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어 표기문자를 기록하는 한글 표기법 2008년 특허 출원… 중국어의 음운론적 특성과
음운현상을 고려해 중국어를 한글로 배우자
⊙ 한글은 신성장동력… 한글이 IT(정보기술), CT(문화기술)와 결합할 때 문자로서 한글의
세계화가 가능
정원수
⊙ 1959년 경북 예천 출생.
⊙ 대전고,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
⊙ 충남대 국문과 교수, 미국 UCLA 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역임. 現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어문연구학회 학술상(1990), 한글선양 공로상(1997·대전시).
음운현상을 고려해 중국어를 한글로 배우자
⊙ 한글은 신성장동력… 한글이 IT(정보기술), CT(문화기술)와 결합할 때 문자로서 한글의
세계화가 가능
정원수
⊙ 1959년 경북 예천 출생.
⊙ 대전고,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
⊙ 충남대 국문과 교수, 미국 UCLA 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역임. 現 충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 어문연구학회 학술상(1990), 한글선양 공로상(1997·대전시).
“한글이 세계 공용문자로 지정되면 ‘한글날’은 ‘세계문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충남대 김차균(金次均·70) 명예교수의 주장은 다소 급진적이다. “세계 인류의 화합과 평화와 행복을 위해, 우리나라가 가장 확실하게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은 한글의 세계 공용문자화를 통해 전 인류를 고르게 문명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제자인 충남대 국어교육과 정원수(鄭元洙·51) 교수는 한발 더 나간다.
“한글은 문명의 횃불입니다. 인류의 문맹, 컴맹, 넷맹, 폰맹 퇴치의 도구요 수단입니다. 한글은 21세기의 새로운 문화 블루칩입니다.”
정 교수는 “한글이 IT(정보기술), CT(문화기술)와 결합될 때, 비로소 문자로서의 한글의 세계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며 “한글이 신(新) 성장 동력산업을 일구어 수십만 개의 일자리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월 3일 만난 그는 한글의 세계화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아직은 불투명해 보이지만 확신에 찼다.
“세상의 모든 언어를 한글로 쓰는 시대를 열면 새로운 시대역사라 할까요, 새로운 세계질서라고 할까요, 문화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봐요. 문명의 커다란 패러다임이 바뀔 겁니다. 그런데 한글학회를 보세요. 70대 교수들이 얼마나 보수적인가. 발목 잡는 거예요. 미국 상류층 학교는 5개 언어를 가르칩니다. 우리도 영어는 물론 중국·일본·인도어를 한글로 가르치자는 거예요. 교육의 혁명, 문화 산업의 혁명을 한글을 통해 이룰 수 있어요.”
정 교수는 지난 2008년 11월에는 중국어 표기문자를 기록하는 한글 표기법을 개발, 특허 출원했다. 단순히 중국어를 한글로 옮겨 적는 차원이 아니다. 중국어의 음운론적 특성과 음운현상을 고려해 중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한글로 입력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한글에서 구연할 수 있는 최대 글자 수 1만1172개(자음 19개×모음 21개×받침 28개)를 ‘가나다 순’으로 배열해 놓은 유니코드를 만들어 ‘온누리 한글’이라 명명했다. 한글 입력 컴퓨터 프로그램과 한글교재를 만들기 위해 ‘㈜온누리 한글예슬’이란 회사도 설립했다. 아직은 매출이 없다. 특허 출원 과정에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중국어를 표기문자로 특허신청을 했다고 심사위원들이 난리였어요. ‘중국이 알면 어쩌려고’ 하면서요. ‘한자어 대신 쓰자는 게 아니라 발음 표기를 한글로 하자는 것이다’, ‘중국인도 로마자 알파벳으로 발음기호를 쓰는 판인데 한글로 발음기호를 써서 한자를 빨리 배우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설득했지요.”
―한글이 우리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세계 6900종의 언어 중에 문자로 적을 수 있는 언어는 겨우 40여 종에 불과합니다. 한글의 세계화에 앞서 모든 언어를 조사, 연구해 그들 언어에 한글문자의 옷을 입혀야 해요. 또 궁극적으로는 한글로 신성장동력 산업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컴퓨터, 휴대폰, 인터넷상에서 한글과 외국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인도어, 아랍어)의 변환·번역, 음성인식, 검색에 필요한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개발할 겁니다. 쉽게 배울 수 있게 학습교재도 만들 겁니다.”
