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에선 아무도 믿지 않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이야기”
⊙ 5년 취재 중 절반 진행… “취재하면 할수록 더 큰 미스터리”
⊙ 인도주의 차원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져야 할 사건들
⊙ 납북자, 일본에선 전 국민적 관심, 한국에선 왜 ‘낙인’ 찍히는지
⊙ 세계적 이슈 돼도 북한 변화 않을 것… 미귀환 납북자들 우려돼
로버트 보인턴
⊙ 美 예일대 졸업(정치학 석사).
⊙ 뉴욕대 언론학과 교수.
⊙ 5년 취재 중 절반 진행… “취재하면 할수록 더 큰 미스터리”
⊙ 인도주의 차원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져야 할 사건들
⊙ 납북자, 일본에선 전 국민적 관심, 한국에선 왜 ‘낙인’ 찍히는지
⊙ 세계적 이슈 돼도 북한 변화 않을 것… 미귀환 납북자들 우려돼
로버트 보인턴
⊙ 美 예일대 졸업(정치학 석사).
⊙ 뉴욕대 언론학과 교수.
“미국에선 납북 현실에 대해 이야기해도 다들 픽션(fiction·지어낸 이야기)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현재 북한에 있는 미귀환 납북자(한국인)는 514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과 동남아, 유럽 등 다른 나라 납북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천안함 사태의 충격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유명 언론인 겸 언론학자가 북한의 비인간적인 납북 행태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08년부터 3년째 한국과 일본의 납북자를 취재 중인 뉴욕대 언론학과의 로버트 보인턴(Robert Boynton) 교수를 지난 6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보인턴 교수는 미국 언론의 논픽션 저널리즘을 집대성한 <뉴뉴저널리즘(New New Journalism, 2005)>의 저자로, 미국 내 유수 언론에 기고하고 있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일본에선 납북자 문제 관심 높아
보인턴 교수는 2008년 봄 일본의 한 재단인 ‘재팬 소사이어티(Japan society)’의 지원을 받아 납북자 취재를 시작했다. 재팬 소사이어티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일본 재단으로, 미국에서도 오랜 기간 활동해 왔으며 미·일 간 문화교류에 초점을 두고 있는 단체다.
그가 처음부터 납북자에 높은 관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번 기획취재 이전까지는 일본이나 한국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다. 재팬 소사이어티의 취재지원 공고를 보고 몇 개의 취재기획서를 제출했는데, 그중 납북자 관련 건이 채택된 것.
“일본 사회는 납북자에 대해 엄청나게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취재기획 중 납북이라는 주제가 채택된 것은 일본 사회가 이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에서는 납북자에 대한 이슈가 몇 년간 신문 1면 톱을 장식할 정도로 큰 것이라는 사실을 취재 시작 이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수시로 1면 톱에 납북자 사건이 소개돼 왔고, 최근 10여 년간 가장 큰 정치사회적 이슈라 해도 무방하다는 것.
그는 납북자 취재를 위해 2008년과 2009년, 이번 2010년 5월까지 일본과 한국을 각각 세 번씩 방문했다. 내년에도 한 번 더 방문할 계획이다. 취재원은 주로 일본과 한국의 언론보도를 분석해 선정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귀환 납북자들과 미디어 관계자, 탈북자, 정부 관계자 등을 인터뷰했다. 인터뷰한 사람 중 주요 인물은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귀환 납북자 이재근ㆍ최욱일씨, 2000년 납북된 김동식 목사의 딸 등이다. 일본에서는 납북자 가족들과 후지모토 겐지(<김정일의 요리사> 저자) 등 탈북자, 언론인, 조총련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북한 방문 경험은 없다. 그럴 계획도 없다.
“일본과 한국의 납북자 가족들은 미국인이 납북사건을 취재한다니까 얼마나 반가워하고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한국의 가족들은 그동안의 슬픔에 더해 오해와 설움을 당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는 일본과 한국의 취재환경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납북자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관심과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일본의 높은 관심도에 비해 한국에선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바로 납북자 문제입니다.”
