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 1주일에서 2주일로 늘리면 일자리 34만5000여개 창출 가능
⊙ 공사 사장 취임 1년… 무임승차 직원 없앤다
⊙ 올해 해외관광객 850만명 유치에 사활 걸어
李參
⊙ 1954년 독일 출생. 구텐베르크 대학 졸업, 트리니트신학대 상담학 석사.
⊙ 1978년 한국에 정착, 1986년 한국인으로 귀화.
⊙ 한독상공회의소 이사, 해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참스마트 대표이사, 빅웰 회장,
이명박 대통령후보 특별보좌역 역임.
⊙ 공사 사장 취임 1년… 무임승차 직원 없앤다
⊙ 올해 해외관광객 850만명 유치에 사활 걸어
李參
⊙ 1954년 독일 출생. 구텐베르크 대학 졸업, 트리니트신학대 상담학 석사.
⊙ 1978년 한국에 정착, 1986년 한국인으로 귀화.
⊙ 한독상공회의소 이사, 해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참스마트 대표이사, 빅웰 회장,
이명박 대통령후보 특별보좌역 역임.
―휴가 다녀오셨습니까.
“7월 초에 와이프랑 전라남도 율도에서 2박3일을 보내고 왔습니다. 환상적인 갯벌과 좋은 물, 공기 덕분에 몸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주일 동안 그곳에 있으면 10년은 젊어지겠다 싶던데요(웃음). 본격적인 휴가는 9월에 갈 예정이고, 이번에는 예열(豫熱)만 하고 돌아왔지요.”
―예열이라니요.
“최소 2주일은 다녀와야 휴가라고 할 수 있지요. 2박3일을 휴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본격적인 휴가는 지리산에서 지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참(李參) 한국관광공사 사장과의 인터뷰는 ‘휴가’ 얘기로 시작됐다. 공공 기관의 수장과 마주앉아 이런 말랑한 얘기를 시작한 것은 단순히 요즘이 휴가철이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지난해부터 ‘1년에 최소 2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오자’며 ‘장기휴가 문화’ 조성에 앞장서고 있어서다. 상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얘기다.
휴가는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생산적인 활동
그의 이런 운동은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팀장급 이상 간부들은 지난해 말,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휴가를 사용하겠다는 내용의 ‘10년 장기휴가 계획서’를 제출하고 ‘장기휴가 문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설득에 따라 신한은행은 올 초부터 직원들에 대해 ‘2주 휴가 의무제’를 실시하고 있고, SK에너지는 전(全) 임직원이 2주 동안 여름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정했다. 오너인 최태원(崔泰源) SK에너지 회장은 솔선수범한다는 의미에서 3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왔다고 한다. 이참 사장의 ‘리프레시(refresh) 장기휴가 문화’가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유쾌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그에게 ‘왜 하필 2주일이냐’고 물었다.
“휴가의 의미는 생활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거든요. 휴가지로 떠나는 데 하루이틀이 걸리고, 심신(心身)의 피로를 푸는 데 1주일은 걸립니다. 최소 2주일은 휴가를 보내야 진정으로 생활의 리듬을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1주일만 지내다 오면 오히려 휴가를 다녀와서 그 후유증으로 다시 쉬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휴가는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생산적인 활동입니다. 지금처럼 창의적인 생각이 경쟁력인 시대에는 충분히 쉬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활동이 중요하죠.”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 않을까요.
“한 사람이 빠진다고 해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시스템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매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은 휴가기간이 깁니다. 책임이 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휴가를 길게 가죠. 충분히 휴식을 해야만 일상업무에 복귀했을 때 집중력을 발휘하는 뒷심이 생긴다는 것을 뜻합니다.”
