대한 예측은 1970년부터 있었다고 했습니다. 1970년 중국 지진학 저널에 지진학자 메이스룽(梅世榮)은 ‘10년 내에 톈진(天津), 탕산(唐山), 보하이만(渤海灣) 일대를 정밀 감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임 베이징 지진국 직원이었던 지진학자 겅칭궈(耿慶國)도 1972년 보하이만 일대에서 향후 1~2년 내에 진도 7~8의 강진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는 게 근거였어요. 중국 동북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오면 몇 년 내에 큰 지진이 온다는 게 정설(定說)이었다고 해요.”
‘지진-가뭄’설과 3000년 역사설
1974년 1월 12일 베이징에서 전(全) 중국 지진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왕청민(汪成民) 국가지진국 동북지방 분석 예측조 조장은 “1975~1976년 화베이(華北) 지방에 진도 6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것이다”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한달 후, 랴오닝성(遼寧省), 하이청(海城)에서 진도 7.4의 강진이 발생했다. 1970년 이후 중국 지진학자들의 예측이 그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왕리보의 얘기다.
“왕청민에 따르면, 하이청 대지진이 발생한 후 지진국 학자들과 직원들은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예측했던 것이 맞았고 피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죠. 더구나 지난 3000년간 둥베이(東北) 지방 지진 역사를 봤을 때, 짧은 기간 내에 가까운 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해요. 이를 근거로 수도 베이징 인근에서 10년 간 대지진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衆論)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청민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이 여기에 의문을 제기했어요.”
―왜 의문을 제기했죠. 역사적으로 연달아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잖습니까.
“왕청민은 ‘지진-가뭄 관련설’을 근거로 지진발생 위험을 예측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보하이만 가뭄대(帶) 같은 또 다른 가뭄대가 탕산 등 두 곳에 걸쳐 있었다고 해요. 하이청 대지진도 보하이만 가뭄대에 걸쳐 있었고, 지난 1966년 싱타이(邢台) 대지진도 전해의 극심한 가뭄 뒤에 발생했다는 거죠. 왕청민은 다시 보고서를 작성해 베이징 과학기술국에 제출했고, 이 보고서는 당시 국무원 총비서에게 전해졌지만 베이징 지진국의 반대의견이 반영돼 결국 묵살됐다고 합니다.”
―왕청민의 보고서가 묵살된 이후에는 탕산대지진을 예측하는 보고서가 없었나요.
“왕청민은 끝까지 지진을 예상했고, 다른 학자들과 탕산 지역 지진국 직원들도 대지진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계속 만들어서 제출했습니다.”
“1976년에 지진 일어난다”
당시 산하이관(山海關) 지진 조사팀의 루씽야는 1975년 9월부터 탕산 일대의 지자기(地磁氣), 라돈(Radon), 토양 스트레스 지수 등이 이상(異常)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지표들은 지진 예측에 결정적인 지표라고 한다. 탕산 인근 카이류안 광산 지진 사무소에서 일했던 장이창도 1975년 7월부터 지진 예측 지표 네 가지가 모두 뚜렷한 이상 징후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7월부터 시작된 이상 징후는 탕산대지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지속됐다. 다시 왕리보의 설명.
“지진학자인 황샹닝(黃相?)은 1975년 국가지진국에 지진예측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러팅-진조우-아오한치 지역에 진도 6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예상 시기는 1976년. 그가 예상한 진앙은 이 세 개 지역의 중심이고, 이곳은 탕산에서 약 2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국가 지진국에서는 여전히 ‘둥베이 지역 지진 일반론’과 ‘가뭄-지진론’ 논쟁이 한창이었다고 합니다. 황샹닝 등 일부 학자들은 1972년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河北省·탕산이 속한 성)에서 발생한 대가뭄이 1974년, 1975년에 잇달아 발생한 것을 대지진의 확실한 ‘전조(前兆)’라고 봤습니다.”
1976년 초, 중국공산당 탕산시 위원회는 ‘탕산 지진 예측’ 회의를 열었다. 양요천 탕산 지진국장은 이렇게 예측한 보고서를 올렸다.
