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디피 1000원이던 시절에 골프 시작해 1년3개월 만에 싱글 기록
⊙ 골프가 좋아 오퍼상 접고, 20년 넘게 골프용품점 운영 中
⊙ 밀수업자로 오해받아 한 달 넘게 검찰 조사
鄭鐘吉
⊙ 1945년 서울 출생.
⊙ 한양공업高, 연세大 화학공학과 졸업.
⊙ 트랜스팩 코리아 사장, 정스포츠 대표이사 역임. 現 (주)기가골프 대표이사 회장,
대한골프협회 생활체육분과 위원장.
⊙ 골프가 좋아 오퍼상 접고, 20년 넘게 골프용품점 운영 中
⊙ 밀수업자로 오해받아 한 달 넘게 검찰 조사
鄭鐘吉
⊙ 1945년 서울 출생.
⊙ 한양공업高, 연세大 화학공학과 졸업.
⊙ 트랜스팩 코리아 사장, 정스포츠 대표이사 역임. 現 (주)기가골프 대표이사 회장,
대한골프협회 생활체육분과 위원장.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싸게 샀지만 즐겨 사용하지 않는 골프채가 하나쯤 있을 겁니다. 이 골프채를 매장에 가져오면 비싸게 쳐서 기가 골프채로 바꿔 드립니다. 소비자들은 차액만 지불하고, 신제품 골프채를 가져가면 됩니다. 어느 브랜드의 제품이건, 몇 년 동안 방치돼 녹이 슨 클럽이건 상관없이 바꿔 드립니다.”
(주)기가골프의 공격적 마케팅이 업계에서 화제다. 기가골프는 오는 4월 중순까지 ‘골프클럽 보상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낡은 골프채를 매장으로 가져오면, 차액에 해당하는 일정 금액 지불을 통해 기가 골프채로 바꿔주는 제도다. 회사 오너인 정종길(鄭鐘吉) 회장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기가의 우수성을 알리자’는 취지로 기획한 행사다. 이외에도 정 회장은 올해 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퍼터 등 기가골프 전 품목에 걸쳐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풀라인의 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회사를 세운 지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기가골프는 골프클럽 전문 수입업체다. 1986년 회사를 설립해 일본의 프로기아(PRGR), 미국의 핑(PING)과 스팔딩재팬(SPAULDING)의 골프클럽을 팔았고, 지난 1998년부터는 일본 이온스포츠사(社)로부터 기가(GIGA) 골프클럽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정 회장의 인생은 골프를 빼면 설명할 수 없다. 살아온 날들의 절반 동안 골프를 쳤고, 20년 넘도록 골프용품 사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골프 구력(球歷) 32년. 라운딩 횟수 약 3000번. 베스트 스코어 66타. 평균 스코어 70타 중반’이 그가 가진 기록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골프용품 시장에서 20년이 넘도록 사업을 하고 있는 정종길 회장의 사연을 지난 3월 2일, 서울 중구 한남동 본사에서 들어봤다.
그의 골프 예찬(禮讚)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골프는 소년을 빨리 철들게 하고, 노인을 소년처럼 만드는 운동입니다. 제아무리 어린 소년이라도 골프를 배울 때에는 예의와 격식을 차려 운동을 합니다. 골프는 매너 스포츠니까요. 그런가 하면 70대(代)의 노인들이 ‘이 친구야, 남의 볼은 왜 건드리고 그래’라고 농담하면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이 골프입니다. 나이를 잊게 하는 운동이죠. 그것이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린피 한 번 내면 온종일 플레이, 캐디피 1000원이던 시절
정종길 회장이 골프채를 잡은 것은 1978년이었다. 당시 그는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 오퍼상을 하고 있었는데, 근처에 비거리 30야드짜리 골프 연습장이 있었다. 거래처 직원과 친구 몇 명이 이곳을 찾았는데, 연습장에 그들을 만나러 간 그에게 친구가 ‘채나 한번 휘둘러보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몇 번 휘둘렀는데 연습장에 있던 티칭프로가 소질이 있다더군요. 클럽을 휘두르는 폼이 남다르다나요. 프로의 꼬드김에 넘어간 거죠(웃음).”
