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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美中격돌

‘멜로스 담판’과 기로에 선 한국

한국, 강대국의 입장에서 보면 약소국에 불과

글 : 유민호  퍼시픽21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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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테네, 펠로폰네소스전쟁 중 중립국 멜로스 짓밟아… “强者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멋대로) 할 수 있다”
⊙ 한국, 미국과의 600억 달러 통화스왑 연장, 일본의 對韓 禁輸 등 난제 산적
⊙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군사력 사용도 불사하는 잭슨주의자
고대 그리스의 도기에 새겨진 전투 모습.
  터키에서의 역병(疫病) 망명(亡命) 생활 3개월이 넘었다. 가족이 기다리는 미국 뉴욕으로 돌아가려 해도 내전(civil war)이 기다리고 있고,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의 항공편도 아직 닫힌 상태다. 그나마 국내 이동은 가능하기에 그리스와 가장 가까운 에게해(海) 도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터키 밖 해상교통이 열리는 순간 곧바로 들르고 싶은 곳이 있기 때문이다.
 
  에게해는 넓은 듯 좁다. 신화(神話)가 숨 쉬는 구석구석 섬이라도 배를 통하면 반나절 만에 어디든 갈 수 있다. 역병 이후 영(零)순위 방문지로 잡은 곳은 그리스 섬 멜로스(Melos)다. 미로스(Milos)라고도 불리는 인구 5000명 정도의 작은 섬으로, 아테네에서 남쪽으로 120km 떨어진 어촌이다. 에게해 특유의 크리스털 바다와 기암(奇巖) 지형이 볼거리로, 고대(古代) 그리스 신전(神殿)이나 대형극장 같은 문화의 흔적은 없다. 조용하게 쉬면서 세상을 관망하는 곳이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 역사, 나아가 21세기 정치를 이해하려는 사람이라면 멜로스가 남달리 느껴질 듯하다. 특히 역사학자라면 일생을 통틀어 한 번쯤 찾아가고 싶은 고대 그리스 정치의 현장이 멜로스다. 하버드를 비롯한 구미(歐美) 명문대학의 정치・역사 강좌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그 유명한 기원전 5세기 ‘멜로스 담판(the Melian Dialogue)’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투키디데스 함정’과 ‘멜로스 담판’
 
《펠로폰네소스전쟁사》의 저자 투키디데스.
  “강자(强者)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멋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약자(弱者)는 그들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멜로스 담판’을 한마디로 함축한 유명한 구절이다. 현실주의 역사학의 문을 처음으로 연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남긴 말이다. 명저(名著) 《펠로폰네소스전쟁사(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가 출처다.
 
  시사상식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지 오래지만, ‘투키디데스 함정(Trap)’이란 말이 있다. 21세기 미중(美中) 패권(覇權)경쟁을 설명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용어다. 신흥강국이 기존의 세력 판도를 뒤흔들면서 나타나는 현상을 두고 하는 말이다. 기존 패권국과 신흥강국 사이의 무력(武力)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는 가설(假說)이 ‘투키디데스 함정’의 핵심이다. 남중국해와 아프리카, 최근에는 한반도까지 밀려든 미중 갈등을 분석할 때 반드시 따라붙는 말이기도 하다. ‘투키디데스 함정’이 강대강(强對强)의 갈등 관계에 주목한다고 볼 때, ‘멜로스 담판’은 강대약(强對弱) 국제관계에 초점을 맞춘 교훈이다. 전 세계 패권을 노리는 고래들 간의 싸움이 아니라, 고래와 새우와의 갈등에 집중하는 얘기가 ‘멜로스 담판’의 역사적 의미다. 역사학자들에게는 ‘투키디데스 함정’과 더불어 펠로폰네소스전쟁사에 등장하는 현실정치의 대표적인 본보기로도 통용된다.
 
  사건은 기원전 426년 아테네가 2000명의 군사를 멜로스에 파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아테네는 스파르타와 전쟁 중이었다. 기원전 431년 시작돼, 404년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난 펠로폰네소스전쟁이다. 전쟁 발발 5년 만에 터진 돌발적 사태가 멜로스 공격이다.
 