<1976년 7월, 8월 혹은 하반기 내 진도 5~7의 강진이 탕산시 반경 50㎞ 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국가지진국은 국무원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1~2년 내에 탕산과 랴오닝성 지역, 베이징과 톈진 지역에 진도 5~6급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
국가지진국의 지진 예상 의견 묵살
왕리보 감독은 “모든 지진 예측 보고서는 묵살됐으며, 국가지진국 분석예보실 부주임 메이스룽(梅世蓉)은 ‘둥베이 지방에 더 이상 지진은 없다’고 선언한뒤 중국 서부로 가버렸다”며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황샹닝, 왕청민, 양유후안 등 지질학자들과 지역 지진국 사무소, 탄광 지진 관측소 직원들은 한결같이 7월 이후 지진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심지어는 베이징 지진국 직원 겅칭궈까지 지진이 임박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겅칭궈는 7월 14일 국가지진국에 지진발생이 임박했다는 걸 알렸습니다. 국가지진국은 톈진, 탕산 등의 정황을 살핀 후 21일 다시 종합보고를 듣기로 했다고 해요. 하지만 지진국에서는 사람이 오지 않았습니다.
겅칭궈의 보고를 듣고 베이징지진대 업무조 부(副)조장인 장궈민(張國民)이 직접 화베이(華北)지역 지진상황을 주관하는 국가지진국 분석예보실 부주임 메이스룽에게 전화를 걸어 즉각 종합보고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메이는 그 시간을 26일로 연기했다고 합니다.”
7월 26일. 국가지진국에서 베이징 지진국으로 15명의 직원이 왔지만 메이스룽은 오지 않았다. 국가지진국 사람들은 하루 종일 보고를 들은 후 메이에게 의견을 말했지만 돌아온 답은 이랬다고 한다.
“쓰촨(四川) 북부에서 지진을 방비하느라 혼란을 수습할 길이 없었는데 만약 또 수도인 베이징-톈진-탕산 지역에서 혼란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보는 신중히 해야 합니다.”
7월 27일. 대지진 하루 전. 베이징 지진국 직원이자 지진학자인 겅칭궈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날 탕산 인근에 있는 장모집에 아들을 보기 위해 갔습니다. 그런데 처남이 제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매형, 마당에 매어 놓은 빨랫줄에 개미들이 새까맣게 붙어서 나무 위로 이동하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개미는 처음 봐요.’ 제가 깜짝 놀라서 마당에 가 봤어요. (웃음) 나무 사이에 매어 둔 빨랫줄과 옷에 엄청난 수의 개미가 붙어 있더군요. 개미들은 줄을 통해서 나무 위로 위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만리장정(萬里長征)이더군요. 그때 지진이 임박한 줄 알았습니다.
인근 파출소로 뛰어가 전화로 베이징 지진국의 동료에게 ‘지진이 임박했다’고 알리자, 동료는 ‘너 어디야? 혼란이 일어나니까 조용히 해’라고 하더군요. 나는 너무 걱정이 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시 왕리보 감독의 얘기다.
“결국 7월 28일 새벽 3시42분. 24초간 탕산의 지축이 흔들렸습니다. 모두 24만명이 매장됐어요. 인근 카이류안 광산에서는 인부 1만명 중 7명만 살아 남았죠. 탕산 인근 칭룽현(靑龍縣)에서는 18만여 채의 집이 파괴되고, 7300여 채가 붕괴됐습니다. 그런데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어요. 칭룽현 과학위원회 지진 담당 왕춘칭(王春靑)은 베이징 지진국 왕청민의 보고를 들은 후에 신속하게 현으로 돌아갔죠. 현장인 란광치(?廣岐)와 협의하에 7월 25일 칭룽현에서는 현의 3급 간부 800명에게 지진정황을 알리고 반드시 26일 전에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라고 했습니다. 칭룽현은 미리 대비를 한 겁니다.”
―지진 후, 칭룽현 현장은 영웅이 됐겠군요.
“아닙니다. 오히려 중국 정부는 지난 30여 년간 칭룽현에서 한 명도 지진 피해자가 나오지 않은 것을 쉬쉬했습니다. 칭룽현이 지진을 대비한 게 밝혀지면, 책임이 정부에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文革 때 사인방(四人幇)의 농간 때문일 것”
―탕산대지진 이후에, 과학자들의 보고서를 묵살한 지진국 책임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습니까.