골프채는 당시 ‘수입금지품목’이었다. 미군 피엑스(PX)에서 흘러나오거나, 보따리장수들이 하나둘씩 가져다 파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큰마음을 먹고 미국의 스팔딩사에서 나온 ‘톱플라이트’라는 클럽을 샀다. 골프 연습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한 정 회장은 연습한 지 22일 만에 도고C.C.에 갔다. 햇볕이 유난히 따가웠던 8월의 어느 날이었다.
“클럽 잡자마자 나갔는데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페어웨이 우드로 겨우 티샷하고, 러프에 들어가면 손으로 공을 꺼내가며 라운딩을 마쳤습니다. 첫 스코어는 125타였습니다. 초보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생각으로 동행한 지인들이 타수를 많이 줄여준 거죠(웃음).”
그의 골프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머리를 얹고 나자’, 골프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하루에 한 시간씩 연습을 하고, 남서울 C.C.의 골프 회원권을 샀다.
“1970년대 후반엔 골프 치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라운딩을 할 수 있던 시절입니다. 그린피(입장료)를 한 번 내면 온종일 골프를 칠 수 있었습니다. 18홀을 돌면서 캐디에게 주는 비용이 1000원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남서울C.C.에 가서 9홀을 돌고, 아침 9시까지 퇴계로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근무가 끝나면 부리나케 다시 골프장에 가서 9홀을 더 돌았죠.”
오죽하면 업계에서 ‘정종길이랑 통화를 하려면 남서울 C.C.로 전화를 걸어라’는 말이 나돌았단다. 골프에 푹 빠진 탓일까. 정 회장은 클럽을 잡은 지 석 달 만에 스코어 100 아래를 쳤고, 6개월 뒤에 태릉C.C.에서 스코어 89타를 기록했다. 1979년 11월 초에 수원컨트리클럽에서 싱글패를 받으며, 골프 ‘싱글’(총 타수 81타 이하)이 됐다. 골프를 시작한 지 1년3개월 만이었다.
1982년에 수입자유화 품목돼… 198% 특소세 부과
그에게 골프는 단순히 운동이 아니었다. 먹고사는 계기가 됐다.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진 그가 오퍼상을 접고, 골프용품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골프채는 1982년, 수입자유화 품목이 됐다. 정종길 회장은 친분이 있던 삼양통상(現 삼양인터내셔널) 허광수(許光秀) 회장의 권유로 골프용품 사업을 시작했다. 1986년에 (주)정스포츠라는 법인을 만들어, 미국의 스팔딩사 골프클럽을 수입해 팔았다. 이후 일본의 프로기어(PRGR), 미국의 핑과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국내에 골프용품 사업을 하는 곳은 10여 군데에 불과했다.
정 회장의 얘기다.
“골프가 좋아서 골프 사업을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절이어서, 고객층이 한정돼 있었습니다. ‘부르주아 사업’을 한다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골프클럽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이하 특소세)가 198%였습니다. 100만원짜리 클럽을 사려면, 298만원을 내야 했습니다. 골프를 치거나, 골프채를 취급하는 업자들이 죄인 같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특소세 인생’이라고 수군거렸죠. 특소세를 낸 자동차를 타고, 특소세 휘발유를 넣고, 특소세 입장료를 내고, 특소세 붙은 클럽으로, 특소세 낸 맥주를 마시면서 운동한다고요.”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지만, 사업은 그럭저럭 잘됐다고 한다. 하지만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그가 세금포탈 혐의로 35일 동안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핑’의 퍼터가 인기가 좋아서 밀수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정식통관 업체인 우리가 밀수품 회사로 오해를 받아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제 태도가 불손했던 지 35일 동안 서울지검에 불려다녔습니다. 나중에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죠.”
―밀수품과의 전쟁은 어떻게 끝났습니까.
