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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력특집·인도의 모든 것

‘인도 전문가’ 오화석 인도경제연구소장이 보는 2023년의 인도

“사회주의 중국보다 개인 자유 중시하는 인도가 경제 탄탄해”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hych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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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대인을 능가하는 아랍상인, 아랍상인 뺨치는 인도상인’이 원동력”
⊙ “인도 경제 개방 이후 한국이 선점한 시장 일본에 뺏겨”
⊙ “카스트 차별 운운하면 지식인층 사이에서는 오히려 웃어… 미국에서의 흑인 차별과 비슷한 수준”
⊙ “네루대학 한국어학과 정원 30명, 10만 명 몰려… 3300대 1의 경쟁률 기록”

吳華錫
한국외대 스페인어학과 졸업. 한국외대 정치학 석사. 美 하와이대 경제학 석ㆍ박사 / 한국일보 기자, 매일경제 차장, 인도 네루대 국제학부 객원교수, 아시아개발은행(ADB) 인도 컨설턴트 역임. 現 배재대 글로벌교육부 교수ㆍ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원장ㆍ인도경제연구소 소장 / 저서 《슈퍼 코끼리 인도가 온다》《부자들만 아는 부의 법칙》《사리 속치마를 벗기다》《100년 기업의 힘, 타타에게 배워라》《마르와리 상인》《무너진 정의》 외 다수
  “일본은 인도의 여러 분야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한때 인도 시장을 먼저 선점했는데 요즘 일본 기업에 뒤처진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오화석(吳華錫) 배재대 글로벌교육부 교수가 말했다. 미중(美中) 갈등으로 인해, 또 중국을 넘어선 인구를 보유하게 된 인도에 전(全) 세계가 주목하는 시점에서 오 교수의 말을 귀담아들을 법하다. 국내에 몇 안 되는 인도 전문가인 오 교수를 7월 10일에 서울 강남구 양재동에서 만났다. 《매일경제》에서 근무하던 2000년에 ‘인도 IT 사업 발전상’을 국내 언론 최초로 기획 특종 보도한 것이 계기가 돼 인도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인도 네루대 객원교수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인도 전문 컨설턴트를 지냈다. 이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글로벌경영전략연구원 원장, 인도경제연구소 소장을 함께 맡고 있다.
 
 
  일본 5000개 vs 한국 800개
 
  “2010년대까지만 해도 인도에 진출한 일본 기업 수는 300여 개, 한국 기업은 350여 개였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돼 2020년을 기준으로 일본은 5000개가 넘는 기업이 인도에 진출했는데 우리는 800여 개뿐입니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이 베트남에 진출한 사례는 9000개가 넘습니다.”
 
  ― 인도가 개방했을 때는 우리가 훨씬 공격적으로 진출했군요.
 
  “인도는 1991년에 본격적으로 경제를 개방했는데 우리 기업은 1990년대 중후반이라는 이른 시기에 진출했습니다. 인도가 주목받는 곳이라고 해서 진출했는데 막상 가보니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고, 길거리에 빈민들이 넘쳐나는 모습이었을 겁니다. 대기업은 이후 지속적으로 인도에 투자했지만 일부 기업은 철수만 하지 않은 채 근근이 인도 사업을 유지한 측면이 있습니다.”
 

  ― 일본은 달랐나요.
 
  “일본은 지난 10여 년간 인도 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대탈출했습니다. 2005~2006년 즈음에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인도를 방문했을 때 길거리에 온통 한국 제품이 널려 있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으로 돌아가서 ‘잠재력이 큰 인도 시장에 기업들이 진출해야 한다’며 일본의 게이단련, 기업인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때부터 일본 기업들이 인도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우리 기업이 인도 시장에서 우위를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 기업인들이 우리 기업을 부러워할 때였죠. 우리 기업인들이 일본 사람들에게 ‘우리는 비즈니스를 하러 온 가족이 함께 인도로 건너온다. 너희(일본)는 혼자 오는데 어떻게 목숨 걸고 인도 시장에서 덤비겠느냐’며 우스갯소리를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인도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FDI)를 보면 일본이 우리보다 15배 큽니다. 인도가 한창 뜨는 상황에서 우리보다 일본 기업이 많이 인도에 진출한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영연방 올림픽 계기로 국가 리노베이션
 
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5월 20일, 히로시마 한 호텔에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한·인도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우리는 2010년에 인도와 포괄적경제협정(CEPA)을 체결했기 때문에 그 시기 이후 교역이 늘었어야 하는데요.
 
