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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대한민국 나침반

샹그릴라 레에서 본 2024년 복합위기 시대의 지구촌과 한국

한국, 트럼프 재등장과 중국 급추락으로 생존 능력 시험받는 해 될 것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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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핵무장과 한일관계 강화로 생존 위기 극복해야
⊙ 트럼프, 문재인 때문에 한국 불신… 중국, 한반도 놓고 미국과 거래 시도할 것
⊙ 한국, 트럼프와의 외교라인 확보도 어려울 것… 한미동맹 중시하는 지식인·전문가 집단과 소통해야
⊙ 제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겪으면서 유토피아인 샹그릴라 다룬 《잃어버린 지평선》 베스트셀러 돼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레는 조용하다. 폴리크라이시스와 무관한, 21세기 유토피아라 불러도 될 신비로운 공간이다. 사진=유민호
  2024년 새해다. 한 해의 출발점에 서서 새로운 결의를 하고 아름다운 덕담을 주고받을 때다.
 
  신년을 어디에서 맞이할지는 필자의 ‘연례’ 고민 중 하나다. 30대 이후 세대라면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1년이 하루이고 10년이 일주일처럼 흘러간다. 너무 빨라서 어제의 시간을 더듬고 기억하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필자는 신년만큼은 기억에 확실히 남기려 노력한다. 어디에서 신년을 맞이할 것인가, 신년 첫나들이는 어디로 갈 것인가에 방점을 두면서 연초를 맞이한다. 40대 이후에는 주로 유럽에서 신년을 맞이했다. 10년 이상 베네치아의 산 조르조 교회(San Giorgio)에서 천년 해양대국의 기상을, 혹은 로마 교황청의 베드로 대성당(St. Peter’s Basilica)에서 신(神)의 그림자를 느끼면서 한 해의 첫출발을 했다.
 
 
  디야르바키르, 파라다이스 혹은 에덴동산
 
‘에덴동산’으로 추정되는 튀르키예의 디야르바키르. 강 위를 가로지르는 다리는 로마 시대에 건설한 것이다.
  ‘파라다이스(Paradise)’는 튀르키예(터키)에 머물면서 알게 된 새로운 신년맞이 공간이다. 팬데믹이 맹위를 떨치던 2021년 새해, 잊을 수 없는 기억 하나를 만들어냈다. ‘에덴동산의 원류’라 불리는 땅과의 만남이다. 시리아 국경에 인접한 곳으로, 튀르키예 이즈미르(Izmir)에서 동쪽으로 1400km 떨어진 ‘디야르바키르(Diyarbakır)’가 그곳이다. 《성경》에 나오는 풍경·지리·지세·지형을 전부 판독한 고고학자들은 이 디야르바키르 주변 어딘가가 에덴동산의 원점이라고 주장한다. 《성경》에서는 에덴동산의 위치를 ‘네 개의 강이 시작되는 원류(源流)’에 있다고 설명한다. 원래 에덴의 기원인 ‘에딘(Edin)’이란 단어는, ‘물이 풍부하고 과일이 많은 곳’을 의미한다. 디야르바키르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개의 강을 끼고 있다. 도시 한가운데 성 위에 올라가 보면, 도심 전체를 휘감은 강 티그리스가 펼쳐진다. 도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황량한 사막 땅이지만, 디야르바키르 주변만은 동물·과일·물로 채워진 녹색지대다.
 
  이상향(理想鄕)·낙원(樂園)을 뜻하는 말로 파라다이스도 있다. 이 말은 원래 고대 페르시아어 ‘파라데이소스(Paradeisos)’에서 온 말이다. 이후 기원전 5세기 고대(古代) 그리스가 수입해 이 말을 확산시켰다.
 
  ‘파라다이스’는 원래 ‘닫힌 공원(Enclosed Park)’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왜 ‘열린 공원’이 아닐까? 안전과 평화가 그 이유다. 고대의 인간은 겁이 많고 나약한 존재였다. 야생의 자연이 아닌, 인간을 행복하고도 즐겁게 만들어줄 ‘보호막’이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했다. 동물에게 잡아먹히고 천재지변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땅이 아니라, 신의 품 안에 있는 ‘안전한’ 공원 말이다. 이게 바로 ‘에덴동산=안전 평화=파라다이스’인 이유다.
 