“클럽에 부과되는 특소세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습니다. 이윤이 안 나니까 밀수꾼들이 들여올 필요를 못 느낀 겁니다. 198%였던 특소세가 20%, 30%씩 차츰차츰 내려가다, 2007년에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국내 골프용품 시장 규모는 2조원대
―특소세가 없어진 이후에 골프용품 사업이 잘됐겠군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특소세 폐지’ 얘기가 나왔을 때, 재정경제부 사람들한테 ‘골프채에 부과되는 특소세는 조금 남아 있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세금이 없어지면 밀수꾼은 없어지겠지만, 해외 여행객들이 현지에서 골프클럽을 사올 가능성이 크니까요. 개인적으로 사려면 500달러를 줘야 하는 클럽을 우리 같은 업자들은 300달러에 사올 수 있습니다. 해외 여행객들이 외화를 낭비하고 들여올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결국은 특소세가 폐지됐죠. 저는 대신에 골프장 입장료에 부과되는 특소세를 내리자고 주장했습니다. ‘국민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명목이라면, 최소 5년에 한 번씩 바꾸는 골프채의 특소세를 낮출 것이 아니라, 골프장에 부과되는 세금을 없애자고 했습니다. 제가 대한골프협회의 분과위원장이어서 이런 요청을 했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까.
“세수(稅收)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골프클럽에 부과되는 세금은 몇백억 원이지만, 골프장에 부과되는 것은 수천억 원이라고요. 그래놓고 클럽에 부과되는 세금을 없애서 국민들에게 혜택을 줬다고 홍보하면 잘못된 거죠.”
―국내에 골프가 대중화된 것은 언제부터라고 보십니까.
“이동찬(李東燦) 코오롱 명예회장이 골프협회장을 맡았을 때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고, 골프에서 국민영웅 스타가 탄생해야 대중화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엿한 골프스타가 있고, 국민소득도 2만 달러를 넘어섰죠. 하지만 아직은 어정쩡한 대중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 경기 지역의 골프장에는 특소세를 부과하고, 지방의 골프장에는 부과하지 않은 조치 등이 완전히 대중화가 되지 않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정권 초기에 골프클럽 잘 안 팔려
현재 국내의 골프용품 시장은 약 2조원대로 추산된다. 골프의류가 1조2000억원, 클럽 5000억원 규모다. 기가골프는 지난 2008년 매출 150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10위권 안에 랭크돼 있다.
골프는 2000년대 들어 대중도 즐기는 스포츠 중의 하나가 됐다. 하지만 골프용품 업계의 매출이 이런 수요에 맞춰 매년 늘어난 것은 아니다. 김영삼(金泳三) 전(前)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임기 동안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해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임기 말, 공무원들이 골프장에 다시 출입하면서 경기가 살아났습니다. 공무원들이 필드로 나와 보니까 5년 넘게 묵혔던 골프채가 녹슨 겁니다. 1996~97년에 클럽 교체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골프용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 일로를 걸어왔지만, 이때가 가장 폭발적이었습니다. 저도 일본 본사에 요청해서 클럽을 많이 들여왔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국내에 외환위기가 불어닥쳤고, 골프용품 업계는 사상 최악의 시련을 겪게 됐다. 본사로부터 받은 물량을 처리하지 못한 판매업자들은 손을 들었고, 외국 본사들이 이 재고를 떠안고 한국 법인을 세웠다. 테일러메이드코리아, 캘러웨이코리아가 이때 생겼다고 한다.
정종길 회장은 창고에 쌓인 골프채 재고품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일본에서 수입을 하면서 은행에 갚아야 할 LC(신용장)가 10억원을 넘었다. 그는 집을 팔기로 했다.
