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감한 구조개혁으로 구제금융 조기졸업… 시장 중심 정책으로 富國 반열
⊙ 2010년 IMF 때 ‘공무원부터’ 임금 줄이고 혁신 기업은 계속 투자
⊙ 법인세 대폭 깎아 세계적 IT·제약社 모두 유치… ‘높은 대외의존도’는 숙제로
⊙ 산업적 평화 달성한 아일랜드 최대 노조의 시위·파업 없는 비결
⊙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 폭등한 부동산 임대 시장 최대 고민거리
⊙ 現 정책에 반발하는 민심도 증가…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 아니야”
⊙ 2010년 IMF 때 ‘공무원부터’ 임금 줄이고 혁신 기업은 계속 투자
⊙ 법인세 대폭 깎아 세계적 IT·제약社 모두 유치… ‘높은 대외의존도’는 숙제로
⊙ 산업적 평화 달성한 아일랜드 최대 노조의 시위·파업 없는 비결
⊙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 폭등한 부동산 임대 시장 최대 고민거리
⊙ 現 정책에 반발하는 민심도 증가… “지속가능한 경제 시스템 아니야”
- 더블린 중심가에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아일랜드가 영국보다 잘산다고 하면 다들 놀란다. 그리고 미심쩍은 표정으로 되묻는다. ‘언제부터?’ 1998년부터니 24년이나 됐다. 그간 한 번도 뒤처진 적이 없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추산한 올해 아일랜드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0만1509달러(약 1억3200만원·GNI는 약 325조원)다. 영국의 2배, 우리나라의 3배 수준이다.
식민 지배의 설움으로 치면 아일랜드보다 더한 나라도 잘 없다. 장장 800년이다. 12세기부터 수탈당해, 1922년 독립하고도 영국의 멸시를 받았다. ‘게으르고 음흉하며 술에 취해 사는 흰털 원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1980년대까지도 ‘유럽의 낙오자’로 불렸다. 그랬던 나라가 10년 만에 1인당 소득으로 종주국(宗主國)을 눌렀다. 독립 76년 만(1998년)에 경제로 극영(克英)한 거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3년 수도 더블린에 하늘을 뚫을 기세의 높은(120m) 첨탑까지 세웠는데, 직항이 없는 머나먼 나라라서인지, 한국에는 이 사실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탑이 한 번 크게 휘청하긴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2009년 ‘PIGS(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에 아일랜드의 ‘I’가 추가돼 ‘PIIGS’가 됐다. 결국 2010년 말 IMF로부터 850억 유로(약 118조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빚쟁이’ 같은 오명에는 넌덜머리가 났던 건지 오래 달고 있지는 않았다. 3년 만인 2013년, 유로존 채무국 중 1등으로 탕감했다.
이 숫자들에 담긴 사연을 좀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해 짐을 쌌다. 8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7박 8일간 입고 먹을(컵라면) 것들이다. 한국에서 아일랜드를 가려면 유럽 어딘가, 혹은 두바이를 한 번 거쳐야 한다. 경유지 체류시간 포함 약 18시간이 걸렸다. 오전 10시. 더블린 공항은 북적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터미널 입구 라운지에서 백발의 중년 여성이 (아침부터!) 기네스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국적인 광경이었다.
공항은 더블린의 북동쪽에 있다.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려 중심가로 다가가자 눈에 띄는 두 가지가 있었다. 사방에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과 수많은 외국인이었다. 경기 호황을 말해주는 신호였다.
유럽의 실리콘밸리
서울 상암동 ‘촌놈’ 머릿속 아일랜드인은 깃털 달린 펜으로 시(詩)를 쓰는 이미지였다. 세상 물정 몰라도 너무 몰랐다. 우리는 흔히 조금 잘나간다고 하면, 한국의 몽마르트르니 뭐니 하며 원조(元祖)의 이름을 갖다 붙이곤 한다. 아일랜드가 ‘유럽의 실리콘밸리’라고 했을 때, ‘또야?’ 했는데 과장이 아니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메타(구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등 세계 10대 IT 기업 중 9개의 유럽본부가 아일랜드에 있다. IT뿐만이 아니다. 화이자 등 세계 제약·바이오 상위 10개 회사가 전부 아일랜드에 지사나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의료 기기 분야에서는 상위 15개 회사 중 14개가 진출해 있다.
레오 클랜시(Leo Clancy) 아일랜드기업진흥청(EI·Enterprise Ireland)장은 “보통 런던이나 베를린을 바이오 강국이라 생각하지만, 유럽연합(EU)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쓰고, 젊고 유능한 인력이 있는 아일랜드가 이들 기업에 희망이 됐다”고 했다. 아일랜드투자발전청(IDA)에 따르면 아일랜드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무려 1700개에 이른다. 이들이 27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권기환 주아일랜드 한국 대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내수가 많이 침체됐을 때도 아일랜드는 다국적 기업과 수출로 버텨냈다”면서 “팬데믹 이후 내수까지 활성화되니 경기가 더 좋아졌다”고 했다. 더블린 시내 식당과 술집은 매일같이 사람들로 붐볐고, 웬만한 호텔에는 빈방이 없었다. 수치도 증명한다. 2021년 경제성장률은 13.5%로, 같은 해 EU 성장률(5.4%)의 2배가 넘었다. 전 세계가 전염병에 신음하던 2020년에도 5.9%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 예상치는 5.4%로 EU의 예상 성장률인 2.7%를 훌쩍 넘길 전망이다.
‘아일랜드 드림’ 꾸는 젊은이들
더블린 거리를 걷다 보면 다국적 기업 종사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체감상 세 명 중 한 명꼴일 정도로 많은데, 특히 엔지니어들이 눈에 많이 띈다. 이들 중 몇몇과 잠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대화를 소개한다. 아마존이 위치한 버링턴로드 인근 메스필로드에서 점심을 먹고 시음(?)을 위해 기네스를 한잔 시켜놓고 앉아 있을 때였다. 누군가 “주스를 마시고 있네”라는 농담을 하며 자연스레 맞은편 자리에 걸터앉았다. 화웨이의 자회사 아스피겔(Aspiegel SE)에 다니는 흐르보예 호르바트(Hrvoje Horvath·30)라는 청년이었다. 나는 더블린 방문 이유를 설명했고, 그는 졸지에 정자세로 고쳐 앉아 20분간 질문 세례를 받게 됐다. 크로아티아인인 그는 수도 자그레브에 살다 3년 반 전 더블린으로 왔다고 했다.
“크로아티아는 최저임금이 한 달에 약 300유로(약 40만원)인데, 이마저도 두어 달씩 밀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관광수요 때문에 물가는 계속 오르죠. 생활비를 충당할 수가 없는 구조예요. 그곳에는 제 부모님처럼 나이 든 사람밖에 남지 않았어요. 젊은이들은 떠날 궁리만 합니다. 미래가 없는 거죠.”
그에 따르면 아스피겔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여러 IT 기업에서 크로아티아 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총 5만 명이 넘어왔다고 한다. 물가가 크로아티아보다 비쌀 텐데 어떻게 감당하는지 묻자 그는 “크로아티아 젊은이들은 고향에서 열 달을 일해 더블린에서의 한 달 체류비를 마련한다”고 했다. 호르바트 씨는 이어 “얼마 전까지 메타(구 페이스북)에서 일하다, 몸값을 높여 이직을 한 것”이라면서 “(더블린 시내의) 방 한 칸에 살며 월세 800유로(약 111만원)를 내고, 집 앞에 가끔씩 놀러 오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취미로 복싱을 하며, 말아서 피우는 담배를 매일 사고도 조금 저축할 수 있을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크로아티아 젊은이에게 아일랜드는 기회의 땅”이라면서 “좀 더 일찍 오지 않은 내 자신에게 미안함마저 든다”고 했다.
피터 버크(Peter Burke) 아일랜드 지방행정·기획부 차관에 따르면 아일랜드 노동 인구의 15%가 외국인이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구조개혁
이 나라가 가난했던 적이 있긴 했나. 까마득한 옛날 같지만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1980년 말까지만 해도 ‘서유럽의 환자(sick man)’로 불렸다. 경기 침체는 1987년 극에 달했다. 1970년대 후반 석유파동, 세계경제 불황 와중에도 정부는 공공부문의 지출을 늘리는 등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세금 부담은 늘고 나랏빚은 계속 쌓였다. 국가부채가 GDP의 117%에 달했고 실업률은 17%에 육박했다. 영국 언론들은 아일랜드 경제의 종말을 고하는 기사를 쏟아냈다. 존 매카시(John McCarthy) 재무부(Department of Finance) 차관보 겸 수석경제학자는 “1970~1980년대 아일랜드는 부적절한 예산 정책으로 공공지출 증가, 부채증가, 재정적자를 초래했다”고 했다.
이러다 나라 망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대적인 구조개혁에 나섰다. 1987년 ‘사회적 대타협(Social Partnership)’을 체결한 배경이다. 노조는 “나라 사는 게 우선”이라며 임금인상을 자제(3년간 임금 인상률 2.5%로 합의)했고, 정부는 법인세 등을 대폭 깎고 사회보장을 약속했다. 기업도 한배에 올라 일자리 창출에 힘썼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GDP 대비 117%에 달하던 부채가 3년 뒤인 1990년에는 96% 수준이 됐다. 1987년 1만 달러에도 못 미치던 1인당 GDP는 8년 만에 2만 달러를 넘어섰다. 2001년에는 3만1000달러를 넘으면서 영국(2만4000달러)마저 누르고 서유럽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 대열에 들어갔다. 17%를 넘나들던 실업률은 2001년 3.9%로 떨어졌다. 이때(1991~2001년)가 그 유명한 ‘켈틱 타이거’ 시기다.