  “처음에는 양국 간 기업이 빠르게 늘었다가 2016년 즈음부터 지지부진해졌습니다.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의 양허 수준이 일본에 비해 불리했던 측면도 간과할 수 없지만, 인도에 대한 우리 기업인들의 부정적 인식이 주효한 원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도가 덥고, 지방분권 국가라 의사 결정이 늦다는 등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동남아는 접근성이 좋은데 인도는 왠지 멀게 느껴지는 심리적인 부분도 작용했을 것이고요. 그러다 보니 굳이 인도까지 가서 사업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이 있었다고 보입니다.”
 
  오화석 교수는 인도 인프라 개선의 터닝포인트 때를 2010년 인도에서 열린 영연방 올림픽 당시로 꼽았다. 1990년과 1994년의 영연방대회 개최 후보지 경쟁에 나섰다가 연거푸 패배의 잔을 마셨던 인도는 2003년에 자메이카에서 개최된 영연방대회 연합 총회에서 초대 대회 개최지인 캐나다 해밀턴을 제치고, 2010년 개최지로 뽑혔다. 인구 네 명 중 한 명이 빈곤층일 정도로 세계에서 빈곤층이 가장 많은 국가 중 하나인 인도는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으며 인도에 대한 대대적 리노베이션에 나섰다.
 
  “1990년대나 2000년대 초 인도를 방문한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2010년을 전후해 인도가 바뀌었습니다. 주요 도시 건물, 공항, 인프라가 새롭게 깔렸습니다. 국가 자체가 대거 리모델링이 된 셈이죠. 덕분에 뉴델리공항은 ‘2014년 세계공항서비스 평가’ 중형공항(연간 승객 2500만~4000만 명 이용) 평가에서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 요즘도 여전히 인도의 SOC 사정이 나쁘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선진국 문턱에 오른 우리나라 잣대로 보면 당연히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개발도상국인 인도는 매년 많은 예산을 인프라 개선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 수도인 뉴델리 상황이 아직도 열악하다고 하는데, 뉴델리 대부분 지역은 3~4층 이하로 건축해야 한다는 고도제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구르가온을 비롯한 뉴델리 인근 도시가 빠르게 발전하는 것이죠. 인도의 발전상을 보고 싶다면 아무래도 고층 건물로 스카이라인이 급변하는 경제수도 뭄바이에 가 보아야 맞지 싶습니다.”
 
 
  마르와리 상인
 
대표적인 마르와르 출신인 아르셀로미탈스틸의 락시미 미탈 회장. 사진=조선DB
  ― 인도의 성장 가능성은 여전히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시지요.
 
  “중국을 넘어선 인구, 10년 넘게 6~7%대를 유지하는 경제성장률, 인도 정부의 의지, 스타트업 생태계, 한국에 우호적인 인도인들의 습성 등은 이미 많은 분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저는 인도가 가진 상인들에 포커스를 맞추고 싶습니다. 오늘날 인도의 기업을 일군 사람들은 과거 카스트 제도에서 세 번째 계급이었던 바이샤(Vaishya·상인) 출신이 많습니다. 인도 20대 대기업 소유주 가운데 바이샤 출신이 15명입니다. 예전부터 가장 장사를 잘하는 사람은 유대인이고, 유대인을 능가하는 사람은 아랍상인, 아랍상인을 뺨치는 사람은 인도상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도상인들은 본능적으로 숫자에 강하고,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하며, 밤낮없이 일하고, 장사에 감각이 있습니다. 이들이 인도 경제를 받치는 한, 인도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 인도인들이 그렇게 장사에 능한지 몰랐네요.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는 1947년 독립한 이후 1991년까지 폐쇄적 경제체제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업 수완이 뛰어난 상인들이 마음껏 비즈니스를 할 수 없었고, 유대인의 장사 능력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인도의 상인 중 마르와리 상인의 영향력은 경쟁자인 구자라티 상인과 더불어 독보적입니다. 세계 최대 철강회사인 아르셀로미탈스틸, 인도 최대 글로벌 기업인 아디티야비를라, 세계 3위의 정보통신서비스 기업인 바르티에어텔, 인도 최대 신문사인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 최대 TV 방송사인 ZeeTV, 최대 민간항공사인 제트에어웨어 등 상인 카스트 출신이 소유한 15개 대기업 중 마르와리 상인이 소유한 기업이 9개나 됩니다.”
 