“지진국장이 다른 곳으로 좌천되는 선에서 처벌이 마무리됐습니다. 그 밖에 다른 관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당시 지진을 예측했던 과학자들과 지진국 직원들은 탕산대지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과학자들은 1차적으로 지진국 고위관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진 발생 예측이 있었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국무원 등 상위기관에 제대로 보고를 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고가 어느 선까지 됐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 왕 감독은 지진국이 정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정부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지진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시 자료에 따르면 지진국이 정부에 보고했다는 증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 (잠시 망설이다) 보고가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 지진국 뒤에는 정부가 있다는 (그게 어떠한 세력인지는 모르지만)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왕 감독의 조심스러운 반응과 달리, 당시 지진을 예측했던 과학자 중 일부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있다. 영화에 따르면 이들은 “당시는 문화대혁명 때라서 사인방(四人幇)의 농간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대약진 운동으로 생산성 향상에 열을 올렸기 때문에, 탕산과 랴오닝 인근 광산의 문을 닫기가 어려워 지진 예측을 의도적으로 무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직 팩트만이 진리를 존중케 한다”
―탕산대지진이 발생한 지 약 40년이 돼 갑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왕 감독의 다큐멘터리조차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 예술가들이나 언론인들은 정부의 통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정부의 부패나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며 학교에서 표현과 관련된 강의를 하는 등 투쟁하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다른 나라처럼 예술가들이 같이 모여서 시위를 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어요.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중국의 예술가를 소극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중국정부가 모든 사람의 관심을 경제 쪽으로 돌리면서 정치나 인권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식인, 예술가들, 일반 시민들이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적극적인 활동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국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요.
“중국 정부가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라 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중국의 환경에서 자라 온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표현 범위가 생겨납니다. 중국 예술가들도 비슷합니다. 다만 저 같은 경우, 그들이 내가 한 말을 자르고 없앨지라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한다는 주의입니다.”
―말하지 못할 게 없다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민족 문제나 통합을 해치는 문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왕리보 감독은 최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어떤 문제(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문제 등―편집자 주)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렸다. 자신의 입장을 잠깐 설명했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질 때 그 문제는 절대로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는 “그 문제를 다루는 순간 앞으로 어떤 다큐멘터리도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몇 번을 당부했다.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탕산대지진을 예측했던 겅칭궈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대중의 의견을 조작하고 미디어를 통제하고 선전행위를 통해 거짓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실을 훼손하면 대중을 오도하게 됩니다. 오직 팩트(사실)만을 중시해야, 진리가 존중될 수 있습니다(只有尊重事實才能尊重眞理).”⊙
2008년 5월 12일 오후 2시28분. 쓰촨(四川)에서 9만명이 죽었다. 다시 생매장이었다. 몇 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32년 동안 가슴에만 묻어 둔 악몽(惡夢)이 중국 대륙에 재래(再來)했다. 쓰촨대지진이다. 32년 전 탕산대지진 때 화궈펑(華國鋒)처럼, 총리인 원자바오(溫家寶)는 악몽 앞에서 서럽게 울었다.
악몽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 될 때 인간은 얼마나 무력(無力)한 존재일지. 하지만 시간은 무력한 인간들마저 변하게 했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자존심을 버리고 전(全)세계의 지원을 받았다. 1976년에는 어떤 지원도 받지 않았던 그들이다. 달라진 건 정부뿐만이 아니다. 중국 인민들도 더 이상 슬픔을, 분노를 가슴에만 담아 두지 않았다. 다시 무력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들은 탕산대지진의 악몽을 영화로, 문학으로 되살려냈다.
그렇게 나온 영화가 2010년 7월 22일 개봉돼 중국 대륙을 눈물로 적신 <탕산대지진>이다. 중국의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펑샤오강(馮小剛)이 작정을 하고 만든 영화다. 슬픔을 이기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한바탕 눈물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다.
