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에서 영어를 떼어내고 영어능력평가를 자주 볼 경우 지금처럼 수능을 딱 한 번 치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입학사정관제와 함께 수능 내용이 바뀌면 (수능) 횟수를 좀 더 오픈시킬 필요가 있다”
⊙ 성적에 매달리는 교사가 교원평가에서 우대받아선 곤란
⊙ 교과부의 할 일은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가 아니라 일종의 ‘너지(nudge·팔꿈치로 슬쩍 찌르기)’
安秉萬
⊙ 1941년 충북 괴산 출생.
⊙ 경기고,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및 대학원 행정학과 졸업. 미 플로리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미 델라웨어대 명예박사.
⊙ 한국외국어대 교수·총장, 한국행정학회장,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 미래기획위원장 역임.
⊙ 성적에 매달리는 교사가 교원평가에서 우대받아선 곤란
⊙ 교과부의 할 일은 지방에 대한 중앙의 통제가 아니라 일종의 ‘너지(nudge·팔꿈치로 슬쩍 찌르기)’
安秉萬
⊙ 1941년 충북 괴산 출생.
⊙ 경기고,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 및 대학원 행정학과 졸업. 미 플로리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미 델라웨어대 명예박사.
⊙ 한국외국어대 교수·총장, 한국행정학회장,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장,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이사장, 미래기획위원장 역임.
대한민국은 교육의 무간지옥(無間地獄)에 살고 있다. 우리 ‘죄 없는’ 학생들은 성적으로 학교에서 부정 당하고, 졸업 후 직장에서 부정 당하는 가엾은 운명을 타고났다. 사람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을 두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국회에서 고막이 터질 듯이 갑론을박한다. 기자는 안병만(安秉萬)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갑론을박하기 위해 1월 14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를 찾았다.
기자와 만난 안 장관은 대뜸 “1980년대 민주화할 때 월간조선에 시론을 많이 썼어. 허허”라며 웃었다. 한국외대 교수 시절인 1990년 1월부터 6월까지 <안병만의 정치시평(政治時評)>이란 문패로 ‘강한 야당이 나와야 한다’, ‘국민은 탈법선거에 속지 않는다’는 제목의 시론을 여러 편 썼다. 행정학을 전공하고 정치학 박사를 딴 그는 이명박(李明博) 정부에서 교과부 장관이 됐다. 그의 머릿속에 행정과 정치, 교육, 과학기술이 어떻게 정리됐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외대 교수 시절, 역대 통치자 6인의 리더십을 평가하신 적이 있으시죠. 교육정책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하시나요.
그는 1998년 5월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장면(張勉) 전 총리 등 6명을 분석한 뒤박·전 두 전 대통령이 독재자적 측면과 부족한 정치역량에도 불구, 다른 통치자에 비해 리더십이 높다고 평가했었다.
“역대 통치자들이 교육정책을 많이 고민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 역시 역사의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교육이 그만큼 어렵잖아요. 다행히 다른 대통령은 몰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많아도 보통 많은 게 아니다. 이 대통령은 1월 4일 신년사에서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훈수 두는 이가 권력 실세 중에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이주호(李周浩) 교육부차관이야 그렇다 치고 정운찬(鄭雲燦) 총리, 정두언(鄭斗彦) 의원, 곽승준(郭承俊)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에 이르기까지 교육을 잡겠다고 외친다.
이명박 대통령과 교육철학 일치
“저하고는 교육에 대해 (대통령과) 거의 일대일로, 거 뭐지? 둘이서 얘기하는 것을 뭐라고 해요?”
―밀담요? 아니면 독대?
“(웃으며) 여하튼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그분의 철학을 많이 듣고 또 많은 부분이 제가 평소 생각하는 부분과 일치하는데….”
―어떤 부분이 일치하나요.