  유네스코는 2015년 디야르바키르 도시 전체와 도심 밖의 자연공간 헤브셀 정원(Hevsel Gardens)을 인류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아마 파라다이스와 에덴동산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일 것이다.
 
 
  샹그릴라,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2024년 신년맞이를 위해 어디로 갈지에 대해 고민했다. 부모님이 묻힌 선산으로 갈 생각도 했지만, 문득 지구에 남은 마지막 ‘유토피아(Utopia)’가 머리에 떠올랐다. 바로 인도 최북부 라다크(Ladakh) 지방이다. 거기서도 티베트 불교 성지(聖地)로 통하는 레(Leh)를 2024년 필자의 신년 출사표를 던질 장소로 선택했다.
 
  서방에서 레는 지구에 남은 최후의 유토피아 공간으로 통한다. 인류 문명사에 관심이 있다면 ‘샹그릴라(Shangri-La)’라는 명칭에 익숙할 것이다. 1933년 영국의 작가 제임스 힐턴(James Hilton)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Lost Horizon)》에 등장하는 유토피아가 바로 샹그릴라다. 히말라야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지상 낙원으로, 모든 사람이 수백 살이 되도록 무병장수(無病長壽)하면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행복의 땅이다.
 

  원래 샹그릴라는 티베트 불교의 유토피아 세계관인 ‘샴발라(Shambhala)’와 관련이 있다. 불교세계가 그리는 이상향으로, 힌두교도 꿈꾸는 천국의 땅이 샴발라다. 제임스 힐턴이 그린 유토피아 샹그릴라는 샴발라의 또 다른 얼굴이라 볼 수 있다.
 
  파라다이스와 유토피아는 비슷하면서 전혀 다른 개념의 세계다. 파라다이스는 정신적·개인적·종교적 차원의 천국이다. 인간과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신을 염두에 두면서 자연 및 동물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공간이다. 유토피아는 사회적·집단적·정치적 관점에서 본 인간세계에서의 낙원이다. 신에서 벗어나, 국가·조직·사회와 같은 인간세계에서 적용되는 평화·평등·자유·안전으로 채워진 세계가 유토피아다. 따라서 홍길동이 꿈꾼, 적서(嫡庶) 차별이 없는 율도국은 파라다이스가 아닌 유토피아에 해당한다.
 
  파라다이스와 유토피아는 반대 개념으로도 구별이 된다. 신의 벌(罰)에 기초한 지옥이나 어두운 지하세계가 파라다이스의 반대 개념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유토피아와 정반대인 디스토피아(Dystopia)의 전형적인 본보기다.
 
 
  레로 가는 길
 
레 공항에 도착한 필자.
  유토피아 레로 가는 길, 여행객 입장에서는 비행기나 기차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 대략 10시간 걸리는 기차로 이동한 후, 근처 도시에서 다시 승합차를 타고 산속으로 18시간 정도 달리면 히말라야 오지(奧地) 라다크 지방에 도착한다. 오래전부터 기차 여행을 꿈꿨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연말연시 특급기차가 매진이다. 인도는 인구가 14억 명이 넘는 세계 최대의 인구 대국이다. 사람으로 미어터지는 입석(立席)으로 갈 수도 있지만, 체력적으로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비행기 표를 끊었다.
 
  아침 5시30분, ‘스파이스 제트(Spice Jet)’라는 기묘한 이름의 인도 비행기에 올랐다. 세계 최악의 공해도시 뉴델리에서 실존하는 유토피아 공간에 이르기까지의 소요시간은 1시간30분 정도다. 150달러만 주면, 날아서 히말라야 낙원까지 갈 수 있다.
 
  정확히 아침 7시5분, 비행기가 해발 4000m 위에 들어선 비행장 활주로에 내렸다. 기온은 영하 18도. 구름 한 점 없는 맑고도 푸른 날씨다. 눈이 시리도록 새파란 하늘이란 표현이 떠올랐다. 눈으로 뒤덮인 히말라야 산들이 넓은 비행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유토피아 통과의례는 따로 없다. 특별한 절차 없이, 활주로 한가운데에서 내려 대합실로 간 뒤 곧바로 공항 밖으로 나갔다. 이른 아침인데도 티베트인 운전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필자 친척의 얼굴을 빼다 박은 듯한 ‘텐진(Tenzin)’이란 이름의 20대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텐진은 ‘달마 대사의 분신’이란 의미다. 영어가 유창했다. 전부 외국인 관광객에게서 배운 길거리 영어라고 한다. 라다크 지방에 머무는 동안 교통편의 전부를 텐진에게 부탁했다.
 