기자는 도대체 한글이 왜 새로운 문화산업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도 담을 수 있는 한글
훈민정음의 ‘정인지서(鄭麟趾序)’를 보자. 정인지(1396~1478)는 ‘바람소리, 학의 울음, 닭의 홰치며 우는 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한글로 적을 수 있다’고 썼다. 한글은 모든 소리를 낱낱이 기록할 수 있는 소리글자이기 때문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펴내며 한자음을 바로잡으려 <동국정운(東國正韻)>을 편찬했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치음(齒音)인 ‘ㅈ,ㅅ,ㅊ’을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할 수 있게 치음을 변형(혹은 )시킨 문자를 고안한 것이다. 현대의 국어학자들이 외래어 표기법 차원에서 영어 ‘v, f’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ㅇㅂ,ㅇ ㅍ’과 같은 글자를 고안한 이치와 비슷하다.
그러나 한글의 외래어 표기법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f]를 [ㅍㅎ]으로, [v]를 [ㅂㅎ]으로 쓰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 교수는 [f]를 []으로, [v]를 [?]으로 표기하자고 제안한다. 또 [sh]를 [ㅇㅅ], [zh]를 [ㅇㅈ], [ch]를 [ㅇㅊ], [l]을 [ㄹㄹ], [c]를 [ㅅㅊ], [l]을 [ㄹㄹ]로 쓰자고 말한다. 어느 것이 음성학적으로 타당한지는 학문적 논쟁이 필요하지만 한글로 세상의 언어를 모두 표기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고민은 값진 것이다. 한글연구회 최성철 회장의 말이다.
“세종의 창제정신을 받들어 훈민정음에 감춰진 ‘소리의 보물 곳간’을 열어 활용한다면 한글과 다른 이상한 모양의 글자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활자를 새로 만드는 사회적 비용도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국어학자들이 편협한 사고를 버리고 여기에 동참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입니다.”
정 교수는 한글 문자를 이용한 중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다. 로마자 알파벳으로 쓰는 소리글 대신 한글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음절 단위 형태의 발음을 전제하는 한자의 발음표기는 음절 단위 형태의 우리 한글이 안성맞춤”이라는 얘기다. 한자 각각에 한글 글자가 음절 단위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한자 발음의 음절을 더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까닭이다.
“‘?好’를 [nihao]라고 로마자로 쓰지 않고 ‘니 ’라고 적어요. 한글이 외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기호 역할을 한다면 충분히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알파벳 로마자 발음표기는 일일이 풀어쓰는 방식이라 그 구성과 절차가 복잡합니다. 반면 한글은 24개 자모음만으로 간단하게 표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학교(學校)’의 중국어를 로마자 발음표기로 쓰면 [xuexiao]다. 눈으로 읽어가며 발음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를 정 교수가 고안한 한글체로 쓰면 [쒜]다. []는 [야오]로 발음하되 뒤의 [오]는 약하게 발음한다.
‘선생(先生)’도 마찬가지다. [xiansheng]이라 하지 않고 [셴]이라고 쓴다. 올해 다음해를 뜻하는 명년(明年) 역시 [mingnian] 대신 [밍녠]으로 쓴다.
중국어 문장의 한글 표기도 마찬가지다. ‘민심은 천심(民心卽天心)’을 로마자로 말하면 [minxin ji tianxin]이다. 이를 한글 발음으로 표기하면 [민신지톈신]이다. 로마자와 한글의 표기문자 중 어느 것이 편리한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긴 문장은 더욱 명확하다.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을 예로 들어보자. 첫 소절인 ‘달콤하게, 그대는 달콤하게 웃네요. 봄바람 속에서 피는 꽃처럼, 봄바람 속에서 피는 꽃처럼(혣?蜜蜜 ?笑得혣?蜜蜜 好象花핳開在春風里, 開在春風里)’의 로마자 발음표기는 [tianm쮉.m쮉. n?. xiaode tianmimi haoxiang hau er kai zai chunfeng li, kai zai chunfeng li]이다. 로마자 대신 그가 고안한 한글로 쓰면 다음과 같다.
[톈미미, 니 더 톈미미, 샹 화얼 캐 째 째, 캐 째 째].
훨씬 읽기가 편하고 의미도 파악하기 쉽다. 정 교수의 말이다.
