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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스가 日 총리와 韓日 관계

‘결과를 만들어내는 정치가’ ‘이벤트’는 안 통한다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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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가, ‘아름다운 나라’ 내세웠던 아베와 달리 ‘自助努力’을 내세우는 무색무취한 정치인
⊙ 막후에서 남을 도와왔다는 점에서 ‘구로코’, 총리 취임 후에는 참모·전문가에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스가루’라는 별명 얻어
⊙ 스가와 문재인, ▲아버지의 전쟁 체험 ▲대학 시절 이념 갈등 경험 ▲해외 경험 부족이라는 점에서 비슷
⊙ 日 총리 관저에서는 한국 정치인·관료의 잇단 방문 이후 “당분간 한국인 접견 멀리하겠다”는 얘기 들려

劉敏鎬
1962년생.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일본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 졸업(15기) / 딕 모리스 선거컨설팅 아시아 담당, 《조선일보》 《주간조선》 등에 기고 / 現 워싱턴 에너지컨설팅 퍼시픽21 디렉터 / 저서 《일본직설》(1·2), 《백악관의 달인들》(일본어), 《미슐랭 순례기》(중국어) 등
2020년 9월 16일 총리로 당선된 직후 기자회견을 하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사진=AP/뉴시스
  ‘스가루(縋る)’.
 
  최근 줌(Zoom) 화상회의를 하던 중 알게 된, 요즘 도쿄에서 유행한다는 일본어다. ‘기대다, 의지하다(depend on, rely on)’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이 유행어가 가리키는 주인공은 2020년 9월 16일 총리에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다. 총리 이름인 ‘스가’를 동사 ‘스가루’와 연결시킨, 일종의 언어적 패러디(parody)라고 볼 수 있다. ‘스가=기대고 의지하는 인물’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썩 좋은 의미는 아니다. 스가 총리는 스스로 결정하고 실천하는 능동적인 정치가가 아니라 뭔가 약하고 늦고 수동적인 캐릭터라는 느낌을 준다. ‘스가루’ 현상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총리 취임 직후 누렸던 70% 가까운 지지율도 50%대로 급강하했다(2020년 12월 10일 기준).
 
  스가가 급추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총리 취임 100일을 넘어선 후 갑자기 밀어닥친 코로나19 재확산이 가장 큰 이유다. 지방경제 진흥책으로 내세운 ‘여행 캠페인(Go To キャンペーン)’이 가장 큰 화근(禍根)이다. 지방으로 여행 갈 경우 현지 식사나 숙박에 드는 비용의 일부분을 정부가 부담하는 정책이다. 전염병으로 파산 직전에 이른 지방 관광업계를 돕기 위한 관제(官製) 캠페인이었다. 그러나 2020년 11월 말부터 갑자기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서 ‘여행 캠페인=전염병 확산의 원인’이란 비판이 터져 나왔다. 지방 현지 주민의 반대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스가는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주민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탈출구가 없는 여행업계를 우선시하는 과정에서 판단을 미룬 것이다.
 

  기자회견장에 나온 스가는 “전문가의 의견에 의거해 결정하겠다”는 원론적인 대응에 그쳤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의 반대가 거세지고 나서야 스가는 부분적으로 여행 캠페인 중단에 들어갔다. ‘스가=스가루’란 유행어가 시중에 등장한 것도 이 무렵부터다.
 
  전염병은 육체적·병리학적 차원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인간의 심성 자체를 왜곡시킨다. 트럼프 대통령에게서 보듯, 혼자 결정하면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다고 비난받기 십상이다. 반대로 전문가를 앞세우면서 뒤로 빠지면 우유부단한 리더십으로 몰리기 십상이다. 이런들 저런들 모두 비난이다. 코로나19는 장고(長考)가 필요치 않다. 돌다리를 너무 두드려 아예 부서질 때까지 확인, 재확인하는 것이 전통적인 일본식 리더십이다. 스가는 일본식 리더십의 전형(典型)에 해당되는 총리다.
 
 
  참모·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리더십
 
  이제 막 시작됐지만, ‘스가=스가루’로 대하는 논조의 기사가 한국에서도 넘쳐나게 될 것이다. 참모와 전문가 없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판단 못 하는 우유부단 단절형 총리라는 의미다. ‘아베=극우(極右)의 화신(化身)’이라면서 ‘곧 끝날 총리’라고 봤던 과거의 논조와 비슷한 ‘반일(反日) 필승’ 식의 스가 폄하인 셈이다.
 