“사업하는 사람이 별수 있습니까. 집을 팔아서 은행 빚을 갚으려고 나갔는데, 계약 당일에 상대편이 안 나온 겁니다. 알고 보니 은행에서 제가 돈을 못 갚을 줄 알고 집에 가처분 신청을 한 겁니다. 은행장에게 전화 걸어서 ‘은행 빚 갚으려고 부동산 계약하러 나갔는데, 너희 때문에 못 갚았다’고 싸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가처분 신청을 취소하고, 집을 팔아 은행 빚을 갚았죠. 창고에 쌓인 재고품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밖에 안 나오데요”
정종길 회장은 일본 요코하마로 갔다. 이제 그에게 프로기아의 골프클럽은 ‘재고품’이자,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는 일본 본사가 이를 되사주지 않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 국내 시장은 얼어붙었고, 일본 본사로부터는 거절을 당했다. 정말 악밖에 남아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IMF 때 일본에서 수입한 클럽, 일본 디스카운트 숍에 되팔아 이윤 남겨
그는 이 와중에 일본에서 디스카운트 숍을 운영하는 상인 히로타 씨를 만났다. 당시 일본의 프로기아는 디스카운트 숍에는 물건을 주지 않았던 터라, 히로타 씨는 흔쾌히 프로기아의 골프클럽을 모두 사겠다고 했다. 헐값으로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돈이 남았다. 엔화가 오르면서, 환차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건이 없었던 히로타는 디스카운트 숍에서 골프클럽을 팔아서 이윤을 얻고, 저는 재고를 전부 소진했습니다. 일본 프로기아 본사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비싼 가격으로 클럽을 샀던 일본 고객들이 ‘디스카운트 숍에서 클럽을 구할 수 있다’며 난리가 났다는 겁니다. 일본 본사에서 저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내 물건을 내가 마음대로 파는데, 왜 너희 사정까지 봐줘야 하느냐’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때 본사에 대한 배신감이 컸으니까요.”
하지만 IMF를 견뎌낸 기쁨도 잠시였다. 그와 거래해 온 일본의 스팔딩 재팬이 일본에서 사업을 정리하면서, 제품 생산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는 “경기는 나아졌지만, 이번에는 내가 팔 클럽이 하나도 없겠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스팔딩 재팬의 클럽 생산 권리는 일본의 이온스포츠로 넘어갔고, 정 회장은 이 회사로부터 안정적으로 골프클럽을 조달받았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판매하고 있는 ‘기가골프’다. 그는 ‘기가 막히게 잘 맞히는 클럽, 기가’라는 표어를 내세워 국내 시장에서 클럽을 판매하며, 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원가에서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데, 신형이라고 터무니없이 값을 올려 받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태죠. 제품은 그 품질에 걸맞게 정정당당하게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정종길 회장은 대한골프협회 분과위원장으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골프협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잘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은 업체가 가입한 곳보다 더 많습니다. 협회가 업체들에 눈에 띄는 혜택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좀 더 큰 시각에서 봐줬으면 합니다. 협회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골프 꿈나무 육성입니다. 우리가 풍부한 골프 인재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에게 보다 넓은 기회의 장을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골프 육성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차원에서 협회를 지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주)기가골프의 공격적 마케팅이 업계에서 화제다. 기가골프는 오는 4월 중순까지 ‘골프클럽 보상제도’를 실시하기로 했다. 낡은 골프채를 매장으로 가져오면, 차액에 해당하는 일정 금액 지불을 통해 기가 골프채로 바꿔주는 제도다. 회사 오너인 정종길(鄭鐘吉) 회장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쳐, 기가의 우수성을 알리자’는 취지로 기획한 행사다. 이외에도 정 회장은 올해 드라이버, 우드, 아이언, 퍼터 등 기가골프 전 품목에 걸쳐 신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풀라인의 교체가 이뤄지는 것은 회사를 세운 지 2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기가골프는 골프클럽 전문 수입업체다. 1986년 회사를 설립해 일본의 프로기아(PRGR), 미국의 핑(PING)과 스팔딩재팬(SPAULDING)의 골프클럽을 팔았고, 지난 1998년부터는 일본 이온스포츠사(社)로부터 기가(GIGA) 골프클럽을 수입 판매하고 있다.
정 회장의 인생은 골프를 빼면 설명할 수 없다. 살아온 날들의 절반 동안 골프를 쳤고, 20년 넘도록 골프용품 사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골프 구력(球歷) 32년. 라운딩 횟수 약 3000번. 베스트 스코어 66타. 평균 스코어 70타 중반’이 그가 가진 기록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골프용품 시장에서 20년이 넘도록 사업을 하고 있는 정종길 회장의 사연을 지난 3월 2일, 서울 중구 한남동 본사에서 들어봤다.