―2주일씩 휴가를 가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계획을 제대로 세우면 저렴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상 8월 첫째, 둘째 주에 휴가를 가다 보니 바가지요금에 시달리고, 재충전을 해야 할 휴가가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겁니다. 휴가문화가 활성화된 유럽 사람들은 보통 3년치의 계획을 세웁니다. 휴가비용을 미리 준비하고, 사전예약제 등을 이용해서 돈을 아끼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휴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휴가의 질(質)을 높일 수 있는 문화를 갖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란 모양이네요.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견딜 수 있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웃음). 유럽 사람들은 휴가를 다녀오지 않으면 건강에 심각한 지장을 준다고 생각할 정도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한국인과 유럽인들은 업무 패턴이 달랐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업무강도가 유럽인처럼 세지는 않더라고요. 일하는 와중에 잠깐 잠깐 쉬는 직장문화를 갖고 있죠. 하지만 일할 때 최선을 다해, 또 그만큼 확실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이 훨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시간 최고, 생산성 최저인 한국인 근무패턴
이 얘기를 하는 이참 사장의 푸른 눈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그는 “장기휴가 문화가 정착된 선진국일수록 근로시간 대비 노동생산성이 높다”며 최근에 OECD가 내놓은 보고서를 내밀었다. OECD의 ‘경제정책 개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의 업무생산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상위 15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30.9%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평균보다 무려 49.7%가 떨어져 최하위권에 랭크됐다. 휴가를 오랫동안 떠나는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인들은 OECD 평균보다 23.3% 적게 일을 하면서, 노동생산성은 평균보다 4.4%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인들이 책상머리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서도 정작 업무의 효율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소리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총 24개국에 64세 이하의 근로자 1만2500명을 대상으로 ‘온전한 휴가 사용조사’를 벌였다. 한국 근로자 중 53%만이 “휴가를 모두 쓴다”고 응답했다. 21위로 최하위권이다.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휴가문화가 거의 없는 셈이다.
휴가 일주일 늘어나면 부가가치 6조6000억원
이참 사장은 이런 우리의 어정쩡한 휴가문화에 일침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그가 ‘장기휴가 문화 운동’을 벌이는 또 다른 이유는 내수진작을 위해서다. 휴가를 길게 가야 관광을 떠나고, 내수관광이 활성화되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신념에서다.
최근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2400만명으로 추산)의 국내여행 일수가 1주일에서 2주일로 늘어나면 총 6조6000억원의 부가가치가 생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34만5000여 개의 일자리도 새롭게 창출된다.
“관광은 일차적으로 국내 고객을 상대로 하는 산업입니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생기죠. 우리 국민이 먼저 내 나라를 둘러봐야 내수관광이 활성화되고, 관광산업이 활성화됩니다. 이런 문화가 정착돼야 해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산업을 위한 우리의 인프라는 턱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호텔급 객실이 7만 개뿐입니다. 이웃인 일본은 96만 개가 넘습니다. 어디를 가든 빨리 돌아와야 하는 우리의 성급함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휴가가 길어진다면 한동안 그곳에서 숙박을 해야 하고, 이런 관광객이 늘어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숙박시설이 늘어날 겁니다.
최근에 안동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외국인들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안동에는 머물 곳이 없어서, 하회마을을 구경하고 경주로 이동해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관광 대국(大國)이 되기 위해서라도 장기휴가 문화는 반드시 정착돼야 합니다.”
여행 마니아
―휴가기간이 늘어난다고 관광내수가 활성화될까요.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 IT국가, 첨단 나노국가로 가고 있잖습니까. 어떤 나라도 겪지 못한 속도의 발전을 거듭하다 보니, 정신적인 휴식에 대해 많이 잊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강가에 앉아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의 여파로 문화의 아이덴티티를 포기한 채 물질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썼지요. 인간다운 사회, 인간다운 생활을 많이 상실했는데, 우리의 내부에는 풍류의 씨앗이 잠재해 있습니다. 휴가기간이 늘어난다면 국내 곳곳을 둘러보는 문화가 생긴다고 확신합니다. 충분히 즐기면서, 그만큼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민족입니다.”
이참 사장은 “우리 민족만큼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 없다”고 몇 번이나 힘줘 말했다. 지금은 관광공사의 수장으로 몸담고 있지만, 그는 이전부터 휴가 때마다 여행을 즐긴 ‘여행 마니아’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독일은 ‘바캉스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이 사장의 말에 따르면, 독일인 8000만명 중 7800만명이 매년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근처부터, 멀리 떨어진 동양 국가들로까지 여행지는 다양하다. 저렴한 여행을 즐기는 것도 특징이다. 독일의 중산층이 가장 많이 하는 여행은 가족 단위의 ‘캠핑 여행’이다.
