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망하며 인생역전에 성공, 10년 만에 4개 금융계열사 거느린 회장으로 우뚝
⊙ 식자재 납품, 철거용역 회사, 원룸 건설, 인테리어, 부동산 경매, 건물 리노베이션, 심부름센터 등
7번 창업해 모두 실패. 신용불량자로 노숙자 생활까지
⊙ “IMF 직후 청·파산,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 부도, 퇴출 등 총체적인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라
몸이 잘리고 살이 뜯기며 국부(國富) 유출 과정을 지켜봐”
⊙ “골든브릿지는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지난 10년간 50여 개 부실기업을 회생시켜 연 100%가 넘는
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준, 그래서 금융업계에서는 작지만 강한 ‘구조조정의 미다스’”
⊙ “사실 자기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골라 해야 그 일을 오래하고 나중 전문가도 될 수 있다.
그런 일을 안 하고 그저 남의 가이드라인이나 좇아 사회적 허상에 맞춰 산다면 성공할 수 없다.
저는 제 재능에 없던 것을 좇으면서 많은 실패와 실수를 반복했다”
⊙ “돈 앞에 추잡해지는 인간 군상(群像)을 바라보며 ‘돈은 위험하다. 기회이자 위험물’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알카에다 폭발물’보다 더 위험하다”
⊙ “돈 버는 것이 곧 사회적으로 좋은 비즈니스가 되는 모델을 만들겠다”
李相駿
⊙ 1958년생. 서울대 공대 자원공학과 졸업.
⊙ 전태일 노동자료연구소 정보화팀장, 전국보험노동조합연맹 홍보부장, 국회의원 보좌관,
골든브릿지기술투자 대표, 쌍용캐피탈 대표, 브릿지증권 대표 역임.
⊙ 現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
⊙ 식자재 납품, 철거용역 회사, 원룸 건설, 인테리어, 부동산 경매, 건물 리노베이션, 심부름센터 등
7번 창업해 모두 실패. 신용불량자로 노숙자 생활까지
⊙ “IMF 직후 청·파산,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 부도, 퇴출 등 총체적인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라
몸이 잘리고 살이 뜯기며 국부(國富) 유출 과정을 지켜봐”
⊙ “골든브릿지는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지난 10년간 50여 개 부실기업을 회생시켜 연 100%가 넘는
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준, 그래서 금융업계에서는 작지만 강한 ‘구조조정의 미다스’”
⊙ “사실 자기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골라 해야 그 일을 오래하고 나중 전문가도 될 수 있다.
그런 일을 안 하고 그저 남의 가이드라인이나 좇아 사회적 허상에 맞춰 산다면 성공할 수 없다.
저는 제 재능에 없던 것을 좇으면서 많은 실패와 실수를 반복했다”
⊙ “돈 앞에 추잡해지는 인간 군상(群像)을 바라보며 ‘돈은 위험하다. 기회이자 위험물’이라고
생각했다. 돈은 ‘알카에다 폭발물’보다 더 위험하다”
⊙ “돈 버는 것이 곧 사회적으로 좋은 비즈니스가 되는 모델을 만들겠다”
李相駿
⊙ 1958년생. 서울대 공대 자원공학과 졸업.
⊙ 전태일 노동자료연구소 정보화팀장, 전국보험노동조합연맹 홍보부장, 국회의원 보좌관,
골든브릿지기술투자 대표, 쌍용캐피탈 대표, 브릿지증권 대표 역임.
⊙ 現 골든브릿지금융그룹 회장.
최고경영자의 표정은 회사의 분위기와 닮았다. 고객사로부터 돈이 입금되면 웃음이 가득하고 지출이 많거나 계약에 실패하는 날이면 상당히 어둡기 마련이다. 그러니 CEO의 표정은 일기예보다. 표정 하나하나에 회사 분위기가 좌우된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골든브릿지금융그룹 본사(옛 피어리스 빌딩) 6층 회의실에 들어서자 청바지 차림에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이상준(李相駿·52)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기자의 눈에 그는 분명 ‘회장의 풍모’가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만났을 때 엉겁결에 물 묻은 손이라도 내밀 것 같은, 돈깨나 벌었다고 폼 잡을 위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조금 지친 듯 보였지만 일에 푹 빠진, 금융사지만 왠지 ‘제조업 마인드’로 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회의실에서 자장면 시켜 때웠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거의 4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쏟아냈다. 해는 저물고 충정로 빌딩에 하나둘씩 등이 켜졌다. 그는 이야기할수록 더 신이 나 보였다. 첫인상에서 받은 ‘별난 보통사람’이란 이미지는 금방 사라졌다. 그는 날카로워 보였고 적자생존의 밀림에서 방금 돌아온, 마치 방청객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자기 연극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과 같았다.
이 흥미로운 사람은, 과거 학생운동을 하듯(그는 5년간 지하에 숨어 위장취업을 하고 노동자 조직을 만들었다) 회사 직원들을 금융업의 전사(戰士)로 ‘의식화’시키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호의적으로 보이려 유머감각을 과시하는 친절한 덕장(德將)의 이미지를 깡그리 없애버렸다. 스스로 전방 공수부대 ‘훈련교관’이라 말할 정도로, 여차하면 ‘얼차려’라도 줄 기세로 지난 10년간 회사를 운영해 왔다.
만우절인 2000년 4월 1일‘㈜벤쳐 인큐베이터’란 다소 어정쩡해 보이는 사명(社名)으로, 지인 50명으로부터 끌어모은 자본금 10억원으로 시작해 창업 10년 만에 순자산 1000억원의 금융그룹으로 도약했다. 투자증권사, 캐피탈, 자산운용사, 저축은행까지 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총자산에다 고객이 맡긴 예탁금까지 합치면 2조원에 육박한다. 창업 반년 만에 ‘황금빛 다리’를 상징하는 골든브릿지로 바뀐 사명이 제 값을 한 것이다.
―뭐로 그렇게 돈을 벌었나요?
“고물장사를 했어요.”
골든브릿지는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지난 10년간 50여 개의 부실기업을 회생시켜 연 100%가 넘는 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준, 그래서 금융업계에서는 작지만 강한 ‘구조조정의 미다스’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다. IMF 이후 중병을 앓거나 망해가는 ‘고물 기업’을 구조조정과 M&A로 살려내면서 노하우를 쌓은 것이다. 쇠 부스러기나 폐 전선, 찌그러진 알루미늄을 사고파는 고물장사가 아니었다.
기왕에 고물 얘기를 꺼냈으니 고물을 바라보는 기준이 뭔지 궁금해졌다.
“우선 고물은 가격이 싸야 합니다. 고물이라고 다 고물이 아닙니다. 콘텐츠가 중요하지요. 헌책은 외양만 험할 뿐이죠. 줄 치고 낙서된 것이라 하여 콘텐츠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이 먼저 중요하다고 줄 쳐 놓았으니 공부하기가 쉽죠. 내용은 괜찮은데 외양이 망가졌다 하면 고쳐 쓰면 되는 게 고물입니다.”
여기서부터 얘기는 술술 풀려 나갔다.
“지금은 금융그룹 회장이지만 저는 10년 전만 해도 금융의 ‘금’자도 몰랐던 파산자입니다. 신용불량자 시절,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들어가면서 금융과 연을 맺었어요. 서울대 운동권 서클 후배이던 김영선(金映宣·국회 정무위원장) 의원이 금배지를 달면서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78학번, 김 의원은 81학번입니다.”
그가 ‘파산자’이자 ‘신용불량자’였다는 말에 내심 놀랐지만 일단 얘기를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반체제 학생운동을 하다가 머리에 든 것도 없이 갑자기 국회 4급 보좌관을 한다? 배가 고프긴 한데, 그렇게 얻어먹기 싫어 고민을 좀 했죠.”
이 회장은 1997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거의 2년 반 가까이 국회 의원회관에 야전침대를 깔고 금융 공부를 했다고 한다. 김영선 의원이 국회 정무위 소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무위는 금융위, 금감원, 공정거래위, 자산관리공사 등의 정부기관을 감시·감독한다. IMF 직후 총체적인 구조조정의 폭풍이 몰아친 때여서 정무위 업무가 산더미 같았다.
“지긋지긋하게 자료요청을 하며 금융을 배웠어요. 배우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트였어요. 당시 한국은 IMF 캉드쉬 총재의 반(半) 식민지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청·파산,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 부도, 퇴출 등 총체적인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라 몸이 잘리고 살이 뜯기며 국부(國富)가 유출되었어요. 그 무시무시한 과정을 국회에서 고스란히 지켜보았지요.”
외국계 투기자본이 들어와 IMF 직후 1~2년 만에 한국의 토종기업과 자본을 헐값에 싹쓸이해 가자 이 회장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저게 대단한 선진 금융기업도 아니고 그냥 돌팔이로 구조조정 수술을 하는 거네. 알짜 고물(기업)을 싸게도 먹네, 아니 그냥 집어먹네.’
“외국계 펀드가 국내 자본을 죄다 잡아먹었습니다. 입찰은 요식이었고 헐값에 집어먹고 비싸게 되파는 식이었지요. 국회에서 막아보려 뛰어다녔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어요. 당시 정부나 기업, 은행 역시 제 살을 도려내는 상황이어서 투기자본을 막을 여력이 못 됐던 거지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투기자본이 우리 곳간을 헤집고 장롱 서랍까지 털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굴한 현실이 떠올랐다. 당시 이 회장 역시 피가 끓어올랐던 모양이다. 투기자본의 행태를 열심히 공부하며 연구한 끝에 2000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그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차리고 정글로 뛰어들었다.
금융주치의, 응급실 담당의
창업 초기 그는 론스타 등 해외자본으로부터 담보가 붙은 부실 채권을 사들여 돈을 벌었다. 한편으론 외국계 자본과 경쟁하며 신호스틸(現 휴스틸), 삼익악기, 프로칩스 등 법정관리 기업들의 구조조정 및 매각 자문에 나섰다. 남들이 생각지 못했거나, 생각은 했어도 실행할 수 없었던 거래에 뛰어들어 회사를 키워갔다.