 
  중립국 멜로스를 짓밟은 아테네
 
  당시 역사로 돌아가보자. 멜로스는 인종적으로 스파르타와 피를 나눈 도시국가이다. 그러나 펠로폰네소스전쟁과 관련해 특별히 스파르타를 지지하거나 군사력을 제공하지는 않았다. 당시 에게해 대부분의 폴리스(Polis・도시국가)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중 어느 한쪽을 지지하면서 함께 전쟁을 치렀다. 돈이나 식량 같은 공물(貢物), 군인과 배를 비롯한 군사물자 제공 여부가 지지를 가늠하는 기준이다.
 
  멜로스는 양국 간 싸움에 중립(中立)정책을 표방하면서 개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테네는 군대를 파견, 멜로스에 자기들을 지지하라고 강요한다. 담판에 들어선 멜로스는 중립을 지키겠다고 약속한다. 결코 아테네를 배척하거나 해(害)를 주는 행위를 않겠다고 맹세한다. 아무런 피해도 안 주는 폴리스를 공격하는 것은 신(神)의 섭리에도 어긋난다면서, 중립을 지키는 멜로스의 ‘도덕성’을 믿어달라고 강조한다. 그러나 2000명의 군대를 보낸 아테네는 자기편에 가담하지 않을 경우 곧바로 공격하겠다는 최후의 통첩을 보낸다.
 
  “강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 운운하는 말은 담판이 끝나기 직전 아테네가 던진 말이다. 멜로스는 약한 자국(自國)을 무력으로 짓누를 경우, 에게해의 다른 폴리스들이 대국 아테네를 존경하지 않고 적대시할 것이라 말한다. 아무런 해도 안 입히는 작은 섬 하나를 장악한다 해도, 결과적으로 보면 주변 모두에게 나쁜 영향을 줄 뿐이라고 읍소(泣訴)한다.
 
  그러나 아테네는 “친구가 아니면 적(敵)”이라면서 막무가내로 힘으로 밀어붙인다. 멜로스가 말하는 ‘도덕성’은 힘을 통해 결정될 뿐, ‘감히’ 작은 폴리스가 나서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아테네는 전쟁의 승패(勝敗)야말로 신의 뜻에 대한 ‘도덕성’의 증거라 믿었다. 아테네가 멜로스를 누를 경우 신의 뜻이 아테네에 있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이기면 관군(官軍), 지면 반군(叛軍)인 셈이다.
 
  이렇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아테네에 대한 반감이 멜로스 전역에 퍼져나간다. 중립을 지키겠다는 멜로스의 ‘도덕성’이 존재하는 한, 신이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란 생각도 확산된다. 아테네를 응징하기 위해 피를 나눈 스파르타가 도와줄 것이란 소문도 떠돈다.
 
  멜로스가 끝까지 중립을 고집하자, 아테네는 담판을 중단하고 곧바로 응징에 들어간다. 해상과 도시 주변을 전부 봉쇄한다. 산발적으로 전투가 벌어지지만 결과는 아테네의 압승이다. 멜로스 남자 대부분이 학살되고, 여자들과 아이들은 전부 노예로 팔려간다. 아테네는 이후 500명의 자국민을 보내 멜로스를 식민지로 만들어 직접 통치한다. 폴리스 멜로스가 그리스 지도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내 편이 아니면 敵’
 
펠로폰네소스전쟁 중 전사자 추도식에서 연설하는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
  투키디데스는 ‘숨소리조차 멈추게 만드는 양국 간의 긴장된 협상 과정’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당시 협상에 투키디데스가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담판 참가자의 얘기를 들은 뒤, 상황을 제3자적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전달해준다. 투키디데스는 과학적・객관적 역사관의 출발점에 선 인물이다. 그는 아테네 시민이면서도 적인 스파르타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서술해나갔다.
 
  ‘멜로스 담판’도 마찬가지다. 아테네가 가진 권위와 정당성, 전쟁에서의 승리를 자랑하기 위한 얘기가 아니다. 아군과 적 모두 나름대로의 배경과 이유하에 최선을 다하면서 싸우는 존재로 묘사한다.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아테네의 단점, 멜로스의 장점도 놓치지 않는다.
 