  스가는 연설문 하나도 임의로 발표하지 않는 정치가다. 기자회견에서의 질문도 건너뛴다. 상황에 맞춰 말하는 식의 임시방편은 없다. 참모가 써준 원고와 정부 정책으로 확정된 것만 발표한다. 따라서 ‘스가=스가루’란 별칭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스가=스가루’가 전부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전염병 대응과 관련해서는 늦고 모자라겠지만, 다른 분야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일(韓日)문제를 대하는 스가의 리더십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스가루, 즉 참모나 전문가의 집단적 도움을 받아 한국에 대응해나갈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을까?
 
  ‘스가=스가루’는 어떤 영역, 무슨 사건인지에 따라 달라질 사항이다. 사실 전염병 대응과 한일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현안이기도 하다. 아베에게 퍼부었던 식의 무조건 비난과 폄하가 애국(愛國)의 전부는 아니다. 냉철한 머리와 상황분석이 필요하다. 출발점은 인간 스가, 정치가 스가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관찰과 분석이다.
 
  스가는 독자적 색깔이 없는 ‘무색무취(無色無臭)’의 정치인이다. 아베처럼 야스쿠니(靖國)에 매달리지도 않는다. 스가는 자유민주당 총리 경선에 나설 당시 “아베 정치를 그대로 계승할 생각”이라는 말만을 되풀이했다.
 
  스가가 운영하는 정치 블로그(www.ameblo.jp/suga-yoshihide)는 무색무취 정치가인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정치가로서 꿈꾸는 독자적인 세상이나 미래가 안 보인다. 블로그 첫 페이지의 타이틀로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있다(意志あれば道あり)’는 문구가 뜬다. 일본인 대부분이 알고 있는 말인데, ‘의지가 있는…’의 뒤에는 반드시 특정 관용구가 이어진다. ‘모든 것은 자조노력(自助努力)에서 시작된다(すべては自助努力に始まる)’는 말이다.
 
  아베는 집권 당시 자신의 행정부를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내각’이라고 표현했다. ‘아름다운 나라(美しい国)’는 아베가 생각하는 일본의 이상향(理想鄕)이다. ‘제 나라를 지킬 능력과 더불어 전통과 문화에 주목하는 땅’이 아베가 주장했던 ‘아름다운 나라’의 핵심이다.
 
  스가에게는 아베와 같은 꿈이나 미래가 없다. 그 대신 ‘의지가 있으면 길이 있다’는 식의, 노력과 최선에 기초한 개인적 차원의 인생 극복기를 블로그 첫머리에 내세운다.
 
 
  일본인들, ‘흙수저 정치인’ 안 좋아해
 
일본인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왼쪽) 같은 ‘흙수저 정치인’보다는 오다 노부나가 같은 화려하고 품격 있는 정치인을 좋아한다.
  잘 알려진 대로 일본인 사이에 통용되는 스가의 이미지는 ‘구로닌(苦勞人)’이다.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 성공한 인물’이라는 의미다. 이른바 서민파(庶民派)를 상징하는 정치가다.
 
  스가는 ‘3무(無)’ 정치가다. 부모의 후광(後光), 파벌(派閥), 빼어난 학력(學歷)이 없다. 추위의 상징인 일본 아키타(秋田)현 농가 출신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강원도 산골짜기보다 더한 극한 오지(奧地)가 아키타 지방이다. 고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上京)해 도쿄 공장에 취직했다. 2년 뒤 호세이대(法政大) 법학부(야간대학)에 진학했다. “학비가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야간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정치에 입문한 그는 국회의원 비서관을 거친 뒤, 시(市)의원으로 일하다가 1996년 자민당 공천(公薦)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48세 때 처음으로 전국 차원의 정치가가 된 셈이다.
 
  한국인 기준에서 볼 때 ‘구로닌 정치가’는 박수와 존경의 대상이다. ‘흙수저 정치인’으로 한순간 영웅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좀 다르다. 존경과 박수야 있겠지만, ‘결코’ 가까이하고 싶은 매력적인 인물은 아니다. ‘구로닌’보다는 시련 없이 좋은 환경하에서 아름다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더 높다. 라면집에서 먹다 남은 만두를 주머니에 넣어 가면서 저녁때 먹겠다는 서민파 정치인보다는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된 레스토랑에서 프랑스 와인에 정통한 정치가를 선호한다. 음식 마니아로 이탈리아 오페라에 심취했던 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그 좋은 본보기다.
 