이후 금융업에 진출하기 위해 쌍용캐피탈을 2003년 인수, 1년 만에 정상화시켰다. 현재 이 회사는 ‘골든브릿지캐피탈’이란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골든브릿지캐피탈은 인수 직후 힘든 고비를 겪었다고 한다. 소위 카드대란으로 부실을 메울 돈 한푼 구할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걸고 구걸하다시피 돈을 빌리려 돌아다녔다. 쉽지 않았다. 급기야 인수한 그해 마지막날 1차부도를 맞았다.
“결국 여기서 또 주저앉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죠. 모두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옆 건물에 있던 GE캐피탈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줬습니다. 국민은행에서도 할부채권을 사줬지요.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때 손길을 건넸던 GE캐피탈의 사장은 현재 이 회장 곁에 있다. 퇴직 후 그를 영입한 것이다. 이 회장은 “은덕을 받으면 피를 팔아서라도 보답한다는 지론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IMF로 부도 위기에 처한 신호스틸을 살려낸 것도 이 회장의 작품이다. 주채권자인 외국계 벌처펀드가 신호스틸의 250억원짜리 채권을 100억원에 사놓고 6개월 만에 200억원에 되팔려 시장에 내놓았다.
“칼만 안 들었을 뿐이지, 도둑이었어요. 200억원을 안 내면 회사를 파산하겠다고 했어요. 신호스틸을 100억원에 살 때도 10억원밖에 안 냈어요. 90억원은 받을 돈을 담보로 국내금융사에서 빌린 거지요. 법정관리 법령상, 채권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파산으로 가야 하는데 저는 열이 바짝 올랐어요. 투기자본은 그렇다 쳐도 검은 머리 한국인이 외국계 회사에서 앞잡이 노릇 하는 것을 보니까 열이 났어요. 억울하기도 하고.”
이 회장은 신호스틸의 인수 컨소시엄 대표로 투기자본을 제외한 80개 채권자와 협상을 벌였다. 또 회사 임원들이 관련 법 조항을 이 잡듯이 뒤져 회사정리법에서 권리보호 조항을 찾아냈다. 당시 그 법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이 법은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었는데 법조인들도 몰랐어요. 사문화된 법 조항을 우리가 찾아내 투기자본과 맞서 싸웠습니다. 서울지방법원의 파산부 판사들에게 그런 조항을 보여주니 ‘응 그런 것 있네!’ 하더라고요. 그 덕에 파산부 판사들도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됐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외국자본에 합당한 논리를 댈 수 있었고 우리 역시 합당한 방어논리를 개발할 수 있었던 셈이지요. 어떻게든 길을 찾으면 열리기 마련입니다.”
―구조조정이라는 게 생살을 자르는 무시무시한 행위가 아닌가요.
“망해 가는 회사를 현재 상태에서 치유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멀쩡한 다리라도 잘라내야 합니다. 장애인이 돼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목숨을 내놓을래, 아니면 장애인으로 살래. 양자택일(兩者擇一)해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응급실 집도의는 거칠지만 사람이나 기업을 살리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요.”
그의 어록을 살펴보니, 구조조정 일을 의사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골든브릿지그룹은 금융주치의이자 법인을 치료하는 의사, 그중에서도 응급실 담당의사”라는 것이다. 손에 피를 묻혀가며 궂은 일을 도맡아야 한다.
“우리는 남의 관심을 끌려고 뜯어고쳐주는 성형외과 의사가 아닙니다. 멀쩡한데 갑자기 금융사고가 나서 흑자부도가 난 젊은 환자, 혹은 완전히 뇌사상태인데 그대로 놔둬서 살릴 수 없다면 장기라도 떼어내야 해요. 그 장기로 환자 10명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부실 계열기업을 쪼개서 팔고 핵심기업에 보태주면 언젠가는 그 기업이 되살아나 이전의 건강상태를 회복할 수 있잖아요.”
고물을 보는 눈
그렇다고 아무 고물이나 다 살려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회생 가능한 기업의 조건으로 건전한 재무상태, 종업원의 의욕과 경영자의 경영능력, 기업의 업력(業歷)을 꼽았다. 특히 기업이 쌓아온 업력과 잠재력을 중시한다고 했다.
“투기자본이 부실기업이나 부실 금융기관을 살 때, 셈을 안 쳐주는 게 무형자산입니다. 지적재산권, 산업재산권은 셈을 해도 흔히 말해 ‘짬밥’은 안 쳐줘요. 기업이 가졌을 법안 잠재력은 평가를 안 합니다. 이 정도로 업력을 쌓고 이 정도의 거래와 고객을 가지고, 상품서비스 만들어낸 것을 그냥 내다버리고 새롭게 사람을 그러모아 거래를 시작하면 진입 시간이나 장벽이 얼마나 높겠습니까. 또 진입세력을 다 조직화시켜 맞추려면 내부 갈등비용이 더 늘어납니다. 기업이 갈고 닦은 업력이 바로 무형자산입니다. 부실기업은 그걸 안 쳐줘요. 그래서 싸게 살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잠재력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기업인수를 누가 가서 하느냐, 회전비용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느냐, 또 전략도 필요하지요. 돈, 사람, 전략 등 3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현재의 가치에서 잠재력을 발견해 복원시키는 것이 관건이지요. 심지어 부실기업 직원의 얼굴까지도 봅니다.”
―부도난 회사 직원들을 다 불러 세워 만나는 겁니까.
“직원을 샘플링해서 인터뷰를 하지요. 특히 노조원들도 만나 봅니다. 그들이 저항세력일 수도 있고 협조세력일 수도 있잖아요. 어쨌든 망가진 상태에서 그대로 두면 생존에 위협을 주니 서로에게 양보가 불가피하지요. 또 새 주인이 와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느니만큼 직원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야 합니다. 다시 회사를 살려내겠다는 의욕을 보는 거지요.”
―인상비평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요?
“여러 번 망해 봐서 사람을 보는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망하는 회사 직원들은 인상에도 문제가 있어요.”
이즈음에서 ‘여러 번 망해본’ 이 회장의 칠전팔기(七顚八起) 실패사(史)를 물었다.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이 뱅커가 되기까지
그는 처음부터 ‘저력 있는 뱅커(bank er)’가 아니었다. 9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물려받을 재산은커녕 이렇다 할 직장생활도 해 본 적이 없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금형공 자격증을 따서 지하로 숨어들어 운동권 선후배와 한 팀이 되어 노조결성을 지원하고 조직화했다. “5년간 지하에서 노동자로 있다가 다음엔 반(半) 공개로 노동자 의식교육을 했고 1987년 이후에는 수면으로 나와 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14년 동안 노동운동판을 맴돌았고 7번이나 창업해 모두 털어먹은 지지리도 복이 없던 사람이었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기 전 번번한 직장이라고는 ‘전태일 노동자료연구소 정보화 팀장(1987년)’과 ‘전국보험노동조합연맹 홍보부장(1989년)’이 고작이었다.
―하다가 털어먹은 사업이 도대체 몇 개입니까. 식자재 납품, 철거 용역, 원룸 건설, 인테리어 외에 또 뭐가 있나요.
“식자재 납품, 철거 용역회사, 원룸 건설, 인테리어, 부동산 경매, 건물 개보수, 심부름센터, 그리고 마지막엔 국회의원 보좌관도 했네요.”
―주로 건설과 관련된 일을 많이 했네요. 돈 되는 일만 좇은 것 아닌가요.
“그건 아니고요. 우연히 알게 된 테마타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990년대에도 대학강사나 대학원 박사과정 다니는 학생들은 월급이 쥐꼬리만 했습니다. 그땐 원룸이란 개념도 없었을 때였는데 서울 외곽에 땅을 싸게 사서 집을 지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카데미 테마타운’ 형태로 300가구를 지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조합식으로 돈을 모았지요. 취지는 좋았는데 어디 건설이란 걸 해 본 적이 있나요. 서로 물어가며 손을 보탰지요. 그러면서 부동산이나 건설 쪽 일을 알게 됐어요. 나머지 사업들은 이리저리 가다 오다 부딪히면서 우연하게 했어요. 누가 권유하기보다 거의 제가 선택했습니다.”
―그러다 사기당한 적은 없나요?
“사기당할 돈이 있어야죠. 웬만하면 몸으로 다 때웠죠.”
“그런데 계속 실패한 이유는 뭡니까”
라고 물은 뒤 “맷집이 좋은가 보다”고 중얼거렸더니 이 회장은 꽤 긴 이야기를 했다. 마치 실패를 연구한 사람같이 실패와 실수를 나눠 설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뚝이처럼 재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생담이었다.
“실패를 한다는 것은 의도했던 게 있었다는 뜻이지요. 의도한 게 없다면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는 자신에게 맞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다시 말해 자기 성격의 특성이나 장점에서 할 수 없는 것을 기대했기에 실패한 것입니다. 반면 실수는 어떤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행동을 잘못한 경우를 말하지요. 실수는 의도는 좋으나 과욕이나 나쁜 습성 때문에 생기는 사후적인 일이지요.
사실 자기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골라 해야 그 일을 오래하고 나중에 전문가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안 하고 그저 남의 가이드라인이나 좇아 사회적 허상에 맞춰 산다면 성공할 수 없어요. 저는 제 재능에 없던 것을 좇으면서 많은 실패와 실수를 반복했던 셈이지요.”
―실패를 밥 먹듯이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무엇인가 시도하는 사람만이 실패하기 때문에 도전하려는 욕망이 더 생겼어요. 실패 경험이 자양분이 된 셈이지요. 따지고 보면, 건물 리모델링이나 폐기물 재활용 일은 지금의 구조조정 금융업과 다 연결이 돼 있어요. 모두 리사이클링(recycling·재생) 하자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 실패란 성공과 연결돼 있다고 봅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면서 자신이 무슨 부적절한 생각 때문에 안 되는지, 잠재된 능력이나 지향하는 바가 올바른 것인지 내면을 탐색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저 허상을 뒤쫓는 것이 아닌지 구분할 능력이 생겼다고 한다.
―내면 탐색 결과가 무엇이었나요.