  투키디데스가 ‘멜로스 담판’에서 강조한 것은 당시 폴리스 사이에 통하던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국제정치는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관계가 아니라, 한번 잘못 판단할 경우 전원 학살되고 노예로 전락할 수도 있는 냉혹한 현실이라는 인식이 ‘멜로스 담판’ 속에 담겨 있다.
 
  투키디데스는 힘에 의존하는 아테네의 논리를 ‘아름답고 정의롭게’ 치장하지 않는다. 중립을 다짐하는 멜로스 입장에서 보면, 침략 명분을 얻으려는 억지논리로도 비친다. 그러나 아테네 입장에서 보면 멜로스는 입[口]으로 살아남으려는 기회주의자로 느껴진다. 아테네는 멜로스가 중립을 지킨다고 해도, 결국 아테네에 해를 가하는 나라라고 확신한다.
 
  멜로스가 중립을 지킨다고 약속하고, 아테네도 이해한다면서 그냥 물러섰다고 가정해보자. 다른 모든 폴리스도 중립을 지키겠다고 맹세하면서 아테네에 ‘적극’ 동의하지 않는 사례가 될 수 있다. 멜로스 자체만이 아니라 에게해에 흩어진 수백여 크고 작은 폴리스에 영향을 주는 아테네 생존과 국익(國益)에 반하는 문제가 될 수 있다.
 
  스파르타를 지원하지 않지만, 아테네도 돕지 않겠다는 것이 중립의 핵심이다. 아테네가 보면 평소에는 에게해 평화 유지비용을 받아내야 한다. 스파르타와의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에서는 더더욱 큰 직접적인 지원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중립은 아테네가 원하는 답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아테네 편을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적이 된다. 나중에 배신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 당장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것이 아테네의 생각이다.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행한다”

 
  투키디데스는 그 같은 아테네의 생각을 현실정치적 시각에서 담담하게 기술(記述)한다. 믿어달라고 외치는 ‘도덕성’에 호소하는 논리도 편견 없이 전해준다. 그러나 파워에 맞설 무능력(無能力)한 존재가 멜로스란 점도 분명히 한다. 힘으로 밀어붙인 아테네나 도덕성에 호소한 멜로스 가운데 누가 옳은지에 대한 것은 투키디데스의 관심사가 아니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담판 과정과 그에 따른 결과만을 객관적으로 기술한다. 판단은 《펠로폰네소스전쟁사》를 읽는 각자에게 달려 있다.
 
  이미 10년도 더 전의 일이지만 필자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참모로 일했던 딕 모리스가 만든, 여론조사 겸 선거 컨설턴트 전문회사에서 아시아 지역을 담당한 적이 있다.
 
  당시 딕 모리스는 베스트셀러 작가로도 명망이 높았다. 2005년 발간된 빌 클린턴 관련 책인 《Because He Could》란 책은 100만 부 이상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로 미국 전역에서 화제가 됐다. 재임 중 클린턴의 공적을 함께 만들어갔던, 딕 모리스의 대통령 관찰기다.
 
  어느 날 딕 모리스에게 제목이 왜 《Because He Could》인지 물어봤다. 순간 그는 라틴어로 ‘Possunt, quia posse videntur’라는 구절을 들려줬다. 영어로 풀이하자면 “They can because they think they can”, 즉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행한다”로 풀이할 수 있다.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를 대표하는 시인 베르길리우스(버질)가 남긴 명언(名言)이라고 한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성공리에 무사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의미일 듯하다. 자기 확신을 통해 자기 성공으로 이끄는 생각이다.
 
  잘 알려져 있지만, 클린턴은 다방면의 능력을 갖춘 인물이다. 클린턴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겨 결국 성공으로 끝냈다는 것이 딕 모리스의 판단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앞에 소개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명언은 미국 지식인 사이에서는 상식으로 통용되는 문구였다. 적어도 어느 정도 수준의 대학을 나온 미국인이라면 ‘Because He Could’라는 책 제목을 보는 순간, 베르길리우스의 명구(名句)를 떠올렸을 것이다.
 