이참 사장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여행을 떠나서 머릿속을 정리했다”고 했다. 50대(代) 중반인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열아홉에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그는 군(軍)에서 제대한 후 대학을 가기 전에 1년 동안 지중해 여행을 떠났다. 스페인에서 석 달 이상을 머물기도 했고, 여행지에서 용돈을 벌며 1년을 버텼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일정한 돈을 내고 자기가 딸 수 있는 만큼 과일을 따게 해 줬던 오렌지 농장에서 오렌지를 한 박스 따서는, 관광지로 들고 가 관광객들에게 웃돈을 얹어 팔았다. 여행 중에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2kg짜리 문어를 잡아서 식당에 값비싸게 판 적도 있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이어 갔다. 독일에서 이런 장기여행은 일종의 ‘성인식’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 여행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와 한 살 터울인 남동생을 잃은 뒤, 홀로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남동생은 군대로 복귀하다가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했다. 이참 사장에게 이 기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힘든 기억입니다. 이때 1년 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한치 앞을 알 수 없구나 싶은 것들이죠. 여행지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동생을 잃은 상처가 치유됐고, 인생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 여행 덕분일 겁니다. 휴가를 길게 다녀오면 사람들이 보다 깊은 사색을 하고, 자기의 인생 계획을 새롭게 세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는 이번에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선임되기 전에도 지인들과 지리산에 들러 마음을 다잡고 왔단다.
귀화한 외국인 중 최초로 공사 사장 자리에 올라
그와 대화를 나눌수록 유창한 그의 언어 실력에 놀랐다. 농담까지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는데, 그러고 보니 그가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 지 어느새 30년이 넘었단다. 종교행사 참석차 방한(訪韓)했다가 한국에 정착한 그는 1986년 한국인으로 귀화(歸化)했다. ‘한국의 무한한 잠재력에 반해 귀화를 결심했다’는 그는 방송인, 대학강사, 중소기업 대표, 사외이사,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한국을 돕는다’는 뜻으로 나라 ‘한(韓)’, 도울 우‘(佑)’를 써서 이한우라는 이름을 썼다가, 2001년에 ‘한국 사회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참여할 ‘참(參)’을 써 이참으로 개명(改名)했다.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한반도대운하특별위원회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7월에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응모해 선임됐다. 귀화한 외국인이 공기업의 사장직에 오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참 사장의 오랜 꿈이 실현된 순간이다.
이 사장은 “한국 문화만큼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에서 살면 살수록 어느 나라보다 유서가 깊은 미(美)가 있다고 생각해 관광공사 사장을 꼭 맡고 싶었다”고 했다.
이제는 완벽한 한국인으로 변신했지만, 그가 이곳에 완벽하게 정착하기까지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의 얘기다.
“유럽은 안정적인 제도가 자리 잡혀 있지만, 한국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해서 한국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왕따’를 당하기도 했지요. 똑같이 일했지만 승진이 늦어진다거나,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하게 극복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것은 외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들도 한국을 위해서 일한다면 벽을 허물고, 한국의 공직사회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사장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 행보
최초의 외국인 공사사장인 그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조직에 변화를 주고 있다.
올 초에는 공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인사 드래프트제’를 도입했다. 드래프트제는 상위직이 하위직을 평가해서 쓰고 싶은 사람을 데려가는 인사방식이다. 성과를 철저하게 따지는 민간기업에서 주로 활용되는 제도를 공기업에 도입한 것이다. 또 기존의 직위별 직급제를 없애 3급(과장급) 이상은 누구나 실, 단장, 팀장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지난 7월부터는 역량부진자 관리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공사 내에 무임승차를 없애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뿐만 아니다. 신 관광문화 창조를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관광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민이 참여하는 ‘한국관광서포터즈’도 발족했다.
관광서포터즈는 사회 각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와 전문가, 관광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로 구성된, 지역관광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자문단 성격의 네트워크이다. 현재 1500여명에 이르는 서포터즈가 있다. 지난 2월에는 18개국 주한(駐韓)외국대사를 포함해 100여명이 전라남도 순천시를 방문해 외래 관광객 유치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참 사장은 아이디어를 실제 행동에 옮기면서, 공사 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해 ‘관광아이디어뱅크’를 만들었고, ‘한국 관광의 밤’을 개최했다.
그는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공사의 문화를 욕심 있는 문화로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공사라고 하면 권위적이고 딱딱한, 수동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윗사람이 명령하고 아랫사람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토론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기업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니까요. 공공기관이다 보니 느슨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형식적으로 있는 사람들이 회사에 발붙일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공공기관이라도 ‘욕심 있게 일하고’, 또 그만큼 보상받는 문화가 생겼으면 했습니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인지, 관광공사 안팎에서는 요즘 좋은 소식들이 계속 들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총관광객 숫자가 사상 처음으로 781만명을 넘어섰다. 이로 인한 관광수입이 93억8000만 달러.
