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특집 / 新민족주의 시대가 오는가

시진핑의 ‘중국몽’ vs. 홍콩·대만 민족주의

‘中國夢’ 외치는 중화민족주의는 깨질 수밖에 없는 허구의 이데올로기

글 : 박상후  前 MBC 시사제작국 부국장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
  • 스크랩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 ‘중화민족주의’로 55개 少數민족 묶기는 어려워… 壯族 1692만명, 回族 1068만명, 만주족 1038만명 등 소수민족 인구 1억2000만명
⊙ 漢族 내부에서도 국가나 민족보다 씨족 앞세우는 族群主義 뿌리 깊어
⊙ 우한폐렴으로 도시 봉쇄, 후베이 출신 배척 이어지면서 ‘중국몽’에 상처
⊙ 타이완·홍콩은 공산주의와 결합된 중화민족주의 대신 서구 자유민주주의 선택

朴商厚
1968년생. 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졸업,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동아시아학과 석사 / MBC 베이징특파원·전국부장·문화부장·국제부장·시사제작국 부국장 역임. 現 ‘박상후의 문명개화TV’ 운영자
티베트 라싸 포탈라궁 앞 광장의 국기 하강식 장면. 중국은 티베트를 비롯해 55개 소수민족을 품에 안고 있다. 사진=뉴시스/신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중국몽(中國夢)’이란 구호로 중국인의 단결을 호소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을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에 대응하는 구호가 ‘중국몽’이다. 중국은 트럼프의 구호를 흔히 ‘미국몽(美國夢)’으로 번역하는 만큼 ‘중국몽’은 미국에 대항해 세계의 패권(覇權)을 장악해야 한다는 야심의 표현이다. ‘중국몽’은 후진타오 시절 CCTV 다큐멘터리 제목인 ‘대국굴기(大國崛起)’란 단어와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강국몽(强國夢)’과 함께 대내적으로는 애국심을 고취하는 슬로건이 됐다.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스스로 주체적으로 행동할 때가 됐다는 주동작위(主動作爲)의 스탠스로 전 세계에 힘을 투사(投射)하기 시작했다. ‘중국몽’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개념으로는 오대양 육대주의 육상·해상 교통로를 확보한다는 ‘일대일로(一帶一路·One Belt and One Road)’, 2015년까지 중국의 과학기술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중국제조 2025’,이를 위해 천재 과학자 1000명을 확보한다는 ‘천인계획(千人計劃)’ 등을 들 수 있다.
 
  ‘중국몽’은 이 같은 야심을 달성하기 위해 민족주의란 용어로는 정확히 포장할 수 없는 중국적 민족주의를 에둘러 표현하는 구호다. 중국은 14억명에 이르는 다민족(多民族)을 포용하기 위해 ‘한족(漢族)’ 대신 ‘중화민족(中華民族)’이란 용어로 중화인민공화국 울타리 안에 있는 다민족의 단결을 외쳐왔다. 중화민족이란 단어는 1911년 한족의 복권(復權)을 목표로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성공한 쑨원(孫文)이 중화민국(中華民國)을 선포하면서 ‘오족공화(五族共和, 漢·滿·蒙·回·藏 등 주요 민족의 협력)’란 기치를 주창하면서 유래한 것이다.
 
 
  중화민족주의는 유사민족주의에 불과
 
2009년 7월 위구르의 분리독립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우르무치에 진주한 인민무장경찰. 트럭 옆면에 ‘반대민족분열’이라는 구호가 보인다. 사진=뉴시스/AP
  중국이 내세우고 있는 중화민족주의는 속성상 ‘유사민족주의(Pseudo-Nationalism)’일 수밖에 없다. 인종과 언어가 다른 56개 민족을 중화민족이란 용어로 포괄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한족을 제외한 55개 민족의 인구만 해도 1억2000만명에 이른다. 소수(少數)민족들은 인구편차가 아주 심하다. 한족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장족(壯族)이 1692만명, 이슬람인 회족(回族)이 1068만명, 만주족이 1038만명이다. 100만명 단위로는 티베트의 장족(藏族)이 628만명, 몽골족이 598만명, 카자흐족이 146만명이다. 그야말로 미니 소수민족으로는 10만명 선의 우즈베크족과 3500명 선의 타타르족까지 존재한다. 이들 55개 소수민족의 대부분은 만주족처럼 한족에 동화(同化)된 상태로 별다른 큰 움직임이 없다.
 