 
  국제정치에는 强者와 弱者만 있을 뿐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말은 400여 년 앞서 벌어진 ‘멜로스 담판’의 교훈에서 따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할 수 있다고 믿기에 그렇게 행한다”는 베르길리우스의 말을 ‘멜로스 담판’에 적용해보자. ‘아테네는 멜로스를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멜로스를 몰아세웠고, 마침내 군사력을 동원해 도시를 불태운 뒤 생존자 모두를 노예로 만들었다’는 식으로 풀이할 수 있다.
 
  미국, 아니 유럽을 포함한 서방의 세계관이지만, ‘할 수 있다고 믿는 한, 곧바로 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결과에 대한 책임은 결단에 나선 각자가 진다. 할 수 있으면서도 뜸을 들이거나 안 하고, 반대로 할 능력이 없는데도 행하는 척하는, 동양식 겸손・체면・위선과 동떨어진 문화다.
 
  ‘멜로스 담판’은 능력이 된다면 전부 할 수 있다는 서방적 상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본보기다. 국제정치에서 모두가 ‘반드시’ 따라 할 법은 없다. 협약・협정에 의해 ‘잠정적’으로 지켜지는 법이 있지만, 상황이 되면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멜로스 담판’은 국제관계 속의 교훈이다. ‘통일된 하나의 법’으로 규제되는 국내와 달리, 거의 무법(無法)상태에 준하는 국제관계에 적용될 사항이다. 국제관계의 주체자인 국가가 극단으로 갈 경우, 서로를 규제하고 견제할 법이란 것은 유명무실(有名無實)해진다. 아테네가 그 어떤 명분으로 멜로스를 공격한다 해도 중단시킬 유효한 방법이 없다. 더 큰 파워가 나타나 제압하지 않는 한, ‘이기면 관군, 지면 반군’이란 논리로 처리될 뿐이다.
 
  2020년 세계 정세를 보면 ‘멜로스 담판’이 우주 밖 ‘별세계의 논리’가 아닌, 일상적 풍경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중국 간의 ‘투키디데스 함정’만이 아니라 강대약 사이의 ‘멜로스 담판’도 전 세계에 횡행한다.
 
  오해하기 쉬운 사실이 하나 있다. 아무런 힘도 없는 약소국(弱小國)이 아닌 이상 강대국(强大國)에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는다고 자신하는 것이 그것이다. ‘준(準)강대국’이니 ‘중견국(中堅國)’이니 하는 말도 있다.
 
  그러나 강대국 입장에서 보면 자신에 견줄 만한 강대국이 아니면 전부 약소국에 불과하다. 나름대로 행동을 보이며 버틸 수도 있겠지만, 강대국이 보면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항상 1등을 지키는 것과 가끔씩 2, 3등에 오르는 것은 전혀 다르다. 2500년 전 그리스를 포함한 국제정치의 근간이지만, 세상은 강자와 나머지 약자로만 구성돼왔다. 강자가 아니면 약자일 뿐이다. ‘강자 비슷한 존재’는 없다.
 
 
 
여전히 鎖國 논리 만연한 한국

 
  2020년 한국은 ‘멜로스 담판’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라다. 임진왜란에서부터 청일전쟁, 식민지,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에 대한 조롱・비난・멸시가 대세(大勢)로 자리 잡고 있다. ‘멜로스 담판’의 현실을 무시하려는, 우물 안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발정 난 ‘미친개’로,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총리를 줏대도 없는 ‘상갓집 개’로 묘사하는 것은 좋은 본보기다. 미일과 두 나라의 지도자를 신주 모시듯 하자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무시하고 조롱하는 풍토가 대세라는 점이 문제다.
 
  뭔가 배우고 익히기보다, 무조건 배척하는 흥선대원군식의 쇄국(鎖國)논리가 만연하고 있다. K-마스크, K-키트, K-방역 같은 것을 가지고 미국, 아니 전 세계를 아래로 내려다본다. 외국에서는 한국을 전염병 2차 확진국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는다.
 
 
  파워의 眞價
 
  파워의 진가(眞價)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으로 나타난다. 눈에 보이는 파워는 오래가지 못한다. 자꾸 볼 경우,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북한은 ‘영향력으로서의 파워’와 무관한, 깡패가 힘자랑하는 정도의 정권에 불과하다.
 