그는 “요코다 메구미(일본의 대표적인 납북자-편집자 주) 사건 등 납북자에 대한 일본 정부와 사회의 높은 관심에 놀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높은 관심도가 꼭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활용하는 우익단체들이 많습니다. 또 흥미 위주의 얘깃거리로 전락하기도 하고요.”
납북자에 대한 진실은
보인턴 교수는 “일본에서는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다 보니 유언비어가 확대재생산되거나 정확지 않은 진실이 떠도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보인턴 교수는 일본 니가타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소개했다.
니가타의 어느 도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취재와 별 상관없이 그냥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요코다 메구미를 알고 있었다는 것.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로워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요코다 메구미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다기보다는 대부분 들은 얘기나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전하는 정도였고, 의견도 분분했다. 메구미 가족에 대한 정보도 엇갈리는 게 많았다. 요코다 메구미의 집을 물어보자 모두 각자 다른 집을 지목하곤 했다.
특히 어떤 여자아이가 메구미의 집을 알려주겠다며 그를 데리고 갔는데, 조사했던 바와 많이 달랐다. 알고 보니 그 집은 TV드라마 촬영 시 메구미의 집으로 사용됐던 곳이었다고 한다. “요코다 메구미에 대해 드라마와 영화, 심지어 대중가요까지 만들어졌어요. 그런 현상들이 진실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이슈를 흥미 위주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납북자에 대한 너무 높은 관심이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 셈입니다.”
한국 정부가 왜 북한에 문제제기를 못할까 이해 안돼
그는 한국에서 납북자 문제는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고 파악했다. 종전 후 한국인 수천 명이 납북됐는데도 2006년까지 납북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북한에 대해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절반은 납북자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납북자 문제를 일부러 기피하고 외면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는 정말 심각하고 당연히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요.”
또 일본에서 납북자는 인도적인 이유로 동정의 대상이 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납북자에게 ‘낙인’이 찍힌다는 점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이념 때문에 나라가 분단됐고 전쟁을 겪는 등,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 납북자에게 낙인을 찍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도주의라는 차원에서 볼 때 그건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의지로 간 것이 아니며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일 뿐인데 왜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아야 합니까?”
보인턴 교수는 한국의 납북자 가족들을 처음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납북자 가족들이 주변사람들에게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공공기관의 감시까지 받은 적도 있다고 이야기할 때 전 제가 잘못 알아들었거나 통역이 실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동정과 지원을 받아도 부족할 형편인데 한국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같은 맥락에서 ‘KAL기 폭파범 김현희 사건 조작설’에 대해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한과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의견이 있다는 것을 한국의 한 언론인을 인터뷰하며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나중에 그런 음모론이 공영방송에서 방영될 만큼 한국 내에 상당히 퍼져 있다는 것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미국 내에서도 9·11테러 자작설 등 많은 음모론이 있지만 말 그대로 ‘음모론’ 그 이상은 아니라며 ‘김현희 사건 조작설’도 일축했다. “한국 정부가 일부러 자국 항공기를 폭파시켰다니 그런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ㆍ이념적 배경이 독특해서인지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보인턴 교수는 한국에서 취재원들을 만나면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한국사회를 다시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동식 목사 납치범이 한국 감옥에 있는데 면회를 신청했지만 못 만났습니다. 재판 기록도 요청했지만 구할 수 없었어요. 한국 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를 취재하는 외국 언론인에게 그 정도는 공개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납북자 인권을 생각한다면 이런 행태는 좀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인권존중의 면에서는 다소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경우에도 모든 사람의 인권은 존중돼야 합니다. 인권이 정치적으로 희생된다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한국 정부와 사회는 납북 현실을 인권 측면에서 받아들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봐요.” 그는 “현 정부가 전 정부에 비해서는 납북자 문제에 적극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에 대해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성과를 이뤄낸 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첫 인상은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납북자와 관련된 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한국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최 대표만큼 이 문제를 공론화하며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큰 성과를 가져온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는 납북 관련 자료가 희귀한 현실에서 그처럼 효율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정부를 상대로 납북자 가족지원법 등 제도적 지원책을 이끌어낸 사례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알면 알수록 끔찍한 ‘납북’
보인턴 교수는 납북이란 감옥행이나 죽음보다도 더 극적이고 놀라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갑자기 전혀 모르는 다른 곳으로 옮겨져서 다시 인생을 살라는 것이잖아요. 이해가 되십니까?” 그는 취재하면서 가슴 아픈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육체적 정신적 고생은 어느 납북자들이나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인간적으로 너무나 끔찍한 경우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취재원 중 납북돼 북한에 살면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은 사람이 있었어요. 말도 안되는 환경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던 것이죠. 결국 탈북을 했는데 고향에선 아내와 자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그가 어느 쪽을 선택할 수 있겠어요?”