  ― 어마어마한 세력이군요.
 
  “마르와리는 인도의 황량한 사막 지역인 라자스탄에 있는 작은 마을 마르와르 출신의 상인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시장의 흐름을 재빠르게 간파하는 판단력, 야수처럼 저돌적인 투자, 위험을 무릅쓰는 창업을 통해 엄청난 성공을 거뒀습니다. 마르와리를 비롯한 이들 상인 출신 기업인의 ‘기업가 정신’이 오늘날 인도 경제를 견인하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으로서는 이런 상인들이 인도에 포진해 있다는 것이 굉장한 이점이고, 동시에 인도와 원활히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기업은 창조자인 동시에 파괴자”
 
  오화석 교수가 쓴 《마르와리 상인》에는 가업(家業)인 양복 제조업을 하다 인도 유통 황제가 된 신생 퓨처 그룹 키쇼르 비야니 회장의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비야니 회장은 명문학교 출신도, 외국에서 공부한 적도, 탄탄한 사업 자금도 없이 오늘날 회사를 유통그룹으로 키워냈다. 《월스트리트》가 보도한 그의 ‘혼란 마케팅’ 중 일부다.
 
  〈비야니 회장이 뭄바이의 한 빅바자르 매장을 예고 없이 방문했다. 매장은 난장판이었다. 비좁은 통로 옆에 상품들이 정돈되지 않은 상태로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진열대에는 흘러넘친 밀과 콩 등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신선한 야채로 채워져 있어야 할 채소 코너엔 거무튀튀하게 썩은 양파가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쇼핑 매장을 이런 식으로 유지하면 경영자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비야니 회장의 반응은 달랐다. “지시한 대로 잘하고 있구먼.”〉
 
  처음 매장을 열었을 때는 이런 마케팅 전략이 아니었다. 달콤한 음악이 나오고, 통로 또한 널찍하게 월마트를 인도에 옮겨놓은 것처럼 운영했다. 한데 손님들은 매장 구경만 할 뿐 물건을 사지 않았다. 비야니 회장은 인도 소비자의 55%인 운전사, 가정부, 요리사, 보모 등에 집중했다. 이들은 재래시장 분위기의 속 편한 가게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매장을 뒤죽박죽 섞어버렸다. 매출은 빠르게 늘어났다.
 
  비야니 회장은 2007년 자서전 《인도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업가는 창조자, 현상유지자, 파괴자가 있다. 내 아버지는 인도의 대다수 기업인이 그렇듯 현상유지자다. 나는 자신을 창조자인 동시에 파괴자라고 생각한다. 현상유지란 내 사전에 없다. 끊임없는 변화와 성장이 모든 기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만약 기업이 변화하고 발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업이 아니다.”
 
 
  “가장 인기 있는 神은 ‘돈의 神’”
 
  ‘인도상인들에게 특유의 DNA라도 있는가’라는 질문에 오화석 교수는 자신의 저서 《100년 기업의 힘, 타타에게 배워라》에 쓴 내용으로 답했다. 인도 최대 기업인 타타그룹 회장 라탄 타타의 일화다. 그는 1991년부터 20여 년간 타타그룹을 이끌고, 2012년에 만 75세로 은퇴했다. 인도를 대표하는 비즈니스 거장의 퇴장이었다. 뭄바이에서 고등학교를 마친 그는 건축학을 전공하기 위해 미(美) 코넬대로 유학을 떠났다. 인도 대재벌 집안의 자제였지만,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는 내내 접시 닦기 등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란다. 그는 1962년에 타타스틸에 발령받았을 때 노동자들과 뒹구는 것으로 업무를 시작했다.
 