아시아의 스위스 꿈꾼다
이참 사장은 올해 ‘850만명 해외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삼았다. 인터뷰를 하느라 방문한 관광공사 곳곳에는 그의 이런 의지가 엿보였다.
‘업무는 달라도 목표는 하나! 외래객 유치 850만명 달성!’
사무실 곳곳에는 이런 표어가 붙어 있었다. 올해 상반기에 총 415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다. 목표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지만, 이참 사장은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한 해의 4분의 1 이상을 해외에서 생활하는 그는 외국에 나가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으면 한국으로 오세요”라고 홍보하고 있다.
“새벽 1시에 안전하고 자유롭게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 말고 또 있나요. 한국의 전통음식은 몸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 푸드입니다. 외국인들에게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면 꼭 한국을 들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수려한 산이며, 강, 3면(面)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관광 대국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인은 ‘기(氣), 흥(興), 정(情)’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어울렸지만, 우리나라 사람들과 놀 때 가장 즐거웠습니다(웃음). 흥이 있고, 기가 있고, 이것들을 아우르는 정이 있는 민족이니까요. 한국이 유럽의 스위스가 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오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오히려 비행기 좌석이 없어서 아쉬울 정도죠.”
그의 말에 따르면,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은 여전히 일본인이다. 지난 6월에만 총 23만1000여명이 다녀갔다. 중국인 15만명, 미국인 6만4000명, 러시아 1만6000명 수준이다. 하지만 대만(3만2000명) 홍콩(1만7000명) 태국(1만4000명) 싱가포르(1만1000명) 사람들의 국내 방문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몇 년 동안 경기침체 때문에 해외여행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면서, 이들 국가 사람들은 비행기 좌석이 없어서 우리나라를 방문할 수 없을 정도다. 국내의 해외 여행객들이 외국인 유치에 걸림돌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참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국내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항공사 입장에서 한국인이 짭짤한 고객이어야 외국 항공사가 우리에게 관심을 갖죠. 최근 우리나라에 들어오려고 입질했던 저가 항공사 ‘에어아시아’가 오는 11월부터 운항을 할 예정입니다. 이 항공편 하나만으로 연간 8만명을 더 수송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해외에 많이 나가야 하고, 또 해외 관광객들도 우리를 많이 찾아야 합니다. 수요가 생겨야 공급이 늘어나는 건전한 구도가 자리 잡혀야 합니다.”
나무꾼論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에게는 한국인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과거에 그가 집필했던 책이 생각났다. <나는 독일제 순한국인>이라는 제목이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선비가 백성을 다스렸던 나라예요. 무력으로 사람을 누르려고 하지 않고, 철학으로 사람을 섬겼던 나라죠. 한국이라는 나라의 철학을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먼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졌으면 해요. ‘일하기 바빠 죽겠는데 무슨 관광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은 생산적인 활동이고, 고용창출을 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관광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역설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그는 끝으로 예전에 한 스님에게 들은 얘기인데 참 감명 깊다며 말을 이어 갔다.
“두 명의 나무꾼에게 일을 시켰답니다. 한 명은 도끼를 쥐자마자 죽자사자 나무를 패더래요. 다른 한 사람은 도끼로 한 번 나무를 찍고 잠시 쉬고, 또 한 번 나무를 찍고 쉬기를 반복하더랍니다. 죽자사자 나무를 패던 사람은 얼마 뒤에 기진맥진하더래요. 반면에 쉬어 가며 하던 사람은 나중에 더 많은 나무를 패더랍니다. 일은 게임을 하듯이, 즐기면서 하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1년에 최소 2주일 휴가를 떠나는 문화를 정착시켜 봅시다.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요. 앞으로 보다 많은 기업이 장기휴가 운동에 동참하기를 기대합니다.”⊙
사진 : 서경리
“7월 초에 와이프랑 전라남도 율도에서 2박3일을 보내고 왔습니다. 환상적인 갯벌과 좋은 물, 공기 덕분에 몸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2주일 동안 그곳에 있으면 10년은 젊어지겠다 싶던데요(웃음). 본격적인 휴가는 9월에 갈 예정이고, 이번에는 예열(豫熱)만 하고 돌아왔지요.”
―예열이라니요.