잔스카르와 인더스 강이 만나는 합일점. 위쪽이 잔스카르, 아래쪽이 인더스 강이다.
  레는 비행장에서 5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인구 3만 명 정도인 해발 3500m의 고원(高原)도시. 인도 문명의 출발점 인더스(Indus)강이 라다크 아래 동남쪽으로, 잔스카르(Zanskar)강이 서남쪽으로 흐른다. 둘 다 히말라야의 눈을 기반으로 한 강이지만, 잔스카르는 청명하고 깊은 코발트빛이다. 반대로 인더스는 진흙이 뒤섞인 탁한 물이다.
 
  유토피아 샹그릴라는 뒤로는 히말라야를, 앞으로는 인더스와 잔스카르를 두고 있다. 배산임수(背山臨水)인 셈이다. 유토피아에는 특별한 약 하나가 필요하다. 고산병(高山病) 예방약이다. 두통과 탈수(脫水)를 막는 효과가 있다. 고혈압이 있는 실버 세대에게는 레 여행이 어려울 듯하다.
 
 
  레의 황금
 
샹그릴라 레의 불교는 평화와 자연과의 조화가 우선시된다. 수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는 무병장수 땅이기도 하다.
  레는 17세기 건립된 9층 건물의 왕궁이 들어선 고대 티베트 정치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금도 80대 달라이 라마가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곳이다. 라다크 지방과 레는 정확히 40년간 지속된, 필자의 노스탤지어 공간이기도 하다.
 
  1984년 KBS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실크로드〉를 통해, 고대 불교도시 라다크와 레가 소개됐다. 보는 즉시 빨려 들어갔다. 매년 6월에 벌어지는 티베트 불교의 ‘신두 다르샨(Sindhu Darshan)’ 축제였다고 기억하는데, 깊은 신앙심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가면, 의상, 춤, 노래, 그리고 특유의 티베트 악기가 가슴에 새겨졌다. 단 한 번의 만남이었지만, 라다크 지방과 레에 관한 필자의 환상은 이후 한 번도 식지 않았다.
 
  겨울의 레는 차갑고 건조하다. 추위와 함께 입술이 트고, 온몸이 가려웠다. 하지만 텐진의 도움으로 레에서 사방 100km 내 티베트 사원과 자연 풍광을 원 없이 구경할 수 있었다.
 
  필자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지만, 놀 수 있을 때 놀아야 한다. 높은 곳에 오를 만한 다리와 체력이 있을 때 여행에 나서야 한다. 라다크 지방에 산재한 티베트 사원 대부분은 산 정상에 들어서 있다. 산소도 모자라는 높은 산에 오를 만한 폐활량(肺活量)이 중요하다.
 
  사원 안에는 수백 년, 아니 천 년이 넘은 탱화(幀畵)와 불경(佛經)들이 보관돼 있다. 한국의 큰 불당(佛堂)과 달리, 본당(本堂)이라 해도 10여 명이 겨우 들어갈 정도로 협소하다. 그러나 불교 역사와 깊은 신앙심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공간이다.
 
  사원 아래를 내려다봤다. 풍광이 멀리 파노라마처럼 이어져 있다. 끝이 없다. 인더스·잔스카르 강줄기와 이어진 농토, 길쭉한 나무가 파노라마 풍경의 기반이다. 겨울이라 풍경 전체가 황톳빛이다. 신비하게도 3월부터 풀과 나무가 소생하면서 곡식들도 자란다고 한다.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나는 농산물들은 해충 한 마리 없는, 물만 주면 자라는 무공해 청정 농산물이다.
 
  대략 3월부터 9월까지가 샹그릴라 방문 최적기다. 흥미롭게도 최근 유토피아 방문객 대부분은 외국인이나 불교 신자가 아닌, 힌두교 신자 인도인이라고 한다. 라다크 지방과 레에서 판매하는 황금이 복을 준다는 얘기가 힌두교도 사이에 퍼져 있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황금은 신앙이자 종교다. 결혼식은 인도인의 인생 최대 하이라이트다. 보통 결혼식 며칠 전부터 밤을 새우며 축하하는데, 신랑이 신부에게 고급 황금 패물(佩物)을 선물하는 장면이 결혼식의 화룡점정(畵龍點睛)이다. 힌두교도들은 샹그릴라의 황금이야말로 신부와 신랑 모두에게 복을 준다고 믿고 있다. 이 때문에 매년 엄청난 힌두교도들이 결혼식용 황금 선물을 구하러 레에 들른다.
 