  〈철강 생산 현장에서 그는 철강 노동자와 함께 일하며 철광석을 지어 나르기도 하고 뜨거운 용광로를 관리하기도 했다. 일종의 경영 수업이었지만 그는 블루칼라 노동자와 몸을 부대끼면서 그들의 삶을 이해했다. 보통 후계자 수업은 경영기획실 등 핵심부서에서 일하지만, 그는 맨 밑바닥 노동자와 똑같이 일했다. 이런 경험은 이후 최고 경영자가 돼서도 노동자와 소통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오화석 교수는 “마르와리 공동체는 자식에게 비즈니스를 가르치기 위해 현장에서의 살아 있는 사업 교육과 훈련을 강조한다. 이들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의례적 정규 교육보다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용 교육에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요즘 인도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신은 ‘돈의 신(아르트·Arth)’이라는 말이 있다”며 웃었다.
 
  “마르와리 상인을 비롯해 인도의 바이샤 계층이 인도 경제를 떠받치는 것처럼 인도의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돈은 매우 중요합니다. 요즘 인도인들의 최대 관심사는 돈 많이 버는 것, 좋은 학벌을 가지는 것일 겁니다. 인도에는 3억3000만 명의 신(神)이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중에서도 단연 ‘돈의 신’이 인기가 좋습니다.”
 
  ― 돈, 학벌이 최고인 세상에 카스트 제도를 운운하는 것은 너무 촌스러운 건가요.
 
  “카스트 제도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대신 1950년대에 차별금지법이 생겨서 유명무실해졌습니다. 금지법이 생겼음에도 1970년대까지 사회의 70~80%가 카스트 차별(불가촉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조사가 있습니다. ‘하층민과 같이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식(式)으로요. 하지만 오늘날은 ‘인도 내에서 카스트로 인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믿는 비율이 과거와 정반대로 20~30%에 불과하다는 설문 결과가 많습니다. 카스트 차별을 운운하면 지식인층 사이에서는 오히려 웃습니다. 이제 인도에서 카스트 차별은 미국에서의 흑인 차별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 라스트네임을 보면, 하층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요.
 
  “성(姓)이 워낙 많아서 전부 다 구별할 수는 없고요, 실제로 최근 미국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하층민들 대부분(약 80%)이 카스트에 의해 차별받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습니다. 카스트와 관련된 중범죄도 많이 줄었지요. 과거에는 제도로 인한 살인 등 중범죄가 빈번했는데, 요즘은 ‘하층민이라고 욕했다’ ‘몸싸움했다’는 등의 범죄가 대부분입니다.”
 
 
  중국은 싫어해도 한국은 좋아해
 
  오화석 교수는 2000년대 초반에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에 있는 네루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다. 네루대는 대학원 위주의 대학으로 당시에는 한국이라는 나라에 관심 있는 수십 명 정도의 학생이 대학원 수업을 듣는 수준이었다. 물론 학부과정이 있는 외국어 학부의 한국어과는 인기가 있긴 했지만 놀랄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 이후 10여 년이 지나 일부 국가에선 한류(韓流)가 폭풍처럼 몰아닥쳤지만, 인도는 거의 무풍(無風) 지대였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인도는 한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습니다. 인도의 동북쪽 지역에 몽골계가 많이 사는데, 그들의 외모가 한국인과 흡사해 약간 관심이 있는 정도였죠. 인도인은 자기 문화에 대해 강한 프라이드가 있습니다. 할리우드 인기 영화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곤 인도에서는 인기가 없을 정도입니다. 자국의 문화를 사랑하고, 관심이 많고, 자부심이 높은 만큼 다른 문화에 별로 관심이 없는데 요즘은 인도의 중심에서 한국을 외칠 정도입니다.”
 
