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종시’ 문제로 의원직 사퇴한 朴世逸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 월간조선

2005년 3월 15일, 朴世逸(박세일)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이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미리 준비한 ‘국민께 드리는 글’이라는 성명서를 읽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이제 국회를 떠나려 합니다. 저를 뽑아주신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러운 마음으로 엎드려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중략)

저는 최근 與野(여야) 합의로 ‘수도분할’법이 통과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마침내 국회의원직을 국민 여러분께 되돌려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국회의원으로서, 야당의 정책위 의장으로서 국민적 고통과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분할’법을 막지 못한 책임을 통감하면서, 국민께서 국회의원으로서의 저에게 맡긴 기본책무를 더 이상 수행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여야 지도부는 ‘수도이전’법보다 더 많은 문제점을 가진 ‘수도분할’법을 국민의 의사와 동의를 구하는 최소한의 절차도 없이 막후 합의로 강행처리했다”면서 “이 ‘잘못된 법’을 통과시킨 여야 의원들은 ‘수도분할’법이 가져올 ‘국민적 고통’과 ‘국가적 재앙’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그는 “‘수도분할’법은 ‘국가이익’을 우선하기보다는 여야 간 黨利黨略(당리당략)을 앞세운 政略的(정략적) 타협의 기형적 산물이며, 특정지역을 의식한 여야 간의 선거전략, 득표전략의 산물”이라고 맹비난했다.

당시 그는 한나라당 전국구(비례대표) 의원이었다. 국회의장이 의원직 사퇴를 허가하지 않자, 그는 아예 한나라당을 脫黨(탈당)했다. 전국구 의원이 소속 정당을 탈당하면 의원직을 내놓게 되어 있는 법규정을 이용,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 것이다.

그의 사퇴에 대해 당시 <朝鮮日報> 社說(사설)은 이렇게 평가했다.

<박 의원의 처신은 툭하면 “직을 걸겠다” “물러나겠다”고 큰소리쳐 놓고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딴소리하고, 평소 말해온 소신과 전혀 다른 일을 하고도 책임지는 정치인이 없는 우리 정치풍토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임에 틀림없다. 박 의원이 ‘정치’가 아니라 ‘국가정책’에 자신의 진퇴를 건 것도 새롭다. (중략) 수도이전에 대한 찬반을 의원직 사퇴로 표시한 박세일 의원은 앞으로 행정수도에 대한 논란이 일 때마다 국회의원 299명 중 끝까지 자기 의사를 분명히 한 단 한 명의 의원으로서 그 이름이 계속 오르내릴 것이다.>

이후 대학으로 돌아간 박세일 ‘前(전) 의원’은 한반도선진화재단을 만들어 선진화를 위한 이념과 정책을 생산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가 의원직을 사퇴한 지 3년8개월, 朝鮮日報 사설은 예언이 됐다. 세종시 문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는 지금, 그의 이름이 다시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가 私益 추구 수단으로 전락”

지난 11월 3일 ‘더 나은 세종시를 위한 수도분할반대 국민회의’ 출범식에서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은 박세일 이사장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지도자들의 다수가 세종시 문제를 포퓰리즘적으로 자기들의 私益(사익) 추구를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세종시 문제로 다시 언론의 중심에 선 박세일 이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는 “세종시 논란에 나타난 우리 정치의 총체적 문제에 대해서라면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세종시가 그대로 진행된다면 우리 정치는 파산선고를 받을 것”이라고 했더군요. 무슨 의미입니까.

“이번 세종시 논란을 보면서 ‘한국정치가 대한민국을 더 이상 끌어가지 못하고 있구나’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밖으로는 남북문제나 동북아 질서 형성, 안으로는 교육문제 등 여러 가지 국가적 과제를 올바로 풀어나갈 능력이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그런 얘기를 한 것입니다.”

그의 얼굴에는 비감이 서려 있었다.

―한국정치가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능력을 상실한 거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잖습니까.

“이제는 정치가 나라를 이끌어가지 못하는 것을 넘어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절감하게 된 거죠.”

