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형수술한 적도 없고 치아교정수술 생각해본 적 없어
⊙ 종갓집 며느리로서 음식도 직접 만들고 大小事도 직접 챙겨
⊙ 내 인생 담은 50주년 기념 新曲 ‘내 삶의 여유 있음은’ 연습하며 많이 울어
⊙ 朴正熙 대통령 앞에서 금지곡 ‘동백아가씨’불러
⊙ 자신의 노래 중 曲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기러기 아빠’
⊙ 가창력에서 趙容弼과 羅勳兒는 극찬해 주고 싶은 가수
⊙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른 가수는 남인수와 현인
李美子
⊙ 1941년 서울 출생.
⊙ 문성여고 졸업.
⊙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 ‘동백아가씨’ 등 노래 2100곡 발표. 가수왕(3회).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 선정(조선일보).
⊙ 무궁화 훈장,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 보관문화훈장.
⊙ 종갓집 며느리로서 음식도 직접 만들고 大小事도 직접 챙겨
⊙ 내 인생 담은 50주년 기념 新曲 ‘내 삶의 여유 있음은’ 연습하며 많이 울어
⊙ 朴正熙 대통령 앞에서 금지곡 ‘동백아가씨’불러
⊙ 자신의 노래 중 曲이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기러기 아빠’
⊙ 가창력에서 趙容弼과 羅勳兒는 극찬해 주고 싶은 가수
⊙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 부른 가수는 남인수와 현인
李美子
⊙ 1941년 서울 출생.
⊙ 문성여고 졸업.
⊙ 1959년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 ‘동백아가씨’ 등 노래 2100곡 발표. 가수왕(3회).
대한민국 50년을 만든 50대 인물 선정(조선일보).
⊙ 무궁화 훈장,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화관문화훈장, 보관문화훈장.
전화기 너머로 그녀가 까르르 웃었다. 필자의 “선생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20대 같다”는 말 때문이었다.
“여보세요. 이미자 선생님 댁이죠.”
“네 그런데요.”
“이미자 선생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미자인데요.”
“아, 정말요? 목소리가 20대 같아서 선생님인 줄 몰랐습니다.”
정말 그랬다. 텔레비전 등을 통해 익숙한 목소리였음에도 필자는 전화를 받는 이가 당연히 비서이거나 李美子(이미자)씨의 일을 돕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미자씨가 전화를 직접 받을 것이라고 예상 못한 데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이미자씨와의 첫 목소리 만남은 유쾌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미자씨를 만나서 던진 첫 질문이 “평소에도 집 전화를 직접 받으세요?”였다. 돌아온 답은 “네, 제가 주로 받아요”였다. 그녀는 “무대 위에 섰다가도 집의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인 평범한 주부로 돌아가는 삶을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 2100여 곡을 부른 이 ‘엘레지(悲歌·비가)의 여왕’은 여전히 수줍었다. 1959년 19살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할 때도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미자씨는 1941년 10월 서울 한남동에서 아버지 李占成(이점성)씨와 어머니 柳相禮(유상례)씨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던 그녀는 1958년 국내 첫 TV방송이었던 HLKZ의 콩쿠르 프로그램 ‘예능로터리’에서 가요부문 1등을 차지하며 작곡가 라화랑씨의 눈에 박혔다.
라화랑씨는 ‘열아홉 순정’으로 이미자씨를 가요계에 데뷔시켰다. 그해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9년으로, 그녀의 나이 역시 우리 나이로 열아홉 살이었다.
싼 개런티 덕에 취입하게 된 ‘동백아가씨’
1964년 ‘동백아가씨’로 그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트로트(이미자씨는 트로트라는 말에 거부감이 많다. 그녀는 트로트라는 말 대신 전통가요라는 표현을 쓴다) 가수가 됐다. ‘기러기 아빠’ ‘섬마을 선생님’ ‘엘레지의 여왕’ ‘아네모네’ ‘아씨’ 등 서민들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대한민국 최고의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대표곡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20여 년 동안 ‘동백아가씨’를 부르지 못했다. 발표 이듬해 倭色(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기 때문. ‘동백아가씨’ 외에도 그녀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섬마을 선생님’은 몇 개의 소절이 다른 노래와 같다는 이유로, ‘기러기 아빠’는 너무 노래를 처량하게 불러서 ‘비탄조’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 세 곡은 그녀가 지금도 가장 아끼는 노래들이라고 한다.
‘동백아가씨’는 원래 이미자씨에게 돌아올 노래가 아니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최숙자씨가 부르기로 내정됐었지만 그녀의 개런티가 부담돼 이 노래의 작곡가인 백영호씨 추천으로 이미자씨가 부르게 됐다는 것. 한마디로 이미자씨는 당시로서는 ‘싼 맛’에 자신의 대표곡을 얻게 된 셈이다.
‘동백아가씨’는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가였지만 정작 음반을 발매할 때는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최무룡의 ‘단둘이 가봤으면’이 타이틀곡이었다. ‘동백아가씨’는 그 음반의 뒷면에 실리는 수모를 겪었지만,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서 1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축음기도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 1960년대 중반에 음반 100만장 판매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치라고 한다.
기념음반에 101곡을 실은 이유
이미자씨는 최근 데뷔 50주년을 맞아 ‘세상과 함께 부른 나의 노래 101곡’이라는 기념음반을 냈다. 오는 4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미자 노래 50년’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전국 순회공연도 예정돼 있다.
기념음반 발매 후 기자회견 등으로 지쳐 보일 법도 했지만 그녀는 조용했고 차분했다. 언어는 간결했고 그녀의 노래가 그렇듯이 발음은 정확했다. 눈가의 주름이 상징하듯 그녀의 얼굴은 만 68년의 세월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었다. 혹시 인공적인 방법으로 얼굴에서 세월의 일부를 떼어내고 싶지는 않았을까. “성형수술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미자씨는 자신의 왼쪽 볼과 인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성형을 한 건가 안 한 건가.”
그녀의 왼쪽 볼과 인중에 생긴 상처는 화장으로 가리기는 했어도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왼쪽 뺨을 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파월장병 위문공연을 갔다가 사고로 난 흉터예요. 이쪽 인중은 교통사고로 생긴 상처고요. 제가 이 흉터도 아직까지 없애지 못하고 있는 주변머리예요.”
내친 김에 그녀의 얼굴 특징 중 하나인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듯한 입술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치아교정수술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없었어요. 저는 생긴 대로 산다는 생각이에요. 가식으로 저를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요.”