그의 골프 예찬(禮讚)으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골프는 소년을 빨리 철들게 하고, 노인을 소년처럼 만드는 운동입니다. 제아무리 어린 소년이라도 골프를 배울 때에는 예의와 격식을 차려 운동을 합니다. 골프는 매너 스포츠니까요. 그런가 하면 70대(代)의 노인들이 ‘이 친구야, 남의 볼은 왜 건드리고 그래’라고 농담하면서 즐길 수 있는 운동이 골프입니다. 나이를 잊게 하는 운동이죠. 그것이 골프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린피 한 번 내면 온종일 플레이, 캐디피 1000원이던 시절
정종길 회장이 골프채를 잡은 것은 1978년이었다. 당시 그는 서울 중구 퇴계로에서 오퍼상을 하고 있었는데, 근처에 비거리 30야드짜리 골프 연습장이 있었다. 거래처 직원과 친구 몇 명이 이곳을 찾았는데, 연습장에 그들을 만나러 간 그에게 친구가 ‘채나 한번 휘둘러보라’고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
“몇 번 휘둘렀는데 연습장에 있던 티칭프로가 소질이 있다더군요. 클럽을 휘두르는 폼이 남다르다나요. 프로의 꼬드김에 넘어간 거죠(웃음).”
골프채는 당시 ‘수입금지품목’이었다. 미군 피엑스(PX)에서 흘러나오거나, 보따리장수들이 하나둘씩 가져다 파는 것이 전부였다. 그는 큰마음을 먹고 미국의 스팔딩사에서 나온 ‘톱플라이트’라는 클럽을 샀다. 골프 연습장으로 출근하다시피 한 정 회장은 연습한 지 22일 만에 도고C.C.에 갔다. 햇볕이 유난히 따가웠던 8월의 어느 날이었다.
“클럽 잡자마자 나갔는데 제대로 될 리가 있습니까. 페어웨이 우드로 겨우 티샷하고, 러프에 들어가면 손으로 공을 꺼내가며 라운딩을 마쳤습니다. 첫 스코어는 125타였습니다. 초보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생각으로 동행한 지인들이 타수를 많이 줄여준 거죠(웃음).”
그의 골프 인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머리를 얹고 나자’, 골프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하루에 한 시간씩 연습을 하고, 남서울 C.C.의 골프 회원권을 샀다.
“1970년대 후반엔 골프 치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서 라운딩을 할 수 있던 시절입니다. 그린피(입장료)를 한 번 내면 온종일 골프를 칠 수 있었습니다. 18홀을 돌면서 캐디에게 주는 비용이 1000원이었습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남서울C.C.에 가서 9홀을 돌고, 아침 9시까지 퇴계로 사무실로 출근했습니다. 근무가 끝나면 부리나케 다시 골프장에 가서 9홀을 더 돌았죠.”
오죽하면 업계에서 ‘정종길이랑 통화를 하려면 남서울 C.C.로 전화를 걸어라’는 말이 나돌았단다. 골프에 푹 빠진 탓일까. 정 회장은 클럽을 잡은 지 석 달 만에 스코어 100 아래를 쳤고, 6개월 뒤에 태릉C.C.에서 스코어 89타를 기록했다. 1979년 11월 초에 수원컨트리클럽에서 싱글패를 받으며, 골프 ‘싱글’(총 타수 81타 이하)이 됐다. 골프를 시작한 지 1년3개월 만이었다.
1982년에 수입자유화 품목돼… 198% 특소세 부과
그에게 골프는 단순히 운동이 아니었다. 먹고사는 계기가 됐다.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진 그가 오퍼상을 접고, 골프용품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골프채는 1982년, 수입자유화 품목이 됐다. 정종길 회장은 친분이 있던 삼양통상(現 삼양인터내셔널) 허광수(許光秀) 회장의 권유로 골프용품 사업을 시작했다. 1986년에 (주)정스포츠라는 법인을 만들어, 미국의 스팔딩사 골프클럽을 수입해 팔았다. 이후 일본의 프로기어(PRGR), 미국의 핑과 대리점 계약을 맺었다. 국내에 골프용품 사업을 하는 곳은 10여 군데에 불과했다.정 회장의 얘기다.
“골프가 좋아서 골프 사업을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시절이어서, 고객층이 한정돼 있었습니다. ‘부르주아 사업’을 한다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골프클럽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이하 특소세)가 198%였습니다. 100만원짜리 클럽을 사려면, 298만원을 내야 했습니다. 골프를 치거나, 골프채를 취급하는 업자들이 죄인 같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특소세 인생’이라고 수군거렸죠. 특소세를 낸 자동차를 타고, 특소세 휘발유를 넣고, 특소세 입장료를 내고, 특소세 붙은 클럽으로, 특소세 낸 맥주를 마시면서 운동한다고요.”