  그러나 스스로 동(東)투르키스탄(East Turkestan)이라고 부르며 끊임없이 중국 정부에 반발하고 있는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위구르족과 티베트는 중국으로서도 중화민족이라는 울타리에 가두기에는 어려운 존재이다. 종교와 언어가 한족과는 판이해 쉽사리 동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보다는 族群主義
 
  55개 소수민족을 제외한 한족의 민족주의도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한족’이라는 말 하나로 뭉뚱그리기에는 지역별로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마다 고유의 방언이 존재하며 역사와 문화도 차이점이 있다.
 
  중국에는 근대에 서구에서 수입된 민족이란 용어 이전에 ‘족군(族群)’이란 개념이 존재한다. 중국은 원래 씨족(Clan)사회다. 중요성이 씨족에서 확장해 국가에까지 이르는 관념을 가지고 있다. 영화 〈황비홍(黃飛鴻)〉의 주인공이 해변에서 제자들과 단체로 무술을 연마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깃발에는 ‘보가위국(保家衛國)’이란 네 글자가 써 있다. 중국인에게 외적으로부터 지키는 대상은 가족, 씨족이 먼저이고 그다음이 국가라는 생각은 그만큼 뿌리가 깊다.
 
  중앙정부에서 지리적으로 거리가 먼 남쪽으로 갈수록 이런 관념이 강하다. 지역민들에게 중앙정부는 군림하고 세금을 거두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다. 그래서 중국에는 고래(古來)로 중앙정부에 정책이 있다면 지방에는 여기에 적절히 대응할 방책이 있다고 해서 ‘상유정책 하유대책(上有政策 下有對策)’이란 말이 있다.
 
  또 푸젠(福建)이나 광둥(廣東) 같은 남부지역에서는 관(官)의 공권력에 대해 자구책(自救策)으로 집단 폭력을 사용해 대항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주로 종족 간에 다툼이 발생하면 무기를 사용하는 집단 폭력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를 ‘셰더우(械鬪)’라고 한다. 우한(武漢)폐렴 사태 와중에 푸젠성 샤푸현(霞浦縣)에서 발생한 주민들의 항의 시위는 바로 이 셰더우의 발현이었다. 당국이 우한폐렴 환자 격리시설을 주택가와 가까운 지역에 건설하려 하자 주민들이 몽둥이를 휘두르고 돌을 던지며 경찰과 정면충돌한 것이다.
 
  한족 간의 ‘민족주의’조차도 이를 지탱하는 구심력(求心力)보다는 원심력(遠心力)이 급속하게 강해지는 추세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 지구적 분쟁으로 야심이 한풀 꺾인 상태다. 일대일로가 세계 각지에서 저개발국가에 대한 수탈이란 오명을 쓰게 되면서 ‘벨트 앤 로드 이니셔티브(Belt and Road Initiative)’라는 용어로 바뀌었다. ‘중국제조 2025’란 구호도 2019년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전인대 보고에서 사라졌다. 게다가 18개월이나 지속된 미·중 무역협상에서도 최종적으로는 미국에 일방적으로 당했으며, 미국에 진출한 중싱, 화웨이와 틱톡 등 IT 산업은 물론이고 중국 철도의 지하철, 열차, BYD의 전기차 등도 된서리를 맞기 시작했다.
 
 
  우한폐렴, ‘중화민족주의’에 일격 가해
 
  대내적으로는 우한폐렴이 가져온 공황이 ‘중국몽’을 결정적으로 산산조각 내고 있다. 후베이성(湖北省) 우한을 봉쇄해 인적이 끊긴 유령도시로 만든 데 이어 추가 확산을 막는다면서 성(省) 간 왕래를 중지시키는 바람에 상하이(上海)·충칭(重慶)·광저우(廣州), 심지어 베이징(北京)마저 사실상의 도시 봉쇄 상태로 전락했다. 도시 봉쇄는 국공내전(國共內戰) 막바지인 1948년 린뱌오(林彪)가 지휘하는 팔로군(八路軍)이 국민당군 10만명의 병력이 지키고 있던 창춘(長春)을 5개월 동안 포위해 도시 안에 있던 양민 수십만 명이 아사(餓死)했던 ‘창춘홀로코스트’와도 비교된다.
 
