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극복한 기업ㆍ기업인 - 高永立 화승그룹 회장 : 월간조선

“화승의 맷집이 참 좋아졌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기업들은 제2의 IMF사태가 왔다며 죽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내보낼 사람도 없고, 경영면에서 특별히 손해를 보거나 회사 구조를 바꿀 것이 없어요. 해피(Happy)합니다.”

高永立(고영립·58) 화승그룹 회장에게 “요즘 많이 힘드시죠?”라고 인사를 건넸다가 들은 말이다. 고 회장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화승은 1998년 부도 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경험이 있다. 부도 당시 화승그룹의 12개 계열사 중 절반인 6개의 회사를 정리했으니 ‘살을 베어내는 가혹한 구조조정’이었다고나 할까.

고 회장은 “기업의 구조조정은 일상업무 중의 하나”라며 “부도 이후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신규 사업을 착실히 준비해 온 덕분에 웬만한 어려움에는 흔들리지 않는 기업체질을 갖추었다”고 말했다.

‘르까프’라는 국내 최고의 유명 신발 브랜드를 가지고 있던 (주)화승(화승그룹의 모기업)은 1997년 IMF 외환위기 여파로 경영위기를 겪다가, 다음해인 1998년 부채 2832억원을 막지 못해 부도가 났다.

(주)화승이 和議(화의)에서 벗어난 것은 그로부터 6년 후인 2005년 1월, 이때를 계기로 화승그룹은 ‘제2의 창업’을 선언했고 지금까지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8년 그룹 매출은 2조3000억원으로 부도 전에 비해 280%가 증가한 수치다.

화승그룹의 구조조정을 맡았던 고영립 회장은 “말이 좋아 구조조정이지 화의를 벗어나기까지 6년간은 생존을 위해 全(전) 직원이 밤낮 없이 뛰어다닌 힘든 세월이었다”며 “회사를 꼭 살려달라며 울면서 떠나간 직원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혹한 구조조정

1998년 당시 화승그룹은 해외지사 두 곳을 비롯해 14개의 계열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 가운데 화승그룹의 모회사인 (주)화승과 (주)화승상사 2개 사가 부도를 맞았고, 위기는 그룹 전체로 번졌다. 1999년 화승 T&C 대표로 있던 고영립 회장이 구조조정의 책임을 맡고 투입됐다. 고 회장의 말이다.

“기업이 화의에 들어갔다는 것은 채권단의 信託(신탁) 통치를 받는 입장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기가 바닥에 떨어졌죠. 저는 회사를 정상화시키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신뢰를 받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고 회장은 직원들이 믿고 따라 오게 만들기 위해 먼저 자신의 개인재산을 전부 은행에 담보로 잡히는 일부터 했다고 한다.

“저의 재산을 회사에 위탁한 것이죠. 회사가 살아야 저도 사는 것입니다. 그 후 저는 직원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걸었다. 운명을 같이해서 위기를 극복하자’고 말했습니다.”

이후 고 회장은 부도가 난 (주)화승과 (주)화승상사를 합병했다. 그는 “원래 어려운 회사와 잘되는 회사를 합쳐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부도난 두 회사를 합쳤으니 모두들 이해를 못하는 분위기였다”며 “하지만 기업의 핵심 역량을 집중해서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가혹했다. 당시 합병한 두 회사의 직원은 1200명, 고 회장은 합병 후 인원을 510명으로, 다시 300명으로까지 줄이는 격렬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화승의 대표 브랜드였던 르까프, 허쉬파피, 캐필드, 월드컵 등 6개의 브랜드 중 르까프와 월드컵 두 개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접었다.

브랜드 회의를 하고 있는 (주)화승의 직원들.

그룹에 조금이라도 짐이 된다고 판단되는 기업은 없애거나 합병을 했다. 화승제지, 장천, 화승강업, 화승상호저축은행, 화승관광개발 등 화승그룹의 12개 국내 계열기업 중 6개가 정리대상에 올랐다. 이들 기업은 화승그룹이 많은 투자를 해서 세웠던 기업이었다.