  ‘영향력으로서의 파워’를 보면, 미국의 말 한마디만으로도 한국의 내일이 불확실해질 수도 있다. 지금 한국의 분위기에서는 친일(親日)논리라고 매도될 수도 있겠지만, 일본 역시 마음만 먹으면 한국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나라다.
 
  9월 19일로 예정된 ‘작지만 큰 걱정’ 하나를 예로 들어보자. 이날은 600억 달러에 달하는 한미 통화스왑(Swap) 재계약 날짜다. 전염병 비상사태를 맞아, 지난 3월 1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연준)가 한국은행에 제공한 달러다. 외교적으로 통화스왑이란 표현을 썼지만, 사실상 미국이 한국에 ‘빌려준’ 돈이 600억 달러다. 미국 달러는 세계 어디에 가도 곧바로 통용되는, 이른바 기축(基軸)통화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한국의 원화(貨)는 곧바로 외국에서 통용될 수 없는 변방의 돈이다. 달러를 통한 교환이 가능하기에 한국의 원화도 외국에서 현지통화로 교환될 수 있다.
 
  중국의 최대 약점이기도 하지만, 만약 미국 연준이 중국 위안화를 달러로 안 바꿔준다고 발표하는 순간, 중국 경제는 그대로 내려앉을 것이다. 아프리카나 중국 경제권이라고 할 수 있는 개발도상국들에서는 어떻게 연명(延命)하겠지만, 달러가 보장하지 않는 위안은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미국도 어느 정도 피해를 보겠지만, 중국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경제적으로 볼 때, 중국은 미국 없이는 살 수 없다. 미국은 중국 없이도 끄떡없다. 중국이 디지털 화폐에 올인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통화스왑 연장이 안 된다면…
 
2017년 7월 7일 駐함부르크 미국총영사관에서 만난 韓·美·日 3국 정상.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는 한국의 명운을 좌우할 힘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국이 한국에 빌려준 600억 달러는 변방의 통화 수준인 한국 원을 지탱하는 생명선이다. 만약 9월 19일 미국이 600억 달러 통화스왑을 안 해준다면 어떻게 될까? 한국이 자랑하는 4000억 달러 이상의 외환보유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필자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평상시면 가능할지 몰라도 전염병 비상체제가 지속되는 한 불가능하다. 전염병이 길어질수록 달러의 위력은 강해진다. 모두 불안해지면서 결국 달러를 통한 안전한 미래에 투자한다.
 
  이미 글로벌 차원의 외환위기는 곳곳에서 탐지되고 있다. 600억 달러 통화스왑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불투명해진 한국 경제에서 미국이 손을 떼는 악재(惡材)로 발전될 수 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빌지만, 투자・주식・수출・부동산에 걸친 모든 시장이 그대로 주저앉을 수 있다.
 
  코로나19(우한폐렴) 사태 이후 전 세계가 앞을 다퉈가며 돈을 뿌리고 있다. 정부의 돈, 즉 공적(公的)자금이다. 한국 정부도 시류(時流)에 맞춰 이런저런 명목의 돈을 뿌리고 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가면 다리가 찢어진다.
 
  거듭 말하지만 한국의 원화는 기축통화가 아닌, 변방의 통화다. 한국은 달러의 미국, 엔의 일본, 유로의 유럽연합(EU)과는 격이 다르다. 서방에서 아무리 돈을 뿌려도, 달러・엔・유로에 대한 수요가 있는 한 해결점도 있다. 한국의 원은 다르다. 뒷받침이 없는 허장성세 잔치는 반드시 대가(代價)를 치르게 된다. 석 달 앞으로 다가온 600억 달러 연장시기에 즈음해 외환(外換)시장이 흔들릴 것이다.
 
  한국에 닥칠지 모르는 엄청난 ‘경제적 대재앙’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한국 언론이나 일부 세력이 ‘미친개’로 조롱하는 트럼프는 그런 나라의 대통령이다. 경제적 분야지만, 아주 사소한 부분을 통해 ‘멜로스 담판’과 같은 참극이 야기될 수 있다.
 