  도시 봉쇄에 이어 지역별로 도로 봉쇄, 개별가구 봉쇄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행해지면서 여러 지역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로 들어섰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에 대한 원성도 자자하다. 같은 민족이지만 서로 오가지도 못하고 특히 우한이나 후베이(湖北) 출신이라면 배척하는 상태가 되면서 민심이반 현상이 심각하다. ‘문혁(文革・문화대혁명)’ 때와 같은 살벌한 구호도 등장했다. ‘후베이에서 돌아오고도 이를 알리지 않는 이는 시한폭탄이다’ ‘발열증상을 숨기는 이는 인민군중 속에 암약하는 계급의 적이다’ ‘올해 춘절에는 이웃집 방문을 하지 못한다’ ‘방문자는 계급의 적이다. 적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내걸렸다. 중국의 민족 대명절인 춘절(春節)을 전후해 대폭발한 우한폐렴으로 중화민족주의는 설 자리가 아예 없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이완의 脫中入美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2016년 5월 총통 취임 당시 중화민국의 국부인 쑨원의 초상화 앞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사진=뉴시스/AP
  차이잉원(蔡英文) 현 타이완 총통이 지난 1월 11일 총통 선거에서 817만 표로 국민당의 한궈위(韓國瑜) 후보를 누르고 압승하자 타이완 현지 언론들은 이를 ‘탈중입미(脫中入美)’란 네 글자로 그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했다. 중국판 ‘우리민족끼리’에 해당하는 ‘양안일가친(兩岸一家親)’이라는 구호는 완전히 무색해졌다.
 
  홍콩의 반공(反共) 자유화 물결에 이어 타이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호주에서 불거져 나온 중국 스파이 왕리창(王立强) 사건으로 사실상 차이잉원 총통이 승기를 잡았다. 다급해진 중국은 중국관영 CCTV를 동원해 타이완을 심리적으로 압박했다. 2019년 11월 5일 중국관영 CCTV 앵커 하이샤(海霞)는 “우리는 모두 중국인이다. 타이완이여 중화민족의 큰 가정의 품으로 돌아오라(我們都是中國人! 臺灣, 回家吧)”고 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은 선거날짜를 전후해 타이완해협에 해군전단을 보내 군사적 위협도 가했다. 하지만 이 같은 중국의 노력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이번 선거는 국민당 한궈위가 아니라 중국 공산당 주석 시진핑과의 대결”이라면서 반드시 투표를 해서 타이완을 망국(亡國)의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분위기에 힘입어 차이잉원 총통은 역대 최다 득표로 당선됐다.
 
  차이잉원 총통은 당선 직후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타이완은 이미 독립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별도로 독립을 선포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화민국타이완(中華民國臺灣)’이란 여섯 글자로 정체성(正體性)을 대변했다. 아울러 중국의 무력(武力)침공을 언제든 상정하고 있다면서 그럴 경우 중국도 참담한 희생이 따를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타이완은 지금 급속하게 중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라인에 편입되고 있다.
 
  ‘인도-태평양’이란 개념은 2017년 11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 순방에 나서면서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FOIP·Free and Open Indo-Pacific)’을 모토로 제시한 전략인데, 미국·일본·호주·인도 4개국 연대(連帶)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2019년 6월 1일, 미 국방부가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Indo-Pacific Strategy Report)〉를 발표하면서 타이완을 ‘국가’로 표기해 ‘하나의 중국’을 폐기했다는 사실이다.
 
 
  美-타이완 안보협력 강화
 
  앞에서 언급한 타이완 내 중국 스파이 공작을 폭로한 왕리창(王立强) 사건이 타이완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불거져 나온 데는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 등 5개국이 참여한 서방의 정보공유동맹인 ‘파이브 아이즈(Five Eyes)’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통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도 미국은 중국의 제1도련선 돌파를 막는 최전방의 요새로 타이완을 부각시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타이완에 대해 특별히 제작한 M1A2T(T는 타이완 맞춤형이란 의미) 전차, 스팅어 견착식 대공미사일, 중국의 젠-10을 상대할 수 있는 최신예 F-16V를 수출하기로 한 데 이어 마침내 지난해 12월 19일에는 타이완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F-16 업그레이드와 수리 보수 권한을 부여했다. 미국 록히드 마틴이 타이완의 항공 부문 방위산업업체인 한샹(漢翔)의 타이중 사루(沙鹿) 정비창에서 라이선스 제공 협약식을 갖고 이를 대대적으로 과시했다.
 