주위의 시선은 따가웠지만, 사업은 그럭저럭 잘됐다고 한다. 하지만 뜻밖의 시련이 찾아왔다. 그가 세금포탈 혐의로 35일 동안 검찰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핑’의 퍼터가 인기가 좋아서 밀수품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정식통관 업체인 우리가 밀수품 회사로 오해를 받아서 검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제 태도가 불손했던 지 35일 동안 서울지검에 불려다녔습니다. 나중에 무혐의 처분을 받고 풀려났죠.”
―밀수품과의 전쟁은 어떻게 끝났습니까.
“클럽에 부과되는 특소세가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없어졌습니다. 이윤이 안 나니까 밀수꾼들이 들여올 필요를 못 느낀 겁니다. 198%였던 특소세가 20%, 30%씩 차츰차츰 내려가다, 2007년에 완전히 없어졌습니다.”
국내 골프용품 시장 규모는 2조원대
―특소세가 없어진 이후에 골프용품 사업이 잘됐겠군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특소세 폐지’ 얘기가 나왔을 때, 재정경제부 사람들한테 ‘골프채에 부과되는 특소세는 조금 남아 있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세금이 없어지면 밀수꾼은 없어지겠지만, 해외 여행객들이 현지에서 골프클럽을 사올 가능성이 크니까요. 개인적으로 사려면 500달러를 줘야 하는 클럽을 우리 같은 업자들은 300달러에 사올 수 있습니다. 해외 여행객들이 외화를 낭비하고 들여올 수 있다고 설명했는데, 결국은 특소세가 폐지됐죠. 저는 대신에 골프장 입장료에 부과되는 특소세를 내리자고 주장했습니다. ‘국민들에게 혜택을 준다’는 명목이라면, 최소 5년에 한 번씩 바꾸는 골프채의 특소세를 낮출 것이 아니라, 골프장에 부과되는 세금을 없애자고 했습니다. 제가 대한골프협회의 분과위원장이어서 이런 요청을 했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죠.”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까.
“세수(稅收)에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요. 골프클럽에 부과되는 세금은 몇백억 원이지만, 골프장에 부과되는 것은 수천억 원이라고요. 그래놓고 클럽에 부과되는 세금을 없애서 국민들에게 혜택을 줬다고 홍보하면 잘못된 거죠.”
―국내에 골프가 대중화된 것은 언제부터라고 보십니까.
“이동찬(李東燦) 코오롱 명예회장이 골프협회장을 맡았을 때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고, 골프에서 국민영웅 스타가 탄생해야 대중화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엿한 골프스타가 있고, 국민소득도 2만 달러를 넘어섰죠. 하지만 아직은 어정쩡한 대중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서울, 경기 지역의 골프장에는 특소세를 부과하고, 지방의 골프장에는 부과하지 않은 조치 등이 완전히 대중화가 되지 않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 정권 초기에 골프클럽 잘 안 팔려
현재 국내의 골프용품 시장은 약 2조원대로 추산된다. 골프의류가 1조2000억원, 클럽 5000억원 규모다. 기가골프는 지난 2008년 매출 150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10위권 안에 랭크돼 있다.골프는 2000년대 들어 대중도 즐기는 스포츠 중의 하나가 됐다. 하지만 골프용품 업계의 매출이 이런 수요에 맞춰 매년 늘어난 것은 아니다. 김영삼(金泳三) 전(前)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임기 동안 골프를 치지 않겠다”고 선언해 어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임기 말, 공무원들이 골프장에 다시 출입하면서 경기가 살아났습니다. 공무원들이 필드로 나와 보니까 5년 넘게 묵혔던 골프채가 녹슨 겁니다. 1996~97년에 클럽 교체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골프용품 시장이 꾸준히 성장 일로를 걸어왔지만, 이때가 가장 폭발적이었습니다. 저도 일본 본사에 요청해서 클럽을 많이 들여왔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뿐이었다. 국내에 외환위기가 불어닥쳤고, 골프용품 업계는 사상 최악의 시련을 겪게 됐다. 본사로부터 받은 물량을 처리하지 못한 판매업자들은 손을 들었고, 외국 본사들이 이 재고를 떠안고 한국 법인을 세웠다. 테일러메이드코리아, 캘러웨이코리아가 이때 생겼다고 한다.