왕리보 감독의 <얀마이>
<탕산대지진>이 눈물로 슬픔을 이기는 영화라면, 여기 ‘분노’로 슬픔과 싸우는 영화가 하나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 왕리보(王利波)의 <얀마이>(掩埋). 영어 제목은 ‘Buried’, 우리 말로 ‘매장(埋葬)’이다.왕리보 감독은 “누군가의 잘못 때문에 수십만 명의 운명이 매장됐고, 진실이 매장됐다”는 의미라고 했다. 왕 감독이 말하는 누군가는 34년 전 중국 지진국(地震局) 관리들과 그 ‘윗선’의 누군가들이다. 왕리보 감독은 당시 탕산지진국의 직원들과 과학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탕산대지진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2009년 완성돼 홍콩 독립영화제에 출품됐고, 2010년 서울 인디(indie)영화제에도 초청됐다. 얼마 전에는 홍콩 중국어 다큐멘터리 대회에서 상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드물다. 이 영화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도 드물다. 중국 정부가 이 영화의 상영과 유통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영화를 보는 건 물론, 이 영화의 제목을 입력해도 관련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 왕리보 감독은 “‘탕산대지진’이라고 입력해야 내 영화의 내용을 글로라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중국 지식인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 다큐멘터리가 화제가 되고 있다. 과거 한국의 상영금지 영화처럼 복제 DVD가 중국 대학가를 돌아다니며 입소문을 타고 있는 중이다.
2010년 10월에는 베이징대(北京大)에서 왕리보 감독 특별 강연이 열리기도 했다. 왕리보 감독을 초청한 베이징대 신문방송학과 후영(湖泳) 교수는 “다큐멘터리 감독은 진실을 파헤치고 규명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걸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며 “왕리보 감독과 그의 작품 <얀마이>는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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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샤오강 감독의 <탕산대지진>의 한 장면. |
―아무리 인터넷을 뒤져도 왕 감독 영화를 못 찾겠더군요. 영화도 못 보고 영화에 대해 인터뷰를 하게 돼서 유감입니다.
“(웃음) 정부가 명확히 금지를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인터넷에 업로드될 경우 얼마 지나지 않아 페이지를 표시할 수 없거나 검색이 금지될 뿐이죠(웃음). 비록 이러한 상황이 매우 비정상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지금 중국의 환경에서 생각해 본다면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습니다.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이 되고, 비정상적인 것이 정상이 될 수 있는 것이 지금의 중국입니다.”
―한국에서 2010년 11월 초에 펑샤오강 감독의 <탕산대지진>이 개봉됐습니다. 이 영화를 봤습니까.
“안 봤습니다.”
―안 본 이유가 있나요.
“원래 중국 영화를 별로 안 좋아합니다. 외국 영화를 즐겨 봅니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주변에서 왕 감독 영화와 <탕산대지진>을 비교하지는 않나요.
“주변 사람들과 두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왜냐하면 <얀마이>와 <탕산대지진>은 소재는 같지만 관점과 방식이 전혀 달라요. 비교한다는 게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탕산대지진>이 연일 중국의 흥행 기록을 경신하며 많은 중국 사람에게 감동을 줬습니다. 상처의 치유라는 측면에서 이 영화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상업적으로 보았을 때 중국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린 영화가 되었기 때문에 그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치유의 감정을 느꼈다고요? 글쎄요. 그건 의문입니다. 내가 탕산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탕산경세록>(唐山警世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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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얀마이>에서 <탕산경세록>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 장면. |
“탕산의 작가 장칭저우(張慶洲)가 2005년 펴낸 <탕산경세록>(唐山警世錄)이 이 영화의 모티브죠. 책을 읽고 나서 쓰촨대지진과 같이 탕산대지진 때도 정부가 지진예측을 무시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그 후에 장칭저우와 직접 만나서 인터뷰를 하고 당시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했죠.”