“입학사정관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입학사정관제가 대학에 입시자율권을 부여하면서도 입시과열로 치닫지 않게 하는 합리적 제도가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대학이 어떤 상(像)을 원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공부방향도 많이 달라지거든요. 우리가 한번 ‘베팅’해 볼 만한 굉장한 제도라고 생각해요.”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얼마 전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을 1년에 2회 이상 치르는 방안을 포함한 수능 개편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6월까지 기본 계획을 확정하겠다는 게 교과부 입장이다. 안 장관은 “기본적으로 수능을 딱 한 번 봐서 인생을 결정하는 식의 시험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수능 딱 한 번 치는 게 오히려 이상해”
“미국은 SAT를 여러 번 보고 그중 잘 친 시험을 골라 대학에 지원합니다. 입학사정관제도 비슷합니다. 사정관이 단번에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1년 내내 관찰해서 ‘헌팅’하잖아요. 대학 목적에 맞는 유능한 학생을 데려오기 위해서죠. 그렇게 되면 학생이 입학의 핵심이 되고 가치의 핵심이 되는 셈이지요. 반면 지금은 대학이 가치의 핵심이고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입학사정관제는 가치의 제도라고 부를 수 있지요. 수능 체제 개편과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안 장관은 이야기를 돌려 영어교육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현재 사교육의 3분의 1이 영어교육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을 잘하려는 게 아니라 대학입학이 목적이죠. 대학 변별력이 영어시험으로 결정되잖아요. 그래서 (수능에서) 영어를 떼어 내려고 합니다. 2012년까지 (떼어 낼지를) 결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만 떼어 냈으면 좋겠어요.”
수능 외국어(영어) 수험 대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을 전형요소로 반영하겠다는 것이 안 장관 구상이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은 현재 개발 단계에 있다. 대학의 정시 전형은 물론 수시모집 외국어 특기자 전형에도 토플·토익·텝스 같은 성인용 공인 영어인증시험 대신 이 시험을 활용할 계획이다.
“사실 영어시험이야말로 자주 보는 시험이어야 합니다. 한 해 동안 여러 번 칠 기회를 주고, 공교육만 받아도 실용영어 수준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등급제로 해서 1급은 직장인 입사(入社)용, 2~3급은 고교생용으로 치르게 하면 어떨까요. 대학 영문과 진학을 희망하면 2급 성적은 얻어야 하고, 영어가 필요 없는 학과는 영어성적이 당락을 결정하지 않게 3급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수능에서 영어를 떼어 내고 영어능력평가를 자주 볼 경우 지금처럼 수능을 딱 한 번 치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입학사정관제와 함께 수능 내용이 바뀌고 학생이 치는 수능과목도 줄면 (수능) 횟수를 좀 더 오픈시킬 필요가 있다고 봐요.”
“외고 문제점은 독과점”
안 장관은 한국외대 총장 시절 용인외고를 만들었다. 외대생들의 교생실습을 위해 부설학교가 절박했다고 한다. 현재 용인외고는 서울지역 외고에 손색없는 명문 외고가 되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외고 개혁을 주도해야 할 판이다.
―사실 외고도 대입 문제와 연결된 것 아닙니까. 서울대 가기 위해 외고 가는 것 아닙니까.
“외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과점 식으로 우수한 학생을 싹쓸이하는 데 있었습니다. 쓸어가는 방법이 중학생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성취도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원흉(元兇)이란 소릴 듣게 하였어요. 또 외고가 일류대 가는 통로로만 이용됐어요. 그러니 개혁이 불가피했어요.”
교과부는 외고 신입생 전원에게 입학사정관에 의한 ‘자기주도형 학습전형’을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다 한 학급당 40명에 육박하는 학생 수를 25명 수준으로 줄이고 외국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개편할 방침이다.
“그런데 개혁이란 게 참 어렵습니다. 한쪽은 ‘왜 외고를 죽이려 하느냐. 내버려 둬라’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아예 외고를 없애고 대체하라’고 요구합니다.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가 없어요.
사실 전지전능한 개혁이란 없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가면서 계속 개혁을 보완해야 합니다. 개혁도 기획처럼 ‘롤링플랜(Rolling Plan·계획과 실적 간의 차이를 비교해 그 시점에서 새로 3년이나 5년의 계획을 재구성하는 방식)’이 있듯이 ‘롤링리폼(Rolling Reform)’이 필요합니다.”
