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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인도의 모든 것

10가지 키워드로 읽는 인도

느리지만 큼직한 보폭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차크라(바퀴)

글 : 정인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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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흐마(창조), 비슈누(유지), 시바(파괴)의 三神을 중심으로 방대한 ‘神의 가계도’ 형성
⊙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는 인도인의 정신적 토대이자 삶의 지침서
⊙ 다양한 외래문화를 인도문화로 재창조한 ‘용광로 역사’… ‘영국은 떠나도 셰익스피어는 두고 가라’
⊙ 위계적 구분인 ‘바르나’는 오늘날 참고적 구분일 뿐, 보다 실질적인 것은 ‘태생적인 직업의 대물림’을 뜻하는 ‘자띠’
⊙ 유권자 약 9억1200만 명, 투표~개표 기간 6주… 선거 비용은 100억 달러 이상으로 미국 다음

鄭仁采
1978년생. 한국외국어대 졸업 / (주)LG 엔시스·(주)푸른기술에서 인도·중국 업무 담당 / 저서 《인도엔 인도가 없다》 《인도는 다르다!》 《인도는 이야기다》 《인도와 사람》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 인도의 선거 과정은 축제와 같다. 사진=AP/뉴시스
  “그래서 인도는 어떤 곳이냐?”는 건 인도와 연을 맺고 일관되게 받아온 질문이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간명히 해달란 주문인데, 한참 말하다가 현타(‘현실자각타임’ 혹은 ‘현실타격’이라는 의미의 유행어)가 오는 원점회귀의 질문이기도 하다.
 
  여기서 인도가 우리에게 먼 이유를 되짚어본다.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인도는 간단할 수 없다. 간단할 리 없는 인도의 키워드를 꼽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개론적 강연의 기본 메뉴일 뿐만 아니라, 탈모를 감수하며 며칠 밤새워 백 가지의 키워드를 쏟아낸 적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렵다. 모두 담기엔 넘치고, 줄이면 미진하다. 매번 아쉬움이 남는다. 인도는 반얀나무를 떠올리면 된다. 모든 것이 얽히고설켰다. “인도는 인도다”라고 해야 현답(賢答)이지만, 한 걸음 들어가면 백 가지의 키워드도 부족할 수 있다. 그래도 인도를 이야기할 기회는 늘 반갑다. 부디 이 글의 마침표 뒤에 필자의 소임을 다했길 바라며 시작해본다.
 
 
  1 답보다 공식(公式)
 
  일단 숫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자료를 보면 셀 수 없는 숫자의 향연이다. 세미나의 ‘개황’이 대표적이다. 인구가 몇억이고 GDP는 얼마며 언어와 종교는 얼마나 다양한지 나열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알 수 있는 건 복잡하단 것뿐이다. 과연 이런 곳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팀 쿡도 망설이고, 일론 머스크도 혀를 내두른다. 일목요연하게 보려는 것인데 보는 사람은 피곤함부터 느낀다. 언뜻 함부로 손대지 말란 소리로 들린다. 이래선 실전(實戰)에 무용(無用)하다. 이런 자료는 필자에게 늘 직무유기처럼 느껴진다. 숫자로 드러난 답보다 공식이 먼저다. 공식을 이해하면 답은 계산되어 나오고, 응용도 가능하다.
 
 
  2 또 하나의 물난리
  신화에서부터 출발해야
 
  그렇다면 어떤 공식부터 살펴봐야 할까. 신화(神話)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해제(解題)의 단서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신화는 현실과 동떨어진 흥미 거리로 보인다. 그러나 인도는 좀 다르다. 신화도 역사다. 우리는 인도(인디아)라고 부르지만 현지에서 인도는 ‘바라트’다. ‘바라타’에서 유래한 말로 아득한 고대(古代)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만 봐도 인도가 계보의 시작점을 어디에 두는지 알 수 있다.
 
  인도 탄생 신화 또한 물난리로 시작한다. 마누가 물고기(마치야)의 보은(報恩)으로 방주(方舟)에 올라 대홍수에서 살아남고, 지금의 히말라야에 닿아 현 인류의 조상이 된다는 것이다. 인류의 반쪽인 여성을 빚어내고, 현자(賢者)들과 함께 인류 사회를 재건해 나간다. 여기까지 익숙한 레퍼토리다.
 