실패를 거듭하면 누구나 마음이 편협해지고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제 성격을 분석해 보니, 창조적인 것을 아주 좋아하고 진부한 것을 싫어하더라고요. 그것도 약간 창조적인 게 아니고 대단히 창조적인 것, 제가 공돌이(공대 출신) 출신이어서인지 몰라도 개발·실험·첨단 그런 유(類)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지금의 금융업으로 이어졌나 봐요.”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마다 이 회장은 ‘우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버릇이 생겼다. 남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 줄 독창적 가치를 집중해서 팠다. 국지전(局地戰)의 게릴라 부대처럼 발 빠르게 신규시장을 찾아 선점하는 데 집중했다. 먼저 치고 들어가 돈을 벌면 곧바로 대형 금융기관이 쫓아와 같은 일을 시작한다. 그럼 이 회장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다. 정규군이 들어오면 게릴라 부대는 퇴각하기 마련이다.
“경쟁 없는 시장을 만들려고 나름 애썼어요. 우리가 돈을 벌면 주위에서 ‘게네들이 무슨 돈 벌겠어?’ 하고 처음엔 팔짱을 끼고 봐요. 그런데 계속 돈을 버니까 ‘저게 뭔지 알아봐’ 하거든요. 그럼 우리는 ‘큰형님들’이 따라오기 전에 빨리 도망가요. 정규군과 정면 대결해선 못 이겨요. 일종의 게릴라전인 셈이지요. 우리가 만든 영역에 대형기관이 들어와 자기네끼리 싸우다 폭삭 망하기도 하지요. 그때 우리가 다시 들어와 거저먹지요. 그런 창의적 영역, 마치 작가적 마인드로 사업을 만들어야 해요. 그러려면 깊이 파야 해요. 얼치기로 팠다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창조적 장인, 예술적 지향이 강한, ‘금융쟁이’를 지금까지 지향해 왔어요.”
―학창시절에도 창조적이었나요.
“대학시절 얌전했지요. 의식화된 선배들을 만나 ‘삐딱선’을 탔어요. 그게 비판적 시각을 틔우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학과 공부 대신 역사나 철학, 사회학을 공부하며 세상을 삐딱하게 본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대학 성적은 어땠나요.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성적이 2.7인가, C+밖에 안됐어요. 별로 안 좋죠. 대학 다니기도 싫어했는데….”
도전 안 하면 실패할 용기도 안 난다
실패 얘기를 이쯤에서 멈추려고 하는데 자꾸 얘기가 길어졌다.
“조언해 주는 이도, 당연히 돈을 대주겠다는 이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낙담할 수 있나요. 혼자 중앙도서관 가서 몇 년 치 신문과 잡지를 스크랩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학습했어요. 저는 아무래도 학습능력이 있나 봐요. 배우고 익히고 그걸 현실에서 구현하는 걸 좋아합니다. ‘공돌이’여서 그런가요?”
그는 회사 직원들에게도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실패를 무자비하게 대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해요. ‘도전해봐. 조금 지나면 실패할 용기도 안 나.’ 사실 월급쟁이로 결박되면 도전을 두려워해요. 그게 딱해요. 전 노숙자 생활까지 해봤는데 (실패해도) 죽는 게 아니더라고요.”
―진짜 노숙자 생활을 해봤나요.
“해봤죠. 마지막으로 건물 개보수 사업을 할 때였는데 서울 양재동에 있는 슬럼 같은 건물 지하에서 1년 가까이 살았죠.”
그땐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을까.
“전 웬만해서 좌절을 안 해요.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해놔서 긍정적이죠. 운동권에서 비판적 사고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낙천적인 성격을 숨길 수 없어요. 그리고 어떤 경우든 일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일이 취미죠. 우리 직원들이 저보고 워커홀릭(workaholic)이라고 하는데, 일과 공부가 제 취미입니다.”
남들은 그 취미를 ‘몹쓸 취미’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기자의 귀에는 그 말이 ‘돈 버는 취미’와 달리 들리지 않았다.
―주위사람들이 피곤해 하겠네요.
“피곤해 하지만 어쨌든 (제가) 해냈잖아요. 체제를 전복하려 한 운동권이었는데, ‘까짓것 열심히 한다고 잡혀가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걸 못해?’ 하는 오기가 생겼어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딱 알맞은 말이네요.
“에디슨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나는 똑똑하지 못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도 많지만, 그들이 일을 잘 구현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성공한 것’이라고요. 저는 오래 노력하는 스타일이고 저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제 뜻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지요.”
―실패했을 때, 주위의 격려나 동기가 힘이 된 경우는 없었나요.
배역도 못 받는 무명배우가 우연한 기회에 한다 하는 극단의 뮤지컬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가볍게 던진 한마디의 말, 따스한 격려가 세상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처럼 구제불능 실패자가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나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게 바로 삶이다. 판도라 같은 것이어서 더 삶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제가 강한가 봐요. 웬만한 것엔 굴복을 안 해요. 제 잘못이니 누굴 원망하나요. 마지막 사업이 부도났을 때 38%씩 연체이자를 냈어요. 남은 자산을 직원들에게 쪼개어 골고루 나눠줬어요. 그때 직원들이 ‘꼭 성공해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게 큰 힘이 됐어요. 남자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 의해 동기를 얻고 거기서 결판이 납니다. 남자는 직장에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를 겁니다. 동료와 모든 것을 걸 만한 ‘틀’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쨌든 직업적 성공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성공을 하든, 안 하든 말입니다. 타인이 모여 의기투합해 강도 높은 형태의 이익을 구하려면 세게 결판을 내야죠.”
―어떻게 세게 합니까.
“술 많이 먹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밤새워 일하는 것이죠. 미친놈처럼 일하면 됩니다.”
그에게 ‘가정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린다’고 어깃장을 놓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일은 좋아서 해야지, 누가 시킨다고, 혹은 (회사에) 출근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집념이 있어야 해요. 승부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성공모델을 자꾸 만들어줘야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투에도 이겨야 합니다. 밀리고 밀리다가도 한번 팍 이기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때는 제가 앞장서 지휘관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직원들에게 어떻게 돈 벌어오라고 합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돈 벌 수 있다고 합니다. 남들 따라가서는 곤란하죠. 새로운 비즈니스도 우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따집니다. 열 살 된 우리 회사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러나 명백하게 그려놓은 우리만의 노선이 있어요. 기업의 응급의(醫), 가정(주주)의 주치의, 고용(종업원)을 창출하자는 게 목표지요. ‘어느 펀드 잘 팔린다더라. 대박이다’ 하는 상품에 덤벼들지 말라고 지시하죠. 돈 버는 게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가치가 있나요. 죽어가는 기업, 채권자·주주·종업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회사를 다시 살려내고 동시에 돈도 버는, 그런 쪽의 가치를 찾으라고 직원들에게 얘기합니다. 그걸 못 찾으면 우리 회사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지요.”
잠은 3~4시간밖에 못 자
골든브릿지금융그룹은 지난 4월 1일 창사 10주년을 맞았다. 환란 이후 크고 작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문을 닫거나 외국계로 간판을 바꿔 달 때도, 이 회사는 고성장을 구가했다. 여신금융회사 쌍용캐피탈, 자산운용회사인 뉴스테이트자산운용, 종합 증권회사인 브릿지증권 등 퇴출과 청산 직전의 부실 금융기관 셋을 2003년 4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차례로 인수했다. 이 금융회사들은 재창업적 인수 1년 만에 거품과 이끼를 걷어내고 만년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됐다. 이 3종 세트가 오늘날의 골든브릿지를 만든 자산이다. 여기다 2009년 6월 광주와 전남 여수에 기반을 둔 상업저축은행을 흡수,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와 루트를 모두 확보한 금융지주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중에서도 브릿지증권 인수는 골든브릿지가 도약하는 데 커다란 날개가 됐다는 게 중평이다. 특히 브릿지증권의 노조가 직접 그를 찾아와 인수를 부탁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2005년으로 되돌아가 인수과정을 더듬어 보면 이렇다. 7년 가까이 단물을 쪽쪽 빨아먹던, 말레이시아의 조세회피지역에 본사를 둔 외국계 투기펀드가 마침내 손을 털고 한국을 떠날 계획을 세웠을 때였다. 그들은 외국계 투자자들끼리 돈을 그러모아 만든 사모(私募)펀드였다. 이익을 챙길 만큼 챙겼고 그 결과 증권사 곳간은 텅텅 비게 되었으며 해마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회사를 직원들이 살려내려고 어느 날 이 회장을 찾아왔다.
“그러니까 그해 4월쯤인가, 외국계 대주주가 브릿지증권의 단물을 다 빼먹고 껍데기만 남겨 놓은 상태였어요. 심지어 회사를 청산하면 마지막 단물까지 더 빼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지 청산을 결정하고 매각협상에 나서면서 불평등한 협상을 요구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노조가 회사를 살리려 꽹과리를 치고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었어요. 그때 저를 찾아와 브릿지증권을 인수해 달라고 하더군요. 이전에 노조원들을 알고 있었느냐고요? 그럼요. 제가 노동운동을 했고 보험노련에서 홍보부장을 했으니 선후배 관계가 있었죠.”
노조는 이 회장에게 우리사주신탁제도(ESOP)를 통한 공동인수를 제안했다. 그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투자금융그룹을 꿈꾸던 그에게 증권사 인수는 필수였고 직원들이 다시 한 번 살아보겠다고 떨쳐나서면 못할 게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벼랑 끝에 내몰린, 와장창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회사를 사들였다.
“브릿지증권은 골든브릿지투자증권으로 간판만 바꾼 게 아니라 외국계 투기자본의 철수로 청산 직전에 이른 부실 증권사를 재창업적으로 흡수해 5년 연속 적자를 인수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어요.”
―상장 폐지된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은 없던가요?
“사실 창업 당시부터 증권사를 비롯해 자산운용, 은행, 보험, 신협을 아우르는 금융그룹 설립을 생각해 왔기 때문에 증권사 인수는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었어요. 브릿지증권은 당시 상장 폐지된 상태였으나 인수하는 데 걸림돌은 아니었습니다. 인수하게 되면 재무구조가 자연스럽게 개선되고, 이익구조개선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수기준에 상장은 필수가 아닙니다. 먹고 튀는 투기를 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내재가치가 우선 아닙니까?”
“둘 중 하나는 망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골든브릿지라는 사명(社名)과 브릿지증권의 사명이 묘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양사가 동일 계열사인 양 이름이 엇비슷하다. 어찌된 영문일까.