사회적 대타협은 당시 총리실 산하의 국가경제사회위원회(NESC· National Economic and Social Council)가 주도했다. 이곳의 위원장(Director)인 래리 오코넬(Larry O'Connell)은 당시를 회상하며 “‘지속가능한 탄탄한 재정 기반 마련’이라는 국가적인 목표를 위해 전 국민이 각자의 역할을 했다”면서 “국민 모두가 아일랜드 경제 회복의 원동력이 된 셈”이라고 했다. 당시 사회적 대타협은 아일랜드 거시경제 정책을 논의하는 틀이었지만, 가장 핵심적 기능은 ‘임금인상 자제’로 꼽힌다. 친(親)노동자적인 정당도 없었는데 어찌 임금 관련 타협을 끌어낼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사회적 대타협에 포함된 여러 협약은 모두 투표로 결정됐다”면서 “특정 정부나 정당에 의존하거나 연관되지 않은 자발적 합의였다”고 설명했다.
NESC는 우리나라의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처럼 기관명에 ‘노동’을 포함하지 않고 ‘경제’를 가장 앞에 쓴 이유를 궁금해했더니 오코넬 위원장은 “유럽 내 NESC와 같은 기관들은 모두 경제와 사회(Economic&Social)순으로 쓴다”면서 “물론 노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이를테면 환경과 농업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을 기관명에 다 넣으면 ‘NESLEAC’라는 식으로 이름이 너무 길어진다”고 했다. 마지막 문장은 아일랜드식(?) 유머다.
재앙의 씨앗 된 사회적 대타협
한국에서도 이따금씩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아일랜드의 사회적 대타협’을 도입하자는 얘기가 나온다. 그 전에 이 부분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사회적 대타협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스템이다. 2000년 들어 약화되기 시작한 뒤 2009년에는 완전히 파기됐다. 22년간 이를 주도했던 NESC는 지금 일종의 경제연구기관으로 남은 상태였다. 사회적 대타협을 역사에 어떻게 기록할지를 둘러싸고도 이견이 팽팽하다. 재무부의 국가예산안 편성 실무총책인 존 매카시 수석경제학자는 “1990년대 말까지는 사회적 대타협이 제 기능을 수행했지만, 2001~2002년 무렵부터는 공공재정을 붕괴시키기 시작했다”고 했다. 요컨대 ‘한때’ 도움은 됐지만, 부작용이 더 컸다는 거다. 특히 2000년 들어 이 협약이 복지와 분배에 무게가 쏠리면서다. 매카시 수석경제학자의 말이다.
“사회적 대타협에는 의료지출, 공공부문 급여, 전반적인 지출 및 세금을 감면하겠다는 국가적 약속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처럼 중요한 재정 정책의 의사결정이 재무장관의 통제 밖에 있었습니다. 타협을 맺은 노사정의 내각 동료들에 의해 재정 정책이 결정됐고, 이게 결국은 재앙의 지름길이 됐다고 봅니다. 공공재정이 서서히 붕괴된 거죠. 흔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아일랜드가 2010년 구제금융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핵심을 잘못짚은 겁니다. 저는 아일랜드의 공공재정의 잘못된 관리가 근본적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공공재정 붕괴에 사회적 대타협이 큰 역할을 했고요.”
오코넬 위원장은 이에 대해 “NESC는 사회적 대타협의 파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따라 이뤄진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겠느냐”면서도 “다만 이것이 이후 경제위기에 일조했다는 시각은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분명한 건 그 시기 아일랜드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바탕으로 힘을 모았고, 이것이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는 것”이라면서 “NESC에서는 현재도 진화된 형태의 사회적 대화 모델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공공재정 붕괴와 구제금융
사회적 대타협이 파기된 2009년 무렵은 아일랜드가 다시금 깊은 침체에 빠질 때였다. (좀 더 정확히는 침체에 빠지면서 사회적 대타협이 깨졌다.) 그 당시 경기침체의 원인은 미국발 금융위기, 혹은 아일랜드 은행 시스템의 붕괴로 알려져 있는데, 존 매카시 말대로라면 내부적으로 곪고 있던 공공재정이 단초가 된 거다. 결국 2010년 IMF로부터 85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영국 언론은 “켈틱 타이거가 아니라 실은 살찐 고양이였다”고 ‘또’ 놀려댔다.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틀은 깨졌지만, 아일랜드는 다시 힘을 합쳐 긴축에 나섰다. 이때 추진한 재정 안정화 조치는 2010년에만 GDP 대비 13%의 조정을 도모했을 정도로 강도 높았고, 그 결과 3년 뒤인 2013년 유로존 채무국 중 가장 먼저 구제금융에서 졸업할 수 있었다. 이때 특히 ‘공무원부터’ 임금인상 자제에 나선 점이 인상 깊은데, 래리 오코넬 위원장은 “강제성 없이 공무원들 스스로 리더 역할을 자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이 나라 노동조합의 성향을 묻자 오코넬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시위·파업이 잘 없고 산업적 평화가 달성돼 있다”면서 “갈등이 표출되기 전 고용주와 노조가 앉아서 건설적인 해결책을 내는 과정과 이를 도와주는 제3기관(LEEF·Labour Employer Economic Forum, WRC·Workplace Relations Commission) 등이 체계적으로 수립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물론 일각에서 반발도 있었지만, 당시 노조 대표부는 ‘갈등의 일부’가 되기보다 ‘해결책의 일부’가 되는 길을 택했다”고 했다.
산업적 평화 달성한 노동조합
간판이 없었다면 ‘부티크’로 착각할 뻔했다. 더블린 ‘추모의 정원(Garden of Remembrance)’ 바로 앞에 있는 아일랜드노동자총연맹(ICTU·Ireland Congress Trade Union)은 아일랜드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이다. 조합원은 83만 명이다. 공공부문 근로자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유럽 내에서 유일하게 EU(아일랜드)와 비EU(북아일랜드)의 조합원을 동시에 가진 기관이다. 그런 것치고 삼엄함 같은 건 없었다. 유럽 특유의 아기자기한 건물인데, 대문이 심지어 ‘핫핑크’ 색이다.
ICTU 최초의 여성 의장인 파트리샤 킹(Patricia King) 사무총장은 2009년 공공부문 임금 삭감 당시, 총리 협상테이블에 노조대표부로 앉았던 인물이다. 그는 “IMF의 조건에 따라 임금동결과 연금삭감에 동참하기로 했는데, 대신 ‘일자리 수’만큼은 줄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했다. 사기업의 경우에도 공공부문과 비슷하게 임금조정, 고용유지 방식이었지만 ‘일몰(日沒)조항’을 첨가해 위기 이후 돌려받도록 했다.
― 공무원 비중이 제일 높은 노조에서는 임금삭감에 반대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 아닙니까.
“그 상황에서 저 같은 노조 임원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조합원들을 불러서 ‘우리 다 같이 차를 불태우고 대정부 시위를 하자!’고 외치는 거죠. 쉽지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 방법이죠.”
― 조합원들은 임금조정을 모두 순순히 따랐습니까.
“물론 긴축은 힘든 일이기에 당시 일각에서 시위도 있었습니다. 이때 노조 대표부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합니다. 노조의 존재 이유는 일자리를 지키고, 근로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기, 그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방법은 긴축의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조합원 모두의 힘이 필요했고, 그들도 이것이 경제 회복을 앞당기는 가장 이성적인 길임을 알았던 겁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경제 회복을 위한 대가로 지불하기에 아깝지 않았습니다.”
한때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았던 나라다. 1960~1970년대 연평균 58만5102일(개별 사업장 모두 포함)을 파업으로 날려 보냈다. 그때도 노조에서 먼저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노조 지도자 짐 라킨은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노조는 투쟁에만 몰두한다”고 개탄했다.
근래 들어 시위나 파업이 현격히 줄어든 것을 ‘사회적 대타협’의 순기능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사회적 대타협 이전 연평균 250건에 달하던 대규모 노사분규는 체결 이후 3년 동안 50건 이하로 줄었다. 이에 킹 사무총장은 “사회적 대타협 조항에 ‘산업적 평화 유지’라는 게 있기는 했다”면서 “파기 이후에도 산업적 평화가 유지된 배경은 지난 22년간 구축한 사회적 대타협이 노사정 간 업무의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서로 대화가 통한다는 뜻이었고, 대화는 나아가 신뢰 관계를 구축하게 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요즘도 가끔 시위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굉장히 체계적인 시위”라고 덧붙였다.
한편 유머를 좋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은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 “워낙 작은 나라라 시위를 막는 경찰이 다 사촌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법인세 대폭 완화로 FDI 유치
내부적으로 긴축에 들어간 한편, 정부는 외국인직접투자(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 기업 진출 금지 등 국수주의로 꽉 막힌 나라였다. 1987년부터 이 장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존 매카시 수석경제학자는 “독립 이후 50년간 자급자족하려 노력했는데, 반세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머물렀다는 건 이 작은 나라에서는 그(자급자족) 경제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면서 “1987년 위기를 계기로 정부는 외국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고 이를 위한 개혁을 일사불란하게 진행했다”고 했다.
우선 법인세를 유럽 최저인 10%(이후 12.5%로 상승)로 낮췄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등 인접 국가들의 법인세는 30~40%에 달했다. 나라 곳간이 어려운 와중, 세수 부족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린 과감하고 용감한 선택이었다. 주요 국가와 이중과세방지 협약도 체결했다. 기업이 법인세를 이중으로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공장 설비와 건물 토지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도 25~35%를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이때 아일랜드투자진흥청(IDA)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건축개발 승인과 환경통제 허가를 제외한 전권을 갖고 외국 기업들이 공장입지 선정부터 회사 등록까지 모든 서비스를 한곳에서 받도록 했다.
2010년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 유치에 나섰다. 유로존 내 유일한 영어 사용국이고, 젊고 숙련된 노동력도 많고, 낮은 법인세율 등의 친(親)기업 정책도 많다는 강점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생산성과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외국인 투자와 수출이 급증했다. 킹 사무총장은 “이때 유치한 다국적 기업은 민간 부문 고용의 33%를 차지할 정도로 아일랜드 경제의 핵심이 됐다”고 했다. 다국적 기업의 법인세 세수는 (낮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국민소득의 5% 이상을 차지하며 소득세의 50%도 외국 기업에서 나온다. 2010~2017년의 기간 중 수출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켈틱 타이거가 켈틱 피닉스로 부활한 시점이다.