  그런데 이때 《마누법전》이 등장한다. 여기서 브라만(사제와 학자), 크샤트리아(왕족과 무사), 바이샤(상인), 수드라(그 외) 등 사성(四姓) 계급으로 나누는데, 때문에 간혹 마누를 카스트의 원흉(元兇)이라며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엔 공동체 구성원의 역할 구분이었다. 아무튼 《마누법전》으로 신화는 역사가 된다. 마누는 신화가 아닌 역사적 존재로 기억되고, 인도인들은 스스로를 마누의 후손으로 여긴다.
 
 
  3 입담의 시작
  아리아인들의 이주와 ‘神들의 보직 이동’
 
  인도가 신화부터라면, 어느 시점부터 누군가 사람들을 모아놓고 썰을 풀기 시작했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서 아리아인의 이주를 주목할 만하다. 원주민이 점거했던 인도 땅에 그들이 들어왔다. 단기간의 극적인 사건이라기보다는 장기간에 걸친 일이었는데, 이때의 단서를 제공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오랜 문헌으로 꼽히는 《리그베다》다. 이는 아리아인이 인도에 정착(10개 종족, 10명의 왕이 펀자브 일대에 정착해 토착 문명과 투쟁)하는 과정을 역사적 배경으로 당대의 사회·문화적 면모를 종교적 찬가(讚歌)로 표현한 모음집이다. 경전인 동시에 사료(史料)다. 이때 벌써 소(특히 암소)가 귀했고, 옷을 만들거나 금속과 가죽을 가공했다. 마차를 만드는 목수도 존재했다. 소는 일당백의 노동력이었고 소젖은 귀중한 생계의 수단이었으며, 마차의 기동력은 아리아인이 원주민보다 우위에 섰던 기술이다. 마차의 바퀴(차크라)는 오늘날 인도의 상징(국기, 국장)이다.
 

  《리그베다》에 묘사된 신(神)의 ‘보직 이동’은 흥미롭다. 원주민과 투쟁하던 시대엔 바루나(윤리의 신)와 인드라(전쟁의 신, 비의 신)가 다툰 끝에 인드라가 우위에 섰고, 그 시기를 지나 정착하고 농경문화로 무게중심이 넘어가자, 치수(治水)의 중요성과 더불어 인드라가 신들의 왕이 된다. 마찬가지로 아그니(불의 신)도 중요하게 여기는데, 자연신이 주를 이룬 것은 인간이 자연의 힘에 크게 좌지우지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아직 오늘날의 인격신(人格神)과 화신(化神·아바타르) 사상이 등장하기 전이다. 훗날 점차 인간이 자연을 극복하며 그 주도권은 자연신에서 인격신으로 옮겨간다.
 
  한편 종교는 소수(少數)의 이주민이 권력을 점하는 수단이었다. 제사에 관한 지식을 가진 사제(司祭)와 학자 계급이 이를 독점하며 지위를 유지했던 것이다. 지식은 암송되어 구전(口傳)으로 전해졌다. 그래서 암기력이 좋고 입담도 세다. 대개 기원전 1500년경 등장한 것으로 보는 《리그베다》가 처음 활자화된 건 15세기 무렵이었다. 이는 인도 종교, 역사, 철학, 문학 등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는 점에서 옥새를 참으로 오랫동안 움켜쥐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4 神 세계
  신앙은 인기 순이다
 
파괴의 신 시바는 인도의 여러 신 가운데 가장 인기가 있는 신이다.
  그러는 사이 숭배하는 신은 많이 불어났다. 흔히 인도엔 3억의 신이 존재한다는데, 역시 숫자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크게 브라흐마(창조), 비슈누(유지), 파괴(시바)의 삼신(三神)을 중심으로 보면, 분업화(分業化)된 삼신은 인격신으로 그 처(妻)가 되는 여신들과 자식을 두고 그 자식 또한 숭배한다는 의미다. 또 신은 화신(아바타르)으로 재림하고, 여기에 지역마다 같은 신을 다르게 모시는 것까지 포함해 방대한 ‘신의 가계도(家系圖)’를 이룬다. 마블도 울고 갈 멀티버스의 세계관이다.
 