안 장관은 ‘롤링리폼’은 스스로 만든 조어(造語)라고 했다. 개혁의 연속성, 그러니까 낡거나 오래된 개혁을 새롭게 고쳐나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외고의 운명은 시간에 달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교과부는 올해부터 교원평가를 전면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평가안을 보면 다분히 다면평가 성격을 띤다. 교사는 수업지도와 생활지도 내용을, 교장·교감은 학교 경영실적을 평가받는다. 평가에는 학생과 학부모 동료 교사도 참여한다. 하지만 다면평가를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최근 행정안전부는 1998년부터 시행해 온 다면평가제를 11년 만에 폐지했다. 행안부와 교과부의 판단은 왜 다를까.
“기존 (행안부의) 다면평가는 동료 상사 봐주기 평가라는 얘기를 들었고 야박하지 않게 평가하는 관행이 문제가 됐어요. 하지만 교원평가는 다릅니다. 이미 대학교수 평가를 통해 정착됐지 않습니까. 평가결과가 놀랍게도 자기를 비춘 거울과 같아요. 제가 교수시절 (평가위력을) 체감했어요. 강의준비가 소홀하면 낮은 평가가 나왔고 열성을 다하면 평가가 그대로 반영돼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학창시절을 생각해 보세요. 친구끼리 선생님을 평가 많이 했잖아요. 그런 평가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평가가 하나의 루머처럼 사장되고 말았는데, 그런 것들이 교사한테 전달돼 ‘학생들이 나를 저렇게 보는구나’하고 여기게 하면 개혁의 모멘텀(momentum)이 될 겁니다. 저는 이 평가가 초·중·고 개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원평가가 인성교육을 포기하고 시험 잘 치게 하는 교사로 만들지 않을까요?
안 장관은 이 대목에서 아주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것 때문에 평가가 필요합니다. 학생과 교사가 스킨십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하는 지도 평가대상이 돼야 합니다. 그런 평가항목이 없으면 ‘파쇼 식’으로 성적에만 매달리는 교사만 좋은 평가를 받겠죠. 편향적으로 매달리면 평가결과가 나빠질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해요. 그래서 평가항목을 잘 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실패라는 역사적 체험을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역대 대통령마다 ‘교육 대통령’을 표방하며 교육개혁 기구를 만들었으나 고통은 늘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몫이었다.
―교육개혁은 왜 어렵나요?
“과학은 정답이 있지만 교육은 정답이 없어요. 평준화와 수월성 싸움처럼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말들만 많습니다. 정답이 애매하고 자칫 교육에 관한 철학이 너무 지나쳐 이데올로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게 교육입니다. 전 국민의 관심사니 교육에 사공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교과부 장관이 됐을 때 두려운 부분이 과학이었습니다. 6개월 공부하니까 과학정책을 어느 정도 통달할 정도로 나름의 비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교육은 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입니다. 잘했다고 내놔도 찬반(贊反)이 엄청납니다. 교육 자체가 갖는 특성 때문에 힘들어요.”
평준화와 수월성, 다양성, 창의성, 자율성, 배려
―공교육을 어떻게 살릴 겁니까.
“학교교육은 평준화 틀에서 많이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준화라 하지만 못 쫓아가는 학생을 방치해선 안됩니다. 이 부분을 상당히 소홀히 했어요. 사회에 나가 자기실현하는 큰 계기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또 하나는 평준화를 넘어서는 우수한 학생입니다. 이 학생에게 평준화 수준에서 교육받으라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국가적 자산이 될 수 있게 자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떤 것이 필요하냐, 정답은 ‘다양화’입니다.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학생 요구(needs)에 맞춰야 합니다. 교실의 다양화, 그중에서도 교과교실제가 대표적인 예죠. 영어 잘하는 학생은 최고 수준의 영어교실에서, 수학이 바닥이면 최하 수준의 수학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이른바 맞춤형이죠.”