 
  폴리크라이시스
 
  ‘폴리크라이시스(Polycrisis)’라는 말이 있다. 팬데믹을 맞아 등장했는데 ‘복합·동시다발 위기’라 직역할 수 있다. 국가·사회·조직 사이의 생각과 방향이 부딪치면서 드러난 글로벌 위기로, 하나가 아닌 동시 출현이 특징이다. 팬데믹, 지구온난화, 포퓰리즘, 전체주의, 우크라이나 침략, 나아가 최근의 가자 전쟁과 곧 닥칠 대만(臺灣)전쟁 같은 초대형 재난들이 폴리크라이시스의 본보기들이다.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그 어떤 것도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글로벌 차원 인재(人災)라는 것도 공통분모다. 지구촌에 사는 한, 싫든 좋든 수많은 위기에 뒤얽혀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도 폴리크라이시스에 배어 있는 의미 중 하나다.
 
  폴리크라이시스는 글로벌 시대의 종언(終焉)과 함께 나타난 ‘불편한 진실’의 진짜 얼굴에 해당한다. ‘우리 모두 함께’라는 말과 함께,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이 글로벌 시대의 일상 풍경이자 상식이었다. 서로 돕고, 모두에게 기회를 주자는 고상하고도 품격 높은 생각이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시대의 기본자세이자 방향이었다.
 
  팬데믹을 전후(前後)로 상황은 급변했다. ‘위 아 더 월드’가 아니라, ‘위 아 더 세퍼레이티드(We are the Separated·우리는 서로 분리된 존재다)’라는 생각이 퍼져 나갔다. 미중(美中) 디커플링(decoupling)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사실 이런 상황은 2016년 6월 23일 영국에서부터 시작됐다. 이날 국민투표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가 확정됐다. 이른바 브렉시트(Brexit)다.
 
  역사의 메타포(Metaphor)라고나 할까? 영국이 EU 탈퇴를 정식 통보한 것은 2020년 1월 31일이다. 중국 우한발(發) 팬데믹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던 바로 그 시기에 영국의 나 홀로 독자노선이 시작된 것이다. 우연을 넘어선 필연 같은 타이밍이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대중(對中)무역 보복도 브렉시트 국민투표 직후부터 현실화됐다. 트럼프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 등 기존의 미국 동맹국이나 우호국에 대한 경제보복도 일상화했다. 전 세계를 향한 미국판 홀로서기가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란 슬로건과 함께 급속히 진행됐다.
 
 
  앵글로 색슨의 황혼?
 
  폴리크라이시스는 이 같은 상황 속에서 가속화됐다. 그러나 이는 ‘위 아 더 월드’ 시대에 이미 잠재해 있던 인류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쇄국주의 영국이나 인종주의자 트럼프 탓이 아니다. 인류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웃고 마시면서 숨기거나 잊었던 ‘불편한 진실’이 수면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필자는 인류문명사에 기초해서 생각할 때 영미(英美)를 중심으로 한 ‘앵글로 색슨계(Anglo Saxons)’야말로 근대 이후 역사의 원동력이라 확신한다. 독일은 너무도 이념적이고, 프랑스는 지나치게 이상적이며, 이탈리아는 극단적으로 자율적이다. 일본은 폐쇄적인 집단주의에 빠져 있다. 러시아는 무식꾼 힘자랑 대회에나 어울린다. 중국은 자화자찬과 복수심리로 날밤을 새우는 나라다.
 
  앵글로 색슨계 국가들은 독일·프랑스·이탈리아·일본이 가진 장점과는 거리가 먼 나라들이다. 단점 또한 그들이 가진 단점과 거리가 멀다. 영국은 유럽 대륙에서, 미국은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모두에서 벗어나 있다. 객관적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상대의 장점 흉내보다 단점 제거에 주력한다. 바로 이 같은 자세가 합리적이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자유롭게 처리해나가는 앵글로 색슨계 경영방식으로 발전했다. 개인·조직·사회·국가 모두 조직 운영과 경영에 익숙하다.
 