  16세기 전국(戰國)시대의 세 주역인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대한 평가도 비슷하다. 세 사람 가운데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단연 오다 노부나가다. 그는 귀족 출신에다 뛰어난 패션 감각, 노래, 외국 음식, 문화에 민감한 풍류가(風流家)에 가까운 인물이다. 인생도 즐기면서, 권력을 마음껏 구가(謳歌)했던 인물이다.
 
  세 사람 중 일본인이 가장 멀리하는 인물은 누구일까? 천민(賤民)에 가까운 신분에서 시작해 최고 권력자 자리까지 올라간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금(金)으로 도배한 절(寺)에다 고가(高價)의 다도(茶道) 세트와 함께 엄청난 수의 여자를 주변에 두었다는 그는 일종의 벼락부자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일본인들은 그를 가난하고 힘들게 자란 과거의 콤플렉스를 만회하기 위해 평생을 보낸 ‘권력의 노예’로 본다.
 
  혹자는 국졸(國卒) 출신으로 총리에 오른, 이른바 ‘컴퓨터 달린 불도저’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를 언급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전(戰前) 모순에 대한 반동과 불만의 결과였다. 일본인들은 내심 화려한 오다 노부나가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같은 정치인을 좋아한다. ‘구로닌’ 스가를 존경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스가빠’를 만들어 열광하지는 않는 게 일본인들이다.
 
 
  ‘구로코’
 
  스가에게 따라붙는 별명 중 ‘구로코(黒子)’도 빼놓을 수 없다. 구로코는 일본 전통극 가부키(歌舞伎)에서 유래한 말로, ‘어둠 속에서 극의 진행이나 배우를 지원하는 도우미’를 뜻한다. 스가는 총리에 오르기까지의 정치인생 대부분을 구로코로 보냈다. 1974년 정치 입문 직후 중의원(衆議員) 비서관으로 출발한 이래 2006년 맺어진 아베와의 관계에서 보듯, 자신의 보스를 음지(陰地)에서 보좌해온 인물이다. 그가 ‘일본 정치무대에서 발이 가장 넓은 정치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구로코 정치 경력의 부산물이다. 스가는 부모의 후광이나 파벌, 학맥은 없어도 구로코로서 쌓은 인맥(人脈)은 일본 최대를 자랑한다.
 
  스가에게 항상 따라붙는, ‘점심·저녁을 각각 두 번 먹는 정치인’이라는 말이 있다. 한정된 시간에 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스가식 정치인 셈이다.
 
  구로코 스가는 그런 막강한 인맥을 자신만을 위해 활용하지 않았다. 아베를 비롯해 자신의 보스들을 위해 활용했다. 만나는 사람들의 생각과 상황을 보스에게 사심(私心)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스가식 정치의 핵심이었다. 용비어천가식 아부가 아니라, 객관적 전달자로서 믿을 만한 구로코의 역할을 해온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스가의 현황 파악에 관한 노하우다. 스가 반대파는 스가가 NHK를 국유화(國有化)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한다. 관방(官房)장관 재직 시 NHK는 물론 방송·신문 관계자들을 많이 만난 것이 그 같은 추측이 나오는 이유일 듯하다.
 
  스가는 미디어 계통 사람들과의 인맥이 특히 강하다. 경영인뿐 아니라 방송 출연자와의 만남도 다반사다. 여론이나 현황을 현장에서 확인하자는 것이 스가의 생각이다.
 
  스가는 정치 입문 이래 대중지(大衆紙)의 상징인 《요미우리신문(讀賣新聞)》의 고정칼럼 ‘인생안내(人生案內)’를 매일 읽는다고 알려져 있다. ‘인생안내’는 고부간 갈등, 연인 간 불화, 직장상사 갑질 등에 관련된 질문과 그에 따른 조언을 담은 코너다.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기사지만, 스가는 이를 통해 인간백태와 사회 전체의 표류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치적 대안(代案)을 모색하는 셈이다. 이해관계에 밀착된 특정 집단의 주장만이 아니라 거울로써 사회 전체를 관찰하는 것이다. 아베가 일본 헌정(憲政) 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전방위 구로코’ 스가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총리의 하루
 
  스가는 총리가 된 이후 현장 중심 전방위 정치가로 나섰다. 일단 양적·질적으로 만나는 사람이 엄청나다. 일본 신문·방송은 총리 동정란을 매일 발표한다. 하루 전 총리의 일거수일투족이 전부 공표된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한마디로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치열하고 빡빡하다. 어느 정도인지, 2020년 11월10일자 스가의 동정란을 살펴보자.
 