이미자씨와 필자가 인터뷰를 한 날 아침에는 중앙일간지에 그녀의 큼지막한 얼굴 사진과 함께 50주년 기념음반 발매와 관련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사진 가운데는 그녀의 얼굴 주름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들도 있었다. 여자, 특히 연예인으로서는 자신의 속옷 한 자락을 보여준 것 같은 부끄러움에 화가 날 법도 하다.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저는 오늘 아침에 신문을 보면서 느꼈어요. 활짝 웃는 사진이 크게 나왔어요. 정면에서 클로즈업해서 얼굴을 찍었는데 주름이 없는 데가 없더군요. 덕지덕지 주름투성이였어요. 그 사진을 보면서 저는 ‘아! 부끄럽구나’ 하는 느낌이 아니라 ‘아! 순수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나이에 이런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느냐. 나는 이렇게 솔직하고 순수하게 보여 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다가 그 사진을 보고 이게 부끄러운 게 아니고 정말 떳떳하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종갓집 맏며느리
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 여가수에게 과거 개인사와 관련된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私的(사적)인 생활은 공개될 만큼 공개됐으려니와, 오늘의 이미자에게 그녀의 과거를 시시콜콜 따진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으므로. 그녀가 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자연인 이미자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자씨는 KBS 제작지원국장 출신인 남편 金昌洙(김창수)씨와 2녀 1남을 두고 있다. 3남매 모두 출가해 가정을 꾸리고 있다.
―손자들이 몇 명입니까.
“각자 두 명씩 모두 여섯 명이네요.”
―평소에 夫君(부군)과 두 분이 조용히 지내다가 명절 때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정신이 없겠네요.
“저는 옛날부터 시집살이할 때도 그랬어요. 종손 집안 맏며느리라서 무슨 大事(대사)가 있고 그러면 보통 한 30, 40명은 모이니까 그런 데는 익숙하죠.”
이미자씨의 남편 김창수씨의 고향은 경남 창녕이다.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이 쉽지는 않았겠습니다.
“예 맞아요. 경상도 종가에다 광산 김씨라….(웃음)”
―서울 토박인데 경상도 음식 때문에 애 좀 먹었겠습니다.
“그랬어요. 한 예로 저는 생선회라는 것도 몰랐어요. 굴비, 명태, 동태, 고등어 그런 생선을 주로 먹었지 생선회나 갈치 같은 것은 전혀 몰랐어요. 게다가 서울 음식은 상대적으로 싱겁고 담백한데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매워서 적응하는 데 굉장히 힘들었죠. 지금은 거기 맞춰 살다 보니까 짜고 맵지 않으면 ‘도대체가 지금 밥을 먹는 건지 아닌지’ 하는 상황까지 돼 버렸어요. 경상도 사람이 돼 버린 거죠.”
―음식을 직접 만드십니까.
“그럼요. 종갓집 맏며느리인데.”
―부부끼리 겸상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에요. 집에 두 사람밖에 없는데 왜 밥을 따로 먹겠어요?”
―명절 같은 집안 대사가 있을 때를 얘기한 것 같군요.
“명절 때는 그렇죠. 저는 어른들 시중들고 그러느라 남편과 같이 먹을 겨를이 없죠.”
―무슨 요리를 제일 잘합니까.
“저는 요리를 잘하는 것은 없어요. 그냥 일반 주부들처럼 일상생활에서 먹는 국이라든가, 찌개라든가 그런 음식은 잘하죠. 특히 경상도 식으로 만드는 음식은 다 자신 있어요.”
요즘 노래는 情은 사라지고 興만 남아
이미자씨는 처녀 시절부터 지금까지 50㎏ 내외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다.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갔을 때가 52㎏이었고 가장 적게 나갔을 때는 48㎏이었다고 한다.
―나름대로 몸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건강관리 비법이 있는 겁니까.
“비결 같은 것 전혀 없어요. 제가 많이 먹지 않고 육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나물과 채소를 좋아해요. 그렇다고 특별히 조심하는 음식도 없고요.”
―따로 하는 운동은 없습니까.
“전혀 없어요. 운동에는 소질도 없고 할 겨를도 없어요. 시간이 없어서 운동할 겨를이 없는 게 아니라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것 같아요.”
―공연 같은 스케줄이 없을 때는 어떻게 소일하십니까.
“문밖에도 안 나가고 그냥 집에 가만히 있어요.”
―텔레비전도 잘 안 봅니까.
“네, 뉴스와 드라마는 시청했었는데 요즘은 드라마를 안 봐요.”
―不倫(불륜), 悖倫(패륜)을 소재로 삼는 소위 ‘막장 드라마’가 판을 쳐서 그런가요?
“드라마가 현실성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보지 않게 되는 거죠. 사극은 봤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보고 싶지 않아요. 역사를 너무 픽션화하는 게 눈에 거슬려요.”
―요즘 말로 퓨전사극이라는 거죠.
“그런 데다가 중국 영화같이 그냥 말도 안 되게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갑자기 사라지고… 현실성이 너무 없어요.”
―‘막장 드라마’도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가요도 저속한 가사 때문에 문제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옛날 우리 가요는 가슴에 와 닿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풋풋한 情(정)이 있었어요. 슬픔을 전달할 수 있고, 기쁨을 전달할 수 있는 게 우리 가요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뭐 ‘막말에 빠진 대한민국’이란 조선일보 기사도 제가 봤습니다만 가요가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가사에 너무나 막말이 심해요. 듣기 민망할 정도죠. ‘저런 가사가 어떻게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노래도 많아요.”
―왜 그렇게 된 것 같습니까.
“요즘의 노래는 흥 위주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노랫말이 주는 정은 사라지고 곡의 흥만 남은 거죠. 우리 전통가요까지 그렇게 편곡해서 부르고 있어요.”
흥분한 듯 단답형으로 일관하던 이미자씨의 말이 길어졌다.
“우리 전통가요는 우리 국민이 어렵게 살면서 듣고 부르면서 울고 웃으며 위안을 받고 살아온 노래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노래들마저 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디스코, 차차차, 고고로 바꿔서 신나고 흥겹게만 부르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건 아니지 않으냐. 우리 가요의 문화재라는 것은 없어져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에 50주년 기념음반을 낼 때 101곡 안에 우리 선배들이 부른 전통가요 30곡을 넣은 이유가 있어요. 그분들은 지금 생존해 계시지도 않고 레코드도 다 소멸되다시피 해서 그분들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어요. 요즘 가수들이 부르는 우리 선배들의 전통가요를 듣고 30, 40대들은 그 노래는 원래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까봐 원곡에 비슷하게 제가 편곡을 해서 30곡을 넣었어요. 이 노래는 영원히 남겨져야 한다는 사명감이랄까.”
개인 노래 연습실 없다
이미자씨의 가수생활 50주년을 기념하는 음반에 실린 101곡은 자신의 히트곡 70곡과 전통가요 30곡, 신곡 1곡이다.
―101이란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100곡을 추려 놓았는데 신곡까지 포함해서 100곡으로 하려니까 신곡발표 의미가 많이 옅어지더군요. 그래서 한 곡은 새롭게 부른 거니까 새롭다는 의미로 101곡으로 했어요.”
이미자씨가 이번에 발표한 신곡의 제목은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이다. 다음은 가사의 일부다.
‘나 이제 노을 길 밟으며 음-/ 나 홀로 걷다가 뒤돌아보니/ 인생길 구비마다 그리움만 고였어라/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이었지만/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산새는 울고/ 춘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
―신곡이 선생님의 인생을 축약한 것이라면서요?