“기업을 정리할 때 철저하게 미래를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경쟁력이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기업은 과감하게 털어내고, 장래성이 있는 기업은 살렸습니다. 어쨌든 외형은 반 토막이 난 것이죠.”

남은 과제는 매출을 끌어올려 회사를 흑자로 돌리는 것. 고 회장은 “신발 연구개발비에 아낌없는 투자를 하고 소비자밀착형 영업체제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당시 르까프 신발에 총을 쏴서 구멍을 내는 장면을 TV 광고로 내보낸 적이 있는데 이는 기업이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소비자들과 가까이 접촉하기 위해 영업소를 최대한 전진배치했습니다. 대리점 사장을 만나서 이들의 의견을 품질은 물론, 물류와 신규영업망 확대 구축 등 전방위적인 경영 향상에 반영했습니다. 요즘 말로 이를 ‘현장경영’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저부터 전국을 누비고 다니다 보니 매출이 오르고, 회사 분위기가 급격하게 좋아졌습니다.”

고 회장은 화승이 화의에서 벗어나고 그룹이 어느 정도 再編(재편)되었다는 판단이 들자 제2 창업을 선언했다. 이때가 2005년 12월이었다. 기업의 새로운 CI(통합된 기업이미지)도 함께 선포했다. 그때 고 회장은 “2010년에 매출 3조원을 달성하겠다”는 ‘그룹 비전 2010’을 발표했다.

“매출 1조1000억원에 육박하던 회사를 5년 안에 3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니 주위에서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회사 임원들조차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구조조정을 거치는 동안 고정비를 줄이고, 내실을 다지고, 새로운 사업을 위한 투자를 많이 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자동차부품, 정밀화학으로 업종 변경

고영립 회장은 제2 창업을 선언하기까지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해 왔다. 구조조정 과정을 통해 화승그룹은 자동차부품, 정밀화학, 스포츠패션브랜드 3가지 사업에 기업의 역량을 집중시켜 온 것이다.

먼저 자동차부품 사업은 화승 R&A가 이끌고 있다. 화승 R&A는 1978년 설립된, 자동차에 들어가는 각종 고무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로, 꾸준하게 성장을 해왔다. 현재는 화승그룹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하여 화승그룹의 주력회사가 됐다.

고 회장은 “화승이 신발 밑창을 만들었기 때문에 자동차용 고무 관련 부품에 대해 일찍부터 연구개발을 했었다”며 “현재 화승 R&A는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승 R&A는 국내 자동차용 고무 관련 부품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현대·기아자동차는 물론, 도요타, 마쓰다, GM, 폴크스바겐, 포드 등 세계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화승의 정밀화학 분야를 맡고 있는 기업은 화승인더스트리다. 화승인더스트리는 1969년 케미컬수지(합성수지) 업체로 설립됐다. 포장지, 음료지 등에 사용되는 각종 필름은 물론 정밀화학 기술이 요구되는 합성지, 형광센서 감지용 필름, 자외선안정필름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재 국내최대의 필름전문 R&D 센터를 가지고 있으며 연 매출이 1300억원에 이른다.

화승그룹의 전통 사업분야 중 하나인 스포츠패션브랜드 분야는 (주)화승이 담당하고 있다. 현재 르까프, 케이스위스(K·SWISS), 머렐 등 신발과 스포츠 의류 분야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주)화승은 부도 전인 1998년에 14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으나, 현재는 3600억원으로 260% 가량 증가했다.

2008년 아디다스 그룹은 전 세계 20개의 아디다스 생산공장을 5개로 통폐합시키는 전략을 취하였고, 이때 (주)화승이 ‘리딩 서플라이’(선두업체) Big 5에 선정되었다. 이에 따라 화승은 2009년부터 최대 월 250만 족, 연간 총 3000만 켤레의 아디다스 신발을 납품, 연간 4억6000만 달러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다. 지난 11월 (주)화승은 아디다스로부터 Big 5 그룹 중에 경영 유연성과 경영개선, 경영 신속성에서 최고를 뜻하는 스피드(Speed)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 회장은 “아디다스 그룹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한 (주)화승은 아디다스 그룹의 제1 아웃소싱 협력업체로 발돋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3가지 사업에 그룹의 역량을 집중시킨 화승은 최근 화승네트웍스라는 물류유통회사를 설립했다. 이는 화승그룹의 3대 주력 사업을 전후방에서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화승그룹이 만든 상품의 유통과 판매, 자재 공급, 해외무역 등을 담당하고 있다. 화승네트웍스의 2008년 매출은 3000억원에 이른다.