“우리 글자인 한글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중국어 배우기가 훨씬 편해요. ‘한어병음자모’라는 로마자 알파벳 발음기호를 이용해 중국어를 공부하는 기존의 방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방법을 바꿔서 당당하게 우리 글자인 한글로 중국어 발음을 적고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발음표기를 한글로 하면 한자는 배우지 말자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한글로 한자를 배우자는 것이지요. 한자 교육을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한글은 KTX입니다. 어디든지 빨리 갈 수 있는 도구지요. 이런 좋은 문자를 두고 왜 우리가 외면하는지 모르겠어요. KTX가 있는데 자전거 타고 가자고 고집하는 것과 같아요. 영어교육 차원에서 외래어 표기법 논쟁만 해요. 한글이 인류문화를 선도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심각한 주제입니다.”
한글은 가치중립적 언어, 1주일 만에 배울 수 있어
정 교수는 중국이 몇 년 내로 로마자 발음기호 대신 우리 한글 자모로 그들의 발음기호를 기록할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중국 어린이들이 국어(중국어) 교육을 위해 한글을 원용한다면 한글의 세계 문자화의 초석(礎石)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김차균 명예교수의 말이다.
“한글은 어떤 글자보다도 특정 문화나 종교나 통치이념에서 중립적이었어요. 또 대중을 위한 글자의 역량을 쌓아왔기 때문에 어떤 편파적인 선입관에 의한 시기나 증오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작은 문자지요. 그러면서도 글자의 꼴과 운용 방법이 쉽고 과학적이기 때문에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한나절에 깨칠 수가 있으며 보통 정도의 사람은 일주일 정도면 익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처음에는 중국어를 적는 발음기호(제2병음자모)로서 한글이 돼야 한다. 섣불리 ‘중국어 표기문자’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여선 곤란하다. 지혜롭게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정 교수의 말이다.
“복잡한 언어체계를 가진 중국에 로마자 대신 한글을 한자의 발음기호로 사용해 보라고 권하자는 거예요. 써보고 쉽게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면 더욱 확산될 겁니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강조하는 중국인들 아닙니까. 중국도 로마자로 표기하잖아요. 로마자는 되고 한글은 안된다? 왜 자학(自虐)적으로 생각합니까. 1만1172자인 한글 유니코드를 정비해 세계인이 자국 언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합시다.”
정 교수는 이 같은 방식으로 영어나 일어 등 다른 외국어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어교육이 중심이 되는 외국어 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한자를 익히면서 영어나 일본어의 발음도 모두 한글로 표기해 함께 가르칠 수 있다. 어려운 로마자 알파벳으로 발음기호를 적을 필요가 없다.
coffee를 [[k쮴ːfi, k쮫fi / k쮴f]라고 쓰지 않고 []라고 쓰면 어떤가. monkey를 [m쮷ŋki]라고 적지 않고 [키], like를 [laik]라 하지 않고 []라 쓰면 어떨까. ‘Do you have some coffee?’라는 문장은 ‘두 유 ’라 적을 때 비로소 정확한 문장 발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영어’라는 언어의 음운체계를 정확히 적을 수 있는 문자로서는 ‘로마자’보다 ‘한글’이 더 적격이란 얘기다.
문장으로 영어를 표기하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What a genius you are’를 발음기호로 [hw쮩t 쮾 d쯂?ːnj쮾s juː 쮩ːr!]라고 쓰면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어 지니어쓰 유 아!]로 쓰면 발음도 정확하고 한글에 대한 친숙도도 높아진다.
정 교수가 우리글로 외국어 발음을 모두 적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다. “훈민정음은 성대 모양을 본떠 만든 표음문자로 21개의 초성과 19개의 중성, 29개의 종성으로 소리가 나는 것은 모두 글로 옮겨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이 어떤 발음에도 표기가 가능하다는 점은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채택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손은 찌아찌아어로 [을리마]라 발음하고, 발은 [까께], 우산은 [빠우]로 쓰는 등 한글의 우수성이 이미 확인됐다.
‘사랑의 한글문화 강국’ 만들어야
과거 우리에게 문자가 없을 때에는 중국의 한자를 빌려 우리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곤 했다. 향찰(鄕札) 표기라든가, 이두(吏讀), 구결(口訣) 문자 등은 모두 한글이 있기 전까지의 ‘차자(借字) 표기문자’였다. 차자문자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표현에 굶주렸나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방증이다.
하지만 한글 창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은 물론 중국어 발음까지도 한글로 배우고 쓸 수 있게 됐다. 정 교수는 “중국어는 한자 하나하나가 음절 단위로 인식되고 표기돼 있어 중국어를 한글로 적을 경우 로마자 표기보다 더 타당하다”고 했다.