  한국에서 ‘상갓집 개’ 수준으로 보는 아베와 일본은 어떨까? 미국에야 비교될 수 없겠지만, 지난해 금지한 3개 품목 수출제한 조치를 보면 한국에 미친 영향을 알 수 있다. 한국은 국산화(國産化)를 통해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애국반일(愛國反日) 이벤트’로 상황을 호도(糊塗)하고 있다.
 
  실상은 어떨까? 전혀 다른 듯 느껴진다. 5월 말로 못 박은, 한국 정부의 3개 품목 금수(禁輸) 관련 대일(對日)담화다. ‘요청’이 아닌 ‘요구안(要求案)’을 통해, 금수 조치를 해제하지 않을 경우 일본에 뭔가 보복하겠다고 발표했다.
 
  과연 어떤 보복을 할지 지켜봤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다. 소가 웃을 보복안이다. 이미 1년여 전부터 WTO는 ‘식물인간’ 상태다. 7명의 최종 상소(上訴)위원 가운데 단 1명만이 일하고 있다.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4명이 있어야만 한다. 미국과 일본이 반대하면서 후임자 임명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더구나 트럼프는 세계보건기구(WHO) 탈퇴에 이어, WTO조차도 퇴출(退出)시킬 기세다. 정상적 상태에서 제소를 한다고 해도 2년 이상 걸리는 것이 WTO 중재다.
 
  그렇다면 소도 웃는 ‘종이호랑이’ 제소는 왜 했을까? 한국 내 일본자산 차압(差押)의 명분을 얻자는 것도 있겠지만, 결국 가장 큰 핵심은 한국이 일본의 3개 품목 금수 조치로 그만큼 고통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반일애국 이벤트’가 커지면 커질수록 금수에 따른 고통이 심하다는 얘기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3개 품목 금수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아베 일본 총리다. 그런데도 그를 웃고 먹이만 주면 따라붙는 ‘상갓집 개’라 부를 수 있을까?
 
 
  한국의 자화자찬
 
  미국・일본의 한국에 대한 이해(利害)는 총론(總論)과 각론(各論)으로 나눌 수 있다. 미국은 총론 차원에서 한국과 대응한다. 일본의 경우 각론으로 한국과 맞선다. 3개 품목 금수만이 아니라, 마음먹고 행한다면 ‘한국 스스로도 모르는’ 약점들을 발굴해 정교한 바늘로 찌를 것이다.
 
  총론이든 각론이든 시대는 ‘멜로스 담판’으로 흐르고 있다. 20세기 냉전 당시 볼 수 있던 한일관계, 한미관계는 하나둘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600억 달러 통화스왑, 3개 품목 금수 차원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의 담판으로 나아가고 있다. ‘멜로스 담판’에서의 아테네 논리인 “강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멋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약자는 그들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는 세계관이 한미・한일 관계에 밀려들고 있다. 반미・반일 같은 국내용 ‘애국 이벤트’를 통해 세(勢)를 모으는 것은 밖에 나가는 순간 통하지 않는 ‘멜로스의 도덕성’에 불과하다.
 
  물론 한국은 나름대로 ‘멜로스 담판’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 10위 안에 드는 무역대국이라는 ‘국력상승 자화자찬(自畵自讚)’은 그중 하나다. 구한말(舊韓末)처럼 가만히 앉아서 당할 위치가 아니라는, 나아가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인 듯하다.
 
  예를 들어, 미국과의 600억 달러 통화스왑 연장에 실패할 경우, 중국을 끌어들여 미국과 경쟁시키는 식의 전략으로 대응하겠다는 생각도 있을 것이다. 그건 미봉책(彌縫策)일 뿐, 미국과 멀어지면서 사태를 점점 더 악화시키는 꼼수일 뿐이다.
 
 
  知彼知己
 
  홍콩 문제도 관건이지만, 코로나19 상황하의 중국은 자기 문제 해결하기에도 바쁘다. 50대 장년 모두의 공통점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의 곳곳에 이상이 온다. 암이나 당뇨병 같은 큰 병으로 한순간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사소하고도 작은 질환으로, 몸 전체가 서서히 약해진다.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발가락 사이 근육이 아프다. 뛰고 걷기가 어려워지면서 운동도 못 하고, 결국 비만으로 가게 된다.
 