“‘㈜벤쳐 인큐베이터’라는 상호를 3~4개월간 쓰다가 ‘더는 산부인과 같은 이름으론 안 된다’고 해서 바꿨지요. 그게 2000년 10월이었습니다. 골든브릿지로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하려는데, 글쎄 브릿지증권에서 우리보다 하루 먼저 똑같은 이름으로 등록을 했더라고요. 우연치고는 묘하지요. 대단히 화가 났죠. ‘좋다. 우리가 먹든지, 먹히든지 둘 중의 하나는 망한다’고 각오했어요. 물론 그때만 해도 우리가 브릿지증권을 인수하는 일은 요원한 일이었죠. 말이 씨가 된다고, 5년 만에 우리가 브릿지증권을 거짓말처럼 인수해 둘 다 살린 겁니다.”
―놀랄 일이네요.
“당시 우리 회사의 자본금이 10억밖에 안됐는데 브릿지증권은 수천억원이나 됐어요. 비교할 수가 없지요. 나중에 법적으로 걸면 로열티를 내겠다는 생각에서 그냥 ‘골든브릿지’라는 이름을 썼어요. 당시 브릿지증권도 조그마한 우리를 신경도 안 썼어요.”
―사업을 시작할 당시 직원 수는 몇 명이었나요.
“저 혼자 시작했는데 한 명씩 직원 수를 늘려갔어요. 1년 지났을 때 4~5명 됐나요? 잠을 3~4시간밖에 못 자고 일에 매달렸어요.”
한 회사가 창업해 10년을 버티는 경우는 1%도 안 된다고 한다. 100개 회사 중 1개도 못 버티고 명멸한다는 얘기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시장의 법칙치고는 무시무시하다.
“10년간 살아남아 법인세와 갑근세를 내는 법인이 100개 기업 중 1개도 안 된다고 하더군요. 처음 10억원에서 출발, 10년 동안 순자산을 100배나 늘리기까지 쉬운 일이 아니죠. 한마디로 죽어나죠. 저보고 1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하라면 못합니다. 그때는 우리에게 돈 대는 이도 없었고, 그냥 버는 대로 올인해서 수익을 냈어요. 성공을 위해 내부 에너지를 모으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가진 게 사람밖에 없으니 저는 욕먹는 자리를 자처했어요. 그리고 잘하는 일에, 강점 중심으로 밀어주겠다고 했어요. 왜냐면 못하는 것을 극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성공 드라이브는 주효했고 ‘전부 혹은 전무’로 다 걸었습니다.”
―직원들을 달달 볶았겠네요.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은 제 마음대로 설득이 안 되니, 직원들에게 ‘작가정신을 가지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어요. ‘바보 같아도 그려라. 자꾸 쓰면 나아진다’고요. 자꾸 습작을 시켰고 ‘팔릴 수 있는 작품을 그려라. 그러다 어느 날 작품이 나온다. 스스로 성공 스토리를 쓰라’고 했습니다. 전방 공수부대처럼 고강도 훈련을 시켰어요. 직원에게 좋은 평가받고픈 마음을 버렸습니다. 좋은 평가받고 싶은 사장은 나쁜 교사와 같다고들 하더군요. 고된 훈련을 강요하는 훈련교관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직원 입장에서는 쉬지 않고 달달 볶는 CEO를 보면 속이 터질 만도 하다. 밤낮없이 일해서 사장 좋은 일만 시키는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회장은 최고경영자라면서 혼자 뒷짐지고 빈둥거리며 직원들이 잠깐 쉬고 있으면 그걸 못 참고 잔소리를 해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직원들을 ‘의식화’시켰다. 직원 중에는 도저히 못 이겨 퇴사하고 재입사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가르친 ‘이상준 문하생’이 얼마나 되나요.
“제 손을 거쳐 직접 가르친 경우가 최하 300명은 되지요. 현재 직원까지 포함하면 500여 명 되겠죠. 제가 특정한 딜, 특정한 거래에 대해 ‘이렇게 하면 돼 혹은 안 돼’라든가 ‘공부해 와’, ‘다시 만들어’라는 방식으로 직원 한 명 한 명을 관장하는 스타일로 가르쳤어요.”
―가혹하게 가르친 만큼 보상을 충분히 했나요?
“얼마나 가혹한지 해보자는 식이었어요. ‘나와 3년 만 일하면 어딜 가도 대접받는다. 창업해도 성공한다. 3년 만에 사장 못하면 나가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고객의 금융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리스크를 전방위로 극복하려면 실력밖에 없어요.”
“덕장이냐 운장이냐”
흔히 맹장(猛將)은 용장(勇將)을 이길 수 없고 용장은 지장(智將)을 이길 수 없으며 지장은 덕장(德將)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병법이나 리더십을 거론할 때 인용하는 문구지만 때로는 운장(運將)이 덕장보다 낫다는 말을 한다. 사실 덕장이 이끄는 회사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직원을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를 부여하고 다시 평가하는 경영자라야 성공할 수 있다. 직원에게 ‘인심 좋은’, ‘싫은 소리 못하는’ 사장만 되려고 하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그는 덕장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저요? 아직 덕장 급(級)에 못 미칩니다. 기대도 안 합니다. 그저 열심히 배우는 최고경영자일 뿐이죠. (조심스러워 하며) 운장은 맞는다고 보지만, 나머지는 그저 배우는 학생입니다. 더 많이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CEO는 누구나 1분에 얼마씩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상존한다.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다.
“시간비용이 제일 많이 들지요. 나인투파이브(9 to 5)를 인정 안 해요. 출퇴근시각 지킨다고 산출물이 보장되나요? 아닙니다. 앉아서 넥타이 매고 문학작품이 안 나와요. 전통적 노동관이 이미 바뀌었는데 그걸 인정 안 하고 따지고 드는 것은 어이없는 행태지요.”
그렇다고 출퇴근 시각은 아예 무시하느냐고 했더니, “지하철에 있든, 스타벅스 커피에 있든 회사 서버에 로그인하는 시간은 본다”고 귀띔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협업(協業)을 해야 하는 일이니, 어디 있든 서로 채팅을 해야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잖아요. 그 정도의 약속은 합니다. 굳이 출근해서 교통체증이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필요는 없지요. 한번은 이런 조사를 한 경우도 있어요.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의 로그인 시각을 체크한 경우가 있었는데, 실적은 좋은데 로그인 시각이 늦은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어요. 주요 변수는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직원을 채용할 때 어떤 관점에서 뽑나요.
“우리는 패잔병만 남은 회사만 인수해 왔습니다. 망가진 회사를 인수하면 사람은 덤으로 옵니다. 10년 동안 신입사원 공고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엉망진창이 된 폐품을 쓸고 닦아서 재활용했습니다. ‘고생할 사람은 남고, 아니면 지참금 줄 테니 나가라’고 했어요. 대부분 있던 사람들도 다시 일구는 작업을 했지요.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서는 10년 뒤를 봐야 하는데, 비전을 제시 못 한 채 직원 뽑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회사를 세우고 5년 동안은 1년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내년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다 당장 먹을 ‘끼니’조차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5년은 3년 뒤를 내다보고 회사를 경영했고 10주년을 맞은 올해는 10년 뒤인 2020년의 비전을 세울 상황이 됐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비전이 무엇인지 궁금해 회사 홈페이지(www.goldenbridgefg.com)를 찾았더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시아 곳곳에서 선진 금융자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골든브릿지 금융맨이 되자. 투자금융(Investment Banking), 기업금융(Industrial Banking), 국제금융(International Banking)을 융합시켜 가정, 기업, 정부 등 여러분의 재정적 고민을 함께 풀어갈 금융 주치의가 되자.>
그는 “새로운 비전을 세웠으니 비전에 부합된 신입사원을 뽑겠다”고 했다.
“비전을 안 그린 상태에서 직원을 뽑으면 얼마 안 가 금방 기존 직원에 오염이 됩니다. 새로운 고객, 세대를 위해 10년을 준비하려고 신입사원을 뽑을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들은 아마 한국에는 조금 있고, 대부분 해외에서 활동하게 될 겁니다. 어떤 사람을 뽑을 것이냐, 저는 차라리 듣고 쓰고 말하고 읽기를 잘하는, 그러니까 국어 실력이 좋고 문사철(文史哲)이 뛰어난 사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해야 하니까요.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해 온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된 사람이면 좋겠어요.”
“돈 버는 것이 사회에 유익한 비즈니스를 하겠다”
―‘나만 믿어라’는 말을 자주 하나요?
“저는 제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직원에게 떠넘기지 않습니다. 고객이 맡긴 돈에다 위험을 전가 안 시키듯 제가 최고경영자로 감수해야 할 것을 아무에게도 안 맡깁니다. 권한과 책임은 서로 등가(等價) 관계고 기회와 보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임승차할 생각은 안 합니다.”
그에게 돈의 실체를 물었더니 ‘알카에다 폭발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돈맛을 경험한 사람이 돈에 대해 무섭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래도 돈맛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 모든 소시민의 소망이 아닌가.
“처음엔 돈을 몰랐어요. 돈이 없었으니 돈 원망도 했지요.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몰락하기 이전의 풍요로움을 겪을 수도 없었어요. 부자에 대한 원망, 출발의 불평등에 분노했지만,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를 갔으니 원망할 처지도 못 되지요. 어쨌든 금융업 하면서 세상 일은 돈 때문에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돈 앞에 추잡해지는 인간 군상을 바라보며 ‘돈은 위험하다. 기회이자 위험물’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알카에다 폭발물’보다 더 세다는 것을 점점 느껴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광산에서 다이너마이트처럼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잖아요. 직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합니다. ‘돈을 위험물 다루듯 만지라’고요. 또 위험물 취급자로서의 도덕성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사업과 가정 양쪽 모두를 잘 일군 분들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분들이겠지요. 제가 사업에서 성공한들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할 겁니다. 그나마 그렇지 못한 분이 대부분이니 감사해합니다. 제겐 그런 복까진 없나 봅니다. 저는 덕장처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하는 사람이 못 됩니다. 그 부분에선 미달이지요.”
―앞으로 덕장이 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네요.
“덕장이 된들 가족을 못 챙긴 부분에 대한 것은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아요. 자식이나 마누라는 원래 우리의 영원한 ‘보증채권자’이거든요. 죽어야 해소가 되는….”