조심스럽지만 한글과 중국어를 비교해 보자. 중국 사람들이 발음할 수 있는 음절은 411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성(四聲)까지 동원해 숫자를 늘려 1644개의 음절을 쓴다. 반면 한자 수는 얼추 6만 자에 이른다. 얼마 안 되는 음절로 이 많은 한자를 읽으려니 같은 발음에 뜻 다른 말이 수천 개씩 쏟아지고 있다. 헷갈릴 수밖에 없다.
중국의 문맹(文盲)률이 높고 근대화가 늦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루쉰(魯迅)이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반드시 망한다”고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글 1만1172자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한글표기의 위대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세계 문자 가운데 몽골문자나 중국문자처럼 위에서 아래로 세로쓰기를 해도, 로마자·그리스문자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쓰기를 해도, 아랍·히브리문자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쓰기를 해도 한글은 어느 쪽으로나 표기가 가능하다. 로마자의 경우 기둥에 세로쓰기를 해보면 매우 모양이 좋지 않다.
또 읽기도 불편하다. ‘나는 서울로 간다’를 로마자로 바꿔 [naneunseoureganda]로 쓰면 읽기가 매우 어렵다. 같은 뜻을 가진 영어의 ‘I go to seoul’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Igotoseoul’처럼 붙여 쓰면 읽기가 매우 어렵고 오른쪽에서 왼쪽(luoesotogI)으로 붙여 쓰면 거의 읽을 수가 없다. 김차균 명예교수의 주장이다.
“한글은 어느 방향으로 쓰든, 띄어쓰기를 하든 하지 않든 어떠한 문자문화와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한글이 우수한 문자임에 틀림없으나 그 자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중국과 태국, 네팔 등 오지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글 보급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현지 여건이 성숙하지 못하고 개인 차원에서 이뤄진 탓에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현지 적응과 함께 정부·학계의 장기적인 지원과 노력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몇 해 전 훈민정음학회 이기남(李基南) 이사장과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李豪榮) 교수 등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유역의 소수민족인 오로첸족(族)에 한글을 전파하려 했지만 동북공정(東北工程) 등으로 도중하차한 적이 있다. 또 일부 학자들이 태국 치앙마이 라오족, 네팔 오지에서 한글 보급 노력을 기울였지만 모두 실패했다.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지난해 한글날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대통령께 ‘한글’이라는 사랑의 무기를 가지고 세상을 제패할 수 있다, ‘하드 파워’와 반대되는 ‘소프트 파워’로 ‘문화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제국주의 나라들은 침략을 통해 무력(武力)의 제국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인류애 정신을 바탕으로 ‘사랑의 한글문화 강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한글 제국의 상상력
정 교수의 ‘한글제국(帝國)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 6900여 모든 소수민족의 삶을 연구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기 위해 첨단 IT와 CT를 접목시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양한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교육교재 개발까지 구상하고 있다.
“중국어, 인도어, 아랍어,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등을 한글로 입력하고 이들 언어를 표기문자로 변환시켜 주는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이 프로그램이 장착된 ‘한글 휴대폰’과 ‘컴퓨터’ 등이 전 세계에 대량 수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글을 바탕으로 한 첨단 음성인식 기술이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로봇 등에 소용될 때, 이들 기기는 지금의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인공지능형 기기들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세계적 언어연구소인 미국의 SIL(Summer Institute of Language)이나 위클리프(Wycliffe)보다 규모가 큰 한글연구원(정 교수는 ‘누리마루 연구원’이라 명명했다)을 세우고, 그 산하에 ‘한글문화 대사 대학원’을 설립하자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향후 10년 동안 500만명의 글로벌 청년 리더를 양성, ‘한글 문화 봉사단’ 자격으로 해외로 내보내자는 게 정 교수 생각이다. 그는 이 연구원을 세종시에다 세우자는 것이다.
“이 연구원에서 길러낸 젊은 리더를 해외로 보내 세계문자로 격상된 한글을 기반으로 인터넷, 컴퓨터, 휴대폰 세상을 주도하는 ‘제4의 물결’을 견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글은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최고 브랜드입니다. 우리는 이 한글을 중심으로 IT/CT 강국의 위상을 정립해야 해요. 또 ‘누리마루 연구원’을 세종시에다 우뚝 세워 봅시다. 인문학과 예술을 IT/CT 기술과 접목시킨 심층적 연구를 통해 전 세계 비문명권 지역에 바로 투입 가능한 숙련된 전문인력으로 키우자는 겁니다.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인류애 정신으로 무장한 인재들을 전 세계로 내보내면 대한민국은 브랜드 가치 세계 1위의 문화강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 : 서경리
충남대 김차균(金次均·70) 명예교수의 주장은 다소 급진적이다. “세계 인류의 화합과 평화와 행복을 위해, 우리나라가 가장 확실하게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은 한글의 세계 공용문자화를 통해 전 인류를 고르게 문명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제자인 충남대 국어교육과 정원수(鄭元洙·51) 교수는 한발 더 나간다.