  네루대학의 외국어 학부에는 한국어과·일본어과·프랑스어과 등 여러 학과가 있다. 2022년 가을학기에 한국어과 정원 30명을 뽑는 데 10만 명이 몰려 330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 경쟁률이 상상 초월인데요.
 
  “어마어마한 겁니다. 드디어 한국의 콘텐츠가 인도 사회에까지 스며든 겁니다. K 팝, K 드라마를 통한 우리나라에 대한 긍정적 감정들이 인도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에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 인도 사람들이 중국인은 싫어해도 한국인은 좋아한다더군요.
 
  “중국은 역사적으로, 또 국경 분쟁을 거치면서 껄끄러운 사이입니다. 인도에 진출한 중국 기업이 고전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한국, 한국인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고, 한류 열풍으로 인해 긍정적 이미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도인들, 굉장히 오픈되어 있어”
 
  ― 인도의 국민성은 어떤가요. 날씨가 덥다 보니 게으르다는 선입견이 있는데요.
 
  “다양한 민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습니다. 확실한 것은 굉장히 오픈돼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배타적이지 않은 문화입니다.
 
  인도에 신이 3억3000만 명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유일신(唯一神)이 아니다 보니 내가 믿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남이 믿는 것을 내가 부정하는 분위기가 아닙니다. 비단 종교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상대방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은 편입니다.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은 역사적 배경과 ‘성공 언어’인 영어에 대한 교육 등으로 인해 웬만큼 교육받은 사람이면 영어 소통이 되지요. 우리 기업 입장에서 직원으로서 좋은 조건을 갖춘 셈입니다.”
 
  ― 인도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CSR)을 보니까, 인도 특유의 문화가 엿보이더군요. 개안(開眼) 보조 활동이랄까, 최하층 국민을 위한 음식 봉사랄까 등이요.
 
  “인도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을 매우 중요시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것은 기업, 기업인이라는 마인드가 강합니다. 어떤 사람이 큰 부(富)를 쌓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잘나서가 아니라 부를 버는 맞는 시기, 맞는 장소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죠. 이는 곧 신이 그에게 기회를 준 것이고 신이 그에게 맡긴 부이기 때문에, 바로 국민과 사회를 위해 써야 한다는 의식과 문화가 아주 강합니다.”
 
 
  기업 순수익의 2% 사회 환원 의무화
 
2009년 9월 14일 한국을 찾은 타타그룹의 라탄 타타 회장이 서울 코엑스에서 타타대우상용차의 신형 트럭 앞을 지나고 있다. 그는 “현재 한국의 5t급 이상 중대형 트럭 시장에만 진출해 있지만, 2011년 이후엔 중소형 트럭 시장에도 진출하겠다”고 말했다. 사진=조선DB
  오 교수의 저서 《100년 기업의 힘, 타타에게 배워라》에 타타그룹이 창업할 때부터 가진 기업을 경영하는 이유에 대해 적혀 있다. 창업주인 잠셋지 타타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기업 활동에서 지역사회와 국민은 비즈니스의 이해당사자인 동시에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 그 자체다.”
 
  “우리는 국민을 위해 부를 창출한다. 국민에게서 온 부는 가능한 한 국민에게 돌아가야 한다.”
 
  타타그룹 창업주의 말은 단순한 ‘말’에 그치지 않는다. 타타그룹의 소유 구조에서 엿볼 수 있다. 지주회사인 타타선즈 주식의 65.98%를 자선회사인 타타트러스트와 타타재단이 보유하고 있다. 배당 등 이익금은 기금으로 전환되고, 이 기금의 60%가 자선사업에 쓰인다. 오화석 교수는 “이런 소유 구조를 가진 기업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물다”고 말했다.
 