한편 지난 10월 미국 주도로 주요 7개국(G7)이 합의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이 아일랜드 경제에 부정적 요인이 될 거라 보는 시각도 있다. 아일랜드는 최저 법인세율 ‘15%’에 동참하기로 한 상태다. 그러나 현지 정계에서는 2.5% 인상의 영향은 미미하거나,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존 맥카시 수석경제학자는 “최저 법인세율 동참은 오히려 기업들에 (이 나라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긴축에도 혁신 기업 투자 안 줄여
외국 기업을 유치했더니, 자국 기업과 산업도 덩달아 발전했다. 다국적 기업의 협력업체로 하나둘 시작한 것이, 어엿한 산업군으로 자리 잡은 거다. 자연히 아일랜드에서는 IT와 바이오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 기업? 들어본 적이 없는데?’라는 사람 많을 거다. 대표적으로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가 있고, 지금은 영국 디아지오 그룹에 편입된 ‘기네스’가 있다. 한국에도 진출한 ‘케리그룹’은 손에 꼽히는 대형 식품·푸드테크 기업이다.
아일랜드기업진흥청(EI)은 아일랜드투자발전청(IDA)에서 1998년 자국 기업 지원 기능을 분리해 만든 조직이다. 토종 기업 육성뿐만 아니라 이들의 외국 진출을 지원하는 정부기관이다. 회원사가 되기 위한 조건 중 ‘창업 3년 내에 아일랜드에서 최소 10명 이상 고용이 가능하고 100만 유로 이상의 매출이 가능한 기업’이라는 게 눈에 띈다. 지원을 받으려면, 고용창출에 더해 수익도 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 자국 기업(회원사)이 5000개나 된다. 회원사의 고용 인력은 20만7894명에 달한다.
2000년 이후부터 아일랜드 정부는 자국 기업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늘렸다. 투자신용평가사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EI는 투자건수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벤처투자자다. 2020년에는 1125개의 아일랜드 스타트업에 총 4800만 유로(약 667억원)를 투자했다. 2010년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도 과학 기술과 혁신 기업 투자 예산만큼은 줄이지 않았다고 한다. 레오 클랜시 청장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줄이지 않았던 건 매우 용감한 결정이었다”면서 “결국 이들이 아일랜드 경제에 이익으로 보답하고 있다”고 했다. 회원사의 수출액 규모는 2009년 110억 유로(약 14조5000억원)에서 꾸준히 늘어 2021년 272.9억 유로(약 38조원)를 찍었다. 2021년 아일랜드의 총 수출액(1650억 유로)의 16%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한편 EI는 지원 기업의 주식을 10퍼센트 이상 소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 지분 보유가 10%면 자국 기업이 해외 기업에 의해 인수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아일랜드는 기본적으로 ‘열린 시장’을 표방합니다. EI가 지분 보유 비중을 높여 인수되는 것을 막는 것은 시장에 간섭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의 임무는 회사가 성장하고 유지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클랜시 청장은 IDA의 임원으로 있다가 지난 2021년 EI 청장으로 부임했다. 해외 기업 유치와 자국 기업 수출 지원 업무까지 두루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문득 이 나라는 자국 기업보다 ‘외국 기업’을 더 내세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일랜드의 경제, 산업 구조상 다국적 기업과 자국 기업의 이상적인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다. 그는 “이상적인 비율이 있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강한 견해는 없다. 토착 기업이 경제에 더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게 될 거라 믿을 뿐”이라면서 “아일랜드에 다국적 기업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국가에 경제적 이익을 많이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 혹자는 “아일랜드에서는 외국 기업의 목소리가 더 크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 정도면 자국 기업에는 역차별 아닙니까.
“수치로 말씀드리면, EI는 IDA의 25배의 인력과 예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일랜드가 자국 기업의 지원에 결코 소홀하지 않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가치를 둬야 할 점은 ‘기업의 경제적 기여’이지 그 기업이 어디 출신인지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의 관계
아일랜드 국토(7만282㎢·북아일랜드 제외)는 한반도의 3분의 1 크기다. 인구는 약 500만 명으로 우리나라의 10분의 1 수준이다. 수도 더블린에도 서울의 한강처럼 리피강이 가로지른다. 강의 북쪽은 더블린 1, 3, 5 등 홀수로 구역이 매겨지고 남쪽은 2, 4, 6 등 짝수다. 더블린 또한 ‘강남’의 시세가 더 높다. 이 중 ‘더블린 4’ 지역은 각국 대사관들이 밀집돼 있다. 땅값도 가장 비싸다. “더블린 4에 산다”고 하면 이곳 사람들은 눈썹을 한번 세우며 “우아한 곳(Posh place)에 사는구나”라고 한다.
미국대사관은 특히 크고 멋들어지게 지어졌다. 그런데 경호원은 단 1명이다. 미국과 아일랜드의 외교적 관계가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권기환 주아일랜드 대사는 “실제로 미국대사관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가 해킹 방지 등 이곳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인구(약 3억 명) 중 10% 이상(3400만 명)이 아일랜드계다. 대기근(1845~1852년) 당시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이 먹고살기 위해 미국 등지로 떠났는데, 이때 뿌리내린 거다. 역대 미국 대통령 46명 중 바이든 포함 23명이 아일랜드계다. 미국 대통령은 ‘표심’을 얻는 차원에서라도 아일랜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 후보들은 대선을 앞두고 관례처럼 더블린에 들른다. 아일랜드의 국경일인 ‘성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 때는 아일랜드 총리가 항상 미국을 방문해 함께 칠면조를 먹는 전통이 있다.
뉴욕영사관에서 부총영사를 역임한 권기환 대사는 “미국 정계에는 아일랜드에 대해 굉장한 동정심이 있다”면서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이건, 민주당이건 아일랜드에 대한 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낮으며, 자연재해도 없고, 군사동맹 차원에서도 중립노선을 택하고 있는 등 미국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 없이 진출할 수 있는 여러 여건이 갖춰진 나라인 셈”이라고 했다.
호주 경제·평화 연구소의 ‘2022년 세계평화지수(GPI)’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평화 수준은 세계 3위다.(1위는 아이슬란드, 한국은 43위)
“정치 시스템이 안정적이란 것도 이 나라의 장점입니다. 정당색이 비슷한 공화당(Fianna Fail), 통일당(Fine Gael)이 번갈아가며 연정을 구축하는, 사실상 양당 체제죠. 따라서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처럼 정권 교체기 혼란이 없습니다. 급격한 경제 정책 변화가 없는 데다, 대(對) 기업 기조에도 지속성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신뢰감을 쌓을 수 있었던 거죠.”
높은 대외 의존도는 취약점
〈포일 암즈 앤드 호그(Foil, Arms & Hog)〉라는 게 있다. 아일랜드의 ‘국민 개그 프로’ 같은 건데, 풍자가 차지다. 이 중 ‘아일랜드 이민국 심사를 통과하는 법’ 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심사관이 질문한다. ‘아일랜드에는 크게 세 개의 정당이 있는데, 각각의 이름은?’ 이민을 희망하는 남성이 답한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 심사관은 ‘정답’을 외친다.(하하하)
웃다 말고 문득 이 나라의 ‘높은 대외의존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김태희 KDB 산업은행 아일랜드 법인장은 2003~2006년 켈틱 타이거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당시 아일랜드에 3년간 머물렀다, 지난 2019년 다시 왔다. 현재 아일랜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KDB 산업은행은 지난 1997년 상업 차관(借款)의 니즈가 커지던 시기 한국 금융사로는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로 이곳에 진출했다. 김 법인장은 “약 15년 만에 다시 와 본 아일랜드는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다. 표면적인 지수들은 다 좋다”면서 “IMF 구제금융을 다 갚고 나서는 심지어 한동안 연평균 10%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켈틱 피닉스’로 부활했는데 구조를 살펴보면 이 무렵부터 대외의존도는 더 높아졌다”고 했다.
강유덕 한국외대 교수 또한 ‘경제위기 이후 아일랜드 경제의 회복과 그 요인에 관한 연구’에서 “부활의 핵심은 ‘외국인 투자유치·수출확대’에 기반을 둔 켈틱 타이거 모델의 복원이었다”면서 “반면에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 경제는 더욱 대외의존도가 높은 모습을 갖게 됐다”고 썼다.
현지 정·재계 관계자들은 ‘높은 대외의존도’와 관련해서는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존 매카시 재무부 수석경제학자는 “아일랜드 경제모델은 본질적으로 대외의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의존도를 줄여나가겠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경제모델의 큰 틀은 유지할 것이며, 세계경제가 진화하는 방향이 곧 아일랜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더블린 시민들이 느끼는 경제
아일랜드에는 크게 세 개의 정당이 있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이 아니라) 공화당, 통일당, 녹색당이다. 보수 색채의 공화당, 통일당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아왔다. 현 총리인 미홀 마틴은 공화당의 대표였다. 그런데 2년 전 총선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마이너’ 정당이었던 ‘신페인(Sinn Fein)’ 당이 역대 최대 의석수를 얻은 것이다. 신페인당은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관련된 민족주의 좌파 정당이다. 기존 정당과 정책에 대한 불만이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출장 기간 동안 머물렀던 로지(Lodge)의 운영자인 패트릭 할핀(Patrick Halpin) 씨는 “신페인당의 인기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이들이 그간 보여준 성과가 없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일랜드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인터뷰가 없던 주말, 더블린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중 하나인 파넬스트리트로 나가봤다. 그곳에서 셰이머스 화이트(Séamus White·54)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더블린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그는 과거 한 지역신문에서 3년간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질문을 받자 화이트 씨는 대번 “기사의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아직 미정”이라고 했더니 “‘아일랜드 경제, 과연 지속가능한가’가 적당해 보인다”며 운을 뗐다.