  이 결과 영국은 16세기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이래 20세기 초까지, 무려 400여 년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이룩했다. 미국은 영국의 전통과 정신을 이어받은 앵글로 색슨계 후손이다. 20세기부터 미국은 대제국 영국을 대신한 세계 패권(覇權) 국가가 되었다.
 
  앵글로 색슨계의 반란, 아니 자각(自覺)이라고나 할까? 브렉시트와 아메리카 퍼스트는 앵글로 색슨계의 변화된 세계 경영 방식을 예감케 하는 신호탄이었다. 브렉시트 결정 8년도 안 된 2023년 말, 세계는 이미 요동치고 있다. 폴리크라이시스는 바로 이 같은 상황의 증거다. 앵글로 색슨계가 변화에 눈을 뜨고 새롭게 대응하려는 순간, 전 세계가 흔들리고 있다.
 
  ‘위 아 더 월드’ 시대의 습관일 듯하지만, 영미의 변화를 그들의 황혼(黃昏)이라 해석하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최근 가자지구에서의 비극을 보면서 미국이 행사할 현실적 파워가 없다는 이유로 ‘미국=황혼대국’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많다. 영국도 인도계 총리 리시 수낵이 등판할 정도로 통합이 어려운 나라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반미(反美)·반영(反英)으로 가면 비(非)앵글로 색슨계의 비위를 맞출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시대정신을 못 읽은 속 좁은 편견일 뿐이다.
 
 
  사람들은 왜 샹그릴라를 찾나?
 
유토피아 소설의 백미인 제임스 힐턴의 《잃어버린 지평선》.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가장 큰 문제에 부딪힌 나라는 미국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자신이다. 가자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면서 미국을 비난하지만, 실제 최대 피해자는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자신일 뿐이다.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경제가 하강세라고 하지만, 영국을 잃은 유럽은 더 큰 피해에 직면해 있다. 경제만이 아니라, 이슬람 이민자에 의한 테러나 도시 범죄는 유럽 대륙의 고질병(痼疾病)이 된 지 오래다.
 
  앵글로 색슨계에 대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사실 영미 두 나라는 큰 문제 없이 잘살아가고 있다. 욕과 비난은 넘쳐나지만, 현실에서의 글로벌 앵글로 색슨 1강(強) 체제는 끄떡없다.
 
  필자의 일관된 세계관인데, 미국은 중국 아니 세계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은 미국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 아무리 값싸고 뛰어난 성능의 중국산 전기자동차(EV)라 해도 미국 수출이 막힐 경우, 골목대장 수준의 동네 자동차로 전락할 뿐이다. 중국 국내 시장이나 아프리카·동남아시아·개발도상국 시장만으로는, 우후죽순(雨後竹筍) 격으로 생겨나는 저가의 중국 전기자동차 산업을 유지·발전시켜나가기 어렵다.
 
  최근 10년 내 나타난 앵글로 색슨계의 변화·변신·자각은 자국만이 아닌, 전 세계를 요동치게 만드는 폴리크라이시스의 근본 원인이자 배경이었다.
 
  진정한 문학은 시대의 산물이자 역사의 거울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샹그릴라를 다룬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이 1933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던 것은 제1차 세계대전과 1929년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 때문이었다. 전쟁·죽음·가난·기아가 판치는 세상에 대한 극단적인 공포와 비관이 사람들로 하여금 히말라야의 유토피아 샹그릴라를 찾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이 닥치면서 이런 생각은 인류의 종교이자 신앙처럼 되어버렸다.
 
  필자는 가까운 시일 내 전 세계가 공감할 유토피아 소설이 등장할 것이라 확신한다. 폴리크라이시스의 여파로 극단적인 공포와 비관이 만연하고, 곧바로 유토피아에 대한 꿈과 환상이 퍼져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유토피아가 등장할 때는 지구 종말 ‘노아의 방주(方舟)’ 얘기도 반드시 나타난다. 변형된 모습이지만, 지구온난화 경고는 21세기판 ‘노아의 방주 2.0’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용의 추락
 
용은 중국에서만 신성시될 뿐, 유럽이나 기독교권에서는 악의 상징으로 통한다. 상상 속 동물 용에게 성과 속의 절대가치를 부여한 유일한 나라가 중국이다.
  책임론이라고나 할까? 폴리크라이시스의 최대 책임자는 누구일까? 트럼프부터 떠올리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는 반미(反美)감정에 충실한 생각일 뿐이다. 지구촌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대륙별로 나눠 폴리크라이시스 현황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아시아 대륙에서의 중국부터 보자. 필자 판단으로는 중국은 21세기 폴리크라이시스의 최대 진원지(震源地)이다. 상황이 닥쳐도 문제해결은커녕, 방관하거나 악화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이는 나라다.
 