  인도 기업부는 2019년 7월에 회사법 개정 신설 조항(제135조)을 통해 기업의 순수익 2%를 CSR 활동에 지출할 것을 의무화하는 조항을 추가하고, 위반 시에는 벌금 및 구금을 강화함으로써 중앙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기업 순익을 의무적으로 사회에 환원토록 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인도가 유일하다. 오화석 원장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기업을 이용한다는 차원에서 개인적으로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인도인들은 당연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보다 인도가 지속 성장 가능해”
 
  ― 중국의 경제 발전과 비교되는데, 중국과 인도는 어떤 점이 다를까요.
 
  “경제 발전사의 대부분은 강력한 권한을 가진 정부(혹은 지도자)가 중심이 되어 독재, 권위주의를 펼치면서 성장합니다. 그것을 ‘동원체제’라고 하는데, 동원체제하에서는 경제 발전이 일정 한계를 넘어서면 쇠락하게 되죠. 결국 부작용으로 무너지게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외환위기도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빠르게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것은 사실이죠.
 
  “중국은 1978년, 인도는 1991년 경제 개방을 했습니다. 인도의 경제 개방 시기가 13년이 늦습니다. 가령 중국은 공산주의 정부에서 ‘도로를 깐다’고 하면 바로 철거가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인도는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를 중시해서 속도가 좀 느립니다.”
 
  ― 이런 것들이 우리가 진출하고자 할 때 걸림돌이 아닐까요.
 
  “비즈니스 차원에서는 단점일 수 있죠. 하지만 저는 개인의 자유, 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가 중장기적으로 훨씬 튼튼하고 오래간다고 봅니다. 지속 성장이 가능한 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입니다. 중국보다 인도가 지속 성장이 가능한 이유는 바로 인도 경제의 근간에 개인의 자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인도는 자국(自國)으로 기술 이전하는 해외 기업에 대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 기업들이 이 부분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 베트남과 인도는 어디가 경쟁력이 있나요.
 
  “솔직히 베트남과 인도를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구수, 경제성장률, 인건비 등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인도에 진출하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베트남이 지리적으로 우리와 인접해 있고 문화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에 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베트남이 유리한 것이 분명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인도가 맞는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업이 생각을 바꾸면 인도도 진출하기에 어려운 국가는 아닙니다.”
 
  ― 우리의 인도에 대한 인식 변화가 우선이라고 보시는군요.
 
  “혹자는 인도인에 대해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인도인들의 언변이 뛰어나고, 말을 종종 바꾸어 믿을 수 없다는 인식입니다. 사실 그런 측면도 없지 않습니다. 14억이나 되는 엄청난 인구 중 별의별 사람이 다 있을 수 있으니까요. 인도 사람들은 우리처럼 유교주의에 물들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나이 든 사람 앞에서도 할 말은 다 하는 분위기입니다. 자유로운 토론 문화에 익숙합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 입장에서는 말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냐는 왜곡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직원으로서 인도인이 최고”
 
  ― 거래 방식도 다르다고요.
 
  “시중에는 인도인은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문서를 남겨야 한다는 인식이 많이 퍼져 있습니다. 당연히 중요한 얘기들은 어느 나라 사람하고 거래하든 꼭 문서로 남겨야 하겠지요. 그러나 인도인들은 특히 믿을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제 경험담을 얘기하자면 귀국하느라 물건을 처분할 때 문서로 계약서를 쓰는 경우가 없더군요. 1000만원이나 하는 중고 자동차를 거래할 때도 돈을 먼저 지불한 후 ‘아무런 증명서도 필요없다’며 ‘보름 후 차를 가지러 올게’라고 말만 하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오히려 제가 당황했지요. 이들은 구두로 한 약속이래도 꼭 지켰습니다.
 
  특히 인도 상인들은 신뢰를 무척 중시합니다. 신뢰에 금이 가서 생기는 역효과, 혹은 그로 인한 폐해가 어마어마하니까요. 인도인들이 신뢰를 중시하지 않는다면 글로벌 기업에 인도 경영자가 그렇게 많을 리가 없겠지요.”
 