“제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말해주고 현재 상황도 그대로 말해주고 있죠. 가사 가운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춘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라는 구절이에요. 이 가사를 곡과 함께 받고 연습을 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너무 가슴에 와 닿아서 끝까지 못 부르겠더라고요. 지금 인생이 노을 길을 걸어가는 입장인데 그동안의 수난과 고통과 기쁨이 노래 속에 다 담겨 있어요. 마지막이 될지 모를 50주년 기념으로 그런 노래를 받아서 정말 행복했어요. 50년 동안 2100곡이 넘는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가장 감명 받았다고 할까요?”
―그 2100곡 중에서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 있습니까.
“없어요.”
―노래연습은 댁에서 하십니까?
“안 해요. 저는 집에 연습실 같은 거창한 시설이 없어요.”
옆에 있던 매니저가 거들었다.
“선생님은 노래연습 절대 안 해요.”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곡을 받았을 때는 녹음 전에 연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때야 그렇죠. 그것도 요란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이어폰 꽂고 멜로디 보면서 연습하죠.”
―노래연습을 안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노래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군더더기가 붙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노래란 꾸미지 않고 순수하게 불러야 하는데, 너무 연습을 많이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기교를 부리게 돼 있어요.”
―50년 동안 노래하면서 립 싱크한 적 있습니까.
“없어요. 이런 경우는 있네요. 방송국에서 악단이 준비 안 돼서 음반을 틀어놓고 입을 맞춘 적은 있어요. 그 밖의 무대 위에서는 립 싱크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요즘 가수들의 립 싱크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적이겠네요.
“제가 보기에 요즘 일부 가수들의 립 싱크는 가창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립 싱크라는 것은 하나의 가식에 불과해요. 음식으로 치면 인스턴트라고 해야 할까.”
“55주년 기념공연은 기대 안 하는 게…”
―오는 4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가요계 데뷔 50주년 기념공연을 사흘 연속하는데 체력이 부치지 않습니까.
“힘은 들겠죠. 그래도 단련이 돼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 55주년 기념공연도 기대해도 되겠네요.
“그건 기대 안 하시는 게….(웃음)”
―몸이 아파서 공연을 취소하신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단 한 번도 없습니까.
“네. 몸이 아파도 저는 무대에 나가요. 약속은 지켜야 되죠. 심한 감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못 보인 적은 있어도 무대에는 반드시 섰어요.”
이미자씨 공연의 단골 진행자는 金東鍵(김동건) 아나운서다.
―50주년 기념공연 진행도 김동건 아나운서가 맡습니까.
“네, 의리를 지켜야죠. 지휘자(김춘광)도 마찬가지고요.”
―게스트로는 누가 나옵니까.
“주현미예요.”
―전통가요를 하는 후배들 중에 주현미씨가 제일 예쁩니까.
“누가 예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고요. 주현미는 노래를 정석으로 잘 부르는 후배잖아요.”
―전통가요의 맥을 이을 가수가 있다고 보십니까.
“얘기하기 곤란한데….”
―싹수가 보인다든가.
“있어야죠. 분명히 있어야 하고 몇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현실적으로 왜 어려운가 하면 실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아끼는 후배가 신곡을 내야 하는데 흥겹고 빠르게 부르는 곡을 택하더군요. 텔레비전 PD분들은 느린 노래를 싫다고 틀어주지 않고 있어요. 노래자랑 게스트라도 되려면 빠른 리듬의 노래를 불러야 해요. 제가 보기에 괜찮은 전통가요 가수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거예요. 그런 몇몇 가수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흐름을 바꿀 수 없다고 봐요.”
―전통 가요를 하다가 장르를 바꿀 생각도 하셨다면서요?
“있었어요, 뽕짝 가수에 촌스러운 가수, 모습도 촌스러운 가수. 그렇게 촌스럽다는 말은 저한테 다 붙어 있었어요. 그때는 제 외모가 촌스러우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노래가 나오는 것마다 금지곡이 되는 거예요. 제일 인기가 있는 노래인데도 방송순위 프로그램에서는 만날 빠져 버리고 말이죠. 그래서 ‘아! 나도 서구풍 노래 얼마든 할 수 있는데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주변머리가 없어요. 뭐를 하나 하면 그것밖에 모르는 성격이죠. 용기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한 우물만 파게 됐는데, 결국 한 우물만 파길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성대와 관련된 낭설들
이미자씨와 관련된 소문 중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게 聲帶(성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이미자의 성대를 일본에서 미리 돈 주고 사 놓았다더라, 미국의 생체연구기관에서 해부를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國寶(국보)급 목소리’ 때문에 생긴 낭설이다.
1993년에는 한 방송사에서 ‘이미자 성대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미자씨의 성대를 분석한 적도 있다. 그만큼 이미자씨의 목소리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높다. 그녀는 성대관리를 어떻게 할까.
―담배 냄새 싫어하시죠？
“아뇨, 싫어하지는 않아요.”
―주변에서 자욱하게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도 참석하십니까.
“그럼요. 개의치 않아요.”
―목에 신경 쓰이지 않습니까.
“천만에요. 정말로 신경 안 써요.”
―담배 피워 본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까.
“스스로 제 목소리가 좋다는 것은 별로 느끼지는 않아요. 오히려 ‘과연 내 목소리가 좋은 건가? 왜 나를 이렇게 목소리가 좋다고 찾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때가 많죠. ‘동백아가씨’도 제가 들어보면 별다른 특징도 없는 것 같거든요. 제가 들었을 때는 그렇게 좋다는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성대보호를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은 있습니까.
“없어요. 공연하기 직전에 목 캔디 종류를 먹어요. 그 외에는 레몬이 비타민C 덩어리니까 공연을 앞두고 감기 기운이 있다든가 하면 레몬즙을 짜서 약처럼 삼켜요. 감기 때문에 그렇게 하다 보니까 목에도 좋더라고요. 성대보호를 위해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지만 공연을 앞두고는 굉장히 조심하죠. 공연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으니까 미리부터 조심하고 레몬 같은 거 먹고 그래요.”
―성대와 관련돼 시중에서 나도는 이야기는 많이 들으셨죠?
“그럼요(웃음). 낭설이에요.”
작곡가 朴椿石과 이미자
가수 이미자라는 이름과 늘 나란히 하는 이름이 있다. 작곡가 朴椿石(박춘석)씨다. 이미자씨에게 700여 곡을 작곡해 주었다고 한다. 데뷔곡은 작곡가 라화랑씨로부터, 대표곡 ‘동백아가씨’는 백영호씨로부터 받았지만 이미자씨는 박씨를 “스승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그분은 음악적인 지식을 저한테 많이 주셨죠. 또 제가 무대에 설 때마다 지휘를 꼭 해주셨고요. 방송이든 공연이든 모든 걸 가르쳐주셨어요. 가족 같은 분이셨죠. 그분이 병석에 누우셨을 때 저는 양쪽 발을 잃은 느낌이었어요. 그런 그분이 제 손을 놓으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분이 병석에 누운 지 2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병문안을 못 오게 한다면서요.
“네, 오지 못하게 해서 못 가고 있어요. 벌써 10여 년째 투병생활 중이시죠.”
―가수 중에 우리나라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분은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현존하는 가수 중에선 얘기할 수 없어요. 옛날 가수들은 다 정말 독특한 자기 개성이 있었어요. 목소리를 타고난 분들도 있었고요. 특히 남인수 선생님이나 현인 선생님 같은 분들은 뛰어나셨던 분들이죠.”