취재 후 출간될 그의 책 가제는 ‘방문자 구역(invited zone)’이다. “평양 근교에는 일본 납북자들을 모아놓고 철책을 쳐 놓은 뒤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구역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방문자 구역’이죠. 물론 모든 납북자가 한곳에 모여 사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서 이유 없이 끌려온 사람들이 사는 곳, 기묘한 방문자 구역이 바로 북한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납북 이유는 폐쇄 정권의 정보 습득
그는 2년 반의 취재를 거쳐 무엇을 파악했을까. 보인턴 교수는 납북의 원인에 대해 “솔직히 아무도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사건별로 배경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전제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인 만큼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합니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외부인을 납치해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죠. 남한의 대학생을 납치해 대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기도 하고, 평범한 일반인을 납치해 공작원을 교육하는 교관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또 남한 납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부들에게선 서민들의 삶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도 하고요. 그러나 수십 년의 납북 행태를 볼 때 어떤 계층이나 대상을 선정해 납치한다기보다는 무작위적으로 납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북한을 한마디로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정말 지구상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폐쇄적이라고 해서 외부인을 납치,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활용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요. 공작원들에게 자본주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해서 일본에서 민간인을 납치한다니 이해가 됩니까? 김정일을 위해 영화를 만들라고(신상옥ㆍ최은희씨를 의미-편집자 주), 음식을 만들라고 납치한 케이스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공산주의 국가나 독재국가도 이런 일은 하지 않았어요.”
보인턴 교수는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이야기들”이라고도 말했다.
“납북자를 결혼시키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납치합니다. 이게 북한입니다. 정말 누가 들어도 희한한 일이지요.” 보인턴 교수는 “미국인들은 납북자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책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나 이념적인 성향이 실릴지 궁금했다. “물론 알면 알수록 이상하고 충격적인 일이 많지만, 저널리스트인 만큼 본인의 시각을 넣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논픽션으로 출간할 계획입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요. 철저하게 사실과 인터뷰 위주로 구성될 겁니다.”
2년 추가취재 후 책 출간할 것
보인턴 교수는 책이 출간돼도 북한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책 출간으로 세계의 많은 사람이 납북현실에 대해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죠. 하지만 북한에 변화가 오진 않을 겁니다. 책 한 권으로 변화될 조직이 아니라고 봅니다.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갖고 올 수도 있어요. 납북자 가족들은 이런 현실이 알려지면 미귀환 납북자가 제거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기도 합니다.” 그는 “납북자 가족들은 북한과 일본ㆍ미국이 국교를 맺으면 북한이 납북자를 제거할 것이라며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2년 정도 더 심층취재를 한 후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납북자 취재라고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까지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초기엔 기초지식이 별로 없어 취재가 빨리 진행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당히 많은 배경지식을 토대로 연구내용이 모자이크처럼 짜맞춰지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20~30대 프리랜서 기자일 땐 쓸 수 없었던 심층취재를 하고 싶습니다. 이 같은 납북자 리포트도 프리랜서 기자로서는 쓸 수 없는 것이라 보람과 욕심이 생깁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미친 짓’일지도 몰라요. 내가 모르는 언어를 쓰는, 내가 잘 모르는 나라에서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사실을 취재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죠.”