  06시44분 관저 도착, 산보
  07시24분 관저 출발
  07시29분 오쿠라호텔 관방참사관 접견, 아침식사
  08시14분 호텔 출발
  08시17분 관저 도착
  08시26분 국가안전보장회의(8시33분까지)
  08시42분 각의(8시56분까지),
  09시05분 관방부장관 면담(9시27분까지)
  10시30분 홋카이도 지사 면담(10시40분까지)
  10시46분 회계감사원장 접견(10시56분까지)
  11시02분 홋카이도 지사로부터 북방영토관련요청서 접수 방송(11시20분까지)
  11시30분 전국 협동조합 관계자와 자민당 의원 접견(11시45분까지)
  12시51분 관저 출발
  12시52분 국회 도착
  12시54분 중의원 본회의장 도착
  13시02분 중의원 본회의 개회
  14시51분 중의원 본회의 산회(散會)
  14시52분 국회 출발
  15시40분 한국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에 의한 표경(表敬)(26분간)
  16시07분 총리보좌관 접견(16시15분까지)
  16시16분 디지털 네트워킹그룹 접견(16시30분까지)
  16시32분 남녀공동참여담당문제 대신과 국장 접견(16시46분까지)
  16시55분 요코하마 상공인 대표단 접견(16시05분까지)
  17시06분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내각정보관 접견
  17시17분 국가안전보장국장 접견 끝
  17시18분 내각정보관 접견 끝
  17시41분 코로나19 대책본부 방문(18시01분까지)
  18시24분 관저 출발
  18시31분 오쿠라호텔 레스토랑에서 자민당·공명당 중진의원 4명과 식사
  20시12분 호텔 출발
  20시18분 중의원 관사 도착

 
 
  문재인 대통령의 하루
 
  분 단위로 이뤄지는 총리의 동정은 숨쉬기조차 힘들 정도로 바쁘다. 스가뿐 아니라 일본 역대 총리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접견 인물의 수(數)로 보면 스가가 역대 어떤 총리보다 많다. 그는 총리 관저 근처인 중의원 숙소에 거주한다. 출퇴근 시간을 줄이면서 곧바로 행동에 나서는 데 편하기 때문이다. 스가가 머무는 숙소는 전체 25평(82.6m2) 정도로, 방 3개가 전부다. 휴일 식사는 다른 중의원들도 이용하는 공용 공간에서 한다. 스가는 아베와 달리 건강하다. 식사를 하면서 외부인 접견을 하는 경우도 많다.
 
  스가의 동정을 보다가 한국 대통령의 동정이 궁금해졌다. 처음으로 청와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살펴봤다. 11월 10일 청와대가 밝힌 문재인 대통령 동정이다.
 
  09시20분 일일 현안보고
  11시 신임대사 신임장 수여식
  11시40분 영상 메시지 촬영
  15시30분 비서실 업무현안보고
  17시30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의 통화

 
  5개 일정이 전부다. 언제 끝났는지, 참가자가 구체적으로 누군지에 대한 설명도 없다. 다른 날의 동정을 봐도 거의 비슷하다. 대략 하루 5개 정도의 일정이 대통령의 업무로 잡혀 있다. 한일 정상(頂上)의 일정을 단순비교해서 우위의 기준으로 삼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접견 인물의 수나 영역, 현장이나 정치인과의 만남이란 측면에서 보면, 한일 정상의 업무 행태는 너무도 다르다.
 
 
  박지원 국정원장의 방문은 ‘表敬’
 
스가 일본 총리의 일정표. 박지원 국정원장이 ‘表敬’차 총리 관저를 방문했음을 볼 수 있다.
  동정과 관련해 필자가 스가의 2020년 11월10일자에 주목한 이유는 박지원 국정원장의 관저 방문 때문이다. 스가 취임 후 처음으로 한국 고위급 방문이 이뤄진 날이다. 흥미로운 것은 박지원 원장의 관저 출입이 26분간의 ‘표경(表敬)’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이다. 표경은 ‘경의를 표하기 위해 왔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쓰는 말로 ‘예방(禮訪)’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까?
 