“한글은 문명의 횃불입니다. 인류의 문맹, 컴맹, 넷맹, 폰맹 퇴치의 도구요 수단입니다. 한글은 21세기의 새로운 문화 블루칩입니다.”
정 교수는 “한글이 IT(정보기술), CT(문화기술)와 결합될 때, 비로소 문자로서의 한글의 세계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다”며 “한글이 신(新) 성장 동력산업을 일구어 수십만 개의 일자리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2월 3일 만난 그는 한글의 세계화에 대한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아직은 불투명해 보이지만 확신에 찼다.
“세상의 모든 언어를 한글로 쓰는 시대를 열면 새로운 시대역사라 할까요, 새로운 세계질서라고 할까요, 문화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봐요. 문명의 커다란 패러다임이 바뀔 겁니다. 그런데 한글학회를 보세요. 70대 교수들이 얼마나 보수적인가. 발목 잡는 거예요. 미국 상류층 학교는 5개 언어를 가르칩니다. 우리도 영어는 물론 중국·일본·인도어를 한글로 가르치자는 거예요. 교육의 혁명, 문화 산업의 혁명을 한글을 통해 이룰 수 있어요.”
정 교수는 지난 2008년 11월에는 중국어 표기문자를 기록하는 한글 표기법을 개발, 특허 출원했다. 단순히 중국어를 한글로 옮겨 적는 차원이 아니다. 중국어의 음운론적 특성과 음운현상을 고려해 중국어의 자음과 모음을 한글로 입력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한글에서 구연할 수 있는 최대 글자 수 1만1172개(자음 19개×모음 21개×받침 28개)를 ‘가나다 순’으로 배열해 놓은 유니코드를 만들어 ‘온누리 한글’이라 명명했다. 한글 입력 컴퓨터 프로그램과 한글교재를 만들기 위해 ‘㈜온누리 한글예슬’이란 회사도 설립했다. 아직은 매출이 없다. 특허 출원 과정에서 마음고생도 적지 않았다.
“중국어를 표기문자로 특허신청을 했다고 심사위원들이 난리였어요. ‘중국이 알면 어쩌려고’ 하면서요. ‘한자어 대신 쓰자는 게 아니라 발음 표기를 한글로 하자는 것이다’, ‘중국인도 로마자 알파벳으로 발음기호를 쓰는 판인데 한글로 발음기호를 써서 한자를 빨리 배우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설득했지요.”
―한글이 우리의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전 세계 6900종의 언어 중에 문자로 적을 수 있는 언어는 겨우 40여 종에 불과합니다. 한글의 세계화에 앞서 모든 언어를 조사, 연구해 그들 언어에 한글문자의 옷을 입혀야 해요. 또 궁극적으로는 한글로 신성장동력 산업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합니다. 컴퓨터, 휴대폰, 인터넷상에서 한글과 외국어(영어, 중국어, 일본어, 인도어, 아랍어)의 변환·번역, 음성인식, 검색에 필요한 소프트웨어·하드웨어를 개발할 겁니다. 쉽게 배울 수 있게 학습교재도 만들 겁니다.”
기자는 도대체 한글이 왜 새로운 문화산업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도 담을 수 있는 한글
 |
| 정원수 교수는 ‘중국어 표기문자를 기록하는 한글 표기법’을 개발, 지난 2008년 특허출원했다. 까다로운 중국어를 한글로 배울 수 있는 교재개발에도 관심이 많다. |
세종이 훈민정음을 펴내며 한자음을 바로잡으려 <동국정운(東國正韻)>을 편찬했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은 치음(齒音)인 ‘ㅈ,ㅅ,ㅊ’을 중국어 발음으로 표기할 수 있게 치음을 변형(혹은 )시킨 문자를 고안한 것이다. 현대의 국어학자들이 외래어 표기법 차원에서 영어 ‘v, f’의 발음을 표기하기 위해 ‘ㅇㅂ,ㅇ ㅍ’과 같은 글자를 고안한 이치와 비슷하다.