  미국은 또 타이완의 세계 최대 반도체 수탁 생산 파운드리 기업인 TSMC(台灣積體電路製造公司)의 미국 공장 신설을 유도하고 있다. TSMC는 애플, 퀄컴, NVIDIA 등을 고객으로 두고 있는 기업으로 F-35, 극초음속 미사일, 공격용 드론 MQ9 등에 들어가는 전략 반도체 부품도 생산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침투 위협이 덜한 미국 워싱턴주(州)에 TSMC가 생산라인을 신설해 부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주는 한편 화웨이 같은 중국 기업과의 거래를 끊을 것을 종용하고 있다. TSMC는 미·중 군사 패권전쟁에서 어느 한쪽이 반드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야만 하는 병가필쟁지지(兵家必爭之地)로 여겨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대선이 있을 11월 이전에 미국 본토 생산라인 신설을 결정지을 것을 TSMC 측에 비공식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타이완, 공산주의와 혼합된 중화민족주의 거부
 
  타이완의 탈중입미(脫中入美)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타이완 역사의 큰 흐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민당의 장제스(蔣介石) 정권이 대륙에서 패퇴해 타이완에 자리 잡은 뒤 ‘본토수복’이란 구호를 내세우면서 타이완에서는 중국의 역사를 교육해왔다. 중국 본토에 뿌리를 둔 정권으로서는 당연한 스탠스였다.
 
  하지만 타이완 역사는 1624년부터 1662년까지 네덜란드와 스페인의 식민지 시대인 하서시기(荷西時期), 반청복명운동을 벌인 정성공이 1662년부터 1683년까지 21년 동안 지배한 명정시기(明鄭時期), 이어 청조의 강희제에 복속된 청치시기(淸治時期),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일본에 관할이 넘어간 이후부터 종전까지의 일치시기(日治時期)로 분류된다.
 
  폴리네시아 인종에 속하는 다양한 원주민과 중국 본토 푸젠에서 이주해온 한족까지 타이완은 서로 다른 방언을 구사하는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면서 타이완인(Taiwanese)이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네덜란드-스페인-청조-일본 등 역대에 걸쳐 타이완을 통치한 이들은 타이완인들 위에 군림해 온 타자(他者)라는 관념이 강하다. 명청(明淸)교체기에 정주(定住)하기 시작한 타이완의 한족들조차 중국 본토의 한족은 자신들을 복속시키려는 이방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2018년 1월 1일 총통부에서는 차이잉원 총통이 참석한 가운데 새해맞이 행사가 열렸다. 이때 현지의 언론매체들은 차이 총통이 중화민국 국가(國歌)를 오랜만에 소리 내어 불렀다는 점에 주목했다. ‘삼민주의 오당소종(三民主義 五黨所宗·삼민주의는 우리 당(국민당)이 받들어야 할 이상)’이란 말로 시작되는 중화민국 국가는 국민당 색채가 짙어 이전에 차이잉원 총통은 국가 제창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여왔다. 타이완이 가진 정체성 고민이 여기에 함축돼 있다. 중국의 일국양제(一國兩制)와 ‘하나의 중국’을 모토로 하는 9·2공식(共識)에 대해 결연한 반대입장을 밝힌 차이잉원 총통은 중화민족주의의 그늘에서 탈피해 미국과 굳건한 동맹전선을 펴기 시작했다. 공산주의와 혼합된 중화민족주의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홍콩의 홀로서기
 