“최소 2주일은 다녀와야 휴가라고 할 수 있지요. 2박3일을 휴가라고 할 수 있습니까. 본격적인 휴가는 지리산에서 지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참(李參) 한국관광공사 사장과의 인터뷰는 ‘휴가’ 얘기로 시작됐다. 공공 기관의 수장과 마주앉아 이런 말랑한 얘기를 시작한 것은 단순히 요즘이 휴가철이어서가 아니었다. 그가 지난해부터 ‘1년에 최소 2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오자’며 ‘장기휴가 문화’ 조성에 앞장서고 있어서다. 상상만 해도 입가에 웃음이 번지는 얘기다.
휴가는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생산적인 활동
그의 이런 운동은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의 팀장급 이상 간부들은 지난해 말,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휴가를 사용하겠다는 내용의 ‘10년 장기휴가 계획서’를 제출하고 ‘장기휴가 문화’에 앞장서고 있다. 그의 설득에 따라 신한은행은 올 초부터 직원들에 대해 ‘2주 휴가 의무제’를 실시하고 있고, SK에너지는 전(全) 임직원이 2주 동안 여름 휴가를 갈 수 있도록 내부 방침을 정했다. 오너인 최태원(崔泰源) SK에너지 회장은 솔선수범한다는 의미에서 3주일 동안 휴가를 다녀왔다고 한다. 이참 사장의 ‘리프레시(refresh) 장기휴가 문화’가 사회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 유쾌한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그에게 ‘왜 하필 2주일이냐’고 물었다.
“휴가의 의미는 생활의 리듬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거든요. 휴가지로 떠나는 데 하루이틀이 걸리고, 심신(心身)의 피로를 푸는 데 1주일은 걸립니다. 최소 2주일은 휴가를 보내야 진정으로 생활의 리듬을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1주일만 지내다 오면 오히려 휴가를 다녀와서 그 후유증으로 다시 쉬어야 하는 상황이 생깁니다. 휴가는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생산적인 활동입니다. 지금처럼 창의적인 생각이 경쟁력인 시대에는 충분히 쉬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활동이 중요하죠.”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 않을까요.
“한 사람이 빠진다고 해서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시스템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어느 조직이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매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진국은 휴가기간이 깁니다. 책임이 큰 자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휴가를 길게 가죠. 충분히 휴식을 해야만 일상업무에 복귀했을 때 집중력을 발휘하는 뒷심이 생긴다는 것을 뜻합니다.”
―2주일씩 휴가를 가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계획을 제대로 세우면 저렴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통상 8월 첫째, 둘째 주에 휴가를 가다 보니 바가지요금에 시달리고, 재충전을 해야 할 휴가가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겁니다. 휴가문화가 활성화된 유럽 사람들은 보통 3년치의 계획을 세웁니다. 휴가비용을 미리 준비하고, 사전예약제 등을 이용해서 돈을 아끼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휴가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휴가의 질(質)을 높일 수 있는 문화를 갖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란 모양이네요.
“처음에는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견딜 수 있나’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웃음). 유럽 사람들은 휴가를 다녀오지 않으면 건강에 심각한 지장을 준다고 생각할 정도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한국인과 유럽인들은 업무 패턴이 달랐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업무강도가 유럽인처럼 세지는 않더라고요. 일하는 와중에 잠깐 잠깐 쉬는 직장문화를 갖고 있죠. 하지만 일할 때 최선을 다해, 또 그만큼 확실하게 휴가를 즐기는 것이 훨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업무시간 최고, 생산성 최저인 한국인 근무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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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서포터즈와 함께 강진 도자기굽기 행사에 참여한 이참 사장. |
그는 “장기휴가 문화가 정착된 선진국일수록 근로시간 대비 노동생산성이 높다”며 최근에 OECD가 내놓은 보고서를 내밀었다. OECD의 ‘경제정책 개혁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직장인들의 업무생산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상위 15개 국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OECD 평균보다 30.9%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노동생산성은 평균보다 무려 49.7%가 떨어져 최하위권에 랭크됐다. 휴가를 오랫동안 떠나는 것으로 알려진 프랑스인들은 OECD 평균보다 23.3% 적게 일을 하면서, 노동생산성은 평균보다 4.4%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인들이 책상머리에 하루 종일 앉아 있으면서도 정작 업무의 효율성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소리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로이터통신은 최근 총 24개국에 64세 이하의 근로자 1만2500명을 대상으로 ‘온전한 휴가 사용조사’를 벌였다. 한국 근로자 중 53%만이 “휴가를 모두 쓴다”고 응답했다. 21위로 최하위권이다.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휴가문화가 거의 없는 셈이다.