“특히 부동산 임대 시장 문제가 심각합니다. 외국 자본과 함께 수많은 고비용 인력들이 유입되면서 임대 가격을 급속히 올렸어요. 더욱 심각한 것은 외국투자그룹 등에서 방을 100개씩 사재기를 한 다음 비싼 가격으로 월세를 내놓는다는 겁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매물을 접하기도 전에 웃돈을 주고 거래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기회도 없어요. 더블린에서는 지금 허름한 방 한 칸 구하기가 힘듭니다. 겨우 몸을 누일 만한 방의 월세가 900유로(125만원)씩 합니다. 유학을 온 학생들은 방이 없어 6인 벙커침대가 있는 곳에서 생활하기도 해요. 이건 인권 침해입니다.”
그는 “공화당, 통일당은 지난 수십 년간 번갈아가며 서로의 등을 긁어주는 존재로, 수십 년간 외국 기업 유치에만 집중했지 시민들의 주거 사정은 돌보지 않았다”면서 “기존 정당들과 반대 노선을 걷는 신페인당이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데, 만일 이들이 집권을 해 기업들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는 어떡할 것이냐, 그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돼 있다”고 했다.
이날 더블린의 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케이트 레이(Kate Wray·19)라는 학생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켈틱 타이거 시절 공무원이었고, 그중 어머니는 복지부의 예산 담당 직원이었다고 한다. 레이 씨는 “부모님은 누누이 켈틱 타이거 시절이 더 살기 좋았다고 말한다”며 마찬가지로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했다. 레이 씨는 “조금 살 만한 곳은 월세가 1200유로 정도 하는데 그 마저도 매물이 올라오자마자 나간다”면서 “아일랜드에서 독립은 요원해 보인다”고 했다. 그녀는 이어 “나는 교수가 되길 꿈꾸는데, 나라 전체가 ‘IT와 바이오’ 직종에만 기회를 부여하고 있고 나머지 인재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다”면서 “이런 나라가 과연 지속가능할까? 대학 졸업 후 다른 나라에서 진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거품, 그 후… 남은 과제들
다들 방 한 칸을 못 구해 난리다. 이 나라 또한 낮은 출산율 때문에 육아용품은 비과세를 할 정도이지만, 꾸준히 해외에서 유입되는 사람들 때문에 인구는 외려 느는 추세다. 부동산 시장 전문가인 로난 라이온스(Ronan Lyons) 트리니티칼리지(Trinity College) 경제학 교수는 “주택 부족 문제를 FDI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그것과는 별개다. 애초에 FDI 없이는 지금의 아일랜드가 없었다”라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오지 못해 발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일랜드에서 생애최초주택 구입자의 LTV는 90% 이상이다. 두 번째, 혹은 그 이상도 80%나 된다. 대출금리는 유럽연합에 따라 3% 정도밖에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집을 살 수 있지 않겠나 싶었는데 라이온스 교수는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집이 없다. 여러 신혼부부가 매물이 나올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살며 저축을 한다”면서 “높은 건설비용 또한 걸림돌”이라고 했다.
켈틱 타이거 시절 고도성장은 아일랜드 은행들을 국제신용시장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했다. 이를 통해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전까지 아일랜드는 막대한 자금을 차입해 대출을 실시했다. 당시 은행은 첫 주택 구입자에게 집값의 100%까지 저리로 대출해줬다. 부동산 대출이 단기간 폭증했고, 덩달아 가격도 급등했다. 1996~2007년 집값이 무려 네 배로 뛰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건설 붐이 일었다. 건설업이 GDP에서 20%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고, 건설업의 고용 인력이 전체 고용의 15%나 됐다.
2007년 들어 서서히 거품이 꺼지는 신호가 나타났다. 이 무렵 정부는 연착륙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8년 터진 글로벌 경제위기로 부동산 시장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라이온스 교수는 “거품 붕괴 이후 10년 전부터 은행의 신용 문제는 정상화 단계를 밟았지만, 부동산 공급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과거 건설 붐 때 지은 집들은 교통, 교육, 생활 인프라가 없는 외곽지에, 그야말로 ‘무분별한 공급’이 주를 이뤘다. 이들 지역은 슬럼화 된 상태이고 더블린 시내에는 살 만한 집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 그럼 저 밖에 수많은 타워크레인은 뭘 짓고 있는 겁니까.
“대부분이 호텔, 사무실과 같은 상업시설입니다. 꼭대기 층에 거주시설을 넣는 식이죠. 물론 최근 들어서는 아파트도 조금 짓고 있습니다만, 지난 15년간 짓지 않았던 걸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더블린에서만 5만~7만 가구가 더 필요한데, 현재 공급 예정량은 몇천 가구에 불과해요.”
더블린 시내에는 유휴지가 없다. 때문에 대부분 재건축, 재개발이다. 고도 제한 등 규제도 예전보다 완화된 상태다. 다만 공사비용이 걸림돌이라고 한다. 과거 건설 붐 때 임금이 오른 데다, 버블 붕괴 이후 숙련된 건설기술자들이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공급이 적으니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서울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대략 10억원 정도면 방 3개에 정원 있는 주택을 살 수 있다.)
부동산, 규제보다 공급에 초점 맞춰야
― 지금 다시 거품이 끼기 시작한 겁니까.
“거품은 아닙니다. 다만 건강하지는 않아요. 이전까지는 신용거래가 너무 많아 가격이 올랐지만, 지금은 집이 너무 적어 집값이 오른 겁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등으로 집값은 내년, 내후년에 떨어질 수도 있고, 침체기가 올 수도 있어요. 이렇게 가격이 오르내리는 건 ‘호황과 불황(Booms and Bust)의 사이클’로, 정상입니다. 거품과 붕괴(Bubble and Crash)는 더 극적인 것으로, 이와는 다릅니다.”
― 그런데 왜 건강하지 않다는 겁니까.
“공급이 계속 악화됐기 때문이죠. 신용거래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임대 시장은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일랜드의 유주택자 비율은 65~70% 정도인데, 소위 말해 ‘주택 보유자가 점유한 시장’입니다. 5년 전 Daft(아일랜드서 가장 큰 부동산 거래 사이트)에는 3000~4000개의 임대 매물이 올라왔었는데 지난 18개월 동안은 70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건강한 수준은 1만~1만2000개 정도로 봅니다. 지금 임대가격은 2007년 거품 시기보다 50% 더 높아요. 코로나19 때 억눌렸던 수요가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죠.”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한국의 모(某) 교수는 지난 정권 때 “아일랜드의 부동산 시장은 (건설 붐 시기) 꾸준한 공급에도 가격이 폭등했다”면서 “(우리 사회 또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으려면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투기수요를 차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 라이온스 교수는 “실제로 ‘아일랜드는 공급을 늘렸는데도 가격이 올랐다. 고로 공급이 가격을 낮춰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한데, 공급과 임금이 함께 증가하던 건설 붐 당시에는 느슨한 신용대출 문제가 가격 상승을 견인한 것이고, 일반적으로 모든 추가 공급은 집값을 저렴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신용대출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공급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라이온스 교수는 또 “최근 공공임대주택을 원하는 일부 시민의 요구에 따라 정부는 사회 주택을 위한 공적 자금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책안을 내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얼마를 쓰느냐보다는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부동산 시장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우선 시장의 역할을 이해한 다음, 시장이 돌보지 못하는 나머지(소외 계층)를 책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는 克英, 反英 감정은?
흔히 아일랜드는 한국과 자주 비교된다. 기질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흥과 한(恨)이 있고, 정도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순하고 친절하다. 아일랜드에서 14년째 거주하고 있는 권순주 아일랜드한인회 이사(프레스티지유학 대표)는 “이곳에 사는 300명의 한인은 대부분 ‘사람’ 때문에 정착을 결심했다”고 했다.
식민지배를 받았고, 분단국이며, 기근을 겪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비슷하다.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만난 미셸 윈드롭(Michelle Winthrop)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한국인과 비슷하다는 얘기는 나도 많이 들었다”면서 “‘한국인들이 밥 먹었느냐’고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아일랜드인도 먹을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 음식은 (영국보다) 맛있고, (비싸지만) 양도 많다. 반영 감정은 어르신과 특정 정당 지지자 등 일부에게만 남아 있다고 한다.
물론 올리버 크롬웰에 대해서는 예외일 수 있다. 2008년 아일랜드 총리였던 버티 아헌이 영국의 고관대작을 만난 자리에 크롬웰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헌 총리 또한 적극적으로 ‘개방 정책’을 편 인물 중 하나다. 여담이지만, 더블린에 머무는 동안 우연히 아헌 총리를 만날 뻔(?)하기도 했다. 은퇴 이후 그는 더블린 모처에 살고 있는데, 시내 한 펍에 매일 저녁 9시면 나타나 동네 주민들과 맥주를 마신다고 한다. 펍의 이름까지 전해 들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다른 유럽 지역으로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반영 감정에 대해 미셸 윈드롭 대사는 “영국인의 25%가 아일랜드 출신이다. 한 다리만 걸치면 영국과 혈연관계로 얽혀 있어 (정부 차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반영 감정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다”면서 “다만 둘의 차이는 있다.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아일랜드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세계 경제를 받아들이는 동안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났다. 경제를 세계화하려는 의지가 우리처럼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영국은 훨씬 보호주의적인 셈”이라고 했다. 어쩐지 ‘고상한 한방’처럼 들렸다.
신자유주의식 해법?