그는 “남들이 깊게 파고들지 않은 이슈인 만큼 더 특종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한번은 납북이라는 키워드로 일본과 한국의 책(단행본)을 검색했어요. 일본에 1000여 권이 있는 반면 한국에는 딱 1건 있더군요. <월간조선>에서 펴낸 책(<6·25 납북자 82959명 명부>-편집자 주)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도 납북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자료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신기하다”며 “따라서 취재 관련 연구자료나 책, 전문가를 찾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취재 내용을 잡지 등에 시리즈로 낼 계획은 없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이 내용은 최소한 책 한 권이 필요하다”며 “몇십 페이지의 기사로는 도저히 납북이라는 현상을 세계 독자에게 납득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취재 내용과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희미한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2년 정도 지나니 이제 윤곽은 잡히는데 조사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입니다. 공부하면 할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어요. 요즘은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에 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 중동 등 다른 나라에 대한 연구와 취재도 많이 했었지만, 한국과 일본은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민족주의를 갖고 있더군요. 한국과 일본의 역사, 한일관계 등을 파악해야 이 이야기(납북자)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책에서도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소개하면서 풀어나갈 계획입니다.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요.”
주변의 반응에 대해 물었다. “미국의 주변 사람들은 몇 마디만 듣고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미국인에겐 지나치게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미국사람들은 미국 외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미국인들이 북한을 ‘위험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 일에는 무심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 세계인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종ㆍ인권문제 관심 많은 저널리스트
그는 원래 인종과 민족ㆍ인권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온 저널리스트다. 일본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단일민족국가가 이민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부터다. “일본은 단일민족국가인데, 산업화와 고령화로 타국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소수민족이 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수민족 중에는 한민족도 있고요. 일본 내 한국인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습니다.” 이번 취재 주제인 납북도 인종ㆍ인권문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매우 흥미롭게 일할 수 있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의 대표적인 기사는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1995년 2월호에 게재한이다. 백인 위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지식계층으로 떠오르는 흑인 인텔리에 대한 내용인데, 이 기사는 전국적으로 뜨거운 관심을 끌었고 그는 인종문제에 전문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저널리스트로 인정받았다. 그는 현재 뉴욕대에서 ‘저널리즘 개론’과 ‘기사작성 워크숍’ 등을 강의하고 있다. 향후 2~3년간은 강의와 납북자 취재에 집중하고, 이후 또 다른 대형 심층취재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한국 언론에 대해 “한글을 읽지 못하는 만큼 아직 판단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거대신문 위주의 미디어 환경은 흥미롭다고 말했다.
“한국의 신문들은 독자층이 넓은데, 사람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좌파와 우파 신문이 있다는 것도 이 취재를 시작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미국의 신문들은 각자 어느 정도 이념적인 성향을 띠고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편향적인 매체는 없어요. 주관적인 견해를 싣긴 하지만 팩트(사실)와는 확실히 분리해서 팩트와 주관을 독자가 구분할 수 있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신문은 그렇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신문기사가 최종적인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념적 성향을 강조하다 보니 신뢰도를 스스로 잃는 경향이 있어요. 언론인 입장에서 볼 때 신기한 현상이지요.”