휴가 일주일 늘어나면 부가가치 6조6000억원
이참 사장은 이런 우리의 어정쩡한 휴가문화에 일침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그가 ‘장기휴가 문화 운동’을 벌이는 또 다른 이유는 내수진작을 위해서다. 휴가를 길게 가야 관광을 떠나고, 내수관광이 활성화되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신념에서다.최근 한국관광공사의 조사에 따르면, 15세 이상 경제활동인구(2400만명으로 추산)의 국내여행 일수가 1주일에서 2주일로 늘어나면 총 6조6000억원의 부가가치가 생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34만5000여 개의 일자리도 새롭게 창출된다.
“관광은 일차적으로 국내 고객을 상대로 하는 산업입니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이 생기죠. 우리 국민이 먼저 내 나라를 둘러봐야 내수관광이 활성화되고, 관광산업이 활성화됩니다. 이런 문화가 정착돼야 해외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산업을 위한 우리의 인프라는 턱없이 낮은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호텔급 객실이 7만 개뿐입니다. 이웃인 일본은 96만 개가 넘습니다. 어디를 가든 빨리 돌아와야 하는 우리의 성급함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휴가가 길어진다면 한동안 그곳에서 숙박을 해야 하고, 이런 관광객이 늘어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숙박시설이 늘어날 겁니다.
최근에 안동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외국인들의 관심이 커졌습니다. 하지만 정작 안동에는 머물 곳이 없어서, 하회마을을 구경하고 경주로 이동해서 잠을 자야 하는 상황입니다. 우리가 관광 대국(大國)이 되기 위해서라도 장기휴가 문화는 반드시 정착돼야 합니다.”
여행 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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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고양시의 행사장에서 문화와 관광산업에 대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다. |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 IT국가, 첨단 나노국가로 가고 있잖습니까. 어떤 나라도 겪지 못한 속도의 발전을 거듭하다 보니, 정신적인 휴식에 대해 많이 잊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강가에 앉아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민족이었습니다. 급격한 산업화의 여파로 문화의 아이덴티티를 포기한 채 물질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썼지요. 인간다운 사회, 인간다운 생활을 많이 상실했는데, 우리의 내부에는 풍류의 씨앗이 잠재해 있습니다. 휴가기간이 늘어난다면 국내 곳곳을 둘러보는 문화가 생긴다고 확신합니다. 충분히 즐기면서, 그만큼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민족입니다.”
이참 사장은 “우리 민족만큼 풍류를 아는 사람들이 없다”고 몇 번이나 힘줘 말했다. 지금은 관광공사의 수장으로 몸담고 있지만, 그는 이전부터 휴가 때마다 여행을 즐긴 ‘여행 마니아’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독일은 ‘바캉스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이 사장의 말에 따르면, 독일인 8000만명 중 7800만명이 매년 해외로 여행을 간다고 한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근처부터, 멀리 떨어진 동양 국가들로까지 여행지는 다양하다. 저렴한 여행을 즐기는 것도 특징이다. 독일의 중산층이 가장 많이 하는 여행은 가족 단위의 ‘캠핑 여행’이다.
이참 사장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여행을 떠나서 머릿속을 정리했다”고 했다. 50대(代) 중반인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열아홉에 혼자 떠난 여행이었다.
그는 군(軍)에서 제대한 후 대학을 가기 전에 1년 동안 지중해 여행을 떠났다. 스페인에서 석 달 이상을 머물기도 했고, 여행지에서 용돈을 벌며 1년을 버텼다. 가령 이런 식이었다. 일정한 돈을 내고 자기가 딸 수 있는 만큼 과일을 따게 해 줬던 오렌지 농장에서 오렌지를 한 박스 따서는, 관광지로 들고 가 관광객들에게 웃돈을 얹어 팔았다. 여행 중에 스쿠버다이빙을 하다가 2kg짜리 문어를 잡아서 식당에 값비싸게 판 적도 있다. 이런 식으로 여행을 이어 갔다. 독일에서 이런 장기여행은 일종의 ‘성인식’이다.