고영립 회장은 “화승네트웍스는 앞으로 해외자원 개발사업에 진출할 것”이라며 “그룹의 수요가 많은 생고무, 철강 등을 확보해서 국내에 공급하고 세계시장에도 수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룹이 크게 3개로 나눠지다 보니 서로 협조해야 할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화승네트웍스는 우리 그룹이 생산한 것을 내다팔기도 하고, 해외지사에서 생산한 물건을 제3국에 파는 역할도 합니다. 자재도 공동으로 구매하면 원가가 절감되기 때문에 이익입니다.”

경영기법 나쁘면 사업이 안 된다

화승그룹 베트남 계열사인 화승비나(HS VINA) 공장의 모습. 호찌민시에 있는 이 공장에서는 리복아디다스의 신발을 주문 생산한다.

이 외에도 2007년 화승그룹은 화승 R&A의 산업용품 사업부를 분할해서 산업용 고무부품 생산회사인 화승엑스윌이라는 회사도 설립했다. 이 회사는 자동차용 고무부품을 생산하고 있는 화승 R&A와는 별도의 시장을 겨냥하고 있으며, 앞으로 부품소재 전문회사로 전문화할 예정이다. 화승엑스윌의 2008년 매출은 1400억원이며, 2012년에는 3000억원, 2015년에는 5000억원의 매출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현재 화승그룹은 국내 법인 8개, 해외법인 16개 사를 합해 모두 24개의 국내외 기업을 거느린 글로벌경영 체제를 갖추고 있다.

고 회장은 “5년 전에 비전 2010에서 계획한 매출 3조원은 2009년이면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지금은 또 다른 그룹비전을 준비 중에 있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강력하고 과감한 아웃 소싱 전략을 펼쳤습니다. 우리 회사가 안고 가기에 부담스러운 사업과 기술은 제휴업체나 협력업체에 이전했습니다. 한국에서 인건비가 비싸 경쟁력이 없는 사업체는 해외로 옮겼고요. 이렇게 고정비용과 생산원가를 줄여서 내실을 다지고, 선택과 집중투자를 한 덕분에 오늘과 같은 세계경제 위기에서도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경영의 유연성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고 회장은 “결국 기업이 망하면 그 피해는 국가와 국민이 지게 돼 있다”며 “국내 다른 기업들도 경쟁력 있는 생산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는 핵심기술만 남기고 생산시설을 아웃 소싱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전에는 매출이 오르면 그만큼 투자를 늘리고, 사람을 늘리곤 했는데 그렇게 하면 고정비용이 늘어납니다. 우리가 인원을 그렇게 줄이고도 매출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내다보는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업이 조그만 외부 환경에도 흔들리고 사업이 잘 안 되는 이유는 경영기법이 나쁘기 때문”이라며 “과감하게 경영방법을 바꾸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피부암으로 3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

고영립 회장은 1976년 화승그룹의 전신인 동양고무산업에 공채 1기로 입사, 37세에 이사에 올랐다. 그는 “젊은 시절에는 별 보고 출근하고 별 보고 퇴근하는 삶을 살았다”며 “어느 순간 주위를 돌아보니 나를 이길 만한 경쟁자가 남아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말 목숨 걸고 일을 했습니다. 코피도 많이 흘렸고요. 중소기업에 와서 열심히 일만 하다 보니 출세하기 좋더라고요.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나니까 여기저기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자리를 옮겨간 사람은 거의 실패했어요. 우리처럼 전문직이 아니라 제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한 우물을 파야 성공합니다.”

고 회장에게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회사에 들어와 불시 순찰이나 현장점검을 해서 ‘올빼미’란 별명이 붙었고, 그룹의 어려운 일이 생기면 투입되어 수습을 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소방차’로 불렸다고 한다.