그는 또 한국에서 잡지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데 비해 미국에서는 잡지가 신문보다 신뢰도와 수익성 면에서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라마다 저널리즘 현황이 다르기 때문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몇백만 부씩 팔려나가는 일간지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봅니다. 특히 일본은 매일 발행부수 300만 부가 넘는 매체가 5개가 넘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 전체에서 150만 부를 발행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는 심도 있는 논픽션 저널리즘은 신문보다는 1만 자 이상의 기사를 쓸 수 있는 잡지를 통해 구현이 가능하다며 한국에도 이 같은 심층취재 위주의 잡지들은 장래가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에 있는 미귀환 납북자(한국인)는 514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과 동남아, 유럽 등 다른 나라 납북자까지 합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천안함 사태의 충격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유명 언론인 겸 언론학자가 북한의 비인간적인 납북 행태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2008년부터 3년째 한국과 일본의 납북자를 취재 중인 뉴욕대 언론학과의 로버트 보인턴(Robert Boynton) 교수를 지난 6월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보인턴 교수는 미국 언론의 논픽션 저널리즘을 집대성한 <뉴뉴저널리즘(New New Journalism, 2005)>의 저자로, 미국 내 유수 언론에 기고하고 있는 저널리스트이기도 하다.
일본에선 납북자 문제 관심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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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북자 가족들이 최근 천안함 사건과 관련, 임진각에서 북한 규탄 집회를 열었다. |
그가 처음부터 납북자에 높은 관심을 갖고 취재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번 기획취재 이전까지는 일본이나 한국에 대한 관심도 크지 않았다. 재팬 소사이어티의 취재지원 공고를 보고 몇 개의 취재기획서를 제출했는데, 그중 납북자 관련 건이 채택된 것.
“일본 사회는 납북자에 대해 엄청나게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 개의 취재기획 중 납북이라는 주제가 채택된 것은 일본 사회가 이에 대해 얼마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일본에서는 납북자에 대한 이슈가 몇 년간 신문 1면 톱을 장식할 정도로 큰 것이라는 사실을 취재 시작 이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수시로 1면 톱에 납북자 사건이 소개돼 왔고, 최근 10여 년간 가장 큰 정치사회적 이슈라 해도 무방하다는 것.
그는 납북자 취재를 위해 2008년과 2009년, 이번 2010년 5월까지 일본과 한국을 각각 세 번씩 방문했다. 내년에도 한 번 더 방문할 계획이다. 취재원은 주로 일본과 한국의 언론보도를 분석해 선정하고 있다.
그는 한국에서 귀환 납북자들과 미디어 관계자, 탈북자, 정부 관계자 등을 인터뷰했다. 인터뷰한 사람 중 주요 인물은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 귀환 납북자 이재근ㆍ최욱일씨, 2000년 납북된 김동식 목사의 딸 등이다. 일본에서는 납북자 가족들과 후지모토 겐지(<김정일의 요리사> 저자) 등 탈북자, 언론인, 조총련 관계자들을 인터뷰했다. 북한 방문 경험은 없다. 그럴 계획도 없다.
“일본과 한국의 납북자 가족들은 미국인이 납북사건을 취재한다니까 얼마나 반가워하고 기뻐했는지 모릅니다. 특히 한국의 가족들은 그동안의 슬픔에 더해 오해와 설움을 당하기도 했었거든요.”
그는 일본과 한국의 취재환경 차이가 크다고 말했다. “납북자에 대한 일본과 한국의 관심과 태도는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일본의 높은 관심도에 비해 한국에선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는 것이 바로 납북자 문제입니다.”
그는 “요코다 메구미(일본의 대표적인 납북자-편집자 주) 사건 등 납북자에 대한 일본 정부와 사회의 높은 관심에 놀랄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높은 관심도가 꼭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를 정치적 이슈로 활용하는 우익단체들이 많습니다. 또 흥미 위주의 얘깃거리로 전락하기도 하고요.”
납북자에 대한 진실은
보인턴 교수는 “일본에서는 납북자에 대한 관심이 너무 많다 보니 유언비어가 확대재생산되거나 정확지 않은 진실이 떠도는 현상이 있다”고 지적했다. 일례로 보인턴 교수는 일본 니가타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을 소개했다.