그러나 한글의 외래어 표기법을 두고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많다. [f]를 [ㅍㅎ]으로, [v]를 [ㅂㅎ]으로 쓰자는 주장도 나온다. 정 교수는 [f]를 []으로, [v]를 [?]으로 표기하자고 제안한다. 또 [sh]를 [ㅇㅅ], [zh]를 [ㅇㅈ], [ch]를 [ㅇㅊ], [l]을 [ㄹㄹ], [c]를 [ㅅㅊ], [l]을 [ㄹㄹ]로 쓰자고 말한다. 어느 것이 음성학적으로 타당한지는 학문적 논쟁이 필요하지만 한글로 세상의 언어를 모두 표기할 수 있는 도구로서의 고민은 값진 것이다. 한글연구회 최성철 회장의 말이다.
“세종의 창제정신을 받들어 훈민정음에 감춰진 ‘소리의 보물 곳간’을 열어 활용한다면 한글과 다른 이상한 모양의 글자를 만들지 않아도 되고, 활자를 새로 만드는 사회적 비용도 전혀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국어학자들이 편협한 사고를 버리고 여기에 동참할 것이냐 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입니다.”
정 교수는 한글 문자를 이용한 중국어 교육에 관심이 많다. 로마자 알파벳으로 쓰는 소리글 대신 한글로 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음절 단위 형태의 발음을 전제하는 한자의 발음표기는 음절 단위 형태의 우리 한글이 안성맞춤”이라는 얘기다. 한자 각각에 한글 글자가 음절 단위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한자 발음의 음절을 더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까닭이다.
“‘?好’를 [nihao]라고 로마자로 쓰지 않고 ‘니 ’라고 적어요. 한글이 외국어 발음을 표기하는 기호 역할을 한다면 충분히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습니다. 알파벳 로마자 발음표기는 일일이 풀어쓰는 방식이라 그 구성과 절차가 복잡합니다. 반면 한글은 24개 자모음만으로 간단하게 표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학교(學校)’의 중국어를 로마자 발음표기로 쓰면 [xuexiao]다. 눈으로 읽어가며 발음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를 정 교수가 고안한 한글체로 쓰면 [쒜]다. []는 [야오]로 발음하되 뒤의 [오]는 약하게 발음한다.
‘선생(先生)’도 마찬가지다. [xiansheng]이라 하지 않고 [셴]이라고 쓴다. 올해 다음해를 뜻하는 명년(明年) 역시 [mingnian] 대신 [밍녠]으로 쓴다.
중국어 문장의 한글 표기도 마찬가지다. ‘민심은 천심(民心卽天心)’을 로마자로 말하면 [minxin ji tianxin]이다. 이를 한글 발음으로 표기하면 [민신지톈신]이다. 로마자와 한글의 표기문자 중 어느 것이 편리한지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긴 문장은 더욱 명확하다. 영화 ‘첨밀밀’의 주제곡을 예로 들어보자. 첫 소절인 ‘달콤하게, 그대는 달콤하게 웃네요. 봄바람 속에서 피는 꽃처럼, 봄바람 속에서 피는 꽃처럼(혣?蜜蜜 ?笑得혣?蜜蜜 好象花핳開在春風里, 開在春風里)’의 로마자 발음표기는 [tianm쮉.m쮉. n?. xiaode tianmimi haoxiang hau er kai zai chunfeng li, kai zai chunfeng li]이다. 로마자 대신 그가 고안한 한글로 쓰면 다음과 같다.
[톈미미, 니 더 톈미미, 샹 화얼 캐 째 째, 캐 째 째].
훨씬 읽기가 편하고 의미도 파악하기 쉽다. 정 교수의 말이다.
“우리 글자인 한글을 수단으로 사용하면 중국어 배우기가 훨씬 편해요. ‘한어병음자모’라는 로마자 알파벳 발음기호를 이용해 중국어를 공부하는 기존의 방법에서 과감하게 탈피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방법을 바꿔서 당당하게 우리 글자인 한글로 중국어 발음을 적고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발음표기를 한글로 하면 한자는 배우지 말자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한글로 한자를 배우자는 것이지요. 한자 교육을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한글은 KTX입니다. 어디든지 빨리 갈 수 있는 도구지요. 이런 좋은 문자를 두고 왜 우리가 외면하는지 모르겠어요. KTX가 있는데 자전거 타고 가자고 고집하는 것과 같아요. 영어교육 차원에서 외래어 표기법 논쟁만 해요. 한글이 인류문화를 선도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심각한 주제입니다.”
한글은 가치중립적 언어, 1주일 만에 배울 수 있어
정 교수는 중국이 몇 년 내로 로마자 발음기호 대신 우리 한글 자모로 그들의 발음기호를 기록할 날이 올 것이라 믿고 있다. 중국 어린이들이 국어(중국어) 교육을 위해 한글을 원용한다면 한글의 세계 문자화의 초석(礎石)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김차균 명예교수의 말이다.