기질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를 확대 해석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다. 7박 8일간 이곳에 머물며 느낀 점은 아일랜드와 한국의 상황은 여러모로 다르다는 거였다. 제아무리 팔팔한 장기라도 무턱대고 이식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법이다. 이들이 성공했다고(지금까지는 그렇지만 앞으로는 또 모른다) 이 시스템을 들여오기에는 난관이 많다. 우리는 영어도 쓰지 않고, 유럽연합이라는 단일시장도 없고, 미국으로 건너가 뿌리내린 3400만 명의 인구도 없다. 윈드롭 대사는 이에 “한국처럼 아일랜드도 가진 거라곤 사람과 아이디어뿐이었고, 이를 교육과 기술 개발 분야에 적극 활용해 지금에 이르렀다”면서 “국민들이 뭘 할 수 있는지 살피고, 여기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태희 법인장은 “지정, 지경학적 조건 등 여러 가지가 다른 아일랜드 시장을 우리나라와 비교하기에는 무리”라면서 “다만 법인세 감세 등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 자세 는 배울 만하다”고 했다.
재무부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올해 국가부채(2350억 유로·약 327조원)는 GDP 기준 55% 미만으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낮다. GNI 기준으로 보면 99% 이하로 OECD 평균이다. IMF는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 채무비율이 다소 상승했지만, 서서히 더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흔히 아일랜드의 경제성장을 두고 신자유주의에 많이 빗댄다. 보수 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식 해법으로 성공했다’고 하고, 진보 진영에서는 이면의 부작용들을 언급하며 ‘신자유주의식 정책의 실패’라고 하는 식이다. 존 매카시 수석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일랜드의 위기 회복은 적극적인 FDI 유치와 수출 주도 성장 모델’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특정한 경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실용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하겠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식민 지배의 설움으로 치면 아일랜드보다 더한 나라도 잘 없다. 장장 800년이다. 12세기부터 수탈당해, 1922년 독립하고도 영국의 멸시를 받았다. ‘게으르고 음흉하며 술에 취해 사는 흰털 원숭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1980년대까지도 ‘유럽의 낙오자’로 불렸다. 그랬던 나라가 10년 만에 1인당 소득으로 종주국(宗主國)을 눌렀다. 독립 76년 만(1998년)에 경제로 극영(克英)한 거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3년 수도 더블린에 하늘을 뚫을 기세의 높은(120m) 첨탑까지 세웠는데, 직항이 없는 머나먼 나라라서인지, 한국에는 이 사실이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 탑이 한 번 크게 휘청하긴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다. 2009년 ‘PIGS(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그리스)’에 아일랜드의 ‘I’가 추가돼 ‘PIIGS’가 됐다. 결국 2010년 말 IMF로부터 850억 유로(약 118조원)의 구제금융을 받았다. ‘빚쟁이’ 같은 오명에는 넌덜머리가 났던 건지 오래 달고 있지는 않았다. 3년 만인 2013년, 유로존 채무국 중 1등으로 탕감했다.
이 숫자들에 담긴 사연을 좀 더 가까이서 듣기 위해 짐을 쌌다. 8월 30일부터 9월 6일까지 7박 8일간 입고 먹을(컵라면) 것들이다. 한국에서 아일랜드를 가려면 유럽 어딘가, 혹은 두바이를 한 번 거쳐야 한다. 경유지 체류시간 포함 약 18시간이 걸렸다. 오전 10시. 더블린 공항은 북적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터미널 입구 라운지에서 백발의 중년 여성이 (아침부터!) 기네스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야말로 이국적인 광경이었다.
공항은 더블린의 북동쪽에 있다. 버스를 타고 30분쯤 달려 중심가로 다가가자 눈에 띄는 두 가지가 있었다. 사방에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과 수많은 외국인이었다. 경기 호황을 말해주는 신호였다.
유럽의 실리콘밸리
![]() |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 76년 만(1998년)에 경제로 극영(克英)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03년 수도 더블린에 하늘을 뚫을 기세의 높은(120m) 첨탑을 세웠다. |
레오 클랜시(Leo Clancy) 아일랜드기업진흥청(EI·Enterprise Ireland)장은 “보통 런던이나 베를린을 바이오 강국이라 생각하지만, 유럽연합(EU)에서 유일하게 영어를 쓰고, 젊고 유능한 인력이 있는 아일랜드가 이들 기업에 희망이 됐다”고 했다. 아일랜드투자발전청(IDA)에 따르면 아일랜드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은 무려 1700개에 이른다. 이들이 27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권기환 주아일랜드 한국 대사는 “코로나19를 겪으며 내수가 많이 침체됐을 때도 아일랜드는 다국적 기업과 수출로 버텨냈다”면서 “팬데믹 이후 내수까지 활성화되니 경기가 더 좋아졌다”고 했다. 더블린 시내 식당과 술집은 매일같이 사람들로 붐볐고, 웬만한 호텔에는 빈방이 없었다. 수치도 증명한다. 2021년 경제성장률은 13.5%로, 같은 해 EU 성장률(5.4%)의 2배가 넘었다. 전 세계가 전염병에 신음하던 2020년에도 5.9% 성장률을 기록했다. 올해 예상치는 5.4%로 EU의 예상 성장률인 2.7%를 훌쩍 넘길 전망이다.
‘아일랜드 드림’ 꾸는 젊은이들
![]() |
더블린 곳곳에서는 쉽게 타워크레인을 볼 수 있다. 경기 호황의 신호지만, 정작 상업시설 위주로 짓고 있어 주택 공급 문제가 심각하다. |
“크로아티아는 최저임금이 한 달에 약 300유로(약 40만원)인데, 이마저도 두어 달씩 밀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관광수요 때문에 물가는 계속 오르죠. 생활비를 충당할 수가 없는 구조예요. 그곳에는 제 부모님처럼 나이 든 사람밖에 남지 않았어요. 젊은이들은 떠날 궁리만 합니다. 미래가 없는 거죠.”
그에 따르면 아스피겔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여러 IT 기업에서 크로아티아 청년들이 일하고 있다. 총 5만 명이 넘어왔다고 한다. 물가가 크로아티아보다 비쌀 텐데 어떻게 감당하는지 묻자 그는 “크로아티아 젊은이들은 고향에서 열 달을 일해 더블린에서의 한 달 체류비를 마련한다”고 했다. 호르바트 씨는 이어 “얼마 전까지 메타(구 페이스북)에서 일하다, 몸값을 높여 이직을 한 것”이라면서 “(더블린 시내의) 방 한 칸에 살며 월세 800유로(약 111만원)를 내고, 집 앞에 가끔씩 놀러 오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취미로 복싱을 하며, 말아서 피우는 담배를 매일 사고도 조금 저축할 수 있을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크로아티아 젊은이에게 아일랜드는 기회의 땅”이라면서 “좀 더 일찍 오지 않은 내 자신에게 미안함마저 든다”고 했다.
피터 버크(Peter Burke) 아일랜드 지방행정·기획부 차관에 따르면 아일랜드 노동 인구의 15%가 외국인이다.
사회적 대타협으로 구조개혁
![]() |
1987년 사회적 대타협은 국가경제사회위원회가 주도했다. 래리 오코넬 NESC 위원장. |
이러다 나라 망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대대적인 구조개혁에 나섰다. 1987년 ‘사회적 대타협(Social Partnership)’을 체결한 배경이다. 노조는 “나라 사는 게 우선”이라며 임금인상을 자제(3년간 임금 인상률 2.5%로 합의)했고, 정부는 법인세 등을 대폭 깎고 사회보장을 약속했다. 기업도 한배에 올라 일자리 창출에 힘썼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GDP 대비 117%에 달하던 부채가 3년 뒤인 1990년에는 96% 수준이 됐다. 1987년 1만 달러에도 못 미치던 1인당 GDP는 8년 만에 2만 달러를 넘어섰다. 2001년에는 3만1000달러를 넘으면서 영국(2만4000달러)마저 누르고 서유럽에서 제일 잘사는 나라 대열에 들어갔다. 17%를 넘나들던 실업률은 2001년 3.9%로 떨어졌다. 이때(1991~2001년)가 그 유명한 ‘켈틱 타이거’ 시기다.
사회적 대타협은 당시 총리실 산하의 국가경제사회위원회(NESC· National Economic and Social Council)가 주도했다. 이곳의 위원장(Director)인 래리 오코넬(Larry O'Connell)은 당시를 회상하며 “‘지속가능한 탄탄한 재정 기반 마련’이라는 국가적인 목표를 위해 전 국민이 각자의 역할을 했다”면서 “국민 모두가 아일랜드 경제 회복의 원동력이 된 셈”이라고 했다. 당시 사회적 대타협은 아일랜드 거시경제 정책을 논의하는 틀이었지만, 가장 핵심적 기능은 ‘임금인상 자제’로 꼽힌다. 친(親)노동자적인 정당도 없었는데 어찌 임금 관련 타협을 끌어낼 수 있었느냐고 묻자 그는 “사회적 대타협에 포함된 여러 협약은 모두 투표로 결정됐다”면서 “특정 정부나 정당에 의존하거나 연관되지 않은 자발적 합의였다”고 설명했다.
NESC는 우리나라의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처럼 기관명에 ‘노동’을 포함하지 않고 ‘경제’를 가장 앞에 쓴 이유를 궁금해했더니 오코넬 위원장은 “유럽 내 NESC와 같은 기관들은 모두 경제와 사회(Economic&Social)순으로 쓴다”면서 “물론 노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것 중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이를테면 환경과 농업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을 기관명에 다 넣으면 ‘NESLEAC’라는 식으로 이름이 너무 길어진다”고 했다. 마지막 문장은 아일랜드식(?) 유머다.
![]() |
존 매카시 재무부 차관보 겸 수석경제학자. 그는 사회적 대타협이 공공재정 부실을 불렀다고 했다. |
사회적 대타협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시스템이다. 2000년 들어 약화되기 시작한 뒤 2009년에는 완전히 파기됐다. 22년간 이를 주도했던 NESC는 지금 일종의 경제연구기관으로 남은 상태였다. 사회적 대타협을 역사에 어떻게 기록할지를 둘러싸고도 이견이 팽팽하다. 재무부의 국가예산안 편성 실무총책인 존 매카시 수석경제학자는 “1990년대 말까지는 사회적 대타협이 제 기능을 수행했지만, 2001~2002년 무렵부터는 공공재정을 붕괴시키기 시작했다”고 했다. 요컨대 ‘한때’ 도움은 됐지만, 부작용이 더 컸다는 거다. 특히 2000년 들어 이 협약이 복지와 분배에 무게가 쏠리면서다. 매카시 수석경제학자의 말이다.