  워낙 인간적인 신들이라 신화 속에서 자기들끼리 서로 더 위대하다고 싸우는데, 신자들도 각기 여러 종파로 나뉜다. 주목할 점은 신들도 인기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창조는 위대하지만 일단 태어나면 그만이다. 한 번으로 족하다. 반면 파괴는 곧 재생을 의미하니 죽음 뒤 내세를 기원하는 입장에서 파괴의 신(시바)이 인기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신앙은 인기 순이다. 특히 비슈누는 화신 사상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마누의 물고기(마치야)에서 시작해 심지어 붓다까지 비슈누의 화신으로 본다. 워낙 출중한 신이니 여러 시대에 걸쳐 다채로운 연애사로도 회자되는데, 무엇보다 대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타》에서 활약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대서사시 《마하바라타》는 인도인들의 삶의 지침이다.
  먼저 《라마야나》는 람의 일대기다. 이복(異腹)형제와의 대립을 피해 스스로 유배를 떠난 람이 불의(不義)에 맞서 정의를 구현한 뒤 이상적(理想的)인 왕이 된다는 내용이다. 람은 곧 비슈누의 화신이다. 한편 《마하바라타》는 바라타족의 사촌지간(판두족과 카우라바족)에 분쟁이 일어나는데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내용이다. 이때 정의의 편에서 승리를 돕는 조력자가 크리슈나다. 그 역시 비슈누의 화신이다. 《마하바라타》의 일부이자 그 정수(精髓)로 꼽히는 《바가바드기타》에서 크리슈나는 골육상잔의 비극을 앞두고 갈등하는 주인공 아르주나에게 조언한다. 요약하자면 “주어진 의무를 다하라. 마음 아파도 해야 할 일은 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대서사시는 모든 인도인이 태어나 평생 동안 듣고, 보고, 읽고, 흠모하며 외는 것이다. 정신적 토대를 이루고 삶의 지침서로 삼는다. 지대한 영향력이다. 가령 인도 남성들은 다들 람을 외친다. 그만큼 완벽한 남편, 형제, 군주가 하나로 집약된 이상적 인물상이다. 그런데 람은 하나이자 여럿이기도 하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시간대에 걸쳐 등장했는데, 아무리 람이라도 ‘벤자민 버튼’처럼 시간을 거스를 순 없으니 결국 오랜 역사 속 위인을 대체로 람에 수렴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라고 람이 되지 말란 법은 없다.
 
  인격신들인 만큼 에피소드는 차고 넘친다. 시바신의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하나같이 사랑받는 이야기들인데, 그렇게 회자(膾炙)되는 신들은 인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바닥, 벽, 길모퉁이, 하물며 무심코 스치는 나무 밑동에도 신상이 자리해 있다. 그야말로 신의 세계인 것이다.
 
 
  5 용광로 사(史)
  아리아인의 침공에서 영국 식민지배까지
 
  이제 기록된 역사로 넘어간다. 신화를 통해 정신을 보았다면, 역사를 통해 오늘의 인도가 보인다. 오늘날 인도는 거대한 집합체다. 서로 이질적인 요소로 가득하지만 하나다. 긴 역사를 통해 지난한 과정을 겪으며 외부의 무수한 자극을 받았음에도 인도라는 큰 솥 안에서 알맞게 버무려진 결과다. 때문에 오늘의 인도를 알고 싶다는 건 용광로와 같은 지난 역사를 돌아보는 일과 다름없다.
 
  아리아인의 이주가 어떤 기반을 마련했는지는 이미 소개했는데, 인도가 외부로부터 맞이한 ‘충돌’은 그게 시작이었을 뿐이다. 아라비아 상인들을 통해 인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서쪽에 알려졌다. 알렉산더의 꿈이 그곳을 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가 동진(東進)하며 동서가 융합된 문화가 발아했다. 정복은 실패로 끝났고 알렉산더의 꿈은 무산되었지만, 인도 문화는 더 풍성해졌다. 신상을 즐겨 만드는 버릇도 이때 생겨났다. 또 누군가는 알렉산더처럼 정복과 통일을 꿈꿨다. 그 꿈이 곧 최초의 통일 왕국인 마우리아 왕조로 실현된다.
 