하지만 그에게 이 여행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그와 한 살 터울인 남동생을 잃은 뒤, 홀로 떠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남동생은 군대로 복귀하다가 교통사고로 현장에서 즉사했다. 이참 사장에게 이 기억은 충격 그 자체였다.
“지금 생각해도 참 힘든 기억입니다. 이때 1년 동안 여행을 다니면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대체 삶이란 무엇일까, 나는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할까,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이 한치 앞을 알 수 없구나 싶은 것들이죠. 여행지에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동생을 잃은 상처가 치유됐고, 인생의 가치관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제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도 그 여행 덕분일 겁니다. 휴가를 길게 다녀오면 사람들이 보다 깊은 사색을 하고, 자기의 인생 계획을 새롭게 세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그는 이번에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선임되기 전에도 지인들과 지리산에 들러 마음을 다잡고 왔단다.
귀화한 외국인 중 최초로 공사 사장 자리에 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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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관광공사가 실시하고 있는 ‘한국 관광의 밤’ 행사장에서. |
‘한국을 돕는다’는 뜻으로 나라 ‘한(韓)’, 도울 우‘(佑)’를 써서 이한우라는 이름을 썼다가, 2001년에 ‘한국 사회에 참여한다’는 뜻으로 참여할 ‘참(參)’을 써 이참으로 개명(改名)했다.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한반도대운하특별위원회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했고, 지난해 7월에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응모해 선임됐다. 귀화한 외국인이 공기업의 사장직에 오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참 사장의 오랜 꿈이 실현된 순간이다.
이 사장은 “한국 문화만큼 경쟁력 있는 콘텐츠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에서 살면 살수록 어느 나라보다 유서가 깊은 미(美)가 있다고 생각해 관광공사 사장을 꼭 맡고 싶었다”고 했다.
이제는 완벽한 한국인으로 변신했지만, 그가 이곳에 완벽하게 정착하기까지 가슴앓이를 하기도 했다.
그의 얘기다.
“유럽은 안정적인 제도가 자리 잡혀 있지만, 한국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국가라고 생각해서 한국인이 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출신이었기 때문에 ‘왕따’를 당하기도 했지요. 똑같이 일했지만 승진이 늦어진다거나, 조금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하게 극복했습니다. 특히 이번에 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것은 외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들도 한국을 위해서 일한다면 벽을 허물고, 한국의 공직사회 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죠.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사장 취임 직후부터 파격적 행보
최초의 외국인 공사사장인 그는 한국관광공사 사장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조직에 변화를 주고 있다.올 초에는 공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인사 드래프트제’를 도입했다. 드래프트제는 상위직이 하위직을 평가해서 쓰고 싶은 사람을 데려가는 인사방식이다. 성과를 철저하게 따지는 민간기업에서 주로 활용되는 제도를 공기업에 도입한 것이다. 또 기존의 직위별 직급제를 없애 3급(과장급) 이상은 누구나 실, 단장, 팀장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지난 7월부터는 역량부진자 관리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공사 내에 무임승차를 없애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뿐만 아니다. 신 관광문화 창조를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 관광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국민이 참여하는 ‘한국관광서포터즈’도 발족했다.
관광서포터즈는 사회 각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와 전문가, 관광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들로 구성된, 지역관광 발전에 기여하기 위한 자문단 성격의 네트워크이다. 현재 1500여명에 이르는 서포터즈가 있다. 지난 2월에는 18개국 주한(駐韓)외국대사를 포함해 100여명이 전라남도 순천시를 방문해 외래 관광객 유치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참 사장은 아이디어를 실제 행동에 옮기면서, 공사 내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민간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활용하기 위해 ‘관광아이디어뱅크’를 만들었고, ‘한국 관광의 밤’을 개최했다.
그는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공사의 문화를 욕심 있는 문화로 바꾸고 싶었다”고 했다.
“공사라고 하면 권위적이고 딱딱한, 수동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습니까. 윗사람이 명령하고 아랫사람이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토론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가는 기업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사람들이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니까요. 공공기관이다 보니 느슨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형식적으로 있는 사람들이 회사에 발붙일 수 없는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했습니다. 공공기관이라도 ‘욕심 있게 일하고’, 또 그만큼 보상받는 문화가 생겼으면 했습니다.”
이런 그의 노력 덕분인지, 관광공사 안팎에서는 요즘 좋은 소식들이 계속 들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총관광객 숫자가 사상 처음으로 781만명을 넘어섰다. 이로 인한 관광수입이 93억8000만 달러.