“사회적 대타협에는 의료지출, 공공부문 급여, 전반적인 지출 및 세금을 감면하겠다는 국가적 약속이 포함돼 있었는데, 이처럼 중요한 재정 정책의 의사결정이 재무장관의 통제 밖에 있었습니다. 타협을 맺은 노사정의 내각 동료들에 의해 재정 정책이 결정됐고, 이게 결국은 재앙의 지름길이 됐다고 봅니다. 공공재정이 서서히 붕괴된 거죠. 흔히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아일랜드가 2010년 구제금융을 받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핵심을 잘못짚은 겁니다. 저는 아일랜드의 공공재정의 잘못된 관리가 근본적 원인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 공공재정 붕괴에 사회적 대타협이 큰 역할을 했고요.”
오코넬 위원장은 이에 대해 “NESC는 사회적 대타협의 파기를 원하지 않았지만 시대의 요구에 따라 이뤄진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겠느냐”면서도 “다만 이것이 이후 경제위기에 일조했다는 시각은 인과관계를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분명한 건 그 시기 아일랜드는 새로운 경제모델을 바탕으로 힘을 모았고, 이것이 위기 극복에 기여했다는 것”이라면서 “NESC에서는 현재도 진화된 형태의 사회적 대화 모델을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공공재정 붕괴와 구제금융
사회적 대타협이 파기된 2009년 무렵은 아일랜드가 다시금 깊은 침체에 빠질 때였다. (좀 더 정확히는 침체에 빠지면서 사회적 대타협이 깨졌다.) 그 당시 경기침체의 원인은 미국발 금융위기, 혹은 아일랜드 은행 시스템의 붕괴로 알려져 있는데, 존 매카시 말대로라면 내부적으로 곪고 있던 공공재정이 단초가 된 거다. 결국 2010년 IMF로부터 85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았고, 영국 언론은 “켈틱 타이거가 아니라 실은 살찐 고양이였다”고 ‘또’ 놀려댔다.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틀은 깨졌지만, 아일랜드는 다시 힘을 합쳐 긴축에 나섰다. 이때 추진한 재정 안정화 조치는 2010년에만 GDP 대비 13%의 조정을 도모했을 정도로 강도 높았고, 그 결과 3년 뒤인 2013년 유로존 채무국 중 가장 먼저 구제금융에서 졸업할 수 있었다. 이때 특히 ‘공무원부터’ 임금인상 자제에 나선 점이 인상 깊은데, 래리 오코넬 위원장은 “강제성 없이 공무원들 스스로 리더 역할을 자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목에서 이 나라 노동조합의 성향을 묻자 오코넬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시위·파업이 잘 없고 산업적 평화가 달성돼 있다”면서 “갈등이 표출되기 전 고용주와 노조가 앉아서 건설적인 해결책을 내는 과정과 이를 도와주는 제3기관(LEEF·Labour Employer Economic Forum, WRC·Workplace Relations Commission) 등이 체계적으로 수립돼 있다”고 했다. 그는 이어 “물론 일각에서 반발도 있었지만, 당시 노조 대표부는 ‘갈등의 일부’가 되기보다 ‘해결책의 일부’가 되는 길을 택했다”고 했다.
![]() |
파트리샤 킹 사무총장은 아일랜드 최대 규모의 노동조합인 아일랜드노동자총연맹(ICTU)의 최초 여성 의장이다. |
ICTU 최초의 여성 의장인 파트리샤 킹(Patricia King) 사무총장은 2009년 공공부문 임금 삭감 당시, 총리 협상테이블에 노조대표부로 앉았던 인물이다. 그는 “IMF의 조건에 따라 임금동결과 연금삭감에 동참하기로 했는데, 대신 ‘일자리 수’만큼은 줄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고 했다. 사기업의 경우에도 공공부문과 비슷하게 임금조정, 고용유지 방식이었지만 ‘일몰(日沒)조항’을 첨가해 위기 이후 돌려받도록 했다.
― 공무원 비중이 제일 높은 노조에서는 임금삭감에 반대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일 아닙니까.
“그 상황에서 저 같은 노조 임원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조합원들을 불러서 ‘우리 다 같이 차를 불태우고 대정부 시위를 하자!’고 외치는 거죠. 쉽지만,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는 방법이죠.”
![]() |
아일랜드노동자총연맹(ICTU)의 사무실. 삼엄함 같은 것이 전혀 없다. |
“물론 긴축은 힘든 일이기에 당시 일각에서 시위도 있었습니다. 이때 노조 대표부는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합니다. 노조의 존재 이유는 일자리를 지키고, 근로자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 시기, 그 존재 이유에 부합하는 방법은 긴축의 기간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조합원 모두의 힘이 필요했고, 그들도 이것이 경제 회복을 앞당기는 가장 이성적인 길임을 알았던 겁니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경제 회복을 위한 대가로 지불하기에 아깝지 않았습니다.”
한때 노사분규로 몸살을 앓았던 나라다. 1960~1970년대 연평균 58만5102일(개별 사업장 모두 포함)을 파업으로 날려 보냈다. 그때도 노조에서 먼저 자성(自省)의 목소리가 나왔다. 당시 노조 지도자 짐 라킨은 “높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노조는 투쟁에만 몰두한다”고 개탄했다.
근래 들어 시위나 파업이 현격히 줄어든 것을 ‘사회적 대타협’의 순기능 중 하나로 보기도 한다. 실제로 사회적 대타협 이전 연평균 250건에 달하던 대규모 노사분규는 체결 이후 3년 동안 50건 이하로 줄었다. 이에 킹 사무총장은 “사회적 대타협 조항에 ‘산업적 평화 유지’라는 게 있기는 했다”면서 “파기 이후에도 산업적 평화가 유지된 배경은 지난 22년간 구축한 사회적 대타협이 노사정 간 업무의 내용을 잘 파악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서로 대화가 통한다는 뜻이었고, 대화는 나아가 신뢰 관계를 구축하게 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요즘도 가끔 시위가 일어나기는 하지만, 굉장히 체계적인 시위”라고 덧붙였다.
한편 유머를 좋아하는 이 나라 사람들은 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에 대해 “워낙 작은 나라라 시위를 막는 경찰이 다 사촌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법인세 대폭 완화로 FDI 유치
내부적으로 긴축에 들어간 한편, 정부는 외국인직접투자(FDI·Foreign Direct Investment)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외국 기업 진출 금지 등 국수주의로 꽉 막힌 나라였다. 1987년부터 이 장벽을 완전히 허물었다. 존 매카시 수석경제학자는 “독립 이후 50년간 자급자족하려 노력했는데, 반세기 동안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머물렀다는 건 이 작은 나라에서는 그(자급자족) 경제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라면서 “1987년 위기를 계기로 정부는 외국 기업 유치에 사활을 걸었고 이를 위한 개혁을 일사불란하게 진행했다”고 했다.
우선 법인세를 유럽 최저인 10%(이후 12.5%로 상승)로 낮췄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등 인접 국가들의 법인세는 30~40%에 달했다. 나라 곳간이 어려운 와중, 세수 부족 우려에도 불구하고 내린 과감하고 용감한 선택이었다. 주요 국가와 이중과세방지 협약도 체결했다. 기업이 법인세를 이중으로 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공장 설비와 건물 토지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도 25~35%를 정부 보조금으로 지원했다. 이때 아일랜드투자진흥청(IDA)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건축개발 승인과 환경통제 허가를 제외한 전권을 갖고 외국 기업들이 공장입지 선정부터 회사 등록까지 모든 서비스를 한곳에서 받도록 했다.
2010년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에는 더 적극적으로 해외 투자 유치에 나섰다. 유로존 내 유일한 영어 사용국이고, 젊고 숙련된 노동력도 많고, 낮은 법인세율 등의 친(親)기업 정책도 많다는 강점을 바탕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생산성과 경쟁력이 살아나면서 외국인 투자와 수출이 급증했다. 킹 사무총장은 “이때 유치한 다국적 기업은 민간 부문 고용의 33%를 차지할 정도로 아일랜드 경제의 핵심이 됐다”고 했다. 다국적 기업의 법인세 세수는 (낮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국민소득의 5% 이상을 차지하며 소득세의 50%도 외국 기업에서 나온다. 2010~2017년의 기간 중 수출은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켈틱 타이거가 켈틱 피닉스로 부활한 시점이다.
한편 지난 10월 미국 주도로 주요 7개국(G7)이 합의한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 도입’이 아일랜드 경제에 부정적 요인이 될 거라 보는 시각도 있다. 아일랜드는 최저 법인세율 ‘15%’에 동참하기로 한 상태다. 그러나 현지 정계에서는 2.5% 인상의 영향은 미미하거나, 거의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존 맥카시 수석경제학자는 “최저 법인세율 동참은 오히려 기업들에 (이 나라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가지게 할 것”이라고 했다.
긴축에도 혁신 기업 투자 안 줄여
![]() |
레오 클랜시 아일랜드기업진흥청장. 그는 “아일랜드는 기본적으로 열린 시장을 추구한다”고 했다. |
‘아일랜드 기업? 들어본 적이 없는데?’라는 사람 많을 거다. 대표적으로 저가항공사 ‘라이언에어’가 있고, 지금은 영국 디아지오 그룹에 편입된 ‘기네스’가 있다. 한국에도 진출한 ‘케리그룹’은 손에 꼽히는 대형 식품·푸드테크 기업이다.