“한글은 어떤 글자보다도 특정 문화나 종교나 통치이념에서 중립적이었어요. 또 대중을 위한 글자의 역량을 쌓아왔기 때문에 어떤 편파적인 선입관에 의한 시기나 증오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작은 문자지요. 그러면서도 글자의 꼴과 운용 방법이 쉽고 과학적이기 때문에 머리가 뛰어난 사람은 한나절에 깨칠 수가 있으며 보통 정도의 사람은 일주일 정도면 익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처음에는 중국어를 적는 발음기호(제2병음자모)로서 한글이 돼야 한다. 섣불리 ‘중국어 표기문자’라는 식으로 목소리를 높여선 곤란하다. 지혜롭게 중국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정 교수의 말이다.
“복잡한 언어체계를 가진 중국에 로마자 대신 한글을 한자의 발음기호로 사용해 보라고 권하자는 거예요. 써보고 쉽게 가르칠 수 있고 배울 수 있다면 더욱 확산될 겁니다. 흑묘백묘(黑猫白猫)론을 강조하는 중국인들 아닙니까. 중국도 로마자로 표기하잖아요. 로마자는 되고 한글은 안된다? 왜 자학(自虐)적으로 생각합니까. 1만1172자인 한글 유니코드를 정비해 세계인이 자국 언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도록 합시다.”
정 교수는 이 같은 방식으로 영어나 일어 등 다른 외국어 교육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어교육이 중심이 되는 외국어 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한자를 익히면서 영어나 일본어의 발음도 모두 한글로 표기해 함께 가르칠 수 있다. 어려운 로마자 알파벳으로 발음기호를 적을 필요가 없다.
coffee를 [[k쮴ːfi, k쮫fi / k쮴f]라고 쓰지 않고 []라고 쓰면 어떤가. monkey를 [m쮷ŋki]라고 적지 않고 [키], like를 [laik]라 하지 않고 []라 쓰면 어떨까. ‘Do you have some coffee?’라는 문장은 ‘두 유 ’라 적을 때 비로소 정확한 문장 발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영어’라는 언어의 음운체계를 정확히 적을 수 있는 문자로서는 ‘로마자’보다 ‘한글’이 더 적격이란 얘기다.
문장으로 영어를 표기하는 것도 같은 방식이다.
‘What a genius you are’를 발음기호로 [hw쮩t 쮾 d쯂?ːnj쮾s juː 쮩ːr!]라고 쓰면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지지만 [어 지니어쓰 유 아!]로 쓰면 발음도 정확하고 한글에 대한 친숙도도 높아진다.
정 교수가 우리글로 외국어 발음을 모두 적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하나다. “훈민정음은 성대 모양을 본떠 만든 표음문자로 21개의 초성과 19개의 중성, 29개의 종성으로 소리가 나는 것은 모두 글로 옮겨 적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글이 어떤 발음에도 표기가 가능하다는 점은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채택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손은 찌아찌아어로 [을리마]라 발음하고, 발은 [까께], 우산은 [빠우]로 쓰는 등 한글의 우수성이 이미 확인됐다.
‘사랑의 한글문화 강국’ 만들어야
 |
| 복잡한 중국 한자를 로마자 알파벳 대신 한글로 적으면 쉽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다. 정 교수가 한글로 중국 한자의 발음을 표기한 부분을 손으로 가르키고 있다. |
하지만 한글 창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의 사상과 감정의 표현은 물론 중국어 발음까지도 한글로 배우고 쓸 수 있게 됐다. 정 교수는 “중국어는 한자 하나하나가 음절 단위로 인식되고 표기돼 있어 중국어를 한글로 적을 경우 로마자 표기보다 더 타당하다”고 했다.
조심스럽지만 한글과 중국어를 비교해 보자. 중국 사람들이 발음할 수 있는 음절은 411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사성(四聲)까지 동원해 숫자를 늘려 1644개의 음절을 쓴다. 반면 한자 수는 얼추 6만 자에 이른다. 얼마 안 되는 음절로 이 많은 한자를 읽으려니 같은 발음에 뜻 다른 말이 수천 개씩 쏟아지고 있다. 헷갈릴 수밖에 없다.