  공교롭게도 2024년은 용(龍)의 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용은 중국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현실이 아니라, 불을 뿜으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상상 속 동물이 중국의 상징이다. 실체(實體)가 없는 나라, 관념과 상상 속에나 존재하는 땅이 중국일지 모른다. 그런 나라를 기리면서,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고 자랑한 나라가 조선이다.
 
  사람들은 희망과 기대에 찬 용의 해를 맞겠지만 2024년은 용의 추락이 본격화되는 해가 될 것이다. 중국 경제가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보듯, 중국은 글로벌 폴리크라이시스를 조장(助長)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나 글로벌 시대정신과 정반대로 가면서 자기 이익만 챙기려는 나라다. 악(惡)을 행하는 동안 중국 그 자신도 악 그 자체로 변해가고 있다. 환경 문제나 급추락하는 경제 문제에서 보듯, 중국 스스로가 폴리크라이시스 진원지가 되어가고 있다.
 
  2023년 12월 초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부동산과 관련해 중국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부채(負債)가 7조~11조 달러(약 9100조~1경4400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3조 달러의 외환(外換)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부채의 상당 부분은 외국은행과 연결돼 있다. 《WSJ》 기사에 기초한 단순 계산법이지만, 중국은 이미 총 보유 외환조차도 전부 까먹을 수준의 부동산 부채 국가다. 2023년 12월 5일, 신용평가회사 무디스가 중국 신용 수준을 ‘부정적(Negative)’이라고 하향 조정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중국은 일본의 전철(前轍)을 똑같이 밟으면서 일본처럼 ‘잃어버린 30년’으로 본격 진입하기 시작했다.
 
 
  중국, 한반도 놓고 트럼프와 거래할 수도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만난 문재인 당시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갖고 있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김정은과 거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중국의 수직 추락은 바로 옆에 붙은 한국의 오늘과 내일을 변화시킬 최대의 변수(變數)이자 상수(常數)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1990년대 이래 용의 비상(飛翔)과 함께 발전한 한국의 성장도 급강하할 수밖에 없다. 2023년은 맛보기일 뿐, 더 큰 경제적 고통이 올해 밀려들 것이다.
 
  19세기 말~20세기 초 구미(歐美)에서 유행했던 고전적 의미의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은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한 세계의 중국화’로 풀이된다. 인해(人海)처럼 중국인이 몰려들면서 현지인들의 존재감이 사라지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시대의 황화론은 어떨까? 돈·기술·정보·상품·군사·외교를 비롯해, 인류가 접하는 모든 물건과 세상이 황화론의 대상이다. 어디 하나 피할 구멍이 없다. 최근 중국산 요소 수출 중단에서 보듯, 한국은 이 같은 21세기판 ‘전방위 황화론’의 직접 피해자가 될 전망이다.
 
  정치적 관점의 황화론은 한층 더 심각하다. 2024년 11월 폴리크라이시스의 결정판이 될지도 모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이변(異變)이 없는 한 트럼프가 당선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한국 정부를 불신한다. 문재인 내로남불 정권이 보여준 ‘뻥튀기 외교’에 질렸기 때문이다. 상대가 윤석열 대통령이라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한국은 트럼프와의 기본적인 외교 라인조차 확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이 같은 틈새를 노려 한반도를 두고 미국과 거래(deal)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전부 한순간 쓰러지는 판에 전방위로 트럼프에게 매달려야 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대만도 딜의 대상이지만, 한반도도 트럼프 입맛에 맞는 딜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이제는 핵무장 해야
 
  폴리크라이시스와 관련한 신대륙 아메리카의 실상은 어떨까? 미국은 폴리크라이시스 종합무대이자 해결창구, 나아가 문제 제기에 나선 나라다. 2024년 1월, 트럼프는 이 같은 상황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트럼프 정치의 출발점은 ‘아메리카 퍼스트’다. 동맹국·우호국이라도 아메리카 퍼스트를 위한 제물(祭物)로 추락할 수 있다. 중국은 이 같은 빈틈을 파고들 것이다.
 