―가수 중에 라이벌로 생각했거나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의식한 적도 없어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패티 김은요?
“데뷔 시기가 비슷하니까 패티 김 하고 저를 많이들 비교하는데, 우리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요. 데뷔 50주년 기념은 패티 김이 1년 먼저 지난해 했지만 40주년, 45주년 기념 공연은 저와 같은 해에 했거든요. 그래도 저는 ‘패티 김이 나보다는 선배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한테 라이벌 의식을 갖지 않았어요. 노래하는 분야도, 방향도 다르고 차림새를 봐도 그분은 서구적이고 저는 한국적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가 없죠.”
―라이벌의 존재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이 되는 것 아닌가요.
“살아오면서 ‘난 다른 사람보다 한발짝 앞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발짝 뒤에 서서 가자’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자신을 내세워서 좋을 거 하나 없는 것 같아서 한 보, 한 보 양보하면 양보하는 만큼 마음의 평온 등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할까요. 저는 경쟁심을 갖지 않아요.”
―가요계에서 수십 년 동안 頂上(정상)에 있었는데 ‘내가 이 정상에서 추락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없었습니까.
“추락? 글쎄요. 뭐 그런 면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겠죠. 그런데 그런 위기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어요.”
―스타로서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 아닌가요.
“저한테 은퇴를 생각해 본 적 없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대중이 나를 안 보면 그게 은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때문에 ‘대중이 나를 외면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보다는 대중이 저를 기억해 주고 성원해 주는데 대해 매번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봐도 입에 침 바르고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저는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저는 어느 무대가 됐든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성의껏 노래하는 것이 저를 성원해 주는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스토커에 시달리기도
―지금까지 부른 2100곡의 노래 중에서 노랫말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노래입니까.
“글쎄요. 한 곡을 꼽으라면 잘 모르겠어요. 노랫말 아름다운 곡들이 참 많아요. ‘노랫말이 내게 가장 잘 와 닿는 노래’는 이번에 발표한 신곡인 것 같아요.”
―曲(곡)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노래는요.
“‘기러기 아빠’예요. 그 곡의 흐름은 대중가요이면서도 클래식하게 불러도 손색이 없어요. 클래식을 연주하는 분들이 편곡을 해서 하면 아마 더 좋은 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연예인들 가운데는 스토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스토커에 시달려 본 적은 없습니까.
“있었어요. 19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10년 가까이 저를 괴롭힌 스토커가 있었어요. 공연장에 가면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매일 전화로 괴롭히는 거예요. 전화를 끊어 버리면 또 걸어 오고, 참 많은 괴롭힘을 당했어요.”
―경찰에 신고하지 그랬습니까.
“고발한다고도 하고 별것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지금은 사망했을 거예요.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니까.”
朴正熙 대통령 앞에서 ‘동백아가씨’불러
―그 스토커는 당연히 남자였겠죠.
“아뇨. 여자가 그랬어요. 남자들 가운데도 밤에 전화해서 ‘한 번 만나자’고 하고, 거절하면 욕을 하고 그러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집요하지는 않았어요.”
―요즘 흔한 게 팬클럽인데 팬클럽은 일부러 만들지 않는 겁니까.
“네, 팬클럽이나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지 않았어요. 인터넷은 사용할 줄도 모르지만 배울 생각도 없어요. 저는 조용히 있고 싶어요. 그런 데 나서서 활동할 용기도 없고, 하기도 싫어요.”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팬클럽을 만들었다고 그게 보답이 된다면 모르지만, 저는 그건 큰 보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식의 보답이지.”
인터뷰 중 필자가 “노래방에 가면 동백 아가씨를 자주 부른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응대했다.
“왜 촌스럽게 동백아가씨를 좋아해요? 촌스럽게. 하여간 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촌스런 사람들이야.”
―1960년대 독일로 간 광부들이 ‘동백 아가씨’를 가장 좋아했고, 그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들어봤습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있군요. 제 노래가 금지곡이 되고 나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외국에서 한국에 다니러 온 교포들이 음반을 구할 수 없으니까 심지어는 저한테 제 노래 음반을 구해 달라는 분들도 있었어요. 방송에서만 금지시키면 되는데 음반 제작까지 금지를 시켰었거든요.”
―금지곡 상태에서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동백아가씨’를 불렀다고 알려졌는데, 그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그때는 힘껏 불러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그 노래가 금지곡이라는 걸 모르고 계셨으니까 말이죠. 지금 같으면 노래를 마친 후 ‘이 노래가 금지곡이 됐습니다．풀어 주십쇼’ 할 수 있는데, 그 말을 못 한 게 지금도 恨(한)이에요.”
노래는 숙명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칭은 맘에 드십니까.
“저를 부르는 별칭 중 맘에 안 드는 별칭은 없어요.”
―가수 趙容弼(조용필)씨 하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국민가수’란 호칭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더군요.
“저도 그래요. 국민가수란 호칭은 존중해서 붙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참 좋은 거예요. 영광이죠. 문제는 국민가수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너도나도 국민가수인데, 거기에 휩쓸리는 국민가수를 저는 원치 않아요. 지금은 국민가수가 너무 많아요.”
―조용필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쭙겠습니다. 노래에서 恨(한)이라는 우리의 정서가 느껴져서인지 남성들 가운데는 두 분을 동시에 좋아하는 팬들이 유독 많은 것 같습니다.
“조용필씨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과 가창력을 갖춘 실력이 있는 가수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가창력 좋은 사람 몇 안 돼요. 조용필씨나 나훈아씨나 이런 사람들은 참 극찬해 주고 싶은 가수예요.”
―콩쿠르에서 정말 2등은 한 번도 안하고 1등만 했습니까.
“(단호하게) 네. 나이 제한에 걸려서 순위에 넣을 수 없어서 특별상 받은 경우를 빼고는 꼭 1등만 했어요.”
―부른 노래 중에 밝고 경쾌한 노래도 있었습니까.
“당연히 있죠. ‘동백아가씨’ 이미지가 100% 굳어져서 제 데뷔곡이 ‘열아홉 순정’인데도 그런 노래는 잘 알려지지가 않았어요. ‘여자의 일생’이니 그런 처절한 노래들만 자꾸 유행이 되는 거예요.”
―가족들만 있을 때 노래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아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데 못 부르겠어요. 저는 집에 들어가면 가수가 아니고 보통 엄마일 뿐이에요.”
―남편께서 노래 한 곡 불러달라고 조르지 않습니까.
“제 노래는 듣지도 않아요.(웃음)”
―노래방에 가본 적 없습니까.
“한 번도 안 갔어요. 제 성격을 아니까 아예 주변에서 권하지도 않아요.”
―다시 태어나면 가수는 하지 않고 賢母良妻(현모양처)로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한 거죠.”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가수 이미자에게 노래란?
“숙명이죠. ‘너는 태어나서 숙명적으로 노래를 하라’는 명령을 받고 태어난 거죠.”⊙
“여보세요. 이미자 선생님 댁이죠.”
“네 그런데요.”
“이미자 선생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미자인데요.”