다큐멘터리 영화 <얀마이>는 탕산대지진 희생자들의 위령탑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위령탑에 적힌 희생자의 이름이 클로즈업(close-up)되다가 장면이 전환되면서 중년 남성과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이 사람이 작가 장칭저우다. 장칭저우는 지난 1996년 <지진도시>(震城)라는 소설 한 권을 썼다. 그는 책이 발간된 지 얼마 후 한 명의 독자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익명의 독자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책 표지에 10만명의 원혼(寃魂)이라고 쓴 걸 보고 전화를 했소. 탕산대지진이 일어날 때, 나는 탕산 지진국에 있었는데, 지진 직전에 지진국 내에서는 지진예측 보고가 있었어요. 당시 지진국에 있던 양유천(楊友宸)을 찾아가면 모든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거요.”
장칭저우는 이 남자의 말대로, 양유천을 찾아가 탕산 대지진의 숨겨졌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를 토대로 <탕산경세록>을 썼고 왕리보 감독은 이를 1차 텍스트로 해서 재(再)취재에 들어갔다. 다시 왕리보와 나눈 얘기다.
“양유천에 따르면, 탕산대지진에 대한 예측은 1970년부터 있었다고 했습니다. 1970년 중국 지진학 저널에 지진학자 메이스룽(梅世榮)은 ‘10년 내에 톈진(天津), 탕산(唐山), 보하이만(渤海灣) 일대를 정밀 감시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전임 베이징 지진국 직원이었던 지진학자 겅칭궈(耿慶國)도 1972년 보하이만 일대에서 향후 1~2년 내에 진도 7~8의 강진이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고 합니다. 이 지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는 게 근거였어요. 중국 동북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오면 몇 년 내에 큰 지진이 온다는 게 정설(定說)이었다고 해요.”
‘지진-가뭄’설과 3000년 역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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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탕산대지진을 예견했던 왕청민. |
“왕청민에 따르면, 하이청 대지진이 발생한 후 지진국 학자들과 직원들은 기뻐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예측했던 것이 맞았고 피해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죠. 더구나 지난 3000년간 둥베이(東北) 지방 지진 역사를 봤을 때, 짧은 기간 내에 가까운 지역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고 해요. 이를 근거로 수도 베이징 인근에서 10년 간 대지진은 없을 것이라는 게 중론(衆論)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청민을 비롯한 일부 학자들이 여기에 의문을 제기했어요.”
―왜 의문을 제기했죠. 역사적으로 연달아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잖습니까.
“왕청민은 ‘지진-가뭄 관련설’을 근거로 지진발생 위험을 예측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보하이만 가뭄대(帶) 같은 또 다른 가뭄대가 탕산 등 두 곳에 걸쳐 있었다고 해요. 하이청 대지진도 보하이만 가뭄대에 걸쳐 있었고, 지난 1966년 싱타이(邢台) 대지진도 전해의 극심한 가뭄 뒤에 발생했다는 거죠. 왕청민은 다시 보고서를 작성해 베이징 과학기술국에 제출했고, 이 보고서는 당시 국무원 총비서에게 전해졌지만 베이징 지진국의 반대의견이 반영돼 결국 묵살됐다고 합니다.”
―왕청민의 보고서가 묵살된 이후에는 탕산대지진을 예측하는 보고서가 없었나요.
“왕청민은 끝까지 지진을 예상했고, 다른 학자들과 탕산 지역 지진국 직원들도 대지진을 예측하는 보고서를 계속 만들어서 제출했습니다.”
“1976년에 지진 일어난다”
당시 산하이관(山海關) 지진 조사팀의 루씽야는 1975년 9월부터 탕산 일대의 지자기(地磁氣), 라돈(Radon), 토양 스트레스 지수 등이 이상(異常) 징후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런 지표들은 지진 예측에 결정적인 지표라고 한다. 탕산 인근 카이류안 광산 지진 사무소에서 일했던 장이창도 1975년 7월부터 지진 예측 지표 네 가지가 모두 뚜렷한 이상 징후를 보였다고 증언했다. 7월부터 시작된 이상 징후는 탕산대지진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지속됐다. 다시 왕리보의 설명.