―똑같은 교육이념과 똑같은 교육과정을 지닌 초록 동색의 학교보다 다양한 교육주체가 자신의 희망을 담아내는 학교가 많이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의 획일성 대신 ‘창의성’도 강조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한다고 사회에서 성공할 순 없어요. 창의성을 강조하려면 학생들을 닦달하지 말고 느슨하게 다뤄야 합니다. 입학사정관제가 느슨하게 만드는 장치죠. ‘○냐’ ‘×냐’ 강요하는 대신 느슨하게 자기실현을 실천에 옮기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교과부는 ‘가이드’하기보다 ‘너지’해야”
규제에 익숙한 현재의 교과부 시스템으로는 다양한 교육적 수요에 대처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교과부가 변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과부가 독과점하는 업무부터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느슨한 것과 연계해 ‘자율성’도 중요합니다. 결정은 중앙에서 독점하지 않고 (권한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가장 분산시킨 곳이 학교가 돼야 하고 그 다음이 지역교육청이어야 합니다. 재정적인 면에서 자율성이 많이 커졌지만, 아직도 우리(교과부)가 ‘가이드’하는 게 많거든요.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컨트롤이 아니라 ‘너지(nudge·팔꿈치로 슬쩍 찌르기)’하는, 일종의 보살펴주고 제안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몸에 좋은 사과를 많이 먹이기 위해 카페테리아 앞에 먹음직스런 사과를 제일 앞에 둡니다. 그리고 당분이 많은 초콜릿은 제일 뒤에 두죠. 아이에게 초콜릿을 먹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과를 쥐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좋은 것을 앞에 보여주고 선택하도록 하는 게 중앙정부의 역할이죠.”
안 장관은 벌써 1년5개월째 재임중이다. 역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 1년2개월. 그에게 “3년은 하십시오”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인수위에 참여했을 때는 여러 가지 많은 제안을 했었지요. 당시엔 많은 부분을 정책화시키는 단계였다면 지난해는 정책화시킨 것을 실천에 옮기는 한해였지요. 올해는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실행의 결실을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장관을 오래하느냐에 대한 집착은 없습니다. 다양성, 창의성, 자율성을 바탕으로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수월성), 뒤처지는 학생은 끌어올리는 교육(배려)을 실현하겠습니다.”⊙
기자와 만난 안 장관은 대뜸 “1980년대 민주화할 때 월간조선에 시론을 많이 썼어. 허허”라며 웃었다. 한국외대 교수 시절인 1990년 1월부터 6월까지 <안병만의 정치시평(政治時評)>이란 문패로 ‘강한 야당이 나와야 한다’, ‘국민은 탈법선거에 속지 않는다’는 제목의 시론을 여러 편 썼다. 행정학을 전공하고 정치학 박사를 딴 그는 이명박(李明博) 정부에서 교과부 장관이 됐다. 그의 머릿속에 행정과 정치, 교육, 과학기술이 어떻게 정리됐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외대 교수 시절, 역대 통치자 6인의 리더십을 평가하신 적이 있으시죠. 교육정책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하시나요.
그는 1998년 5월 이승만(李承晩)·박정희(朴正熙)·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장면(張勉) 전 총리 등 6명을 분석한 뒤박·전 두 전 대통령이 독재자적 측면과 부족한 정치역량에도 불구, 다른 통치자에 비해 리더십이 높다고 평가했었다.
“역대 통치자들이 교육정책을 많이 고민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저 역시 역사의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교육이 그만큼 어렵잖아요. 다행히 다른 대통령은 몰라도, 이명박 대통령은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많아도 보통 많은 게 아니다. 이 대통령은 1월 4일 신년사에서 “대통령이 교육개혁을 직접 챙기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훈수 두는 이가 권력 실세 중에 너무 많은 게 문제다. 이주호(李周浩) 교육부차관이야 그렇다 치고 정운찬(鄭雲燦) 총리, 정두언(鄭斗彦) 의원, 곽승준(郭承俊) 청와대 미래기획위원장에 이르기까지 교육을 잡겠다고 외친다.