―그 원인이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의 정치는 아직도 민주화 시대의 ‘권력투쟁형 정치’입니다. ‘선진화 시대’에 맞는 ‘국가경영형 정치’가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어요. 국가정책을 전문성과 합리성을 기초해서 풀어가는 정치가 아니라, 모든 정책이나 과제를 政爭(정쟁)화하면서 국민들에게 영합하는 ‘포퓰리즘’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정치의 과잉’, ‘올바른 정책의 빈곤’ 시대입니다. 정치는 국가의 과제를 푸는 公的(공적) 수단인데, 정치지도자나 政派(정파)의 사익 추구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어요.”

“한국 정당은 선거꾼들의 모임”

―말씀하신 ‘정책중심의 정치’라는 것은 우리 정치에서는 한 번도 있어본 적이 없었잖습니까.

박세일 이사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국의 정당은 근대적 의미의 정당이 전혀 아닙니다. 선거기능만 있을 뿐이죠. 한국 정당에는 두 가지가 없어요.

첫째, 국민적 기반이 없습니다. 선거꾼들의 모임 비슷하게 되어 있죠. 둘째, 국가 비전과 정책도 없고, 그런 것을 연구개발하는 기반도 없습니다. 그저 정치꾼을 위한 조직일 뿐이죠. 그러다 보니 정책은 쉽게 내팽개쳐지고 정치는 私物化(사물화)되는 것입니다. 정책을 경시하는 정치는 결국 국민을 경시하는 정치입니다.

정치인들의 퍼포먼스는 民生(민생)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정책은 민생에 직접 영향을 줍니다. 그런데도 정책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치입니까. 정당개혁이 없이는 선진화도, 통일도 없다는 절망감을 느끼곤 합니다.”

―정당개혁이라면 무엇을 얘기하는 것입니까.

“국가비전과 정책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국민을 설득하고 국민에게 다가가 정권을 잡고, 그 정책을 실현하는 것에서 보람을 느끼는 정치가 나와야 합니다. 김 아무개 이 아무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그때그때 편의에 따라 정책이 왔다갔다 하는 나라에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는 “세종시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종시는 盧武鉉(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략적 목적에서 내놓은 잘못된 정책입니다. 새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바로잡았어야 할 문제를 1년 반이 넘어서야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 정치에 한계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종시 문제를 보면, 당초 수도이전을 공약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朴槿惠(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李會昌(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 李明博(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포퓰리즘에 따라 움직이다가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선거 포퓰리즘, 특정지역의 표를 얻기 위한 포퓰리즘이죠. 일부 국민의 정서에 영합해서, 때로는 그러한 정서를 선동하면서, 國益(국익)을 버리고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행위가 포퓰리즘입니다. 세종시 문제에 관한 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할 것 없이 포퓰리즘에 따라 움직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박 이사장은 먼저 행정수도 이전을 2002년 대선공약으로 내세웠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경상도 사람이고, 당은 전라도 당이니까, 충청도 지역 표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죠. 물론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거기에도 금도가 있어야 합니다. 국가에 크게 有害(유해)한 정책을 함부로 내놓아 당선만 되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개인적 이해 넘어 國益 생각해야 진정한 지도자”

―세종시라는 유해한 정책에 한나라당은 왜 따라간 것입니까.

“한나라당은 2003년 10월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행정수도법)을 통과시켜 줬어요. 종래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했지만, 이듬해 4월 총선을 앞두고 충청권 표를 의식한 거죠.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다수당이 되면, 행정수도 이전 관련 예산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방법으로 수도 이전을 막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한나라당은 거기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행정수도 이전이 잘못된 것이면, 그 점을 지역주민들에게 설명하고 더 나은 代案(대안)을 제시했어야 하는데, 아주 안이하고 편의주의적인 접근을 한 것이죠.”

―국민의 直選(직선)으로 대통령을 뽑고, 4년마다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를 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는 구조적으로 포퓰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세상에 어느 나라 정치인이 자기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수도를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놓습니까? 어느 나라 야당이 표를 생각해서 그걸 수용합니까?”

―‘정치는 현실’ 아닙니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가치와 理想(이상)이 없는 정치는 결국 사욕을 챙기기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표 때문에 할 수 없었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얘기입니다.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무슨 짓을 해서 나라를 결딴나게 할지 모릅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넘어서 국익을 생각해야 하는 게 지도자 아닙니까.”

박세일 이사장은 “한국정치가 파산할 것인지, 아니면 희망이 될 것인지는 여야 모두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2005년 7월 행정수도법에 한나라당이 찬성했던 것에 대해 사과까지 했던 박근혜 전 대표는 왜 행복도시법 표결 처리에 동의한 겁니까.