이 회장은 “사업에 매진하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사업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적어도 30년 동안 사업을 해야, 사업이란 말을 쓸 수 있어요. 10년쯤 되니까 남들에게 회사를 경영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지, 그전에는 ‘10년 안 된 회사가 회사냐?’고 말하곤 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100배 성장을 했듯이 그 탄력으로 10년 뒤엔 또 다른 100배 성장을 할 겁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계속 게릴라전을 벌일 겁니까.
“과거 10년은 생존을 위해 경쟁구도를 피해 갔어요. 그 결과 춘추전국시대의 작은 국가로 자리 잡게 됐어요. 앞으로는 게릴라 형태로는 부족하고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로 승부를 걸어야지요. 돈을 버는 것이 곧 사회적으로 좋은 비즈니스가 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습니다. 오진(誤診)하지 않으려면 자기 이익에서 벗어나 객관·타당해야 합니다. 의사가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종업원과 주주, 채권자의 고통을 덜겠어요. 과거처럼 쓰레기를 치우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금융 트렌드로 10년을 앞당기겠습니다.”⊙
사진 : 서경리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골든브릿지금융그룹 본사(옛 피어리스 빌딩) 6층 회의실에 들어서자 청바지 차림에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쓴 이상준(李相駿·52) 회장이 손을 내밀었다. 기자의 눈에 그는 분명 ‘회장의 풍모’가 아니었다. 화장실에서 만났을 때 엉겁결에 물 묻은 손이라도 내밀 것 같은, 돈깨나 벌었다고 폼 잡을 위인으로 보이지 않았다. 조금 지친 듯 보였지만 일에 푹 빠진, 금융사지만 왠지 ‘제조업 마인드’로 일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점심을 회의실에서 자장면 시켜 때웠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거의 4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쏟아냈다. 해는 저물고 충정로 빌딩에 하나둘씩 등이 켜졌다. 그는 이야기할수록 더 신이 나 보였다. 첫인상에서 받은 ‘별난 보통사람’이란 이미지는 금방 사라졌다. 그는 날카로워 보였고 적자생존의 밀림에서 방금 돌아온, 마치 방청객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자기 연극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과 같았다.
이 흥미로운 사람은, 과거 학생운동을 하듯(그는 5년간 지하에 숨어 위장취업을 하고 노동자 조직을 만들었다) 회사 직원들을 금융업의 전사(戰士)로 ‘의식화’시키고 있었다. 직원들에게 호의적으로 보이려 유머감각을 과시하는 친절한 덕장(德將)의 이미지를 깡그리 없애버렸다. 스스로 전방 공수부대 ‘훈련교관’이라 말할 정도로, 여차하면 ‘얼차려’라도 줄 기세로 지난 10년간 회사를 운영해 왔다.
만우절인 2000년 4월 1일‘㈜벤쳐 인큐베이터’란 다소 어정쩡해 보이는 사명(社名)으로, 지인 50명으로부터 끌어모은 자본금 10억원으로 시작해 창업 10년 만에 순자산 1000억원의 금융그룹으로 도약했다. 투자증권사, 캐피탈, 자산운용사, 저축은행까지 4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데 총자산에다 고객이 맡긴 예탁금까지 합치면 2조원에 육박한다. 창업 반년 만에 ‘황금빛 다리’를 상징하는 골든브릿지로 바뀐 사명이 제 값을 한 것이다.
―뭐로 그렇게 돈을 벌었나요?
“고물장사를 했어요.”
골든브릿지는 구조조정 전문회사로 지난 10년간 50여 개의 부실기업을 회생시켜 연 100%가 넘는 수익을 투자자에게 되돌려준, 그래서 금융업계에서는 작지만 강한 ‘구조조정의 미다스’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다. IMF 이후 중병을 앓거나 망해가는 ‘고물 기업’을 구조조정과 M&A로 살려내면서 노하우를 쌓은 것이다. 쇠 부스러기나 폐 전선, 찌그러진 알루미늄을 사고파는 고물장사가 아니었다.
기왕에 고물 얘기를 꺼냈으니 고물을 바라보는 기준이 뭔지 궁금해졌다.
“우선 고물은 가격이 싸야 합니다. 고물이라고 다 고물이 아닙니다. 콘텐츠가 중요하지요. 헌책은 외양만 험할 뿐이죠. 줄 치고 낙서된 것이라 하여 콘텐츠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남이 먼저 중요하다고 줄 쳐 놓았으니 공부하기가 쉽죠. 내용은 괜찮은데 외양이 망가졌다 하면 고쳐 쓰면 되는 게 고물입니다.”
여기서부터 얘기는 술술 풀려 나갔다.
“지금은 금융그룹 회장이지만 저는 10년 전만 해도 금융의 ‘금’자도 몰랐던 파산자입니다. 신용불량자 시절,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들어가면서 금융과 연을 맺었어요. 서울대 운동권 서클 후배이던 김영선(金映宣·국회 정무위원장) 의원이 금배지를 달면서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78학번, 김 의원은 81학번입니다.”
그가 ‘파산자’이자 ‘신용불량자’였다는 말에 내심 놀랐지만 일단 얘기를 계속 들어보기로 했다.
“반체제 학생운동을 하다가 머리에 든 것도 없이 갑자기 국회 4급 보좌관을 한다? 배가 고프긴 한데, 그렇게 얻어먹기 싫어 고민을 좀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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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브릿지의 전신인 ‘(주)벤쳐 인큐베이터’의 창립총회 모습. 이상준(사진 왼쪽) 회장은 이 작은 회사를 10년 만에 금융지주회사로 키웠다. |
“지긋지긋하게 자료요청을 하며 금융을 배웠어요. 배우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야가 트였어요. 당시 한국은 IMF 캉드쉬 총재의 반(半) 식민지 지배 아래에 있었습니다. 청·파산, 법정관리, 화의, 워크아웃, 부도, 퇴출 등 총체적인 구조조정 수술대에 올라 몸이 잘리고 살이 뜯기며 국부(國富)가 유출되었어요. 그 무시무시한 과정을 국회에서 고스란히 지켜보았지요.”
외국계 투기자본이 들어와 IMF 직후 1~2년 만에 한국의 토종기업과 자본을 헐값에 싹쓸이해 가자 이 회장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저게 대단한 선진 금융기업도 아니고 그냥 돌팔이로 구조조정 수술을 하는 거네. 알짜 고물(기업)을 싸게도 먹네, 아니 그냥 집어먹네.’
“외국계 펀드가 국내 자본을 죄다 잡아먹었습니다. 입찰은 요식이었고 헐값에 집어먹고 비싸게 되파는 식이었지요. 국회에서 막아보려 뛰어다녔지만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어요. 당시 정부나 기업, 은행 역시 제 살을 도려내는 상황이어서 투기자본을 막을 여력이 못 됐던 거지요.”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투기자본이 우리 곳간을 헤집고 장롱 서랍까지 털 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비굴한 현실이 떠올랐다. 당시 이 회장 역시 피가 끓어올랐던 모양이다. 투기자본의 행태를 열심히 공부하며 연구한 끝에 2000년 4월 1일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그는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를 차리고 정글로 뛰어들었다.
금융주치의, 응급실 담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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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6년 9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베트남 펀드’출시 기념행사 모습. |
이후 금융업에 진출하기 위해 쌍용캐피탈을 2003년 인수, 1년 만에 정상화시켰다. 현재 이 회사는 ‘골든브릿지캐피탈’이란 이름으로 자리매김했다.
골든브릿지캐피탈은 인수 직후 힘든 고비를 겪었다고 한다. 소위 카드대란으로 부실을 메울 돈 한푼 구할 수 없었다. 그는 모든 것을 걸고 구걸하다시피 돈을 빌리려 돌아다녔다. 쉽지 않았다. 급기야 인수한 그해 마지막날 1차부도를 맞았다.
“결국 여기서 또 주저앉는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죠. 모두 저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옆 건물에 있던 GE캐피탈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줬습니다. 국민은행에서도 할부채권을 사줬지요.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때 손길을 건넸던 GE캐피탈의 사장은 현재 이 회장 곁에 있다. 퇴직 후 그를 영입한 것이다. 이 회장은 “은덕을 받으면 피를 팔아서라도 보답한다는 지론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
IMF로 부도 위기에 처한 신호스틸을 살려낸 것도 이 회장의 작품이다. 주채권자인 외국계 벌처펀드가 신호스틸의 250억원짜리 채권을 100억원에 사놓고 6개월 만에 200억원에 되팔려 시장에 내놓았다.
“칼만 안 들었을 뿐이지, 도둑이었어요. 200억원을 안 내면 회사를 파산하겠다고 했어요. 신호스틸을 100억원에 살 때도 10억원밖에 안 냈어요. 90억원은 받을 돈을 담보로 국내금융사에서 빌린 거지요. 법정관리 법령상, 채권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파산으로 가야 하는데 저는 열이 바짝 올랐어요. 투기자본은 그렇다 쳐도 검은 머리 한국인이 외국계 회사에서 앞잡이 노릇 하는 것을 보니까 열이 났어요. 억울하기도 하고.”
이 회장은 신호스틸의 인수 컨소시엄 대표로 투기자본을 제외한 80개 채권자와 협상을 벌였다. 또 회사 임원들이 관련 법 조항을 이 잡듯이 뒤져 회사정리법에서 권리보호 조항을 찾아냈다. 당시 그 법은 한 번도 써보지 못한 사문화된 조항이었다.
“이 법은 채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조항이었는데 법조인들도 몰랐어요. 사문화된 법 조항을 우리가 찾아내 투기자본과 맞서 싸웠습니다. 서울지방법원의 파산부 판사들에게 그런 조항을 보여주니 ‘응 그런 것 있네!’ 하더라고요. 그 덕에 파산부 판사들도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됐습니다. 이 과정을 거치며 외국자본에 합당한 논리를 댈 수 있었고 우리 역시 합당한 방어논리를 개발할 수 있었던 셈이지요. 어떻게든 길을 찾으면 열리기 마련입니다.”
―구조조정이라는 게 생살을 자르는 무시무시한 행위가 아닌가요.