이명박 대통령과 교육철학 일치
“저하고는 교육에 대해 (대통령과) 거의 일대일로, 거 뭐지? 둘이서 얘기하는 것을 뭐라고 해요?”
―밀담요? 아니면 독대?
“(웃으며) 여하튼 자유로운 대화 속에서 그분의 철학을 많이 듣고 또 많은 부분이 제가 평소 생각하는 부분과 일치하는데….”
―어떤 부분이 일치하나요.
“입학사정관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제가 보기에도 입학사정관제가 대학에 입시자율권을 부여하면서도 입시과열로 치닫지 않게 하는 합리적 제도가 아닌가 생각하거든요. 대학이 어떤 상(像)을 원하느냐에 따라 학생의 공부방향도 많이 달라지거든요. 우리가 한번 ‘베팅’해 볼 만한 굉장한 제도라고 생각해요.”
이주호 교과부 차관은 얼마 전 대학 수학능력시험(수능)을 1년에 2회 이상 치르는 방안을 포함한 수능 개편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는 6월까지 기본 계획을 확정하겠다는 게 교과부 입장이다. 안 장관은 “기본적으로 수능을 딱 한 번 봐서 인생을 결정하는 식의 시험은 지양돼야 한다”고 했다.
“수능 딱 한 번 치는 게 오히려 이상해”
“미국은 SAT를 여러 번 보고 그중 잘 친 시험을 골라 대학에 지원합니다. 입학사정관제도 비슷합니다. 사정관이 단번에 학생을 뽑는 게 아니라 1년 내내 관찰해서 ‘헌팅’하잖아요. 대학 목적에 맞는 유능한 학생을 데려오기 위해서죠. 그렇게 되면 학생이 입학의 핵심이 되고 가치의 핵심이 되는 셈이지요. 반면 지금은 대학이 가치의 핵심이고 학생들끼리 경쟁하는 구조입니다. 그러니 입학사정관제는 가치의 제도라고 부를 수 있지요. 수능 체제 개편과 입학사정관제 도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안 장관은 이야기를 돌려 영어교육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현재 사교육의 3분의 1이 영어교육에 집중되고 있습니다. 의사소통을 잘하려는 게 아니라 대학입학이 목적이죠. 대학 변별력이 영어시험으로 결정되잖아요. 그래서 (수능에서) 영어를 떼어 내려고 합니다. 2012년까지 (떼어 낼지를) 결정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만 떼어 냈으면 좋겠어요.”
수능 외국어(영어) 수험 대신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을 전형요소로 반영하겠다는 것이 안 장관 구상이다.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은 현재 개발 단계에 있다. 대학의 정시 전형은 물론 수시모집 외국어 특기자 전형에도 토플·토익·텝스 같은 성인용 공인 영어인증시험 대신 이 시험을 활용할 계획이다.
“사실 영어시험이야말로 자주 보는 시험이어야 합니다. 한 해 동안 여러 번 칠 기회를 주고, 공교육만 받아도 실용영어 수준이 올라갈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등급제로 해서 1급은 직장인 입사(入社)용, 2~3급은 고교생용으로 치르게 하면 어떨까요. 대학 영문과 진학을 희망하면 2급 성적은 얻어야 하고, 영어가 필요 없는 학과는 영어성적이 당락을 결정하지 않게 3급이면 족하지 않습니까. 수능에서 영어를 떼어 내고 영어능력평가를 자주 볼 경우 지금처럼 수능을 딱 한 번 치는 게 오히려 이상할 겁니다. 입학사정관제와 함께 수능 내용이 바뀌고 학생이 치는 수능과목도 줄면 (수능) 횟수를 좀 더 오픈시킬 필요가 있다고 봐요.”
“외고 문제점은 독과점”
안 장관은 한국외대 총장 시절 용인외고를 만들었다. 외대생들의 교생실습을 위해 부설학교가 절박했다고 한다. 현재 용인외고는 서울지역 외고에 손색없는 명문 외고가 되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외고 개혁을 주도해야 할 판이다.
―사실 외고도 대입 문제와 연결된 것 아닙니까. 서울대 가기 위해 외고 가는 것 아닙니까.