아시아의 스위스 꿈꾼다
이참 사장은 올해 ‘850만명 해외 관광객 유치’를 목표로 삼았다. 인터뷰를 하느라 방문한 관광공사 곳곳에는 그의 이런 의지가 엿보였다.‘업무는 달라도 목표는 하나! 외래객 유치 850만명 달성!’
사무실 곳곳에는 이런 표어가 붙어 있었다. 올해 상반기에 총 415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다. 목표의 절반에 미치지 못하는 수치지만, 이참 사장은 여전히 긍정적이었다.
한 해의 4분의 1 이상을 해외에서 생활하는 그는 외국에 나가 “에너지를 충전하고 싶으면 한국으로 오세요”라고 홍보하고 있다.
“새벽 1시에 안전하고 자유롭게 쇼핑을 할 수 있는 곳이 우리나라 말고 또 있나요. 한국의 전통음식은 몸에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에너지 푸드입니다. 외국인들에게 에너지 충전이 필요하면 꼭 한국을 들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수려한 산이며, 강, 3면(面)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관광 대국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인은 ‘기(氣), 흥(興), 정(情)’이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어울렸지만, 우리나라 사람들과 놀 때 가장 즐거웠습니다(웃음). 흥이 있고, 기가 있고, 이것들을 아우르는 정이 있는 민족이니까요. 한국이 유럽의 스위스가 된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한국을 오고자 하는 사람들은 많은데, 오히려 비행기 좌석이 없어서 아쉬울 정도죠.”
그의 말에 따르면,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가장 많이 찾는 사람은 여전히 일본인이다. 지난 6월에만 총 23만1000여명이 다녀갔다. 중국인 15만명, 미국인 6만4000명, 러시아 1만6000명 수준이다. 하지만 대만(3만2000명) 홍콩(1만7000명) 태국(1만4000명) 싱가포르(1만1000명) 사람들의 국내 방문이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몇 년 동안 경기침체 때문에 해외여행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해외에 나가면서, 이들 국가 사람들은 비행기 좌석이 없어서 우리나라를 방문할 수 없을 정도다. 국내의 해외 여행객들이 외국인 유치에 걸림돌이 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참 사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국내 사람들이 많이 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항공사 입장에서 한국인이 짭짤한 고객이어야 외국 항공사가 우리에게 관심을 갖죠. 최근 우리나라에 들어오려고 입질했던 저가 항공사 ‘에어아시아’가 오는 11월부터 운항을 할 예정입니다. 이 항공편 하나만으로 연간 8만명을 더 수송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해외에 많이 나가야 하고, 또 해외 관광객들도 우리를 많이 찾아야 합니다. 수요가 생겨야 공급이 늘어나는 건전한 구도가 자리 잡혀야 합니다.”
나무꾼論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에게는 한국인의 향기가 물씬 풍겼다. 과거에 그가 집필했던 책이 생각났다. <나는 독일제 순한국인>이라는 제목이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선비가 백성을 다스렸던 나라예요. 무력으로 사람을 누르려고 하지 않고, 철학으로 사람을 섬겼던 나라죠. 한국이라는 나라의 철학을 알리는 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먼저 우리나라 국민들의 인식이 달라졌으면 해요. ‘일하기 바빠 죽겠는데 무슨 관광이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하지만 관광은 생산적인 활동이고, 고용창출을 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입니다.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관광을 해야 한다고 말하면 역설적으로 들리지 않을까 싶긴 합니다만.”
그는 끝으로 예전에 한 스님에게 들은 얘기인데 참 감명 깊다며 말을 이어 갔다.
“두 명의 나무꾼에게 일을 시켰답니다. 한 명은 도끼를 쥐자마자 죽자사자 나무를 패더래요. 다른 한 사람은 도끼로 한 번 나무를 찍고 잠시 쉬고, 또 한 번 나무를 찍고 쉬기를 반복하더랍니다. 죽자사자 나무를 패던 사람은 얼마 뒤에 기진맥진하더래요. 반면에 쉬어 가며 하던 사람은 나중에 더 많은 나무를 패더랍니다. 일은 게임을 하듯이, 즐기면서 하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1년에 최소 2주일 휴가를 떠나는 문화를 정착시켜 봅시다.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요. 앞으로 보다 많은 기업이 장기휴가 운동에 동참하기를 기대합니다.”⊙
사진 : 서경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