“망해 가는 회사를 현재 상태에서 치유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멀쩡한 다리라도 잘라내야 합니다. 장애인이 돼야 살릴 수 있다면 그렇게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목숨을 내놓을래, 아니면 장애인으로 살래. 양자택일(兩者擇一)해라’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해요. 응급실 집도의는 거칠지만 사람이나 기업을 살리려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지요.”
그의 어록을 살펴보니, 구조조정 일을 의사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골든브릿지그룹은 금융주치의이자 법인을 치료하는 의사, 그중에서도 응급실 담당의사”라는 것이다. 손에 피를 묻혀가며 궂은 일을 도맡아야 한다.
“우리는 남의 관심을 끌려고 뜯어고쳐주는 성형외과 의사가 아닙니다. 멀쩡한데 갑자기 금융사고가 나서 흑자부도가 난 젊은 환자, 혹은 완전히 뇌사상태인데 그대로 놔둬서 살릴 수 없다면 장기라도 떼어내야 해요. 그 장기로 환자 10명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부실 계열기업을 쪼개서 팔고 핵심기업에 보태주면 언젠가는 그 기업이 되살아나 이전의 건강상태를 회복할 수 있잖아요.”
고물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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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1월 4일 이상준 회장이 베트남 판반 카이 총리와 면담하고 있다. |
“투기자본이 부실기업이나 부실 금융기관을 살 때, 셈을 안 쳐주는 게 무형자산입니다. 지적재산권, 산업재산권은 셈을 해도 흔히 말해 ‘짬밥’은 안 쳐줘요. 기업이 가졌을 법안 잠재력은 평가를 안 합니다. 이 정도로 업력을 쌓고 이 정도의 거래와 고객을 가지고, 상품서비스 만들어낸 것을 그냥 내다버리고 새롭게 사람을 그러모아 거래를 시작하면 진입 시간이나 장벽이 얼마나 높겠습니까. 또 진입세력을 다 조직화시켜 맞추려면 내부 갈등비용이 더 늘어납니다. 기업이 갈고 닦은 업력이 바로 무형자산입니다. 부실기업은 그걸 안 쳐줘요. 그래서 싸게 살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잠재력을 유심히 지켜봅니다. 기업인수를 누가 가서 하느냐, 회전비용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느냐, 또 전략도 필요하지요. 돈, 사람, 전략 등 3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현재의 가치에서 잠재력을 발견해 복원시키는 것이 관건이지요. 심지어 부실기업 직원의 얼굴까지도 봅니다.”
―부도난 회사 직원들을 다 불러 세워 만나는 겁니까.
“직원을 샘플링해서 인터뷰를 하지요. 특히 노조원들도 만나 봅니다. 그들이 저항세력일 수도 있고 협조세력일 수도 있잖아요. 어쨌든 망가진 상태에서 그대로 두면 생존에 위협을 주니 서로에게 양보가 불가피하지요. 또 새 주인이 와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하느니만큼 직원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야 합니다. 다시 회사를 살려내겠다는 의욕을 보는 거지요.”
―인상비평에 매달리는 것이 아닌가요?
“여러 번 망해 봐서 사람을 보는 노하우가 생겼습니다. 망하는 회사 직원들은 인상에도 문제가 있어요.”
이즈음에서 ‘여러 번 망해본’ 이 회장의 칠전팔기(七顚八起) 실패사(史)를 물었다.
지지리 복도 없는 사람이 뱅커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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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6월 베트남 호찌민 사무소 개소식 모습. |
국회의원 보좌관을 하기 전 번번한 직장이라고는 ‘전태일 노동자료연구소 정보화 팀장(1987년)’과 ‘전국보험노동조합연맹 홍보부장(1989년)’이 고작이었다.
―하다가 털어먹은 사업이 도대체 몇 개입니까. 식자재 납품, 철거 용역, 원룸 건설, 인테리어 외에 또 뭐가 있나요.
“식자재 납품, 철거 용역회사, 원룸 건설, 인테리어, 부동산 경매, 건물 개보수, 심부름센터, 그리고 마지막엔 국회의원 보좌관도 했네요.”
―주로 건설과 관련된 일을 많이 했네요. 돈 되는 일만 좇은 것 아닌가요.
“그건 아니고요. 우연히 알게 된 테마타운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1990년대에도 대학강사나 대학원 박사과정 다니는 학생들은 월급이 쥐꼬리만 했습니다. 그땐 원룸이란 개념도 없었을 때였는데 서울 외곽에 땅을 싸게 사서 집을 지으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카데미 테마타운’ 형태로 300가구를 지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조합식으로 돈을 모았지요. 취지는 좋았는데 어디 건설이란 걸 해 본 적이 있나요. 서로 물어가며 손을 보탰지요. 그러면서 부동산이나 건설 쪽 일을 알게 됐어요. 나머지 사업들은 이리저리 가다 오다 부딪히면서 우연하게 했어요. 누가 권유하기보다 거의 제가 선택했습니다.”
―그러다 사기당한 적은 없나요?
“사기당할 돈이 있어야죠. 웬만하면 몸으로 다 때웠죠.”
“그런데 계속 실패한 이유는 뭡니까”
라고 물은 뒤 “맷집이 좋은가 보다”고 중얼거렸더니 이 회장은 꽤 긴 이야기를 했다. 마치 실패를 연구한 사람같이 실패와 실수를 나눠 설명하는 것이었다. 물론 오뚝이처럼 재기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생담이었다.
“실패를 한다는 것은 의도했던 게 있었다는 뜻이지요. 의도한 게 없다면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는 자신에게 맞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다시 말해 자기 성격의 특성이나 장점에서 할 수 없는 것을 기대했기에 실패한 것입니다. 반면 실수는 어떤 행위를 하는 과정에서 행동을 잘못한 경우를 말하지요. 실수는 의도는 좋으나 과욕이나 나쁜 습성 때문에 생기는 사후적인 일이지요.
사실 자기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골라 해야 그 일을 오래하고 나중에 전문가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을 안 하고 그저 남의 가이드라인이나 좇아 사회적 허상에 맞춰 산다면 성공할 수 없어요. 저는 제 재능에 없던 것을 좇으면서 많은 실패와 실수를 반복했던 셈이지요.”
―실패를 밥 먹듯이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나요.
“무엇인가 시도하는 사람만이 실패하기 때문에 도전하려는 욕망이 더 생겼어요. 실패 경험이 자양분이 된 셈이지요. 따지고 보면, 건물 리모델링이나 폐기물 재활용 일은 지금의 구조조정 금융업과 다 연결이 돼 있어요. 모두 리사이클링(recycling·재생) 하자는 것 아닌가요? 그러니 실패란 성공과 연결돼 있다고 봅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면서 자신이 무슨 부적절한 생각 때문에 안 되는지, 잠재된 능력이나 지향하는 바가 올바른 것인지 내면을 탐색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지, 그저 허상을 뒤쫓는 것이 아닌지 구분할 능력이 생겼다고 한다.
―내면 탐색 결과가 무엇이었나요.
실패를 거듭하면 누구나 마음이 편협해지고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제 성격을 분석해 보니, 창조적인 것을 아주 좋아하고 진부한 것을 싫어하더라고요. 그것도 약간 창조적인 게 아니고 대단히 창조적인 것, 제가 공돌이(공대 출신) 출신이어서인지 몰라도 개발·실험·첨단 그런 유(類)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게 지금의 금융업으로 이어졌나 봐요.”
새로운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마다 이 회장은 ‘우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따지는 버릇이 생겼다. 남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해 줄 독창적 가치를 집중해서 팠다. 국지전(局地戰)의 게릴라 부대처럼 발 빠르게 신규시장을 찾아 선점하는 데 집중했다. 먼저 치고 들어가 돈을 벌면 곧바로 대형 금융기관이 쫓아와 같은 일을 시작한다. 그럼 이 회장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선다. 정규군이 들어오면 게릴라 부대는 퇴각하기 마련이다.
“경쟁 없는 시장을 만들려고 나름 애썼어요. 우리가 돈을 벌면 주위에서 ‘게네들이 무슨 돈 벌겠어?’ 하고 처음엔 팔짱을 끼고 봐요. 그런데 계속 돈을 버니까 ‘저게 뭔지 알아봐’ 하거든요. 그럼 우리는 ‘큰형님들’이 따라오기 전에 빨리 도망가요. 정규군과 정면 대결해선 못 이겨요. 일종의 게릴라전인 셈이지요. 우리가 만든 영역에 대형기관이 들어와 자기네끼리 싸우다 폭삭 망하기도 하지요. 그때 우리가 다시 들어와 거저먹지요. 그런 창의적 영역, 마치 작가적 마인드로 사업을 만들어야 해요. 그러려면 깊이 파야 해요. 얼치기로 팠다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창조적 장인, 예술적 지향이 강한, ‘금융쟁이’를 지금까지 지향해 왔어요.”
―학창시절에도 창조적이었나요.
“대학시절 얌전했지요. 의식화된 선배들을 만나 ‘삐딱선’을 탔어요. 그게 비판적 시각을 틔우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학과 공부 대신 역사나 철학, 사회학을 공부하며 세상을 삐딱하게 본 것이 큰 도움이 됐어요.”
―대학 성적은 어땠나요.
물어보나 마나 한 질문이었다.
“성적이 2.7인가, C+밖에 안됐어요. 별로 안 좋죠. 대학 다니기도 싫어했는데….”
도전 안 하면 실패할 용기도 안 난다
실패 얘기를 이쯤에서 멈추려고 하는데 자꾸 얘기가 길어졌다.“조언해 주는 이도, 당연히 돈을 대주겠다는 이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낙담할 수 있나요. 혼자 중앙도서관 가서 몇 년 치 신문과 잡지를 스크랩하고 새로운 트렌드를 학습했어요. 저는 아무래도 학습능력이 있나 봐요. 배우고 익히고 그걸 현실에서 구현하는 걸 좋아합니다. ‘공돌이’여서 그런가요?”
그는 회사 직원들에게도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얘기한다.
“우리는 실패를 무자비하게 대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해요. ‘도전해봐. 조금 지나면 실패할 용기도 안 나.’ 사실 월급쟁이로 결박되면 도전을 두려워해요. 그게 딱해요. 전 노숙자 생활까지 해봤는데 (실패해도) 죽는 게 아니더라고요.”
―진짜 노숙자 생활을 해봤나요.