“외고의 가장 큰 문제점은 독과점 식으로 우수한 학생을 싹쓸이하는 데 있었습니다. 쓸어가는 방법이 중학생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성취도를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것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원흉(元兇)이란 소릴 듣게 하였어요. 또 외고가 일류대 가는 통로로만 이용됐어요. 그러니 개혁이 불가피했어요.”
교과부는 외고 신입생 전원에게 입학사정관에 의한 ‘자기주도형 학습전형’을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다 한 학급당 40명에 육박하는 학생 수를 25명 수준으로 줄이고 외국어 교육에 집중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개편할 방침이다.
“그런데 개혁이란 게 참 어렵습니다. 한쪽은 ‘왜 외고를 죽이려 하느냐. 내버려 둬라’라고 하고, 다른 한쪽은 ‘아예 외고를 없애고 대체하라’고 요구합니다. 양쪽 모두를 만족시킬 수가 없어요.
사실 전지전능한 개혁이란 없습니다. 부족한 것을 채워가면서 계속 개혁을 보완해야 합니다. 개혁도 기획처럼 ‘롤링플랜(Rolling Plan·계획과 실적 간의 차이를 비교해 그 시점에서 새로 3년이나 5년의 계획을 재구성하는 방식)’이 있듯이 ‘롤링리폼(Rolling Reform)’이 필요합니다.”
안 장관은 ‘롤링리폼’은 스스로 만든 조어(造語)라고 했다. 개혁의 연속성, 그러니까 낡거나 오래된 개혁을 새롭게 고쳐나간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외고의 운명은 시간에 달렸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교과부는 올해부터 교원평가를 전면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평가안을 보면 다분히 다면평가 성격을 띤다. 교사는 수업지도와 생활지도 내용을, 교장·교감은 학교 경영실적을 평가받는다. 평가에는 학생과 학부모 동료 교사도 참여한다. 하지만 다면평가를 두고 여러 말이 나온다. 최근 행정안전부는 1998년부터 시행해 온 다면평가제를 11년 만에 폐지했다. 행안부와 교과부의 판단은 왜 다를까.
“기존 (행안부의) 다면평가는 동료 상사 봐주기 평가라는 얘기를 들었고 야박하지 않게 평가하는 관행이 문제가 됐어요. 하지만 교원평가는 다릅니다. 이미 대학교수 평가를 통해 정착됐지 않습니까. 평가결과가 놀랍게도 자기를 비춘 거울과 같아요. 제가 교수시절 (평가위력을) 체감했어요. 강의준비가 소홀하면 낮은 평가가 나왔고 열성을 다하면 평가가 그대로 반영돼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학창시절을 생각해 보세요. 친구끼리 선생님을 평가 많이 했잖아요. 그런 평가가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평가가 하나의 루머처럼 사장되고 말았는데, 그런 것들이 교사한테 전달돼 ‘학생들이 나를 저렇게 보는구나’하고 여기게 하면 개혁의 모멘텀(momentum)이 될 겁니다. 저는 이 평가가 초·중·고 개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교원평가가 인성교육을 포기하고 시험 잘 치게 하는 교사로 만들지 않을까요?
안 장관은 이 대목에서 아주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 것 때문에 평가가 필요합니다. 학생과 교사가 스킨십을 가지고 인성교육을 하는 지도 평가대상이 돼야 합니다. 그런 평가항목이 없으면 ‘파쇼 식’으로 성적에만 매달리는 교사만 좋은 평가를 받겠죠. 편향적으로 매달리면 평가결과가 나빠질 수밖에 없도록 해야 해요. 그래서 평가항목을 잘 개발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교육개혁은 실패라는 역사적 체험을 축적하는 과정이었다. 역대 대통령마다 ‘교육 대통령’을 표방하며 교육개혁 기구를 만들었으나 고통은 늘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몫이었다.
―교육개혁은 왜 어렵나요?