  박지원 원장은 관저 방문 당시, 스가가 자신의 책에 사인을 해줬다고 밝혔다. 한국 언론에는 올림픽, 납치문제(일본인 납북자 문제), 한일 정상 간 화해에 관한 굵직한 얘기들이 논의됐다고 하는데, 총리 동정을 보면 ‘표경’이 방문의 주된 목적으로 되어 있다.
 
  주목할 부분은 표경을 전후해 스가와 일본 안보 관계자들의 접견 횟수다. 11월 10일 당일만이 아니라, 그 이전 이후의 국가안전보장국장과 내각정보관과의 접견이 하루 평균 2회 이상 이뤄졌다. 박지원 원장 표경을 둘러싼 준비와 대응책에 관한 논의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도 ‘스가=스가루’라고 비난할 수 있겠지만, 현장 전문가와 참모를 통한 대응이 너무 신속하다.
 
  필자는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대통령 동정을 살펴보면서 혹시 박지원 국정원장의 일본 방문과 관련한 일정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현안 보고’에 혹시 그런 내용이 포함되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대통령 동정상으로는 그와 관련된 구체적·각론적 차원의 대응이 있었는지 여부는 알기 어렵다.
 
 
  스가와 문재인의 공통점
 
  가정환경이나 성장기의 배경을 알면 지도자의 리더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스가의 리더십을 분석하면서 문재인 대통령과 비슷한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점이 접점(接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헝클어진 한일문제를 풀어가는 단서가 될 수도 있다.
 
  첫째, 두 사람 모두 전쟁 당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경험을 한 아버지를 두고 있다. 스가의 아버지는 만몽(滿蒙)개척단 출신의 전쟁 생존자였다. 스가의 아버지는 1941년 만주로 건너갔다. 1945년 패전(敗戰) 직전 소련의 공격으로 같은 고향 출신 개척단원 376명 중 273명이 죽었다. 패전이 발표되던 날 할복자살한 사람까지 포함할 경우, 이주민 중 20%만이 무사히 귀향(歸鄕)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아버지는 흥남철수 때 남한으로 내려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두 사람 모두 대학 재학 시절 극심한 이념갈등을 경험했다. 단카이(團塊) 세대인 스가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은 폭력도 불사하는 ‘안보투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다. 스가 본인은 공장에서 일하면서 생존에 매달렸지만, 당시 일본 대학은 이념으로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도 유신 시절 대학에 다니면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셋째, 두 사람 모두 외국 경험이 부족하다. 두 사람이 정치인으로 성장하던 시기는 일본과 한국 모두 외국으로 뻗어 나가던 시기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세계와는 거리를 두고 국내 문제에 몰입했다.
 
  적(敵)은 항상 가까이 있다고 했던가? 필자 경험상 서로 비슷하고 서로 잘 알수록 정반대에 설 수도 있다. ‘우리’라면서 웃음과 함께 다가올수록, 한층 더 잔인하고 살벌하다.
 
  성장 과정을 보면 한일 정상 모두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어떻게 자신의 인생에 새겨졌는지는 천양지차로 다를 수 있다. 대학 시절 이념 갈등을 체험한 부분이 그 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신 반대 학내 시위에 참가했다가 강제징집되었고, 후일 이른바 인권 변호사로 나섰다.
 
  스가는 다르다. 아예 학교 다닐 때부터 이념의 세계와 담을 쌓았다. 1948년생인 스가는 정통 단카이 세대다. 그러나 혁명이나 이념에는 무심했다. 거리에 나서 모두가 함께 싸우는 이념이 아니라, 가려운 곳을 하나씩 찾아서 풀어가는 정치가 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50대인 필자의 주변 친구들을 보면, 20대 청년기의 기억과 가치관이 40대 이후 삶으로 직결된다. 직접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느냐 여부에 달렸을 뿐, 생각 자체는 20대 청년기를 기반으로 한다. 검찰개혁에 올인하는 대통령과 586의 세계관은 20대 대학 재학 당시의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스가는 반대다. 단카이의 폭력시위에 맞서기 위해 호신용 가라데(空手)를 배울 정도로 이념 세대의 정반대편에 섰던 인물이다. 스가는 단카이 세대의 아이콘인 평화헌법에 반대하는 정치가다.
 