아일랜드기업진흥청(EI)은 아일랜드투자발전청(IDA)에서 1998년 자국 기업 지원 기능을 분리해 만든 조직이다. 토종 기업 육성뿐만 아니라 이들의 외국 진출을 지원하는 정부기관이다. 회원사가 되기 위한 조건 중 ‘창업 3년 내에 아일랜드에서 최소 10명 이상 고용이 가능하고 100만 유로 이상의 매출이 가능한 기업’이라는 게 눈에 띈다. 지원을 받으려면, 고용창출에 더해 수익도 내야 한다는 거다. 이런 조건을 충족한 자국 기업(회원사)이 5000개나 된다. 회원사의 고용 인력은 20만7894명에 달한다.
2000년 이후부터 아일랜드 정부는 자국 기업에 대한 투자도 꾸준히 늘렸다. 투자신용평가사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EI는 투자건수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벤처투자자다. 2020년에는 1125개의 아일랜드 스타트업에 총 4800만 유로(약 667억원)를 투자했다. 2010년 구제금융을 받을 당시에도 과학 기술과 혁신 기업 투자 예산만큼은 줄이지 않았다고 한다. 레오 클랜시 청장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투자를 줄이지 않았던 건 매우 용감한 결정이었다”면서 “결국 이들이 아일랜드 경제에 이익으로 보답하고 있다”고 했다. 회원사의 수출액 규모는 2009년 110억 유로(약 14조5000억원)에서 꾸준히 늘어 2021년 272.9억 유로(약 38조원)를 찍었다. 2021년 아일랜드의 총 수출액(1650억 유로)의 16%를 차지하는 비중이다. 한편 EI는 지원 기업의 주식을 10퍼센트 이상 소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 지분 보유가 10%면 자국 기업이 해외 기업에 의해 인수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것 아닙니까.
“아일랜드는 기본적으로 ‘열린 시장’을 표방합니다. EI가 지분 보유 비중을 높여 인수되는 것을 막는 것은 시장에 간섭하는 일이 됩니다. 우리의 임무는 회사가 성장하고 유지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클랜시 청장은 IDA의 임원으로 있다가 지난 2021년 EI 청장으로 부임했다. 해외 기업 유치와 자국 기업 수출 지원 업무까지 두루 파악하고 있는 셈이다. 문득 이 나라는 자국 기업보다 ‘외국 기업’을 더 내세우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아일랜드의 경제, 산업 구조상 다국적 기업과 자국 기업의 이상적인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물어봤다. 그는 “이상적인 비율이 있긴 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에 대한 강한 견해는 없다. 토착 기업이 경제에 더 큰 부분을 차지할 수 있게 될 거라 믿을 뿐”이라면서 “아일랜드에 다국적 기업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이들이 국가에 경제적 이익을 많이 제공하는 것도 사실이다. 매우 긍정적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 혹자는 “아일랜드에서는 외국 기업의 목소리가 더 크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이 정도면 자국 기업에는 역차별 아닙니까.
“수치로 말씀드리면, EI는 IDA의 25배의 인력과 예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일랜드가 자국 기업의 지원에 결코 소홀하지 않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가치를 둬야 할 점은 ‘기업의 경제적 기여’이지 그 기업이 어디 출신인지를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의 관계
![]() |
‘더블린 4’ 지역에 위치한 미국대사관. 이곳에는 경호원이 단 1명밖에 없다. |
미국대사관은 특히 크고 멋들어지게 지어졌다. 그런데 경호원은 단 1명이다. 미국과 아일랜드의 외교적 관계가 잘 드러나는 지점이다. 권기환 주아일랜드 대사는 “실제로 미국대사관의 가장 큰 업무 중 하나가 해킹 방지 등 이곳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 센서스에 따르면 미국 인구(약 3억 명) 중 10% 이상(3400만 명)이 아일랜드계다. 대기근(1845~1852년) 당시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이 먹고살기 위해 미국 등지로 떠났는데, 이때 뿌리내린 거다. 역대 미국 대통령 46명 중 바이든 포함 23명이 아일랜드계다. 미국 대통령은 ‘표심’을 얻는 차원에서라도 아일랜드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국 대통령 후보들은 대선을 앞두고 관례처럼 더블린에 들른다. 아일랜드의 국경일인 ‘성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 때는 아일랜드 총리가 항상 미국을 방문해 함께 칠면조를 먹는 전통이 있다.
![]() |
권기환 주아일랜드 한국 대사. |
호주 경제·평화 연구소의 ‘2022년 세계평화지수(GPI)’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평화 수준은 세계 3위다.(1위는 아이슬란드, 한국은 43위)
“정치 시스템이 안정적이란 것도 이 나라의 장점입니다. 정당색이 비슷한 공화당(Fianna Fail), 통일당(Fine Gael)이 번갈아가며 연정을 구축하는, 사실상 양당 체제죠. 따라서 다른 유럽연합 국가들처럼 정권 교체기 혼란이 없습니다. 급격한 경제 정책 변화가 없는 데다, 대(對) 기업 기조에도 지속성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신뢰감을 쌓을 수 있었던 거죠.”
높은 대외 의존도는 취약점
![]() |
김태희 KDB 산업은행 아일랜드 법인장. |
웃다 말고 문득 이 나라의 ‘높은 대외의존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김태희 KDB 산업은행 아일랜드 법인장은 2003~2006년 켈틱 타이거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당시 아일랜드에 3년간 머물렀다, 지난 2019년 다시 왔다. 현재 아일랜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KDB 산업은행은 지난 1997년 상업 차관(借款)의 니즈가 커지던 시기 한국 금융사로는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로 이곳에 진출했다. 김 법인장은 “약 15년 만에 다시 와 본 아일랜드는 겉으로 보기에는 달라진 게 없다. 표면적인 지수들은 다 좋다”면서 “IMF 구제금융을 다 갚고 나서는 심지어 한동안 연평균 10%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켈틱 피닉스’로 부활했는데 구조를 살펴보면 이 무렵부터 대외의존도는 더 높아졌다”고 했다.
강유덕 한국외대 교수 또한 ‘경제위기 이후 아일랜드 경제의 회복과 그 요인에 관한 연구’에서 “부활의 핵심은 ‘외국인 투자유치·수출확대’에 기반을 둔 켈틱 타이거 모델의 복원이었다”면서 “반면에 이 과정에서 아일랜드 경제는 더욱 대외의존도가 높은 모습을 갖게 됐다”고 썼다.
현지 정·재계 관계자들은 ‘높은 대외의존도’와 관련해서는 “인정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존 매카시 재무부 수석경제학자는 “아일랜드 경제모델은 본질적으로 대외의존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좀 더 다양한 영역에서 경쟁력을 갖춤으로써 의존도를 줄여나가겠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경제모델의 큰 틀은 유지할 것이며, 세계경제가 진화하는 방향이 곧 아일랜드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더블린 시민들이 느끼는 경제
아일랜드에는 크게 세 개의 정당이 있다. (애플, 페이스북, 구글이 아니라) 공화당, 통일당, 녹색당이다. 보수 색채의 공화당, 통일당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잡아왔다. 현 총리인 미홀 마틴은 공화당의 대표였다. 그런데 2년 전 총선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마이너’ 정당이었던 ‘신페인(Sinn Fein)’ 당이 역대 최대 의석수를 얻은 것이다. 신페인당은 북아일랜드공화국군(IRA)과 관련된 민족주의 좌파 정당이다. 기존 정당과 정책에 대한 불만이 늘어난 결과로 풀이된다. 출장 기간 동안 머물렀던 로지(Lodge)의 운영자인 패트릭 할핀(Patrick Halpin) 씨는 “신페인당의 인기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이들이 그간 보여준 성과가 없기 때문에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아일랜드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시민들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인터뷰가 없던 주말, 더블린에서 가장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중 하나인 파넬스트리트로 나가봤다. 그곳에서 셰이머스 화이트(Séamus White·54)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더블린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그는 과거 한 지역신문에서 3년간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고 했다. 질문을 받자 화이트 씨는 대번 “기사의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아직 미정”이라고 했더니 “‘아일랜드 경제, 과연 지속가능한가’가 적당해 보인다”며 운을 뗐다.
“특히 부동산 임대 시장 문제가 심각합니다. 외국 자본과 함께 수많은 고비용 인력들이 유입되면서 임대 가격을 급속히 올렸어요. 더욱 심각한 것은 외국투자그룹 등에서 방을 100개씩 사재기를 한 다음 비싼 가격으로 월세를 내놓는다는 겁니다. 이들은 사람들이 매물을 접하기도 전에 웃돈을 주고 거래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는 기회도 없어요. 더블린에서는 지금 허름한 방 한 칸 구하기가 힘듭니다. 겨우 몸을 누일 만한 방의 월세가 900유로(125만원)씩 합니다. 유학을 온 학생들은 방이 없어 6인 벙커침대가 있는 곳에서 생활하기도 해요. 이건 인권 침해입니다.”
그는 “공화당, 통일당은 지난 수십 년간 번갈아가며 서로의 등을 긁어주는 존재로, 수십 년간 외국 기업 유치에만 집중했지 시민들의 주거 사정은 돌보지 않았다”면서 “기존 정당들과 반대 노선을 걷는 신페인당이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데, 만일 이들이 집권을 해 기업들을 규제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에는 어떡할 것이냐, 그에 대한 대비가 전혀 안 돼 있다”고 했다.
이날 더블린의 한 대학교에 다니고 있는 케이트 레이(Kate Wray·19)라는 학생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은 켈틱 타이거 시절 공무원이었고, 그중 어머니는 복지부의 예산 담당 직원이었다고 한다. 레이 씨는 “부모님은 누누이 켈틱 타이거 시절이 더 살기 좋았다고 말한다”며 마찬가지로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을 언급했다. 레이 씨는 “조금 살 만한 곳은 월세가 1200유로 정도 하는데 그 마저도 매물이 올라오자마자 나간다”면서 “아일랜드에서 독립은 요원해 보인다”고 했다. 그녀는 이어 “나는 교수가 되길 꿈꾸는데, 나라 전체가 ‘IT와 바이오’ 직종에만 기회를 부여하고 있고 나머지 인재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고 있다”면서 “이런 나라가 과연 지속가능할까? 대학 졸업 후 다른 나라에서 진로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동산 거품, 그 후… 남은 과제들
![]() |
부동산 시장 전문가인 로난 라이온스 트리니티칼리지 경제학 교수. |
아일랜드에서 생애최초주택 구입자의 LTV는 90% 이상이다. 두 번째, 혹은 그 이상도 80%나 된다. 대출금리는 유럽연합에 따라 3% 정도밖에 안 된다. 대부분의 사람이 집을 살 수 있지 않겠나 싶었는데 라이온스 교수는 “대출을 받는다고 해도 집이 없다. 여러 신혼부부가 매물이 나올 때까지 부모와 함께 살며 저축을 한다”면서 “높은 건설비용 또한 걸림돌”이라고 했다.