“아, 정말요? 목소리가 20대 같아서 선생님인 줄 몰랐습니다.”
정말 그랬다. 텔레비전 등을 통해 익숙한 목소리였음에도 필자는 전화를 받는 이가 당연히 비서이거나 李美子(이미자)씨의 일을 돕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미자씨가 전화를 직접 받을 것이라고 예상 못한 데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이미자씨와의 첫 목소리 만남은 유쾌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한 호텔에서 이미자씨를 만나서 던진 첫 질문이 “평소에도 집 전화를 직접 받으세요?”였다. 돌아온 답은 “네, 제가 주로 받아요”였다. 그녀는 “무대 위에 섰다가도 집의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한 남자의 아내이자 아이들의 어머니인 평범한 주부로 돌아가는 삶을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0년 동안 한국인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노래 2100여 곡을 부른 이 ‘엘레지(悲歌·비가)의 여왕’은 여전히 수줍었다. 1959년 19살에 ‘열아홉 순정’으로 데뷔할 때도 그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미자씨는 1941년 10월 서울 한남동에서 아버지 李占成(이점성)씨와 어머니 柳相禮(유상례)씨 사이에서 맏이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각종 음악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했던 그녀는 1958년 국내 첫 TV방송이었던 HLKZ의 콩쿠르 프로그램 ‘예능로터리’에서 가요부문 1등을 차지하며 작곡가 라화랑씨의 눈에 박혔다.
라화랑씨는 ‘열아홉 순정’으로 이미자씨를 가요계에 데뷔시켰다. 그해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59년으로, 그녀의 나이 역시 우리 나이로 열아홉 살이었다.
싼 개런티 덕에 취입하게 된 ‘동백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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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4년 발매된 후 100만장 이상이 팔린 ‘동백아가씨’의 앨범 재킷. |
오늘의 그녀를 있게 한 대표곡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20여 년 동안 ‘동백아가씨’를 부르지 못했다. 발표 이듬해 倭色(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기 때문. ‘동백아가씨’ 외에도 그녀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섬마을 선생님’은 몇 개의 소절이 다른 노래와 같다는 이유로, ‘기러기 아빠’는 너무 노래를 처량하게 불러서 ‘비탄조’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이 세 곡은 그녀가 지금도 가장 아끼는 노래들이라고 한다.
‘동백아가씨’는 원래 이미자씨에게 돌아올 노래가 아니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였던 최숙자씨가 부르기로 내정됐었지만 그녀의 개런티가 부담돼 이 노래의 작곡가인 백영호씨 추천으로 이미자씨가 부르게 됐다는 것. 한마디로 이미자씨는 당시로서는 ‘싼 맛’에 자신의 대표곡을 얻게 된 셈이다.
‘동백아가씨’는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가였지만 정작 음반을 발매할 때는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였던 최무룡의 ‘단둘이 가봤으면’이 타이틀곡이었다. ‘동백아가씨’는 그 음반의 뒷면에 실리는 수모를 겪었지만,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서 100만장 이상이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축음기도 별로 보급되지 않았던 1960년대 중반에 음반 100만장 판매는 상상할 수 없었던 수치라고 한다.
기념음반에 101곡을 실은 이유
이미자씨는 최근 데뷔 50주년을 맞아 ‘세상과 함께 부른 나의 노래 101곡’이라는 기념음반을 냈다. 오는 4월 2일부터 4일까지 사흘간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미자 노래 50년’ 기념공연을 시작으로 연말까지 전국 순회공연도 예정돼 있다.
기념음반 발매 후 기자회견 등으로 지쳐 보일 법도 했지만 그녀는 조용했고 차분했다. 언어는 간결했고 그녀의 노래가 그렇듯이 발음은 정확했다. 눈가의 주름이 상징하듯 그녀의 얼굴은 만 68년의 세월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었다. 혹시 인공적인 방법으로 얼굴에서 세월의 일부를 떼어내고 싶지는 않았을까. “성형수술을 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이미자씨는 자신의 왼쪽 볼과 인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를 가만히 살펴보세요. 성형을 한 건가 안 한 건가.”
그녀의 왼쪽 볼과 인중에 생긴 상처는 화장으로 가리기는 했어도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왼쪽 뺨을 만지면서 말을 이었다.
“파월장병 위문공연을 갔다가 사고로 난 흉터예요. 이쪽 인중은 교통사고로 생긴 상처고요. 제가 이 흉터도 아직까지 없애지 못하고 있는 주변머리예요.”
내친 김에 그녀의 얼굴 특징 중 하나인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듯한 입술과 관련한 질문을 던졌다.
―치아교정수술을 받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셨습니까.
“없었어요. 저는 생긴 대로 산다는 생각이에요. 가식으로 저를 보여드리고 싶지 않아요.”
이미자씨와 필자가 인터뷰를 한 날 아침에는 중앙일간지에 그녀의 큼지막한 얼굴 사진과 함께 50주년 기념음반 발매와 관련된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사진 가운데는 그녀의 얼굴 주름이 선명하게 드러난 것들도 있었다. 여자, 특히 연예인으로서는 자신의 속옷 한 자락을 보여준 것 같은 부끄러움에 화가 날 법도 하다.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저는 오늘 아침에 신문을 보면서 느꼈어요. 활짝 웃는 사진이 크게 나왔어요. 정면에서 클로즈업해서 얼굴을 찍었는데 주름이 없는 데가 없더군요. 덕지덕지 주름투성이였어요. 그 사진을 보면서 저는 ‘아! 부끄럽구나’ 하는 느낌이 아니라 ‘아! 순수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나이에 이런 모습을 그대로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있겠느냐. 나는 이렇게 솔직하고 순수하게 보여 드릴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그동안 아무 생각 없다가 그 사진을 보고 이게 부끄러운 게 아니고 정말 떳떳하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종갓집 맏며느리
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이 여가수에게 과거 개인사와 관련된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私的(사적)인 생활은 공개될 만큼 공개됐으려니와, 오늘의 이미자에게 그녀의 과거를 시시콜콜 따진다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는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 국민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으므로. 그녀가 보고 있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자연인 이미자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자씨는 KBS 제작지원국장 출신인 남편 金昌洙(김창수)씨와 2녀 1남을 두고 있다. 3남매 모두 출가해 가정을 꾸리고 있다.
―손자들이 몇 명입니까.
“각자 두 명씩 모두 여섯 명이네요.”
―평소에 夫君(부군)과 두 분이 조용히 지내다가 명절 때 가족들이 모두 모이면 정신이 없겠네요.
“저는 옛날부터 시집살이할 때도 그랬어요. 종손 집안 맏며느리라서 무슨 大事(대사)가 있고 그러면 보통 한 30, 40명은 모이니까 그런 데는 익숙하죠.”
이미자씨의 남편 김창수씨의 고향은 경남 창녕이다.
―종갓집 맏며느리 역할이 쉽지는 않았겠습니다.
“예 맞아요. 경상도 종가에다 광산 김씨라….(웃음)”
―서울 토박인데 경상도 음식 때문에 애 좀 먹었겠습니다.