니가타의 어느 도시인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취재와 별 상관없이 그냥 돌아다닌 적이 있는데,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요코다 메구미를 알고 있었다는 것. 신기하기도 하고 흥미로워서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요코다 메구미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다기보다는 대부분 들은 얘기나 확실치 않은 이야기를 전하는 정도였고, 의견도 분분했다. 메구미 가족에 대한 정보도 엇갈리는 게 많았다. 요코다 메구미의 집을 물어보자 모두 각자 다른 집을 지목하곤 했다.
특히 어떤 여자아이가 메구미의 집을 알려주겠다며 그를 데리고 갔는데, 조사했던 바와 많이 달랐다. 알고 보니 그 집은 TV드라마 촬영 시 메구미의 집으로 사용됐던 곳이었다고 한다. “요코다 메구미에 대해 드라마와 영화, 심지어 대중가요까지 만들어졌어요. 그런 현상들이 진실을 규명하는 데 도움이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이슈를 흥미 위주로 만들어버린 것이죠. 납북자에 대한 너무 높은 관심이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온 셈입니다.”
한국 정부가 왜 북한에 문제제기를 못할까 이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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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납북자 가족들이 미귀환 납북자 귀환을 촉구하며 납북자의 이름을 부르는 행사를 열었다. |
“한국에서는 절반은 납북자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하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납북자 문제를 일부러 기피하고 외면하고 있다고 봅니다. 일본에서는 납북자 문제는 정말 심각하고 당연히 모든 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어요.”
또 일본에서 납북자는 인도적인 이유로 동정의 대상이 되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납북자에게 ‘낙인’이 찍힌다는 점이 다르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이념 때문에 나라가 분단됐고 전쟁을 겪는 등, 역사적인 배경에 따라 납북자에게 낙인을 찍는 현상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인도주의라는 차원에서 볼 때 그건 정말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본인의 의지로 간 것이 아니며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일 뿐인데 왜 그들을 색안경을 끼고 보아야 합니까?”
보인턴 교수는 한국의 납북자 가족들을 처음 만났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납북자 가족들이 주변사람들에게서 따가운 눈총을 받고 공공기관의 감시까지 받은 적도 있다고 이야기할 때 전 제가 잘못 알아들었거나 통역이 실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동정과 지원을 받아도 부족할 형편인데 한국에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같은 맥락에서 ‘KAL기 폭파범 김현희 사건 조작설’에 대해서도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한과 미국의 자작극이라는 의견이 있다는 것을 한국의 한 언론인을 인터뷰하며 처음 알았습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가 미친 사람이 아닌가’라고 생각할 정도였죠. 나중에 그런 음모론이 공영방송에서 방영될 만큼 한국 내에 상당히 퍼져 있다는 것을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미국 내에서도 9·11테러 자작설 등 많은 음모론이 있지만 말 그대로 ‘음모론’ 그 이상은 아니라며 ‘김현희 사건 조작설’도 일축했다. “한국 정부가 일부러 자국 항공기를 폭파시켰다니 그런 말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랍습니다. 한국 사회는 역사적ㆍ이념적 배경이 독특해서인지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아요.”