“지진학자인 황샹닝(黃相?)은 1975년 국가지진국에 지진예측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는 러팅-진조우-아오한치 지역에 진도 6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예상 시기는 1976년. 그가 예상한 진앙은 이 세 개 지역의 중심이고, 이곳은 탕산에서 약 200㎞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국가 지진국에서는 여전히 ‘둥베이 지역 지진 일반론’과 ‘가뭄-지진론’ 논쟁이 한창이었다고 합니다. 황샹닝 등 일부 학자들은 1972년 베이징 인근 허베이성(河北省·탕산이 속한 성)에서 발생한 대가뭄이 1974년, 1975년에 잇달아 발생한 것을 대지진의 확실한 ‘전조(前兆)’라고 봤습니다.”
1976년 초, 중국공산당 탕산시 위원회는 ‘탕산 지진 예측’ 회의를 열었다. 양요천 탕산 지진국장은 이렇게 예측한 보고서를 올렸다.
<1976년 7월, 8월 혹은 하반기 내 진도 5~7의 강진이 탕산시 반경 50㎞ 내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보고서를 근거로 국가지진국은 국무원에 다음과 같은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1~2년 내에 탕산과 랴오닝성 지역, 베이징과 톈진 지역에 진도 5~6급의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
국가지진국의 지진 예상 의견 묵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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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탕산. |
“황샹닝, 왕청민, 양유후안 등 지질학자들과 지역 지진국 사무소, 탄광 지진 관측소 직원들은 한결같이 7월 이후 지진 위험성을 경고했습니다. 심지어는 베이징 지진국 직원 겅칭궈까지 지진이 임박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겅칭궈는 7월 14일 국가지진국에 지진발생이 임박했다는 걸 알렸습니다. 국가지진국은 톈진, 탕산 등의 정황을 살핀 후 21일 다시 종합보고를 듣기로 했다고 해요. 하지만 지진국에서는 사람이 오지 않았습니다.
겅칭궈의 보고를 듣고 베이징지진대 업무조 부(副)조장인 장궈민(張國民)이 직접 화베이(華北)지역 지진상황을 주관하는 국가지진국 분석예보실 부주임 메이스룽에게 전화를 걸어 즉각 종합보고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메이는 그 시간을 26일로 연기했다고 합니다.”
7월 26일. 국가지진국에서 베이징 지진국으로 15명의 직원이 왔지만 메이스룽은 오지 않았다. 국가지진국 사람들은 하루 종일 보고를 들은 후 메이에게 의견을 말했지만 돌아온 답은 이랬다고 한다.
“쓰촨(四川) 북부에서 지진을 방비하느라 혼란을 수습할 길이 없었는데 만약 또 수도인 베이징-톈진-탕산 지역에서 혼란이 생긴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예보는 신중히 해야 합니다.”
7월 27일. 대지진 하루 전. 베이징 지진국 직원이자 지진학자인 겅칭궈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이날 탕산 인근에 있는 장모집에 아들을 보기 위해 갔습니다. 그런데 처남이 제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매형, 마당에 매어 놓은 빨랫줄에 개미들이 새까맣게 붙어서 나무 위로 이동하고 있어요. 이렇게 많은 개미는 처음 봐요.’ 제가 깜짝 놀라서 마당에 가 봤어요. (웃음) 나무 사이에 매어 둔 빨랫줄과 옷에 엄청난 수의 개미가 붙어 있더군요. 개미들은 줄을 통해서 나무 위로 위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만리장정(萬里長征)이더군요. 그때 지진이 임박한 줄 알았습니다.
인근 파출소로 뛰어가 전화로 베이징 지진국의 동료에게 ‘지진이 임박했다’고 알리자, 동료는 ‘너 어디야? 혼란이 일어나니까 조용히 해’라고 하더군요. 나는 너무 걱정이 됐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어요.”
다시 왕리보 감독의 얘기다.
“결국 7월 28일 새벽 3시42분. 24초간 탕산의 지축이 흔들렸습니다. 모두 24만명이 매장됐어요. 인근 카이류안 광산에서는 인부 1만명 중 7명만 살아 남았죠. 탕산 인근 칭룽현(靑龍縣)에서는 18만여 채의 집이 파괴되고, 7300여 채가 붕괴됐습니다. 그런데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어요. 칭룽현 과학위원회 지진 담당 왕춘칭(王春靑)은 베이징 지진국 왕청민의 보고를 들은 후에 신속하게 현으로 돌아갔죠. 현장인 란광치(?廣岐)와 협의하에 7월 25일 칭룽현에서는 현의 3급 간부 800명에게 지진정황을 알리고 반드시 26일 전에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라고 했습니다. 칭룽현은 미리 대비를 한 겁니다.”