  한반도가 강대국 간 딜의 희생양이 되지 않는 길은 하나뿐이다. 바로 한국의 핵(核)무장이다. 황당무계한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트럼프의 등장은 거꾸로 한국 핵무장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트럼프에 대한 구애는 중국만이 아니라 김정은도 시도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트럼프의 출현은 ‘결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입이 거칠고 직설적이란 점에서 트럼프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앞으로 세련되고 기품 있는 언어를 사용하는 트럼프2.0, 트럼프3.0이 나올 것이다. 이게 향후 미국 정치의 대세이자 방향이다. ‘아메리카 퍼스트’는 당분간 강화될 수밖에 없는 시대정신이기도 하다.
 
  이른바 리버럴의 상징이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시대는 이미 저물고 있다. 입이나 머리가 아니라, 손안에 눈앞에 나타나는 ‘나만의 정치’를 열망하는 시대다. 트럼프의 정치에 찬성하는 미국인이 점점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 심화는 희망적인 일
 
  그러나 아직 희망은 남아 있다. 미국의 지식인이나 외교·군사 전문가 중에는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강한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71년째로 접어든 동맹국 한국을 희생양으로 만들 수 없고, 만들어서도 안 된다고 믿는 미국인들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한국 핵무장은 이 같은 지식인과 외교·군사 전문가들의 지지하에 이뤄질 수 있고, 이뤄져야만 한다. 트럼프가 중국·북한과의 딜에 들어간다고 해도, 핵을 갖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도 확보해낼 수 있다. 물론 한국의 핵무장이 가시화될 경우, 갖가지 제약과 봉쇄의 쓰나미가 밀려올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미국 지식인과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있는 한, 이런 고통도 오래가진 않을 것이다.
 
  이미 늦었지만, 새해 1월부터라도 트럼프 집권에 대비한 친한적(親韓的) 미국 지식인 및 외교·안보 전문가들과의 접촉을 늘려야만 한다. 서방 핵 보유국과의 교류도 필수적이다.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반(反)트럼프 미국인 및 반트럼프 서방 핵 보유국과의 협력을 통한 한반도 생존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이지만, 한반도 주변과 내부에서 벌어지는 폴리크라이시스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희망 하나가 아직 남아 있다. 심화되는 한일(韓日)관계다.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는 한국만 아니라 일본 안보에도 직격탄이 될 것이다. 모두 알고 있듯이, 문재인 정권 때의 한일관계는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 그래서 일본은 자국의 안전 확보를 독자적으로 추진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는 트럼프와의 친교(親交)를 통해, 특별하고도 독자적인 일본만의 위상을 구축해냈다. 아베가 세상을 떠난 지금 이 같은 역할을 누가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과 일본이 뭉쳐 트럼프의 공세에 맞서야 한다. 한일 우호관계는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한일이 따로 노는 순간, 치명적 피해가 한반도로 밀려들 것이다.
 
 
  생존 시험대에 선 한국
 
  폴리크라이시스 시대를 맞아 2024년 인류가 꿈꾸는 샹그릴라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아니 보다 근본적 차원에서, 과연 어떤 것들이 유토피아 자격 조건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샹그릴라가 자랑하는 무병장수는 이미 100세 시대 탄생과 함께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해도 현실은 유토피아가 될 수 없다.
 
  한국은 지구 최악, 인류 최대의 디스토피아 북한과 마주한 나라다. 북한보다 번영해 잘살고 있는 것 하나만으로도 ‘한국=유토피아’라고 자랑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면, 언제든지 한순간에 디스토피아로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밖이 아니라, 한반도 내부 전체가 폴리크라이시스 현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라다크 레의 산 정상 사원에서 접한 세상은 너무도 평안하고 조용하며 포근하다. 전부 폴리크라이시스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공간이란 점에서 21세기 유토피아라고 볼 수도 있는 곳이다.
 
  2024년 지구 전체를 뒤흔들 불안과 비극이 한층 더 심화될 것이다. 생존 능력은 척박한 현실을 통해 한층 더 발전·진화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트럼프 재등장, 나아가 중국 급추락은 한국의 생존 능력을 파악하는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다. 20세기 한국과 한국인은 시련과 위기 극복을 통해 성장해왔다. 아직 늦지 않았다. 2024년은 한국의 저력(底力)을 재확인하는 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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