“2005년 행정수도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은 후, 여당이 일부 부처만 세종시로 이전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여야가 特委(특위)를 만들어 논의하기로 했어요.

나는 절차적 정당성 이전에 행복도시법은 내용의 정당성이 없기 때문에 특위에 야당이 참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특위에 참가한 이상, 한나라당 위원도 수도분할이 잘못된 것이라고 따지기보다는 몇 개 부처를 세종시로 옮기느냐 하는 문제에 매달리고, 그걸 가지고 한나라당 의원들을 설득하려 들게 마련이었어요. 여야가 거기에 합의한 이상 그걸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 박 전 대표의 생각이었겠죠. 결국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여야 합의안이 통과됐습니다. 여기에는 박근혜 전 대표 등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의 영향이 있었겠죠.”

“정부를 찢어놓으면 국가 운영 불가능”

박세일 의원(오른쪽)이 2004년 8월 12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여의도연구소장 임명장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는 평소 원칙을 강조하는데, 세종시나 미디어법 문제에 대처하는 것을 보면 그 원칙이라는 게 뭔지 알쏭달쏭할 때가 있습니다.

“박 전 대표가 원칙이나 약속, 신뢰 같은 것을 중시하는 분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약속이나 신뢰를 가볍게 여기는 우리 정치 풍토 속에서 그것은 큰 장점입니다.

하지만 국익에 반하는 약속이라면 그것을 고치는 것이 옳습니다. 한나라당이 ‘세종시 문제가 잘못된 것이었다’고 번복하는 것이 죽는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나라를 살리기 위해 잘못된 결정을 바꿔야 합니다.”

―세종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합니까.

“퍼주기 식의 대안은 안됩니다. 그런 대안은 逆(역)포퓰리즘이에요. 누가 봐도 적절한 수준에서 설득력 있는 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안이 합리적이면 박근혜 전 대표도 수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게 합리적인 대안입니까.

“정부만 안 내려가면 됩니다. 정부를 찢어놓으면 국가 운영을 못 합니다. 과천에 제2정부종합청사를 짓고 얼마나 불편했습니까. 서울에 다녀가자면 한나절 이상 깨지고, 장관들은 서울 시내에 별도의 사무실을 두고…. 여하튼 세종시에 굉장히 좋은 부지가 생겼습니다. 이 부지에 어떤 프로젝트를 넣어서 국가 전체 발전과 연결시키느냐에 대해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수 있습니다.”

박세일 이사장은 “이 세상에 수도를 이전해서, 그것도 반쪽 이전을 통해 균형발전을 도모해 성공한 나라는 없다”면서 교육과학기업도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서울에 있는 주요 대학과 연구소들을 옮기는 것이 올바른 정책방향입니다. 도시를 개발하는 데는 학교만한 것이 없습니다. 옛날에 서울 강남 개발할 때를 생각해 보세요. 경기·서울·휘문·중동·경기여고·숙명여고 등 좋은 학교들을 옮기면서 순식간에 발전하지 않았습니까.”

李明博 대통령의 용기

2005년 3월 15일 김원기 국회의장을 찾아가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는 박세일 당시 한나라당 의원.

―이미 세종시 문제는 충청도의 지역감정과 연결됐습니다. 정부가 합리적 대안을 내놓는다고 받아들일까요.

“만일 정치지도자들이 국민 감정에 부화뇌동해서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드는 바람에 합리적인 설득이 어려워지면, 그때는 국민투표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라도 해서 더 이상의 국정혼란을 막아야 합니다. 남북문제·교육문제·실업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몰려오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 문제를 붙잡고 온 나라가 시끄러워야 합니까. 하지만 국민투표로 가면, 그것은 한국정치의 실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됩니다. 그 전에 정치지도자들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박세일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大選(대선)이나 總選(총선)에서 세종시 문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했던 것은 잘못이지만, 이제라도 바로잡기 위해 나선 것은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명박 대통령은 나중에 어찌되든 세종시 문제를 원안대로 추진하면서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잘못된 일을 인기에 영합해서 넘어간다면, 그건 지도자가 아니죠. 이명박 대통령이 용기 있게 자기 입장을 밝힌 것은 높이 평가해 줘야 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부라면 먼저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고 국민들을 설득할 준비를 해 놓은 상태에서 이슈화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옳은 지적입니다. 일련의 진행 과정을 보면 부족한 점이 대단히 많습니다. MB 정부는 기획능력이 상당히 약한 것 같아요.”