“해봤죠. 마지막으로 건물 개보수 사업을 할 때였는데 서울 양재동에 있는 슬럼 같은 건물 지하에서 1년 가까이 살았죠.”
그땐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했을까.
“전 웬만해서 좌절을 안 해요. 어릴 때 고생을 많이 해놔서 긍정적이죠. 운동권에서 비판적 사고를 많이 했지만 그래도 낙천적인 성격을 숨길 수 없어요. 그리고 어떤 경우든 일하는 것을 좋아했어요. 일이 취미죠. 우리 직원들이 저보고 워커홀릭(workaholic)이라고 하는데, 일과 공부가 제 취미입니다.”
남들은 그 취미를 ‘몹쓸 취미’라고 부를지 모르겠지만, 기자의 귀에는 그 말이 ‘돈 버는 취미’와 달리 들리지 않았다.
―주위사람들이 피곤해 하겠네요.
“피곤해 하지만 어쨌든 (제가) 해냈잖아요. 체제를 전복하려 한 운동권이었는데, ‘까짓것 열심히 한다고 잡혀가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이걸 못해?’ 하는 오기가 생겼어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딱 알맞은 말이네요.
“에디슨이 이런 말을 했다지요. ‘나는 똑똑하지 못하고 나보다 나은 사람도 많지만, 그들이 일을 잘 구현할 수 있게 만들어줘서 성공한 것’이라고요. 저는 오래 노력하는 스타일이고 저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아요. 그런 사람들이 열심히 일해서 제 뜻을 구현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지요.”
―실패했을 때, 주위의 격려나 동기가 힘이 된 경우는 없었나요.
배역도 못 받는 무명배우가 우연한 기회에 한다 하는 극단의 뮤지컬 주연으로 발탁되기도 하는 게 인생이다. 가볍게 던진 한마디의 말, 따스한 격려가 세상을 크게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처럼 구제불능 실패자가 뒤집기에 성공한 것이나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되는 게 바로 삶이다. 판도라 같은 것이어서 더 삶에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제가 강한가 봐요. 웬만한 것엔 굴복을 안 해요. 제 잘못이니 누굴 원망하나요. 마지막 사업이 부도났을 때 38%씩 연체이자를 냈어요. 남은 자산을 직원들에게 쪼개어 골고루 나눠줬어요. 그때 직원들이 ‘꼭 성공해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게 큰 힘이 됐어요. 남자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 의해 동기를 얻고 거기서 결판이 납니다. 남자는 직장에 ‘전부 혹은 전무(All or Nothing)’를 겁니다. 동료와 모든 것을 걸 만한 ‘틀’이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쨌든 직업적 성공을 했다고 볼 수 있어요. 성공을 하든, 안 하든 말입니다. 타인이 모여 의기투합해 강도 높은 형태의 이익을 구하려면 세게 결판을 내야죠.”
―어떻게 세게 합니까.
“술 많이 먹고 다시 일터로 돌아와 밤새워 일하는 것이죠. 미친놈처럼 일하면 됩니다.”
그에게 ‘가정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린다’고 어깃장을 놓았더니 이렇게 답했다.
“일은 좋아서 해야지, 누가 시킨다고, 혹은 (회사에) 출근한다고 되는 게 아니죠. 집념이 있어야 해요. 승부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성공모델을 자꾸 만들어줘야 합니다. 전쟁에서 이기려면 전투에도 이겨야 합니다. 밀리고 밀리다가도 한번 팍 이기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때는 제가 앞장서 지휘관의 역할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해야 성공할 수 있어요.”
―직원들에게 어떻게 돈 벌어오라고 합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해야 돈 벌 수 있다고 합니다. 남들 따라가서는 곤란하죠. 새로운 비즈니스도 우리가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따집니다. 열 살 된 우리 회사는 아직 갈 길이 멀어요. 그러나 명백하게 그려놓은 우리만의 노선이 있어요. 기업의 응급의(醫), 가정(주주)의 주치의, 고용(종업원)을 창출하자는 게 목표지요. ‘어느 펀드 잘 팔린다더라. 대박이다’ 하는 상품에 덤벼들지 말라고 지시하죠. 돈 버는 게 사회에 기여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가치가 있나요. 죽어가는 기업, 채권자·주주·종업원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회사를 다시 살려내고 동시에 돈도 버는, 그런 쪽의 가치를 찾으라고 직원들에게 얘기합니다. 그걸 못 찾으면 우리 회사에 적합한 사람이 아니지요.”
잠은 3~4시간밖에 못 자
골든브릿지금융그룹은 지난 4월 1일 창사 10주년을 맞았다. 환란 이후 크고 작은 국내 금융기관들이 문을 닫거나 외국계로 간판을 바꿔 달 때도, 이 회사는 고성장을 구가했다. 여신금융회사 쌍용캐피탈, 자산운용회사인 뉴스테이트자산운용, 종합 증권회사인 브릿지증권 등 퇴출과 청산 직전의 부실 금융기관 셋을 2003년 4월부터 2006년 3월까지 차례로 인수했다. 이 금융회사들은 재창업적 인수 1년 만에 거품과 이끼를 걷어내고 만년적자에서 흑자로 반전됐다. 이 3종 세트가 오늘날의 골든브릿지를 만든 자산이다. 여기다 2009년 6월 광주와 전남 여수에 기반을 둔 상업저축은행을 흡수, 금융시장에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와 루트를 모두 확보한 금융지주회사로 발돋움하게 된다.
이 중에서도 브릿지증권 인수는 골든브릿지가 도약하는 데 커다란 날개가 됐다는 게 중평이다. 특히 브릿지증권의 노조가 직접 그를 찾아와 인수를 부탁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다.
2005년으로 되돌아가 인수과정을 더듬어 보면 이렇다. 7년 가까이 단물을 쪽쪽 빨아먹던, 말레이시아의 조세회피지역에 본사를 둔 외국계 투기펀드가 마침내 손을 털고 한국을 떠날 계획을 세웠을 때였다. 그들은 외국계 투자자들끼리 돈을 그러모아 만든 사모(私募)펀드였다. 이익을 챙길 만큼 챙겼고 그 결과 증권사 곳간은 텅텅 비게 되었으며 해마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회사를 직원들이 살려내려고 어느 날 이 회장을 찾아왔다.
“그러니까 그해 4월쯤인가, 외국계 대주주가 브릿지증권의 단물을 다 빼먹고 껍데기만 남겨 놓은 상태였어요. 심지어 회사를 청산하면 마지막 단물까지 더 빼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지 청산을 결정하고 매각협상에 나서면서 불평등한 협상을 요구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노조가 회사를 살리려 꽹과리를 치고 결사항전을 벌이고 있었어요. 그때 저를 찾아와 브릿지증권을 인수해 달라고 하더군요. 이전에 노조원들을 알고 있었느냐고요? 그럼요. 제가 노동운동을 했고 보험노련에서 홍보부장을 했으니 선후배 관계가 있었죠.”
노조는 이 회장에게 우리사주신탁제도(ESOP)를 통한 공동인수를 제안했다. 그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투자금융그룹을 꿈꾸던 그에게 증권사 인수는 필수였고 직원들이 다시 한 번 살아보겠다고 떨쳐나서면 못할 게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벼랑 끝에 내몰린, 와장창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회사를 사들였다.
“브릿지증권은 골든브릿지투자증권으로 간판만 바꾼 게 아니라 외국계 투기자본의 철수로 청산 직전에 이른 부실 증권사를 재창업적으로 흡수해 5년 연속 적자를 인수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어요.”
―상장 폐지된 회사를 인수하겠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은 없던가요?
“사실 창업 당시부터 증권사를 비롯해 자산운용, 은행, 보험, 신협을 아우르는 금융그룹 설립을 생각해 왔기 때문에 증권사 인수는 지속적으로 시도해 왔었어요. 브릿지증권은 당시 상장 폐지된 상태였으나 인수하는 데 걸림돌은 아니었습니다. 인수하게 되면 재무구조가 자연스럽게 개선되고, 이익구조개선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수기준에 상장은 필수가 아닙니다. 먹고 튀는 투기를 할 생각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의 내재가치가 우선 아닙니까?”
“둘 중 하나는 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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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10월 10일 ‘New CI’ 선포식에서 골든브릿지금융그룹의 깃발을 흔드는 이상준 회장. |
“‘㈜벤쳐 인큐베이터’라는 상호를 3~4개월간 쓰다가 ‘더는 산부인과 같은 이름으론 안 된다’고 해서 바꿨지요. 그게 2000년 10월이었습니다. 골든브릿지로 상표권을 특허청에 등록하려는데, 글쎄 브릿지증권에서 우리보다 하루 먼저 똑같은 이름으로 등록을 했더라고요. 우연치고는 묘하지요. 대단히 화가 났죠. ‘좋다. 우리가 먹든지, 먹히든지 둘 중의 하나는 망한다’고 각오했어요. 물론 그때만 해도 우리가 브릿지증권을 인수하는 일은 요원한 일이었죠. 말이 씨가 된다고, 5년 만에 우리가 브릿지증권을 거짓말처럼 인수해 둘 다 살린 겁니다.”
―놀랄 일이네요.
“당시 우리 회사의 자본금이 10억밖에 안됐는데 브릿지증권은 수천억원이나 됐어요. 비교할 수가 없지요. 나중에 법적으로 걸면 로열티를 내겠다는 생각에서 그냥 ‘골든브릿지’라는 이름을 썼어요. 당시 브릿지증권도 조그마한 우리를 신경도 안 썼어요.”
―사업을 시작할 당시 직원 수는 몇 명이었나요.
“저 혼자 시작했는데 한 명씩 직원 수를 늘려갔어요. 1년 지났을 때 4~5명 됐나요? 잠을 3~4시간밖에 못 자고 일에 매달렸어요.”
한 회사가 창업해 10년을 버티는 경우는 1%도 안 된다고 한다. 100개 회사 중 1개도 못 버티고 명멸한다는 얘기다. 강한 자만 살아남는 시장의 법칙치고는 무시무시하다.