“과학은 정답이 있지만 교육은 정답이 없어요. 평준화와 수월성 싸움처럼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말들만 많습니다. 정답이 애매하고 자칫 교육에 관한 철학이 너무 지나쳐 이데올로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게 교육입니다. 전 국민의 관심사니 교육에 사공이 많습니다.
제가 처음 교과부 장관이 됐을 때 두려운 부분이 과학이었습니다. 6개월 공부하니까 과학정책을 어느 정도 통달할 정도로 나름의 비전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교육은 하면 할수록 오리무중입니다. 잘했다고 내놔도 찬반(贊反)이 엄청납니다. 교육 자체가 갖는 특성 때문에 힘들어요.”
평준화와 수월성, 다양성, 창의성, 자율성, 배려
―공교육을 어떻게 살릴 겁니까.
“학교교육은 평준화 틀에서 많이 보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준화라 하지만 못 쫓아가는 학생을 방치해선 안됩니다. 이 부분을 상당히 소홀히 했어요. 사회에 나가 자기실현하는 큰 계기가 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또 하나는 평준화를 넘어서는 우수한 학생입니다. 이 학생에게 평준화 수준에서 교육받으라고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국가적 자산이 될 수 있게 자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떤 것이 필요하냐, 정답은 ‘다양화’입니다. 다양한 학교를 만들어 학생 요구(needs)에 맞춰야 합니다. 교실의 다양화, 그중에서도 교과교실제가 대표적인 예죠. 영어 잘하는 학생은 최고 수준의 영어교실에서, 수학이 바닥이면 최하 수준의 수학교실에서 배우는 것이 이른바 맞춤형이죠.”
―똑같은 교육이념과 똑같은 교육과정을 지닌 초록 동색의 학교보다 다양한 교육주체가 자신의 희망을 담아내는 학교가 많이 생겨나야 하지 않을까요?
“교육의 획일성 대신 ‘창의성’도 강조해야 합니다.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한다고 사회에서 성공할 순 없어요. 창의성을 강조하려면 학생들을 닦달하지 말고 느슨하게 다뤄야 합니다. 입학사정관제가 느슨하게 만드는 장치죠. ‘○냐’ ‘×냐’ 강요하는 대신 느슨하게 자기실현을 실천에 옮기면 대학에 갈 수 있도록 교육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합니다.”
“교과부는 ‘가이드’하기보다 ‘너지’해야”
규제에 익숙한 현재의 교과부 시스템으로는 다양한 교육적 수요에 대처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교과부가 변하기 위해서는 우선 교과부가 독과점하는 업무부터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느슨한 것과 연계해 ‘자율성’도 중요합니다. 결정은 중앙에서 독점하지 않고 (권한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가장 분산시킨 곳이 학교가 돼야 하고 그 다음이 지역교육청이어야 합니다. 재정적인 면에서 자율성이 많이 커졌지만, 아직도 우리(교과부)가 ‘가이드’하는 게 많거든요. 우리가 지향하는 것은 컨트롤이 아니라 ‘너지(nudge·팔꿈치로 슬쩍 찌르기)’하는, 일종의 보살펴주고 제안하는 방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에게 몸에 좋은 사과를 많이 먹이기 위해 카페테리아 앞에 먹음직스런 사과를 제일 앞에 둡니다. 그리고 당분이 많은 초콜릿은 제일 뒤에 두죠. 아이에게 초콜릿을 먹지 말라고 가르치지 않아도, 자연스레 사과를 쥐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식으로 좋은 것을 앞에 보여주고 선택하도록 하는 게 중앙정부의 역할이죠.”
안 장관은 벌써 1년5개월째 재임중이다. 역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 1년2개월. 그에게 “3년은 하십시오”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인수위에 참여했을 때는 여러 가지 많은 제안을 했었지요. 당시엔 많은 부분을 정책화시키는 단계였다면 지난해는 정책화시킨 것을 실천에 옮기는 한해였지요. 올해는 국민이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정책실행의 결실을 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장관을 오래하느냐에 대한 집착은 없습니다. 다양성, 창의성, 자율성을 바탕으로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게(수월성), 뒤처지는 학생은 끌어올리는 교육(배려)을 실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