  술탄들도 수시로 인도를 넘봤다. 처음엔 인도의 부(富)를 쫓아왔다가 점차 자리를 잡았는데, 이는 결국 무굴제국의 시대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도를 이슬람화(化)할 순 없었다. 억압과 회유로 개종을 종용했고, 기존 계급 사회에서 탈피하려는 사람들이 호응했지만, 기본적으로 저변에 인도 문화를 공유하는 인도 무슬림이 된다.
 
  식민지 시대도 겪었다. 오늘날 사회 시스템은 영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다. 서구 문화와 교육이 유입되었고 영어를 쓰게 되었다. 당시엔 영국에서도 문학을 배우진 않았는데, 인도에선 영문학을 가르쳤다. 기독교도 전파되었다. 다만 그 또한 인도라는 우주에 수렴되었다. 가령, 차 재배 기술과 문화가 들어오며 차이 문화가 탄생했으나, 고상한 다도(茶道) 대신 골목에서 탕약처럼 끓여낸 일상 음료이자 ‘바카스’로 진화했다. 영화도 그랬다. 여러 가지 장르가 혼합되고 춤과 노래가 가미된 마살라(향신료) 영화가 되었다. 영국에 대한 인도인의 자세를 잘 표현하는 말이, ‘영국은 떠나도 셰익스피어는 두고 가라’는 것이다. 이 밖에도 크고 작은 충돌이 응집된 결과물이 지금의 인도다. 특별한 점이라면 뭘 새로 얻었다고 원래의 성격이 바뀌진 않았다. 섞어찌개와 달리 만 개의 레시피가 있으면 만 개의 요리가 나왔다. 이것이야말로 인도 문화의 본질이 아닐 수 없다.
 
  신화처럼 파란만장한 역사의 에피소드 또한 풍부하다. 칼링가를 정복하고 불교에 귀의한 아소카, 무굴제국의 삼대(시조 바부르, 위태로운 제국을 수성해낸 후마윤, 전성기를 연 아크바르), 이에 대항한 술탄과 라자들, 그리고 그 왕비에 얽힌 무협과 로맨스로 넘친다. 어두운 과거지만, 식민지 시대의 후과(後果)를 돌아보는 것도 현재의 이슈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열쇠다.
 
 
  6 다양성의 대식가
  다양한 언어와 종교, 공존의 시험장
 
  이제 다양성을 말할 차례다. 먼저 인도는 남과 북이 다르다. ‘충돌’의 직접 영향권이었던 북인도와 달리, 남인도는 지리적으로 외부의 영향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고, 토착 문화가 잘 보존된 형태로 발전하며 북인도와 구별된 역사를 써내려 왔다. 남쪽으로 갈수록 인종도 확연히 구분된다. 기골이 장대한 북인도와 달리 남인도는 토착민의 모습 그대로다. 겉모습도 그렇지만, 언어야말로 그 차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원주민인 드라비다 계통과 아리안 계통의 언어가 각기 발전해 지금에 이른다(전체 800여 개 언어로 헌법상 지정 언어 22개, 인구 10만 명 이상 사용 언어는 216개). 하지만 난감해할 만한 일은 아니다. 대개의 경우 힌디어와 영어로 통하고, 그다음은 특정 지역에 깊이 접근해야 고민할 일이다.
 
  한편 인도는 종교 공존(共存)의 시험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근간이자 주류를 이루는 힌두교(80%), 인도에선 이인자지만 세계적인 신자 수의 이슬람교(14%), 힌두교보다 엄격한 자이나교, 힌두교와 이슬람교를 절충한 시크교, 인도에서 창시되어 세계로 뻗어나간 불교(각 1~2%), 식민지 시대에 들어온 기독교 등이 널리 분포해 있다. 여기에 다신(多神) 숭배의 힌두교가 지역마다 또 얼마나 변화무쌍한 모습일지는 상상에 맡긴다.
 