  ― 미국 실리콘밸리는 인도인이 점령했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더운데 살아서 게으르다, 나태하다는 것도 인도인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입니다. 인도에 둥지를 튼 기업의 주재원들에게 무수히 질문한 사항인데, 이들은 자사 인도인 직원들의 생산성이 전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보다 높다고 한결같이 답하더군요. ‘직원으로서 인도인이 최고’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습니다. 실리콘밸리에 인도인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실력 좋고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죠. 잘 아시는 것처럼, 인도공과대학(IIT)은 인도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최고 명문 국립공과대학입니다. 이곳에 입학했다는 것만으로도 출세길이 보장되고, 실제로 IIT 출신들은 미국 실리콘밸리, 삼성, LG 등 업체에서 고용하고자 줄을 설 정도입니다.”
 

  ― 인도를 중동, 아프리카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회사들도 있는 모양이더군요.
 
  “충분히 가능한 얘기입니다. 인도와 중동은 실크로드가 있던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중동상인을 만나는 데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친밀감을 느낄 정도입니다. 인도를 전략기지로 삼아 아프리카까지 진출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인도에 진출한 기업들의 얘기로는 여성의 사회 진출도 최근 들어 활발해지고 있다. 오화석 원장은 “인도는 여성에 대해 상당히 이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중산층 이상에서 여성 파워 막강”
 
  “과거 인도는 여성을 남녀평등의 존재로 여겨 여성의 서비스업 취업을 금지했습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 어느 나라에나 있던 엘리베이터 걸(girl)이 인도에는 없었고, 술집이나 찻집 등에서도 여성이 시중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물론 남성 중시라는 시각에서 이런 서비스업 직종도 남자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해서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회에서 돈을 벌어야 하는 일부 하층민 여성들은 남성과 똑같이 몸 쓰는 노동 일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논밭에서 땅 파고 건설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의 서비스업 취업금지는 여성을 보호한다는 조치였지만, 오히려 여성이 육체적으로 힘든 남성의 일을 하게 하는 모순이 있었던 거죠. 인도 여성의 불평등 문제가 여전히 많이 지적되지만, 요즘 인도 사회는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중산층 이상에서는 여성의 파워가 막강합니다.”
 
  ― 여성의 발언권이 좀 세지고 있나요.
 
  “인도인들이 숭배하는 신 중에 여신(女神)들이 꽤 있고요, 또 정치, 금융 분야에서는 여성이 활약한 예가 많습니다. 인디라 간디 총리는 선거로 선출된 아시아 최초의, 아마 세계 최초의 여성 최고 권력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4년 방한(訪韓)한 쿠마르 인도 하원의장도 인도 최초의 여성 하원의장이자, 불가촉천민 출신입니다. 아직 여성 국회의장이 없는 우리나라와 비교해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죠. 이 밖에도 우리나라의 서울시장에 해당하는 뉴델리시장을 여성이 오래 역임했고, 미국의 주지사에 해당하는 주 총리와 힘있는 실세 연방 장관 등으로 활동하는 여성들이 아주 많습니다.”
 
  ― 남아(男兒) 선호 사상은 있지요.
 
  “아주 강한 편입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나라처럼 인도 역시 오래 전부터 남아 선호 사상이 강했습니다. 남성은 농경사회에서 노동력의 원천이었고, 가문의 성을 남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인도는 여성이 결혼할 때 가져가는 지참금이 매우 큽니다. 이런 요인들이 오늘날도 남아를 선호하게 하는 중요한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오화석 교수는 얼마 전 《인도의 시대》라는 제목의 책 원고를 탈고하고, 인도 전문가들로부터 감수를 받고 있다고 했다. 최근 급부상한 인도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룬 책인데, 조만간 시중에서 판매할 예정이다. 그는 ‘앞으로도 인도 경제가 계속 상승 국면으로 갈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인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모디 총리가 화폐 개혁을 할 때와 이번 코로나19 위기로 타격을 입었습니다. 인도 경제가 침체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인도는 여러 조건을 고려했을 때 우리 기업이 반드시 공략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우리처럼 무역이 경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국가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제라도 인도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적극 공략하기를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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