“그랬어요. 한 예로 저는 생선회라는 것도 몰랐어요. 굴비, 명태, 동태, 고등어 그런 생선을 주로 먹었지 생선회나 갈치 같은 것은 전혀 몰랐어요. 게다가 서울 음식은 상대적으로 싱겁고 담백한데 경상도 음식은 짜고 매워서 적응하는 데 굉장히 힘들었죠. 지금은 거기 맞춰 살다 보니까 짜고 맵지 않으면 ‘도대체가 지금 밥을 먹는 건지 아닌지’ 하는 상황까지 돼 버렸어요. 경상도 사람이 돼 버린 거죠.”
―음식을 직접 만드십니까.
“그럼요. 종갓집 맏며느리인데.”
―부부끼리 겸상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에요. 집에 두 사람밖에 없는데 왜 밥을 따로 먹겠어요?”
―명절 같은 집안 대사가 있을 때를 얘기한 것 같군요.
“명절 때는 그렇죠. 저는 어른들 시중들고 그러느라 남편과 같이 먹을 겨를이 없죠.”
―무슨 요리를 제일 잘합니까.
“저는 요리를 잘하는 것은 없어요. 그냥 일반 주부들처럼 일상생활에서 먹는 국이라든가, 찌개라든가 그런 음식은 잘하죠. 특히 경상도 식으로 만드는 음식은 다 자신 있어요.”
요즘 노래는 情은 사라지고 興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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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자씨의 노래는 靜的이지만 커다란 울림을 준다. 마이크를 다소곳이 잡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 |
―나름대로 몸무게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건강관리 비법이 있는 겁니까.
“비결 같은 것 전혀 없어요. 제가 많이 먹지 않고 육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나물과 채소를 좋아해요. 그렇다고 특별히 조심하는 음식도 없고요.”
―따로 하는 운동은 없습니까.
“전혀 없어요. 운동에는 소질도 없고 할 겨를도 없어요. 시간이 없어서 운동할 겨를이 없는 게 아니라 제가 게을러서 그런 것 같아요.”
―공연 같은 스케줄이 없을 때는 어떻게 소일하십니까.
“문밖에도 안 나가고 그냥 집에 가만히 있어요.”
―텔레비전도 잘 안 봅니까.
“네, 뉴스와 드라마는 시청했었는데 요즘은 드라마를 안 봐요.”
―不倫(불륜), 悖倫(패륜)을 소재로 삼는 소위 ‘막장 드라마’가 판을 쳐서 그런가요?
“드라마가 현실성도 없고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보지 않게 되는 거죠. 사극은 봤었는데 요즘은 그것도 보고 싶지 않아요. 역사를 너무 픽션화하는 게 눈에 거슬려요.”
―요즘 말로 퓨전사극이라는 거죠.
“그런 데다가 중국 영화같이 그냥 말도 안 되게 사람들이 날아다니고, 갑자기 사라지고… 현실성이 너무 없어요.”
―‘막장 드라마’도 언론의 비판을 받고 있지만 가요도 저속한 가사 때문에 문제되는 경우가 많아졌는데요.
“옛날 우리 가요는 가슴에 와 닿는, 무언가를 전달하는 풋풋한 情(정)이 있었어요. 슬픔을 전달할 수 있고, 기쁨을 전달할 수 있는 게 우리 가요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뭐 ‘막말에 빠진 대한민국’이란 조선일보 기사도 제가 봤습니다만 가요가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가사에 너무나 막말이 심해요. 듣기 민망할 정도죠. ‘저런 가사가 어떻게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노래도 많아요.”
―왜 그렇게 된 것 같습니까.
“요즘의 노래는 흥 위주니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노랫말이 주는 정은 사라지고 곡의 흥만 남은 거죠. 우리 전통가요까지 그렇게 편곡해서 부르고 있어요.”
흥분한 듯 단답형으로 일관하던 이미자씨의 말이 길어졌다.
“우리 전통가요는 우리 국민이 어렵게 살면서 듣고 부르면서 울고 웃으며 위안을 받고 살아온 노래들이에요. 그런데 그런 노래들마저 가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디스코, 차차차, 고고로 바꿔서 신나고 흥겹게만 부르고 있어요. 그래서 ‘이런 건 아니지 않으냐. 우리 가요의 문화재라는 것은 없어져버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에 50주년 기념음반을 낼 때 101곡 안에 우리 선배들이 부른 전통가요 30곡을 넣은 이유가 있어요. 그분들은 지금 생존해 계시지도 않고 레코드도 다 소멸되다시피 해서 그분들의 노래를 들을 수가 없어요. 요즘 가수들이 부르는 우리 선배들의 전통가요를 듣고 30, 40대들은 그 노래는 원래 그런 식으로 부르는 것으로 알까봐 원곡에 비슷하게 제가 편곡을 해서 30곡을 넣었어요. 이 노래는 영원히 남겨져야 한다는 사명감이랄까.”
개인 노래 연습실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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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자씨의 가수 생활 50주년 기념음반 ‘세상과 함께 부른 나의 노래 101곡’. |
―101이란 숫자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100곡을 추려 놓았는데 신곡까지 포함해서 100곡으로 하려니까 신곡발표 의미가 많이 옅어지더군요. 그래서 한 곡은 새롭게 부른 거니까 새롭다는 의미로 101곡으로 했어요.”
이미자씨가 이번에 발표한 신곡의 제목은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이다. 다음은 가사의 일부다.
‘나 이제 노을 길 밟으며 음-/ 나 홀로 걷다가 뒤돌아보니/ 인생길 구비마다 그리움만 고였어라/ 외롭고 고달픈 인생길이었지만/ 쓰라린 아픔 속에서도 산새는 울고/ 춘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
―신곡이 선생님의 인생을 축약한 것이라면서요?
“제가 걸어온 길을 그대로 말해주고 현재 상황도 그대로 말해주고 있죠. 가사 가운데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춘 겨울 눈밭 속에서도 동백꽃은 피었어라’라는 구절이에요. 이 가사를 곡과 함께 받고 연습을 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너무 가슴에 와 닿아서 끝까지 못 부르겠더라고요. 지금 인생이 노을 길을 걸어가는 입장인데 그동안의 수난과 고통과 기쁨이 노래 속에 다 담겨 있어요. 마지막이 될지 모를 50주년 기념으로 그런 노래를 받아서 정말 행복했어요. 50년 동안 2100곡이 넘는 노래를 불렀지만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가장 감명 받았다고 할까요?”
―그 2100곡 중에서 직접 작사·작곡한 곡이 있습니까.
“없어요.”
―노래연습은 댁에서 하십니까?
“안 해요. 저는 집에 연습실 같은 거창한 시설이 없어요.”
옆에 있던 매니저가 거들었다.
“선생님은 노래연습 절대 안 해요.”
―그렇다고 해도 최소한 곡을 받았을 때는 녹음 전에 연습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때야 그렇죠. 그것도 요란하게 하는 것은 아니고 이어폰 꽂고 멜로디 보면서 연습하죠.”
―노래연습을 안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저는 노래연습을 너무 많이 하면 군더더기가 붙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노래란 꾸미지 않고 순수하게 불러야 하는데, 너무 연습을 많이 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기교를 부리게 돼 있어요.”
―50년 동안 노래하면서 립 싱크한 적 있습니까.