  인도엔 긴 시간의 흐름이 공존한다. 람이 여기저기 ‘타임 슬립’한 탓인지,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눈앞에 혼란스럽게 펼쳐진다. 혹자는 이런 모습을 보고 구습에 얽매여 변화가 더딘 곳이라지만, 그 말이 반드시 옳진 않다. 과거에 현재를 더해 미래를 모색한다는 면에서 인도는 유연하다. 다만 느리다. 느리지만 큼직한 보폭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차크라(바퀴)다. 내심 좀 서두르면 좋겠지만, 어디든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다.
 
  이처럼 다양성을 취하며 지불한 대가도 만만치 않다. 종교, 종파 간 갈등과 분쟁 등 오늘날 인도가 현재 진행형으로 겪는 문제는, 다양성 폭식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증상과 같다. 늘 표면에 드러나는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악용, 악화될 여지가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7 계급 우주관
  카스트가 아니라 ‘바르나’와 ‘자띠’다
 
  다음으로 인도는 계급의 우주다. 흔히 카스트라고 부르지만, 카스트는 원래 인도 말이 아니다. ‘카스트’는 포르투갈어로 동식물의 종(種) 내지 사람의 부족, 인종, 계급, 종족을 의미하는 카스타에서 비롯되었다. 그 문화에 대한 몰이해로 서구인들이 편의적으로 붙인 이름이다. 간혹 ‘계급’이라는 말 자체로 이미 그 의미를 속단하는데, 사실 인도엔 우리가 아는 계급이 없다. 그러면 지금 인도의 계급은 무엇인가. 앞서 언급했듯 고대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구분한 것에서 기원한 것이다.
 
  인도의 계급은 바르나(색, 계급)와 자띠(태생적 직업)로 정의할 수 있다.
 
  바르나는 위계적 구분이다. 곧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사성 계급인데, 바르나 밖에 머무는 것이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다. 다만 오늘날은 참고적 구분일 뿐이다.
 
  보다 실질적인 것은 태생적인 직업의 대물림을 뜻하는 자띠다. 한 마을에 20~30종, 인도 전체적으로 2000~3000종에 이르는데, 이는 현대에 이르러 산업의 변화, 직업의 세분화와 함께 더욱 확장된다. 간단히 비유하면 패밀리 비즈니스다. 가령 인도 영화계에서 ‘카푸르’라는 성씨를 검색해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 배우나 제작자다. 이로 볼 때, 인도의 계급은 ‘14억 인구의 인적(人的) 지도’와도 같다. 상대의 이름만 들어도 어느 지역에서 무엇을 해온 집안 출신인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계급 간 이동의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다. 심부름을 하며 차(茶)를 나르던 소년이 유력 정치인이 되고, 반대로 브라만 출신이라도 경제적으로 몰락해 변변찮은 일을 하기도 한다. 다만 어느 정도 틀 안에 머문다는 의미다. 태생적 환경이 대물림되며 계급 간 이동의 허들이 높은 건 사실이다. 슬럼가의 하층민일 경우, 가난으로 교육의 기회를 버리고 이른 나이에 생업에 뛰어들기 마련이다. 드라마틱한 인생의 반전(反轉)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또 그러한 환경일수록 아이를 많이 낳는데, 머릿수는 곧 노동력이다.
 
  한편 인도인은 마누의 후손, 본질은 달라져도 그 계급이란 태초부터 사회에 뿌리내린 것이다. 잘못되었다며 당장 타파해야 한다는 논리가 통할 수 없다. 법적인 조치라면, 카스트에 의한 차별은 1947년 이후 이미 금지되었다.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 왔다. 가령 하층 계급에게 주어진 할당제를 들 수 있는데, 보완 장치가 생기면 이를 보완하는 편법도 기승을 부리는 법. 그 혜택을 얻기 위해 스스로 하층 계급임을 자칭하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때문에 법과 제도만으로 근원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지만 천천히 체득해 나갈 일이다. 스스로 희생하고 역할 밖의 일도 돕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라면, 인도인 입장에선 역할 침범이다. 내 일을 뺏는다고 보거나 모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무직원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면 기피한다. 청소나 짐을 나르는 인부도 각각이다. 자본주의니까 비용을 지불하면 역할에서 벗어난 일을 맡기도 하지만, 그걸 계기로 더한 것을 요구할 수 있다. 파업이 일어날 수도 있다. 메시지의 전달도 적절한 과정을 거치는 편이 좋다. 솔선수범 앞장서는 일은 생각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다.
 