2019년 10월 홍콩 사태 당시 시위대는 옛 식민종주국인 영국 국기 유니언잭을 흔들면서 反中정서를 표출했다. 사진=뉴시스/AP
  ‘범죄인 대륙송환법’에 대한 반대운동에서 촉발된 홍콩인들의 반공 자유화 시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홍콩 인구 700여만 명 가운데 200만명 이상이 운집한 대규모 시위, 1989년 8월 23일, 소비에트 연방에 대항하기 위해 빌뉴스에서 탈린까지 650km의 인간 띠를 형성했던 발틱 웨이(Baltic Way)에서 영감을 얻은 홍콩 웨이(Hong Kong Way), 공성전(攻城戰)을 방불케 했던 홍콩이공대학의 공방전, 구(區)의원 선거에서 반중(反中) 성향의 민주파 진영의 압승 등 홍콩인들은 중국의 굴레를 벗기 위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다.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란 구호로 떨쳐 일어선 홍콩의 반공 자유화 운동은 1997년 홍콩의 주권 반환 당시 향후 50년 동안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한 이른바 ‘항인항치(港人港治)’의 약속을 저버린 데 대한 분노였다. 홍콩의 최고책임자인 행정장관은 초대 둥젠화(董建華)부터 5대인 캐리 람(Carrie Lam·林鄭月娥)까지 모두 간접선거로 친중(親中) 인사만 임명됐으며, 2012년부터는 중화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중국식 국민교육이 도입돼 반발이 극심했다.
 
  홍콩의 반공 자유화 운동은 중화민족주의에서 벗어나 미국식의 자유와 민주에 대한 갈망도 내포돼 있다. 중국은 홍콩에 대한 무력진압 시나리오까지 상정하며 선전(深圳)과 주하이(珠海) 등에 인민해방군 병력을 집결시켰다. 미국은 6·4 톈안먼 사태 같은 유혈진압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경고했으며 추수감사절에 즈음해서는 홍콩인권민주법안을 통과시켰다. 홍콩 시민들은 반공 자유화 시위 초기부터 성조기를 들고 미국 국가를 열창했으며, 자유의 여신상을 패러디한 조형물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1989년 6·4 톈안먼 사태 당시 학생들이 자유의 여신상을 등장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홍콩은 제1차 아편전쟁 이후 맺어진 1842년 난징조약에 따라 홍콩섬, 2차 아편전쟁 이후 1860년 베이징 조약에 따라 주룽반도 등이 차례로 영국에 양도됐다. 이후 홍콩은 교육과 치안, 행정 방면에서 영국식 빅토리아 문화가 철저히 이식됐으며, 국공내전을 피해 도주한 본토 이민자들이 상당수 유입됐다. 오랫동안 서구의 자유와 민주, 그리고 시장자본주의를 향유한 홍콩인들이 공산이데올로기와 결합된 중화민족주의를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존재가 불가능한 중화민족주의
 
  ‘중화민족주의’는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허구의 유사민족주의이다. 유럽만큼이나 광활한 중원의 문화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지역별 차이가 엄연히 존재한다. 춘추오패(春秋五覇), 전국칠웅(戰國七雄)으로 표현되는 지역할거의 전통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우한폐렴 사태에서 보듯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반기를 들게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한시 시장 저우셴왕(周先旺)이 중앙정부의 비준이 없어 전염병 실태를 늦게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중앙에 책임을 떠넘긴 것을 들 수 있다. 또 폐렴이 전국적으로 창궐하자 서로 경계를 만들고 타 지역인들의 유입이나 접근을 봉쇄하고 심지어 적대시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지역별로 각자도생 체제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또한 중국 정계에서도 장쩌민(江澤民)의 지역 파벌인 상하이방(上海幇)이 지금도 시진핑 체제를 위협하는 세력이다. 공산주의 중국 특유의 태자당, 공청단파 같은 계보도 살아 있다. 권력층 내부도 통일이 안 되는 마당에 구두선(口頭禪)에 불과한 중화민족주의로 한족도 모자라 위구르, 티베트까지 한 울타리로 포용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타이완·홍콩은 노골적인 반중 입장을 굳히고 미국 등 서방 진영에 기울어지고 있다. 허울에 불과한 중화민족주의는 지구촌 다른 지역의 민족주의와는 성격부터 다르다. 결국 깨어질 수밖에 없는 유사민족주의인 것이다.⊙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202008

지난호
전자북
별책부록
프리미엄결제
2020년4월부록
정기구독 이벤트
  • 지난호
  • 전자북
  • 별책부록
  • 정기구독
도서출간 배너
  • 월간조선 2018년 4월호 부록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

3