보인턴 교수는 한국에서 취재원들을 만나면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한국사회를 다시 보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동식 목사 납치범이 한국 감옥에 있는데 면회를 신청했지만 못 만났습니다. 재판 기록도 요청했지만 구할 수 없었어요. 한국 정부가 납북자 문제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를 취재하는 외국 언론인에게 그 정도는 공개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납북자 인권을 생각한다면 이런 행태는 좀 개선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인권존중의 면에서는 다소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떤 경우에도 모든 사람의 인권은 존중돼야 합니다. 인권이 정치적으로 희생된다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한국 정부와 사회는 납북 현실을 인권 측면에서 받아들이고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봐요.” 그는 “현 정부가 전 정부에 비해서는 납북자 문제에 적극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그는 납북자가족모임 최성용 대표에 대해 “납북자 문제와 관련해 가장 큰 성과를 이뤄낸 분”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첫 인상은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었어요. 납북자와 관련된 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한국에서는 물론 일본에서도 최 대표만큼 이 문제를 공론화하며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큰 성과를 가져온 사람은 없다고 봅니다.” 그는 납북 관련 자료가 희귀한 현실에서 그처럼 효율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정부를 상대로 납북자 가족지원법 등 제도적 지원책을 이끌어낸 사례는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알면 알수록 끔찍한 ‘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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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납북자의 가족들이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맨 오른쪽)에게서 사망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취재 후 출간될 그의 책 가제는 ‘방문자 구역(invited zone)’이다. “평양 근교에는 일본 납북자들을 모아놓고 철책을 쳐 놓은 뒤 그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구역이 있습니다. 그 이름이 ‘방문자 구역’이죠. 물론 모든 납북자가 한곳에 모여 사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에서 이유 없이 끌려온 사람들이 사는 곳, 기묘한 방문자 구역이 바로 북한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납북 이유는 폐쇄 정권의 정보 습득
그는 2년 반의 취재를 거쳐 무엇을 파악했을까. 보인턴 교수는 납북의 원인에 대해 “솔직히 아무도 이런 일이 왜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면서도 “사건별로 배경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외부 세계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전제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인 만큼 외부세계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합니다. 이를 상쇄하기 위해 외부인을 납치해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죠. 남한의 대학생을 납치해 대학생들에 대한 정보를 요구하기도 하고, 평범한 일반인을 납치해 공작원을 교육하는 교관으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또 남한 납북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어부들에게선 서민들의 삶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기도 하고요. 그러나 수십 년의 납북 행태를 볼 때 어떤 계층이나 대상을 선정해 납치한다기보다는 무작위적으로 납치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는 북한을 한마디로 ‘미스터리’라고 표현했다. “정말 지구상의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폐쇄적이라고 해서 외부인을 납치, 독재정권 유지를 위해 활용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어요. 공작원들에게 자본주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해서 일본에서 민간인을 납치한다니 이해가 됩니까? 김정일을 위해 영화를 만들라고(신상옥ㆍ최은희씨를 의미-편집자 주), 음식을 만들라고 납치한 케이스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공산주의 국가나 독재국가도 이런 일은 하지 않았어요.”
보인턴 교수는 “픽션보다 더 픽션 같은 이야기들”이라고도 말했다.
“납북자를 결혼시키기 위해 또 다른 사람을 납치합니다. 이게 북한입니다. 정말 누가 들어도 희한한 일이지요.” 보인턴 교수는 “미국인들은 납북자에 대해 잘 모를뿐더러,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전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책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나 이념적인 성향이 실릴지 궁금했다. “물론 알면 알수록 이상하고 충격적인 일이 많지만, 저널리스트인 만큼 본인의 시각을 넣지 않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논픽션으로 출간할 계획입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요. 철저하게 사실과 인터뷰 위주로 구성될 겁니다.”
2년 추가취재 후 책 출간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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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희씨가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의 가족을 만나고 있다. |
그는 2년 정도 더 심층취재를 한 후 책을 출간할 예정이다. “납북자 취재라고는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역사와 문화까지 심도 있게 연구해야 하는 작업”이라며 “초기엔 기초지식이 별로 없어 취재가 빨리 진행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당히 많은 배경지식을 토대로 연구내용이 모자이크처럼 짜맞춰지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20~30대 프리랜서 기자일 땐 쓸 수 없었던 심층취재를 하고 싶습니다. 이 같은 납북자 리포트도 프리랜서 기자로서는 쓸 수 없는 것이라 보람과 욕심이 생깁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미친 짓’일지도 몰라요. 내가 모르는 언어를 쓰는, 내가 잘 모르는 나라에서 한 번도 접해 본 적 없는 사실을 취재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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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납북자 요코다 메구미의 가족이 도쿄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취재 내용을 잡지 등에 시리즈로 낼 계획은 없느냐는 필자의 질문에 “이 내용은 최소한 책 한 권이 필요하다”며 “몇십 페이지의 기사로는 도저히 납북이라는 현상을 세계 독자에게 납득시키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취재 내용과 범위가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희미한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어요. 2년 정도 지나니 이제 윤곽은 잡히는데 조사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낄 정도입니다. 공부하면 할수록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고 있어요. 요즘은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에 대한 책을 읽고 있습니다. 사실 이전에 중동 등 다른 나라에 대한 연구와 취재도 많이 했었지만, 한국과 일본은 세계 어떤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민족주의를 갖고 있더군요. 한국과 일본의 역사, 한일관계 등을 파악해야 이 이야기(납북자)를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책에서도 기본적인 배경지식을 소개하면서 풀어나갈 계획입니다. 아시아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려고요.”