 
  8 인생 여행자들의 원픽
  ‘인생 4단계’를 여행하는 순례자
 
갠지스 강변의 성지 바라나시. 한편에서는 강물에 몸을 담그는 사이에 다른 한편에서는 화장을 한다. 사진=배진영
  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좀 편안한 이야기를 해보자. 인도의 다양성은 동시에 카오스다. 모든 걸 빨아들여 혼란하다. 다만 그래서 여행자에게만큼은 인도가 축복의 땅이다. 가자마자 다신 오지 않겠다고 공언하지 않는 이상, 인도는 한 번만 맛볼 수 없다. 전국이 성지(聖地)이자 순례지고, 곳곳에 아름다운 유적이 즐비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유적을 찾아가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멋진 말이 있지만, 인도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 가는 곳마다 볼거리,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쉬운 예로 아그라 타지마할의 정원을 거닐며 이런 이야기를 떠올릴 것이다. 무굴제국의 황금기, (많은 왕비 중에) 사랑하는 왕비를 잃은 황제는 많은 이의 희생을 담보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세웠다. 그러나 그 후과로 아들에게 유폐되어 멀찍이 성에 갇힌 채 남은 세월을 무덤만 바라봐야 했다. 알고 갈수록 여행의 풍미는 더한다.
 
  유적 탐방이 다는 아니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동서양을 막론한 인류의 다양한 문화를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곳은 또 없다. 북쪽과 남쪽이 다르고, 동쪽과 서쪽도 다르다. 고산 지대에서 내려와 사막을 돌아 평야와 강, 바다를 두루 살피는 사이, 세상은 넓고 가본 곳은 적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낯선 풍경 속에 수시로 글자가 바뀌며 다채로운 사람들과 조우하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백미다. 모두 섭렵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평생 다녀도 다 보지 못한다. 달리 말하면, 여행이야말로 인도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젊으면 젊어서 나이가 있으면 나이가 있어서 빠져든다. 순례자는 순례자라서 의미 깊다.
 
갠지스 강변의 성지 바라나시. 바라나시는 ‘파괴의 신’ 시바의 도시이다. 사진=배진영
  인도 사람들 자체가 워낙에 타고난 여행자다. 흔히 인도인의 이상적인 삶은 ‘인생 4단계’로 요약된다. 첫째는 수습기(브라마차르야)로 태어나 배우고 학습하며 성장하는 시기, 둘째는 가주기(가르하스타)로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돌보며 세속적인 성취를 이루는 시기, 셋째는 임서기(바나프라스타)로 가업을 물려주고 은퇴해 내면의 자아를 성찰하는 시기, 넷째는 유행기(산야사)로 부부마저 헤어져 득도(得道)의 길을 걸으며 진리를 깨우치는 시기다. 아직 2단계조차 마스터하지 못한 필자의 입장에선 인도인 인생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대개의 삶보다 한두 수 위의 과업이 인도인들의 생에 부여된 셈이다.
 
  인생 여정의 종점이 다시 수행 길로 이어지니, 인도인들은 곧 순례자다.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성지 순례를 꿈꾼다. 스스로 못 가면 대리를 보낸다. 그리고 죽어서라도 그곳에 가 육신을 태운다. 대표적인 성지인 바라나시에 가면, 강가(갠지스)강 한편에 무수한 인파가 모여 몸을 담그는 사이, 다른 한편으로 화장터의 매콤한 연기가 타오른다. 거기서 태운 시신은 강 위를 떠내려간다. 장작은 가진 만큼이라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떠내려간다. 놀라지만 말고 마침 파괴의 신을 떠올리면 좋다. 바라나시는 시바의 도시고, 파괴는 곧 재생. 눈앞에서 생의 한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이다.
 