 
  各論의 정치인
 
아베 신조 전 총리와 관방장관 시절의 스가 총리. 두 사람은 이념 세대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는 정치인이었다. 사진=AP/뉴시스
  스가와 아베와의 접점은 바로 그 같은 이념 세대에 대한 반대와 부정에서 시작됐다. 이념에서 멀어질 경우 실무와 구체적인 각론에 주목하게 된다. 보스를 위해 헌신하는 정치 참모로 출발한 스가 같은 경우는 특히 그러하다. 스가는 총론이나 원론보다는, 실무와 각론에 강한 정치인이다. 총론과 원론은 스가가 아니라 스가가 모시는 보스의 영역이었다.
 
  총리 취임 직후 시작된 통신료 인하 정책이나, 불임(不姙) 치료에 대한 국가적 지원방안 논의는 각론 정치가만이 할 수 있는 아이디어다. 크고 강한 것보다, 작지만 생활을 통해 곧바로 피부로 느껴지는 정책이 스가의 전문 영역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변호사로 일하면서 실무와 각론에 단련됐을 법하지만, 그의 주된 영역은 법적인 문제에 국한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1988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입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바다에 해당되는 넓고 깊은 정치의 세계보다 물고기로 채워진 안전한 호수에서 변호사 인생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스가도 처음부터 바다로 나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는 호수는 애초부터 안중에도 없었고, 언젠가는 바다로 나간다는 가정하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정치가’
 
  일본 정국을 전망해보면, 차기 총선거는 도쿄올림픽 이후로 미뤄질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대략 2021년 9월 말이나 10월 초다. 스가는 그때까지 총리로, 아베의 뜻을 잇는 선에서의 역할에 매진할 것이다. 코로나19가 어떻게 수습될지가 스가에게는 관건이 될 것이다. 만약 이를 잘 해결할 경우 2021년 가을 이후에도 총리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아베가 올림픽 이후 다시 제3차 내각을 구성할 것이란 예측이 있지만, 일단은 스가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
 
  한일문제와 관련해 스가는 철저히 ‘스가루’ 자세를 유지해나갈 것이다. 홍두깨 방망이 격으로 느껴지지만, 김정은을 도쿄올림픽 주인공으로 초대하는 식의 뻥튀기 이벤트는 스가에게 먹히지 않을 것이다. ‘결코’ 스가 혼자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 외교 전문 언론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는 스가를 ‘결과를 만들어내는(get things done) 정치가’라고 규정한다. ‘정치=결과’라 확신하고 실천하는 정치가가 스가라는 것이다. 개인적 야망이나 큰 비전도 없는, 해결사로서의 정치가다.
 
  한국 관료·정치인들의 잇따른 도쿄 방문 이후, 당분간 총리 관저에서는 한국인 접견을 멀리하겠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구체적인 논의가 없는 뜬구름 잡는 식의 사진 찍기를 위한 이벤트 방문은 이제 사양하겠다는 얘기다. “총론이나 원론이 아니라, 각론과 실무에 어울리는 얘기만 논의하겠다”는 것이 스가와 주변 참모, 외교 전문가 대부분의 일치된 의견이다.
 
 
  ‘이벤트’는 안 통한다
 
  이벤트 방문이 주춤해지면서 한국 정부는 새로운 전략・전술 개발에 나섰다.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운 아첨과 ‘아니면 말고’ 식의 립서비스다. 한국으로서는 이를 협상카드로 사용하려는 의도겠지만 일본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한국이 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가입을 검토하겠다고 하자 일본 미디어는 “이미 2013년부터 검토해온 오래된 사항”이라면서 무심한 반응이다.
 
  한국은 종전에 그래왔던 것처럼 ‘반일애국’식의 캠페인으로 스가를 폄하하고 무시할 수도 있다. 한국 정부가 원하는 대로 독단적으로 몰아가도 ‘반일 만병통치약’의 효과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의 미래에 도움이 될 ‘윈윈(win-win)’ 정책을 할 생각이라면, 아주 구체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겠다는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 한국 정부도 이미 느끼기 시작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새로 들어서는 미국의 바이든 정부 역시 트럼프식의 ‘글로벌 이벤트’에는 무심하다. 이런 점에서 스가와 바이든은 흡사하다. 한국에도 우보만리(牛步萬里), 즉 소처럼 걸어서라도 만릿길에 도달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런 2021년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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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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