“요즘 대학생들이 취직 안 된다고 아우성치면서도 막상 중소기업에는 가지 않으려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젊을 때는 자기 실력을 발휘해서 할 수 있는 회사에 가서 승부수를 던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젊은이들이 회사와 같이 성장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아요.”

일에 묻혀 살던 고 회장에게 뜻밖의 위기가 찾아왔다. 2004년 어느 날 그는 왼쪽 겨드랑이 아래 큰 혹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흑색종이란 피부암 진단을 받았다.

“3기 말이어서 의사가 3개월밖에 못 산다고 하기에 큰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어쨌든 수술을 하고 미국에 가서 방사선 치료를 받았어요. 제 키가 186㎝인데 덩치가 크다고 일반인보다 3배나 많은 항암제를 투여하더군요. 항암치료의 후유증을 이겨내는 것은 정말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그는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고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통 암 선고를 받으면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어야 정상인데, 저는 지난 날을 회고하니 너무 행복한 겁니다. 그때 머릿속이 정리가 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이것도 나의 운명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재미있게 산 사람이 있을까. 화승을 만나서 정말 인생을 열심히 살았다. 회사가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고 회장은 “미국에서 한달 치료 받은 후 한국에 들어와서 치료를 받았는데 경과가 좋아 수술한 지 4개월 만에 회사에 출근했다”고 말했다.

경영이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화승 R&A가 생산하고 있는 자동차용 고무 부품(호수)의 모습.

“회사에 나와서 경영에 전념하고 또 그때 회사가 나날이 발전하니까 잡념이 없어졌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니까 면역력이 생긴 것 같아요. 이 일을 겪고 저는 사람은 은퇴 후에도 절대로 쉬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본인이 좋아서 집중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고 회장은 암 투병 후 회사를 경영하는 방식이나 사회를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 도중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욕심을 버려라’ ‘주위를 잘되게 하자’ ‘큰 일, 큰 생각, 큰 행동을 하자’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먼저 회사가 잘되는 것 외에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또 내 주위의 사람들이 잘되도록 항상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암 투병 후에는 웬만하면 회사 직원을 한 명도 안 내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고 회장은 “큰 일, 큰 생각, 큰 행동을 하자고 마음먹은 후부터는 누구의 잘못을 탓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별별 일이 다 벌어집니다. 돈 떼이고, 협력회사 부도나고…. 예전에는 협력회사가 잘 안되거나 부도 나면 서로 잘못을 탓하기 바빴지만, 요즘은 ‘그 회사가 우리 회사에 벌어준 돈이 그동안 얼마인데’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그래서 잘못은 나중에 따지고 빨리 수습을 잘하라고 지시합니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니 스트레스가 덜 쌓이는 것 같습니다.”

고 회장은 “오랫동안 회사의 최고 책임자 자리에 있어보니 회사를 운영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상호 간의 ‘신뢰’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2007년 자동차산업의 위기로 그룹의 주력회사인 화승 R&A의 경영실적이 좋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화승 R&A 勞組(노조)가 임금 동결은 물론 인원 감축까지를 포함한 모든 임금·단체협상 결정 권한을 社(사) 측에 위임하는 결정을 했어요. 그때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고 회장은 “이 일을 통해 경영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란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영인은 비록 아랫사람이라도 상대편 생각이 맞으면 받아들이는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윗사람이 먼저 아랫사람에게 다가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시를 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부하가 시킨 일을 제대로 못하면 전후 상황을 보지도 않고 무조건 못마땅하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상사가 일이 돌아가는 과정을 모르고, 결과만 놓고 問責(문책)을 하면 상하 간에 인간관계가 깨집니다.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회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수없이 체험했습니다.”

고 회장은 1년에 3분의 1을 해외 계열사를 방문하면서 보낸다고 한다. 기업인이 현장을 보지 않으면 현장감과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이유 때문이다.

“현지에서 기업 책임자들과 바이어, 전문가들을 만나다 보면 문제점이 보이고, 빠른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외부 환경 변화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경영자가 현장을 보지 않으면 엉뚱한 판단을 내릴 수가 있어요. 그래서 평소 현장을 많이 다니고, 직원들과 진솔한 대화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