“없어요. 이런 경우는 있네요. 방송국에서 악단이 준비 안 돼서 음반을 틀어놓고 입을 맞춘 적은 있어요. 그 밖의 무대 위에서는 립 싱크를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렇다면 요즘 가수들의 립 싱크에 대해서는 당연히 비판적이겠네요.
“제가 보기에 요즘 일부 가수들의 립 싱크는 가창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립 싱크라는 것은 하나의 가식에 불과해요. 음식으로 치면 인스턴트라고 해야 할까.”
“55주년 기념공연은 기대 안 하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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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4월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미자 노래 45주년 기념공연에서 열창하고 있는 이미자씨. |
“힘은 들겠죠. 그래도 단련이 돼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럼 55주년 기념공연도 기대해도 되겠네요.
“그건 기대 안 하시는 게….(웃음)”
―몸이 아파서 공연을 취소하신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단 한 번도 없습니까.
“네. 몸이 아파도 저는 무대에 나가요. 약속은 지켜야 되죠. 심한 감기 때문에 좋은 공연을 못 보인 적은 있어도 무대에는 반드시 섰어요.”
이미자씨 공연의 단골 진행자는 金東鍵(김동건) 아나운서다.
―50주년 기념공연 진행도 김동건 아나운서가 맡습니까.
“네, 의리를 지켜야죠. 지휘자(김춘광)도 마찬가지고요.”
―게스트로는 누가 나옵니까.
“주현미예요.”
―전통가요를 하는 후배들 중에 주현미씨가 제일 예쁩니까.
“누가 예쁘다고 얘기할 수는 없고요. 주현미는 노래를 정석으로 잘 부르는 후배잖아요.”
―전통가요의 맥을 이을 가수가 있다고 보십니까.
“얘기하기 곤란한데….”
―싹수가 보인다든가.
“있어야죠. 분명히 있어야 하고 몇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있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현실적으로 왜 어려운가 하면 실력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시대의 흐름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아끼는 후배가 신곡을 내야 하는데 흥겹고 빠르게 부르는 곡을 택하더군요. 텔레비전 PD분들은 느린 노래를 싫다고 틀어주지 않고 있어요. 노래자랑 게스트라도 되려면 빠른 리듬의 노래를 불러야 해요. 제가 보기에 괜찮은 전통가요 가수도 자신의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거예요. 그런 몇몇 가수들이 있지만 그 사람들의 힘만으로는 흐름을 바꿀 수 없다고 봐요.”
―전통 가요를 하다가 장르를 바꿀 생각도 하셨다면서요?
“있었어요, 뽕짝 가수에 촌스러운 가수, 모습도 촌스러운 가수. 그렇게 촌스럽다는 말은 저한테 다 붙어 있었어요. 그때는 제 외모가 촌스러우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노래가 나오는 것마다 금지곡이 되는 거예요. 제일 인기가 있는 노래인데도 방송순위 프로그램에서는 만날 빠져 버리고 말이죠. 그래서 ‘아! 나도 서구풍 노래 얼마든 할 수 있는데 바꿔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주변머리가 없어요. 뭐를 하나 하면 그것밖에 모르는 성격이죠. 용기도 별로 없고요. 그래서 한 우물만 파게 됐는데, 결국 한 우물만 파길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성대와 관련된 낭설들
이미자씨와 관련된 소문 중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게 聲帶(성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이미자의 성대를 일본에서 미리 돈 주고 사 놓았다더라, 미국의 생체연구기관에서 해부를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國寶(국보)급 목소리’ 때문에 생긴 낭설이다.
1993년에는 한 방송사에서 ‘이미자 성대의 비밀’이란 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미자씨의 성대를 분석한 적도 있다. 그만큼 이미자씨의 목소리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높다. 그녀는 성대관리를 어떻게 할까.
―담배 냄새 싫어하시죠？
“아뇨, 싫어하지는 않아요.”
―주변에서 자욱하게 담배를 피우는 자리에도 참석하십니까.
“그럼요. 개의치 않아요.”
―목에 신경 쓰이지 않습니까.
“천만에요. 정말로 신경 안 써요.”
―담배 피워 본 적은 없습니까.
“없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내 목소리는 내가 들어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듭니까.
“스스로 제 목소리가 좋다는 것은 별로 느끼지는 않아요. 오히려 ‘과연 내 목소리가 좋은 건가? 왜 나를 이렇게 목소리가 좋다고 찾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때가 많죠. ‘동백아가씨’도 제가 들어보면 별다른 특징도 없는 것 같거든요. 제가 들었을 때는 그렇게 좋다는 느낌은 없는 것 같아요.”
―성대보호를 위해 특별히 하는 일은 있습니까.
“없어요. 공연하기 직전에 목 캔디 종류를 먹어요. 그 외에는 레몬이 비타민C 덩어리니까 공연을 앞두고 감기 기운이 있다든가 하면 레몬즙을 짜서 약처럼 삼켜요. 감기 때문에 그렇게 하다 보니까 목에도 좋더라고요. 성대보호를 위해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지만 공연을 앞두고는 굉장히 조심하죠. 공연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으니까 미리부터 조심하고 레몬 같은 거 먹고 그래요.”
―성대와 관련돼 시중에서 나도는 이야기는 많이 들으셨죠?
“그럼요(웃음). 낭설이에요.”
작곡가 朴椿石과 이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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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대 중반부터 콤비를 이룬 작곡가 박춘석씨와 함께. 현재 10여 년 동안 투병 중인 박씨는 이미자씨의 정신적 스승이다. |
“그분은 음악적인 지식을 저한테 많이 주셨죠. 또 제가 무대에 설 때마다 지휘를 꼭 해주셨고요. 방송이든 공연이든 모든 걸 가르쳐주셨어요. 가족 같은 분이셨죠. 그분이 병석에 누우셨을 때 저는 양쪽 발을 잃은 느낌이었어요. 그런 그분이 제 손을 놓으시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분이 병석에 누운 지 2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어요.”
―병문안을 못 오게 한다면서요.
“네, 오지 못하게 해서 못 가고 있어요. 벌써 10여 년째 투병생활 중이시죠.”
―가수 중에 우리나라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분은 누구라 생각하십니까.
“현존하는 가수 중에선 얘기할 수 없어요. 옛날 가수들은 다 정말 독특한 자기 개성이 있었어요. 목소리를 타고난 분들도 있었고요. 특히 남인수 선생님이나 현인 선생님 같은 분들은 뛰어나셨던 분들이죠.”
―가수 중에 라이벌로 생각했거나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의식한 적도 없어요.”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패티 김은요?
“데뷔 시기가 비슷하니까 패티 김 하고 저를 많이들 비교하는데, 우리는 스타일이 많이 달라요. 데뷔 50주년 기념은 패티 김이 1년 먼저 지난해 했지만 40주년, 45주년 기념 공연은 저와 같은 해에 했거든요. 그래도 저는 ‘패티 김이 나보다는 선배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한테 라이벌 의식을 갖지 않았어요. 노래하는 분야도, 방향도 다르고 차림새를 봐도 그분은 서구적이고 저는 한국적이기 때문에 비교할 수가 없죠.”