켈틱 타이거 시절 고도성장은 아일랜드 은행들을 국제신용시장으로의 접근을 용이하게 했다. 이를 통해 2008년 금융위기 발생 전까지 아일랜드는 막대한 자금을 차입해 대출을 실시했다. 당시 은행은 첫 주택 구입자에게 집값의 100%까지 저리로 대출해줬다. 부동산 대출이 단기간 폭증했고, 덩달아 가격도 급등했다. 1996~2007년 집값이 무려 네 배로 뛰었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면서 건설 붐이 일었다. 건설업이 GDP에서 20%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고, 건설업의 고용 인력이 전체 고용의 15%나 됐다.
2007년 들어 서서히 거품이 꺼지는 신호가 나타났다. 이 무렵 정부는 연착륙을 시도하지 않았다. 이듬해인 2008년 터진 글로벌 경제위기로 부동산 시장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라이온스 교수는 “거품 붕괴 이후 10년 전부터 은행의 신용 문제는 정상화 단계를 밟았지만, 부동산 공급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과거 건설 붐 때 지은 집들은 교통, 교육, 생활 인프라가 없는 외곽지에, 그야말로 ‘무분별한 공급’이 주를 이뤘다. 이들 지역은 슬럼화 된 상태이고 더블린 시내에는 살 만한 집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 그럼 저 밖에 수많은 타워크레인은 뭘 짓고 있는 겁니까.
“대부분이 호텔, 사무실과 같은 상업시설입니다. 꼭대기 층에 거주시설을 넣는 식이죠. 물론 최근 들어서는 아파트도 조금 짓고 있습니다만, 지난 15년간 짓지 않았던 걸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더블린에서만 5만~7만 가구가 더 필요한데, 현재 공급 예정량은 몇천 가구에 불과해요.”
더블린 시내에는 유휴지가 없다. 때문에 대부분 재건축, 재개발이다. 고도 제한 등 규제도 예전보다 완화된 상태다. 다만 공사비용이 걸림돌이라고 한다. 과거 건설 붐 때 임금이 오른 데다, 버블 붕괴 이후 숙련된 건설기술자들이 이민을 떠나기도 했다. 공급이 적으니 가격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서울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대략 10억원 정도면 방 3개에 정원 있는 주택을 살 수 있다.)
부동산, 규제보다 공급에 초점 맞춰야
![]() |
더블린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더블린 4’ 지역의 한 부동산에 매물 사진들이 붙어 있다. |
“거품은 아닙니다. 다만 건강하지는 않아요. 이전까지는 신용거래가 너무 많아 가격이 올랐지만, 지금은 집이 너무 적어 집값이 오른 겁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 등으로 집값은 내년, 내후년에 떨어질 수도 있고, 침체기가 올 수도 있어요. 이렇게 가격이 오르내리는 건 ‘호황과 불황(Booms and Bust)의 사이클’로, 정상입니다. 거품과 붕괴(Bubble and Crash)는 더 극적인 것으로, 이와는 다릅니다.”
― 그런데 왜 건강하지 않다는 겁니까.
“공급이 계속 악화됐기 때문이죠. 신용거래에 영향을 받지 않았던 임대 시장은 더욱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일랜드의 유주택자 비율은 65~70% 정도인데, 소위 말해 ‘주택 보유자가 점유한 시장’입니다. 5년 전 Daft(아일랜드서 가장 큰 부동산 거래 사이트)에는 3000~4000개의 임대 매물이 올라왔었는데 지난 18개월 동안은 700개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건강한 수준은 1만~1만2000개 정도로 봅니다. 지금 임대가격은 2007년 거품 시기보다 50% 더 높아요. 코로나19 때 억눌렸던 수요가 맞물리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죠.”
진보 성향의 경제학자로 알려진 한국의 모(某) 교수는 지난 정권 때 “아일랜드의 부동산 시장은 (건설 붐 시기) 꾸준한 공급에도 가격이 폭등했다”면서 “(우리 사회 또한) 부동산 가격 폭등을 막으려면 공급을 늘릴 것이 아니라 투기수요를 차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해당 발언에 대해 라이온스 교수는 “실제로 ‘아일랜드는 공급을 늘렸는데도 가격이 올랐다. 고로 공급이 가격을 낮춰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양한데, 공급과 임금이 함께 증가하던 건설 붐 당시에는 느슨한 신용대출 문제가 가격 상승을 견인한 것이고, 일반적으로 모든 추가 공급은 집값을 저렴하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신용대출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지만, 그보다는 공급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라이온스 교수는 또 “최근 공공임대주택을 원하는 일부 시민의 요구에 따라 정부는 사회 주택을 위한 공적 자금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정책안을 내기도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얼마를 쓰느냐보다는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부동산 시장에 있어 정부의 역할은, 우선 시장의 역할을 이해한 다음, 시장이 돌보지 못하는 나머지(소외 계층)를 책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는 克英, 反英 감정은?
흔히 아일랜드는 한국과 자주 비교된다. 기질이 비슷하다는 이유에서다. 흥과 한(恨)이 있고, 정도 있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순하고 친절하다. 아일랜드에서 14년째 거주하고 있는 권순주 아일랜드한인회 이사(프레스티지유학 대표)는 “이곳에 사는 300명의 한인은 대부분 ‘사람’ 때문에 정착을 결심했다”고 했다.
식민지배를 받았고, 분단국이며, 기근을 겪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비슷하다.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만난 미셸 윈드롭(Michelle Winthrop) 주한 아일랜드 대사는 “한국인과 비슷하다는 얘기는 나도 많이 들었다”면서 “‘한국인들이 밥 먹었느냐’고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아일랜드인도 먹을 것에 대한 애착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곳 음식은 (영국보다) 맛있고, (비싸지만) 양도 많다. 반영 감정은 어르신과 특정 정당 지지자 등 일부에게만 남아 있다고 한다.
물론 올리버 크롬웰에 대해서는 예외일 수 있다. 2008년 아일랜드 총리였던 버티 아헌이 영국의 고관대작을 만난 자리에 크롬웰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며 회담장을 박차고 나왔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아헌 총리 또한 적극적으로 ‘개방 정책’을 편 인물 중 하나다. 여담이지만, 더블린에 머무는 동안 우연히 아헌 총리를 만날 뻔(?)하기도 했다. 은퇴 이후 그는 더블린 모처에 살고 있는데, 시내 한 펍에 매일 저녁 9시면 나타나 동네 주민들과 맥주를 마신다고 한다. 펍의 이름까지 전해 들었지만, 아쉽게도 그는 다른 유럽 지역으로 휴가를 떠난 상태였다.
반영 감정에 대해 미셸 윈드롭 대사는 “영국인의 25%가 아일랜드 출신이다. 한 다리만 걸치면 영국과 혈연관계로 얽혀 있어 (정부 차원이 아닌) 일반 시민들은 반영 감정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다”면서 “다만 둘의 차이는 있다. 시장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아일랜드가 바깥으로 눈을 돌리고, 세계 경제를 받아들이는 동안 영국은 유럽연합을 떠났다. 경제를 세계화하려는 의지가 우리처럼 열정적이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영국은 훨씬 보호주의적인 셈”이라고 했다. 어쩐지 ‘고상한 한방’처럼 들렸다.
신자유주의식 해법?
기질이 비슷하다고 해서 이를 확대 해석하는 건 무리일 수도 있다. 7박 8일간 이곳에 머물며 느낀 점은 아일랜드와 한국의 상황은 여러모로 다르다는 거였다. 제아무리 팔팔한 장기라도 무턱대고 이식하면 부작용이 생기는 법이다. 이들이 성공했다고(지금까지는 그렇지만 앞으로는 또 모른다) 이 시스템을 들여오기에는 난관이 많다. 우리는 영어도 쓰지 않고, 유럽연합이라는 단일시장도 없고, 미국으로 건너가 뿌리내린 3400만 명의 인구도 없다. 윈드롭 대사는 이에 “한국처럼 아일랜드도 가진 거라곤 사람과 아이디어뿐이었고, 이를 교육과 기술 개발 분야에 적극 활용해 지금에 이르렀다”면서 “국민들이 뭘 할 수 있는지 살피고, 여기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태희 법인장은 “지정, 지경학적 조건 등 여러 가지가 다른 아일랜드 시장을 우리나라와 비교하기에는 무리”라면서 “다만 법인세 감세 등 해외 기업 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 자세 는 배울 만하다”고 했다.
재무부에 따르면 아일랜드의 올해 국가부채(2350억 유로·약 327조원)는 GDP 기준 55% 미만으로 유럽연합에서 가장 낮다. GNI 기준으로 보면 99% 이하로 OECD 평균이다. IMF는 팬데믹으로 인해 올해 채무비율이 다소 상승했지만, 서서히 더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흔히 아일랜드의 경제성장을 두고 신자유주의에 많이 빗댄다. 보수 진영에서는 ‘신자유주의식 해법으로 성공했다’고 하고, 진보 진영에서는 이면의 부작용들을 언급하며 ‘신자유주의식 정책의 실패’라고 하는 식이다. 존 매카시 수석경제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아일랜드의 위기 회복은 적극적인 FDI 유치와 수출 주도 성장 모델’에 의해서 달성될 수 있었습니다. 이는 특정한 경제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실용적인 접근 방식’이라고 하겠습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