중국의 문맹(文盲)률이 높고 근대화가 늦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중국 근대문학의 아버지로 존경받는 루쉰(魯迅)이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이 반드시 망한다”고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한글 1만1172자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
한글표기의 위대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세계 문자 가운데 몽골문자나 중국문자처럼 위에서 아래로 세로쓰기를 해도, 로마자·그리스문자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로쓰기를 해도, 아랍·히브리문자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쓰기를 해도 한글은 어느 쪽으로나 표기가 가능하다. 로마자의 경우 기둥에 세로쓰기를 해보면 매우 모양이 좋지 않다.
또 읽기도 불편하다. ‘나는 서울로 간다’를 로마자로 바꿔 [naneunseoureganda]로 쓰면 읽기가 매우 어렵다. 같은 뜻을 가진 영어의 ‘I go to seoul’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Igotoseoul’처럼 붙여 쓰면 읽기가 매우 어렵고 오른쪽에서 왼쪽(luoesotogI)으로 붙여 쓰면 거의 읽을 수가 없다. 김차균 명예교수의 주장이다.
“한글은 어느 방향으로 쓰든, 띄어쓰기를 하든 하지 않든 어떠한 문자문화와도 친숙하게 다가갈 수가 있습니다.”
한글이 우수한 문자임에 틀림없으나 그 자체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중국과 태국, 네팔 등 오지 소수민족을 대상으로 한글 보급을 시도했었다. 그러나 현지 여건이 성숙하지 못하고 개인 차원에서 이뤄진 탓에 별 성과를 내지 못했다. 현지 적응과 함께 정부·학계의 장기적인 지원과 노력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다.
몇 해 전 훈민정음학회 이기남(李基南) 이사장과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李豪榮) 교수 등이 중국 헤이룽장(黑龍江) 유역의 소수민족인 오로첸족(族)에 한글을 전파하려 했지만 동북공정(東北工程) 등으로 도중하차한 적이 있다. 또 일부 학자들이 태국 치앙마이 라오족, 네팔 오지에서 한글 보급 노력을 기울였지만 모두 실패했다.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지난해 한글날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대통령께 ‘한글’이라는 사랑의 무기를 가지고 세상을 제패할 수 있다, ‘하드 파워’와 반대되는 ‘소프트 파워’로 ‘문화 제국’을 건설할 수 있다고 했어요. 제국주의 나라들은 침략을 통해 무력(武力)의 제국을 만들었지만 우리는 인류애 정신을 바탕으로 ‘사랑의 한글문화 강국’을 건설할 수 있습니다.”
한글 제국의 상상력
정 교수의 ‘한글제국(帝國) 상상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 6900여 모든 소수민족의 삶을 연구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한글로 표기하기 위해 첨단 IT와 CT를 접목시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양한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교육교재 개발까지 구상하고 있다.
“중국어, 인도어, 아랍어,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 베트남어 등을 한글로 입력하고 이들 언어를 표기문자로 변환시켜 주는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고 가정해 보세요. 이 프로그램이 장착된 ‘한글 휴대폰’과 ‘컴퓨터’ 등이 전 세계에 대량 수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글을 바탕으로 한 첨단 음성인식 기술이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로봇 등에 소용될 때, 이들 기기는 지금의 것보다 한 차원 높은 인공지능형 기기들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세계적 언어연구소인 미국의 SIL(Summer Institute of Language)이나 위클리프(Wycliffe)보다 규모가 큰 한글연구원(정 교수는 ‘누리마루 연구원’이라 명명했다)을 세우고, 그 산하에 ‘한글문화 대사 대학원’을 설립하자고 주장한다. 이곳에서 향후 10년 동안 500만명의 글로벌 청년 리더를 양성, ‘한글 문화 봉사단’ 자격으로 해외로 내보내자는 게 정 교수 생각이다. 그는 이 연구원을 세종시에다 세우자는 것이다.
“이 연구원에서 길러낸 젊은 리더를 해외로 보내 세계문자로 격상된 한글을 기반으로 인터넷, 컴퓨터, 휴대폰 세상을 주도하는 ‘제4의 물결’을 견인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글은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최고 브랜드입니다. 우리는 이 한글을 중심으로 IT/CT 강국의 위상을 정립해야 해요. 또 ‘누리마루 연구원’을 세종시에다 우뚝 세워 봅시다. 인문학과 예술을 IT/CT 기술과 접목시킨 심층적 연구를 통해 전 세계 비문명권 지역에 바로 투입 가능한 숙련된 전문인력으로 키우자는 겁니다. 자유, 평화, 민주주의를 신봉하면서 인류애 정신으로 무장한 인재들을 전 세계로 내보내면 대한민국은 브랜드 가치 세계 1위의 문화강국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진 : 서경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