―지진 후, 칭룽현 현장은 영웅이 됐겠군요.
“아닙니다. 오히려 중국 정부는 지난 30여 년간 칭룽현에서 한 명도 지진 피해자가 나오지 않은 것을 쉬쉬했습니다. 칭룽현이 지진을 대비한 게 밝혀지면, 책임이 정부에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文革 때 사인방(四人幇)의 농간 때문일 것”
―탕산대지진 이후에, 과학자들의 보고서를 묵살한 지진국 책임자들은 어떤 처벌을 받았습니까.
“지진국장이 다른 곳으로 좌천되는 선에서 처벌이 마무리됐습니다. 그 밖에 다른 관리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네요.”
―당시 지진을 예측했던 과학자들과 지진국 직원들은 탕산대지진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합니까.
“과학자들은 1차적으로 지진국 고위관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진 발생 예측이 있었는데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국무원 등 상위기관에 제대로 보고를 했는지조차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보고가 어느 선까지 됐는지 모르기 때문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도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그럼 왕 감독은 지진국이 정부에 보고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정부가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지진국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당시 자료에 따르면 지진국이 정부에 보고했다는 증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부를 직접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래도 내 생각에 (잠시 망설이다) 보고가 있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시 중국 지진국 뒤에는 정부가 있다는 (그게 어떠한 세력인지는 모르지만) 건 의심할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왕 감독의 조심스러운 반응과 달리, 당시 지진을 예측했던 과학자 중 일부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있다. 영화에 따르면 이들은 “당시는 문화대혁명 때라서 사인방(四人幇)의 농간이 있었던 게 분명하다” “대약진 운동으로 생산성 향상에 열을 올렸기 때문에, 탕산과 랴오닝 인근 광산의 문을 닫기가 어려워 지진 예측을 의도적으로 무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직 팩트만이 진리를 존중케 한다”
―탕산대지진이 발생한 지 약 40년이 돼 갑니다. 하지만 중국정부는 왕 감독의 다큐멘터리조차 통제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 예술가들이나 언론인들은 정부의 통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정부의 부패나 ‘표현의 자유’를 갈망하며 학교에서 표현과 관련된 강의를 하는 등 투쟁하는 예술가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이나 다른 나라처럼 예술가들이 같이 모여서 시위를 하는 것은 중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어요.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중국의 예술가를 소극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중국정부가 모든 사람의 관심을 경제 쪽으로 돌리면서 정치나 인권 같은 민감한 문제에 대해 고민할 기회를 빼앗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식인, 예술가들, 일반 시민들이 경제뿐만 아니라 다른 방면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점차 적극적인 활동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중국 예술가들이 생각하는 표현의 자유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요.
“중국 정부가 명확히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말라 정하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중국의 환경에서 자라 온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표현 범위가 생겨납니다. 중국 예술가들도 비슷합니다. 다만 저 같은 경우, 그들이 내가 한 말을 자르고 없앨지라도, 내가 말하고 싶은 건 한다는 주의입니다.”
―말하지 못할 게 없다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중국의 민족 문제나 통합을 해치는 문제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왕리보 감독은 최근 세계적으로 이슈가 된 어떤 문제(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문제 등―편집자 주)에 대해서는 말하기를 꺼렸다. 자신의 입장을 잠깐 설명했지만, 인터뷰가 끝나고 헤어질 때 그 문제는 절대로 얘기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는 “그 문제를 다루는 순간 앞으로 어떤 다큐멘터리도 만들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몇 번을 당부했다.
그의 다큐멘터리에서 탕산대지진을 예측했던 겅칭궈의 말이 떠올랐다.
“그들은 대중의 의견을 조작하고 미디어를 통제하고 선전행위를 통해 거짓말을 만들어 냈습니다. 사실을 훼손하면 대중을 오도하게 됩니다. 오직 팩트(사실)만을 중시해야, 진리가 존중될 수 있습니다(只有尊重事實才能尊重眞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