―라이벌의 존재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발전을 가져오는 동력이 되는 것 아닌가요.
“살아오면서 ‘난 다른 사람보다 한발짝 앞에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한발짝 뒤에 서서 가자’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자신을 내세워서 좋을 거 하나 없는 것 같아서 한 보, 한 보 양보하면 양보하는 만큼 마음의 평온 등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할까요. 저는 경쟁심을 갖지 않아요.”
―가요계에서 수십 년 동안 頂上(정상)에 있었는데 ‘내가 이 정상에서 추락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은 없었습니까.
“추락? 글쎄요. 뭐 그런 면이 없었다고는 볼 수 없겠죠. 그런데 그런 위기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어요.”
―스타로서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두려운 일 아닌가요.
“저한테 은퇴를 생각해 본 적 없느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 저는 ‘대중이 나를 안 보면 그게 은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때문에 ‘대중이 나를 외면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보다는 대중이 저를 기억해 주고 성원해 주는데 대해 매번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제가 봐도 입에 침 바르고 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저는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해요. 저는 어느 무대가 됐든 무대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열심히 성의껏 노래하는 것이 저를 성원해 주는 분들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해요.”
스토커에 시달리기도
―지금까지 부른 2100곡의 노래 중에서 노랫말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노래입니까.
“글쎄요. 한 곡을 꼽으라면 잘 모르겠어요. 노랫말 아름다운 곡들이 참 많아요. ‘노랫말이 내게 가장 잘 와 닿는 노래’는 이번에 발표한 신곡인 것 같아요.”
―曲(곡)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노래는요.
“‘기러기 아빠’예요. 그 곡의 흐름은 대중가요이면서도 클래식하게 불러도 손색이 없어요. 클래식을 연주하는 분들이 편곡을 해서 하면 아마 더 좋은 곡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요즘 연예인들 가운데는 스토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스토커에 시달려 본 적은 없습니까.
“있었어요. 1980년대에서 90년대까지 10년 가까이 저를 괴롭힌 스토커가 있었어요. 공연장에 가면 항상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매일 전화로 괴롭히는 거예요. 전화를 끊어 버리면 또 걸어 오고, 참 많은 괴롭힘을 당했어요.”
―경찰에 신고하지 그랬습니까.
“고발한다고도 하고 별것 다했지만 소용이 없었어요. 지금은 사망했을 거예요. 연락이 오지 않는 걸 보니까.”
朴正熙 대통령 앞에서 ‘동백아가씨’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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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자씨의 공연은 화합의 장으로도 기능한다. 1989년 10월 1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이미자 노래 30년 쇼를 관람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박준규씨 등 당시 여야 4당대표와 이미자씨가 로비에 마련된 리셉션장에서 환담하고 있다. |
“아뇨. 여자가 그랬어요. 남자들 가운데도 밤에 전화해서 ‘한 번 만나자’고 하고, 거절하면 욕을 하고 그러는 경우는 더러 있었지만 집요하지는 않았어요.”
―요즘 흔한 게 팬클럽인데 팬클럽은 일부러 만들지 않는 겁니까.
“네, 팬클럽이나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만들지 않았어요. 인터넷은 사용할 줄도 모르지만 배울 생각도 없어요. 저는 조용히 있고 싶어요. 그런 데 나서서 활동할 용기도 없고, 하기도 싫어요.”
―팬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라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팬클럽을 만들었다고 그게 보답이 된다면 모르지만, 저는 그건 큰 보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식의 보답이지.”
인터뷰 중 필자가 “노래방에 가면 동백 아가씨를 자주 부른다”고 하자 그녀는 이렇게 응대했다.
“왜 촌스럽게 동백아가씨를 좋아해요? 촌스럽게. 하여간 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촌스런 사람들이야.”
―1960년대 독일로 간 광부들이 ‘동백 아가씨’를 가장 좋아했고, 그 노래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 들어봤습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네요. 그 얘기를 들으니까 생각나는 게 있군요. 제 노래가 금지곡이 되고 나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외국에서 한국에 다니러 온 교포들이 음반을 구할 수 없으니까 심지어는 저한테 제 노래 음반을 구해 달라는 분들도 있었어요. 방송에서만 금지시키면 되는데 음반 제작까지 금지를 시켰었거든요.”
―금지곡 상태에서 朴正熙(박정희) 대통령 앞에서 ‘동백아가씨’를 불렀다고 알려졌는데, 그때 심정은 어땠습니까.
“그때는 힘껏 불러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박정희 대통령은 그 노래가 금지곡이라는 걸 모르고 계셨으니까 말이죠. 지금 같으면 노래를 마친 후 ‘이 노래가 금지곡이 됐습니다．풀어 주십쇼’ 할 수 있는데, 그 말을 못 한 게 지금도 恨(한)이에요.”
노래는 숙명
―‘엘레지의 여왕’이라는 별칭은 맘에 드십니까.
“저를 부르는 별칭 중 맘에 안 드는 별칭은 없어요.”
―가수 趙容弼(조용필)씨 하고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국민가수’란 호칭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더군요.
“저도 그래요. 국민가수란 호칭은 존중해서 붙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참 좋은 거예요. 영광이죠. 문제는 국민가수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너도나도 국민가수인데, 거기에 휩쓸리는 국민가수를 저는 원치 않아요. 지금은 국민가수가 너무 많아요.”
―조용필씨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여쭙겠습니다. 노래에서 恨(한)이라는 우리의 정서가 느껴져서인지 남성들 가운데는 두 분을 동시에 좋아하는 팬들이 유독 많은 것 같습니다.
“조용필씨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과 가창력을 갖춘 실력이 있는 가수죠.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가창력 좋은 사람 몇 안 돼요. 조용필씨나 나훈아씨나 이런 사람들은 참 극찬해 주고 싶은 가수예요.”
―콩쿠르에서 정말 2등은 한 번도 안하고 1등만 했습니까.
“(단호하게) 네. 나이 제한에 걸려서 순위에 넣을 수 없어서 특별상 받은 경우를 빼고는 꼭 1등만 했어요.”
―부른 노래 중에 밝고 경쾌한 노래도 있었습니까.
“당연히 있죠. ‘동백아가씨’ 이미지가 100% 굳어져서 제 데뷔곡이 ‘열아홉 순정’인데도 그런 노래는 잘 알려지지가 않았어요. ‘여자의 일생’이니 그런 처절한 노래들만 자꾸 유행이 되는 거예요.”
―가족들만 있을 때 노래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아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데 못 부르겠어요. 저는 집에 들어가면 가수가 아니고 보통 엄마일 뿐이에요.”
―남편께서 노래 한 곡 불러달라고 조르지 않습니까.
“제 노래는 듣지도 않아요.(웃음)”
―노래방에 가본 적 없습니까.
“한 번도 안 갔어요. 제 성격을 아니까 아예 주변에서 권하지도 않아요.”
―다시 태어나면 가수는 하지 않고 賢母良妻(현모양처)로 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조용하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한 거죠.”
그녀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가수 이미자에게 노래란?
“숙명이죠. ‘너는 태어나서 숙명적으로 노래를 하라’는 명령을 받고 태어난 거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