―정운찬 국무총리가 세종시 문제를 잘 매듭지을 수 있을 것으로 보십니까.

“정 총리 개인에게 능력이 있다 없다를 떠나서, 반드시 잘해 내야지요.”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까.

“나는 4대강 살리기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다만 대운하案(안)에 대해서는 청와대에 있던 1995~96년경 자료를 검토해 본 적이 있습니다. 몇몇 분이 대운하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들어 가져왔더군요. ‘잘하면 나라를 위해 크게 좋은 사업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워낙 큰 사업이어서 청와대 내부에서도 검토를 하고, 건설교통부에도 내려보내 검토해 보도록 했습니다.”

―당시 결론은 어떻게 나왔습니까.

“可否(가부) 어느 한쪽으로 확실하게 기우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대운하에 찬성해야 할 이유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이유가 팽팽했어요. ‘다른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지금 단계에서 공론화해서 추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해서 논의를 접었습니다.”

박세일 이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대운하나 4대강 살리기는 절대적으로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닌데, 충분한 검토를 해 보기도 전에 정치쟁점화되어 버렸다”면서 “대운하는 잘못된 정치문화의 희생물”이라고 말했다.

“집단·지역이익만 앞세우는 국민도 문제”

박세일 이사장은 “중대한 국가적 과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 지도자도 문제지만, 국민도 문제”라고 말했다.

“이번 세종시 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만, 국민들이 국가이익과 국가발전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집단이익과 지역이익만 앞세우고 있습니다. 이래서야 어떻게 국가경영이 되고 민주주의가 성공하겠습니까.”

박세일 이사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선진화’라는 話頭(화두)에 천착해 왔다. 그가 이사장으로 있는 한반도선진화재단에서는 선진화지수 발표, 정부조직 개편방안 제시 등을 통해 선진화를 위한 아이디어들을 생산해 왔다.

―지금까지 말씀하신 우리 정치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선진화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첫째, 싱크탱크 등 비전과 정책을 연구하는 그룹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선진화를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진보와 개혁적인 보수가 손을 잡아야 합니다.”

―‘합리적 진보’라고 할 만한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보입니까.

“조직화된 ‘합리적 진보’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林爀伯(임혁백) 고려대 교수 등의 좋은정책포럼이나 周大煥(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등이 그런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수 쪽에도 사람이 없기는 마찬가지 아닌가요.

“뉴라이트운동이 계속됐다면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너무 빨리 정치적으로 부패했어요. 시대는 ‘보수의 시대’인데, 가치를 실현하고 국민을 설득할 세력이 없습니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함께 가야 한다는 주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주장하는 사회통합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 정부가 등장할 때 다음의 3가지를 해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첫째, 대한민국 역사와 헌법의 정통성ㆍ정당성을 반드시 세워야 한다. ‘지난 10년 동안 이것이 많이 공격을 받고 흔들렸는데, 나라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특히 젊은 세대가 나라의 역사를 사랑하도록 돌려놓는 게 이 정부가 해야 할 첫 번째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둘째, 지난 5년간 反기업 反부자 정서 등으로 경제의 성장기반과 성장의지가 많이 약화됐는데,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신성장동력의 활성화와 선진경제를 위한 구조개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셋째, 지난 정권이 포퓰리즘으로 계층별로 지역별로 이념별로 세대별로 우리 사회와 국민들을 너무 많이 분열시켰기 때문에 사회통합ㆍ국민통합이 대단히 중요한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과가 있다고 보십니까.

“별로 그런 것 같지 않아요. 첫 번째 문제도 그렇고…. 두 번째 문제도 세계금융위기에는 비교적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구조조정이나 선진적 제도 기반을 만드는 일은 못 하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 공기업 개혁은 아주 미진하고, 교육개혁 노사개혁도 많이 부족하지요 세 번째 문제인 사회 통합과 국민통합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통합은 지금까지 국민을 분열시켰던 잘못된 가치관과 사상 그리고 잘못된 정책과 교육 등을 국민에게 올바로 알리고, 거기에서 탈피하도록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그런 노력 없이 대통령이 시장을 찾아다니면서 서민행보를 한다고 국민통합이 되는 것은 아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