  오늘날 지구상의 나라들은 하루아침에 식민지로 전락하거나 전쟁 같은 극단적인 비극을 겪으며 나라가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발가락 사이 근육, 무릎 연골(軟骨), 어깨 위 신경으로 인해 천천히 약해질 뿐, 한순간 사라지거나 죽지는 않는다.
 
  한미・한일 관계 악화로 인해 한국이 전쟁에 휩쓸리거나 나라를 잃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근육・연골・신경 부분에서의 통증으로 천천히 쇠락해갈 수는 있다. “참고 견디라”고 하겠지만, 그게 어떤 것인지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이미 충분히 체험해봤다.
 
  ‘멜로스 담판’이 판치는 현실세계로 나서기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피지기(知彼知己)다.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이다. 트럼프는 현재 자타(自他)가 공인하는, 전 세계 ‘멜로스 담판’을 주도하는 주인공이다.
 
  한국에서의 트럼프에 대한 평가는 앞서 말했듯이 ‘미친개’ 정도에 그친다. 미국 리버럴 미디어가 쏟아내는 반(反)트럼프 기사가 120% 과장돼 한국에 직수입된다. ‘남부 출신, 저학력, 복음주의, 백인지상주의, 극우(極右) 남성’만이 트럼프를 지지할 것이라는 식의 고정관념이 한국 신문・방송에 횡행하고 있다.
 
 
  4가지 미국 외교 리더십
 
  2002년 미국에서 발간된 《특별한 운명의 나라: 미국 외교정책은 어떻게 세계를 변화시켜왔는가(Special Providence: American Foreign Policy and How It Changed the World)》라는 책이 있다. 예일대학교 교수이자, 현재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월터 미드(Walter Russell Mead)가 저자다. 9・11 동시 테러 직후 발간된 이 책은 미국 외교를 크게 4개 범주의 리더십으로 나눠 설명한다.
 
  1. 해밀턴주의: 초대(初代)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류(類)의 외교다. 통상・경제를 촉진하는 외교에 적극 주목한다. 정부는 기업의 이익 증진을 위해 적극 나선다.
 
  2. 윌슨주의: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식 외교다. 민주주의 가치를 세계에 펼치는 도덕적 우위에 기초한 외교다. 민주주의 확산을 통해 세계 평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전쟁 개입을 적극 피한다.
 
  3. 제퍼슨주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류의 외교다. 동맹을 맺지 말고 전쟁을 피하는 데 전력을 기울인다. 민주주의 수출에도 무관심하다.
 
  4. 잭슨주의: 제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의 리더십이다. 정부의 가장 큰 역할은 국민의 안전과 번영이다. 미국은 타국(他國)의 전쟁에 관계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에 해를 가할 경우 전쟁을 통해 반드시 승리로 이끈다. 따라서 상대를 압도할 강군(强軍)정책이 절대 필요하다.
 
  4개의 외교 스타일 가운데, 트럼프는 잭슨주의와 일치하는 인물이다. 실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된 순간부터 자신의 사무실 오벌 오피스에 잭슨의 초상화를 걸어두고 있다. 취임 2개월이 지난 2017년 2월에는 테네시주(州)에서 열린 ‘잭슨 탄생 250주년 기념식’에 직접 참가하기도 했다. 미국인 대부분은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트럼프의 슬로건도 잭슨 리더십에서 따온 것으로 보고 있다.
 
  잭슨은 거의 고아에서 대통령까지 오른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이다. 당시에는 온전한 백인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가난한 아일랜드계 출신이다. ‘미국판 흙수저 대통령’이라 보면 된다.
 
  실제 잭슨은 워싱턴 정치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당시로는 드물게 농민과 노동자 문제를 정책의 핵심에 올린 대통령이다. 특히 19세기 초 백인 보통 남성에게 선거권을 부여한, 이른바 잭슨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y)로도 유명하다. 워싱턴 정치가와 지식인들이 시기상조라면서 반대했지만, 강력한 리더십으로 밀어붙여 미국이 세계 민주주의 대형(大兄)이 되는 길을 열었다. 유럽 곳곳에서는 아직도 군주전제정치가 존재하던 시기에 이룩한 정치적 위업이다.
 