주변의 반응에 대해 물었다. “미국의 주변 사람들은 몇 마디만 듣고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미국인에겐 지나치게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미국사람들은 미국 외의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미국인들이 북한을 ‘위험한 나라’로 인식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나라 일에는 무심합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전 세계인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종ㆍ인권문제 관심 많은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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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80년대에는 어선 납북이 빈번했다. 선창에서 납북어부 소식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
그의 대표적인 기사는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Atlantic Monthly)> 1995년 2월호에 게재한
그는 한국 언론에 대해 “한글을 읽지 못하는 만큼 아직 판단할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거대신문 위주의 미디어 환경은 흥미롭다고 말했다.
“한국의 신문들은 독자층이 넓은데, 사람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는 아직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좌파와 우파 신문이 있다는 것도 이 취재를 시작하면서 처음 알았습니다. 미국의 신문들은 각자 어느 정도 이념적인 성향을 띠고 있긴 하지만 한국처럼 편향적인 매체는 없어요. 주관적인 견해를 싣긴 하지만 팩트(사실)와는 확실히 분리해서 팩트와 주관을 독자가 구분할 수 있게 표현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신문은 그렇지 않은 걸로 보입니다. 그래서인지 한국인들은 신문기사가 최종적인 진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념적 성향을 강조하다 보니 신뢰도를 스스로 잃는 경향이 있어요. 언론인 입장에서 볼 때 신기한 현상이지요.”
그는 또 한국에서 잡지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데 비해 미국에서는 잡지가 신문보다 신뢰도와 수익성 면에서 ‘잘되고’ 있다고 말했다. “나라마다 저널리즘 현황이 다르기 때문에 속단할 수는 없지만, 몇백만 부씩 팔려나가는 일간지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봅니다. 특히 일본은 매일 발행부수 300만 부가 넘는 매체가 5개가 넘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국 전체에서 150만 부를 발행하고 있는데 말이지요.” 그는 심도 있는 논픽션 저널리즘은 신문보다는 1만 자 이상의 기사를 쓸 수 있는 잡지를 통해 구현이 가능하다며 한국에도 이 같은 심층취재 위주의 잡지들은 장래가 어둡지 않다고 말했다.⊙
| ▣ 납북 현황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납북자라 함은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停戰) 이후 북한에 의해 납치, 북송된 사람들을 일컫는다. 북한은 정전 이후 한국인 3811명을 납치했고, 대부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514명은 북한에 억류돼 있다. 납북자의 대부분은 어부로 1970~1980년대에 집중적으로 납북됐으며, 지금까지 어선 132척이 납북됐다. 어부 외에도 교사, 광부, 택시기사, 군인, 회사원, 유학생 등 다양한 직종의 국민이 납북됐다. 미귀환 납북자들은 정치범수용소 등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그동안 납북 자체를 인정하지 않다가 2006년 제7차 적십자회담에서 납북의 존재를 인정했고, 2007년 미귀환 납북자의 가족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법이 제정됐다. 일본의 납북자는 한때 수백 명에 달했으나, 공식적으로는 모두 귀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인턴 교수는 “지금도 일본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납북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