“10년간 살아남아 법인세와 갑근세를 내는 법인이 100개 기업 중 1개도 안 된다고 하더군요. 처음 10억원에서 출발, 10년 동안 순자산을 100배나 늘리기까지 쉬운 일이 아니죠. 한마디로 죽어나죠. 저보고 10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하라면 못합니다. 그때는 우리에게 돈 대는 이도 없었고, 그냥 버는 대로 올인해서 수익을 냈어요. 성공을 위해 내부 에너지를 모으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어요. 그래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가진 게 사람밖에 없으니 저는 욕먹는 자리를 자처했어요. 그리고 잘하는 일에, 강점 중심으로 밀어주겠다고 했어요. 왜냐면 못하는 것을 극복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 성공 드라이브는 주효했고 ‘전부 혹은 전무’로 다 걸었습니다.”
―직원들을 달달 볶았겠네요.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장은 제 마음대로 설득이 안 되니, 직원들에게 ‘작가정신을 가지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어요. ‘바보 같아도 그려라. 자꾸 쓰면 나아진다’고요. 자꾸 습작을 시켰고 ‘팔릴 수 있는 작품을 그려라. 그러다 어느 날 작품이 나온다. 스스로 성공 스토리를 쓰라’고 했습니다. 전방 공수부대처럼 고강도 훈련을 시켰어요. 직원에게 좋은 평가받고픈 마음을 버렸습니다. 좋은 평가받고 싶은 사장은 나쁜 교사와 같다고들 하더군요. 고된 훈련을 강요하는 훈련교관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직원 입장에서는 쉬지 않고 달달 볶는 CEO를 보면 속이 터질 만도 하다. 밤낮없이 일해서 사장 좋은 일만 시키는 게 아니냐고 볼멘소리도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회장은 최고경영자라면서 혼자 뒷짐지고 빈둥거리며 직원들이 잠깐 쉬고 있으면 그걸 못 참고 잔소리를 해대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직원들을 ‘의식화’시켰다. 직원 중에는 도저히 못 이겨 퇴사하고 재입사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게 가르친 ‘이상준 문하생’이 얼마나 되나요.
“제 손을 거쳐 직접 가르친 경우가 최하 300명은 되지요. 현재 직원까지 포함하면 500여 명 되겠죠. 제가 특정한 딜, 특정한 거래에 대해 ‘이렇게 하면 돼 혹은 안 돼’라든가 ‘공부해 와’, ‘다시 만들어’라는 방식으로 직원 한 명 한 명을 관장하는 스타일로 가르쳤어요.”
―가혹하게 가르친 만큼 보상을 충분히 했나요?
“얼마나 가혹한지 해보자는 식이었어요. ‘나와 3년 만 일하면 어딜 가도 대접받는다. 창업해도 성공한다. 3년 만에 사장 못하면 나가라’고 했을 정도입니다. 우리는 고객의 금융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리스크를 전방위로 극복하려면 실력밖에 없어요.”
“덕장이냐 운장이냐”
흔히 맹장(猛將)은 용장(勇將)을 이길 수 없고 용장은 지장(智將)을 이길 수 없으며 지장은 덕장(德將)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병법이나 리더십을 거론할 때 인용하는 문구지만 때로는 운장(運將)이 덕장보다 낫다는 말을 한다. 사실 덕장이 이끄는 회사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직원을 평가하고 평가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운 목표를 부여하고 다시 평가하는 경영자라야 성공할 수 있다. 직원에게 ‘인심 좋은’, ‘싫은 소리 못하는’ 사장만 되려고 하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하다. 그는 덕장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저요? 아직 덕장 급(級)에 못 미칩니다. 기대도 안 합니다. 그저 열심히 배우는 최고경영자일 뿐이죠. (조심스러워 하며) 운장은 맞는다고 보지만, 나머지는 그저 배우는 학생입니다. 더 많이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CEO는 누구나 1분에 얼마씩 벌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상존한다.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다.
“시간비용이 제일 많이 들지요. 나인투파이브(9 to 5)를 인정 안 해요. 출퇴근시각 지킨다고 산출물이 보장되나요? 아닙니다. 앉아서 넥타이 매고 문학작품이 안 나와요. 전통적 노동관이 이미 바뀌었는데 그걸 인정 안 하고 따지고 드는 것은 어이없는 행태지요.”
그렇다고 출퇴근 시각은 아예 무시하느냐고 했더니, “지하철에 있든, 스타벅스 커피에 있든 회사 서버에 로그인하는 시간은 본다”고 귀띔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협업(協業)을 해야 하는 일이니, 어디 있든 서로 채팅을 해야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잖아요. 그 정도의 약속은 합니다. 굳이 출근해서 교통체증이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필요는 없지요. 한번은 이런 조사를 한 경우도 있어요.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의 로그인 시각을 체크한 경우가 있었는데, 실적은 좋은데 로그인 시각이 늦은 경우도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어요. 주요 변수는 아니었다는 얘깁니다.”
―직원을 채용할 때 어떤 관점에서 뽑나요.
“우리는 패잔병만 남은 회사만 인수해 왔습니다. 망가진 회사를 인수하면 사람은 덤으로 옵니다. 10년 동안 신입사원 공고를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엉망진창이 된 폐품을 쓸고 닦아서 재활용했습니다. ‘고생할 사람은 남고, 아니면 지참금 줄 테니 나가라’고 했어요. 대부분 있던 사람들도 다시 일구는 작업을 했지요.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서는 10년 뒤를 봐야 하는데, 비전을 제시 못 한 채 직원 뽑는 것을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회사를 세우고 5년 동안은 1년 앞을 내다보지 못했다고 한다. 내년에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다 당장 먹을 ‘끼니’조차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 5년은 3년 뒤를 내다보고 회사를 경영했고 10주년을 맞은 올해는 10년 뒤인 2020년의 비전을 세울 상황이 됐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비전이 무엇인지 궁금해 회사 홈페이지(www.goldenbridgefg.com)를 찾았더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시아 곳곳에서 선진 금융자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골든브릿지 금융맨이 되자. 투자금융(Investment Banking), 기업금융(Industrial Banking), 국제금융(International Banking)을 융합시켜 가정, 기업, 정부 등 여러분의 재정적 고민을 함께 풀어갈 금융 주치의가 되자.>
그는 “새로운 비전을 세웠으니 비전에 부합된 신입사원을 뽑겠다”고 했다.
“비전을 안 그린 상태에서 직원을 뽑으면 얼마 안 가 금방 기존 직원에 오염이 됩니다. 새로운 고객, 세대를 위해 10년을 준비하려고 신입사원을 뽑을 생각도 하고 있어요. 그들은 아마 한국에는 조금 있고, 대부분 해외에서 활동하게 될 겁니다. 어떤 사람을 뽑을 것이냐, 저는 차라리 듣고 쓰고 말하고 읽기를 잘하는, 그러니까 국어 실력이 좋고 문사철(文史哲)이 뛰어난 사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해야 하니까요.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해 온 인문학적 소양이 바탕이 된 사람이면 좋겠어요.”
“돈 버는 것이 사회에 유익한 비즈니스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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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위치한 골든브릿지금융그룹 본사 건물. |
“저는 제가 짊어져야 할 부담을 직원에게 떠넘기지 않습니다. 고객이 맡긴 돈에다 위험을 전가 안 시키듯 제가 최고경영자로 감수해야 할 것을 아무에게도 안 맡깁니다. 권한과 책임은 서로 등가(等價) 관계고 기회와 보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무임승차할 생각은 안 합니다.”
그에게 돈의 실체를 물었더니 ‘알카에다 폭발물보다 더 무서운 존재’라고 했다. 돈맛을 경험한 사람이 돈에 대해 무섭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그래도 돈맛을 경험하고 싶은 것이 모든 소시민의 소망이 아닌가.
“처음엔 돈을 몰랐어요. 돈이 없었으니 돈 원망도 했지요. 몰락한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몰락하기 이전의 풍요로움을 겪을 수도 없었어요. 부자에 대한 원망, 출발의 불평등에 분노했지만,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를 갔으니 원망할 처지도 못 되지요. 어쨌든 금융업 하면서 세상 일은 돈 때문에 벌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돈 앞에 추잡해지는 인간 군상을 바라보며 ‘돈은 위험하다. 기회이자 위험물’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알카에다 폭발물’보다 더 세다는 것을 점점 느껴요.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광산에서 다이너마이트처럼 유용하게 쓰일 수도 있잖아요. 직원들에게 그런 얘기를 합니다. ‘돈을 위험물 다루듯 만지라’고요. 또 위험물 취급자로서의 도덕성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가정을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사업과 가정 양쪽 모두를 잘 일군 분들이야말로 진정 성공한 분들이겠지요. 제가 사업에서 성공한들 반쪽짜리 성공에 불과할 겁니다. 그나마 그렇지 못한 분이 대부분이니 감사해합니다. 제겐 그런 복까진 없나 봅니다. 저는 덕장처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하는 사람이 못 됩니다. 그 부분에선 미달이지요.”
―앞으로 덕장이 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네요.
“덕장이 된들 가족을 못 챙긴 부분에 대한 것은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아요. 자식이나 마누라는 원래 우리의 영원한 ‘보증채권자’이거든요. 죽어야 해소가 되는….”
이 회장은 “사업에 매진하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 사업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적어도 30년 동안 사업을 해야, 사업이란 말을 쓸 수 있어요. 10년쯤 되니까 남들에게 회사를 경영한다는 말을 할 수 있었지, 그전에는 ‘10년 안 된 회사가 회사냐?’고 말하곤 했어요. 지난 10년 동안 100배 성장을 했듯이 그 탄력으로 10년 뒤엔 또 다른 100배 성장을 할 겁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계속 게릴라전을 벌일 겁니까.
“과거 10년은 생존을 위해 경쟁구도를 피해 갔어요. 그 결과 춘추전국시대의 작은 국가로 자리 잡게 됐어요. 앞으로는 게릴라 형태로는 부족하고 차별화된 금융 서비스로 승부를 걸어야지요. 돈을 버는 것이 곧 사회적으로 좋은 비즈니스가 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겠습니다. 오진(誤診)하지 않으려면 자기 이익에서 벗어나 객관·타당해야 합니다. 의사가 생명을 구한다는 생각으로 종업원과 주주, 채권자의 고통을 덜겠어요. 과거처럼 쓰레기를 치우는 정도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금융 트렌드로 10년을 앞당기겠습니다.”⊙
사진 : 서경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