 
  9 춤추는 영상 교재
  발리우드 드림
 
  다채로운 이력을 가진 만큼 오늘날 인도의 문화는 풍요롭다. 다만 종교 예술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그래도 영화만큼은 대중성이 있다. 물론 영화 또한 전통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춤과 노래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제사 의식에서 시작된 전통 무용과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다만 MTV와 할리우드의 영향도 받았다. 그것이 특유의 형태로 발전했다.
 
  인도 영화는 그간 큰 발전을 이뤘다. 언어 지역별로 각기 고유한 시장을 형성했는데, 힌디와 영어권 영화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발리우드 영화’로 전국구다. 다른 지역별 영화 시장도 매우 커 전국적으로 연간 1000여 편이 넘게 제작되고 연간 관객 수가 12억 명에 달하는, 세계적인 영화 시장이다. 상업적 성공은 물론, 일찍이 유수의 영화제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아 왔다. 최근에도 시대 액션극인 〈RRR〉이 오스카 주제가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소비 능력 등을 고려할 때, 영화는 인도를 대표하는 대중문화다. ‘발리우드 드림’이라고 하듯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배우는 선망의 대상을 넘어 사회 명사로 영향력을 끼친다. 대중가요 역시 영화의 주제가에 거의 준한다. 개봉에 앞서 음악을 공개해 흥행몰이를 한다. 종교적으로 금욕적인 삶을 추구하는 인도인들이 결코 놀 줄 모르는 게 아닌데 그 흥은 영화관에서 제대로 발산된다.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추는 관객들을 볼 수 있다.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된 영화는 인도를 읽을 수 있는 영상 교재다.
 
 
  10 최고의 가능성을 지닌 최대의 민주주의
  더디지만 단단한 변화 이끌어낸다
 
  인도의 저력은 선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의원내각제로 5년마다 직접 선거를 통해 하원의원을 선출하는데, 정말 ‘억’ 소리 나는 규모다. 2019년 총선을 기준으로 약 9억1200만 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투표에서 개표까지 6주에 걸친 장기 레이스다. 선거구는 543개, 등록 정당은 2293개, 후보는 약 8000명으로 관리 인원만 약 1000만 명에 달하는데, 선거 비용은 100억 달러 이상으로 미국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선거를 치른다.
 
  현지에서 느끼는 열기는 더 대단하다. 구름 같은 인파가 유세 현장에 쏟아져 나오고, 곳곳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결과가 나오면 유권자들이 차량에 매달린 채 승리의 깃발을 휘날린다. 마치 축제와 같다. 열악한 환경에 지쳤다가도 그 광경을 목격하면 새삼 인도라는 곳의 힘을 믿게 된다. 최고는 아니지만, 최고의 가능성을 지닌 최대의 민주주의다.
 
  인도의 인구는 중국을 추월했다. 중국은 세계 공장의 지위를 잃을까 봐 걱정이지만, 같은 인구수라도 유권(有權)의 인도인들이 가진 저력은 다르다. 관상으로 치면, 다소 더디지만 단단한 변화를 이끌어낼 상이다.
 
 
  인도는 삼세번이다
 
  인도는 삼세번이란 말로 글을 맺는다. 처음 가서 감탄하고, 그걸 잊지 못해 다시 갔다가 진득한 현실과 마주하고, 그다음에 가서야 비로소 진면목과 마주한다는 인도 여행자들의 속언이다. 필자는 삼세번을 인생 여정으로 삼아왔다. 우연히 ‘인도’라는 낱말을 본 뒤, 반신반의한 마음에 발을 디딘 것이 계기였다. 배우고 경험하는 사이 깊어진 관심은 생업으로 이어졌는데, 녹록지 않았다. 가능성과 제약 사이를 저울질하다가 물러서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기회가 왔고 인도라는 관념을 실체로 만들었다. 그 환희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지속은 또 다른 숙제, 계속 인도여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야 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인도에 입문한 이후 지금에 이르는 시간을 돌이켜 보았다. 어느덧 25년이 좀 넘었는데, 역시 삼세번이란 생각이다. 대수롭지 않은 한 인간이 성패를 떠나 끊임없이 인도를 지향한 행적이다.
 
  혹자에게 인도는 한 번이다. 가서 된통 당하고 다시는 찾지 않는다는 말이다. 아니다 싶으면 서둘러 발을 빼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그래서는 영영 인도를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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