정종길 회장은 창고에 쌓인 골프채 재고품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일본에서 수입을 하면서 은행에 갚아야 할 LC(신용장)가 10억원을 넘었다. 그는 집을 팔기로 했다.
“사업하는 사람이 별수 있습니까. 집을 팔아서 은행 빚을 갚으려고 나갔는데, 계약 당일에 상대편이 안 나온 겁니다. 알고 보니 은행에서 제가 돈을 못 갚을 줄 알고 집에 가처분 신청을 한 겁니다. 은행장에게 전화 걸어서 ‘은행 빚 갚으려고 부동산 계약하러 나갔는데, 너희 때문에 못 갚았다’고 싸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가처분 신청을 취소하고, 집을 팔아 은행 빚을 갚았죠. 창고에 쌓인 재고품을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한숨밖에 안 나오데요”
정종길 회장은 일본 요코하마로 갔다. 이제 그에게 프로기아의 골프클럽은 ‘재고품’이자, 그의 전 재산이었다. 그는 일본 본사가 이를 되사주지 않겠느냐고 의사를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 국내 시장은 얼어붙었고, 일본 본사로부터는 거절을 당했다. 정말 악밖에 남아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IMF 때 일본에서 수입한 클럽, 일본 디스카운트 숍에 되팔아 이윤 남겨
그는 이 와중에 일본에서 디스카운트 숍을 운영하는 상인 히로타 씨를 만났다. 당시 일본의 프로기아는 디스카운트 숍에는 물건을 주지 않았던 터라, 히로타 씨는 흔쾌히 프로기아의 골프클럽을 모두 사겠다고 했다. 헐값으로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돈이 남았다. 엔화가 오르면서, 환차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건이 없었던 히로타는 디스카운트 숍에서 골프클럽을 팔아서 이윤을 얻고, 저는 재고를 전부 소진했습니다. 일본 프로기아 본사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비싼 가격으로 클럽을 샀던 일본 고객들이 ‘디스카운트 숍에서 클럽을 구할 수 있다’며 난리가 났다는 겁니다. 일본 본사에서 저에게 강력하게 항의를 했습니다. ‘내 물건을 내가 마음대로 파는데, 왜 너희 사정까지 봐줘야 하느냐’고 딱 잘라 말했습니다. 그때 본사에 대한 배신감이 컸으니까요.”
하지만 IMF를 견뎌낸 기쁨도 잠시였다. 그와 거래해 온 일본의 스팔딩 재팬이 일본에서 사업을 정리하면서, 제품 생산이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는 “경기는 나아졌지만, 이번에는 내가 팔 클럽이 하나도 없겠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스팔딩 재팬의 클럽 생산 권리는 일본의 이온스포츠로 넘어갔고, 정 회장은 이 회사로부터 안정적으로 골프클럽을 조달받았다. 그것이 오늘날까지 판매하고 있는 ‘기가골프’다. 그는 ‘기가 막히게 잘 맞히는 클럽, 기가’라는 표어를 내세워 국내 시장에서 클럽을 판매하며, 업계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원가에서 얼마 차이가 나지 않는데, 신형이라고 터무니없이 값을 올려 받는 것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행태죠. 제품은 그 품질에 걸맞게 정정당당하게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정종길 회장은 대한골프협회 분과위원장으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골프협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잘 운영되지 않고 있습니다. 회원 가입을 하지 않은 업체가 가입한 곳보다 더 많습니다. 협회가 업체들에 눈에 띄는 혜택을 주지 못한다는 얘기도 듣습니다. 좀 더 큰 시각에서 봐줬으면 합니다. 협회의 가장 큰 역할 중 하나는 골프 꿈나무 육성입니다. 우리가 풍부한 골프 인재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에게 보다 넓은 기회의 장을 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의 골프 육성에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이런 차원에서 협회를 지원해 주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