 
  잭슨과 트럼프
 
제7대 미국 대통령 앤드루 잭슨.
  트럼프를 잭슨주의와 연결할 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군사력에 관한 부분이다. 외국과의 전쟁을 피하려 노력하지만, 미국의 이익을 해칠 경우 강력한 군사력으로 응징한다는 것이 주된 골자다. 여기에는 동맹이란 개념도 없다.
 
  잭슨은 13세 때 이미 민병대에 참여했고, 미영전쟁(1812~1815)에서 전공(戰功)을 세워 국민적 영웅이 된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잭슨 정치의 핵심은 군대를 앞세운 현실주의에 있다. 2500년 전에 태어났다면, ‘멜로스 담판’에 임하는 아테네 장군의 세계관과 일맥상통한다.
 
  다시 말해 잭슨주의를 지향하는 트럼프도 ‘세계=멜로스 담판의 무대’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트럼프는 국내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시위조차 미군을 투입해 해결하겠다는 인물이다. 한국에서는 ‘미친개’가 짖는다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 폭동으로 생명과 재산을 위협받고 있는 미국 시민들 입장에서 보면 적극 환영할 만한 조치다. 신문・방송에서는 비난받지만, 실제 국민들이 원하는 ‘필요악(必要惡)’으로서의 무력(武力)이다. 결국 트럼프는 미국 국내외 할 것 없이 ‘멜로스 담판’의 논리를 밀어붙이는 인물이라는 얘기다.
 
  트럼프가 옳고 그르고는 핵심이 아니다. 아테네가 무력으로 누를 경우, 대국으로서 아테네의 권위가 실추될 것이라 말해도 의미가 없다. 미국이 가진 힘과 영향력의 대표자가 트럼프란 점이 포인트다. 아직은 미국이 세계 최고 강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정도는 아니지만, 전 세계에 흩어진 미군 기지와 금융을 통해 글로벌 차원의 파워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에 기대를 거는 사람도 많겠지만, 중국은 아직 멀었다. 싫든 좋든 피할 수 없는 나라가 미국이고, 그 미국의 대통령은 트럼프다.
 
 
  외교란 ‘접고 포용’하는 것
 
  앞으로 ‘멜로스 담판’의 논리가 한층 더 가속화될 것이다. 전염병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모두가 피부로 느끼는 ‘눈앞의 현실’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당분간 세상 자체가 험악해질 것이란 의미다.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가 울려 퍼지던 글로벌 시대는 이미 한물간 화려한 추억일 뿐이다. 모두 모여 노래를 부르고 싶어도, 공기 중에 떠도는 바이러스가 겁나 자리에 함께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물론 일본도 곧 ‘멜로스 담판’의 일원으로 등장할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와중에 “한국은 미중 두 나라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는 워싱턴발(發) 기사가 눈에 띈다.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가 발언의 진원지(震源地)다.
 
  외교를 뜻하는 영어 ‘디플로머시(diplomacy)’는 그리스어 ‘디플로운(diploun)’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접다’ ‘포용하다’라는 의미다. 칼로 나누고 금을 그으며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편으로 만드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싫고 밉더라도 웃으면서 축배를 드는 것이 외교관의 할 일이다. 극단적인 상황하에서의 가르고 자르는 것은 정치가의 몫이다.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과시하자는 건지, 정치가로 나서겠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한국이 미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겠다는 말이 너무도 한심하고 공허하게 들린다. 그것도 미국 한가운데서 던진 ‘통 큰’ 목소리다. 서울 주재 미국대사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한일 가운데 누구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면 어떨까?
 
  현재 상황을 보면, 소를 잃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소를 재우고 쉬게 할 만한 공간 자체가 없다. ‘멜로스 담판’과 같은 극한 상황은 곳곳에서 몰려올 것이다. 일회성 애국 이벤트 슬로건이 아니라, 겸손과 중지(衆智)를 통해 혜안(慧眼)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금은 외양간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할 상황이자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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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akamori    (2024-09-03) 찬성 : 0   반대 : 0
항상 좋은 기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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